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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포석정을 거슬러 올라 금오정과 금오봉을 보고 다시 남산 용장마을로 하산.. (경북 경주시)산이 좋아 2016. 3. 11. 17:54
남산 포석정을 거슬러 올라 금오정과 금오봉을 보고 다시 남산 용장마을로 하산..
2016. 3. 11.
2016. 3. 10. 친구와 함께 경주 남산을 포석정에서 출발하여 윤을골로 진행하여 윤을골 마애불좌상을 보고 다시 부엉골로 들어서서 부엉골 마애불상도 만나고 부흥사를 거처 늠비봉 5층석탑도 만나고 늠비봉으로 올라 금오정 거쳐 상사바위 - 금오봉을 들러, 용장사지를 보고 다시 용장계곡을 거쳐 용장마을로 하산하여 포석정까지 임도를 걷는 11km 산행을 한다.
경주에 있는 남산은 산 전체가 불교 유적지라고 할수 있는곳으로 어디를 가든지 마애불를 볼수 있고 산행도 겸할수 있는곳이며 남산은 우리 민족문화의 얼과 역사가 깃든 노천박물관으로 그 무한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포석정에서 안내지도를 보고...
금오봉을 향해 본다.
포석정 지나 길가에는
이런 이쁜 글도 있었다.
공원 지킴터가 보인다.
공원 지킴터에서 등산객수를 파악하는 계수대를 통과하여
남산 순환도로쪽 넓은 길쪽을 택해 금오봉 방향 향한다.
포석정에서 넓은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윤을곡 마애불좌상 가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에서 좌측 산길을 조금만 오르면 배리 윤을곡 마애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5호)을 만난다.
마애란? "자연 바위에 선각 또는 부조 조각기법으로 조각하는 것"을 말한다.
여래는? "세상에 오신 진리의 부처"를 뜻한다.
윤을곡에 있는 마애불로, 바위가 'ㄱ'자형으로 생긴 동쪽 면에 약사여래 한 분을, 그리고 북쪽 면에 두 분의 불상을 조각하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분도 약사여래 이다. 그렇다면 약사여래가 두 분인데 이처럼 세 분의 불상 가운데 두 분이 약사여래인 경우는 드문 일이다.
본존불의 왼쪽 어깨 위에서 '태화 9년 을묘(太和九年乙卯)'라는 명문이 확인되었다. 신라 흥덕왕 10년(835년)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근처에 해목령을 둘레로 한 남산산성터기 빙 둘러져 있다.
윤을곡 마애불좌상을 보고 다시 큰길로 내려와서
다시 남산순환도로 큰길을 따라 걷다가
우측으로 노란 간판글씨 부엉골 마애불좌상을 따라 160m 간다.
비교적 편안한 산 오솔길로
나무에 녹색표지판에 문화유적 탐방로를 따라 간다.
땅바닥에 떨어진 부엉골 마애여래좌상 표지판을 따르니
부엉골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부엉골은 윤을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부흥곡(富興谷)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곳에 부흥사가 있고, 이 절의 남쪽에 부엉골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황금색을 띤다고 하여 '황금불'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정말 볼수록 신기하다.
이 부근에는 묘하게 생긴 바위들이 많이 솟아있는데,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 바위 또한 자연으로 처마가 이루어져 있어 비가 와도 바위 면에 빗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되어 있다. 이 바위 면에 전체적으로 마애불 주위를 파내고 세부적인 것은 가는 선으로 새긴 것이 부엉골 마애여래좌상 이다.
누런빛을 띄고 있는 바위면에 선각으로 조성한 불상으로 햇빛이 잘 비추는 석양 무렵에는 마치 황금색 불상을 보는 것처럼 황홀하게 보이기에, 이 불상을 '황금불상' 으로 불리기도 한다.
부엉골
옛날부터 사람들은 이 골을 부엉골이라 불러왔다. 골이 너무 깊어 낮에도 부엉새가 운다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실 제로 이곳은 마치 밀림처럼 숲이 우거져 있다.
골이 깊어 포석정으로 뻗은 계곡은 남산 8경중 하나로 꼽힌다. 부엉골엔 천연기념물 제 324호인 수리부엉이가 살고 있다. 70cm 정도 되어 보이는 큰 몸체다. 머리위로 우각이 솟아있다.
아득한 옛날 신라인들과 함께 살아온 부엉이가 대대손손 이 부엉골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부엉골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부흥사로 향한다.
부흥사 경내에 도착 한다... 조용한 절집이다... 오래된 절처럼 낡아 보이는 부흥사가 있다..
부흥사 (富興寺)는 깨끗하고 정갈하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남산(南山) 부엉골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1971년 경주시 배동 남산(南山) 부엉골에 있는 부흥사는 평범해 보이는 자그마한 사찰로 남산에 있던 수많은 절이 사라진 것처럼 이곳 역시 절터만 남았던 옛 절터에 1970년대에 다시 건립되었다.
대웅전· 요사채· 삼성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당 앞쪽에 옛 절터의 유적인 석탑의 옥개석 1매가 있고 아래쪽 연못 앞에 근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높이 70㎝ 정도의 불상 1구가 놓여 있다. 남쪽 늠비봉에 2002년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재들을 모아 복원한 높이 6.5m 규모의 5층석탑이 있는데, 탑재의 형식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요사채 뒤로 높이 있는 대웅전으로 오른다.
부흥사 대웅전 어느곳을 둘러 보아도 솔잎 가랑잎 나무잎 하나 없이 깨끗함과 정리 정돈, 이 모든것이 법현스님의 청결함이 더더욱 돋보인다.
부흥사 대웅전 편액
불단 중앙의 삼존불
부흥사의 대웅전 불단에는 부처님을 유리문 안에 모셔 두어 사진이 제대로 찍히질 않는다.
대웅전 불단 우측의 부처님
대웅전 동편이 신중탱
대웅전 측면과 지금은 부흥사 대웅전 옆 마당에 놓여 있는 석탑 지붕돌 하나가 옛 절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빛바렌 부흥사의 대웅전 단청이 참으로 장엄하다.
부흥사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요사
대웅전 옆에는 우물물이 펑펑 솟고 있었다.
우물도 너무나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우물에서 바라본 부흥사 전경이다.
부흥사 삼성각
부흥사를 내려서서 늠비봉오층석탑으로 향해 본다.
부흥사를 내려서 작은 계곡을 건너면 오층석탑이 있다.
대숲 가운데로 나 있는 탐방로
큰 늠비 절터 주변 석조유물
경주의 석탑 가운데 유일하게 백제 석탑 양식을 보여 준다. 대부분 부재를 새로 맞추어 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석탑의 앉음새가 한눈에 보더라도 아주 빼어나다..
늠비봉 오층석탑
그랭이 공법의 받침돌. 그랭이 공법은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 모양에 맞추어 윗돌을 다듬어 쌓는 수법이다..
석탑에서 바라본 포석 계곡(부엉골)과 경주 시내 모습이다.
금오정을 줌으로 당겨 본다.
금오정 능선 앞쪽 바위에는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늠비봉 오층석탑에서 금오정을 향한다.
금오정에도 바람이 거세다.
금오정 앞의 임도
금오봉(금오산) 도착이다.
비좀은 바위틈새 등로도 지난다.
금오봉에서 용장사지로 내려가는 길 초입은 잘 닦여진 넓은 도로이다.
금오산 아래부터는 큰길을 따라 걷는다.
금오봉에서 남산 순환도로를 타고 넓은 길로 오다가 우측으로 용장사지 갈림길로 내려 간다.
삼화령으로 접어드는 곳에서 용장사터로 내려가는 샛길이 나타난다.
용장사터까지는 약 400m쯤 가파른 능선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예전에는 줄을 잡고 내려갔지만 지금은 탐방로가 정비되어 가족끼리 와도 좋은 탐방로로 되어 있다. 주변경관을 해치지 않고 계단만 설치해 놓아 다행이다.
새로 설치된 계단을 내려서자
얼마쯤 내려선 곳에는 탑의 일부를 구성했던 것으로 보이는 석물이 방치되어 있다.
용장사지 갈림길에서 용장사지 방향으로 4분정도 진행하자 미끄러운 바위 구간에 데크식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정표가 있는 공터에 도착, 우린 우측 어려운 탑방로 용장사곡 삼층석탑 방향으로 진행한다.
삼화령
저기 멀리 남산순환도로의 대연화대좌가 보이고 그 너머에는 토함산이 멀리 보인다.
공터를 지나서 조금 내려가자 용장사지 삼층석탑과 고위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산은 분지 지형인 경주 한가운데 솟아있다.
더군다나 남산에는 주봉이 없다. 남산의 모든 봉우리는 저마다 다른 높낮이와 특색을 가져 봉우리마다 다른 관망을 볼 수가 있다.
남산의 아름다움은 토산과 암산의 절묘한 조화에 있다. 이 절묘한 조화에 자연적 지리적 여건으로 과거 신라인들이 남산을 넘나며 불심을 남산에 재현한데 있어 남산에 불상과 탑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살펴볼 용장 사지 삼층석탑도 이러한 이유에서 세워진 탑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 나라를 그리는 간절한 신앙은 탑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어느 것이나 조상들의 뛰어난 솜씨와 얼이 깃들어 있어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유산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슴에 와 닿는 유산을 꼽으라면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탑이란 불교 문화재중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흔한 것이다.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 산스크리트어 ‘스투파(stupa)’에서 유래 하였다.
이에 탑이란 말에는 분묘라는 뜻이 있으므로 불교 이전에도 존재하였다고 생각되지만 본격적인 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시작한 데서 유래되었다.
탑 아래에는 석불좌상과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다. 기둥처럼 우뚝선게 감시카메라 이다. 1923년 불상속에든 보물을 훔치려던 일당들에 의해 무너진걸 다음해에 복원하였다.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앉음새가 가장 뛰어난 석탑 !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아름답고 완벽하게 나타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 석탑 (보물 제186호)
삼층석탑과 용장골
계곡에 둥글고 너른 바위가 나타나고 그 위에 서서 높은 산위를 내려다보면 산꼭대기에 아득히 보이는 석탑이 외로이 서있다.
천상에 떠있는 탑이다. 속세를 아득히 내려다보며 평화롭게 외로이 떠있다. 바로 부처님이 계신 천상이 저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늘과 맞닿은 듯이 우뚝서 있는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석탑이며 보물 제 186호이다.
용장사의 석탑은 계곡에서부터 약 200m 가량 되는 산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크고 너른 바위를 하층기단으로 삼고 그 바위 위에 직접 상층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삼층으로 옥신을 쌓았으니 하층기단인 바위산은 바로 팔만유순의 수미산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바위산 산정은 사천왕이요, 첫째 기단은 도리천이 되고, 그 위로 층층이 쌓은 옥신은 하늘나라의 부처님 세계를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한다.
높이 4.5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탑으로서 하늘세계로 연결되는 크나큰 감격을 나타내었으니 이러한 아름다움은 재주로도 이룰 수 없고 힘으로도 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맑고 깨끗한 부처님 세계를 그리는 신앙의 정열만이 이러한 오묘한 구상을 지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 우리 조상들의 깊은 신앙심과 지혜가 느껴진다.
조선 세조 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만년에 이 곳 용장사에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썼다고 하는데 김시습도 이 삼층석탑을 향해 합장하고 석탑을 돌았을 것 같은 상상을 해 본다.
암벽을 뚫고 자라는 소나무 이다. 그저 신비로울 뿐이다.
석탑 앞쪽으로 태봉과 고위봉이 보인다.
삼층 석탑에서 바라본 서쪽 산봉우리들
삼층석탑 밑으로 내려가는 길,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 여래 좌상도 보이고 그 아래로는 용장사지도 보인다.
이렇게 보물은 쉽게 우리를 접근케 하지 않는다.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은 밧줄까지 잡아야 하는 험한 비탈을 이루고 있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에서 왼쪽으로 다시 암벽을 타고 내려가서 밧줄이 걸려 있는 바위와
계단을 통과하자 마애여래좌상과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바로 위에는 삼층석탑 그 아래로는 머리를 잃은 삼륜대좌불과 마애여래좌상이 용장골을 내려다보면 서 있다. 보물 아래 또 보물이 있다. 산행 재미를 솔솔하게 느끼게 하는 코스이다. 이런 보물을 만날 때 마다 감사해 한다.
서남산 고위봉
3월의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오랜만에 찾아본 마애여래좌상은 그렇게 그 자리에 세월의 흐름을 잊은채 앉아 있다. 남산의 마애불중 가장 미소가 아름다운 것 같아 남산하면 떠 오르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커다란 바위에 조각되어 있는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역시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 작품이다.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913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은 8세기 후반에 제작된 우수한 작품으로 석불좌상의 뒤편 암벽에 조성하였으며 연화대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에 이중으로 각출한 두광(頭光)· 신광(身光)을 갖추고 있다.
머리는 나발(螺髮)에 육계가 뚜렷하고 얼굴은 원만, 온화하다. 양쪽의 귀는 길게 늘어졌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법의는 통견(通肩)이면서 평행선이 세밀한 옷무늬로 처리한 것은 인도불상을 연상케한다. 양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특히 여래좌상의 신광 왼쪽에는 조상명(造像銘)으로 보이는 명문(銘文)이 세줄로 10여자 새겨 있으나 현재 판독은 어렵다.
경주시 경주 남산 용장사지 석불좌상(보물 제187호)의 뒤쪽 바위벽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원만한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내린 옷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보존 상태도 양호해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목에는 세 개의 선이 표현되었는데, 이것은 삼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삼도는? 깨달음을 얻는 세 가지 수행 단계에 이르는 말로
1단계 : 견도많은 지식으로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는 단계
2단계 : 수도수행을 반복하여 갖가지 번-뇌의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반복하여 수행하는 단계
3단계 : 무학도모든 수행을 끝내고 더이상 배울 것이 없는 최고의 단계 라 한다.
8세기 후반에 새겨진 작품임에도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했다. 비바람을 맞으며 마모가 되었을텐데 우수한 예술작품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
경주 남산 용장사지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삼륜대좌(三輪臺座)에 높이 모셔져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안타깝게도 머리 부분이 없다.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 여래 좌상 (보물 제187호)
용장사는 조선 세조 때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곳이다.
이곳 능선 위에 용장사터 3층석탑이 있고, 이 마애불 바로 앞에는 삼륜대좌불(三輪臺座佛)이 있다.
용장계곡 용장사지(茸長寺址)의 석조삼륜대좌불(石造三輪臺坐佛)은 자연석 바위를 하대석으로 삼고 둥글둥글한 대좌를 삼단으로 놓아 그 위 연꽃 방석에 부처님을 모셨으니 바로 수미산(須彌山) 위 도솔천(兜率天)의 미륵보살을 모신 것이 아니겠는가?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불상은 유가종(瑜伽宗)의 대덕(大德)이신 대현(大賢)스님께서 염불하면서 돌면 이 미륵상 또한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둥근 3단 받침위에 올라 앉은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
건너편 능선
용장사 석조여래좌상에서 계단을 잠시 내려서자 널찍한 절터가 나타난다. 계단을 내려가서 용장사지에 도착이다.
용장사터엔 대나무 숲만 남았다. 절터에서 고개를 들면 용장사탑이 기도하기 좋게 올려다 보인다.
용장사 절터
골 입구에 있는 마을 이름이 용장리(茸長里)로 전해 오고 계곡 이름도 용장골이라 불리어 오는 것은 모두 용장사에서 기인된 것이다.
용장사는 이 골짜기의 주인격일 뿐 아니라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대가람(大伽藍)었다. 통일신라 중엽에서 조선조 중엽까지 긴 세월을 두고 향연이 타오르던 대가람이 지금은 다 없어지고 건축을 세웠던 돌축대만 남아 있다.
동서로 약 70m, 남북이 40여m 되는 지역에 대소 11단의 돌축대가 남아 있다. 터에 올라서서 앞을 내다보면 하계는 아득하여 속세와는 단절되고 새로운 하늘나라에 태어난 느낌이다. 앞을 향해 오른편을 보면 절벽 바위 밑에 자리잡은 은적골 절터들이 눈 아래 보이고 왼쪽을 바라보면 은적암(隱寂庵) 부근의 삼각산이 높게 솟아 있다.
삼각산 너머 멀리 고위산 수리봉이 장엄하게 솟아 있으니 이러한 터는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닐까? 풍수지리를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감탄하게 된다. 가파르게 솟은 바위산 봉우리마다 탑이 서고 불상이 새겨져 있고 법당, 강당, 대문, 승방 등 수많은 전각과 누각들이 즐비해 있었을 것이다. 이 터는 극락세계가 아니면 도리천에 있는 희견성(喜見城)의 환상을 실제로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닐까?
“황금 궁전들이 칠보로 장엄되어 천 층(千層)이나 높아서 반 공중(半空中)에 솟아 있다. 이와 같은 궁전이 층층으로 세워져 극락세계에 차 있는데 그 전각마다 일곱 겹으로 보배 난간과 보배 그물이 둘러쳐져 있고 보배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것들이 금, 은, 유리, 거거, 마노, 산호, 호박 등의 칠보로 되어 있어 곳곳마다 그 웅장한 경치를 이루 말할 수 없으므로 극락(極樂)이라 하느니라.”
이상은 극락세계를 설명한 경문의 한 구절이다.
용장사 터에서 웅장한 전각과 누각들이 서 있던 옛 모습을 상상해 그려 보면 위와 같은 극락세계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용장사터엔 대나무 숲만 남았다.
용장사터를 지나 용장계곡에서 용장마을로 하산한다.
옛적 누군가 살았을 법한 곳에 시누대와 디딜방아의 흔적이 보인다.
용장사지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대나무 숲을 거쳐 10분정도 내려가자 용장골을 건너는 설잠교와 마주친다.
설잠교의 설잠은 김시습의 법명이고 호는 매월당이다
신라시대 대현스님 이후 조선시대 용장사에 머물었던 설잠스님 (김시습:1435~1493)은 조선초기의 학자이며 문인이다.
김시습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비판력으로 31세 되는 해(세조11년) 경주남산 용장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집필하며 수도 했다고 한다. 그의 저서로는 "매월당집" "매월당 시사유록"이 있다.
설잠교 아래로 용장계곡이 흐른다.
매월당 김시습의 법호인 설잠(雪岑)을 따라 다리 이름을 설잠이라 하였 한다. 남산의 골짜기 중에서도 비교적 수량이 풍부하고 골도 제법 깊어 은거하기에는 좋은 장소 였던것 같다.
설잠교를 건너 너른 반석에 섰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마지막으로 볼수 있는 위치이다. 합장을 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데 졸졸 흐르는 물이 목탁소리를 대신한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에 마음도 청량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고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용장골 징검다리 등산로
용장골에서
김시습
용장골 깊어 오가는 사람 없네
보슬비에 신우대는 여울가에 움돋고
빗긴 바람은 들매화 희롱하는데
작은 창가에 사슴 함께 잠들었네
의자에 먼지가 재처럼 깔렸는데
깰 줄 모르네 억새 처마 밑에서
들꽃은 떨어지고 또 피는데
또 하나 빠질수 없는 것이 바로 금오신화를 쓴 매월당 김시습의 이야기 이다.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이 세상을 등지고 용장골 은적암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집필했다는~
용장계곡
고위봉과 금오봉 사이로 흘러 내리는 용장골은 경주 남산에서 가장 큰 계곡으로 비교적 수량이 많았다.
그 옛날 속세를 등지며 용장골을 걸었을 김시습의 모습과 마음도 떠 올리며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옮긴다.
남산에서 가장 길다는 용장골 계곡을 따라 내려 간다.
설잠교를 건너서 용장골을 따라 용장마을 까지 하산은 20분쯤 소요 되었다.
용장골 입구와 용장마을
용장골을 다 내려오니 마을입구의 매화 나무에선 하얀 꽃 송이가 활짝 피어 올랐다.
용장골 입구 징검다리를 거쳐 마을길을 6분정도 내려가자 내남치안센터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부터 40분을 걸어서 포석장 주차장 도착이다.
포석정에서 출발 - 윤을골 마애불좌상 - 부엉골 마애불상 - 부흥사 - 능비봉 5층석탑 - 금오정 - 상사바위 - 금오봉 - 용장사곡 삼층석탑 -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용장사지 석조여래좌상 - 용장사 절터 - 설잠교- 용장마을 하산 - 포석정 까지 걷는 11km 산행을 했다.
남산에 있는 불교유적의 가치는 자연과의 조화와 다양성에 있다.
편편한 바위가 있으면 불상을 새기고, 반반한 터가 있으면 절을 세우고, 높은 봉이 있으면 탑을 세우되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면서 조성하였다.
비록 바위 속에 부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어도 바위가 불상을 새기기에 적정하지 않으면 불상을 새기지 않고 예배하였으며, 절을 세워도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운 흔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에 있는 부처를 보고, 정(釘)을 들고 바위 속에 숨어 계신 부처님을 찾아낸 것이다.
남산은 자연과 예술이 조화되어 산 전체가 보물이니 세계에 그 유례가 없다. 남산을 아니 보고 어찌 경주를 보았다 할 것이며, 몇 번 오르고 어찌 남산을 안다고 할 것인가?
남산에는 왕릉 13기, 산성지(山城址) 4개소, 사지(寺址) 147개소, 불상 118체, 탑 96기, 석 등 22기, 연화대 19점 등 672점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으며, 이들 문화유적은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44점이 지정되어 있고, 2000년 12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보호받고 있다.
날씨조차 화창한 봄날 멋진 남산을 9:40 ~ 14:50까지(점심. 휴식시간 포함) 거의 6시간을 남산에 머물며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며 느낀 하루였다.
기회가 되면 다음번에는 염불사지에서 출발하여 칠불암. 봉화대를 거쳐 바람재로 내려오는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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