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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 봉화골을 거슬러 올라 칠불암 - 바람재로 하산(경북 경주시)
    산이 좋아 2016. 3. 22. 10:03

    남산 봉화골을 거슬러 올라 칠불암 - 바람재로 하산..     

     

      

    2016.   3 .  22.

     

     

    2016.  3.   21.   한국불교대학 도반들과 함께 경주 남산을  남산동 염불사지에서 출발하여 봉화골로 진행하여 천불동 천불탑을 보고 다시 봉화골로 나와서 칠불암을 들러,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을 보고 다시 약수골로 하산하는  봉화골 나들이 산행을 한다.   

     

    경주에 있는 남산은 산 전체가 불교 유적지라고 할수 있는곳으로 어디를 가든지 마애불를 볼수 있고 산행도 겸할수 있는곳이며 남산은 우리 민족문화의 얼과 역사가 깃든 노천박물관으로 그 무한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경주 남산은 길이 복잡하지 않아거 간단히 소개된 경주 남산지도 한 장만 참고하면 산행하기 무리가 없다.

    칠불암 - 고위봉 - 바람재 산행이다..

    남산마을 염불사지 출발 사과농장 → 칠불암 →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  백운재 →고위봉  → 백운재→ 봉화대 → 473봉 → 바람재 능선 (바람골)→ 사과농장 → 남산마을 염불사지 도착이다..

     

     

     

     

    최근에 복원 된 염불사지 삼층석탑에서 출발하여 봉화골로 진행한다.

     

    염불사지를 지나 칠불암으로 오르는 길은 넓고 경사가 완만하여 정상부근의 일부구간을 제외하면 수월한 산행이다.  출발지에서 2km 정도니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칠불암까지 차량으로 갈수 있는 도로가 없기에 차량이 올라 올수 있는 도로 끝단에 필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는것이 특이한데 ‘칠불암 올라가는 물건’ 이라는 표시가 있는곳에 칠불암까지 데려다줄 주인을 지게와 함께 기다리고 잇는 모습이 정겹게 보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과 과수원 입구를 지난다.

     

     

     

     

     염불사지에서 출발해서 500m정도 걸은곳에 칠불암 첫 이정표가 나온다.   고위봉까지는 3.25km..

     

     

     

     

    염불사지에 차를 대고 걷기 시작했다.  금세 소나무 우거진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곳 봉화골은 진달래가 유난히 곱다는 골짜기다.  길섶에 스치는 진달래 가지에선 꽃순이 막 올라온다.  곧 붉은 봄을 터뜨릴 기세다.

     

     

     

     

    사과 과수원 입구에서 6분정도 올라가니 화장실과 계측기가 있는곳에 도착한다.

     

     

     

     

     

    등산객 수를 조사하는 입구 탐방 계수대를 지난다.

     

     

     

     

     

    가는 길에 만난 첫번째 작은 계곡.

     

     

     

     

     

     

     

     

    짙어진 녹림으로 알리는 등산의 시작

     

     

     

     

     

    칠불암 초입에 공중화장실을 지나 큰 징검다리가 나타나면 갈림길에 유의.   묘의 봉이 거의 평평하게 보이는 곳의 바로 위 몇 개의 묘소가 보이는데 우측길로 계속 따라 계곡 건너서 나무와 바위에 새긴 이정표 따라 올라가면 길의 끝 부분에 녹색문화유적탐방로 안내판이 나타난다.

     

     

     

     

    승소골 탑지 가까이 자리 잡은 대나무 숲

     

    천동골(千洞谷)은 칠불암을 향해 가다 보면 승소골 다음에 나타나는 골짜기이다.  이곳은 찾는 사람이 없어, 오가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골짜기 깊숙이 절터가 있고, 이곳에 특이한 형태의 탑이 있고 이곳에 특이한 형태의 탑이 있는데 천동탑(千洞塔)이라고 하는 탑이다

     

     

     

     

    승소골 탑의 잔해물

     

     

     

     

    군데 군데에 이런 석재가 남아 있다..

     

     

     

     

    천동골 계곡 옆에 비스듬히 자리잡은 옥개석

     

     

     

     

      2층 옥개석으로 보인다..

     

     

     

     

    천동탑 입구 디딜방아, 높은 산 언덕 비탈에 이런 디딜방아가 있다..

     

    천동탑이 있는 곳에 다다르기 조금 전에 디딜방아터가 있다.  이곳에는 디딜방아에 쓰였던 석부재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데 이 디딜방아가 당시 산속 절의 부엌에서 사용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천동골 삶의 흔적

     

     

     

     

     

     

     

    불교와 토착신앙이 합쳐진 아들 낳기를 기원하던 곳에 세워진 양석으로 볼 수 도 있고 절의 대웅전 앞에 촛불을 밝히던 석등으로 보이기도 한다.

     

    절터에는 2기의 탑이 있다. 이 탑은 축대가 있는 법당터 앞 양쪽으로 있는데 하나는 쓰러져 있고, 다른 하나는 서 있다.

     

    제2 천동탑은 쓰러져 있다. 마치 쌍둥이처럼 제1 천동탑과 닮았다. 땅에 묻혔던 아랫부분은 드러나 있고, 위쪽 끝 부분은 동강이 나 없어졌다.

     

     

     

    돌 축대위로 승소골 탑이 있던 장소,  승소골 탑은 국립경주박물관 입구 왼쪽 언덕으로 옮겨졌다.

     

    서 있는 탑의 모습으로 제1 천동탑이다.  돌기둥에 빙 둘러가며 수많은 감실을 파 놓았다.  천동탑은 높이가 약 2m로,   사람 키보다는 조금 크나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그 생김새가 매우 단조로우며, 이제껏 보았던 탑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다.

     

     

     

     

    다른 하나는 여전히 대지에 뿌리를 박고 의연하게 서 있었다.

    바위엔 주멍만한 구멍들이 빼곡하게 둘러 있다. 그 구멍 하나 하나가 부처님을 모신 감실이다. 구멍들은 비어 있었다. 그 안에 작은 부처님상들을 모셨는지,  아니면 그곳에 게실 거라며 마음속의 부처를 모셨는지 알수가 없다.  남산의 많은 탑들 중 감실로 이루어진 탑은 이곳 뿐이다.

     

     

     

     

     

    천동탑을보고 다시 봉화골로 내려가 칠불암으로 향하는 길로 돌아와서 잠시 쉬어간다.

     

     

     

     

     

     

     

     

     

    남산의 보배는 역시 소나무다.  솔향이 넘쳐나는 경주남산은 바위와  노송이 전부다.

     

     

     

     

     

     

     

     

    맑은 계곡도 건넌다.

    칠불암 오르는 길의 염원을 담은 돌탑,   길 옆 바위마다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올려 놓은 작은 돌탑들이 군인들의 제병행렬을 보듯  줄지어 서 있다. 나도 작은 돌 하나를 집어 올려본다...

    칠불암 깊은 계곡의 맑은 물은  피라미들의 놀이터 이다....

     

     

     

     

    칠불암 가는 길은 너덜바위 길이나 아주 완만한 산행길이다.  칠불암 가는 길, 소나무숲이 멋지다.

     

     

     

     

    솔향 진한 편안한 길이 이어지고....

     

     

     

    계측기를 통과하여 징금다리를 수차례 건너면서 30분 정도 올라가자 칠불암 요사인 대안당(大安堂) 건물과 곧이어 약수터 이정표가 보인다.

     

     

     

     

     

    칠불암 100m 아래에 있는 칠불암 약수터

     

     

     

     

    시원한 약수가 나타난다.  신라의 정기를 받은 물인지 물맛이 시원하다.

     

     

     

     

     

     

     

     

     

     

     

    칠불암 바로 아래에 있는 요사채로 최근에 완성된 대안당(大安堂)에서 대나무가 울창한 돌계단을 올라서자 드디어 칠불암에 도착한다.

     

     

     

     

    코가 닿을 듯한 대숲 돌계단을 올라 간다.......

     

     

     

     

    칠불암 근처에 거의 다다르면 작은 대나무숲굴을 지난다. 어디서 들었는데 대나무숲이 있는 것은 사람이 살거나 살았던 흔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산사 주변에는 대나무숲이 많은 걸까?

     

     

     

     

     

     

     

     

     

    신우대를 만나면 절이나 인가가 근방에 있다는 표시다.

    스치는 맑은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든 신우대로 덮힌 터널 아래의 돌계단을 쉬엄쉬엄 밟으며 즐기는 운치를 무엇에다 비하리... 

     

     

     

     

    돌계단을 올라 신우대를 벗어나자 마자 칠불암이 나타났다.

     

     

     

     

    칠불암 보다 높은 하늘을 먼저 만난다. 우와, 저렇게 청명할 수가!!  

     

     

     

     

    가파른 신우대 터널의 하늘계단을 오르며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고,  숨찬 가슴을 진정시키다 보면,  머리 위로 파랗게 열린 하늘이 길손을 반긴다. 칠불암이다...

     

     

     

     

     

     

     

     

     

     

     

     

     

    마지막 돌계단에 힘을 주어 딛고 올라서면 황홀하고도 감격스러운 정토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다.

     

    칠불암은 신라 때 절이 아닌 근래에 지어진 절로 법당 안에는 불상이 없고 그 자리에 유리가 있어 칠불암 불상군을 향해 기도할 수 있다.

     

     

     

     

     

    오르는 동안 숲 안에 갇혀서 보이지 않던 시야가 탁 트이면서 높은 절벽을 뒤로 한 채 선정에 든 부처님과 한켠에 자리잡은 칠불암의 모습은 산속에 파묻힌 암자와 불상의 아름다움을 지극히 느끼게 만든다.

     

     

     

     

    대나무숲을 지나서 드디어 칠불암에 도착했다. 절 규모는 큰 편이 아니지만, 깨끗하고 소박한 느낌이 든다.

     

     

     

     

     

     

    단아한 칠불암 편액이 보인다.

     

     

     

     

     

    아담한 칠불암 법당

     

    법당에 부처님이 안계시고   벽을 유리로 처리하여  바위에 있는 부처님을 향해 경배를 올릴 수 있다.

     

     

     

     

     

     

     

     

     

     

     

     

     

     

    이 칠불암 앞의 작은 기도마당 옆에는 그림을 그려놓거나 소원을 담거나 마음의글을 담은 기와들이 옹기 종기 도열해 있다.

    원래는 외국에서온 효공스님인가 - ?  하는 비구니스님이 머물면서 기와에 예쁜그림을 그려 놓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지금 그 스님은 떠났으나 그의 그림은 아직도 정겹게 남아 있다.

     

     

     

     

     

     

    아름다운 칠불암 마애불상군

     

    마애불 옆의 칠불암은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로 좁은 암자 마당은 항상 붐빈다.

    칠불암코스는 이곳의 암릉능선을 따라 위로 올라가 봉화대능선에 합류하여 고위봉과 금오산은 물론 남산일주도로와 연결되는 까닭에, 남산을 종주하거나 산행을 겸해 유적답사를 하는 이들이 즐겨찾는 길이다.

     

     

     

     

    칠불 왼쪽에는 석등과 탑의 부재로 보이는 돌들을 모아 세운 탑이 있다.

    흩어진 석재를 모아놓은 삼층석탑과 석등 연꽃좌대로 봐서는 제법 규모를 갖춘 칠불암 법당이 있었는것 같다.

     

     

     

     

     

     

    남산에 있는 유적 중 국보로 지정된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정면에는 남산 유일 국보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자리 잡고 있다.

    천 년이 지났지만,  얼마 전에 만든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조사로는 원래 이 칠불암 불상군은 거대한 전각으로 덮여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칠불암의 배치도. 왜 가장 큰 삼존불 앞에 작은 사면불을 둬서 시야를 방해하게 한 것일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어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저 사면불은 지금 자리가 아닌 다른 자리 같다....

     

     

     

     

     

    정면의 사면불과 삼존불,  마애불상군 위에 그 위 하늘 높이 솟아오른 바위산 꼭대기의 신선암 마애석불이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가파른 산비탈을 평지로 만들기 위해서 동쪽과 북쪽으로 높이 4m 가량되는 돌축대를 쌓아 불단을 만들고 이 위에 사방불을 모셨으며, 1.74m의 간격을 두고 뒤쪽의 병풍바위에는 삼존불을 새겼다.

     

    칠불암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조각되어 있는 사면불과 마애삼존불을 더해서 불상 일곱을 모신곳이다. 높은 절벽을 등진 뒤쪽 자연암석에 삼존불이 있고, 마애삼존불 앞쪽에 네모난 바위가 있고 그 바위 각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남산의 눈부신 바위 절벽과 어우러져 웅장함을 느끼게 하는 조각상이다.

     

     

     

     

     

     

    삼존불은 중앙에 여래좌상을 두고 좌우에는 협시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화려한 연꽃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은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크기가 같으며,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있는 옷을 입고 있다.  삼존불 모두 당당한 체구이며 조각수법이 뛰어나다.  다른 바위 4면에 새긴 사방불도 화사하게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방향에 따라 손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삼존불은 측면에서 보니 돋을새김이 정교하고 뚜렷하다.

    원래 불상이 들어 앉을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셨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도 이곳 주변에서 당시의 구조물을 짐작케 하는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조각기법 및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이 칠불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삼존불 앞에는 사방불을 새겼는데 가장 앞에 있는 분은 동방의 “약사유리광여래”이고  서방의”아미타불”,   남방에 “미륵불”   는 북방에는 “석가모니불”을 새겼다고 한다.

     

    삼존불의 석가모니불은 석굴암보다 오십년 앞서서 새겨져서 석굴암을 조성하기 전에 먼저 새기고 그것을 참고로 석굴암의 석가모니불을 모신 것이고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삼존불의 석가모니불과 석굴암 그리고 대왕암은 일직선에 놓여 있다고 하니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염원을 새기고자 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사방불에도 남북 두 군데에 그 흔적이 있고 삼존대불의 뒷면에도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으니 이 불상들은 원래 목조로 된 건축물 안에 있었던으로 추측이 된다.

     

     

     

     

     

     

    사방불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보살상(菩薩像)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면불은 활짝핀 연꽃에 가부좌를 튼모습으로 앉아 사면 모두 손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사방불 중 동방의 “약사유리광여래”( 맨 좌측)

     

     

     

     

    남방에 “미륵불” 

     

     

     

     

    서면(西面) 아미타여래상 사면불 중에서 잘 보이지 않는 좌측 뒷면의 마애불

     

     

     

     

     

     

     

     

     

    사방불 북방에는 “석가모니불”(어두어 잘 보이지를 않는다) 을 새겼다고 한다.

     

     

     

     

     

     

     

     

    칠불암 삼성각이다.

     

     

     

     

     

     

     

     

    칠불암 삼성각 내부에는  좌로 부터 독성. 칠성. 산신탱을 모셨다.

     

     

     

     

     

    칠불암 삼성각  처마끝으로 봉화대 암릉이 보인다.

     

     

     

     

     

    칠불암 삼성각에서 바라본 칠불암 전경이다.

     

     

     

     

     

     

     

     

    오래되어 보이는 칠불암 주지스님의 목탁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절집 마당의 암벽을 등지고 서있다.

     

    높은 돋을새김으로 돌을 쪼아낸 석공의 솜씨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1000년도 넘는 시간의 저편에서 새겼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넓은 암벽에 새겨진 본존불과 그 양옆으로 선 협시보살,  그리고 그 앞의 직육면 바위에 사방으로 새겨진 불좌상.  이렇게 일곱 불상 들이 한데 모여서 그려내는 모습이 빼어나다.

    불상의 둥근 눈두덩이며,  대좌로 삼은 연꽃이며,  옷깃의 하늘 하늘한 옷자락 주름 까지도 선명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그 불상에서 보아야 할 것은 이런 조형미만은 아니다.

    마애불상군에서 정작 느껴야 할 것은 그 앞에 두손을 모으고 간절한 소망을 빌었을 1000년도 더 지난 세월의 저편에 살던 신라인들의 마음이다.

    칠불암의 마애불을 만나려고 신라 사람들은 저 아래의 마을에서 이리도 긴 숲길을 걸어 올랐을 것이고,  그렇게 당도한 불상 앞에서 마음 안쪽에 깊이  담아온 소망을 풀어놓았을 것이었다.  일곱개나 되는 불상 앞에서....

     그들은 무엇을 빌었을까?  무슨 간절한 소원이 있었을까?  거친  산길을 타고 그들을 여기까지 오르게 한 힘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칠불암 법당 처마위로 봉화대 암릉이 보인다.

     

     

     

     

     

     칠불암 마당의 멋진 소나무의 자태이다...

     

     

     

     

     

     

     

     

    바람이 막힌 양지바른 곳 칠불암에서 휴식을 취한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을 만나러 갈 차례이다...

     

     

     

     

     

     

     

     

     

    이제껏 오른 길보다 험한 바위길이 이어졌는데 겨우 200m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칠불암에서 신선암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에 테크식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바위 길을 올라서 평평한 지점에 도달하니 다시 경주시내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바위산의 능선에서 바라본 동남산의 시원하게 펼쳐진 모습이다.  멀리 배반평야의 너른 들판과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와 여장부 선덕여왕의 묘가 있는 낭산(狼山)이 눈에 들어온다. 

     

     

     

     

     

     

     

    칠불암을 돌아 절벽으로 난 길을 올랐다.

     

     

     

     

     

     

     

     

     

     

     

     

     

     

     

     

     

    삼존불에서 남산의 주능선 방향인 서쪽 길을 따라 하늘로 솟아오른 가파른 바위산을 200m쯤 올라 60여m 더 오르면 신선암 마애보살상으로 가는 길목에 다다른다.

    잇다라 설치된 데크식 계단을 올라가서 신선암 60m 이정표를 따라 조금 내려가자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이 반겨 주었다.

     

     

     

     

    신선암 절터

     

    마애불의 바로 윗쪽에는 칠불을 모신 이곳 큰 사찰의 부속암자였을 신선암의 작은 절터가 있다.

    축대 위가 절터이고 아래는 작은 앞뜰로 삼았다.  신선암이란 암자가 이곳에 있었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마애불의 이름도 신선암마애불로 불려지게 된 것인데, 절터 어디에도 그에 대한 안내문은 없다.

    절은 간 데 없고 무심히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발자욱만 오갈 뿐이다......

     

     

     

     

     

    이 깍아 지른 벼랑을 타고 불상을 새긴 선조의 장인정신에 다시 한번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 마애보살반가상은 보물 제 199호로 칠불암(七佛庵) 위에 곧바로 선 남쪽바위에 새겨져 있다..   안전시설을 갖춘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신선암 석등자리, 산의 일부인 자연석을 그대로 대석으로 삼았다....

     

     

     

     

     

     낭떠러지 위 좁은 바위 난간을 돌아가 만난 시선암 마애불은 남산에서 가장 잘 생긴 ‘얼짱’ 불상이다. 보관을 쓰고 화려한 옷을 걸친것을 보니 부처가 아닌 보살이다.  구름좌대 위에 올라 앉은 보살은 편안하게 다리를 푼채 한없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애불 앞에 서서 불상의 눈 높이로 시선을 따라 했다.  남산의골골이 사선을 치며 겹쳐졌고 그옆을 두른 기암의 병풍 너머로 드넓은 경주의 들이 펼쳐졌다.

     

     

     

     

     

     

     

     

     칠불암 뒤 깎아지른 암벽 신선암 위에 새겨진 마애보살반가상 (보물 제199호)

     

    현기증이 나는 발 아래를 애써 보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입구를 돌아서면,  하늘로 솟은 바위에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하강한 관세음보살이 속계를 지그시 내려다 보고 있다.

     

    이 험한 절벽끝에 새겨진 마애불 부근의 넓은 곳은 5m 정도이나 마애불 정면은 사진을 찍기 위험할 정도로 좁다.   뒤는 수십길 낭떠러지다...

    지형이 이러하니 이 곳은 땅 위라기보다 허공인 셈이다.........

     

     

     

     

     

     마애불에서 눈을 들어 앞을 내다보면 아득한 아래 세상은 송림의 푸른 구름으로 덮여 있고,  멀리 바라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하늘 위에 솟아 있는 봉우리들로 착각을 일으키게 되니,  내몸은 부처와 함께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이다.

     

    이러한 환경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은 보통의 일상에서는 불가능하다.

    생명을 다하여 부처의 밝은 세계를 동경하는 소망과 정열이 없이는 이러한 환경을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죽음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이러한 험한 암면에 부처를 새길 엄두조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남쪽을 향해 절벽을 이루고 있는 이 암면(岩面)은 비가 와도 부처가 젖지 않도록 윗쪽면이 조금 앞으로 나오도록 경사를 지어 깎아내고 그곳에 높이 1,53m,  너비 1.27m의 배광(背光)을 감실(龕室)모양으로 파면서 돋을새김으로 보살상을 나타내었다.

    옷자락으로 덮여있는 의자 위에 걸터 앉아 한 손에 꽃을 들고 한 손으로는 설법인을 표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채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다.   큰 사랑(대자비:大慈悲)이라는 위대한 선물을 가지고 우리들 세상으로 내려오는 모습인 것이다.

     

     

     

     

    몸체 뒤에는 무지개 모양으로 신광이 나타나 있고 머리 뒤에는 달무리 같이 둥근 두광이 부드럽게 어려있다.   패어진 얇은 감실은 그대로 주형광배(舟形光背)이니 어느 것 하나 재치있게 표현되지 않은 것이 없다.

     

    광배 위에는 너비 8.2cm   길이127cm   깊이 6cm 되는 홈이 일직선으로 가로 패어져 있는데,  이곳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차양(遮陽)을 달았던 자리로 짐작된다.   차양홈 위에 삼각으로 홈이 파져 있는데 바위 위에서 흘러오는 물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으로,   불상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게 극도의 배려를 한 흔적이다.

     

     

     

     

     

    머리는 보계(寶髻)를 틀어 크게 올리고 그 둘레에 삼면두식(三面頭飾)으로 장식하였다.  장식을 동여맨 끈은 머리 좌우에서 나비 날개처럼 매듭을 짓고,  그 자락이 양 귀 언저리로 흘러내려 두 어깨 위에 보기좋게 드리워져 있다.

     

    살결이 풍성한 둥근 얼굴에는 하현달 모양으로 패어진 고운 눈썹에 연결되어 기름한 코가 알맞는 맵시로 솟아있어 둥글고 풍성한 덕성스러운 얼굴을 형성하고 있다

     

    지금도 발그스레하여 핏기가 감도는 입술은 누구에게나 정다움을 느끼게 하는 낯익은 얼굴이다.

    두 귀에는 화려한 귀고리가 달려 있고 목에는 구슬 목걸이가 걸려있다.

     

    오른손에는 화려한 보상화(寶相華) 가지를 들었고 왼손은 설법인을 표시하여 왼쪽 가슴에 들었는데 다정하고 부드러운 얼굴의 표정은 다시 이 손에 반복되고 있다.  손가락들의 변화도 다양하지만 맑은 피가 감도는 듯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조각술도 가히 일품이다.

     

     

     

     

     

    허리에는 치마끈이 매어지고 그 자락이 의자 위로 흘러내렸는데 왼쪽발을 그 자락 위에 편안히 얹어놓고 오른발은 의자 아래로 내려 걸터앉아 있다.  구름 속에서 한 송이의 연꽃이 피어 나와 드려진 오른발을 받들고 있다.  오동통한 발은 돌이 아니라 사람의 살결처럼 선이 부드럽다.

     

    관세음보살이 걸터앉은 자세는 유희좌(遊戱坐)라 칭하는 흔치 않은 앉음자세다. 

    결가부좌는 반드시 두 발이 모두 양 무릎 위에 얹혀져 있어야 하고,  반가상(半跏像)은 어느 한 쪽 발이 반대편 무릎 위에 얹혀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보살의 왼쪽 발은 의자 위에 얹혀 있을 뿐 무릎 위에 얹혀져 있지 않다.

    결가(結跏)를 모두 풀어놓은 자세이니 이러한 앉음자세를 유희좌(遊戱坐)라 부른다.

    아주 편안한 앉음자세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은 부담없는 자세로 편안히 앉아서 우리 인간들을 구제할 생각을 하면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오른손에 꽃을 들고 있는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은 8세기 후반 작품으로 추정 된다고 한다.

     

     

     

     

     

    높은 곳에 앉아 동쪽을 향한 신선암마애불은 남산의 많은 불상 중 제일 먼저 달빛과 햇빛을 받는다.

    보름달이 떠 오르면 수월관음(水月觀音)이 되고,  아침 햇살을 받으면 돌 속에서 살아나 인자한 미소로 오늘도 서라벌을 내려다 본다......

     

     

     

     

     

    신선암 마애불이  경주시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선정에 들어 반개한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부처님의 가피로 신라를 굽어 살펴달라는 신라인의 바람을 느끼게 만들었다.

    결가부좌에서 한쪽 다리를 내린 유희좌의 자세는 선계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 온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하니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 그 모습을 감상하며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에서 한동안 마음의 휴식을 취하고 나서 다시 고위봉으로 향했다...

     

     

     

     

     

     

     

     

     

    칠불암 뒷쪽 바위절벽 위에있는 신선암에서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약 40~50m고도 차이를 느낀다..

     

     

     

     

     

     

    칠불암의 마당이 손바닥 만큼 작게 보인다. 

     

     

    암반 위에는 지름 10cm정도의 구멍이 두 걸음 간격으로 몇 군데가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이곳에 기둥을 세운 흔적이 있으니 이 불상들은 원래 목조로 된 건축물 안에 있었던으로 추측이 된다

     

     

     

     

     

     

    신선암 마애불에서 바라본  바람재 능선은 앞에서 두번째 암릉 능선이다.  고위봉을 오른 후 하산할 바람재 방향이다...

     

     

     

     

     

     

     

     

     

     

     신선암마애불을 뒤로 하고 경주 남산의 금오봉과 고위봉을 잇는 주능선에 도착했다. 고위봉 갈림길, 봉화대 방향으로 올르다 갈림길에서 고위봉을 향한다...

     

     

     

     

     

     

     

     

     

     

     

    칠불암에서 남산 최고봉 고위봉을 향하는 초입의 길이 참으로 좋다..

     

     

     

     

     

     

     

    백운재도 지나 500m 가면 고위봉이다.

     

     

     

     

     

     

     

     

     

     

     

     

     

     

     

    고위봉 100m를 남기고 부터

     

      

     

     

    눈하디 순한 남산도 최고봉인 고위봉을 순순히 내어주려 하지 않은듯 조금은 치고 오르고...

     

     

     

     

     

     

    와우~  드디어 남산의 최고봉 고위봉이다..

     

     

     

     

     

     

     

     정작, 고위봉 정상은 울창한 나무에 둘러 쌓여 아무런 경치도 볼수 없었으니,  남산 제일 고봉이라는 명함이 무색하고, 봉분이 허무러진 무덤 두기만,  버려지듯 자리잡고 있었다.

     

     

     

     

     고위봉  주위의 소나무림

     

     

     

     

     

     

     

     

     고위봉의 산불감시 초소가 정겹다.

     

     

     

     

     

     

     

    고위봉에서 20m쯤 내려와서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다시 칠불암 표시를 따라 백운재쪽으로 진행한다.

     

     

     

     

     

     

     

     

     

     

    백운재를 지나 칠불암으로 가기전 우측길로 접어들어 봉화대로 향한다.

     

     

     

     

     봉화대는 새갓골(열암곡)석불좌상으로 연결되며 또 신선암과 칠불암으로도 연결된다. 봉화대 갈림길에서 새갓골 석불좌상 방향으로 진행한다.

     

     

     

     

    봉화골 정상의 봉화대 전경

     

     

     

     

     

    조선시대의 봉화터가 있었다는 봉화대는 석축의 흔적만 남아 있다.

     

     

     

     

     

     

     

     

     

     

     

     

     

     

     

     

    이정표 뒤편으로 바람재 능선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열려 있다.

     

     

     

     

    건너편으로 칠불암과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이 있는 바위가 보인다.

     

     

     

     

     

     

     

    지나온 봉화대 능선

     

     

     

     

     

     

     

    바람재 능선을 타고 흥얼흥얼 내려오는 길이 참 좋다.  바위들의 절경과 먼 풍경, 감히 남산 최고의 절경이 아닐까 싶다.

     

     

     

     

      

     

     

    바람재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길은 남산 최고의 절경을 보여준다!   바람재에서 본 칠불암이다.

     

     

     

      

     

     

     

     

     

     

    하산할 바람재 능선이다. 봉화골을 사이에 두고 칠불암과 마주하고 있다.

     

     

     

     

    바람재 능선을 내려가며 남산동을 배경으로

     

     

     

     

    바위틈에 자라는 멋진 소나무

     

     

     

     

     

     

     

     

     

    바람재 앞의 봉화골 능선

     

     

     

     

     

    우리가 가야 할 바람재 능선

     

     

     

     

     

     

     

    바위들의 절경과 먼 풍경, 감히 남산 최고의 절경이 아닐까 싶다.

     

     

     

     

    양지바른 바람재 능선에는 붉은 봄을 터뜨렸다...

     

     

     

     

     

    올라갈때는 미쳐 몰랐었는데 이곳에서 마주친다. 두 번째 계곡 입구 이다.

     

     

     

     

     

    평지와 다름없는 여유로운 하산길 이다.

     

     

     

     

     

     

     

     

     

     

     

     

     

     

     

     

     

     

    고즈넉한 길을 따라 칠불암 길을 만나서 하산 완료 한다.

     

     

     

     

     

    하산 완료지점에서 염불사지 주차장까지는  1km 정도 걸어가야 한다~

     

     

     

    들머리였던 사과 농장이 보인다. 거의 다 내려온듯 하다. 양지바른 곳에 자란 원추리 나물을 해와서 저녁 반찬으로 밥상에 올리니 봄냄새가 제법이다.

     

     

     

     

     

     

    1000여년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남산리 삼층석탑을 지나고 염불사지를 지나면 산길이 시작된다.   초입의 흙길은 잘 비질한 절집의 마당같이 정갈하고 이른 봄꽃들이 앙증맞다. 

    1000년 전 신라 사람들이 불심으로 드나들던 그때도 이 길의 정취가 그랬을까 ?

     

    경주의 불국사나 황룡사,  석굴암 등이 지배층의 대작불사로 왕족과 지배층의 공간이었다면 남산은 백성들의 불심을 보듬은 곳이었다.

    왕족들이 화려하고 우람하고 거대한 절집을 세웠다면,  백성들은 아예 남산을 통째로 불국토를 이루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삼국통일의 와중에 전쟁터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을 백성들의 신산한 삶과 그들이 닿고자 했던 이상세계를 남산에 그려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남산의 숲길에서 저절로 부처를 만나러 오갔을 신라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곳을 찾은들 어떨까?

    남산의 산길을 걷노라면 세련되면 세련된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1000년도 훨씬 넘은 시간 속에 잠겨 있던 석물들이 신라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을 간직한 채 맞아줄 것이니….

    남산을 오를 때마다 매번 참 희한하다고 느꼈던 것은 경주시내에 그득한 유적들은 한번 보면  기억 속에 인화된 사진처럼 오래도록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남산을 올라서 만났던 석불이며 석탑들은 곧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건 아마도 노천의 유물들이 온전히 '그것만의 형태'가 아니라 유물들이 서있는 자연들과 함께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리라.  그날의 계절이나 햇빛과 바람 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자연의 일부가 돼서 정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란 얘기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 어느새 자연과 닮아있어서일까?

     그래서 남산은 한번 발을 들인 뒤에는 그 희미해진 잔영을 쫓아 언제고 다시 찾게 되는 것이리라.

     

    휴식을 취하고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 온 남산에서 많은 것들을 얻어 가져가는 기분이다.

    현실을 열심히 살고 있지만 현실은 외적인 것들을 충족하기 위한 것들이고 내적인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시간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치열하고 각박한 현실에서 더 많은 공부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지혜가 없으면 현실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묻히게 만든다.  그런 지혜를 얻기 위한 공부가 이런 시간에서의 사색의 시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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