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신라시대의 석불을 만나러 남산 삼릉계곡으로 올라 약수골로 하산 ...(경북 경주시)산이 좋아 2016. 2. 27. 16:03
많은 신라시대의 석불을 만나러 남산 삼릉계곡으로 올라 약수골로 하산..
2016. 2. 27.
2016. 2. 26. 얼마남지 않은 겨울이 아쉬워 경주 삼릉 냉골 입구에서 출발하여 두루 문화재를 답사 후 상선암을 잠시 들러, 바둑바위를 밟고 상사바위를 지나 금오산을 오른 후 약수골로 하산하여 다시 삼릉으로 돌아오는 삼릉계곡 나들이를 한다.
남산은 서라벌의 진산(鎭山)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km, 남북 길이 10km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여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다. 남산에는 온갖 전설이 남아 있고,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의 산이며, 선조들의 숨결이 가득한 민족문화의 산실이다. 이 산 주변에는 신석기 말기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신라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이 탄강(誕降)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奈乙神宮), 왕릉이 즐비하며, 도성(都城)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과,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있어 남산은 실로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 한 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코스는 신라시대의 석불을 시대적으로 모두 만날 수 있는 신라석불의 보고이다.
먼저 삼국시대의 대표적 걸작인 배리삼존불, 통일신라의 문화적 성숙기에 조성된 풍만하면서도 늠름한 기상이 보이는 냉골 석조여래좌상, 하늘에서 하강하는 모습의 마애관음입상, 힘있는 붓으로 한번에 그린 듯한 선각육존불, 남산에서 유일한 고려초기의 마애여래좌상, 통일직후의 아름다우면서도 힘차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름다운 석조여래좌상, 산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그림자를 보여주는 듯한 선각마애여래상,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크며 바위 속에서 현신하는 순간을 새긴 마애여래대좌불 등 실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초기까지 신라불상을 두루 만날 수 있는 코스이다.
경주에 있는 남산은 산 전체가 불교 유적지라고 할수 있는곳으로 어디를 가든지 마애불를 볼수 있고 산행도 겸할수 있는곳이다.
경주 삼릉주차장에 차를 주차 후, 주차비 2,000원을 지불하고 삼릉 숲으로 향한다.
남산 삼릉 솔숲의 늦겨울 풍경이다.
빼곡한 조화를 이루며 자유로이 노니는 오래된 나무들..
삼릉 탐방지원센터가 보인다.
삼불사 갈림길...
삼릉계곡으로 오르는 오솔길, 이 길을 따라 오르면 석조여래좌상, 마애관음보살상, 선각6존불, 석불좌상, 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 등 신라시대의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경주 남산은 어디에서 들어도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산이다.
멋진 노송이 기우뚱 거리는 길을 따라 오솔길을 들어서자 우측에 조용한 삼릉이 보인다. 삼릉의 노송은 파란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파란 노송이 어우러진 숲과 겨울잠을 자는 황금빛 잔디가 어우러진 삼릉은 맑은 하늘과 조화를 이룬다. 우리나라 왕릉주변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사철 푸르른 탓일까?.. 삼릉을 벗어나 산길을 재촉한다.
옛날에 소나무 뿌리를 밟고 다니던 등산로가 나무로 잘 만들어져 있다.
데크가 없어도 충분히 편안하고 걷기 좋은 길, 주변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데크길을 낸것일까?
테크길이 끝나고 돌과 흙으로 잘 복원된 등산로가 시작된다.
오늘 산행은 삼릉 - 상선암 - 바둑바위 - 금오봉 - 약수골로 하산할 계획이다. 물론 중간 중간의 문화재는 꼼꼼히 살피면서...
백색글씨는 등산로, 황색 글씨 표지판은 문화재 안내라니 등산로를 오르며 황색글씨 따라 문화재를 잘 챙겨 봐야겠다..
삼릉계곡을 냉골이라고도 하는데, 사시사철 시원한 계곡물이 끊이지 않으며 남산에서 가장 길고도 가장 많은 불상조각이 있는 계곡이다. 봄이면 소나무 사이로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등산길을 즐겁게 해준다.
등산로 초입에 등산객 수를 조사하는 입구를 통과한다.
주차장에서 약 500여m의 길은 소나무로 된 사이길로 되어 있어 참으로 기분좋은 길이다..
돌과 흙으로 잘 복원된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삼릉계곡에 흩어져 있던 이름 모를 유적의 일부들을 모아 놓았다.
천년고도 경주 신라가 숨쉬었던 곳에....
이렇게 곳곳이 파손된 신라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그자리에 다시 보존하고 있다. 부근에서 발견된 석조물을 한곳에 모아 두었다.
남산 삼릉계곡 (삼릉곡 제1사지 탑재 및 불상 전경)
부근에서 발견된 석조물을 한곳에 모아 놓았다. 이불상은 약사 여래불상으로 현재 위치에서 30m 아래 계곡에서 발견 되었고 머리부분이 파손 된체로 발견되었다 한다.
부처님의 몸과 부서진 문화재가 진열되어 있는곳을 지나니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는 문화재 표지판인 황색 표지판을 따라가 본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삼릉골을 따라 올라가 남산에서 처음 만나는 불상은 목이 잘린 채 결가부좌하고 있는 부처님이다 .삼릉을 오르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부처님.그런데 머리가 없다.. 이 부처는 냉골을 조금 오르다 보면 만나는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이다.
손도 잘린 채 몸만 남았음에도 털끝 만큼도 흔들이지 않는 그 모습이 의연하다. 높이 1.6m, 무릎 너비 1.56m 정도의 크기이다.
이 불상은 원래 계곡에 묻혀 있었는데 지금의 자리에 옮겨진 것이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주름이 자연스럽고, 옷을 여민 매듭과 장식이 무척 정교하며 단아하다. 당시 스님들의 복장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부처님의 얼굴 표정이 무척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사실적이며 기백이 넘치는 조각 수법으로보아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없는 부처가 갈곳 잃은채 계곡 바위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나는 삼릉계곡을 오르내릴 때마다 목없는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의 얼굴을 나름대로 상상해 보곤 한다. 불두가 사라진 부처님을 보면서 인자하신 부처님의 얼굴을 그려보는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이 그렇듯 자비롭고 인자한 그 천년의 미소가 내 가슴속에 녹아 행복한 웃음을 짓곤 한다.
머리가 없어지고 두 무릎이 파손되었지만 앉아 있는 모습이 편한하고 의연해보인다. 특히 자연스런 옷주름과 섬세한 매듭은 당시 스님들의 복장을 알 수 있게 한다.
천년의 영화를 넘어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가 불구가 된 늙은 몸으로 환생하여 덩그러니 바위에 앉아 또 천년을 기다린다.
통일신라의 문화적 성숙기에 조성된 풍만하면서도 늠름한 기상이 보이는 냉골 석조여래좌상
옷 매듭이 아름다운 불상,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에서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돌계단을 50m 오르면... 높이 솟아 오른 돌기둥 위에 관음보살이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9호) 이다.
하늘에서 하강하는 모습의 마애관음 입상이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 되어 있다.
산 벼랑의 바위에다 불상을 새기고 산 기슭에서 올려다 보며 예불을 드림으로써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마다 그 소리를 듣고 하강하시는 그 감격을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려서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으며 허리 아래로 내린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마애불 뒤로 비스듬히 솟아 있는 바위는 극락세계인 천계와 연계되어 있는 것 같으며 인공을 가하지 않은 자연과 하나된 어울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립스틱을 짙게 바른 어떤 여인이 진하게 뽀뽀를 한 것 처럼 붉은 색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는 인공으로 첨색한 것이 아니라 자연암석의 붉은색을 그래로 이용한 것이어서 더 신비하다.
머리에 쓴 보관에는 화불인 아미타불이 있어 관세음보살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입술에 남아 있는 붉은 색은 부드러운 미소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
풍만한 얼굴에 화사한 미소는 입술가의 붉은 빛깔로 인해 더욱 인상적이다. 마애관음보살의 밝은 표정과 아름다운 미소는 석양이 불상을 붉게 물들일 때 더욱 더 잘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치 바위가 우주 (하늘)와 교신을 하는 듯...
높이는 약 1.55m이다. 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설법인을 했으며 왼쪽 손은 정병을 들고 있다. 머리의 보관에는 화불인 아미타불이 조각되어 있다.
이 관음보살의 자애롭고 화사한 웃음은 마치 등산객을 맞이하는 환영의 인사같이 생각되는데, 입술가에 도는 붉은 빛깔로 인해 이 미소가 더욱 인상적이다.
정확한 조각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머리와 상체는 고부조로 섬세하게 새기고 허리 아래로는 저부조로 도드라지게 윤곽만 표현하고 있다.
바위의 가장자리를 쪼아 내어 자연스럽게 광배로 하고 그 전면에 등신대 관음보살상을 조각하였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여래의 사랑을 받들어 세상을 제도 하시는 부처님으로 수 많은 중생들이 보배를 구하기 위하여 바다에 들어갔다가 태풍이 불어서 나찰귀신의 나라에 떨어지게 되어도 그 중의 한사람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모든 사람들이 구제를 받는다고 한다.
솔 향기속에 우뚝선 바위를 뚫고 나온 풍만한 얼굴에 천년 세월 머금은 붉은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마애관음보살상을 보고 목 없는 석불좌상으로 다시 내려와 삼릉골을 따라 200m쯤 오르면 마애선각육존불상 바로 못미쳐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왼쪽 길은 마애선각 육존불상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길을 따라 개울을 끼고 계속 가면 작은 냉골을 통해 금오산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이정표는 탐방목적에 따라 색깔로 구분하여 가리킨다. 노란색 글씨 이정표는 문화재를, 흰색글씨 이정표는 일반 등산로를 표시하고 있다.
마애관음보살을 보고 다시 삼릉골을 따라 200m오르면 개울 건너 널찍한 곳에 암벽이 펼쳐진다.
이정표에서 20m 가면 ‘선각육존불’이 있는 곳으로 늦은 겨울을 밟으며 선각육존불상이 보이는 골짜기 등산로를 따라 올라 간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경상북북 유형문화재 제21호)
바위에 새겨진 여섯분의 불상이다. 앞쪽에 세분, 뒤쪽에 세분...
동서로 늘어선 자연 암벽의 단애에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선각(線刻)된 2기의 마애 삼존상이 있다.
앞으로 나온 왼쪽의 암벽에 아미타불 입상과 좌우의 공양보살 좌상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 있는 오른쪽 암벽에는 석가여래좌상과 좌우 보살입상의 모습이 보이는데 마치 스케치를 그대로 선각하여 옮겨 놓은 듯하다.
앞뒤로 솟아 있는 큰 바위 (앞의 바위는 뫂이와 폭이 약 4m, 뒤의 것은 높이 4m에 폭7m 정도이다)에 정으로 쪼아 새긴 것이 아니라 붓으로 도하지에 그린듯이 각각의 암벽에 삼존불을 그려 놓았다. 자유로운 필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동쪽바위 면에는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보현보살과 문수 보살이 협시를 이루는 삼존불을 새겼다.
삼존불 중 본존은 좌상으로 높이 2.4m, 두 협시보살은 높이 2.6m 정도 되는 입상이다. 음각으로 두광과 신광을 나타냈으며, 아래쪽에 연화대좌를 조각하였다. 살아서 움지이는 듯한 선 마루리, 바위에 이만한 소묘를 하려면 수천 수만 장의 탱화를 그려본 솜씨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터이다. 이렇게 훌륭한 조각을 하면서도 바위변을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바위에 새긴 것이 신라인들의 자연 존중사상으로 여겨짐은 억지일까?
서쪽 바위면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중심으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를 이루는 아미타삼존불을 새겨, 현생과 내생을 나타 내었다.
아미타불의 수인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수인이며 좌우보살상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두손 가득히 연꽃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이다. 우협시보인 관세음보살상은 연화좌대를 생략하여 바위속에서 나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쪽 바위에 그려진 삼존불의 본존은 입상. 좌우 협시보살은 좌상이다. 본존의 높이는 2.65m, 협시보사의 높이는 1.8m 정도이다. 본존은 오른손을 올려들고 왼손을 배에 대고 있으며, 협시하는 보살은 무릎을 꿇고 본존을 향해 공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협시보살 두 손에 모아쥔 것이 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힘있는 붓으로 한번에 그린 듯한 선각육존불, 선으로 표현한 부처님의 세계가 얼마나 환희로운가?
이 자연암석 위로는 인공으로 길게 홈을 파 놓았다. 이것은 아마도 빗물이 마애불 위로 직접 흘러내리지 않게 하는 배수로의 역할을 한 듯 싶다. 긴 돌홈 바로 앞에는 전실을 씌웠던 흔적으로 여겨지는 작은 홈도 양쪽에 나 있다.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다시 등산로쪽으로 내려 간다.
일반 등산로와 합해진다.
마애선각육존불상을 지나 위쪽으로 500m 되는 지점에 또 하나의 선각여래좌상이 있다.
선각여래좌상이 180m라 했는데...
계곡을 건너 어라 한참을 가도 보이지 않고, 우측 골짜기 올라가는 길이 참 곱게 짚으로 짠 가마니로 덮여 있어 참으로 오르기가 쉽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만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이다. 엉? 그럼 선각여래좌상은 놓치고 왔나 보네...
솔숲에 많은 바위무리가 있고, 그 가운데 순백화강암으로 조성된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 666호)이 화려한 연화대석 위에 앉아 계신다.
통일직후의 아름다우면서도 힘차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름다운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보물 제 666호)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이 불상의 얼굴은 파손이 심했기 때문에 2007~2008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 정비하여 뺨과 코, 잎 등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오른쪽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식으로 걸쳤는데, 이 가사는 얇게 몸에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등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정강이에서 발목으로 옷 주름이 비스듬히 흐르고 있다.
광배는 간결하면서도 화염문과 당초문을 섬세하게 새겨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연화대좌는 투박하게 팔각으로 깎은 하대석과 면마다 안상을 새긴 중대석을 놓고 그 위에 화려한 보상화 연꽃을 올려 놓았다.
연화대좌는 상대에 앙련을 3단으로 새겼는데,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겼다. 팔각의 중대에는 면마다 안상을 두었으나 하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 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 가사, 발목으로 흐르는 옷주름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되 것으로 추정된다.
안상이란 귀인들이 앉는 평상을 말하는 것이니 중대석 위는 절대로 존엄한 세계라는 뜻이다.
이렇게 존귀한 평상위에 보상화로 장식된 화려한 둥근 연꽃송이를 얹어 놓았으니 이 연꽃은 수미산 위에 핀 하늘의 꽃송이인 것이다.
이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은 하대석을 팔각으로 거칠게 깎았다. 불상이 바위 속에서 솟아오른는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이 불상 주위에도 건물을 지었던 흔적이 보이지 않아 처음부터 노천불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주위 분위기와 조화되지 않을 경우에는 부처님께서 눈비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전각을 짓지 않았던 옛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광배의 안쪽에는 부드러운 넝쿨무늬를 새기고 바깥쪽은 힘있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광배는 윗부분이 조금깨진 채로 불상 후면에 세우졌으나 1963년 겨울,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려 2008년 12월 상화와 광배를 복원 하였다.
세월속에 망가진 부분을 현대의 의술로 성행 수술하여 복원하였다.
불상 뒤쪽에 난 동굴, 안이 펑퍼짐하니 옛날에 누군가가 기도를 했거나 은둔생활을 한듯 하다...
불상 앞쪽 평평한 곳에 있는 작은 단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탑의 원위치이다.
바위를 탑의 기단으로 삼아 세운 삼층석탑 자리이다.(삼릉계 6사지 삼층석탑터)
다시 일반 등산로와 합치니 다녀온 '삼릉계석조여래좌상' 표지판이 이제야 나온다.
다시 등산로를 몇 발짝 떼니 삼릉계 6사지 마애선각여래좌상이 계곡 너머 바위위로 보인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과 약 100m 정도 홀로 떨어져 있는 ‘선각여래좌상’ 가는 길에서 바라본 경주 조망이다.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59 호 )
높이와 너비 모두 12m쯤 되는 절벽의 중앙에 자연적으로 수평으로 금이 갔는데 그 금 아래쪽을 대좌로 삼아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몸체는 선각을 하고 얼굴만은 돋을새김을 하였다. 코는 길고 입술은 두껍고 커서 과히 점잖은 얼굴이라 할 수 없으나 위엄이 있다.
이 불상은 조각 수법이 세련되지 못하고, 특히 다리 부분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듯하여 미완성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하늘과 바위와 부처(마음)가 하나다.
높은 바위벽에 그림을 그리듯 새겨진 불상, 갈라진 바위가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는듯 하다.
선각마애여래상 옆의 바위는 부부가 안고 있는 모습같아 부부바위라 불리고 있다.
산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살며시 그림자를 보여주는 듯한 마애선각여래좌상
다시 일반 등산로로 돌아와 다소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상선암으로 향한다.
이 산길을 따라 정상쪽으로 난 길을 한참을 올라가면 법당과 요사채의 2동으로 이루어진 시골집 같은 상선암에 이른다.
마애선각여래좌상에서 삼릉계 본류를 따라 300여m 가파른 고개길과 돌층계를 올라가면 병풍을 둘러친 바위산 아래로 암자가 보인다.
가파른 돌계단 위로 경주 서남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상선암이다.
요사채와 법당과의 사이 난간으로 된 목책비탈 계단길을 100m 정도 오르면 상선암 (上禪庵) 이다.. 상선암(上禪庵)은 불국사의 말사다. 터는 신라 때 터이나 암자는 근래에 지은 것이다.
상선암 요사
상선암(上禪庵)은 동(東)으로는 상사바위(想思岩), 북(北)으로 해발 400m의 냉곡 암봉(冷谷岩峰)에 둘러싸인 두 채의 작은 암자다.
이 곳의 남쪽 아래에 신라의 스님들이 선(禪)을 하던 동굴이 있는데, 이 선방이 높은 곳에 있다하여 상선암(上禪庵)이라 불러왔다 한다.
상선암은 물이 부족하고 음기가 매우 강한곳이라 한다.
스님이 기도 중이라 조용히 부처님전에 3배만 올리고 법당을 나선다.
법당과 요사채가 전부인 조그만 암자여서 특별히 소개할 만한 것이 없다. 삼릉계곡을 따라 금오산을 오르고 또 삼릉계곡의 문화재를 탐방하는 순례자들이 목을 축이고 땀을 식히는 공간이다.
상선암 요사 옆, 상선암에서 바둑바위. 금오산 으로 오르는 길 옆으로 뉘인체 위치한 제9사지 선각보살상. 전체 중 일부만 깨어진채 놓여 있다.
머리 부분은 없어진 채로, 일부는 묻힌 채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제9사지 선각보살상. 옷주름과 영락(보석구슬)을 감상해 본다. 잘 보존된 불상과 아무렇게나 내버려진 불상을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서..
법당 옆으로 상선암에서 마애석가여래좌상으로 오르는 길은 2016년 12월 말까지 통행이 제한되어 상선암 요사채 뒷쪽으로 제9사지 선각보살입상과 바둑바위쪽으로 오른다.
올라가다 돌아본 상선암 이다.
상선암을 뒤로 하고 다시 바둑바위를 경유한 금오봉으로 향하여 올라간다.
상선암 . 삼불사 갈림길의 이정표, 금오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상선암에서 바둑바위 오르는 길 많은 사람들의 발가욱으로 바위가 이렇게 파여져 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 포석정 아래로 경주 시내 전경을 관람하면서 준비해간 간식과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를 음미하면서 속세의 티끌을 모두 던져 본다.
제9사지 선각보살입상
산행하면서 만난 부산에서 오신 철학하시는 분의 말씀을 들어 보면 제9사지 선각보살입상 표지판 알의 바위 밑쪽이 참으로 좋은 터라며 잠시 앉았다 가라기에 쉬었다 왔더니 멀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상선암 법당 뒤의 마애불 자리가 그렇게 좋은 자리라 하기에 내년에 휴식년제가 풀리면 꼭 한번 가서 느껴 보리라 생각한다.
바위 전체가 마모가 심해 잘 알수가 없다.
상선암에서 냉곡 암봉을 향해 산등을 타고 굽이굽이 100m 쯤 오르면 산등을 넘는 고개마루 조금 못 미쳐 쪽으로(삼릉방향) 열린 터가 있다.
발길을 왼쪽으로 돌리면 시야에 비치는 정경은 이미 속세가 아니다.
갖가지 모양을 바꾸며 뻗어내린 큰 바위들은 발 아래로 사라져가고 배리(拜里)평야는 아득한 아래 세계로 아물아물 멀어진다.
옛날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놀았다는 바둑바위에서는 서러벌과 북남산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전망 좋은 바둑바위에 오르면 서라벌 벌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형산강이 가로지르는 대지 너머로 단석산과 벽도산 능선이 아련하게 보인다.
산봉우리의 바둑바위 부근에는 사방 5m 가량의 금송정(琴松亭)터가 있다.
바둑바위의 한 켠에 숨은듯 위치한 금강송
바둑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조망
진행할 방향의 좌측 중간쯤의 상사바위
줌으로 당겨본 애틋한 전설이 내려오는 상사바위. 제법 규모가 크다.
상선암에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8호인 마애석가여래좌상(상선암 마애여래대불)이 있는 곳으로 오르는 계단은 2016년 12월 말 까지 통제되어 있어 마애석가여래좌상(상선암 마애여래대불)은 직접 만져 볼수가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경주 남산에는 큰 법당을 가진 절이 없다.
산과 바위가 모두 부처님이 계신 법당이 되기 때문이다. 남산의 마애불들은 이렇게 자연과의 조화를 위해 겸손하게 인공을 양보하고 있는 것이다.
상사암 전망대 풍경
아까 통제로 본 들러본 바위를 깍아서 다듬은 커다란 부처가 보인다.
상사암에서 바라본 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크며 바위 속에서 현신하는 순간을 새긴 마애여래대좌불 이다.
마애석가여래좌상(상선암 마애여래대불) - 경상북북 유형문화재 제158호
이렇게 신령스러운 곳에 동서의 길이가 6m 가량 되고 남북 너비가 4.3m 되는 평평한 터가 있는데
그 북면에 높이가 7m이고 너비가 5m되는 배광(背光)형으로 생긴 암벽이 천연으로 이루어졌으니, 이 곳은 하늘이 정해준 부처님의 영지(靈地)인 듯 하다.
신앙의 정열에 불타던 신라의 조상들이 이러한 곳을 어찌 그냥 버려 둘 수 있었으랴.....
배광형 암면(岩面)에 큰 불상을 새겨 놓았다.
너비 4.3m 되는 큰 연꽃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설법인을 표시하고 먼 하늘에 시선을 두고 온 누리를 굽어 살피는 모습이다.
대좌의 연꽃은 두 겹으로 피었는데 꽃잎마다 보상화로 장식되어 지극히 화려하다.
이 불상은 새겨진 바위 전체가 약간 뒤로 기울여져 있기 때문에 부처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온 누리를 제도하시는 듯 폭넓은 기상을 보이고 있다.
높이 7m, 너비 5m나 되는 장대한 자연 바위벽에 통일신라 후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6m정도의 높이의 거대한 불상이다. 수인은 중생을 시무외인을 하시고 연화대좌 위의 삼릉계곡 정상에서 배리 들판을 굽어 살펴보고 계신다.
삼릉골 마애대불로 불리는 이 마애불은 머리에서 어깨까지는 고부조로 깊게 조각해서 돋보이게 한 반면 몸체는 아주 얕게 새기고 깊은 선각으로 표현했으며 배면의 깎은 듯한 암벽이 마치 거신광배처럼 조화롭다.
법의는 통견의 대의를 하셨고 승기지를 여민 매듭도 보인다. 육계는 낮고 민머리이며, 굵고 긴 눈썹과 단아한 코 그리고 꼭 다문 듯한 입술과 함께 볼 살이 있는 사각에 가까운 얼굴이 친근하면서도 근엄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눈길을 왼쪽으로 돌리면 시야에 비치는 정경은 이미 속세가 아니다.
갖가지 모양을 바꾸며 뻗어내린 큰 바위들은 발 아래로 사라져가고 배리(拜里)평야는 아득한 아래 세계로 아물아물 멀어진다.
동으로는 천태만상(千態萬象)을 이룬 상사바위가 하늘에 떠있는 듯 장엄하게 솟아있고 주산이 되는 북쪽은 냉곡 암봉이 준엄하게 솟았는데 남쪽은 천길 절벽으로 바닥을 볼 수 없다. 눈 앞에는 다만 금오산(金鰲山) 정상이 우뚝 솟아 보일 뿐이다....
상사바위 앞에서 바라본 상선암
상사바위 앞쪽
바위는 꼭 전설 하나쯤 간직하고 산다.
이 바위를 서쪽(삼릉쪽)에서 보면 삼릉골의 여울에 뿌리를 내린 수십미터 높이를 솟아오른 거대한 첨탑처럼 위용있게 보이고, 사람들이 남근석과 여근석으로 여기고 치성을 드린 자리가 있다.
바위면에는 산신당(産神堂)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상사바위(상사암) 뒷쪽의 모습이다.
남산의 능선을 타고 오르면, 포석계곡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 상사암이라는 영험한 바위가 있다.
상사암은 높이 13m, 길이 25m쯤 되는 주름이 많으 큰 바위이다.
동쪽(통일전 방향)에서 보면 산등성이에 직사각형으로 육중하게 솟아있어 염라대왕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험상궂은 상이라 한다. 이 험상궂은 바위더미는 아득한 예날부터 상사병에 걸린 사람들의 병을 낮게 하고 아들 낳기를 바라는 부녀자의 소원을 들어주던 바위이다.
상사암 바위 동쪽면 중앙에 가로 1.44m, 높이 56cm, 길이 30.3cm 되는 감실이 있다. 감실은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켠 촛불에 검게 그을려 있다.
상사암의 감실 아래에는 석불 입상이 있는데, 오랫동안 토속신앙과 불교가 밀착되어 왔음을 알게 한다.
석불입상은 높이 80cm에 너비 35cm의 작은 석불이다. 머리는 없어졌고 두 손은 가슴에 모아 붙이고 있다. 아마도 남산에서 가장 작은 불상일 것이다.
상사바위. 길게 파진 홈 아래쪽에는 귀여운 불상 한 분이 계신다.
지나온 상사바위를 줌으로 당겨 본다.
정상까지 약9분 정도 상선암 뒤의 마애불과 상사바위가 보이는 전망대에 선다. 앞쪽에는 형산강이 흐르고 경부고속도로가 달린다.
형산강과 경부고속도로
상사암에서 금오산 정상으로 가는 능선길이 계속 이어진다. 지금까지 올라왔던 바윗길과는 달리 보드라운 흙길이 나타난다.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능선길이다.
금오봉 정상이다.
삼릉골(냉골)의 시발점은 금오산 정상이다. 따라서 삼릉계 답사의 끝도 금오산 정상이다. 금오산은 해발 468m로 해발 494m인 고위산(高位山)과 합쳐 "남산(南山)"이라 부르고 있다.
경주 남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오늘은 약수골로 하산을 할려고 한다...
금오산에서 약수골로 내려가는 길이 처음에는 무난한듯 보이더니...
금오산에서 약 500m정도 내려가니 약수계곡 마애입불상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옛날 절터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을 지나니
약수계곡 마애입불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14호)
어느 정도 내려오자 갑자기 거대한 마애불이 수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가 무려 8.6m나 되는 장엄한 규모의 약수골 마애대불은 남산에서 가장 큰 불상이다. 안타깝게도 불두는 어디로 사라지고 없지만, 새겨진 옷 주름만은 절벽에 그대로 남아 거대한 불상을 알게 해준다.
수풀 사이로 그 거대한 몸을 드러낸 마애대불. 위에 지금은 없어진 불두가 있었던 자리가 보인다.
그런데 뜻밖에 길이 험하고 좁다. 가파른 길이라 조심해서 내려간다.
밧줄을 타고 내려오자 육중한 그 불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로프를 타고 내려와 바라 본 장중한 규모의 약수골 마애대불로 경주 남산에 있는 불상 중 가장 큰 마애불이라고 한다.
분황사 우물에서 나온 수많은 목 없는 불상을 떠오르게 하는 전형적인 신라 불상이다. 도대체 그놈의 유교가 뭐라고, 아름다운 불상들이 이런 수모를 당했다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어딘가에 불두가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불상 만큼이나 장중하게 조각된 부처님의 발가락
불상 옆의 바위와 바위 틈새는 작은 돌로 쌓아 놓았다.
약수계곡 마애입불상을 지나 하산길 이다.
약수골 내려가는 길에 나오는 대나무밭. 대나무밭이 나타나면 옛날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라고 얼핏 들어본 적이 있다. 아마 여기도 절터가 있었을 듯...
왠지 사람이 살았을 법한 분위기..
약수골로 내려오는 도중에도 아직 정비되지 않은 불상들이 많이 보이는데 언젠가는 자기 머리(불두)를 찾아서 온전한 모습으로 후세에 전해지기를 기원해 본다.
아직 정비되지 않은 불상 앞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하산길에 만난 악어머리(?) 모양의 바위도 보이고..
두꺼비 모양의 바위도 보인다.
약수골 하산길은 로프 구간만 빼고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봄이 저만치 와 있는 느낌?
이끼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다..
이렇게 계곡도 만나고...
내남 교도소의 철책 담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남산 입곡 석불두를 만나러 가기 위함이다.
약수골과 냉골 사이 삿갓골 입구에 있는 남산 입곡 석불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94호) 이다.
불상은 동그스름하고 잘생긴 얼굴에 약간은 근엄한 표정인데 코 부분이 파괴 되었다. 머리는 나선형 머리카락을 표현하고 그 위에는 큼직한 상투를 조각하였다. 귀도 큼직하게 새기고 목에는 3개의 선으로 표현된 삼도가 보인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쳤는데 양다리에 타원현으로 드리운것 같다.
저기 어디쯤에 보물이 잠자고 있을지도 모르는 경주 땅, 온 시야가 박물관 같은 경주 땅, 바라보는 순간 산천의 귀함, 역사의 귀함이 전해져 온다.
전체적인 조각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불상을 받치던 대좌는 주위에 흩어져 있는데 근래에 가지런히 옮겨 놓았다.
불상의 대좌는 여러 부분이 파괴 되었는데 윗쪽 중앙에 불상을 세웠던 큼직한 사각형 홈이 있고 옆면에는 아래위로 연꽃울 장식하였다.
약수골과 냉골 사이에 삿갓골 입구에 있는 남산 입곡 석불두를 만나고 삼릉쪽으로 향한다.
드디어 사갓골을 다 내려오니 소나무들이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삼릉계곡을 냉골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이런 소나무를 품고 있어 사시사철 시원한 바람과 계곡물이 흐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위에 있는 소나무 군락. 소나무들이 춤을 추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2월 말이건만 벌써 봄은 우리곁으로 성큼 와 있어 매화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올 들어 첨 맞이하는 매화의 향이 참으로 좋다.
매화향에 취해, 자연에 취해, 그렇게 오늘도 멋진 하루를 엮어 내었다...
삼릉계곡을 다시 내려와서 들머리로 나오는 숲길이 아름답다..
천년의 향기 위에 햇살이 따사롭다.
멋진 노송들의 군무를 즐기며...
서남산 주차장에 도착이다.
경주 남산은 불국정토다.
사람이 죽어서 간다는 서방 극락정토가 아니라 내가 이생에서 만나는 불국정토다. 몸이 아플 때에는 가벼운 산행이 몸에 좋다면서 찾아가고, 마음이 괴로울 때에는 마음을 쉬기에 그만한 곳이 어디 있냐며 찾아가고, 휴일에 늦잠자고 갈 곳이 마땅찮으면 부담없이 찾아가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신라천년의 미소가 그립다며 찾아가고... 그래서 나는 경주 남산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사랑한다.
경주 남산에는 118채의 사찰 흔적과 96기의 불상이 산재해 있어 경주 남산을 신라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보고라고 흔히 말하곤 하는데~~
잃어버린 불상의 불두가 전부 제자리를 찾길 바라는 마음과 세세한 곳까지 언젠가는 걸어 보겠다는 마음을 다지면서 남산 등산을 마무리 하고...
이제 얼마 후 봄이면 멋진 풍경을 선사할 벗꽃 가로수 길을 달려 포항으로 향해 본다.
.
.
.
.
'산이 좋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빼어난 경관과 함께 서울 근교에 자리하고 있는 관악산(서울. 경기 과천. 안양시 경계산) (0) 2016.03.15 남산 포석정을 거슬러 올라 금오정과 금오봉을 보고 다시 남산 용장마을로 하산.. (경북 경주시) (0) 2016.03.11 '학이 알을 품고 있다가 하늘로 날아 오르는 형국'이라는 비학산(飛鶴山) 산행( 경북 포항시 신광면 상읍리) (0) 2016.02.20 신경리 마애석불과 기암괴석의 전시장인 홍성의 용봉산 (0) 2016.02.15 2016년 새해맞이 태백산 산행 (0) 2016.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