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선도산 산행과 서악동 마애석불상(경북 경주시 서악동)산이 좋아 2015. 10. 19. 09:07
경주 선도산 산행과 서악리 마애석불상
2015. 10. 19.
2015. 10. 15. 경주 서악리 마애석불상을 만날 겸 경주 선도산 산행이다 .........
맑은 아침의 공기가 향내음 처럼 싱그럽다....
포항출발(08:40) → 서악동 삼층석탑 (09: 40 ) 도착 후 오를 수 있었던 경주 선도산 산행길 ....
경주 서악동 선도산 산기슭에 도착하여 도봉서당 뒤쪽 주차장에 차를 주차 한다... 제일먼저 반기는 것은 서악리 삼층석탑과 신라 왕릉 4기와 이름없는 수십기의 고분군이다.
경주에는 오악이 있다. 동악의 토암산, 서악의 선도산, 남악의 금오산. 남산, 북쪽 소금강산, 중악의 단석산이다.
선도산 안내도 이다.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1.5km이면 선도산 정상으로 왕복 3km로 쉬엄 쉬엄 2시간 조금 넘게 소요된다.
북두칠성을 새긴 구멍 즉 성혈이 선명한 바위가 보인다. 오랜 세월 하늘을 바위 위에 옮긴 칠성신앙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바위구멍 바위 혹은 성혈바위
왕릉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접어든다.
길가 계곡 옆의 공덕비
고창 오씨 제실 입구에도 제법 너른 주차장이 있다.
고창오씨 제실 입구에서 푯말을 따라 선도산 정상으로 향한다.
선도산으로 오르다가 작은 언덕에서 바라본 흐린 안개속의 경주들판과 서악리고분이 보인다.
뜨거운 여름을 잘견디고 고운 열매를 맺었다.
산은 계속 오르막길 이다.
작은 돌탑도 보이고...
올망졸망한 산소들 사이로 고운 신길이 이어지고 저 멀리 성모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2009년 5월 선도산에 큰불이 나 그 흔적이 지금까지 아프게 남아 있다. 그 산불로 쭉쭉뻗은 소나무가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성모사가 조금 더 가까이 보인다.
이제 선도산 정상까지는 500m 거리다...
산속에 코스모스가 곱다.
가을 하늘이 참 곱다.
산 오르다 돌아본 흐린 조망사이의 경주 들판
푯말이 정상이 200m 남았다 한다.
선도산 정상이다. 높이 390m로 비교적 낮은 산이다.
잘 쌓은 3개의 돌탑이 눈길을 끈다. 선도산은 경주대학교가 있는 뒷산이다.
경주 선도산(仙桃山) Seondosan
경주시 서쪽에 있는 높이 390m의 낮은 산이다. 예부터 서라벌의 서쪽을 지키는 '서악'으로 중요시 되었다.
정상에는 높이 7m의 마애삼존불이 있고, 자락에는 태종무열왕과 그 일가의 고분을 비롯한 고분이 많다.
높지 않지만, 꽤 가팔라 숨가쁘게 30여 분을 올라가야 하는데, 정상에 올라서면 경주 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무열왕릉과 서악동고분군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경주시의 바로 서쪽에 자리 잡은 산이 선도산(仙桃山)이다.
서산, 서술산, 서연산, 서형산 등의 많은 이름이 있으며 사적과 전설이 많다. 높이는 약 390m의 낮은 산이다.
그 중 서형산은 안강읍의 북방에 있는 북형산과의 대칭에서 생긴 이름이다. 선도산 기슭에는 많은 사적이 있으며 영경사지, 애공사지가 있고 산정에는 높이 7m의 선도산 불적 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마애삼존불이 있다.
또한 선도산 주변에는 고분이 많다. 동면의 남쪽에는 태종무열왕릉을 비롯하여 김인문과 김양의 무덤이 있고 태종무열왕릉과 같은 직선상에는 일렬로 4기의 고분이 있어 태종가의 가족묘역으로 추측된다. 이들 고분군의 북쪽 서악서원의 뒤쪽 산 허리에 또 일군의 고분군이 있는데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능묘의 양식이나 위치, 그리고 사실 등으로 미루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태종무열왕릉의 북쪽 대구로 통하는 국도변에서 조금 들어간 곳에 서악서원이 있다. 서악서원은 사액서원이며 홍규공 설총, 개국공 김유신, 문창후 최치원을 위한 서원이다. 선도산의 서면, 애공사지의 서쪽에 율령정치의 실시, 연호의 사용, 불교를 공인하여 신라의 문화사에 새로운 장을 펼치게 한 법흥왕릉이 있다.
이제 사당인 성모사로 내려 선다.
신라 최초의 왕 박혁거세의 어머니 사당이 있는 성모사 이다.
정상에서 아미타여래 입상까지는 200m 거리다.
경주 서악리 마애석불상 (보물 제62호)
신라 사람들은 경주의 서쪽인 선도산 정상부근을 서방정토로 생각하고 이곳에 아미타 삼존불을 새겼다.
조각하기 힘든 암석에 높이 6.85m나 되는 거구의 여래입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아미타애래 입상을 본존으로 하여 왼쪽에는불상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정병을든 관세음보살상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이 있는데, 이 두 보살상은 옮겨온 화강석으로 다듬어진 것이다.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 준다는 대세지 보살은 얼굴과 손 모양만 다를 뿐 관세음보살상과 동일하다.
조각솜씨로 보아 7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서악리 마애석불상
선도산 꼭대기의 자연암벽에 새겨진 서악리 마애석불상은 서방 극락세계의 주인인 아미타여래입상을 본존불로 하고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을 오른쪽에 대세지보살상을 모신 삼존불이다.
자연암벽에 조각되어 있는 아미타여래입상과는 달리 좌우에 있는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은 별도의 화강암에 조각도어 세워져 있다. 이들 마애석불상은 보물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애불 암석높이 6.85m, 조각솜씨로 보아 7세기경 작품으로 보인다. 아미타랭여래입상을 좌우로
좌측은 관세음보살상. 우측은 대세지보살상 이다.
마애삼존불의 정면
마애삼존불의 측면
아미타여래 입상 본존불은 얼굴 상단 부위의 마모가 심하다. 불상을 새길만한 암반이 못되는 재질의 암석인데 이곳에 불상을 새길려 했을까? 서방정토사상 때문일까?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불
서방 극락세계를 다스린다는 의미를 지닌 아미타여래입상은 높이가 6.85m나 되지만 부분부분 손상을 많이 입고 있다.
머리는 완전히 없어졌고 얼굴도 눈있는 부분까지 파손 되었다. 그러나 남아 있는 큼직한 코, 웃음띤 입술, 각이 진 얼굴의 윤곽선, 굵은 목 등의 표현은 부처의 자비와 의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강건함을 느낄 수 있다.
두 손은 어깨 근처에 두고 시무외인과 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있으며, 법의를 걸친 어깨선은 둥글지만 좁은 편이고. 웅장한 체구는 신체의 굴곡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아 원통형으로 보인다. 법의는 통견으로 가슴 아래로 흘러내려 U자형을 이루면서 발목까지 이어진다. 발목 아래에는 부근에서 수습하여 가져다놓은 연화대좌가 놓여 있다
고부조로 새겨진 거대한 불신은 장엄하면서도 위엄함을 보여주는데 하체로 내려갈수록 편평해지면서 좁아진다.
좌협시불인 관음세음보살
바라보아서 오른쪽의 좌협시물은 중생을 구제한다는 자비의 관음보살로서 높이는 4.6m이다.
머리에 화불이 새겨진 삼산형의 보관을 쓰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다섯손가락을 펼친 손모양이 특이하며 왼손은 정병을 잡고 있다
벗은 상체에는 가운데 큰 구슬을 중심으로 연주문대(蓮珠文帶 )로 연결된 목걸이를 하고 있으며 아래에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가 드러나 있다. 양팔에서부터 흘러내린 U자형의 천자락은 선각으로 표현된 치마와 구별된다.
대좌는 무릎까지 끼일 수 있도록 파낸 독특한 모양으로 대좌의 옆면에는 옷주름을 새겨넣어 불신과 동일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대좌의 아래에는 복련의 연화문을 새겼다. 관음보살상은 원래 대좌까지 4부분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우 협시불인 대세지보살, 좌 협시불인 관음보살
양 옆의 협시불은 독립된 환조상이기는 하지만 그 뒷면은 마치 암벽면에서 떼어낸듯 평평하고 측면의 너비가 좁아 전체적으로 볼때 본존불과 균형을 이루는데 이것을 미루어보면 마애불이라는 특수한 용도를 위해 의도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좌. 우 협시불의 대좌
우 협시불인 대세지보살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준다는 대세지보살은 높이가 4.55m로 5부분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관을 쓰지 않았으며 왼팔은 결실되었고 오른 손은 가슴에 두어 연봉오리를 잡고 있다. 그 외 목걸이나 가슴을 가로지른 굵은 띠. 무릎 위의 매듭 장식, 대좌의 형태 등 모든 면에서 관음보살과 비슷하나 사각형의 얼굴에 눈을 바로 뜨고 있어서 약간 남성적인 모습을 풍기고 있다.
이 마애삼존불은 일반적인 마애삼존불과 달리 조성기법이 조금은 특이한데, 본존인 미륵불은 돌출된 암벽에 부조로 조각되어 있고 좌우의 협시불은 각기 다른 돌로 조각하여 세운 둥글새김(환조)불이다. 굴불사지 사면 불상중 서쪽의 아미타삼존불입상과 비슷한 형태이다
본존불의 조각선이 강건하다면 보살상은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신체의 굴곡도 잘 나타내 조각기법의 차이가 보인다.
이 삼존불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 불상조각으로 이어지는 과도기 (7세기에서 8세기로 넘어가는) 의 중요한 작품으로, 이 불상이 새겨진 암벽면의 뒷쪽에는 '성모구기(聖母舊基)'라는 글자가 있으나 이 마애삼존불과 성모사(聖母詞)와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탄 나무 사이로 서악동 마을이 보인다. 무열왕릉 있는 숲이 보이고 그 위로 서악동 고분군이 보인다.
마애석불상 그 오른편으로 가면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를 모신 사당이 있다.
예전에는 공개되었으나 지금은 사당문이 잠겨 있고 일년에 몇번 제사를 지낼때만 문을 연다고 한다. 안에는 파소의 사진이 있다고 하는데 보지 못한 게 아쉽다...
성모당의 좌.우 측면 벽화
사당 앞 돌비석에 '선도산 성모가 신라의 첫 임금(박혁거세)의 어머니'라고 씌어 있다.
성모사당 앞에 서 있는 현대판 성모사 중건기적비가 있다. 박씨 가문에서 세워 놓은 비이다.
성모사당 뒷쪽에서 바라본 마애석불상
성모사당 앞에서 바라본 요사
산신각 쪽에서 바라본 요사
사당인데 산신각도 있나? 예전에는 절이었었나?
성모사에는 공덕비가 여러개 보인다.
성모사에서 본 서악리 마을과 서악동 고분군이다. 멀리 가로로 길게 누운산이 남산이다.
사당에서 본 경주 들판
사당에서 본 경주 시가지
사당을 내려 간다.
내려 오면서 바라본 성모사
성모사를 내려오는 길, 성모사 뜰에 오래된 은행나무에 은행이 잔뜩 열려 있다.
서서히 성모사는 멀어진다.
이제 500m를 내려 왔다.
신기한 것은 몇해 전에 이 산에 불이 났는데 불이 아래에서 위로 계속 타오르다가 성모사 앞에서 꺼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선도산 성모께서 돌보셔서 산의 불길을 잡아 멈추게 한 것 같다고 경주 사람들은 얘기한다고 한다......
내려오면서 바라본 경주 시가지와 경주 들판
서악동 고분군
하산 할때는 제실쪽이 아닌 서악리 삼층석탑쪽으로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이 편안하다. 선도산 정상 아래 마애여래삼존 입상에 사당이 있어 사당부터는 내려오는 길이 넓다. 오솔길이었으면 호젖한 산행길이었을텐데...
별 특징없는 그런 길이다..
서서히 내려 간다. 쭉쭉 뻗은 소나무가 반긴다...
길가 우측 소나무 사이로 왕릉이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에 또 다른 무덤군들이 많다.
선도산 올라가는 들머리로 내려왔다. 좌우로 왕릉과 이름없는 고분들이 줄서 있어서 편안한 느낌이다. 오히려 공원같은 분위기를 느낀다.
산행 들머리에 헌안. 문성. 진지. 진흥왕릉이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경주 서악동 선도산 산기슭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은 서악리 삼층석탑과 신라 왕릉 4기와 이름없는 수십기의 고분군이다.
왕릉옆길 서악동 삼층석탑 앞 주차장에 도착이다.
선도산 기슭에 자리한 서악리 삼층석탑 (보물 65호) 은 화강암으로 축조된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으로 모전탑 계열에 속한다. 높이는 약 4.06m 로 지붕돌에 비해 몸돌이 작아 다소 불안하고 무거운 듯한 느낌이다.
서악리 삼층석탑 근처의 꽃밭에서 가을을 담는다.
왕릉옆길 서악동 삼층석탑 앞 주차장에 도착이다.
왕릉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제실 앞으로 해서 선도산 정상으로 왕복 3km로 쉬엄 쉬엄 2시간 조금 넘게 소요 되었다.
서악지구 선도산은 참으로 편안한 산책길이었다. 하루 빨리 화마의 잔재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선도산을 기대해 본다....
.
.
.
.
'산이 좋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년 산행 조망이 아름다운 양산 토곡산 (0) 2015.12.14 무장산 억새 산행(경주시 암곡동) (0) 2015.10.24 봉정암에서 백담사로 하산길..(강원도 인제군) (0) 2015.08.09 오색약수에서 대청봉을 넘어 봉정암까지.... (강원도 양양군 대청봉) (0) 2015.08.07 석가모니의 500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금전비구(金錢比丘)에서 이름을 따온 금전산 (전남 순천시) (0) 201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