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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 (경북 경주시 황남동 53번지)여행방/경상도 2015. 8. 17. 07:00
대릉원 (사적 제512호)
2015. 8. 17.
2015. 8. 15. 오늘도 경주 문화재 탐방은 계속된다...
바람이 숲을 안 듯, 숲이 세상을 안 듯, 포근한 고향이듯 살아있어....살아 있는 숨소리에 감사한다.
오늘은 시내를 중심으로 탐방할까 한다..
순례할 문화재는 경주 삼량사지 당간지주를 보고 충효동의 김유신 장군 묘, 황남동의 대릉원과 효자 손시양 정례비 그리고 노사리 고분군, 교동의 월정교와 경주 향교를 보고 포항으로 넘어 가며 강동면의 동강서원을 본 후 포항시 연일읍 달전리 주상전리를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경주 ‘남산·월성 역사 유적지’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예술로 승화된 산과, 첨성대 등 신라 천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도심 박물관이다.
경주 삼량사지 당간지주와 김유신 묘를 보고 세번째 일정으로 경주시 황남동 53번지에 위치한 대릉원으로 향한다....
대릉원은 입구부터 멋진 소나무 숲길을 걸어 들어간다...
대릉원은 대소(大小) 20여기(餘基)의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고분(新羅古墳)이 밀집(密集)되어 있어 이 고분들을 보호(保護)하기 위하여 조성(造成)한 신라(新羅) 사적공원(史蹟公園)이다.
직경(直徑) 10m 미만(未滿)에서 120m까지, 높이 1m 미만(未滿)에서 23m에 이르기까지 규모(規模)가 다양(多樣)한 이 사적공원(史蹟公園) 안의 고분(古墳)들은 삼국시대 신라의 왕(王)과 귀족(貴族)들의 능묘(陵墓)로 추정(推定)되고 있으며, 외형상(外形上)으로는 대부분 원형토분(圓形土墳)으로 되어 있으나, 표형분(瓢形墳)이라고 하는 부부(夫婦) 합장용(合葬用)의 쌍분(雙墳)도 있고, 내부구조(內部構造)는 몇몇 고분(古墳)의 발굴결과(發掘結果)신라(新羅) 특유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추왕릉 앞쪽에는 숭혜전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794년 다시 세운 것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곳이다.
정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자리잡은 숭혜전
미추왕릉 (사적 제 175호)
대릉원 경내(境內)에 위치(位置)한 고분(古墳)으로 신라 최초의 김씨 왕으로 백제의 여러차례 공격을 막아내고 농업을 장려한 신라(新羅) 13대왕 미추이사금(味鄒王) (재위262∼284)의 능(陵)으로 전하고 있다.
신라 13대 미추왕(味鄒王)은 김씨(金氏) 시조(始祖) 알지(閼智)의 7세손(七世孫)으로 신라(新羅)의 첫번째 김씨왕(金氏王)이 되어 22녀간 재위(在位)하는 동안 『삼국사기』에는 미추왕릉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신라 14대 유례왕 14년(297) 이서고국(伊西古國) 사람이 수도인 금성을 공격하여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가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사라졌다. 누군가 미추왕릉에 댓잎을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미추왕이 죽어서도 신라를 도와주었다 하여 미추왕릉을 죽장릉(竹長陵), 죽현릉(竹現陵)이라 부른다고 한다.
미추왕릉는 경주 황남동 무덤들 중 가장 잘 정비된 대릉원 내에 높이 12.4m, 지름 56.7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무덤이다.
내부는 돌무지덧널 무덤으로 추정된다.
미추왕릉 무덤 앞에는 혼이 머무는 자리인 혼유석이 있고, 담장을 돌려 무덤 전체를 보호하고 있다.
미추왕릉 주변의 멋진 고목 벗나무들...
미추왕릉을 둘러보고 또다시 산책로를 조용히 걸어본다.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신라고분은 신라의 대표적인 고분군으로 고신라시기의 신라 왕과 귀족들의 무덤군이다.
무덤의 양식은 돌무지 덧널무덤으로 축조기법상의 문제로 도굴이 어려워 대부분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부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금관과 과대 용기류 등 금속유물을 비록하여 수많은 토기와 생활용품이 출토되어 고신라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여유롭게 대릉원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신라 왕과 왕비, 귀족들의 고분군(古墳群) 분포지역인 대릉원(大陵苑) 지구이다.
황남대총 앞쪽에는 이렇게 큰 연못이 자리잡고 있다.
황남대총은 표주박 모양의 쌍분(雙墳)이다.
5세기 전후에 축조된 부부묘로, 남성 무덤인 남분(南墳)이 먼저 축조됐고 여성 무덤인 북분(北墳)이 나중에 축조됐다.
황남대총은 목관과 부장품을 안치한 뒤 그 위에 돌을 쌓고 다시 흙으로 둥글게 봉분(封墳)을 다져 만든 적석목곽분 이다.
하얀 구름이 없는 하늘이 초록 왕릉과 파란하늘이 잘 어울린다..
천마총(天馬塚)은 신라 22대 지증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경주의 고분이다.
제155호 고분이었다가 1973년 무덤 안에서 자작나무껍질에 채색으로 천마를 그린 말다래(국보 제207호)가 발견되어 천마총이 되었다.
무덤의 축조 시기는 6세기경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봉토로 덮인 돌무지덧널무덤으로서 바닥지름은 47m, 높이는 12.7m에 달한다.
무덤의 축조방법은 먼저 지면을 고른 뒤 바깥둘레돌을 돌리고 그 안에 점토와 자갈을 다져쌓기해서 올린 후 여기에 덧널을 동서방향으로 설치하고 덧널 주위에 돌무지를 쌓은 뒤 봉토를 씌웠다. 덧널 내부에는 강돌과 잔자갈로 석단을 돌리고 그 위에 유물을 배열했으며 석단 내부에 널을 동서방향으로 안치했다. 석단 바깥쪽에는 널과 직교하여 남북방향으로 껴묻거리 상자를 놓았다.
마구류로 추정되는 금동판· 미늘쇠· 쇠낫· 쇠투겁창을 비롯하여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자작나무껍질에 채색으로 천마를 그린 말다래(국보 제207호)
출토된 주요 유물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전시하고 무덤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천마총을 둘러보고서 다시 대릉원 주위를 걸어봤다.
황남대총(皇南大塚)은 외형(外形)을 원형(原形)대로 복원(復元)하였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경주 대릉원에서 1년만에 만나는 배롱나무꽃이다..
붉은 배롱나무꽃과 왕릉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배롱나무꽃이 여름꽃의 대표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배롱나무의 또 다른 이름으로 목백일홍, 자미화, 만당홍 등으로도 불린다..
대부분의 나무에서 피는 꽃들이 다 사라진 시점에 피는 멋진 여름꽃...
무려 100일 가까이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불리운다..
또 다른 대릉원 매표소 출입문
미추왕릉 뒤를 돌아 나온다...
멋진 소나무길을 아끼듯 아주 천천히 걸어 나온다...
나무들이 많아 그늘도 많고 산책로도 잘되어 있어서 덥지않게 구경할수 있었다.
대릉원을 한바뀌 쭉 둘러보고서 정문으로 빠져 나오며 대릉원에서의 시간을 마무리 했다..
대릉원을 나와 대릉원 돌담길 돌아 나와 식당에서 아침 식사하고 나온 서울에서 여행온 문은경씨 부부를 다시 만나 내 차는 대릉원 근처에 주차 후 문은경씨 차를 함께 타고 남산동으로 이동하여 경북산림연구원, 화랑의 집, 통일전 그리고 서출지, 남산동 동.서 오층석탑까지 가이드 해 주고 다시 함께 교동으로 돌아와 교동의 경주 향교를 찾아 나선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 낮선사람들과 교감하며 함께가 된다는건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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