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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장군 고택 (경북 경주시 탑동 식혜골 633번지)여행방/경상도 2015. 6. 25. 08:00
김호 장군 고택 (중요민속자료 제 34호)
2015. 6. 25.
2015. 6. 19. 오늘도 경주 문화재 탐방은 계속된다...
살아있어 숨소리에 감사하며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커피 향처럼 그 향기로운 아침이 행복하다
오늘은 포석정지를 중심으로 경주 배동과 탑동을 중심으로 탐방할까 한다..
순례할 문화재는 경주 탑동의 포석정과 지마왕릉을 보고 인근의 양산재와 월암재를 본후 남간사지 석정. 경덕사. 신라 왕릉인 일성왕릉, 남간사지 당간지주, 창림사지 삼층석탑, 김호장군 고택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남산일대에서 가장 크고 우람한 창림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열번째는 이동하여 김호장군 고택으로 향한다...
7번 국도길 옆 왕손짜장집에서 식혜골 마을회관쪽으로 찾아 간다...
식혜골 마을회관 계단 받침돌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식혜골 마을회관에서 직진하다가 우회전으로 구부러져 들어간다..
고택입구에는 대략 10대 정도는 거뜬히 주차할 수 있는 넒은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조선 선조 25년(1592) 부산첨사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호가 살았던 집이다. 17세기 전후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집터는 신라시대 절터였다는 설이 있는데, 주변에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석조물이 있고 마당의 우물돌은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 김호의 후손 김헌용이 사망하여 지금은 그 부인 14대 종부님이 관리하고 있다.
400년을 이어온 김호 장군 고택은 개인집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하며 지금은 김호 장군의 14대 종부님이 참 정갈하게 관리를 하고 계신다.
터전은 넓으며 주변에 토담을 둘러쌓았고, 길 쪽으로 출입구를 내어 대문으로 사용한다. 토담 안 깊숙이 기와집 1채가 남쪽을 향하여 앉아 있고, 오른쪽으로 초가집 1채가 따로 있다.
그럼, 살짝 대문을 열고 400년 고택의 모습을 살펴볼까?
고택의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중요민속자료 제34호. 1592년(선조 25) 부산첨사를 지낸 김호(金虎)의 고택이다.
집의 배치는 널따란 마당에 一자형의 안채가 남향하여 있고 서쪽에는 아래채가 동향하여 있다. 원래 사랑채가 동쪽에 있었다는데, 없어지고 자리만이 남아 있다. 사랑채자리 북쪽으로 사당(祠堂)이 자리잡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의 아래채, 정면에는 본채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중간에 보이는 분이 14대 종부이시다...
사랑채터의 기단 아래에는 우물이 있고, 부엌 서쪽 담장 밑에는 장독대가 있다.
마당가에 있는 우물 돌은 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우물도 고택의 정감어린 풍경과 어울려 예쁘게 관리되고 있었다.
마당에는 신라 때의 우물돌이 있는 우물이 있는데, 우물을 옛날 그 자리로 본다면 이 집이 절의 요사의 위치에 해당될 것 같다.
우물 주변의 모습이다..
임진왜란 때 경주 노곡(奴谷)에서 의병장으로 공을 세운 김호(1534~1592)가 살았던 집이다. 건축연대는 17세기 즈음으로 짐작되며, 집터는 신라시대 때 절터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실제로 통일신라 때의 것으로 보이는 석조물이 주변에 산재해 있다.
기와집 안채의 북동쪽으로 따로 담장을 둘러막은 사당이 있다.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단순하며, 내부는 모두 하나로 된 통간(通間)으로 되어 있다.
사당은 막돌바른층쌓기 기단 위에 주좌(柱坐)를 쇠시리한 초석들을 놓고 민흘림두리기둥을 세운 굴도리집이다. 전면 3칸 모두 당판문을 달았는데, 어간(御間)만 정자살창을 윗부분에 끼웠다.
지붕은 맞배지붕이고, 처마는 홑처마이며, 양 측면에는 풍판(風板)을 달았다.
원래 사랑채가 동쪽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자리만 남아 있다. 그 자리에는 나무 정자가 방향만 다르게 앉아 있다.
정자에서 바라본 사당
마당 한 켠에 위치한 작은 정자에 앉아 본다...
정자에서 바라본 연못...
정자에서 바라본 입구출입문과 샤워장이 보인다. 정자도 고택의 정감어린 풍경과 예쁘게 어울려 있었다.
앙징스러운 모터 가리개...
연못도 고택의 정감어린 풍경과 어울려 예쁘게 관리되고 있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크기로, 서쪽 끝에 2칸의 부엌을 두고, 부엌 오른쪽에 1칸의 온돌방으로 된 안방이 있다. 그 오른쪽에 1칸의 대청, 그리고 마지막으로 1칸의 머릿방을 둔 단순한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이 집의 구조는 안채는 막돌로 바른층 쌓기한 뒤 장대석으로 갑석을 놓아 마무리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도리를 받친 납도리집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수키와 끝에 아귀토를 물렸다.
부엌간의 담벼락은 빈지벽이고 살창을 대었다. 방과 대청에는 띠살무늬 분합을 달았다. 방의 바닥은 온돌이나,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을 한 것이 특이하다. 대청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연등천장을 하였다.
항상 여행 때면 아침을 건너뛰는 경우가 많은데 ‘김호장군고택’에서는 전날 숙박할 때 미리 말하시면, 종부님이 직접 재배하신 농작물로 만든 정성가득한 아침상을 맛보실 수도 있다. 특별메뉴로 제사음식을 맛 볼 수 있다고 ~
손수 담근 된장, 쌀로 만든 조청을 판매하고 있었다 ^^
상청(上廳)에 문짝을 다는 예는 안동지방 북쪽에서는 드물게 발견된다. 안동시 녹전면 일대가 북방의 한계선인 듯이 보이는데, 이런 집들은 경주, 월성 일대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그런 집들 중에서 고식을 보이는 유례(類例)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래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동향하여 있는데, 남쪽 끝에 1칸의 온돌방, 그 다음 또 1칸의 온돌방을 두고, 그 옆에는 부엌을 두었다.
김호장군 고택의 아래채는 방2개가 연결된 구조로 4~5인 가족이 지내기에 딱 좋을 것 같았다.
아래채는 막돌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아, 가는 네모기둥을 세운 단순한 초가집으로 굴뚝이 부뚜막에 설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긴 대문 양쪽에 있는 문간방이다.
문간방 내부를 담아본다. 2명이 이용하기에는 딱 안성맞춤일 듯....특히 아가씨들이 좋아하는 방이란다.
가장 오래된 민가 건물 중 하나로 옛 건축 수법과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 중요한 연구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34호로 선정되어 있는 탑동 633번지에 위치한 ‘김호장군생가’라는 이름의 월암 고택을 볼수 있었던 행복한 하루였었다..
이제 오늘의 계획된 경주 문화탐방을 마무리하고 내 삶의 터전 포항으로 바삐 달린다. 가족들을 위한 맛있는 저녁 준비를 해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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