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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림사지 삼층석탑 (경북 경주시 배동 )여행방/경상도 2015. 6. 24. 17:00
창림사지 삼층석탑
2015. 6. 24.
2015. 6. 19. 오늘도 경주 문화재 탐방은 계속된다...
살아있어 숨소리에 감사하며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커피 향처럼 그 향기로운 아침이 행복하다
오늘은 포석정지를 중심으로 경주 배동과 탑동을 중심으로 탐방할까 한다..
순례할 문화재는 경주 탑동의 포석정과 지마왕릉을 보고 인근의 양산재와 월암재를 본후 남간사지 석정. 경덕사. 신라 왕릉인 일성왕릉, 남간사지 당간지주, 창림사지 삼층석탑, 김호장군 고택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보물 제909호로 지정 되어 있는 경주 남산의 수많은 절터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남간사지 당간지주를 보고 아홉번째는 인근의 창림사지 삼층석탑으로 향한다...
남간사지 당간지주에서 창림사지로 가는 길이다. 차 한대가 겨우 다니는 농로길을 가로 질러 포석정쪽으로 가야 된다.
포석정쪽으로 가다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들어오면....
좁은 창림사지 주차장이 있다..
남간사지 당간지주에서 조금더 포석정 방향으로 가면 있는 창림사지는 삼국유사에 신라 최초의 궁궐지로 기록된 유서 깊은 장소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 되었다.
고려 때까지 존속되어 오다가 조선 초기에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었는데, 1824년 사리 장업구를 도굴하려던 자에 의해 도괴되었다. 이 때 조탑 사실이 기록된 창림사 무구정탑원기가 나와 이 탑이 신라 문성왕 7년(855년)에 건립된 것임이 밝혀졌다.
오랜만에 경주 남산 창림사지에 오른다. 경주 남산 창림사지가 확 변했다.
옛 말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는데 오늘 와본 창림사지가 바로 그랬다. 삼층석탑은 물론이고 절터 주변 전망이 시원스럽게 확 터져 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울창한 숲 속에 묻혀 탑은 물론이고 절터의 흔적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는데 어인 일인지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비롯하여 울창한 숲을 모두 제거 해버리고 먼 도로에서도 탑을 조망하게 됐으니 정말 잘한 조치라 여겨진다.
창림사는 신라 최초의 왕궁지였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왕(문성왕)이 직접 절을 지어 절의 규모가 큰 것은 물론, 화려하고 장엄하였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이제는 황폐한 절터 위에 주춧돌 몇 개와 탑하나만 달랑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는 국도변에서도 보이고 오후의 석양빛을 받은 하얀 화강암의 석탑이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신비롭게 보인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자르는 아픔도 있었지만 잘려 나간 소나무의 희생이 있었기에 석탑이 더 빛날 수 있게 됐으니 소나무들의 살신성인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싶다.
창림사지 발굴 조사터...
창림사지 발굴 조사터 주변에는 석재들이 딩굴고 있다..
절터 곳곳에 초석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다. 널려 있는 초석들만 따라 다녀도 창림사가 꽤 사세가 번창했던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장구한 세월을 담고 당당하게 서 있는 천년 석탑... 그 앞에 서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마음이 겸허해 진다.
창림사터는 박혁거세가 신라 최초로 궁궐을 세운 곳이라 전하지만 지금은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삼층석탑과 묘지 앞에 놓인 쌍귀부 그리고 주위에 흩어져 나뒹구는 몇 개의 석물만이 이 곳이 창림사였음을 알리고 있다. 삼층석탑은 남산일대에서는 가장 크고 우람하다.
창림사 3층 석탑(石塔)은 창림사가 문성왕17년(855) 건립된 절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창림사 자리가 신라 최초의 궁궐(宮闕) 터로 기록되어 있다.
창림사는 조선 초기에 없어졌으나 석탑(石塔)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창림사(昌林寺) 자리임을 지금까지 잘 알려주고 있다.
창림사 올라가는 길엔 여기저기 많은 석재들이 흐트러져 있다....
탑지에 서면 대충 절터의 윤곽이 들어온다.
산 아래 자락과 기슭을 따라 절이 들어섰을 것이며 절의 가장 높은 부분에 탑이 놓여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탑은 무너져 있었던 것을 1979년에 복원한 것이다.
현재 탑의 기단부 면석에 볼 수 있는 팔부신중은 남면(南面)에 아수라(阿修羅), 북면(北面)에 가루라(迦樓羅), 서면(西面)에 천(天), 건달바(乾달婆)의 이며, 나머지 4기는 떨어져 나가고 없어 조각 없는 새 부재로 복원한 것이다.
팔부신중은 불법을 수호하는 불타팔부중(佛陀八部衆)과 사천왕(四天王)의 부장(副將)인 사천왕팔부중(四天王八部衆)으로 나눌 수 있는데, 보통 팔부신중이라고 할 때는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불타팔부중(佛陀八部衆)을 말하며 우리나라에서 대개 형상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면(西面)에 천(天), 건달바(乾달婆) 상
기단부에 새겨진 남면(南面)에 아수라(阿修羅) 상...
상층기단면석에는 팔부중(八部衆)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아수라상의 표현은 정말 잘 남아 있어 9세기 탑으로 보인다.
신라 건국 시조의 무덤과 탄강 설화 그리고 궁궐지로 추정되는 곳이 아직도 남산자락에 있어 신라의 흥망성쇠를 그대로 알 수 있다. 남산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층기단부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의 조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팔부중상은 사천왕(四天王)의 장수(將帥)이니 탑의 기단부가 수미산이 되는 것이다.
북면(北面)에 가루라(迦樓羅)
서면(西面)에 천(天), 건달바(乾달婆) 상
모두 구름을 타고 천의 자락을 날리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양각해 놓았다.
남면(南面)에 아수라(阿修羅) 상...
북면(北面)에 가루라(迦樓羅)
삼층 석탑.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탑이지만 그 자태는 가히 일품이다.
창림사터 삼층석탑은 남산일대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다
상층기단부의 탱주 숫자가 주는 차이를 느낄 수도 있다. 사진으로 보면 가장 큰 비례를 가지고 있는 창림사탑의 상층기단부가 좁고 높아 보인다... 탱주가 하나와 둘일 때의 차이다...
게다가 탑 규모에 비해 주변이 넓지 않아 늘 올려다 보게끔 자리잡고 있다.
창림사터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경주 들판...
창림사터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경주 들판과 시내 모습...
지금은 석탑의 서쪽을 중심으로 정비가 되고 있어 시원한 느낌이다.
몇 년 뒤 이곳에 다시 들르게 되면 그 때는 그나마 잘 다듬어진 절터를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창림사지 발굴터를 지나 내려 간다...
창림사지 주차장 도착이다...
창림사지에서 계속 농로길을 따라 가니
포석정지 옆 동네가 나온다...
포석정지 뒷담을 따라 포석정지 입구로 나간다...이제 마지막으로 김호장군 고택을 찾아가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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