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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위의 아름다운 도시 론다스페인 2015. 4. 13. 09:46
절벽위의 아름다운 도시 론다
2015. 4. 12.
2015. 3. 26 ~ 4. 4.(9박 10일)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에서 스페인에 도착한 3. 30. 다섯째날의 오전 여행은 이른아침에 이쁜 미하스마을을 떠나 투우의 본거지이며 숨은 비경인 론다로 약 1시간 30분 이동 후 론다의신시가지, 투우장, 뿌엔또 누에보 다리, 구시가지를 보고 약 3시간 이동 후 세비야 도착, 점심 식사 후 황금의 탑, 세비야 대성당, 스페인 광장을 보고 잇달아 플라맹코를 보기로 한다....
론다 투우장을 뒤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 오전 두번째 일정으로 이젠 론다계곡으로 이동 한다..
론다 투우장에서 곧바로 론다의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경계인 뿌엔또 누에보 다리로
간다절벽 위의 마을 론다
스페인 말라가 주의 론다는 인구 3만 5000여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지만 해발 평균 고도가 723m나 되는 산중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라 할 수 있는 입지 조건 때문에 기원전 6세기경 켈트인을 시작으로 고대 페니키아인이 정착을 했었고 기원전 3세기에 로마 제국의 장군이자 정치가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 기원전 235년~기원전 183년)에 의해 요새 도시로 건설되면서 현재 도시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한니발의 군대를 아프리카의 자마 전투에서 격파한 것으로 유명한 장군으로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에서 만났던 인물이다.
그 후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 황제로부터 시의 칭호를 얻었고, 이슬람 시대부터는 독립적인 소국의 수도였으며 난공불락의 위치로 인해
1485년까지는 기독교도들의 손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한다.
2300~26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인 셈이다.
도시 전체가 천연의 공원과 분화구, 계곡, 평원 등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도시로 릴케와 헤밍웨이, 오손 웰스 등이 사랑했던 도시다.
론다는 험한 절벽 위에 펼쳐진 안달루시아 내륙 산악지방의 중심도시로 작가 훼밍웨이가 오랜 시간을 머물며 집필했던 곳이다.
론다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눈다. 고대 무어인들이 살던 구시가지와 투우장이 있는 신시가지가 그것이다.
론다 투우장에서 나오니 광장에 흉상이 하나 있는데 '리오스 로사스 1878'이라고 쓰여 있다.
'리오스 로사스'는 이곳 론다 출신으로 스페인 하원 의장을 지낸 법관-정치인 안토니오 데 로스 리오스 로사스(1812~1873)이다. 1878년은 그가 숨진 뒤 흉상을 세운 해인 모양이다.
광장거리 건너쪽에는 파라도르 호텔이 ....
깊이가 100m나 되는 협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푸엔테 누에보'가 명물이다.
론다에는 다리가 셋 있는데 그중에 제일 늦게 놓았다고 해서 '새 다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18세기 중반까지도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오가려면 한참 돌아가야 했기에 필립 5세가 직경 35m 아치형 다리를 짓기 시작한지 8개월 뒤 무너져 50여명이 죽거나 다친다..
그래서 몇 년 1751년 안달루이사 건축가 호세 마르틴이 깊은 골짜기 아래쪽부터 단단히 돌을 쌓아 댐처럼 다리를 놓는 공법을 썼다. 다리는 42년 뒤 1793년에야 완성된다..
암벽 깊은계곡으로 이루어진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을 잇는 누에보다리
누에보 다리가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누에보 다리와 론다의 신시가지의 풍경도 대단하다. 구 시가지 쪽에서 바라본 누에보 다리와 파라도르 호텔.
엘타호 협곡을 가로지르는 누에보다리에서...
얼마 안 가 입이 벌어지는 풍경을 만난다.
협곡 건너편 절벽 위에 하얀 집들이 들어서 있다.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는 최대 관광자원이다..
론다는 해발 750m 고원에 자리 잡았다. 고원을 가로지는 과달레빈강이 오랜 세월 깎아 만든 것이 엘타호 협곡이다. 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후덜덜 일 만큼 깊다. .
헤밍웨이(1899년~1961년)’는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다.
그 역시 이곳 론다의 누에보 다리 아래 별장에서 잠시 살았다고 하며 "신혼여행 혹은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간다면 스페인의 론다로 가라, 도시전체가 로맨틱한 세트로 둘러싸여 있다"고 예찬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1936년 7월 17일부터 1939년 4월 1일까지 치열하게 전개 되었던 스페인 내전을 무대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장편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1939년 3월부터 쓰기 시작하여, 다음 해 1940년에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43년에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독일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20세기 초 론다에 와서 살았다.
릴케는 조각가 로댕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거대한 절벽이 등에 작은 마을을 지고 있고 뜨거운 열기에 마을은 더 하얘진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년~1926년)는 높다란 절벽위에 펼쳐지는 하얀 집들의 마을을 보고 조각가 로댕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 귀절을 생각하게 하는 풍경들이다.
왼쪽엔 절벽 아래쪽으로 나 있는 하얀 계단이 보인다.계단 아래 전망대처럼 보이는 공간이 있다.
론다는 로마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시절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도시로 협곡위에 건설된 도시로 누에보 다리의 위치가 워낙 대단한 경관을 만들어냄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스페인의 숨은 진주 마을이다.
좌측은 구 시가지의 절벽위 주택들이고 우측은 신시가지의 파라도르 호텔이다. 가운데는 절벽아래로 들판이 펼쳐져 있다.
릴케는 이 곳 론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 지는데 그가 머물렀던 1906년에 만든 레이나 빅토리아 호텔(Hotel Reina Victoria)의 방은오늘날 릴케의 작은 박물관으로 남아 있다.
릴케는 ‘이 세상 모든 도시에서 나의 꿈에 그리던 곳을 찾았는데 이곳 론다에서 발견했다.’ 고 할 만큼 찬사를 보내며 론다를 사랑 했던 시인이다.
엘 타호 협곡은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계속 이어지고 그 사이에는 과달레빈 강(Río Guadalevín)이 흐르고 있다.
다시 건물들을 끼고 절벽위의 길을 따라 걷다보니 이번에는‘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산책로 Paseo de E. Hemingway’가 나온다.
산책로라 해봤자 파라도르 호텔 건물과 절벽 사이의 좁은 공간이다.
왼쪽은 호텔 건물 벽 일부와 카페테라스가 있고, 오른쪽의 철로 된 난간 아래는 바로 낭떠러지다.
이렇게 좁은 산책로에 헤밍웨이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 자못 흥미롭다.
전망대. 좁은 협곡에 세워진 작은 마을 스페인 론다... 론다는 안달루시아 지방에 자리한 인구 36,000명의 조그만 도시로 해발 750m의 고도의 요새 마을이다. 이 론다는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스페인의 전원적인 풍경을 느끼기에 좋은 도시다..
오랜된 마을이기는 하지만 문화적인 경관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연 경관이라고 볼 수있는 곳이다..시에라 네바다의 협곡에 위치한 아름다운 마을 론다...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산책로, 전망대 공원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산책로와 전망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론다산맥(1,100m)과 평야지대.
지부롤타 해협(폭, 40km)을 통해 침입하는 적들이 세비아와 그라나다를 가려면 론다를 거쳐야만 하기에 스페인군은 론다 협곡에서 방어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한다...
론다의 벌판
헤밍웨이의 산책로를 나온다..
웨밍웨이 거리 간판....
광장을 지나...
신시가지를 거닐면서 본 하몽가계...
하몽은 스페인의 말효 전통음식으로 소금에 절여 건조한 돼지의 뒷다리로 만든 햄이다..
론다의 신시가의를 15분 정도 걸어서....
드디어 시외터미널에 정차 해놓은 버스로 오른다..
론다에서 짧은 오전 일정을 마치고 스페인 여행 닷새째 3월 30일 오후 론다를 떠나서 130km 떨어진 세비야로 약 3시간에 걸쳐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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