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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산사(강원도 양양군)
    사찰여행/강원도 2011. 10. 4. 12:07

    낙 산 사 ( 洛 山 寺)

     

    2011. 10. 4

     

     

     

    2011. 10. 3 . 포항에서 출발 동해안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을 두루 보고 낙산사에 들러본다.....

     

     

    2005년 4월 발생한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제는 몰라볼 정도로 복원이 되어 옛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낙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로서 해변에 위치하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낙산은 산스크리트의 보타락가(補陀洛伽 Potalaka)에서 유래한 말이며 관세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을 뜻한다.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의 하나인 낙산사는 671년(문무왕 11)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전한다. 낙산사 창건 이후 이 절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기록으로는 원효(元曉),  조신(調信),  사굴산파의 개산조 범일(梵日)의 이야기 등이 전하고 있다.

     

    이 절은 858년 범일에 의해 중건된 후 여러 차례 불타 중건이 거듭되었으나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1953년과 1976년에 다시 복구해서 원통보전(圓通寶殿)·  종각(鐘閣)· 일주문(一柱門)· 선당(禪堂)· 승당(僧堂)· 객실(客室) 등의 건물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 유적은 낙산사동종(보물 제479호),   낙산사7층석탑(보물 제499호),   낙산사 홍예문(강원도유형문화재 제33호),  낙산사원장(강원도유형문화재 제34호),  낙산사 홍련암(강원도유형문화재 제36호),  양양 낙산사 사리탑(강원도유형문화재 제75호) 등이 있다.

    1977년에 화강암으로 만든 동양 최대의 해수관음입상(海水觀音立像)이 있으며,  절 앞에는 의상의 전설이 담긴 홍련암 등이 있다.    그러나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발생한 큰 산불로 낙산사원장·  원통보전·  일주문· 낙산사홍예문 등 주요 전각과 낙산사동종이 소실되고,  낙산사 7층석탑이 일부 손상 되었다.

     

     

     

     

     

    1. 일주문

     

     

     

     

     

     

     

    낙산사 일주문

     

     

    2. 홍예문

     

    위는 누각(樓閣)이고 그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이룬다. 누각은 산불로 인해 소실되었다.

    홍예문은 1467년(세조 13)에 축조되었다고 전하며, 그 위의 누각은 1963년 10월에 지은 것이다.
    축조 방식은 먼저 문의 기단부에 걸치게 다듬은 2단의 큼직한 자연석을 놓고, 그 위에 화강석으로 된 방형의 선단석(扇單石) 3개를 앞 뒤 두 줄로 쌓아 둥근문을 만들었다. 선단석은 홍예문 등에 사용되는 맨 밑을 괴는 모난 돌을 가리킨다.
    문의 좌우에는 큰 강돌로 홍예문 위까지 성벽과 같은 벽을 쌓아 사찰 경내와 밖을 구분했다. 이 홍예문에는 장방형으로 26개의 화강석이 사용되었다.

     

     


     

     

     

     

    홍예문은 1467년 세조가 직접 낙산사에 행차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찰입구에 세운 무지개모양의 돌문

     

     

     

     

     

     

    정방형으로 26개의 화강석이 사용되었는데 당시 강원도의 26개 고을에서 석재 하나씩을 내어 앃았기 때문이라 전한다.

     

     

     

     

    3. 사천왕문

     

     

     

     

     

     

     

     2005년 4월 하마에도 견딘 사천왕문

     

     

     

     

     

    4.  범종각 

     

     

    2005년 화재로 소실된동종을 걸어 놓았던 범종루

     

     

     

    5. 빈일루 - 해를 맞이하는 누각

     

     

     

     

     

     

     

     

     

     

     

    6. 응향각

     

     

     

     

     

     

     

     

     

     

     

     

     

    7.  원통보전

     

     

     

     

     

     

     원통보전은 낙산사의 중심법당으로서 낙산사가 관음성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통보전은 원통전(圓通殿),   혹은 관음전(觀音殿)으로도 불리며,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봉안한다.

     

     

     

     

     

     

     

    관음전은 곧 원통보전의 다른 이름이므로 낙산사 창건부터 원통보전이 주된 금당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4월 화마로 원통보전은 완전 소실되었으나,  주지 금곡  .정념스님을 비롯한 대중들의 노력으로 건칠관세음보살상은 안전한 곳으로 봉안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통보전 내에는 건칠관세음보살상을 독존(獨尊)으로 봉안하였는데, 2003년 2월 3일 보물 제 1362호로 지정되었다.

     

    후불탱화로 아미타극락회도가 걸렸으며 그밖에 관음상 주위로는 오른쪽에 신중탱화(1959년)와 동종(銅鐘), 사진본으로 된 의상대사 진영 등이 조성되었다.

     

     

     

     

     

     

     

     

     

     

     

     

     

     

     

     

     

     

     

     

     

     

     

     

     

     

     

     

     

     

     

     

     

     

     

     

     

     

     

     

     

     

     

     

     

     

     

     

     

     

     

     

     

     

     

     

     

     

     

     

     

     

     

     

     

     

     

     

     

     

     

     

     

     

     

     

     

     

     

     

     

     

     

     

     

     

     

     

     

     

     

     

     

     

     

     

     

     

     

     

     

     

     

     

     

     

     

     

     

     

     

     

     

     

     

    8.  7층 석탑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조선시대 석탑으로서 현재 보물 제499호로 지정

     

     

     

     

     

     

     

     

    낙산사는 조선 세조 대 (재위,1455∼1468)에 중창되었는데 이 탑도 그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비록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탑의 상륜(相輪)부분까지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불탑 연구에 훌륭한 자료가 된다.

     

     

     

     

     

    탑의 양식을 살펴보면, 평면은 방형(方形)으로서 기단석 위에 탑신이 놓이고 그위에 상륜부가 마련된 구조를 하고 있다.

     

    기단석(基壇石)은 지면에 2단의 층을 이룬 지복석(地覆石)과 그 위의 복련(伏蓮)이 조각된 지대석(地臺石)으로 구성되었다. 

    기단은 단층기단으로서 우주(隅柱)가 새겨지지 않았고, 그 위에 얹은 뚜껑돌인 갑석(甲石)은 아래 위가 수평인 하나의 돌로 된 판석(板石)인데,  그 밑에 부연(副椽)과 2단의 각형(角形) 고임이 있다.

    기단 상면에는 겹잎〔複蓮〕의 복련(覆蓮) 24잎이 조각되었다. 

     

     

     

     

     

     

    이 탑은 한국전쟁 당시 손상되었으나 1953년 4월 이형근 장군이 낙산사를 중건할 때 함께 재건되었다. 현재 탑의 크기는 전체 높이 620㎝이다.

     

     

     

     

     

     9.  원장

     

     

    원통보전 주위에는 그 둘레를 네모 낳게 방형(方形)으로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담장인 원장(墻)이 있다.

     

     

     

    축조된 시기는 세조가 절을 중건할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한다.   이 원장은 법당을 둘러싼 성역(聖域) 공간임을 구분하면서 공간 조형물로서의 효과도 아울러 겸비하고 있다.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우리 나라의 대표적 담장이며,  현재 강원도유형문화재 제 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담장 안쪽의 담벽은 기와로 쌓고 담장 바깥쪽은 막돌로 쌓았다.   법당을 향한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단의 장대석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다시 1단의 장대석 받침돌을 놓았다.

     

    법당을 향한 담장 안쪽에는 밑부분에 2단의 장대석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다시 1단의 장대석 받침돌을 놓았다. 

     

    담벽은 강회진흙과 평와(平瓦)를 차례로 다져 쌓아 담벽앞면에 기와로 가로 세로의 줄을 맞추고, 일정한 간격에 맞추어 둥근 화강암을 바르게 쌓고 돌과 돌 사이는 강화진흙으로 메웠다.   담장 위는 기와로 지붕을 이어 담벽을 보호하고 있다.

     

     

     

     

     

     

    본래 터만 남아 있었으나 근래에 전체적으로 보수하면서 연결했다. 크기는 전체 길이 220m,   높이 3.7m이다.

    산불로 일부 유실되었으나 원통보전과 함께 복원되었다.

     

     

     

     

     

     

     

     

    원통보전에서 나와 해수관음상쪽으로 향하는이 길을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며 그 길이 시작되는 문

     

     

     

     

     

     

     

     

    해수관음상이 있는 곳으로 나가는 작은 출입문

     

     

     

    10. 해수관음상

     

     

     

     

     

     

     

     

    해수관음상은 1972년 처음 착공되어 5년 만인 1977년 11월 6일 점안했다.

     

     

     

     

     

     

     

     

    크기는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이며, 대좌의 앞부분은 쌍룡상(雙龍像), 양 옆에는 사천왕상(四川王像)을 조각했다. 관음상은 대좌 위에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는데, 왼손으로 감로수병(甘露水甁)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가슴께에서 들어 수인(手印)을 짓고 있다.

     

     

     

     

     

      해수관음상은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약700여 톤을 운반해와 조성한 것이다.

     

     

     

     

     

     

     

    오봉산정상에서  바라다보니 멀리 북쪽으로 대포항이 보인다.

      

     

     

     

     

     

     

     

    해수관음상 뒤쪽으로는 멋지게 설악산이 펼쳐지고...

     

     

     

    11.   관음전

     

     

     

     

     

     

     

     

    해수관음상이 앞에는 기도처인  관음전이 있다.

     

     

     

     

     

     

     

     

     

     

     

     

     

    해수관음상이 있는 언덕아래 관음보살을 모신 법당

     

     

     

    12.  보타전

     

     

    보타전은 원통보전,   해수관음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관음신앙의 성지요,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음도량 임을 상징하는 전각으로서,   1991년 7월 짓기 시작해서 1993년 4월 10일에 완공했다.   규모는 앞면5칸, 옆면3칸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7관음상을 봉안하던 날에는 이적(異蹟)이 일어나 불자들을 감동시켰다.  그날 밤, 하늘에서 풍악소리가 들리는가 하더니, 청학(靑鶴) 다섯 마리가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늘 거친 파도소리를 토해내던 동해 바다가 문득 조용해졌으며, 무지개와 같은 서기광명(瑞氣光明)이 온 하늘에 가득 찼다.   또한 그날 밤 신도회장은 동해 바닷물이 해일을 일으켜 보타전까지 날아 오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보타전의 석등 

     

     

     

     

     

     

     

     

     

     

     

     

     

     

    보타전내 관음상

     

    보타전 내부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천수관음(千手觀音)·성관음(聖觀音)·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마두관음(馬頭觀音)·준제관음(准堤觀音)·불공견색관음 등 7관음상과 32응신상 천오백관음상이 봉안되어 있다.  

     관음신앙의 성지답게 그야말로 모든 관음상이 봉안된 셈이다.이렇듯 많은 관음상을 조성한 것은 우리 민족의 구제와 해탈을 기원하는 뜻에서라고 한다

     

     

     

     

     1500관음상 한 분 한 분의 천수천안과 32응신상을 곱하면 그 수가 5천만 정도인데, 그것은 곧 5천만 우리 민족의 인구수와 일치한다.   곧 우리 5천만 민족의 구원과 해탈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관음상의 재질은 모두 목조로서 백두산에서 자라는 홍송(紅松)을 사용했다.

     

     

     

     

     

     

     

     

     

     

     

     

    전각 외부 벽화는 낙산사 창건한 의상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원통전에서 해수관음상 가는길에서 내려다본 보타전

     

     

     

     

     

     

    보타전은 배산임수의 지형 덕으로 지난 2005년 대형 산불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재 보타전 앞에는 누각 형태의 보타락이 있으며,   그 앞에는 큰 연못이 자리잡고 있다.

     

     

     

     

     

     

    보타락과 연못

     

     

     

    13. 지장전

     

     

     

     

     

     

     

     

     

     

     

     

     

     

     

     

     

     

     

    14. 의상기념관 

     

     

     

     

     

     

     

     

    2000년 5월 착공해 1년여의 공사기간을 거쳐 2001년 5월 1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개관한 의상기념관은,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한옥 양식의 50평 규모 전시관이다.


     

    기념관 내부에는 전통인물화가 권오창씨와 신구대 전보삼 교수가 일본 교토 고산사 소장 의상스님의 영정을 기초로 제작한 의상스님 진영과, 의상스님 저술의 핵심이랄 수 있는 ‘화엄일승법계도’와 ‘백화도량발원문’을 쓴 10폭 병풍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일연스님과 박인량이 의상스님에게 바친 찬시와 중국 화엄학의 대가 법장스님이 의상스님에게 보낸 ‘기해동서’도 제작, 전시되어 있다.

     

     

     

     

     

     

     

     

    낙산사 화재시 타버린 원통보전 잔해

     

     

     

     

     

     

     

     

    전통양식을 빌린 불화 8점으로 표현한 의상 스님의 일대기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것으로 출생, 출가, 중국 구법행, 낙산사 창건, 화엄법회, 열반 등 8점으로 구성, 부처님의 8상록을 연상케 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외에도 의상스님의 사상을 연구한 연구서들도 전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15. 의상대 

     

     

     

     

     

    의상대(義湘臺)는 의상스님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의상스님의 좌선(坐禪) 수행처라고 전한다.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있다. 체조스님의 활동 년대가 18세기이므로 적어도 이때까지는 의상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근대 이전에 폐허가 되었던 듯하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25년에 낙산사 주지 김만옹(金晩翁)스님이 이곳에 정자를 새로 지었다.


    정자를 지을 당시가 6월인데, 들보로 쓸 굵은 나무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대 위에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넘어졌고, 스님은 그 소나무로 들보를 만들어 육각형의 정자를 완성했다고 한다.

     

     

     

     

     

     

    1936년 폭풍으로 무너졌다가 이듬해 중건되었으며, 1974년에 강원도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고 1975년에도 한 차례 중건되었다가 1995년 8월에 육각정(六角亭)으로 복원되었다.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길 해안 언덕 위에 있는데,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관동 팔경'의 하나로 꼽히면서 시인 묵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홍련암 가는 길

     

     

     

     

     

    16. 연화당 

     

     

     

    홍련암 가는 길가에 세워진  홍련암 소속 비구니스님들의 생활공간

     

     

     

     

     

     

     

     

     

     

    17. 홍련암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본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장소로서, 또한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석굴 안에서 기도하던 바로 그 장소로서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당시 신라의 서울인 경주(慶州)에서부터 멀리 이 곳까지 온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푸른 새〔靑鳥〕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했다. 이윽고 7일 후 바다 위에 붉은 연꽃, 곧 홍련이 솟아나더니 그 위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의상대사는 드디어 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고 이름 짓고, 푸른 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觀音窟)이라 불렀다고 한다.

     

     

     

     

     

    의상대사의 창건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619년(광해군 11)에 중건되었고, 1752년(영조 28)에 덕린(德麟)스님이 중수했다. 이어서 1797년(정조 21)에 혜민(惠旻)스님 중건, 그리고 1869년(고종 6)에 의연(義演)스님이 중건했으며 1911년에 흥운(興雲)·청호(晴湖) 두 스님이 중수했다고 한다.

     

    1869년의 중건은 1866년의 홍수로 무너졌기 때문이며, 1911년의 중수는 1908년(융희 2)에 절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18. 공양당

     

     

     

     

     

     

     

    19. 스님수행공간

     

     

     

     

     

     

    20. 낙산해수욕장

     

     

     

     

     

    숙소에서 바라다본 철지난 낙산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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