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 남사 예담촌(경남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2897번길, 단성면 남사리 281-1)여행방/경상도 2024. 7. 20. 22:10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 남사 예담촌
2024. 7. 20.
2024. 7. 18. 선우회와 함께한 수선사. 내원사로 불리웠다가 2021년 3월 덕산사로 명칭을 돌려빋은 보물과 국보가 있는 덕산사.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식(曺植)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덕천서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인 남사 예담촌을 두루 돌아보는 경남 산청 여행길로
오늘 네번째 마지막 여행지는 세월을 짐작하게 힘든 아름드리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위용을 드러내는 덕천서원을 나와 세차게 내리는 비 사이를 뚫고 남사 예담촌으로 향해본다....
남사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라고 하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것은 아니다. 이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유산이나 자연유산과는 달리 프랑스에서 1982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회'라는 기구를 구성해 자국의 작은 농촌 마을들을 소개하기 시작한 데서 출발한다.
본래 목적은 자국의 작은 농촌 마을의 아름다운 경관과 문화유산을 알려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의도였다. 프랑스의 아이디어에 이탈리아, 벨기에, 캐나다, 일본 등이 동참했고 한국도 참여해 남사마을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라고 발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지리산 깊은 곳에 위치하면서 18~20세기 전통 한옥 40여 호에 85채의 전통 한옥이 있는 남사마을이 그런 명성에 알맞은 곳이다.
농가 105호, 비농가 30호, 주민 숫자가 340명이나 되어 전통 마을 기준으로 볼 때 작지 않지만 많은 가옥이 남부 지방 양반 가옥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마을 전체가 살아 있는 한국 전통 역사 박물관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경북의 대표적인 한옥 마을이 하회마을이라면 경남에는 남사마을이 있다고 할 정도다.
특이한 것은 이곳이 다른 마을처럼 특정 성씨의 집성촌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사마을에 가장 먼저 정착한 성씨는 고려 말 진양 하씨(약 700년)로 알려져 있다. 성주 이씨(약 450년)는 하씨가 정착한 지 약 100년 후 단종 복위 모의 사건으로 성삼문의 이모부인 이숙순이 이곳에 정착한 것이 계기다. 밀양 박씨(약 350년)는 병자호란 당시 외가에 피난해온 박승희, 박승필 등이 정착해 계속 살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전주 최씨(약 100년), 연일 정씨(약 80년), 재령 이씨를 포함해 여러 성이 있었지만 현재는 30여 개에 가까운 다성이 있어 씨족 마을이라는 개념은 거의 사라진 감이 있다.
많은 성씨가 수백 년간 마을 전통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양반 가문의 반가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 말 하즙(1303 ~ 1380)과 하윤원(1322 ~ 1376) 부자, 그의 외손 통정공 강회백(1357 ~ 1402), 강회중(? ~ 1441), 영의정을 지낸 하연(1376 ~ 1453) 등이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물론, 많은 가문의 선비가 과거에 급제해 명성을 유지한 것도 큰 요인이다.
구한말 애국지사인 곽종석(1846 ~ 1919), 국악 운동의 선구자인 기산 박헌봉(1906 ~ 1977) 등도 이곳 출신이다. 결속력이 남다른 씨족 마을이 근본인 조선 시대에 많은 성씨가 한 마을을 이루면서 함께 동고동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을 자체에 특이한 내력이 있기 때문이다.
남사마을의 특이한 점은 마을 생김새가 반달 모양이므로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반월을 메우면 안 된다고 믿어 중심부에 집을 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주차장이 중앙 부분이다.
사암정사 방향으로 ~
정씨고가는 대문을 모두 솟을대문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이채롭다. 솟을대문은 집의 위세를 보여주는 증표인데 정면뿐 아니라 후면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은 주인이 그만큼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면 솟을대문 옆으로 세웠으며 맞배지붕 형식의 기와를 얹은 행랑채는 6칸이나 되는 장대한 규모다. 언뜻 보면 솟을삼문 같은 위엄이 있으며 충절을 상징하는 홍살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정씨고가의 우물
수령 240년된 정씨고가의 단풍나무
사양정사의 마당 건너 선명당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으므로 대청은 엄숙한 느낌이 곳곳에 배어 있도록 계획했다.
수령 150년의 정씨매(梅)
토석 담은 중간중간 흙이 빠져 나갔지만 퇴색도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집 안에는 120년 된 배롱나무가 있는데 마을의 배롱나무 중 가장 오랜 수령을 자랑한다.
배롱나무(泗陽精舍), 수령134년(2024년 기준), 백일간 피고지는 개화기간 때문에 선비의 학문수양과 조상의 은덕이 거듭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었다고...
정몽주의 후손인 연일 정씨가 선친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사양정사 (경남문화재자료 453 호)
사양정사는 근대 한옥의 건축적 특성을 잘 나타낸 1920년대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2칸, 사랑채 내부에 다락까지 갖춘 영일정씨의 재실이다.
연일 정씨의 사랑채이자 위패를 모신 재실인 사양정사도 만만치 않은 고가다. 사양정사는 사수천의 남쪽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수(泗水)란 공자의 고향인 중국 산둥성 취푸에 있는 강 이름으로, 공자를 흠모하는 뜻에서 남사마을 뒤를 감싸고 있는 개울을 사수라고 불렀다.
연일 정씨는 조선 시대 사육신 사건의 주역인 정몽주의 후손이지만, 남사마을에서의 토대는 구한말 유학자인 계제 정제용(1865~1907)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정화가 남사마을로 이전한 후부터 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선친인 정제용을 추모하기 위해 1920 년대에 거대한 집을 마련했는데 이것이 사양정사다. 어느 곳보다 돌담장과 감나무가 잘 어우러진 골목을 돌면 보이는 사랑채가 그야말로 당당하다.
泗 陽 精 舍
정면 7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보통 건물의 2~3배나 되어 단일 건물로는 매우 크다. 궁궐의 회랑처럼 길고 우람하며 천장이 높고 부재가 건실할 뿐 아니라 다락과 벽장 등 수납공간을 풍부하게 설치했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건축 재료인 유리를 사용해 근대 한옥의 변화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내부에는 이중 다락이 있다. 기둥은 과거 민가에서 사용할 수 없는 원형인데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여건 덕분에 건축이 가능했음은 물론이다.
남사마을에서는 남다른 멋이 느껴진다. 마을의 간판스타라고 볼 수 있는 세 가지 고목 때문인데 우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는 수령이 약 600년이나 된다. 전형적인 반시(납작감)로 산청 곶감의 원종이기도 하며 현재에도 감이 열린다. 하씨고가 안에 있는데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이 7세 때 심었다고 한다.
남사마을에서는 흙 돌담과 돌담이 공존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300년 된 부부 회화나무와 이씨 고가. 최씨고가 방향으로 향해본다...
안내소 남학재
마을에는 지정 문화재도 많이 있는데 우선 남사옛마을 담장이 등록 문화재 제281호로 지정되어 마을 전체의 명성을 높여준다. 최씨 고가(문화재 자료 제117호), 이씨고가(문화재 자료 제118호), 면우 곽종석 유적(문화재 자료 제196호), 이사재(문화재 자료 제328호), 사양정사(문화재 자료 제453호), 배산서원(문화재 자료 제51호) 등도 등록되어 있다.
남사마을은 마을 북쪽의 실개천을 경계로 상사마을과 인접해 있다. 과거에는 행정 구역상 개울을 경계로 남사는 진주, 상사는 단성에 속했는데 한때는 마을이 합쳐져 사월마을로 불리기도 했다. 산청군으로 통합되면서 남사마을과 상사마을로 분리되었지만 두 마을을 사월 또는 남사라고 함께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동제를 지낼 때는 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다루는 전통 마을은 엄밀하게 남사마을을 뜻한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볼 때 남사마을이 현재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다. 남사마을은 광복 직후 혼란기에 좌우 대립이 극심해 큰 혼란이 일어났고, 6·25전쟁 때 연합군의 대규모 폭격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되기도 했다. 특히 마을 중앙에 있던 99칸의 최씨 대갓집은 완전히 파손되어 공터만 남아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남사마을이 2003년 '전통 테마 마을'로 지정된 까닭은 마을의 역사가 오래된 것은 물론 흙돌담과 돌담이 공존하는 아름다움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담은 마을 사람들의 위계에 따라 달라진다. 반가 집은 말을 타고 가도 보이지 않을 2미터 정도의 높은 담장을 만들었고, 서민들이 거주하는 민가는 돌담을 주로 사용했다. 총 길이는 5.7킬로미터에 이르는데, 이 중 3.2킬로미터가 대한민국 등록 문화재 28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예담촌'이라는 이름도 '옛 담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반가 건축물 주위에 있는 토담은 길이 50~60센티미터 정도의 큰 막돌을 2~3층 메쌓기 한 뒤 위에 황토를 편 다음 막돌을 일정한 간격으로 벌리고 사이에 황토를 채워넣어 만들었다. 상부는 전통 한식기와 또는 평기와를 사용했다. 재료는 남사천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강돌을 사용했다. 사양정사와 최씨 고가 골목 등은 누구나 걸어보고 싶은 골목길로 추천된다.
남사마을의 기본은 지리산이다. 지리산은 '어리석은 사람(愚者)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智者)으로 변한다'고 해서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린다고 알려져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은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국내 국립공원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1,915.4미터)의 위세에 알맞게 주변에 화엄사 같은 대사찰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해 한국 남부의 문화권을 실질적으로 관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명산인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나온 봉우리 니구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이 과거에 여사촌으로 불린 남사마을이다.
풍수적으로 해석할 때 니구산이 암룡의 머리이고 당산이 숫룡의 머리로 서로 머리와 꼬리를 무는 쌍룡교구 형상을 하고 있으며, 아래를 휘감아 흐르는 사수천이 조화를 이루면서 넓은 들과 울창한 숲이 주위를 둘러친 천혜의 입지에 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 운동화에는 물이 가득하다. 더이상 돌아볼수 없어 이씨고가의 300년된 부부회화나무. 최씨 고가. 들은 뒤로 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와 버스에 오른다.
어쩨 오늘은 지리산이 있는 거창에 왔지만 아침부터 지금까지 이리도 줄기차게 비가 내리는지 감당이 안된다. 머리는 생쥐같고 우산은 받혔지만 온통 옷도 젓어있고 운동화는 남사마을 골목에서 한꺼번에 쏫아져 나오는 물줄기로 온통 물로 가득하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날도 있다.... 난생 처음 이렇게 많은 비 오는 가운데 해보는 여행길 ~
그래도 부처님과 옛선인들의 향기를 느낄수 있었던 거창 여행, 많이 행복했다...
.
.
.
.
'여행방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하동저수지 옆에 자리한 한옥카페 바실라 카페 (경북 경주시 하동못안길 88,하동 157-6) 해바라기꽃 (0) 2024.08.01 경주 대형 브런치 카페 로드 100 해바라기꽃 (경북 경주시 보불로 100) (0) 2024.08.01 산청 제 7경 덕천서원( 경남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137, 산청군 시천면 원리 219-3) (5) 2024.07.20 경남 제8호 민간정원 고성 만화방초(경남 고성군 거류면 은황길 82-91,거류면 은월리 17-8) (2) 2024.06.30 ‘제2회 월아산 정원박람회’(경남 진주시 진성면 달음산로 ) (0) 2024.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