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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 예술마을(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북로 36, 대평동2가 208)여행방/부산 2022. 12. 14. 16:42
깡깡이 예술마을
2022 . 12. 14.
2022. 12. 12. 라온제나 테마여행에서 함께했던 부산 여행으로 흰여울문화 마을과 깡깡이 예술마을 그리고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에서 송정해수욕장까지 걸어보며 즐긴 힐링여행이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보면 소소한 볼거리와 다양한 포토존, 예쁜 카페들을 만날 수 있고 부산 영도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내려다보이는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던 오늘 첫번째 여행지 부산 흰여울문화마을을 보고 부산 두번째 여행지 깡이 예술마을로 향한다.
깡깡이예술마을은 어떤 곳인가?
깡깡이예술마을은 자갈치시장 건너편, 영도대교, 남항대교와 맞닿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버선 형상의 마을이다. 두 군데의 물양장에는 배들이 가득 들어 차있고 십여 곳에 달하는 수리조선소에서는 선박들의 출입이 여전히 활발하여, 항구에서 발원하고 꽃피운 해양문화수도 부산의 원형 을 확인 할 수 있는 곳이다.
깡깡이 란 수리조선소에서 배 표면에 녹이 슬어 너덜너덜해진 페인트나 조개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 벗겨낼 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하여 생겨난 말인데, 그 무렵 ‘깡깡이마을’이라는 별칭이 생긴 뒤 지금까지도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후로도 선박조선업과 수리조선업으로 명성을 떨쳐 “대평동에선 못 고치는 배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직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재도 십여 곳의 수리조선소와 200백 여 개에 달하는 공업사와 선박 부품업체가 마을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부산시 발전의 주요 동력분야인 조선산업의 발전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중요 지점에는 도로 바닥에 동판으로 새겨 놓았다. 영도 근대 역사 흔적길에는 26개의 동판이 새겨져 있다.
깡깡이 마을 내 부품사가 모인 골목골목이 다양한 색깔로 채색돼 있어 생동감이 넘친다
부품사가 모인 골목의 벽화
깡깡이예술마을은 예부터 조선소 마을로 알려져 왔다. 19세기 후반, 우리나라 최초로 발동기를 장착한 배를 만든 ‘다나카 조선소’가 세워졌던 대한민국 근대 조선산업의 발상지 이며, 7~80년대에는 원양어업 붐을 타고 수리조선업의 메카 로 자리잡았다.
이곳은 시라이시 제염소가 있던 자리인데 지금은 선박 수리소 이다.
중요 지점에는 도로 바닥에 동판으로 새겨 놓았는데 영도 근대 역사 흔적길에는 26개의 동판이 새겨져 있다.
대평동이 수리조선업으로 유명세를 떨칠 수 있게 된 계기는 18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한말 시기, 일본 어민들은 조선의 황금어장을 차지하기 위해 부산으로 건너오기 시작한다. 특히 일본인들은 풍량을 피하기 적합했던 대풍포(깡깡이마을의 옛 이름)를 어선을 수리하고 식수를 공급 받는 포구로 이용한다. 그러던 1887년,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인 조선업자 ‘다나카’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인 ‘다나카 조선공장’을 설립한다. 현재 영도 대평초등학교 자리에 세워진 다나카 조선공장은 동력을 바람이 아닌 발동기를 통해 얻는 근대식 목선을 제조하는 공장이었다. 이후부터 해방 이전까지 영도에 들어선 수리조선소와 조선관련 업체는 무려 60개소 정도였다. 해방 이후 다나카 조선소를 비롯해 대평동에 있던 조선소를 불하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체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대평동을 7~80년대 수리조선업의 메카로 성장시켰다.
깡깡이 안내센타,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한바퀴 돌아볼수 있는 선박 체험도 할수 있고 깡깡이 문화마을 안내도 유료로 받을 수 있는데 오늘은 안내센터가 쉬는 날이라 아쉬웠다.
신기한 선박 체험관, 깡깡이 마을의 물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인선을 활용해 다양한 예술가들의 상상이 더해진 입체적인 선박체험 공간이다.
깡깡이안내센터 바로 뒤편에 선박 체험관이 있다.
깡깡이 예술마을의 깡깡이는 영도구 대평동에서 녹슨 배의 표면을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깡깡이 마을은 부산의 풍부한 해양생활문화와 근대 조선 산업의 유산이 주는 지역성과 역사성을 살린 공간들을 조성하여 신기한 선박체험관, 깡깡이 바다버스, 깡깡이 마을 공작소 등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영도대교
영도대교가 조선의 아픈 근현대사를 상징하듯 이 일대는 근대 조선역사를 상징하는 곳으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시설, 산업시설, 제염, 조선소가 들어섰다
1934년 섬과 육지를 잇는 연륙교인 영도대교를 건설했다.
214m의 짧은 다리였지만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도개교로써 당시로는 파격적인 형태와 기능을 가진 교량 이었다.
당시 부산 인구가 16만명인데 영도 다리 준공식에 6만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자갈치 시장
영도는 신라시대에서 조선 말기 까지 말을 키우던 목마장으로 유명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시배지(1764)로 알려져 있다.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봉래산이 태평양으로 부터 불어오는 강풍을 막아준다.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하고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자 영도 연안부에 제염. 정미. 양조. 군수공장과 조선소를 집중 건설했다.
대풍포를 매립하고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조선소인 다나카 조선소가 조성된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부산을 병참기지로 활용했다
영도 100년 옛길에는 26개의 동판이 설치되어 있다.
대풍포를 파도와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풍을 평(平)으로 바꾸어 대평동이라 하였고 1970 - 1980년대 원양어업 붐을 타고 선박 조선업과 수리 조선업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대평동에서는 못고치는 배가 없다고 하였고 이곳에서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후 조선업의 불황으로 인구가 감소되고 대평동은 남항동으로 편입된다.
배에 매달려 작업하면서 냈던 깡깡 소리
영도깡강이예술마을 조형물 모습. 건너편 현대식 유리건물이 자갈치시장이다.
안쓰는 선박 자재를 이용해 마을 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벤치를 만들어 놓은 모습
깡깡이 마을공작소. 주말에만 운영이 되는 곳이라 평일에 갔을 땐 문닫혀있었다. 확실히 평일에 가니 방문객이 없어서 마을이 한산했다.
예전의 조선소 자리라는 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알린다. 하지만 망치를 두드리며 수리하던 사람은 사라지고 그 흔적만이 우릴 안내한다.
작품은 골목골목을 걷다보면 만난다.
독일 화가가 2017년에 10시간에 걸처 아파트 벽면에 그렸다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이 벽화의 주인공은 과거 녹슨 배의 표면을 걷어내기 위해 고된 망치질을 했던 깡깡이 아지매 이다. 마을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잘 표현해낸 작품이다.
남포동과 인접하여 있고, 도보로 영도대교를 건너 여행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괜찮은 편이다.
마을 곳곳에는 페인팅 아트, 키네틱 아트, 라이트 프로젝트 등 예술가들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고 대부분의 건물이 여전히 옛 대평동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독특한 경관을 보여주는 깡깡이 예술마을을 잘 보고 오늘 마지막 여행지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에서 송정해수욕장까지 걸어보며 즐길 힐링여행지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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