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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골에 숨겨진 문화재가 많은 고찰 구미 대둔사를 찾아서(경북 구미시 옥성면 산촌옥관로 691-78 ,옥성면 옥관리 산 94-1)사찰여행/경상도 2021. 9. 28. 22:05
깊은 골에 숨겨진 문화재가 많은 고찰 구미 대둔사를 찾아서
2021 . 9 . 28.
2021. 9 . 28 . 여전한 코로나 사태로 멀리는 못 움직이고 한국불교대학 목욕봉사팀 도반들 6명과 함께한 경북 구미지역 사찰인 대둔사와 수다사 사찰순례 힐링여행이다......
구미는 전자 도시, 산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알고 보면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선산군과 합친 도시다. 특히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고려와 조선을 이어오며 우리나라 중심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었고, 수도의 역할도 했으며, 때로는 전장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있고,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잠들어 있는 곳이 많다.
대둔사는 실로 오래만이다. 예전에 이곳을 방문 할때는 블로그를 하기 전이라 옛 모습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다.
이런 곳들을 찾아 스토리를 만들고, 구미 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고자 오늘 구미 북부 여행을 시작했다.
그 여행길에서 처음 만난 곳이 대둔사였다.
대둔사를 가려면 산길을 오르다 작은 계곡을 건너고 오르막을 올라야 된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깊은 산속에 숨어있다.
소가 누워있는 형태라는 복우산(伏牛山) 중턱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대둔사. 생각보다 깊은 곳이었고 차로 올라가는 길이 가팔랐다. 눈이 오면 차로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길이다.
조선 조정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일본의 재침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했다. 한편에서 왜란 중에 큰 활동을 한 사명대사 또한 나름대로 대비했는데 그중의 하나는 대둔사를 승병활동의 예비기지로 삼은 것이다.
사명대사는 1592년부터 1598년까지 계속된 임진왜란 · 정유재란이 평정된 후인 1606년(선조 39)에 승병 1만 명이 기거할 수 있도록 사찰을 다시 짓고 승군을 주둔시켰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나그네를 반겨주는 것은 멋스러운 대둔사 돌담과 멋진 소나무였다.
꽃이 지고 없지만 능소화는 기품이 있어 그런지 절집 마당에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 백일홍도 피어 있고, 접시꽃과 배롱나무꽃이 지는 곳에 매리골드가 꽃을 피우고 있다. 계절 꽃들이 시절을 따라 피고 지는 고요한 풍경이 마음에 들어왔다.
절집에 들어서면 멋스러운 고가 느낌 건물의 공양간과 요사가 먼저 보인다...
공양간 옆 요사채에 걸린 대든사 편액은 신축년
구미시 옥성면 산촌옥관로 691-78에 소재하는 대둔사는 신라 눌지왕 때 창건한 절로, 고려 고종 18년(1231)에 몽고족의 침입으로 소실된 것을 충렬왕 때 왕자인 왕소군(王小君)이 출가하여 다시 세웠다.
1606년(선조 39)사명대사가 중수하여 승군(僧軍)이 주둔하였으며 소속 암자가 10여개나 되었다고 한다. 복우산(伏牛山)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 사찰은 경내에 주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응진전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 2동이 있다.
사역에는 대웅전을 바라보면서 왼쪽으로는 요사채(스님들이 머물며 생활하는 건물), 오른쪽으로는 명부전과 응진전이 남아 있다.
대웅전응 바라보며 왼쪽의 2009년에 불사한 꽤 큰 선불당 요사이다....
선불장의 '복우산대둔사' 편액
대웅전을 바라보면서 왼쪽으로는 선불장 , 오른쪽으로는 명부전과 응진전이 있다.
대둔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선산 방향~
대둔사 중심 영역인 첫번째 보물 대웅전(보물 제1945호)과 명부전
대웅전(보물 제1945호)
대웅전은 자연석으로 중앙 계단을 쌓고 주춧돌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기단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으로 다듬은 기둥을 세워 상부 추녀를 받치게 했다. 벽체는 모두 흙벽으로 하고 바깥 벽면에 벽화를 그려놓았다.
대웅전은 높은 기단 위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막돌 덤벙주초(자연석을 그대로 쌓은 주춧돌) 위에 글겅이질한 두리기둥을 세웠다.
내외 4출목으로 짜여진 공포(栱包)는 조선 중기 이후에는 드물게 보이는 형식인데, 특히 귀포에서 기둥 안쪽으로 평방 위에 주두(柱頭)를 놓아 첨차를 짜 올리고 귀포의 행공첨차를 늘려 결구한 것은 흔치 않은 수법이다.
정면 창호는 어간에 3분합 빗꽃살을 드리우고, 둔테(기둥이 돌도록 구멍을 뚫어 대는 나무)에 문장부(門將夫: 화살촉 모양으로 돌기시킨 것)를 꽂아 여닫도록 하였으며 좌우 협간은 띠살문을 달았다.
화려한 우설
외부 공포는 초가지로 된 앙서(仰舌)로 윗몸에는 연꽃봉오리와 용머리 등을 초각하여 장식하였고 다소 빛이 바랜 듯한 현란하지 않은 단청의 색조는 더 한층 장중함을 자아낸다.
대웅전 공포와 활주(活柱)
지붕의 기단 네 모서리에는 팔각형 활주(活注, 추녀 밑을 받친 보조기둥)를 두어 상부 추녀를 받치게 했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는 강직하면서도 장식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17~18세기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 단청은 화려하기 보다는 소박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 내부에는 향 불단 건칠아미타여래 좌상 하품중생인의 좌우에 석가모니와 관세음보살 그리고 목조 경합(經盒) 및 원패(願牌)를 봉안하고 그 뒤로 1761년 조성한 아미타회상도가 걸려있다.
대둔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보물 제1633호)
대웅전 안의 아미타여래상은 삼베와 옻칠로 만들어졌으며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아미타불의 설법인을 결하고 결가부좌하고 있다. 불상은 높이가 105㎝이며, 무릎의 폭이 85㎝이다. 종이와 삼베를 몇 겹씩 발라서 옻칠을 하고 금박을 입힌 건칠 불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칠 불상이 고려 후기에 유행하는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 불상도 조성된 듯하다.
대둔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상호의 표정이나 신체 비례, 착의법, 수인 등에서 고려후기 불상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왼쪽 팔꿈치 윗부분의 옷주름 표현에서 고려 후기 불상 특유의 Ω형 주름이 보이지 않고, 전체적으로 옷주름이 간략하게 처리되었다는 점에서 고려말 조선초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시대 건칠여래상은 나주의 심향사 건칠여래상 등 주로 전라도 지역의 몇 예만이 확인됨으로써 경상도에 소재한 이 불상을 통하여 고려후기 건칠여래상 조성이 경상도에서도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 준다. 특히 건칠여래상으로서는 대형에 속하는 1m가 넘는 크기라는 점도 주목된다.
아미타여래 하품중생인의 좌우에 목조 경합(經盒)과 원패(願牌)를 봉안했는데 원패는 조선 후기의 것으로 향 불단 우측 원패에는 우순풍조민안락雨順風調民安樂으로 ‘비가 순조롭고 바람이 조화로우면 백성들이 편하고 즐겁다.’ 백성의 안락함을 기원하였다.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뒤에 걸려있는 1761년 조성한 아미타회상도
상부는 5량가구이나 우물천장인 소란반자로 가려졌고, 고주를 이용한 후불벽과 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한 수미단(須彌壇) 위 보궁에는 亞자형 평면의 지붕을 가진 7출목의 겹처마 닫집(唐家)으로 장엄하였다.
구미 대둔사의 두번째 보물로 대둔사 경장 (보물2117호)이다.... 경장(經欌)은 경전을 넣어두는 장으로 아미타부처님 좌우에 각 1개씩 2개의 경장이 있다.
대둔사 경장 (보물2117호) - 향 불단 우측 대둔사 경장
‘구미 대둔사 경장’은 제작시기, 제작자, 용도가 향 불단 우측 경장 뒷면과 윗면에 기재돼 있어 조선시대 불교 목공예품 가운데 시기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사례다.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인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국보 제328호)를 제외하면,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목공예품으로서는 처음으로 지정 예고되었다.
명문을 통해 인조 8년(1630)에 제작한 사실을 알려주는 불교목공예품으로 제작 시기뿐만 아니라 제작자 등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례로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규모도 크고 조형적으로도 우수해 조선후기 불교목공예 편년과 도상연구 기준이 될 수 있어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
대둔사 경장의 사천왕상
경장의 좌우 문비(門扉) 안쪽으로는 사천왕 선묘불화가 각각 두 구씩 배치돼 있다. 선묘불화는 붉은색 혹은 감색 바탕지에 금은 가루만을 사용해 선을 그리거나 새겨 표현한 것을 의미한다.
대둔사 경장 (보물2117호) - 향 불단 좌측 대둔사 경장
향 불단 좌측과 우측의 대둔사 경장
경장의 좌우 문비(門扉)에는 큰 연꽃과 모란이 조각돼 있으며 안쪽으로는 사천왕 선묘불화가 각 2구씩 배치됐다.
장식성이 화려하다기 보다는 단순하고 소박하며 연꽃, 모란이 있어 조각과 회화적인 요소가 잘 어우러졌다. 사천왕도는 원래부터 한 쌍으로 제작돼 대웅전 불단 좌우로 놓았을 것으로 보인다
대둔사 경장은 제작 당시 문양과 기법을 상실하지 않아 17세기 채색기법 연구와 선묘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사천왕도는 17세기 선묘불화 가운데 유일한 사례이다.
선묘불화는 붉은색 혹은 감색 바탕지에 금은 가루만을 사용해 선을 그리거나 새겨 표현한 것을 의미한다.
불단 향 우측 벽에는 근래에 조성한 신중탱이 있다...
우물천장의 구조와 내부 닫집의 섬세한 조각형태 그리고 건립 당시로 추정되는 단청문양이 잘 남아 있다.
보궁형 닫집과 우물천장
내외 4출목으로 짜여진 공포(栱包)는 조선 중기 이후에는 드물게 보이는 형식인데, 특히 귀포에서 기둥 안쪽으로 평방 위에 주두(柱頭)를 놓아 첨차를 짜 올리고 귀포의 행공첨차를 늘려 결구한 것은 흔치 않은 수법이다.
내부 공포의 살미 첨차는 완곡하게 다듬어 꽃 새김 하였고 다소 빛이 바랜 듯한 현란하지 않은 단청의 색조는 더한층 장중함을 자아낸다.
대웅전 안의 오래된 동종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 자료들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
아무리 찾아도 대둔사의 세번째 보물인 대둔사 삼장보살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종무소에 가서 물어보니 문화재청에서 가림막으로 가려 놓았다고 한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문화재청 자료로 대신한다.
대둔사 삼장보살도(보물 제2025호 )
이 그림은 1740년(영조16년)에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제석도(帝釋圖), 현왕도(現王圖),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와 함께 조성되어 대둔사에 봉안되었던 작품으로, 이 중 삼장보살도만 유일하게 전해오고 있다. 세로 238cm, 가로 279cm의 대규모 화면에 천장보살(天藏菩薩)과 지지보살(持地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등 세 보살의 모임을 묘사한 그림으로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높은 수미단(須彌壇) 위에 결가부좌 한 세 보살과 각각의 권속이 질서 정연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되었다. 상주 남장사 삼장보살도(1741년)와 함께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삼장보살도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 문화재청 -
함께한 우리도반 6명이 아침예불을 올린다...
정면 창호는 어간에 3분합 빗 꽃살을 드리우고, 둔테(기둥이 돌도록 구멍을 뚫어 대는 나무)에 문장부(門將夫: 화살촉 모양으로 돌기시킨 것)를 꽂아 여닫도록 하였으며 좌우 협간은 띠살문을 달았다.
자연스럽게 색이 바랜 듯 보이는 단청은 신비스러운 빛깔로 시선을 사로 잡는다. 어떤 그림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
어떤 물감이 이런 색을 표현할 수 있을까 ? 풍파를 겪은 세월이 만들어낸 보석이다.
통풍을 위해 설치된 나무 창문(우측 벽 첫 번째 문짝 위)
이곳 대웅전에서는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었다. 벽을 따라 돌아가며 그려진 그림은 하나하나 사연을 품고 있으며, 그림 속 주인공의 눈빛과 마추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대웅전 후면의 외부 벽화로 대부분의 절에는 심우도 벽화가 많은데 이곳의 벽화는 색다르다.
대웅전 후면 창호 가운데 기둥이 있는 창, 영쌍창이 고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측면에도 역시 문이 많다. 측면이 흔치 않은 가구형식이다.
향 대웅전 우측에는 명부전이 있다...
대웅전과 명부전의 지붕이 맞닿아 있다...
대웅전 바로 옆에 자리한 명부전은 근래에 지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이다. 창호는 띠살창으로 어칸은 2분합, 협칸은 1분합의 문을 달았다.
명부전 내부의 바닥은 마루를 깔았다.
두건을 머리에 두른 지장보살은 한 손에는 육환장을 한 손에는 여의주를 들고 있으며 가슴에는 화려한 영락 장식을 걸치고 있다. 좌우에는 도명존자, 무독귀왕 협시를 이루고 있다. 후불탱은 지장목각탱이다.
지장단에는 업경대 2구가 봉안되어 있어 전생의 자기를 바로 바라 볼 수 있도록 했다...
향 불단 우측의 모습이다...
명부전 내부에는 최근에 조성한 금동 지장보살좌상과 도명존자, 무독귀왕의 지장삼존상을 비롯하여 목조로 만든 시왕상 10위, 동자상 5위, 명부사자, 감제사자, 판관 2위, 금강역사 2위 등이 봉안되어 있다.
향 불단 좌측의 모습이다...
불단 위에는 청룡. 황룡과
천인이 좌우로 호위하고 있다...
명부전 외벽에는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벽화를 그렸다.
현재의 사역은 원래 대둔사의 암자인 청련암 자리이며 현재 자리에서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대둔사 옛 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대웅전과 명부전 우측으로는 응진전이 있다.
명부전과 응진전 사이 넓은 터에 모아진 석재들
좌측의 노주석으로 볼 수 있는 연화대좌 위에 올려져 있는 돌기둥과 그 밖의 파소뇐 석부재 등이 있다.
우측 마당 한켠에는 당간지주석이 있는데 이것은 1666년(현종7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당간지주석 측면에 "강희 5년 병오"라고 음각되어 있다.
대둔사 넓은 마당에는 온갓 꽃들이 피고 진다...
대웅전 북쪽 언덕에 남향한 전각 응진전도 건물이 아름답고 단청의 꽃 모양이 눈길을 끈다.
대둔사 응진전(龜尾 大屯寺 應眞殿)
응진전은 17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주심포계 맞배지붕 단층 목조건물이며 전면 3칸에 각각 띠살무늬 문짝을 설치하였다.
응진전 기단석과 주춧돌이 다채롭고 자연스럽다.
응진전 안에는 소조 석가여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중앙 본존을 비롯한 협시보살상은 모두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주벽에 돌려진 목조 불단상에는 16제자상과 동자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목각으로 모두 같은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삼존불 후면에 탱화가 있는데 하단에 1920년의 “삼존불개금칠성탱(三尊佛改金七星幀)”이라는 묵기가 있어서 불상의 개금불사를 알 수 있으나, 삼존불 우측 탱화를 비롯한 5폭의 탱화에는 묵기가 없어 조성 연대와 내력을 알 수 없다.
본존인 석가여래와 향 불단 우측의 미륵입상과 좌측의 관세음보살
향 불단 좌측
향 불단 우측
우물천정사이 좌우 대들보 위에는 용이 앉아 있다.
불단 우측의 청룡
불단 좌측의 청룡
응진전 내부 단청이 참 다채롭다...
응진전에서 바라본 대둔사 전경이다...
한때는 무수한 꽃을 피웠을 배룡나무와 꽃을 떨구는 초호류들...
다시 대웅전 마당에 서서 바라보는 대둔사 전경이다...
대웅전 옆 선불장 뒤 단 위에는 삼성각이 있다.
대둔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삼성각으로 향해본다...
삼성각 내부에는 근래에 조성된 중앙의 칠성탱을 중심으로 불단 좌측에는 산신을 우측에는 독성탱을 봉안하였다...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선불장과 요사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요사와 공양간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대웅전과 선불장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선불장은 그 규모가 컸다...
다시 마당으로 내려와서...
요사와 공양간을 지나고
깨끗한 해우소도 지나
다시 한번 절 아래 선산 방향을 한번 더 바라보고...
이곳으로 내려와
조금 이동하여 구미 대둔사 절 입구 부도전으로 향한다 ...
구미 대둔사 절 입구 부도전에는 좌측 성파대사비(龜尾 大屯寺 性波大師碑)와 2기의 조선 후기 석조부도가 있다.
성파대사비는 순조12년(1812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의 높이는 176㎝, 비신 높이 135㎝, 폭 63.5㎝, 두께 28.2㎝의 크기이며 자연석을 하대로 삼아 1매석의 비신이 있고 그 위에 방형의 덮개돌이 조각되었는데 비신과 덮개돌은 한 돌이다.
비신에는 상부에 횡서로 "성파대사비명(性波大師碑銘)"이라 새기고 초두에 "유명조선성파대사비명병서(有明朝鮮性波大師碑銘倂書)"라 종서하고 전 비문을 종으로 음각하였으며 진사 심능태가 비문을 지었는데 "숭정사임신칠월(崇禎四壬申七月)"이라는 기록이 있다.
중간의 부도 전면에 완화당탑(翫花堂塔)’이라는 명(銘)이 있는 완화당(翫花堂)의 부도와 오른쪽의 무명의 부도 1기로 중간쪽의 완화당탑은 석종형 부도로 기단에 귀부를 조성한 흔치 않은 조형이다. 뒷면의 조성시기로 추정되는 '가경(?) 무오' 명문으로 미루어 1798년 조성한 부도이며 오른쪽 무명의 부도는 주인공이 누군지 알수 없는 무명 부도로 사각의 방형지대석 중앙에 복련을 피웠고 탑신과 앙련을 일석으로 조성하였다. 탑신은 원형으로 상부가 좁아들었으며 위에 방형의 옥개석이 놓여 있다. 옆에 있는 비석이 성파 스님의 것이므로 성파 스님의 부도로 추측하기도 한다.
완화당부도의 지대석
자세히 보면 보물 아닌 것이 없다. 오래된 것은 시간을 품고 있기에 소중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소중하다.
구미 대둔사에서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알게 되고, 산사에서 느끼는 고즈넉함 속에 마음 또한 힐링 되는 시간이었다.
새롭게 정비된 절의 모습을 새롭게 기억하며 대둔사를 나선다...
물소리 청아한 깊은 골에 숨겨진 문화재가 많은 고찰 대둔사를 다시 찾아보고 나서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대둔사를 나와서 돌무지(구미시 옥성면 옥관리 939) 무인 잔디카페에서 점심식사도 하고 쉬어 가기로 한다.
‘돌무지’는 ‘돌무더기’의 방언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무료로 들러서 감상하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명품 볼거리가 될거 같은 그런 기분이든다...
안으로 들어가니 잔디밭도 잘 조성되어 있고 돌무지 가운데는 벼 농사도 한다.
아름답게 조성된 돌무지도 감상하고 잔디밭에서 준비해간 김밥과 차. 간식과 함께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
식사 후 잔디 밭 차 자리에서 송이차와 녹차도 마시면서....
차 한잔의 여유를 이곳에서 즐기니 이보다 더 좋은 카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돌무지’ 잔디밭에서 쉬어 다음 사찰 여행지 수다사로 길을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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