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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토지'의 배경지 하동 최참판댁(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66-7,악양면 평사리 483)여행방/경상도 2021. 3. 25. 10:16
소설 '토지'의 배경지 하동 최참판댁
2021. 3. 25.
2021. 3. 17 ~18 (1박 2일) 여전히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행해지는 가운데 지인과 셋이서 함께한 여수와 하동 여행으로
여행 2일 째날 2021. 3. 18은 여수의 숙소 근처를 아침 산책 후 이순신광장 근처 숙소 테디베이스 게스트하우스에서 체크 아웃 후 주변에 있는 고소 천사벽화마을 부터 보고 하동으로 이동해서 하동특화마을 금양가든에서 제첩정식으로 맛난 식사 후 화개장터와 소설 토지의 배경지 최참판댁 그리고 드넓은 평사리 들판과 산, 섬진강과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한산사 앞의 전망대와 한신사를 둘러보며 1박 2일의 여행을 마무리 하는 힐링 여행이었다...
3. 18. 여행 2일째 두 번째 여행은 경상남도 하동군과 전라남도 구례군과 광양시의 접경 지역에 있는 전통시장, 화개장터를 보고 나와서 오늘 세 번째 여행지 소설 '토지'의 배경지 최참판댁으로 이동해 본다...
드라마의 촬영장으로 만들어진 최참판댁과 주변 마을은 2002년 완성되었다. 지리산 능선의 완만한 자락 위에 자리하는 마을은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넓은 평야를 앞마당 삼는 넉넉함이 아름다운 곳이다. 관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이지만 그림처럼 아름답고 눈에 익숙한 모습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소설의 느낌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듯 살아 있는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경상남도 하동군과 전라남도 구례군과 광양시의 접경 지역에 있는 전통시장, 화개장터를 보고 나와서 소설 '토지'의 배경지 최참판댁으로 이동해 본다...
하동에는 벗나무가 꽃망울을 40%이상을 피우고 있었고 개나리는 만개해서 길손을 맞는다...
최참판댁 입구부터 매장이 많다...
소형 주차장은 많았는데 최대한 매표소 근처 주차장 까지 가서 주차한다... 주차장 무료 주차 ~
우리가 주차한 매표소 근처 소형 주차장이고 근처에 초가돔 건물의 흰벽을 하고 있는 화장실도 있다...
천연염색이나 말린 곶감, 감식초 이런걸 많이 판다....
매표소
관람 요금표는 이렇다....
코로나로 방문객은 무균소독실에 들어가서 소독을 하고 입장이 가능하다. 들어가면 여자 목소리로 방송이 나오는데 안내 방송이 끝나면 나가면 된다. 우리일행 3명이 다함께 저기 소독기안으로 통과 ~
매표 후 살소독실 통과해서 걸어가면 여러가지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눈앞에 쫙~펼쳐진다.
카페도 있다.
올라가는 길에는 대부분 판매점이 있는데,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서 구경하면서 올라갔다. 계속 가게들 밖에 안보여서 처음에 좀 당황했다...
한참 오르다 만나는 공동 우물
이 우물은 지금도 사용중인데 물맛이 좋다고 한다...
요거프레소도 있다.
오두막
최참판댁 아래의 동네의 초가집들
칠성이네와 용이네 집이다...
칠성이네 집
중간중간에 안내판이 있어서 길따라 올라가시면 최참판댁을 쉽게 찾을수 있다. 이곳이 대 지주였던 최참판댁 바깥마당이다.
하동군에는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다. 그중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옛 정취와 문학이 어우러진 곳이 하나 있다. 바로 박경리 선생의 작품 '토지'의 주 무대가 된 곳인 ‘최참판댁’이다. 최참판댁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었던 경남 하동 악양면 평사리에 위치하고 있다.
최참판댁은 소설 '토지'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살던 곳을 최대한으로 재현해 놓았다. 제일 큰 부자집인 최참판의 집부터 읍내 장터, 용이네와 강청댁, 물레방아 등 '토지' 촬영시의 세트를 잘 보존해 놓았다.
2001년에 준공 된 이후 꾸준한 관리가 이어지다 2006년 SBS 대하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으로 활용되었으며, 그 외에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예능에서의 세트장으로 활용되었다.
입구 왼쪽으로는 촬영했던 드라마와 영화 포스터가 있었는데, 정말 많이 촬영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참판댁 마당에서 보이는 평사리의 집들은 가파르지 않은 언덕길로 이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어 다니며 즐길 수가 있었다.
최참판댁 마당의 포토존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면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가 위치한 지명인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중국에 있는 지명을 따와서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다. 악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중에 소상팔경이 있으며 평사리에 위치한 동정호와 악양의 소상팔경은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풍경을 자아낸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 되었으며, 조선후기 우리민족의 생활모습을 재현해 놓은 토지세트장이 잘 조성되어 있고, 인근의 평사리 문학관도 좋은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다.
최참판댁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넓은 공간이 무척 인상 깊고 역시 양반이 살았던 집이라 이전에서 보던 집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마치 여각(옛날 여관) 같이 길게 이어진 행랑채의 바깥 모습이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있는 최참판댁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요 무대를 그대로 재현한 곳이다. <토지>는 1897년 추석부터 1945년 광복까지의 시간을 이어가며, 평사리에 5대째 군림하는 대지주 최 참판 일가와 소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박경리 선생은 이 작품을 25년에 걸쳐 완성했다.
평사리는 지리산 남부능선의 막내봉인 형제봉이 둘러싼 완만한 산자락 위에 자리한 마을이다.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펼쳐진 너른 악양벌을 앞마당으로 삼아 넉넉하고도 아름다운 곳이다.
최참판댁을 이루는 한옥들은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배치됐다. 주산인 신선봉에서 내려오는 중심맥의 중앙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맨 먼저 두었고, 그 다음으로 안방마님이 거처하는 안채를 배치했다. 양옆으로는 사랑채와 별당이 있다. 양을 뜻하는 좌청룡 방향(동쪽)에는 사랑채가, 음을 뜻하는 우백호 방향(서쪽)에는 <토지> 속 서희의 거처인 별당이 자리하고 있다.
별당 한쪽의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의 사상을 따르고 있다. 연못 한가운데 있는 섬은 둥글게 만들어 소나무를 심었고, 연못 가장자리는 사각형으로 한 것이다. 대문의 좌우에는 행랑채를 두었고,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쪽담을 만들어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했다.
다른 가옥에는 모두 땅을 상징하는 사각 기둥을 사용했으나, 사랑채만은 천원지방 사상을 모두 적용해 바깥 기둥은 원형으로 하고 안쪽 기둥은 네모지게 만들었다. 여기에 담긴 뜻은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누구나 언제라도 방문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변 지형지세를 풍수적으로 보면 지리산에서 내려온 관음봉(해발 1153m)에서 시작해 거사봉(1133m)·성제봉(1115m)·신선봉(586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음을 뜻하는 우백호를 만들며 최참판댁을 가까이서 감싸고 있다. 재물·지손(支孫)·딸·외손 등이 강하게 발복(운이 틔어서 복이 닥침)할 수 있는 형세로 판이 짜인 것이다. 그런데 거사봉에서 갈라진 또 다른 산줄기는 시루봉(993m)을 거쳐 멀리 칠성봉(891m)·구재봉(767m)·분지봉(528m)으로 이어지며 양을 뜻하는 좌청룡 줄기를 만들다가 섬진강을 만나서 멈춘다. 백호에 비하면 청룡의 어깨가 낮으니 아들에게 불리한 형세임을 알 수 있다. 소설의 내용과도 묘하게 들어맞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참판댁이 자리한 곳은 좋은 땅이다. 신선봉이 주산이 되어 대명당에 해당하는 너른 악양벌을 가슴에 품고 있고, 거사봉에서 발원한 악양천은 동남쪽에서 섬진강과 합치며 생기를 머금고 있다. 또 주작에 해당하는 남쪽 방향으로는 섬진강 너머 백운산 자락에 형성된 매봉·갈미봉·억불봉·불암산 등이 있어 대명당에 가득한 생기를 잘 갈무리하고 있다.
이런 풍수적 원리를 몰라도 된다. 최참판댁에 들어서서 악양벌을 내려다보면 누구든 이곳이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어수선하고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도 좋으니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행랑채 왼쪽 끝으로 문간채가 있다...
문간채 옆으로 중문채가 바라다 보인다...
문간채 벽면 한쪽의 박경리 선생 작가 연보가 붙어 있다...
최참판댁 문간채 외양간에는 소가, 닭장에는 닭이 실제로 있는 등 단순한 세트장을 넘어 활기가 돌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최참판댁 마당으로 나와 행랑채로 최참판댁의 얼굴인 솟을대문 대문간으로 들어간다...
솟을대문 대문간, 최참판댁 솟을대문에 들어서며 뒤돌아보면 너른 악양벌이 한눈에 들어온다.
솟을대문에 들어서며 바라본 문간채 방향의 행랑채
솟을대문에 들어서며 바라본 솟을대문 방향의 행랑채
행랑채 앞에서 바라본 중문채
안채의 부속건물로 사용된 중문채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자리잡고 잇다. 중문채에는 쌀광과 김치광. 장작광 등이 딸려 있으며 소규모의 곡식을 도정할 수 있는 디딜방아를 설치하기도 한다...
중문채 대문사이로 바라보이는 안채
중문채 쪽에서 바라본 문간채
문간채 앞의 우물
안채 오른쪽에 있는 별당채로 여기가 바로 서희가 살던 곳, 별당도 누각형태로 지어져 있어 넓은 악양벌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별당채 바로 앞에는 조그만 사각 연못도 조성되어 있다. 별당 뒤에는 담장에 조그만 수구문(?)을 만들어 뒷산의 물이 연못으로 흘러 들어 온다.
중문채 대문에서 바라본 안채, 여기가 안주인이 거처하는 안채 이다 .
안채의 굴뚝과 안채 뒤에 있는 장독대
집의 가장 뒤에 있는 사당 이다.
안채에서 사랑채로 통하는 협문
바깥 주인이 거주하는 사랑채
사랑채에도 누각 형태가 있다.
최참판댁 사랑채 마당에는 양반집에서만 심었다는 능소화가 두 그루가 있고 드넓은 악양벌판이 한눈에 들어 온다.
최참판댁 사랑채에서 보이는 섬진강과 악양면 평사리 일대의 풍경이 일품이다. 굽이치는 섬진강과 펼쳐진 들판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사랑채 뒤의 뒷채
사랑채 뒷마당에서 바라본 공연장 옆의 정자
뒷채에서 초당가는 길
초당가는 길에 보이는 공연장
초당이다...
이제는 최참판댁에서 나와 박경리 문학관으로 간다.
박경리 문학관 전경이다... 문학관의 규모로는 지상 1층 연면적 307.4㎡ 이며 기와 한식목구조 이다.
박경리 문학관 앞 박경리 작가의 원고지를 형상화한 조형물
문학관 마당에는 박경리 선생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마치 지금도 살아서 글을 읽으시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동상이지만 박경리 선생을 이렇게 라도 만날수 있게 되어서 기분은 좋다. 비록 2008년에 돌아가셨지만 그의 문학의 향기는 지금도 퍼지고 있는것이 바로 살아있는게 아닐까?
지리산의 형제봉 아래 넓은 평야 지대가 펼쳐지는 악양면 평사리에 소설 「토지」의 주 무대인 최참판댁 가옥과 연계하여 하동 및 지리산 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건립되었다.
고요하고 안정된 느낌의 건물 형태에 외부 주 마감재료로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산세에 적절히 어울리는 전통의 이미지를 충분히 반영하고 현대적 실내전시시설과 설비 및 여건을 완비한 전시관으로 박경리의 토지, 김동리의 역마를 비롯하여 하동 관련 문학작품을 수집, 전시, 보존하여 작가의 끊임없는 애정과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전시된 자료로는 박경리선생이 평소 사용하거나 아끼던 유품 41점과 각 출판사가 발행한 소설<토지> 전질, 초상화, 영상물, <토지> 속 인물지도 등이 전시되고 있다.
소설 속 세상은 가상이지만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 내가 겪어보지 않앗더라면 소설을 통해서 가늠 할 수 잇었다. 그래서 책은 읽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박경리선생은 1969년 유방암 투병 중 <토지> 원고를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하였으며, 1994년 탈고까지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딸이 병실에 쟈스민 향을 피워 주었다.
옥잠화 몇 송이도 쩍어다 주었다.
열아홉해 전 여름날, 잃어버린 한 쪽 가슴.
상처 달래려 했던가?
향기 높은 옥잠화 붕대 사이에 끼워 두었다.
치료실 시멘트 바닥에 시들은 옥잠화 떨어졌을 때
의사 보기 민망하여 얼굴 붉힌다.
꽃과 향기와 피... 북쪽 손님들 돌아가고
세상은 온통 허무했다... 잃어버린 한 쪽 내 가슴.
-박경리 시집 <우리들의 시간> 중에서-
이 책은 내가 한 권 한 권 읽고 돌려보고 했으니 더 감회가 새롭다.
진열장 안에는 평소에 쓰시던 돋보기와 안경 그리고 만년필이 전시되어 있는데,아직까지도 선생은 돋보기와 안경 그리고 만년필을 통하여 집필을 하고 계시는것 같다.
박경리 작가는 태어나고 자란 통영에 기념관이 있고 토지를 집필하며 머물렀던 원주에 토지 문학관이 있다. 그기고 대표적인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에도 문하관이 있다...
이 그림은 <토지> 인물 형상도인데 좌측 위로부터 강포수, 귀녀, 이상현, 임명희, 봉순, 송관수, 조준구, 오가타지로, 좌측 중간부터 우관스님, 김훈장, 이용, 임이네, 최치수, 최서희, 김길상, 별당아씨, 김환, 윤씨부인, 이상의, 좌측 아래부터 공월선, 주갑 의 순으로 그려졌다. 등장인물을 보니 정말 소설 <토지> 속으로 들어온것 같다.
소설 토지 연재본 마당 창간호 1981년 9월. 인간탐구(1) 박경리-'한은 힘이자 희망이지요...'
박경리선생은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성장하였는데, 진주여고 시절 친구가 하동 악양 조씨고택이 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주 조씨고택에 놀러 갔었는데 그때 이곳 평사리 들판을 눈여겨 보았을 테이다.
그후, 소설 <토지>탄생의 장소를 찾던 중 "만석꾼의 토지란 전라도 땅에나 있고 경상도 안에서 그만큼 광활한 토지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그래서 나는 평사리를 토지의 무대로 정했다"고 한다.
박경리 선생은 정작 죽음의 공포, 암이라는 병에 대한 불안은 가을 회복기에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은 세싱의 모든 생명, 나뭇잎을 흔들어 주는 바람까지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게 만들었으며, 땅에 대하여 땅은 사람뿐만 아니라 날짐승, 들짐승,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된다고 하였으며, 생명사상, 생명의 귀함을 주제로< 토지>를 집필하였다.
하동 악양을 배경으로 한 소설 <토지>가 발간된 책자를 전시하여 놓았으며, 벽면에는 평사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놓았다.
박경리선생이 그렸던 그 광활한 땅의 이야기는 지금도 하동 악양땅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최참판댁 안에 위치한 박경리문학관은 따로 입장료는 없다...
이제는 박경리문학관에서 나와
토지 장터로 간다.
토지장터로 내려가다 올려다본 박경리 문학관
토지장터가 보인다.
토지장터로 향한다...
토지장터도 지나 매표소 입구로 나간다...
매표소 입구 소형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1박2일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로 섬진강 풍광이 일품이고 악양벌의 너른 들판이 멋지게 내려다 보이는 한산사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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