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시대 국가제례인 가야진 용신제를 지내는 장소, 가야진사(경남도 민속자료 제7호)-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들길 43-62, 원동면 용당리 616-1여행방/경상도 2021. 3. 14. 14:14
신라시대 국가제례인 가야진 용신제를 지내는 장소, 가야진사(경남도 민속자료 제7호)
2021. 3. 14.
2021. 3. 11 . 여전히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행해지는 가운데 많은 사람이 움직일 수는 없고 불교대 도반과 둘이서만 함께한 김해와 가까운 양산 물금. 원동 여행으로 먼저 용화사를 들러 부처님을 뵈옵고 오봉산 임경대에 올라 낙동강도 굽어 내려다 보고 순매원 들러 매화보고 원동미나리 천국에서 미나리와 삼겹살로 맛난 점심을 먹고 가야진사와 천태사.신흥사를 차례로 둘러보며 경주로 들어와서 삼릉근처의 우리밀 칼국수로 저녁 먹으며 오늘 여행 마무리하는 힐링여행이었다...
조용히 봄이 피어나고 있던 순매원, 순매원이 내려다보이고 낙동강 가로 이어지는 기찻길이 정말 명소로서 손색이 없던 기찻길 옆 매화원인 세 번째 여행지 순매원을 나와
청정 무공해 방식으로 재배해 맛과 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양산의 ‘원동 청정 미나리’가 연두빛 봄향기를 머금고 새봄과 함께 출하준비에 한창인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는 원동면 배내골의 풍부한 지하수와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재배되어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원동청정미나리는 깨끗한 수자원이 풍부한 지역 특성을 이용해 밤에는 물을 대고 낮에는 물을 빼는 방식과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무공해 방식으로 재배하는 것이 특징이라는데 우리도 원동미나리와 삼겹살로 맛나게 점심 식사 후 오늘 네 번째 여행지 가야진 용신제를 지내는 용당리 가야진사로 향해본다...
철길 아래 낙동강변으로 가야진사 입구를 들어선다...
너른 주차장
가야진사 주변에는 낙동강변에 넓은 공원을 조성하였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전경으로 가야진사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가야진사 정비 때 강변에 데크를 설치해 접근하기 좋다. 강물이 바다 같다...
신라가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왕래하던 나루터 가야진. 맞은편에 용산이 자리한다.
강변의 나루터는 가야진(伽倻津). 눌지왕 때 신라가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왕래하던 나루터라 한다. 강 건너 맞은편에는 자그마한 용산이 있다. 용산 밑에는 낙동강에서 가장 깊다는 용소(龍沼)가 있는데 거기에는 황룡 한 마리와 청룡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가야진 용신제를 지내는 용당리 가야진사 앞 낙동강변에서는 낙동강 해넘이를 볼 수 있다.
강의 신에게 안녕을 기원하던 가야진사는 경남도 민속자료 제7호로 신라시대 국가제례인 가야진 용신제를 지내는 장소이다.
국가차원의 제례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곳은 가야진사가 전국에서 유일하다.
나루터 앞에는 가야진의 용신(龍神)에게 제를 올리는 사당 건물인 ‘가야진사(伽倻津祠)’가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강의 범람을 막고 낙동강을 통한 순조로운 뱃길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왔던 곳이다.
양산 사람들은 이 사당이 신라 초기에 창건되었으며 신라가 가야와 백제를 방비하고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천지신명께 제사를 드린 곳으로 알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지금의 한강, 금강, 포항의 곡강천 등과 함께 신라가 국가의 주요 4대 강에 제사 지냈던 ‘사독(四瀆)’의 하나로 가야진에서 국가제례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사독의 하나로 받들어져 매년 나라에서 향축(香祝)과 칙사(勅使)를 보내 국가의식으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가야진사는 나루터 신을 모시고 있는 제당으로 신라가 가야를 정벌할 때 왕래하던 나루터가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건조연대를 정확하게 알 길은 없으나, 현재의 사당은 조선 태종 6년인 1406년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
상량에 의하면 인조 22년인 1644년에 개조하였고 숙종 34년인 1708년에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 ‘가야진사’의 기록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 성종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당은 1935년 하천 정리 때 용당리 비석골 산기슭으로 옮겨졌으나 1965년 즈음에 원위치인 지금의 자리로 돌아왔다. 사당이 자리한 땅은 뒤쪽의 천태산(天台山)과 강 건너 용산(龍山)을 잇는 중간 위치로 소위 ‘땅의 기운’이 모이는 지점이라고 한다.
이 일대는 2010년에 발굴되었는데, 현재의 가야진사 서쪽에서 2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추정되며 건물지 내부에서는 제사에 사용되던 다양한 분청사기 제기들이 출토되었다. 사당의 왼쪽 깬 돌이 깔려 있는 땅이 옛 건물지다. 지금의 사당은 옛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천제단의 동서남북에는 홍살문이 서 있다. 그 내부가 청정하고 신령스러운 공간임을 상징한다. 홍살문 남문은 낙동강과 용산을 향해 열려 있고 홍살문 북문은 가야진사를 향해 열려 있다.
가야진사. 사당의 정면 앞쪽에 천제단이 위치하고 뒤쪽으로 천태산이 솟아 있다.
조선시대 1788년에 편찬된 ‘춘관통고’의 기록 자료를 토대로 2011년 복원한 것이다. 제단의 너비는 690㎝, 높이는 81㎝, 사방에 계단이 각 1개씩 배치되어 있다.
나라를 잃자 24일간 단식으로 순국한 양산군수 이만도 불망비, 양산군수 이만도를 기리다....
가야진사 외삼문 왼쪽 담벼락에는 조선 후기 양산군수를 지낸 이만도의 불망비가 서있다. 그는 퇴계 이황의 후손으로 1876년 양산군수를 지내면서 구휼미를 풀어 많은 백성들을 구해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고향인 안동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사형하라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으며, 1910년 나라를 빼앗기자 24일간의 단식으로 순국하였다.
불망비는 고종 17년인 1880년에 세워졌다.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옛날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용신의 사당 앞에 자리한 불망비가 이상스러웠지만 안내문을 읽어보니 납득이 된다. 군수 이만도는 실로 공무원 역사의 신이 아닌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세종 때 황룡이 물속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마냥 전설 같은 사람도 언젠가는 문득 진짜로 생겨날지 모른다....
나루터 앞에는 가야진의 용신(龍神)에게 제를 올리는 사당인 ‘가야진사(伽倻津祠)’ 외삼문인 ‘상경문(尙敬門)’ 이 있다.
외삼문인 ‘상경문(尙敬門)’을 지나면 정면 3칸 규모의 ‘용산재(龍山齋)’가 자리하고
다시 내삼문인 ‘삼용문(三龍門)’을 지나야 ‘가야진사’ 현판이 걸린 사당에 닿는다.
정면 1칸 옆면 1칸 규모인 작은 사당 안에는 ‘가야진지신(伽倻津之神)’이라 적힌 위패가 있다고 한다...
내부이는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는 제상이 있고 그 위에 두 마리 청룡과 한 마리 황룡이 엉켜 있는 ‘화룡도’ 조각 그림이 걸려 있다고..... 청룡은 암컷이고 황룡은 수컷으로 청룡 중 한 마리는 첩용이라고 한다.
‘가야진사(伽倻津祠)’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담장 너머로만 기웃거려 본다...
오른쪽의 정자는 칙사영접소라 한다.
가야진사 전수관 앞에서 바라본 가야진사
가야진사 좌측에는 가야진사 전수관이 깨끗하게 세워져 있는데 거기도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가야진사 전수관 앞의 용신상
가야진 용의 전설가야진사에는 그리스 신들만큼이나 인간적인 용 신설화가 있다.
옛날 양주 도독부의 한 전령이 공문서를 가지고 대구로 가던 길에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날 밤 꿈에 용 한 마리가 나타나 남편용이 첩만을 사랑하고 자기를 멀리하니 첩용을 죽여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한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전령은 다음날 첩용을 죽이기 위해 용소에 갔는데, 실수로 남편용을 죽이고 만다. 본처용은 슬피 울며 전령을 태우고 용궁으로 갔다고 한다. 그 후 마을에는 재앙이 그치지 않았는데, 용과 전령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봄·가을마다 돼지를 잡아 용소에 던지며 제사를 지내니 재앙이 그쳤다 한다. 제관이 된 양산군수의 권한은 막강했으며, 봉로(奉爐)로 뽑힌 인근 지역의 수령들은 군수의 명으로 향로에 불을 많이 담으면 손이 타더라도 땅에 놓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해마다 5월이면 낙동강의 용신에게 제례를 올리는 ‘가야진용신제(伽倻津龍神祭)’가 봉행된다. 제사 때에는 술잔 3개를 올리고 메, 탕, 나물 등의 제수도 반드시 3그릇씩 마련한다. 그리고 지금도 군수나 면장이 제관이 되어 제례를 주관한다.
가야진사는 민속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되고 있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여름철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이 일대는 2010년에 발굴되었는데, 현재의 가야진사 서쪽에서 2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추정되며 건물지 내부에서는 제사에 사용되던 다양한 분청사기 제기들이 출토되었다. 사당의 왼쪽 깬 돌이 깔려 있는 땅이 옛 건물지다. 지금의 사당은 옛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낙동 강변에 위치한 가야진사 주변은 넓은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고
양산 원동지역에 많은 매화나무를 이곳에도 많이 심어 두었다...
공원 뒷편으로는 기차도 자주 지나간다...
공원 한쪽의 용신신화 테마 광장에는
3마리의 용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가야진사 넓은 공원을 한참 산책하며 점심에 많이 먹은 원동미나리와 삼겹살 구이로 맛있게 먹어 부른 배를 좀 소화 식히다가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그리스 신화 못잖은 龍들의 사랑· 비극이 벌어진 곳, 나루터신(津神)을 모시고 있는 제당 가야진사(경상남도 민속자료 제7호)를 충분히 보고 이제 오늘 다섯번째 여행지인 천태사로 향해본다....
.
.
.
'여행방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설 '토지'의 배경지 하동 최참판댁(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66-7,악양면 평사리 483) (0) 2021.03.25 하동 화개장터(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로 15, 화개면 탑리 726-46) (0) 2021.03.24 기찻길과 어우러진 매화가 너무나 예쁜 곳, 양산 순매원(경남 양산시 원동면 원동로 1421, 원동면 원리 1102-1) (0) 2021.03.14 양산 오봉산 (0) 2021.03.13 포항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 선바우 길(포항시 남구 동해면) (0) 2021.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