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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단보와 생송리 마애보살(경북 의성군 생송리)
    여행방/경상도 2019. 11. 19. 11:30

    낙단보와 생송리 마애보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432) 

      

      

    2019.     11.    19. 

      

      

    2019.   11.   16.  대구여동생이랑 고향 동네 엄마산소에 모이기로 한 날,   일찍 출발해서 산소 가기 전에  관수루, 낙단보와 생송리 마애보살 조사상을  들러본 후 동생들과 시간 마추어 도착한 엄마 산소에서 할아버지.할머니께 인사드리고 그리고 친정 엄마께도 인사드린다.   그리고 안계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 같이 먹으며 편안히 쉬다가 14:00에  떠나 각자의 곳으로 돌아가며  나는 다시 금성면의 탑리 5층석탑과 인근 금성면의 사찰 수성사를  바삐 둘러볼수 있는 시간이었다...

     

    먼저 엄마 산소 가기 전에 들러본 경북 의성군 단밀면에 있는 깎아지른 벼랑 위의 울창한 솔숲 속에 들어선 누각 관수루를 둘러보고 바로 인근의 낙단보와 생송리 마애보살을 보러 간다.

     




     

    관수루에서 낙단보는 바로 인근에 있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 제32공구(구미·상주·의성) 사업의 하나로 20091123일 국토 해양부 고시 제2009-1117호에 따라 건립 공사가 시작되었다. 낙단보의 경관은 자연은 이롭게, 사람들은 즐거운, 생명이 유익한 생태 환경 조성이라는 주제의 이락지천(利樂之天)’을 콘셉트로 설계되었다외형은 낙동강 3대 정자 중 하나인 관수루(觀水樓)의 처마를 모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북도 구미시 세 지역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융합되고 사람이 어우러지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연출하도록 했다.

    총 연장 286m(고정보 144.4m, 가동보 141.6m), 높이 11.5m, 저수 용량 3,430만 톤의 친환경 다기능 보로 조성되어 있다. 1,500급의 소 수력 발전소 2기가 설치되어 연간 1,472h의 전기를 생산한다. 이외에 연장 141.6m 규모의 공도교, 자연형 수로와 콘크리트 블록 조립형인 아이스 하버식[Ice Harbor, Fishway]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어도가 설치되어 있다.








    연간 1472Kwh의 전력을 생산해서 1만 3천여명이 1년간 사용하는 전기를 만들어내는 곳이 낙단보라 한다. 유류로 대체한다면 2만5천 배럴이고, 이산화탄소 저감량이 9천 7백톤이라고 한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을 따지면 화수분에 가까운 시설물이다.  사람의 편의에 따라 물길을 바꾸어야 하는 현대과학의 아이러니를 감당해야 하는 건 온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낙단보 주차장에서 바라본 조형물





    낙단보 주차장에서 바라본 낙단보홍보관





    물을 막아 불을 만들고 불을 피워서 물을 끌어들이는 삶의 순환고리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원리를 따라가자면 물이 전기를 만들어(수력발전) 불이되고, 불이 전기를 만들어(화력발전) 물을 끌어 올리는 힘이 되는 것, 이 어려운 과학의 힘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인간과 자연의 순환과 교감을 과학과 문화라는 만만한 단어를 찾아내어 뭉뚱그려 말할 뿐이다.








    낙단보 황보관 1층의 낙단보 조감도이다.








    보를 건설하면서 해방되지 못한 물은 탁류가 되고 홍수가 나야만 비로소 물은 맑아질 것이다. 본래의 빛을 잃은 물은 이미 자기 길을 버린 지 오랜 듯하다. 그 물길 따라 꽃들은 속절없이 피고 진다. 얼마를 더 흘러야 물을 비로소 제 빛과 길을 찾아 갈 수 있을까? 혁신을 현실의 최고 과제로 외치는 세상에 물도 강도 혁신이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해방되지 못한 강은 안으로 멍들어 있다.








    낙단보 위로 강물이 빚어 보내는 바람은 서늘하다잔물결 위를 스치는 바람은 냉기를 머금고 부채질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위에서 무력해 진다.   나는 물과 불의 내통으로 만들어 지는 전기의 힘을 과학이란 이름으로 증명해 내지 못하는 무지함이 참 부끄럽다.   오늘밤도  낙동강 수변에 관수루의 그윽한 불빛이 내려앉으면마애부처님이 지나는 이들의 가슴에 작은 등불 하나씩을 켜 줄 것이다.









    낙단보 홍보관 마당 끝에 자리한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마애 부처님의 미소를 흉내 내고 합장을 풀다보면 바로 옆의 낙단보에 저절로 눈이 간다.
    낙단보 덕분에 마애사 부처님이 우리 곁을 다시 찾았듯이 낙단보와 마애부처님은 낙동강나루의 오랜 도반이다. 아마 앞으로도 인간의 역사가 스러지지 않는 한 그럴 것이다. 이곳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앞세워 사람살이의 영화를 추구하는 부처님과 오직 과학적인 원리를 이용해서 인간의 편리만을 추구하는 현대과학이 공존하는 지점이다. 정신과 물질이 공존하며 상생하는 원리를 증명해 보이는 자연과 과학의 교집합 지대이다.








    마애보살좌상 주변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마애사가 자리하고 있다.  마애사 요사





    마애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고은사의 말사로 등록되어 있다.




















    낙단보 우측에 위치한 고려 시대의 마애 보살 좌상의 전경이다.








    화강암 자연 암벽에 선각으로 새겨져 있다.





    마애보살좌상은 부산지방 국토관리청이 시행하고 있는 낙동강 살리기 사업 제32공구 낙단보 통합관리센터 부지를 조성하던 중 발견되었다.


    이 상은 가로 폭이 다소 넓은 편평한 바위 면에 얕은 부조로 새긴 보살 좌상으로, 머리에는 삼산형의 연화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손으로 꽃을 잡고 활짝 핀 연꽃 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보관은 3개의 꽃잎이 피어나듯 표현한 삼산형(三山形)의 연화 보관 형태이며, 보관의 표면에는 아무런 표식과 장식이 없다. 보관 아래로는 동글동글한 보발이, 어깨 위로는 길게 드리워진 보발 자락이 표현되었다. 이러한 보발 표현은 936년경의 논산 개태사지 석조보살입상에서도 확인된다.


    한편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고 곳곳에 쪼아 내다 그만둔 흔적이 보이며 두광 좌측 편에는 새기다 만 화염이 확인된다. 두 겹의 원으로 두광·신광을 의도하고 그 주변을 화염으로 처리하려고 한 것은 하남 교산리 마애여래입상이나 고령 개포동 석조보살좌상의 광배와도 비교된다.


    턱 선을 네모나게 굴린 방형의 얼굴에는 이목구비를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특히 돌출된 이마, 눈꼬리 쪽으로 축 처진 눈썹, 버들잎 모양의 긴 눈, 방형의 낮은 코, 도톰하게 처리한 입술 등에서 인간미가 넘쳐난다. 목에는 두 겹 반원형의 독특한 삼도가 표현되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으로 연꽃 줄기를 잡고 있다. 연 줄기는 위로 올라가면서 연잎 부근에서 다시 두 가닥으로 갈라져 아래쪽에는 연봉이, 위쪽에는 만개한 연꽃이 표현되었다. 불신에는 옷 주름을 표현하지 않았고, 신체에 비해 팔은 왜소하게 처리하였다. 지물을 잡은 오른손은 사실적이고 섬려하게 표현한 반면, 왼손은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하였다. 어깨 폭에 비해 무릎 폭은 다소 좁은 편이며, 왼발 위를 오른발이 포갠 길상좌를 보여준다. 연화좌는 중앙의 보주형의 연꽃잎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쳤으나 생동감이 떨어져 도식적이다.


    이 마애보살좌상에 보이는 삼산형의 보관, 도드라지게 표현한 눈··입 등에서 살펴지는 개성 있는 상호(相好), 뼈대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게 처리한 팔의 곡선, 의도된 듯 과감하게 생략한 착의 형식, 그리고 평면적이면서도 도식적인 연화 대좌, 원형의 두광·신광의 표현, 쪼아낸 조각 수법 등은 977(고려, 경종 2)에 중수된 경기도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보물 제981)이나 985(고려, 성종 4)에 제작된 고령 개포동 마애보살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8), 동화사 염불암 마애보살유희좌상(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 등과 양식적으로 상통한다. 이 마애보살상은 비록 세부의 표현에서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지물을 잡은 손의 형태라든가 얼굴의 네모난 윤곽 등에서 981(고려, 경종 6)에 조성된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좌상(보물 제982)이나 평양 영명사 미륵보살좌상, 대구 동화사 염불암 마애보살상과 모든 면에서 유사하다. 따라서 이 보살상도 장암리 마애보살상과 비슷한 시기인 10세기 후반이나 늦어도 11세기 초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을 바라보는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로는 봉화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 산청 도전리 마애불상군,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 충주 창동리 마애여래입상 등이 있다. 이러한 불상들이 조성된 장소는 오랜 시간 동안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곳이다. 삶의 터전인 강을 따라 펼쳐진 나지막한 구릉의 절벽은 당시 불교문화와 산악숭배 신앙이 융합된 장소로서 그 지역민들의 공덕 신앙을 표출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 예로부터 신성시되던 이곳에 불상을 새겨 마을의 수호와 강을 건너 왕래하던 그들의 안전과 수명장수를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이 마애보살상은 오랜 세월 땅속에 매몰되어 있어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이나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 대구 염불암 마애보살좌상 등 고려 전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양식과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뿐만 아니라 낙동강변에 위치하여 고려 전기의 수운(水運)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불상이다.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 마애 선각 관음 보살 좌상인 것으로 여겨진다. 10세기 후반 경 의성 생송리의 낙동강 나루터를 안전하게 건너기 위한 기원을 담아 지역의 장인이 조성한 관음 보살 좌상으로 보인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도 방문하셨다.














    마애사는 비구니 스님이신 원종스님이 사찰을 지키고 계신다.





     마애사에서 바라본 낙단보











    멀리 낙동강 위로 상주-안동 고속도로가 보인다.









    이렇게 낙동강은 말없이 유윻히 흐르는데 그위에 걸쳐진 것들 낙단보,  낙단교,  상주-안동 고속 도로 등 주변 여건은 많이도 변했다...

    내고향 의성 단밀이 가끔은 생뚱 맞고 아릴적 추억이 퇴색되어 지는 기분 ?

    언제나 과거는 뒤안길로 그리고 새로운 역사는 계속 쓰여진 것...  그래서 그냥 담담한 기분으로 낙동강을 굽어보다가 다시 정신을 수습하고 엄마 산소로 길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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