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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정나루터 벼랑 위의 관수루여행방/경상도 2019. 11. 19. 09:24
낙정나루터 벼랑 위의 관수루
2019. 11. 19.
2019. 11. 16. 대구여동생이랑 고향 동네 엄마산소에 모이기로 한 날, 일찍 출발해서 산소 가기 전에 관수루, 낙단보와 생송리 마애보살 조사상을 들러본 후 동생들과 시간 마추어 도착한 엄마 산소에서 할아버지.할머니께 인사드리고 그리고 친정 엄마께도 인사드린다. 그리고 안계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 같이 먹으며 편안히 쉬다가 14:00에 떠나 각자의 곳으로 돌아가며 나는 다시 금성면의 탑리 5층석탑과 인근 금성면의 사찰 수성사를 바삐 둘러볼수 있는 시간이었다...
먼저 엄마 산소 가기 전에 들러본 경북 의성군 단밀면에 있는 의성군 단밀면 관수루. 깎아지른 벼랑 위의 울창한 솔숲 속에 들어선 누각이 절경이다.
의성군 단밀면 관수루. 깎아지른 벼랑 위의 울창한 솔숲 속에 들어선 누각이 절경이다. 모든 글이 그렇듯, 시 또한 쓰는 순간 시인을 벗어나 독자를 향한다. 수백 년 전 시인의 노래가 오늘날 독자에게 '자연과 인생의 초대장'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열섬의 도시에 염증을 더해가는 어느 날, 선인들의 시심이 흐르는 산천과 마을로 '한시 기행'을 떠나 보자. 찌든 일상에 파묻혀 시들어 버린 우리의 빛나는 감성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관수루'는 낙동나루 위에 있는 누각이다. 관수루는 안동 영호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낙동강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양도학 공적비
1874년(고종 11)에 넘어져 유실된 관수루를 1889년 양도학의 특지로 복원함을 기린 공적비
고려 중엽에 세워진 이 누각은 1874년 물난리로 유실됐으나 1990년 지역민들이 힘을 모아 복원했다. 물길이 넓으면 주변의 산수 역시 웅장하고 수려한 법. 낙동나루와 관수루 일대의 풍광은 실로 빼어나다. 수십 m 높이의 깎아지른 벼랑이 수백 m나 병풍처럼 펼쳐졌고, 그 위에 날아갈 듯 우아한 지붕을 인 관수루가 자리 잡아 낙동강의 유장한 흐름을 굽어보고 있다.
고려 때 낙정나루터 서안(西岸)에 건립하였던 것을 조선 초기에 나루터 동안(東岸)으로 이건하여 5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는데, 1874년에 유실된 후 빈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8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복원된 관수루는 팔작기와지붕을 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이다.
누하층(樓下層)은 모두 개방시키고, 상층(上層)에는 통칸(通間)으로 처리하여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마루의 4면에는 계자각(鷄子脚)을 세워 헌함(軒檻)을 둘렀다. 가구는 5량가의 이익공(二翼工)집이며, 처마는 겹처마이다.천년의 통로 ‘낙정나루터에 가면...’ 관수루가 있다. 의성의 서쪽 끝 단밀면. 낙정마을은 너른 낙동강을 향해 곶처럼 자리한다. 강의 저편은 상주의 낙동면 낙동리다. 1986년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이 강에는 나루가 있었다.
낙정 나루다. 작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던 시절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80년대 중반까지 큰 거룻배는 넷 혹은 다섯의 장정이 묵직한 노를 저었고 버스와 마차, 경운기와 자전거 따위를 가득 싣고 강을 오갔다. 나루 앞에는 밥집과 술집이 쭉 늘어서 있었고 색시집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 오래지도 않은데 너무 까마득하다.낙단교 바로 옆에는 수십m 높이의 깎아지른 벼랑이 솟아올라 수백m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 위에 잘 생긴 누각 관수루(觀水樓)가 낙동강의 유장한 흐름을 굽어보며 앉아 있다.
관수루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정취를 즐긴다’는 뜻으로 낙동강변의 3대 누각 중 하나로 꼽힌다. 정자에 오르면 낙동강은 물론 의성, 상주, 구미 세 고을의 주름진 산과 드넓은 들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관수루는 고려 중엽에 세워졌다 한다.
누각 안에는 이황, 주세붕, 김종직, 김일손 등 조선의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낙동강을 노래한 시 열 편이 걸려 있다. 관수루. 물을 보는 정자. 이곳에서 김종직은 물 대신 사람들을 보았다. 그 가 보았던 모습은 그가 죽고, 연산군에 의해 다시 한 번 죽은 후에도 오래 반복되었을 것이다. 관수루는 긴 시간 동안 긴 길 걸어 나루에 도착한 고단하고 가난한 이들을 품어주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후 관수루는 전쟁으로 핏물이 되어 흐르는 강도 보았을 것이다. 줄 잇던 행인이 끊어지고, 다리가 놓이고, 나루터가 없어지고,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것도 관수루는 보았다.
군위.의성의 물을 모아 흐르는 위천도 여기에서 상류5리 지점인 구천에서 합류가 된다.
강 건너편은 상주시 낙동면이고 구미시도 이웃하여 서로가 건너다보는 곳에서 세 고을이 손을 맞잡은 듯 가깝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먼 옛날부터 우리의 역사에는 수많은 처참한 전쟁이 있었는가 하면 남북 내왕의 길목으로 행인이 줄을 이었다. 관원의 행차가 수없이 오르내리고 청운의 큰 뜻을 품고 서울을 찾아가던 과거길 선비도 수없이 많았다. 절경이 아름답고 시인 묵객이 즐겨찾는 곳이며 조령을 넘는 선비들이 반드시 걸음을 멈추었다는 명루이다. 이는 안동의 영호루,밀양의 영남루와 더불어 낙동강 삼대 누각의 하나로 유호인,김종직,김인손,권오복, 주세붕, 이황, 권상 등 수많은 선비들이 명문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관수루(觀水樓)
흐르는 세월 따라 강이 흐르고 그 강물 따라 해가 지고 별이 돋고 달이 뜬다.
소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여 멀리 흘러가는 강물로 떠나보내는 의성의 관문이 관수루이다. 이곳에서 상주와 의성을 넘나들던 시인 묵객들이 시 한 수 쯤 꼭 읊어보고 쉬어갔으리라. 노 저어 강나루를 건너던 사공들이 등골에 땀을 식히며 한자락 노랫가락을 뽑아내며 팔쉼을 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강은 관수루가 지키고 관수루는 늙은 소나무가 지키고 있다. 발치에서는 마애부처님이 강나루를 지키고 있고, 오른쪽에는 낙단보가 내려다 보이고 왼쪽으로 낙동교가 보이는 곳에 서 있는 관수루는 소나무 몇 그루와 함께 의연하다.관수루(觀水樓)는 영남의 물동량이 집하되고, 문경새재와 이화령을 통해 한양을 가던 낙동나루터의 수많은 내왕객들의 발길이 머문 곳이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쉼 없이 흘러온 강물이 머물다가는 곳, 낙단교와 낙정양수장 사이에 있던 누각이다. 고려시대에 세워져 1734년(영조 10년)에 상주 목사 김태연(金泰衍)이 다시 세워 현판하고 1843년(현종 9년)에 다시 수리하였다. 1874년(고종 11년)에 넘어져 유실되었으나 1889년 양도학(梁道鶴)의 특지로 복원되었다.
관수루에는 고려조(高麗朝)의 이규보(李奎報, 1168~1241)를 대표로, 김종직(金宗直, 1431~1492), 김일손(金馹孫, 1464~1498), 이황(李滉, 1501~1570) 등이 지은 15편의 시가와 권상일(權相一, 1679~1760), 유주목(柳疇睦, 1813∼1872) 등의 중수기문이 있었다. 후에 신현택(申鉉澤) 군수의 중건기문, 신사 하서룡(進士 河瑞龍)의 상량문, 강재기(康在璣)의 중건상량문이 추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상주, 문경, 구미, 예천, 군위 일대의 18개 역참을 연결해주는 교통의 요지였던 낙정나루. 이제 관수루는 터만 남은 나루터를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다.
누각 안에 걸려 있는 고려의 명신이자 대학자였던 이규보(1168~1241)의 제영시. 누각을 처음 지었을 때의 헌시(獻詩)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낙단교
지금 484m 길이의 낙단교가 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 다리가 놓이는 데는 무려 14년이 걸렸다. ‘14년간의 가슴 앓이’라 해도 좋다. 선거 때만 되면 ‘다리를 반드시 완공 하겠다’는 공약이 쏟아졌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또 그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리는 1986년 8월 완공되었다.
최초로 공약한 지 14년 만에, 교각 6개만 덩그러니 세운 지 11년 만이었다. 다리는 낙동면과 단밀면의 이름을 합해 ‘낙단교’라 이름 지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선거다리’라 불렀다.
관수루는 김종직의 시처럼 여전히 넉넉함으로 객을 맞이 하고 보낸다. 낙단교는 낙단대교가 건설되면서 오가는 차량이 그리 많지 않지만, 여유로운 풍경과 옛 나루터의 기억을 소환하는 데는 유용하다. 강은 그 긴 시간과 그 많은 기억에도 여전히 ‘한 점 꿰맨 자국’ 없이 거대하게 말갛다. 아니 어쩌면 저기에 보이는 저 낙단보가 꿰맨 한 점 자국일지도 모르겠다.관수루에서 바라본 낙동강
낙동강이 제대로 보이네....
구산 박선생 유적비
엄마산소 가다가 스치면서 들러본 관수루에서 잠시 쉬어 낙단보도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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