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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의 사원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2016. 6. 16. 21:16

     

    피의 사원

     

     

    2016.    6.   16.

     

     

     

    2016.  5.  20 ~ 6. 1.(11박 13일)  러시아 + 북유럽 4개국 여행에서   5.  22.  3일째의 여행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이루어 진다. 

     

    오전 여행지 표토르대제의 여름별궁 관람 후 버스로 이동하여  점심식사 후  카잔성당 . 네프스키대로. 피의 성당을 보고  에르미타쥐 박물관 관광 후 한식으로 저녁 식사 후 상트베테르부르크에서 묶는 일정이다.

     

     

     

     

     

     

     

    1901년 미국 재봉틀 회사 싱어 러시아 판매 본부로 지은 싱어 빌딩으로 지금은 국영서점 '돔 크니기(책의 집)' 으로 오늘에 이르는 싱어 빌딩  건물을 지나 운하를 따라 이름보다 더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피의 사원을 만나러 간다.

     

     

     

     

    운하 옆길을 따라 걸어가면 정면에 그림 같은 러시아 정교회가 다가 온다.

     

     

     

     

     

     

    운하길 끝을 가로막듯 선 그리스도부활성당의 남쪽 정면 모습으로 찬란한 반구 돔들과 박공 모자이크화, 다채로운 색깔로 치장한 성상들, 광택 벽돌과 다색 타일, 이탈리아 대리석...이보다 화려한 성당은 본 적이 없다.

    모스크바 붉은광장 한켠 성바실리교회를 닮았는데 실제로 그 교회를 본떠 지었다고 한다.전면 너비 52m, 높이 81m에 이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부는 유럽풍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건물로 넘치는데  표트르대제가 18세기 초 이 인공 도시를 건설하면서 유럽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서 유서 깊은 건물 가운데 17세기 모스크바공국 시대의 비잔틴 양식이 가미된 러시아 특유의 건축양식을 간직한 것은 19세기 말에 세운 이 성당이 거의 유일하다.

     

     

     

     

     

     

    러시아 정교회 건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구근(球根) 또는 양파 모양 돔으로 피의 사원은 정면 가운데에 제일 높은 돔탑이 서 있고 좌우 앞뒤로 두개씩 에나멜로 장식한 돔 네 개까지 다섯 개가 있다.

    사진에선 중앙 탑 좌우 에나멜 돔과 똑같은 것이 뒤쪽에도 있지만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맨 왼쪽 종탑과 오른쪽 측면에 황금빛 구근 돔 셋이 있어 모두 아홉 개에 이른다.

     

     

     

     

     

     

    정면 제일 높은 탑 위 에나멜 돔은 똬리 틀 듯 꼬아​ 인도 터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탑 아래 실내에 반구형 돔 천장이 있는데 이 돔탑에 나 있는 창을 통해 실내 돔 천장으로 빛과 공기를 공급한다.   자연 채광과 환기를 하는 장치이고 장식도 겸하는 이것을 ​랜턴(등불)이라고 한다.​

     

     

     

     

     

     

    러시아 정교회 구근 돔은 대지에서 타오르는 하느님의 촛불을 상징한다.

    돔의 직경이 아래쪽 탑의 원기둥 직경보다 크고높이도 여느 유럽 교회나 성당의 돔보다 훨씬 높아 금방 눈에 뛴다.

     

     

     

     

     

     

    학자들은 구근 돔이 몽골 지배 이전 13세기에 러시아 고대 건축 양식의 헬멧 돔에서 출발한 것으로 본다.

    헬멧 돔이란 러시아 영웅들이 썼던 헬멧 모양을 본뜬 돔으로 구근 돔은 이반 뇌제 때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러시아 정교회 말고도 바바리아지방 카톨릭 성당과 중동 이슬람 사원, 인도 사원에서도 구근 돔을 볼 수 있다.

     

     

     

     

     

     

    구근 돔이 셋이면 성령을 상징하고 다섯이면 예수 그리스도와 네 천사를 상징한다. 에나멜 돔 중에 가장 많은 형태가 이렇게 초록과  푸른색, 하얀색을 교차해 쓰는 형태이다.

     

     

     

     

     

     

     

    정면 돔 아래 박공에 모자이크화가 있다.가운데에 머리가 길고 수염을 기른 장년의 그리스도가오른손은 축복의 표시를 하고 왼손에는 복음을 나타내는 책을 들고 있다.

    이런 예수상을 만물의 지배자, 만능의 주()를 의미하는 판토크라토르(팬토크레이터)라고 한다.

    그런 판토크라토상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엔 세례 요한, 왼쪽엔 성 게오르기우스(조지)가 무릎 꿇고서 뭔가를 탄원하고 간청하고 있다.

    성 게오르기우스 대신 성모가 요한과 함께 인류의 죄를 사면 해달라고 청원하는 그림을 데이시스(디시스-Deisis)라고 하는데

    성모 자리에 성게오르그가 있는 그림은 매우 드물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유럽 전역과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나라가 성인으로 받든다.

    러시아에서는 국가 문장(紋章) 넣을만큼 각별한 성인이어서데이시스에 등장시킨 게 아닌가 싶다.

     

     

     

     

    예수모자이크 양쪽 탑 아랫부분엔 천사와 성인들을 묘사한 반원형 모자이크화들이​ 있다.

     

     

     

     

     

     

    예수모자이크 양쪽 탑 아랫부분엔 천사와 성인들을 묘사한 반원형 모자이크화들이​ 있다.

     

     

     

     

     

     

    정면 왼쪽으로 치우친 현관은 화려하게 장식한 지붕과뾰족한 지붕 모양 탑을 이고 있고탑 위엔 독수리상이 서 있다.

     

     

     

     

    15세기 말부터 러시아 국가 문장(紋章)에

     

     

     

     

    독수리 머리가 하나씩 왕관을 쓰고 중간 위쪽에도 왕관이 하나 더 있다. 세 개의 왕관은 통합된 러시아를 상징한다. 

     

     

     

     

    두 머리가 각기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러시아가 유럽과 아시아를 모두 포용하겠다는 것을 의미 한다.

    실제 문장에는 독수리가 양 손에 뭔가를 쥐고 있다.

    왼손의 황금 공은 전 세계를 그리스도화 하겠다는 뜻으로 지구 위에 십자가가 놓인 형상을 하고 있고 오른손의  홀()은 세속 통치자의 권위를 뜻한다. 

     문장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폐기되고 낫과 망치가 들어간 소비에트 문장이 등장했다가 1991년 소련방이 해체되면서 옛 문장이 부활 했다.

    민주주의 시대에 맞춰 왕관의 의미가 바뀌었는데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을 의미한다.

    독수리가  홀과 구()도 주권 수호 의지와 국가 통일성을 상징한다.

    가운데 말을 타고 용을 무찌르는 기사는 정면 박공 그림 데이시스에도 들어간  성 게오르기우스이다.

     

     

     

     

     

    지붕은 러시아 전통 주택에서처럼 사면을 따라 풀잎 무늬 장식을 했는데 금박 입힌 구리이다.​

     

     

     

     

     지붕 박공에는 그리스도부활성당이라는 교회 이름에 맞춰 예수 부활을 그려 놓았다.​

     

     

     

     

    첨탑 아래쪽에도 반원형 아치를 만들고 천사상과 성인상 모자이크화를 넣었다.

     

     

     

     

    정면 이층과 삼층에는 화려한 창문을 냈다.섬세하게 부조 장식을 새긴 창틀은 에스토니아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창문 사이와 양쪽 끝으로는 기둥 장식을 하고 안에 화병과 쌍두 독수리 타일화를 번갈아 붙였다.

     

     

     

     

    그리스도부활성당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피 위에 선 구세주교회, 뿌린 피에 선 교회, 그리고 우리에겐 피의 사원이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모두 ''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곳에 세웠기 때문으로 그 ''는 황제의 피를 가리킨다.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농노제를 폐지해 2000만명을 해방시켜 '해방자 짜르(황제)' 라고 불렀던 개혁 군주이다.

    지방자치제 젬스트보를 도입했고 배심원 제도를 채택한 사법제도까지 진보적 제도를 정착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초 유럽 유학을 다녀온 청년 장교들의 군사 혁명이 실패한 이래 러시아엔 꾸준히 자유를 갈망하는 사회 개혁 움직임이 일었고 1870년대엔 인민해방 운동과 직업적 혁명가들이 등장한다.

     그 운동가 그룹 중에 '인민의 의지'라는 급진 혁명운동 조직이 1881년 아침 알렉산드르 2세가 마차를 타고 산책 나왔다가 입헌제도 도입 방안에 서명하러 궁으로 돌아가던 길목에서 짜르를 습격한다.

     

     

     

     

    조직원 두 명은 이곳 그리바예도프 운하 곁을 지나던 알렉산드르2세의 마차에 수류탄을 던진다.

    마차가 심하게 흔들렸지만 황제는 다치지 않았고 마차에서 내려 범인을 꾸짖는다.그 사이 다른 한 명이 폭탄을 터뜨려 자신은 죽고 황제에게 중상을 입힌다황제는 서둘러 궁으로 옮겨졌지만 몇 시간 뒤 숨을 거둔다.  

     

     

     

     

    아들 알렉산드르 3세가 아버지를 추모해 아버지가 피 흘린 피습 장소에 세운 것이 그리스도부활성당이자 '피 위에 선 교회' 이다

    정면 일층 벽에 붙은 모자이크화는 프릴루키의 성 드미트리이다.

    14세기 러시아에 여러 수도원을 세워 수도의 삶을 정립한 성자이다.

     

     

     

     

    건물 오른쪽으로 돌아가 바라본 모퉁이 모습인다.

     

     

     

     

    더 돌아가 동쪽 측면을 보니황금빛 구근 돔 셋이 동쪽을 보고 서 있다.가운데 돔 아래 그려진 예수상을 에워싼 아치가 끝이 뾰족하다.   이런 모양의 반원 아치 양식을 가리켜 코코슈니크라고 한다.

     

     

     

     

    러시아 전통 의상에서 여자들이 머리에 쓰는 장식 코코슈니크에서 따온 말이다.

     

     

     

     

     코코슈니크 양식은 끝이 뾰족한 것뿐 아니라 아래 사진처럼 둥그런 반원형 모양도 포함한다.

     

     

     

     

    코코슈니크 양식은 러시아 전통 건물, 특히 정교회에서 즐겨 쓴다.사진 동북쪽 모퉁이만 해도 ​창문의 틀을 이루는 아치들에서 코코슈니크가 보인다.

     

     

     

     

    알렉산드르 3세는설계 공모를 거쳐 1883년 그리스도부활성당을 착공한다.

    무른 습지 기반을 다지고 화강암을 쌓아 기초 공사를 하는 데만 3년이 걸렸고 모두  25년 세월을 들여 1907 완공 한다.

    건축비는 왕실 돈과 귀족들의 기부금으로 충당했고 일반 신자를 받는 교회가 아니라 알렉산드르2세를 추모하고 기리는 왕실 교회로 썼다.

     

     

     

     

    레닌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뒤 피의 사원을 폭파하고 싶어했지만 당시 큰 건물이 드물어 창고로 썼다.

    1931년엔 알렉산드르2세 테러를 기념하는'인민의 의지' 박물관을 안에 만들었다가 자신에 대한 테러를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 스탈린이 3년 만에 폐쇄한다.

     

     

     

     

     

     

     피의 사원은 그 뒤로도 여러번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폭파될 위기를 넘긴 끝에 1969년 이삭성당 종교박물관의 분관이 된다.   오랜 복구와 단장을 거쳐 1998년부터 일반에게 개방하고 있다.  건물 뒷면 북쪽 모습이다.

     

     

     

     

     

    매표소가 있는 관람객 출입구가 뒤쪽으로 나 있다.   입장료는 250루블이다

    오전 10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열고 수요일엔 휴관한다일정상 안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다.

     

     

     

     

     

     

    북쪽 구조는 남쪽과 똑같이 좌우만 다르게 선형(線型)대칭으로 만들었다.  정면 중앙 돔탑과 박공 사이, 그리고 창문들 위쪽도 코코슈니크 아치로 처리했다. 

     

     

     

     

     

    교회는 모스크바 성바실리교회를 본떠 정통 17세기 러시아 양식으로 지었지만당시로는 첨단이었던 전기시설을 들여 전등 1689개를 밝혔다.

     

     

     

     

     

    종탑의 황금빛 돔이 아침 햇살을 받아 신비롭게 빛난다.

     

     

     

     

     

     

    북쪽 면 박공에도 예수 부활 성화가 모자이크로 붙어 있다.

     

     

     

     

     

     

    교회 안팎엔 당대 러시아 대표 작가들이 10년에 걸쳐 만든 모자이크 성화가 있는데그림 면적을 모두 합치면 7천제곱미터, 2천평이 넘는다.   피의 사원의 진수는 모자이크화로 가득한 내부라는데 아쉽다.

     

     

     

     

     

     

    북쪽 면 오른쪽에도 남쪽 정면과 마찬가지로 쌍두 독수리가 올라선 현관 탑이 솟아 있다. 

     

     

     

     

     

     

     교회 옆에서 마트로슈카를 파는 노점.   마트로슈카를 그린 양산을 펼쳐 놓았다.​

     

     

     

     

     

     

    북쪽 길 건너편엔 ​부활성당의 부속 예배당 베스트리 판펠레이몬 채플이 별도 건물로 서 있다.  성당 공사 중이던 1887년 완공했다.​  이 건물에도 창문을 에워싼 아치에서 코코슈니크를 볼 수 있다.

     

     

     

     

     

     

    그리바예도프 운하를 건너 부활성당의 동북쪽 모습을 보니 수상택시들이 운하를 달린다.

     

     

     

     

     

     

    종탑 아래 각진 다섯 면 가득 문장(紋章) 144개를 각기 붙여 놓았다.

    제정러시아 시대 지역과 도시와 마을의 문장들을 모았다.   온 나라가 황제의 피살에 애도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종탑을 당겨 찍어 본다.

     

     

     

     

     

     

    운하 건너편에서 서쪽 측면을 바라본다.

     

     

     

     

     

    창문 위 아치 모자이크에 두 천사가 천에 그린 '천 위의 구세주 그리스도의 얼굴' 만딜리온(Mandylion)을 받쳐들고 있다.

    성상화 이콘(Icon)은 러시아 정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기도 대상이자 숭배 대상이다.

    300가지에 이르는 이콘을 감상 대상인 예술품이 아니라 신의 세계가 출현한 것으로 여겨 집마다 성소에 걸어두고 기도한다

     

     

     

     

    아래쪽 감실,못 박힌 손발에서 피 흘리는 모자이크 이콘 '십자가에 못박힘'을 본다.

    교회 이름을 왜 그리스도부활성당이라고 붙였을까 ?

    알렉산드르 3세는 암살당한 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를 아마도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에 비유하고 싶었을 것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쫓겨난 마지막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남쪽 짜르스코예 셀로(황제의 마을) 궁에서 텃밭을 일구며 소일한다.

    해방자 알렉산드르 2세가 피 뿌린 지 37마지막 짜르는 볼셰비키들에게 가족과 함께 연행돼 시베리아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러시아 혁명은 제정 러시아의 전제 체제와 1차대전 때 드러난 그 체제의 무기력함이 낳은 필연일 수 있지만 그래도 해방자 짜르가 테러에서 살아 남았다면 러시아는 물론 세계 현대사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 네프스키대로로 되돌아 나가 에르미타주 미술관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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