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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충렬사 (사적 제236호)
2016. 5 . 12.
2016. 5. 10. 한.중 여성교류협회 회원들과 함께 봄비오는 날 봄비맞으며 통영으로 봄 나들이 하러 간다. 7시에 출발하여 통영에 도착하니 10:30이다. 먼저 통영시를 들어서서 충렬사를 보기로 한다.
충렬사
현재 충렬사는 사당을 비롯하여 동재, 서재, 경충재, 숭무당, 비각, 전시관, 강한루 등 건물 17동과 5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렬사는 충무공을 비롯한 휘하 장병의 위령을 위해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드리고 있다.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는 탄신기념제, 그리고 한산대첩축제, 고유제를 전통 제례의식으로 봉행한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부터 관청의 지원이 중단되자 지방주민들이 뜻을 모아 ‘충렬사 영구보존회’를 조직하여 향사 및 관리를 해 왔으며, 1951년에는 ‘재단법인 통영충렬사’를 설립하여 관리해 오고 있다.
충렬사는 1973년 6월 11일 사적 제236호로 지정 되었다.
봄비 맞으며 충렬사 주차장 도착이다..
홍살문
충렬사의 여섯 개의 문 가운데 첫째 문이다.
2개의 둥근 기둥 위에 지붕 없는 붉은 살을 열지어 박아 세웠다. 홍전문(紅箭門)이라 쓰고 홍살문이라 읽으며 때로는 홍문(紅門)이라고도 하는데 정2품 이상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만 세울 수 있다.
정문
홍살문 다음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첫 출입문이다.
삼문구조인데 양편의 협문은 출입구이고 가운데 문은 신문(神門)이라 하여 제삿날에 열어 신을 맞아드린다.
정문 가운데 문인 신문(神門)
삼문 좌측의 익사(翼舍:날개)는 안내소이고 우측의 익사는 해설사 사무실이다.
안쪽에서 바라본 정문
동백꽃
수령 약400년으로 추정되는 고목으로 경상남도 지정기념물 제74호(수고6.5m). 초겨울 12월부터 진홍색 꽃이 피기 시작하여 3월에 절정에 달하는데 특히 눈속에 필 때 더욱 아름답다. 동백꽃은 꽃잎이 시들기 전에 꽃봉오리 채로 낙화하는 특징이 있어 동네 아이들이 짚에 꿰어 화환을 만들어 목에 걸기도 하고 동백씨 기름은 머릿기름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화장품과 공업원료로 쓰인다.
강한루(江漢樓)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李升權 : 이충무공 8세손)이 1840년에 지은(1840) 누각.
옛부터 충렬사를 찾은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 누대에 올라 이 충무공의 큰 덕을 되세기며 동백 고목과 더불어 후원의 푸른 죽림을 자주 시제에 올렸던 영남 유수의 수영(水營) 누각(樓閣)이다.
전형적 조선의 팔작지붕 양식으로 정면 세칸, 측면 세칸의 익공식 이층 구조에 아래 층 뒤편에는 통용문인 「영모문」현판이 걸려있으며 이층 누마루는 우물마루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연등천장을 하고 있다.
강한루의 이름 유래
강한(江漢)은 중국(中國) 호북성(湖北省)의 성도(省都)무한(武漢)에 있는 地名이다.
무한(武漢)을 가로질러 흐르는 장강(長江)과 지류(支流)인 한수(漢水)가 합류하는 지역으로 장강(長江)에서 「강(江)」, 한수(漢水)「한(漢)」, 이두자(李)를 취하여 강한(江漢)이라 부르며 예로부터 열국이 각축하던 삼국지의 무대이며 이름난 경승지(景勝地)이다.
이 강한(江漢)의 대안(對岸)에는 이백(李白)의 시(詩)에 등장하는 황학루(黃鶴樓)와 항주(抗州)의 서호(西湖)와 비견(比肩)되는 동호(東湖)가 있다. 또 고대(古代) 주(周)나라 때 이곳 강한변(江漢邊)에서 소호(召虎)가 적의 항복을 받아 나라의 우환(憂患)을 씻었다는 고사(古事)가 있다.
1840년 제172대 통제사 이승권(李升權)이 여기에 누대(樓臺)를 지을 때 시인 강위(姜偉)가 경승지 통제영과 이충무공의 위업을 이 강한의 고사에 연관지어 강한루(江漢樓)라 이름하였다고 전해진다.
강한루(江漢樓) 주위의 노거수
강위의 시 『강한루』
江 漢 樓
試溯神仙夢 (시소신선몽) 물길거슬러 신선의 꿈 아렸더니
重開漢上襟 (중개한상금) 강한루 다시 올라 흉금을 활짝 연다
孤月行天遠 (고월행천원) 외로운 달 먼 하늘 떠가고
衆流到海深 (중류도해심) 개울물 모두 흘러 깊은 바다로 가는구나.
逢人問古地 (봉인문고지) 사람 만나서 옛 땅 물어보고
對酒憐初心 (대주련초심) 술 나누는 첫 마음 애닯기도 하여라.
忠烈祠堂在 (충렬사당재) 여기 충렬사 있어
天涯已再尋 (천애이재심) 찾아온 지 벌써 두 번째렸다.!
외삼문 밖 참배공원 경내에는 영남 유수의 수영누각인 강한루 뒤편 영모문
강한루(江漢樓) 근처의 고목
외삼문
삼문 가운데 바깥에 있는 삼문으로 앞에는 강한루가 있다. 외삼문은 좌·우의 비각과 잘 어울려 조선건축의 조형미가 빼어난 건축물로 손꼽히며 광복 후에 대한민국 우표의 도안으로 사용되었다.
숭무당(崇武堂)
통제영에서 파견한 장교 3명이 상주하면서 사우(祠宇)와 위토전답을 관리하던 곳. 지금은 회의실과 강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주련
天日成盟草木知 (천일성맹초목지) 하늘에 맹세하니 초목도 아는도
閣上麒麟圖像肅 (각상기린도상숙) 다기린각에 그린모습 엄숙도 한데
鼓邊 ? ? 鐫名休 (고변과두전명휴) 북가에 새긴이름 아름답구나
江山不息英雄氣 (강산불식영웅기) 강산에는 영웅기상 끊임이 없도다
江漢悠悠忘千秋欲慕風風 (강한유유망천추욕모풍풍) 강한은 유유히 천년을 흐르고 경모하는 마음은 쉼없는 바람이어라
경충재(景忠齎) : 충렬서원(忠烈書院)
제70대통제사 최 숙이 재유사(齋有司 : 관리자)를 두고 지방 청소년들에게 학문과 충의를 교육시키기 위하여 1695년에 건립한 강당으로 충렬서원이라 불렀다. 1865년. 1867년 두 번에 걸친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이순신 사당 가운데 유일하게 존속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지금은 공신과 집사들의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다.
주련
水國秋光募 (수국추광모) 다도해에 가을빛 저무니
驚寒雁陣高 (경한안진고) 찬 바람에 기러기떼 높이 날고
優心輾轉夜 (우심전전야) 나라 근심에 뒤척이는 이 밤
殘月照弓刀 (잔월조궁도) 지는 달만 활과 칼을 비치누나
중문
외삼문과 내삼문의 사이에 있는 가운데 문으로 안으로 들어서면 동제와 서제가 있다. 입구 양쪽에 있는 고목은 목련과의 태산목이다.
중문을 들어서문 내삼문이 올려다 보인다.
동제
향사를 앞두고 헌관(獻官 : 제관)과 집사(執事)들이 미리 여기에서 몸과 마음심을 깨끗이 하고 제복을 차려입는 곳으로 향사를 끝낸후 여기에서 음복(飮福)을 한다.
김 경 제51대통제사가 맞은 편의 서제와 동시(1670)에 건립하였다. 동·서제의 마당을 중정(中庭:가운데 뜰)이라 하는데 매년 4월 28일 탄신제 때에는 여기에서 승전무(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가 헌무(獻舞)된다.
주련 :
盟山草木知 (맹산초목지)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알고
誓海漁龍動 (서해어룡동)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감동한다.
중문 안으로 들어서면 동제와 서제가 있다.
서제
향사에 쓰이는 제물을 장만하고 제기(祭器)와 제구(祭具)를 보관하는 곳. 김 경 제51대통제사가 맞은 편의 동제와 동시(1670)년에 건립하였다. 전시된 거북선은 전라좌수영의 거북선 모형으로 제작년대는 1950년대로 추정된다.
내삼문(內三門)
내삼문(內三門)은 조선 목조건축의 정수, 삼문조형(三門造形)의 백미(白眉).
정당의 출입문으로 삼문 중 가장 안쪽의 문이다. 단아하면서도 정교한 건축양식으로 조선중기 삼문조형(三門造形)의 정화(精華)이다.
솟을삼문으로 신문(神門)의 양쪽 초석을 해태로 조각하고 안팎에 활주(버팀기둥) 8개로 지붕의 무게를 받혔는데 각 활주 아래의 석자는 8각 돌기둥이다. 통용문인 양쪽 협문(夾門)을 낮게 만든 것은 몸을 낮추고 삼가는 몸가짐으로 출입하기 위함이다. 익공식 맞배지붕에 겹처마이며 삼문의 창방 위를 화반(花盤)으로 장식하였고 신문 양쪽의 봉황은 연화단청문양(蓮花丹靑紋樣:단청으로 그린 연꽃무늬)으로 조각하여 꾸몄다. 제례가 시작되기 전에 헌관은 이 내삼문 단하(段下)에서 북향립(北向立:북쪽을 향하여 섬)하였다가 홀창(笏昌:제례의 순서부름)에 따라 집사의 안내를 받아 계단을 오른다. 앞 뜰에는 매년 공의 탄신제(4월 28일) 때 중요무형문화재 제 21호인 승전무(勝戰舞)가 시연(施演)된다.
정 당 (正 堂)
정당은 민족의 수호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령에 제사올리고 공의 정신과 위훈을 만대(萬代)에 기리기 위하여 제7대 통제사 이운룡(李雲龍)이 선조(宣祖: 제14대)의 명을 받아 세웠다.
이충무공 한분의 위패를 모시고 역대 통제사가 약 300년간 제사를 받들어 온 가장 신성한 장소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1606년에 창건하였는데 정당의 후원은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기와지붕의 용마루에 새긴 주역(周易) 팔괘(八卦)는 음양의 조화(造化)와 만물이 화생(化生)하는 역(易)의 원리를 담고 있으며 제의(祭儀)는 정통 유교의 법식을 고수한다. 1895년 통제영이 폐영되어 관급(官給)이 끊어지고, 경술국치(庚戌國恥:1910년 한일병탄)를 당하여 제사를 받드는 주체가 없어지자, 이 곳 지방민들이 기미년 독립만세운동(1919)을 계기로 충렬사영구보존회(현 (재)통영충렬사의 전신)를 결성하여 제향의 맥을 이어왔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왜경이 장군의 위패를 칼로 부수고, 삼문의 태극문양에 덧칠하여 일장기(日章旗)로 바꾸고 또 제사를 올리지 못하도록 정당에 못질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을 맞아 이승만 대통령,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 선생을 필두로 송진우, 여운형, 신익희 등 많은 광복지사들이 환국 참배하여 건국의 결의를 다진 유서깊은 사당이며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선생이 국역편찬한 '이충무공전서'의 산실이기도 하다.
정당을 향하여 중앙 좌측의 주련은 명나라 진린(陳璘:쳔린) 도독이 이충무공을 찬양한 어록의 한 구절인 「욕일보천지공(浴日補天之功:해를 씻어 빛나게 하고 하늘의 구멍을 메운 큰 공)」이며,
우측은 이충무공께서 임전결의(臨戰缺意)하신 「서해어룡동(誓海魚龍動) 맹산초목지(盟山草木知)」에서 따온 것으로 조선 고종조의 명신이자 예서체의 대가인 신관호(申觀浩) 제187대통제사의 휘필이다.
☞ 주련 : 고대중국의 창조신화
經天緯地之才 (경천위지지제) : 천지창조 때 혼돈된 천지를 씨줄, 날줄로 짜세운 능력.
浴日補天之功 (욕일보천지공) : 하늘에 뚫린 구멍을 메우고 해를 씻어 빛을 낸 공적
제 단 (祭壇)
충렬사 제단 위에는 「충무공 신위(忠武公 神位)」라고 쓰여진 밤나무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늘 붉은 비단으로 싼 독(犢 : 신주함)안에 모셔 두었다가 향사 때에는 함을 열게 된다.
정참의 천장은 보 · 도리 · 서까레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인데 바로 위패 위쪽 한 평 정도 크기의 소란반자(「井」자 무늬 널빤지)는 단청을 화려하게 칠하였다.
정당의 후원은 충절을 상징하는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내삼문을 나선다.
외삼문 들어서면 있었던 비각들...
강한루에서 바라본 충렬사 정문쪽 전경이다.
충렬사 외삼문 밖 참배공원 경내에는 아름드리 보호수가 많아 푸르름을 자랑한다.
외삼문 밖 참배공원 경내에는 유물전시관이 있다.
유물전시관
유물전시관은 1981년 건립
전시품 안내
어제사제문 : 정조대왕이 하사(1795).충렬사팔사품 : 명나라 황제가 보냄. (보물440호)
이충무공전서 : 통제영수군 파총. 정효현의 그림.통제영수조도 : 통제영수군 파총. 정효현의 그림.
통제영지도 : 삼도수군통제영의 모항(19세기).
총 통 : 지자총통· 현자총통약수
돌거북전적류 : 충의고적. 명정서당기.
유영사례우표 : 외삼문 전경.
지자총통 (地字銃筒)-전시관 입구의 우측
보물제862호(1986.3.14 지정)제작시대 : 1577년 (명종 2년)길이 : 89.5cm구경 : 105mm중량 : 73kg
당시 세계최강 영국해군의 함포는 연철(鉛鐵)로 총구를 만들어 적중률이 떨어졌으나 조선총통은 주물로 부어 만들어 정확도가 우수하였다.
현자총통 (玄字銃筒) - 전시관 입구의 좌측
보물제885호(1986.11.29 지정)제작시대 : 1596년 (선조 29년)길이 : 70cm구경 : 75mm중량 : 50kg
우측으로 부터...
도독인 1개
도독인(都督印)은 구리로 만든 길이 15.1cm, 폭 7.8cm, 높이 1.8cm의 도장이다. 도장은 뚜껑이 있는 함에 보관되어 있는데, 함에는 ‘황조어사인’이라 쓰여 있다.
호두령패 1쌍
호두령패(虎頭領牌)는 길이 31.8cm의 팔각형 형태로 생긴 나무패로 군령을 전달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한쪽에는 검은 칠을 하고 ‘영(令)’ 자를 새긴 다음 붉은색으로 메웠고, 다른 쪽에는 분칠을 하고 ‘대장(大將)’ 두 글자를 썼다.
귀도 1쌍
귀도(鬼刀)는 전체 길이 137.9cm, 칼날 길이 83.3cm, 너비 7cm의 의장용 칼이다. 칼자루에는 용(龍)의 머리와 귀신머리가 새겨져 있다.
참도
독전기 1쌍
독전기(督戰旗)는 전쟁터에서 전투를 독려하기 위해 지휘관이 사용하는 깃발이다. 남색 비단 바탕에 붉은 비단으로 ‘독전(督戰)’의 두 자를 오려 붙였고, 한가운데에는 ‘범군임적불용명자처참(凡軍臨敵不用命者處斬)’, 즉 ‘군사가 적을 만났을 때 명령에 따르지 않은 자는 처단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홍소령기 1쌍
홍소령기(紅小令旗)는 군대의 명령을 전할 때 쓰는 깃발인데, 붉은 비단 바탕에 남색 비단으로 ‘령(令)’ 자를 붙였다. 홍소령기는 문관에게 영을 내리는 신호 깃발이다.
남소령기(藍小令旗) 1쌍
남소령기는 홍소령기와 마찬가지로 군대의 명령을 전할 때 쓰는 깃발인데, 남색의 비단 바탕에 홍색으로 ‘령(令)’ 자를 붙였다. 무관에게 영을 내리는 신호 깃발이다.
어제사제문(忠烈祠 御賜祭文) :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지어 내리신(1795) 제문.
정조(正祖)대왕께서 충무공의 우국충절과 훈공을 만백성이 알게 하기 위하여 국가사업으로 임진왜란 사료를 정리하여 이충무공전서를 편찬, 발간하여 통제사 이득제(李得濟:제174대)에게 한질을 내려보내면서 통영충렬사에 한질을 봉안하고 엄숙히 법도를 갖추어 충무공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자세히 지시한 제문이다.
지시내용 :
전서를 한질 보내니,
(1)명황제가 보낸 팔사품을 사당에 진렬하고 또 독대·총통·피리·북 등을 사당 안팎의 적당한 장소에 놓고(2)위패 앞에 술과 고기를 차리고 투구와 갑옷을 입은 채로
(3)유명수군도독·조선국 증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대강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 겸 영경련·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덕흥부원군·행정헌대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제사·충무공 이순신에게 정성을 다하여 잔을 올리고 이 한질을 봉안하라.
(4)충무공을 알고저 하는 자는 빛나고 찬란한 이 전서를 보아라.싸우던 공적이며 변화치던 형세와 거북같은 배와 기러기 울던 물가에서 진린(陳璘)·등자룡(鄧子龍)과 더불어 전라·경상에 진을 치고 바다와 산에 맹세할 제 초목도 그 이름을 알았더니라.
우측의 곡나팔 1쌍
곡나팔은 구리로 만든 나팔로 목이 구부러진 모습이어서 곡나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첫 출입문인 정문도 나선다.
충렬사 홍살문을 나왔다..
봄비 맞으며 먼저 통영시를 들어서서 제일 먼저 여행한 충렬사를 보고 바로 지척에 있는 세병관을 보고 싶었는데 함께한 일행들이 점심 식사하길 원해 식당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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