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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곡리 삼효각과 허진수 유허비(포항시 남구 장기면 금곡리 392번지) 그리고 금산서원
    여행방/경상도 2015. 10. 7. 08:31

    금곡리 삼효각과 허진수 유허비 그리고 금산서원        

     

     

     

    2015.   10.   7.

     

     

    2015.  10.   2.   오늘은 포항의 남구 장기면 지역을  탐방한다... 

     

     

     

    여행은 길 위의 움직이는 학교이다. 

    운명과도 같은 새로운 만남과 사람과 삶을 배운다.  서로 사랑하는 법,  감동을 나누는 법을 배운다.  나를 용서하는 법,  화해하는 법도 배운다.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는 기술을 배우고  진정한 기쁨과 행복도 배운다.

    또한 지나온 자신을 돌아보며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여행을 떠난다.   삶의 중간에서..

    이런 햇살 좋은날 나홀로 행복한 나만의 포항 남구 장기면 일대 문화탐방을 나선다.

     

     

     

    탐방할 문화재와 여행지는 포항시 남구 장기면 정천리 선정비와  대곡리 김해김씨 열녀비, 학곡리 학삼서원,  장기읍성, 장기향교,  장기면사무소 안에 있는  척화비,  근민당,  선정비,  금곡리 금산서원과 삼효각. 허진수 유허비,   계원2리 화재 이언적 시비,  양포리 정인품 절효각,  수성리 정유서 유록 유허비,  임중리 김사민 종효각,  장기초등학교 교정의 송시열. 정약용 사적비와 은행나무, 마현리 삼명서원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여섯번째 여행지인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리 109-2번지에 위치한 장기면사무소 안에 있는 '근민당'과 '장기척화비' 그리고 '선정비'를 보고 장기면에 근무하는 공무원 시절에 알던 지인을 만나 맛난 식사를 하러 간다.........

    장기에서 구룡포 가는 길의 모포항에 있는 맛집으로 포스코 수련장이 있는 대진해수욕장 근처로 메기 매운탕이 맛있었던 집에서 식사 후 두 지인들과 헤어져 일곱번째 여행지인 포항시 남구 장기면 금곡리  392번지에 위치한 삼효각. 허진수 유허비를 보고 389번지에 위치한 금산서원과 그리고 같이 붙은 삼효각. 허진수 유허비를 만나러 간다.....

     

     

     

     

     

     

     

     

     

     

    장기 초등학교를 지나서 도로변을 조금 더 가면 길가에서도 보이는 이상한 바위가 있는데 동서로 누운 모양이 전체적으로 마치 용트림을 하는 모습 같아서 용암(龍岩)이라고 한다.

     

    용암의 머리 부분 남쪽에 다소곳한 자세로 멀리 바라보는 할매바위와 할매 바위의 서쪽 높은 곳에 화를 잔뜩 머금은 할배바위가 있다. 주변은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아주 오랜 옛날 바닷물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 바닷물이 차 있는 호수같은 곳 하늘에 항상 상서로운 구름이 두둥실 떠 있어서 사람들은 이를 구름다리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때 바다 속에 있는 용궁과 뭍을 마음대로 이 구름다리를 건너 왕래하던 용이 동해 용왕의 미움을 받아 다시는 동해의 용궁으로 가지 못하고 돌로 변하게 되었다 한다.  

    미움을 받은 용은 움직일 수 없는 한낱 돌이 되었으나 그의 딱한 사정을 어디에다가 호소할 길도 없었다.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이웃 할매의 아들을 대신 보내어 그의 죄를 용서하여 줄 것을 용왕님께 간청 하기로 하였다.

     이웃의 할매 부부는 아들 7형제를 두고 다정하게 살고 있었다.   용바위는 할배 몰래 할매만을 꾀어, 그녀의 막내 아들을 용궁으로 보내어 용암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해 달라고 했다.

    용암의 부탁을 받은 할매의 막내 아들은 구름다리를 건너 용궁으로 갔으나 그 후 몇 달 며칠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할배는 할매에게 아들을 찾아오지 않는다고 성화가 대단하였다. 할배의 성화에 못이긴 할매는 구름다리를 건너간 막내 아들을 찾으러 한발짝 구름다리 쪽으로 내려오다가 애타는 가슴을 가눌 길 없어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집에서 기다리던 할배는 옆에 있던 다른 아들들에게 막내 동생을 빨리 찾아오라고 모두 집 밖으로 쫓아 버리고는 자기도 뒷산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할배도 그만 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그 자리에서 할배바위, 할매바위는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서 집 나간 막내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우편 높고 큰 바위가 할배바위, 그 옆에 아담한 첩바위 (혹은 아들 바위라 하기도 함)가 나란히 있다.

     

     

     

     

    할매바위 뒤쪽으로 용바위가 길게 누워 있다.  삐진 할매바위가 퉁궁스럽다.

     

     

     

     

     

     

     

    물고 있던 여의주는 깨져 버리고 빈 아가리만 쩍 벌리고 있는 용

     

     

     

     

     용 바위임을 확인 시켜주는 각자 龍岩

     

    금곡리 용암뜰 서편 용암산 남쪽산자락의 할매바위 동쪽에 새겨진 각자로 자연 바위면에  ‘訓導李訥聖板權安遺蹟과 龍岩’이라고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李訥이 서원에 모시던 五聖八賢의 位牌를 龍岩石窟에 보관한 사실을 기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각자범위는 폭 56㎝, 높이 130㎝로, 글자 크기는 가로 25㎝, 세로 27㎝이다.

     

     

     

     

     

     

     

    삼효각은 본관이 김해인 허기(許琦)와 아들 허온(許溫)의 처 효부 월성 최씨와 아들 허식(許湜)의 처 곡강 최씨의 효행을 표창한 비와 비를 보호하는 각이다.

    순조 10년(1810년) 경상도내 유림과 경상감사가 예조에 장계(狀啓)를 올려 효자효부(孝子孝婦)로서 정려(旌閭)가 내려 김해 허씨 문중에서 비각을 건립하였다.

     

     

     

     

     

     

     

     

     

     

     

    折衛將軍龍衛副護軍金海許琦之公旌閭碑(근위장군용위부호군김해허기지공정려비),  孝烈婦曲江崔氏旌閭碑(효열부곡강최씨정려비),  孝婦月城崔氏旌閭碑(효부월성최씨절려비)’ 3기의 비석이 있다.

     

     

     

     

     

     

    삼효각과 담장이 붙은  허진수 유허비

     

     

     

     

     

     

     

    염호공 허진수 선생은 김해인(金海人)으로 휘(諱)는 진수(進壽), 자(字)는 토서(土瑞)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묘비를 세울 수가 없어 유허비를 1945년 7월 현 위치에 세웠다.

     

     

     

     

     

     

     

     

     

    정효각 1동,  비 1기가 있다.

     

     

     

     

     

     

     

    삼효각과 나란히 있는 허진수 유허비

     

     

     

     

    금곡리 삼효각과 허진수 유허비에서 10m 정도에 있는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금곡리 389번지에 있는 서원이다.

     

    1707년(숙종 33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허진수(許進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다가 1909년 유림에 의해 사당을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하정(下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頭)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3,000여평,   임야 10정보,   대지 400평 등이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경모사(景慕祠),  4칸의 수덕헌(修德軒),  3칸의 동재,  외문(外門),  4칸의 고사(庫舍) 등이 있다. 

    사당인 경모사에는 허진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수덕헌은 강당으로서 방과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은 헌관 및 별유사, 재석실로 사용하며, 마루는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신문은 향사 때 재원의 출입문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며,   동재는 재원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가 사용하는 곳이다.

     

     

     

     

    현판에 '명덕문(明德門)'이라고 쓰여 있는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민도리 양식이다.   팔작지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에 망와를 사용하여 마감하였고,  전면에 각기둥을 세웠다. 

     

     

     

     

    동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에 처마는 홑처마이다.

    3량가 가구구조이며,   민도리 양식에 납도리를 사용하였다.   전면에 각기둥을 사용하였고,   문은 쌍여닫이문을 달았다.

     

     

     

     

    강당인 수덕헌(修德軒)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5량가 가구구조이다.

    이익공 양식이며 팔작지붕이고 처마는 겹처마이다.  장여를 화반이 받치고 있으며,  전면에 원기둥을 세웠고 두께가 두꺼운 원형초석을 그 아래에 받쳤다.

    기단은 시멘트로 보수, 처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배치형태는 양 끝에 1칸씩 방을 두었으며,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다.  측면의 경우 2칸 중 1칸 반은 방으로,  반 칸은 마루를 깐 입면형태를 보이고 있다. 

     

     

     

     

    수덕헌은 강당으로서 방과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은 헌관 및 별유사, 재석실로 사용하며,  마루는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사당인 경모사(景慕祠)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맞배지붕에 이익공 양식을 취하고 있다. 장여를 화반이 받치고 있는 모양으로 초각되어 있으며, 겹처마에 풍판을 달았다. 잘 치석된 원형초석에 원기둥을 세웠고, 기단을 시멘트로 보수, 처리하였다.

     

     

    사당인 경모사에는 허진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허진수(許進壽)자(字)는 사서(士瑞),  호(號)는 염호(廉湖),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천품이 온화하고 재기가 뛰어난 영재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도산서원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1574년(선조 7년) 나라에서 그의 학행을 가상히 여겨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내렸으며,  만년에는 고향에서 정자를 짓고 후진양성에 진력하니 이때부터 그곳을 금곡(琴谷)이라 불렀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금곡리 삼효각과 허진수 유허비 그리고 금곡서원을 보고 나와

     

     

     

     

     

    신창 바닷가를 달려 시원한 바다와 바다 내음이 가득한 공기를 마시며 다음 여행지인 포항시 남구 장기면 계원2리 소봉대 앞에 있는 회재 이언적 시비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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