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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서악동 귀부 (경북 경주시 서악동)여행방/경상도 2015. 6. 9. 16:30
경주 서악동 귀부 ( 보물 70호 )
2015. 6. 9.
2015. 6. 5. 잔잔한 비가 내리는 雨요일 오늘은 경주 서악지구를 나 혼자만의 신라 문화재 순례길에 오른다.........08:35 포항을 출발....
룰루랄라 음악 크게 틀고 경주 문화재 순례 나서는 기분이 참으로 신난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건강하게 하늘과 강과 산, 바람. 비. 구름을 만날수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 순례할 문화재는 경주 도봉서과 서악동 삼층석탑을 보고 인근의 신라 왕릉인 헌안왕릉, 문성왕릉, 진지왕릉, 진흥 왕릉, 서악 고분군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그리고 이동 후 무열왕릉과 김양묘. 김인문묘와 비를 보고 인근의 서악서원도 본 후 효현동 삼층석탑 갔다가 법흥왕릉으로 이 문화재가 오늘 본 여행지 이다..
도봉서당 바로 뒤쪽에 위치한 서악동 삼층석탑을 보고 인근에 산재해 있는 헌앙왕릉, 문성왕릉, 진지왕릉, 진흥왕릉 등 신라 왕릉을 차례데로 찾아 본 후 무열왕릉과 서악동 고분군도 보고....
오늘 아홉번째로 태종무열왕릉 바로 앞에 있는 김양과 김인문묘를 찾아 보기로 한다....
무열왕릉과 서악리 고분군을 둘러 보고 태종무열왕릉 매표소 맞은편에 2개의 능을 보러 간다...
무열왕릉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기의 고분을 보러 가다가 바라본 무열왕릉 입구이다
태종무열왕릉 매표소 맞은편에 왕릉이 2개가 보인다.
무열왕릉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기의 고분이 있다. 큰 것이 김인문의 묘 (뒷쪽)이고, 조금 작은것(앞쪽)이 김양의 묘이다.
신라 문무대왕의 친동생 김인문의 묘로,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에 있다.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32호로 지정 되었다.
김인문은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로써 외교정책에 탁월했다고 한다...
김인문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책을 많이 읽었고 특히 글씨를 잘써 태종 무열왕의 비문을 썼고 활쏘기와 말타기에도 능하였다. 또한 넓은 식견과 훌륭한 재주와 솜씨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20대에 당나라에 들어가 좌령군위장군이 되었고 신라에 들어와 압독주총관이 되었다. 인문은 외교에 능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당나라를 움직이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워 신라의 삼국통일의 일익)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김인문 묘비(金仁問 墓碑)로 보물 70호
재료는 화강암 재질이다.
1931년 12월 경주 서악서원(西嶽書院) 누문 근처 땅속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될 당시 비석은 두 조각으로 쪼개진 채 상당히 풍화되어 있었다. 현재의 두께는 18cm, 폭 1m, 높이는 75cm 정도이며 원래 서있었을 당시의 크기는 대략 폭 4자 이상, 높이는 6자 정도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비석의 보존상태는 완벽하지 않아 겨우 원형의 3분의 1 정도 남은 비면이지만 400자 이상의 글자가 있다. 글자 중엔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글자를 쪼아서 훼손시킨 흔적도 있다
머릿돌인 이수와 몸비는 없고 거북받침돌만 김인문의묘 옆에 있다.
거북의 앞발은 5개, 뒷발도 5개이지만 뒤에 나오는 태종무열왕릉의 거북받침돌의 앞발은 5개, 뒷발은 4개이다.
서악동 귀부까지 보고 이제 효현동 삼층석탑을 보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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