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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신과 설총, 최치원 세 사람의 위패를 모신 서악서원(경북 경주시 서악동)
    여행방/경상도 2015. 6. 13. 08:42

    김유신과 설총최치원 세 사람의 위패를 모신 서악서원 ( 경북 기념물 제 19호 )

     

     

     

       

     

    2015.   6.   13.

     

     

     

    2015.  6.   5.   잔잔한 비가 내리는 雨요일   나 혼자만의 신라 문화재 순례길에 경주 서악지구의 서악서원을  돌아본다..

     

    서악서원은 경주시 서악동 615번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 명종(明宗) 16(1561당시의 경주부윤(慶州府尹) 구암(龜巖) 이정(李楨)이 김유신(金庾信)을 기리기 위해 선도산(仙桃山) 아래에 처음 세웠다.

     

     

    이정은 경주의 옛 신라 때의 묘역들이 몹시 황폐해진 것을 보고 개탄하며 이를 수리하고자 했고특히 통일 사업의 큰 공훈이 있는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과  태대각간(泰大角干) 김유신에 대해서는 그 무덤을 수리하는 것뿐 아니라 이들을 받드는 사당을 세우고자,   자신의 스승인 이퇴계(李退溪)에게 자문을 구했는데퇴계는 일개 군수의 신분으로 제왕의 사당까지 세울 필요는 없으며김유신(金庾信)에 대해서만 사당(祠堂)을 세우되,   제향이나 묘역 관리 및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겸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 했다.

    이퇴계의 의견을 따라 이정은 선도산 아래에 서악정사(西岳精舍)를 세워 김유신의 제사 및 교육을 위한 장소로 삼게 되었다.

     

     

     

     

     

     

     

     

    이후 경주 유생들에 의해 홍유후(弘儒侯) 설총(薛聰)과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의 위패(位牌)도 합사하자는 건의가 들어오자,   이정은 다시 이퇴계와 의논하여 두 사람도 함께 모시게 되었고이퇴계가 '서악정사(西岳精舍)'라는 친필 현판을 써주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던 것을 선조 33(1600)에 부윤 이시발(李時發)이 옛 터에 초사(草舍)를 다시 지어 전란을 피해 보존된 위패를 모셨다.

    1602년에 부윤 이시언(李時彦)이 처음으로 사당 중건을 시작하였고광해군 2(1610) 강당(講堂, 시습당),  전사청(典祀廳),  장서실(藏書室)을 새로 지었다.

    인조 1(1623) 경주의 유학자였던 진사(進士) 최동언(崔東彥) 등이 부윤 여우길(呂祐吉)을 통해 조정에 사액(賜額)을 청하였고, 조정에서는 서악서원(西岳書院)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1646년에 이민환(李民寏)이 부윤으로 있을 때에 영귀루(詠歸樓)를 중건하고, 묘제(廟制)를 동향(東向)으로 하여 설총과 김유신최치원을 차례로 모두 향사(享祀)하였다.  

    고종 10(1873)과 고종 19(1882),  고종 29(1892), 고종 31(1894)에 중수가 이루어졌으며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고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서원의 배치는 기존의 서운배치 형식과 다른 특이한 방식을 구축하고 있다.  보통 누각이 서원의 처음 지나는 진입구조인데 누각 앞에 문이 따로 있어 누각인 영귀루가 보조적인 입장이다

     

     

    외삼문(外三門)

     

     

    외삼문 영귀루(詠歸樓)는 정면 5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며좌우에 판벽을 드리우고 트인 사면에는 계자난간을 둘렀다.

    예전에는 이 영귀루가 누문(樓門)이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현재는 앞쪽에 평삼문(平三門)으로 되어 도동문(道東門)이라 명칭을 달고 있다.

     

     

     

     

     

     

     

     

     

     

     

     

     

    김유신, 설총, 최치원을 모시는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라고 한다.

     

     

     

     

     

     

     

     

     

    영귀루 2층 누각에서 보이는 강당인 시습당

     

     

     

     

     

     

     

     

     

     

    영귀루 2층 누각에서 바라본 출입구...

     

     

     

     

     

     

     

     

     

     

     

     

    서악서원 내 해중건기

     

     

     

     

     

     

     

     영귀루중건기

     

     

     

     

     

     

     영귀루중수기

     

     

     

     

     

     

    영귀루 2층 누각에서 바라본 강당

     

     

     

     

     

     

     

    영귀루 2층 누각에서 바라본 동재

     

     

     

     

     

     

    영귀루 2층 누각에서 바라본 강당과 서재

     

     

     

     

     

     

     

     

     

     

     

     

     

     

     

    출입구에서 바라 본 영귀루

     

     

     

     

    측면에서 바라본 영귀루

     

     

     

     

     강당 시습당에서 바라본 영귀루

     

     

     

     

     

    서악서원 강당 시습당이다..

     

     

     

     

     

     

     

     

     

    지금의 현판 글씨는 사액 당시의 이름난 서예가 원진해(元振海, 15941651)가 쓴 것이다.

     

     

     

     

     

     

     

    시습당(時習堂)

     

     

     

    전퇴(前退: 집채의 앞쪽에 달아 낸 칸살)를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으로 정면 5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중앙 3칸은 우물마루이다...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은 논어 학이편(學而篇)의 첫머리 「배우고 또한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呼)」에서 따온 것이다.

     

    시습당에는 서원의 학칙을 기록한 원규(院規)와  백록동규(白鹿洞規),  국기(國忌),  서악서원중수기 완의(完議)서악서원상량문(1610) 등의 기판(記板) 등이 남아 있다.

     

     

    대청에는 다섯 개의 현액(縣額)이 있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만력 경술(1610) 가을 문소후인 김득질이 찬한다(萬曆庚戌秋聞韶後人金得秩撰)」이라 적은 것으로 서악서원을 중수할 때의 상량문이고, 나머지는 중수기이다.

    연대 순서대로 「상지 10년 계유(1873) 가을 8월 상한에 부윤 이만운이 찬한다(上之十年癸酉秩八月上澣府尹李晩運撰), 「숭정 지원후5 임오(1882) 6월 하완에 여강 이능정이 기록하다(崇禎紀元後五壬午流月下浣驪江李能政記), 「상지 29년 임진(1892) 12월 일에 부윤인 원장 민영수가 찬한다(上之二十九年壬辰十二月日府尹院長閔泳壽撰), 그리고 1923년 이후에 적은 것으로 보이는 「입추절 하완 통사랑 권지능문완부정자 월성 최현필이 기록하다(立秋節下浣通仕郞權知承文浣副正字月城崔鉉弼記)」라고 적은 기록들을 통해 서악서원의 중수시기를 알 수 있다.

     

     

     

     

     

     

     

     

    서악서원  중수기

     

     

     

     

     

     

    백록동규(白鹿洞規)를 기록한 현판

     

     

    白鹿洞規(백록동규)

    백록동은 중국 강남성 여산에 있으며 백록동규는 南宋때 朱子가 강학을 하면서 만든 규약이다

    *父子有親 부자유친

    *君臣有義 군신유의

    *夫婦有別 부부유별

    *長幼有序 장유유서

    *朋友有信 붕우유신

    右 五敎之目(우 요교지목 : 위의 다섯 가지는 교육의 요점이다)

     

    *博學之(박학지) 넓게 배울 것이며

    *審問之(심문지) 자세하게 물을 것이며

    *愼思之(신사지)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며

    *明辨之(명판지) 명확하게 분별할 것이며

    *篤行之(독행지) 행동은 성실하게 해야 한다

     

    右 爲學之序(우 위학지서 : 위는 학문을 하는 순서이다)

     

    *言忠信(언충신) : 말은 충직하고 믿음이 있어야 되고

    *行篤敬(행독경) : 행동은 돈독하고 공경스럽게 하며

    *懲忿窒慾(징분질욕) : 성내는 것은 경계하고 욕심은 막고

    *遷善改過(천선개과) : 허물을 고쳐서 좋은 쪽으로 옮긴다

    右 修身之要(우 수신지요 : 위는 몸을 수양하는 요결이다)

     

    *正其義 不謨其利(정기의 불모기리)

    뜻은 바르고 옳은데 두고, 이익만을 꾀하지 않는다

    *明其道 不計其功(명기도 불계기공)

    도를 밝게 하고 공로를 헤아리지 않는다

     

    右 處事之要(우 처사지요 : 위는 처신하는 요체이다)

     

    *己所不欲 勿施於人(기소불욕 물시어인)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

    *行有不得 反求諸己(행유부득 반구제기)

    행하여 얻지 못하였으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구하라

    右 接物之要(우 접물지요 : 위는 사물을 접하는 요령이다)

     

     

     

     

     

     

    서악서원 중수할때의 상량문

     

     

     

     

     

     

     

     

     

     

    鄕約約文(향약약문)

     

     

    *父母 不順者(부모 불순자) : 부모의 뜻을 거스르는 자

    *兄弟 相鬩者(형제 상혁자) : 형제끼리 서로 다투는 자

    *家道 悖亂者(가도 패란자) : 집안에 도리를 어지럽히는 자

    *事涉官府 有關鄕風者(사섭관부 유관향풍자) : 관청의 일을 간섭 하고 아름다운 풍속을 헤치는 자

    *妄作威勢 擾官行私者(망작위세 요관행사자) : 거짓으로 세력을 만들어 사사로이 관리를 흔드는 자

    *鄕長 凌辱者(향장 능욕자) : 마을 어른을 업신여기고 욕하는 자

    *守身孀婦 誘脅汚奸者(수신상부 유협오간자) : 수절하는 과부를 협박하고 욕을 보이는 자

      已上 極罰(이상 극벌)

     

     

    *親戚 不睦者(친척불목자) : 친척 간에 화목하지 않는 자

    *正妻 疎薄者(정처소박자) : 정식 결혼한 아내를 박대하는 자

    *隣里 不和者(린이불화자) : 이웃 간에 화합하지 못하는 자

    *儕輩 相毆罵者(제배상구매자) : 친구 간에 서로 때리고 욕하는 자

    *不顧廉恥 汚壞士風者(불고염치오괴사풍자) : 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선비의 품위를 파괴하는 자

    *恃强凌弱 侵奪起爭者(시강능약침탈기쟁자) : 강함을 믿고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분쟁을 일으키는 자

    *無賴結黨 多行狂悖者(무뢰결당다행광패자) : 교활하게 작당하여 륜에 어긋나는 일을 많이 하는 자

    *公私聚會 是非官政者(공사취회시비관정자) : 공사의 회의때 관리와 시비를 거는 자

    *造言構虛 陷人罪累者(조언구허함인죄루자) : 함부로 거짓말을 만들어 남에게 죄를 씌우는 자

    *患難力及 坐視不求者(환난역급좌시불구자) : 남이 어려움에 처 해 있는 것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는 자

    *受官差任 憑公作弊者(수관차임빙공작폐자) : 관직을 맡아서 공직을 빙자하여 민폐를 끼치는 자

      婚姻喪祭 無故過時者(혼인상제무고과시자)~혼인과 초상,제사 때 일이 없으면서도 돌보지 않는 자

    *不有執綱 不從鄕令者(불유집강부종향령자)~기강을 잡지 않고 향령에 따르지 않는 자

    *不服鄕論 反懷仇怨者(불복향론반회구원자)~향론에 불복하고 원망하며 반감을 품는 자

    *執綱徇私 冒入鄕參者(집강순사모입향참자)~기강을 잡아야 할 사람이 사사롭게 향론에 참견하는 자

    *舊官餞亭 無故不參者(구관전정무고불참자)~옛 관리를 전송하는 자리에 연고 없이 불참하는 자 

    已上 中罰(이상 중벌)

     

     

    *公會 晩到者(공회만도자) : 공식회의에 늦게 도착하는 자

    *紊座 失儀者(문좌실의자) : 좌중을 어지럽게 하며 예의를 잃은 자

    *座中 喧爭者(좌중훤쟁자) : 모인 자리에서 떠들거나 다투는 자

    *公座 退便者(공좌퇴편자) : 공식적인 자리에서 편리한 대로 치우치는 자

    *無故 先出者(무고선출자) : 이유도 없이 먼저 나가는 자 

    已上 下罰(이상 하벌)

     

     

     

     

     

     

     

     

     

     

     

     

     

     

     

     

    시습당에서 바라본 제향공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內三門)

     

     

     

     

     

    중앙 3칸은 우물마루이고양쪽은 각 1칸짜리 온돌방이며,   오른쪽 방은 성경재(誠敬齋)라 쓴 편액을 달았다.

     

     

     

     

     

    왼쪽 방은 진수재(進修齋)

     

     

     서원의 강당인 시습당의 전면과

     

     

     

     

     

     

     

     

    뒤쪽 제향공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에서 바라본 시습당 후면 전경이다..

     

     

     

     

     

     

    동재(東齋)인 절차헌(切磋軒)은 정면 5,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강당인 시습당에서 영귀루 쪽을 향할 때 차례로 온돌방 2, 대청 2,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재(西齋)인 조설헌(藻雪軒)은 동재와 대칭으로 된 평면을 하고 있다.

     

     

     

     

     

     

     

     

     

     

     

    서재(西齋)인 조설헌(藻雪軒)은  내부로 들어가는  측문이 있다..

     

     

     

     

     

     

     

     

    서재(西齋)인 조설헌(藻雪軒) 내부 측문을 들어서니...

     

     

     

     

    서원 마당에서 보던 서재(西齋)인 조설헌(藻雪軒)의 뒤쪽 이다...

     

     

    서재(西齋)인 조설헌(藻雪軒)의 안채격인 고직사

     

     

     

     

     

     

     

     

     

     

    서재(西齋)인 조설헌(藻雪軒) 행락채에서 바라본 고직사

     

     

     

     

    서재(西齋)인 조설헌(藻雪軒) 사랑채

     

     

     

     

     

     

     

     

     

     

    서재(西齋)인 조설헌(藻雪軒) 행락채

     

     

     

     

     

     

     

    행랑채에서 바라 본 출입문으로 사원의 강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과는 별도로 서재로만 통하는 출입문이다..

     

     

     

     

     

     

     

     

    행랑채 출입문으로 사원의 강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과는 별도로 서재로만 통하는 출입문으로 서원  밖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다시 서원에서 바라본 서재

     

     

     

     

    부윤구암선생비각(府尹龜巖先生碑閣)

     

     

     

     

     

     

     

     

     

     

    부윤 이정(李楨)의 비각

     

     

     

     

     

     

     

     

     

     

    비각 내부에는 코끼리가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서원입구 영구루 옆에는 서원을 처음 건립한 부윤 이정(李楨)의 비가 서 있다.

     

     

     

     

     

     시습당 옆의 장서실(藏書室)인데 현재는 한옥스테이 할때 화살던지기 체험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제향공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內三門)

     

    사우(祠宇)로 통하는 문으로 평삼문 맞배집이다.   사우(祠宇)서원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의 하나인 제향을 위한 곳이다.   정면 3, 측면 2칸으로 전퇴(前退)가 없다.

     

     

     

     

     

     

    제향공간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은 굳게 잠겨져 잇어 볼수가 없었다..사당(祠堂)은 앞면 3, 옆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집이다.

     

     

     

     

     

     

     

    다시 돌아와 뒤에는 사당(祠堂)을 두고 앞에는 강당인 시습당(時習堂)을 배치하고, 영귀루를 맨 앞에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갖춘 서악서원 현판이 걸린 강당인 시습당을 돌아 나와...

     

     

     

     

     

     

     

     

     

    서원을 나온다...

     

     

     

     

     

     

     

     

     

     

     

     

     

     

     

     

     

     

     

     

     

     

     

     

     

    김유신과 설총최치원 세 사람의 위패를 모두 모신 경주의 서악서원을 나오면서 다시금 지난날의 역사와 선조들을  생각해 볼수 있는 귀한 시간여행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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