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존석불입상이 있는 작고 정겨운 삼불사사찰여행/경상도 2014. 11. 24. 09:06
삼존석불입상이 있는 작고 정겨운 삼불사
2014. 11. 24.
2014. 11. 18. 가는 가을이 아쉬워 혼자서 가을 나들이를 한다. 사천왕사지, 능지탑지, 중생사, 나정, 삼릉, 경애왕릉, 망월사를 보고 바로 인근의 삼존석불입상 ( 보물 제63호 ) 이 있는 삼불사 (경주시 배동 산 65-2 번지)로 향한다.
세계문화유산 경주남산의 서북쪽 끝자락에 터를 잡은 삼불사는 포석정에서 삼릉길을 따라 약 400m 왼쪽에 있다.
삼존석불입상이 있는 삼불사와 상선암 등 남산을 오르는 길목의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에서 내려 아직도 가을빛이 완연한 풍경들을 보며 삼불사로 향한다..
삼불사 입구의 모습들이 참으로 정겹다..
삼존석불입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법당으로 향하는 작은 돌계단이 보인다. 우거진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더 없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또 녹색과 단풍의 아름다움이 햇빛을 가득 담아 화려하지 않는 단아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어디에도 문(門)은 없다.
곰삭은 기둥 위에 작은 기와지붕을 덮어 흉내라도 냄직한 그 흔한 일주문(一柱門)도 없다.
트여진 곳은 모두가 문이다. "마음을 씻고 속된 번뇌를 끊는다"는 '세심단속문(洗心斷俗問)' 이란 글씨가 새겨진 돌기둥이 이 절의 출입구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표시다.
호젓한 포장길끝의 돌계단을 따라 절마당으로 들어서려면 오른쪽에 게시판이 보인다. 게시판을 가린 빛바래 하얗게 된 낡은 포스터를 걷으니 "황혼의 길"이란 글이 붙어 있다
언젠가는 누구나 맞이해야 할 그때 이거늘, 왠지 읽어 내리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꽃이 열매를 맺듯, 오늘의 이 시간도 흐르고 흘러 내 황혼의 어느 언저리에서 되돌아 본 지금 이 시간이, 후회는 있되 술 한 잔에 녹아버릴 정도, 아쉬움의 잔해는 가을바람에 묻어 갈 정도만 남는 아름다운 추억의 열매로 맺혀 있으면 좋으련만....
황혼의 길
늙은이가 되면 설치지도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릴랑 하지도 말고 조심조심 일러주고,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 하소, 그렇게 사는것이 평안 하다오
이기려 하지 마소, 져 주시구려.
한 걸음 물러나서 양보하는 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라오.
돈, 돈 욕심을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고, 언제나 감사함을 잊지를 말고 언제나 어디서나 감사 드려요. 그렇지만 최소한의 돈은 정말로 놓치지 말고 죽을 때 까지 꼭 잡아야 하오.
옛 친구 만나면 술 한잔 사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 푼 줄 돈 있어야, 늘그막에 내 몸 돌보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나. 우리끼리 말이지만 그게 사실이라오.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 체 자랑일랑 하지도 마소.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나갔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 봐도 이 몸이 마음대로 되지를 않소.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늙은이로 살아가시구려. 멍청하면 안되오. 늦었지만 바둑도 배우고 기 체조도 하시구려. 아무쪼록 오래오래 살으시구려.
삼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발굴된 유물로 보아 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역사는 알 수 없다.
절이 있는 남산은 신라의 4대 영지로 불교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오랫동안 폐사로 남아 있던 것을 근래에 들어와 중창하였다.
건물로는 법당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삼존석불입상과 석탑 등이 전한다. 이 중 삼존석불입상은 남산의 여러 불교문화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며 일명 삼체석불(三體石佛)로 불리는데, 절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삼불사 법당과 석탑
마당 한켠에 서 있는 석탑에 눈길이 머문다. 그런데 아무리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려해도 그 모습이 어색하다.
탑신의 상부와 하부의 부조화는 이 일대가 신라의 찬란한 불교문화유적지임을 감안 한다면, 불탑을 새로 조성하거나 남은 잔해를 복구할 때, 좀 더 신중한 문화적 고찰이 요구되고 있다.
삼불사 경내의 3층석탑인데 2개의 폐탑재들을 한데 모아 하나의 탑을 만들었다....
삼불사석탑은 흩어진 탑재를 모아서 새로 쌓은 듯한 느낌인데 사층석탑이 없는데 유일한건지 탑재를 그냥 막 쌓아놓은건지 알수 없다...
경주 남산은 워낙 문화재의 보고(寶庫)로서 유명세를 타는지라 산행과 답사를 즐기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인 이 볼품없는 작은 암자에 머무르는 시선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전각의 편액은 물론이고 기둥에 주련(柱聯) 하나 걸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주련(柱聯) 대신에 기둥에 걸린 것 "금오산 삼불사(金鰲山 三佛寺)"란 간판 뿐이다.
좁은 법당에는 좌,우의 협시불 없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법당의 신중탱
법당 안의 종
전각의 편액은 물론이고 기둥에 주련(柱聯) 하나 걸린 것을 찾아볼 수 없고 주련(柱聯) 대신에 기둥에 걸린 것 "금오산 삼불사(金鰲山 三佛寺)"란 간판 뿐이다.
삼불사 불당의 벽에 그려 있는 국화의 모습이 일품이다.
삼불사 마당에서 내려다본 주차장
법당과 산신각의 모습이다.
삼존석불입상의 왼쪽 뒷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작은 언덕을 두고 법당과 산신각이 위치하고 있다.
법당 옆 산신각의 모습이다
산신각 안의 산신탱
산신탱 좌측의 호랑이 내부벽화
산신탱 우측의 연화도 내부벽화
노송이 아름답게 둘러싸인 삼불사를 뒤로하고 올라가면....
삼불사 바로 옆에 보호 전각에 모셔진 배리석불입상이 있다
삼불사에는 소박하고 단순한 절 모습과는 달리, 보물 제63호로 지정된 7세기경의 신라시대 대표적 석불인 배리석불입상(拜里石佛立像)이 경주 남산과 함께 들어왔다.
삼존석불입상은 본래 땅에 묻혀 있던 것을 1923년에 발굴하여 다시 세운 것으로, 가운데 불상은 2.6m이고, 좌우 보살상은 각각 2.3m 크기이다. 그 중에서도 연화대좌에 있는 왼쪽 보살상이 가장 뛰어난 조각품이다. 광배에 다섯 불상을 다시 새겼는데, 불상 뒤에 광배가 또 있어 매우 독특한 양식을 보여 준다. 7세기 때의 작품으로 보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
이 삼존불상은 원래 이 부근의 선방골에 흩어져 누워 있던 것을 1923년에 이곳으로 한데 모아 세워놓은 것이다.
지금이야 그럴 일 없겠지만, 한 때는 돌부처의 코를 갈아 마시면 남자아이를 잉태한다하여 석불의 코가 수난을 당하였고, 과부나 처녀가 임신을 하면 낙태한다하여 석불의 귀를 갈아 마시는 수난을 당하였다.
무지한 미신의 소치와 배타적종교의 그릇된 광신도들이 선조들의 찬란한 유산을 망쳐 놓았다.
이 곳의 석불 역시, 코가 없거나 희미한 형체로만 남아있다.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제63호)
경주 남산 기슭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23년 지금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이 석불들은 기본양식이 똑같아 처음부터 삼존불(三尊佛)로 모셔졌던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본존불은 머리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이중으로 되어 있으며, 표면이 매끄럽게 표현되었다. 어린아이 표정의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아래로 뜬 눈, 다문 입, 깊이 파인 보조개, 살찐 뺨 등을 통하여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佛性)을 표현하고 있다.
목이 표현되지 않은 원통형의 체구에 손을 큼직하게 조각하였는데,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올리고 있다. 묵직해 보이는 옷은 불상을 전체적으로 강직해 보이게 하지만, 어린아이같은 표정과 체구 등으로 오히려 따뜻한 생명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보살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는 허리를 뒤틀고 있어 입체감이 나타난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내려 보병(寶甁)을 잡고 있는데, 보관에 새겨진 작은 부처와 더불어 이 보살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른쪽의 보살 역시 잔잔한 내면의 미소를 묘사하고 있는데, 무겁게 처리된 신체는 굵은 목걸이와 구슬장식으로 발목까지 치장하였다.
조각솜씨가 뛰어난 다정한 얼굴과 몸 등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면서도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종교적 신비가 풍기고 있는 작품으로 7세기 신라 불상조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정말 웅장하고 멋있는 삼존입상들이다
중앙의 본존불
대세지보살상
왼쪽의 대세지보살상은약 2.3m의 높이로, 연꽃이 위로 솟게 표현된 앙련(仰蓮)과 아래로 내린 복련(覆蓮)의 이중(二重) 연화대좌 위에 서 있다.
삼존불 가운데 가장 조각이 섬세하며, 목에서 다리까지 장엄구(莊嚴具)를 드리우고 오른손으로 감싸쥐고 있다. 얼굴 모습은 본존불과 마찬가지로 부드럽고 자애로운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으며, 왼손은 어깨까지 치켜들어 불경을 쥐고 있다. 무릎 부위에서 불상이 잘려 붙여놓은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광배에는 작은부처 다섯을 새겨 놓았는데,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식의 불상에는 5,7,9개의 수로 이를 새긴다. 이 불상의 작은 부처들도 또한 작은 광배를 가지고 있어 특이하다. 광배의 가장자리는 구름무늬로 둘렀다.
삼존불의 뒷모습. 둥글거나 타원형인 광배(光背)는 불상과 한 돌로 세워져 있다
대세지보살상의 뒷 모습
보살의 겉옷인 천의(天衣)와 아래 치마인 군의(裙衣)를 입은 모습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그림에 등장하는 창 넓은 모자에 긴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연상되는 모습이다.
불보살은 시공을 초월하여 나타내 보이는 형상에 구속됨이 없으니, 모네의 눈에 비친 그림속 여인 또한 그 화현(化現)의 모습에 무슨 분별을 둔 구속이 있으리오....
중앙의 아미타불상
부처의 법의(法衣)는 U자형의 두꺼운 통견(通肩)으로 처리하였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풍만하고 단아하며 입가의 미소가 뛰어나다.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모두 펴 위로 향해 치켜든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팔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손바닥을 정면을 향하도록 편 여원인(與願印)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케하며,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덕(德)을 보이는 수인(手印)이다.
오른쪽의 관세음보살상
세 불상중 조각기법이 가장 단순하며 손에 들고 있는 지물(持物)로 감로수병을 들고 있다. 전체적으로 몸을 뒤로 젖혀 당당하고 위풍스런 느낌을 준다.
마음을 씻고 세속의 속된 번뇌를 끊고 들어오라는 어려운 주문을 하고 있다.
중생에게 뭘 그리 바라심이 많은지....
오유지족(吾唯知足)한 삶만이 이 주문에 응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유하되 집착함이 없고 작은 것에 만족하여 이를 소중히 여기는 삶이다.
마음이 부자인 삶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삶이다......
오늘 따라 암자는 인적이 없다.
법당 안도 기웃거려 보고, 산신당도 기웃거려 봐도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스님도 안 계시고 중생도 안 보인다.
다만 송림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소리만이 간간히 들릴 뿐....
암자는 그야말로 조용하다.
암자 뒤편의 송림이 너무나 멋있다. 늙고 젊은 소나무 들이 마치 오백나한처럼 서 있다.
암자를 나온다.
그런데 늘 무겁게 느껴졌던 마음이 어인 일인지 암자를 나오자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낀다.
왤까?
삼불사에서....
가을바람이 홍갈색 숲에 흩뿌리고, 오후 바람에 골짜기는 추워 떨고 있다.
도토리나무에서 밤도토리가 툭툭 떨어져 입을 벌리고 촉촉히 젖어 갈색을 띄고 웃는다.
내 인생에도 가을이 찾아와 바람은 찢어져 나간 나뭇잎을 딩굴게 하고 가지마다 흔들어 댄다.
열매는 어디에 있나?
나는 사랑을 꽃피웠으나 그 열매는 괴로움이었다.
나는 믿음을 꽃피웠으나 그 열매는 미움이었다.
바람은 나의 앙상한 가지를 쥐어 뜯는다...
~ 삼불사에서 늦가을의 산책이었다 ~
'사찰여행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강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 연호사 (0) 2015.01.14 용추사 (경남 함양군) (0) 2014.12.16 작고 아담한 대한불교 원효종 망월사(경북 경주시) (0) 2014.11.23 산정 암자 주사암(경북 경주시) (0) 2014.11.19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이 있는 중생사(경북 경주시) (0) 2014.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