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천년고찰 공주 마곡사 (충남 공주시)
    사찰여행/충청도 2014. 10. 5. 23:40

    천년고찰 공주 마곡사 (麻谷寺)   

     

     

     

    2014.  10.  5.

     

     

    2014. 10.  2.   포항문화원 산악회에서 39명을 태우고 태화산 마곡사로 향한다....

    39명이 충남 공주시에 있는 마곡사 솔바람길을 산행 후 마곡사 산내암자 백련암과 마곡사도 덤으로 볼수 있었다...

    천년고찰의 향기가 길따라 흐른는 '천년고찰 공주 마곡사(麻谷寺)'로....



     

     

     

     

     

    마곡사 무료 주차장 화장실이 그럴싸 하다

     

     

     

     

     

    마곡사 초입의  할머니들이 가지고 나오신 건강한 먹거리들...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다가, 구름재를 넘어 솔바람이 되어 공주 마곡사에 닿았다.

     

     

     

     

     

     

    마곡사 일주문(一柱門)이다...

    "태화산마곡사(태화산마곡사)" 현판은 서예가 여초 김응현(如初 金應顯, 1927~2007)의 글씨다.

     

     

     

     

     

     

     

     

     

     

     

     

     

     

     

     

     

     

     

     

     

     

     

     

     

     

     

     

     

     

     태극모양의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

     

     

     

     

     

     

    천년고찰인 양산 통도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   순천 선암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등에 이어 2013년 12월에는  공주 마곡사도 포함한  한국의 대표 사찰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이에 따라 수행공간이자 역사문화공간으로 전통사찰의 중요성과 가치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질 것으로 기대된다.

     

     

     

     

     

     

    마곡사 매표소를 지난다...

     

     

     

     

     

     

     

     

     

     

    우리나라 사찰이 대부분 대 그러하지만 이곳 마곡사도 아주 좋은 자리에 터를 잡았다.   사찰 중앙으로 개울도 흐르게 되어 있는게 대단하다....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의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자리잡고 있는 「마곡사」는 동학사,  갑사,  신원사를 포함해서 대전과 충남 10여개 시군구에 있는 118개의 사찰을 관리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이다.

     

     

     

     

     

    매표소에서 매표하고 10분 정도 걸어가 본다..

     

     

     

     

     

     

    천년고찰의 향기가 길따라 흐른다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걸었다..   몇 구비 돌아서야 마곡사가 보였다,

     

     

     

     

     

    마곡사가 자리 잡은 태화산이 태극형을 띠고 있어 <택리지>, <정감록> 등의 여러 비기(祕記)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는데 사찰을 끼고 흘러가는 태화천 역시 태극의 형상으로 휘어지며 흘러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로서, 사찰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으로 신라 선덕여왕9년(640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慈藏)이 선덕여왕에게서 하사받은 전(田) 200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通度寺)·월정사(月精寺)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자장이 절을 완공한 뒤 낙성식을 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삼대[麻]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麻)’자를 넣어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두번째는 신라의 승 무염(無染)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普徹)을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절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짦은 길이지만 나무가 양켠에 도열해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마곡사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머문 백범당이 있고 해방 후 백범 선생님께서 식수하신 향나무가 아직까지 자라고 있다..

     

     

     

     

     

    마곡사 입구에 있는 돌로 만든 안내석.  태화산 마곡사라고 되어 있다.

     

     

     

     

     

     

      영은암 갈림길에서 우측 마곡사방향으로...

     

     

     

     

     

     

     

     

     

     

     

    마곡사 해탈문입구, 갈림길에서 생골마을방향으로 이십여m를 진행하고...    바로 좌회전해서 산행을 시작 한다 .

     

     

     

     

     

    창건이후 신라말부터 고려초까지 약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던 것을 명종2년(1172년)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보조가 처음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은 오히려 국사를 해치려 하였다.

    이에 보조가 공중으로 몸을 날려 신술(神術)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서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였더니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도둑들에게서 절을 되찾은 보조는 왕에게서 전답 200결을 하사받아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효종2년(1651년)에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31본산(本山)시대에는 도내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현재 이 절은 충청남도 70여 개 말사(末寺)를 관장하고 있다.

     

     

     

     

     

     

     

     

     

    마곡사 전각 비치도 이다

     

     

     

     

     

     

     

     

     

     

     

    마곡사의 가람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남원과 북원으로 두 개의 가람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이며,   남원은 영산전을 중심으로 일곽을 이루고,   북원은 대광보전(大光寶殿)을 중심으로 별도의 일곽을 이룬다.

     

    전체 규모나 건물들의 크기로 보면 북쪽의 가람이 본절이고   입구 쪽의 영산전 일곽은 별도의 암자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북원의 입구인 해탈문(解脫門)이 남원 가람 앞에 세워져,   북원에 진입하려면 해탈문에서 개울을 건너 들어가야 하는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천년고찰이라는 말이 느껴지는 첫번째 건물이다..

    전체 규모나 건물들의 크기로 보면 북쪽의 가람이 본절이고 입구 쪽의 영산전 일곽은 별도의 암자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북원의 입구인 해탈문(解脫門)이 남원 가람 앞에 세워져, 북원에 진입하려면 해탈문에서 개울을 건너 들어가야 하는 특이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영산전 (보물 800호)

     

     

    극락교를 건너기전 영산전을 놓치면 곤란하다.  마곡사 건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어서 나이로 따지면 가장 큰 형님이기 때문이다. 배홀림의 주심포 건물로 납작한 맛배지붕을 하고 있다.  막돌을 천연덕스럽게 쌓아놓은 기단석이 의외로 높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석가모니불과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를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건물은 천불(千佛)을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키면서(1651) 고쳐 지은 것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해탈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는 조선시대의 건물로 건축 양식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마곡사 영산전 주련의 글은 김시습의 필체가 확실하다.

    세조 어필이라는 영산전 편액과 김시습의 필체로 보이는 주련이 대조적이다.

     

    앎은 대각속에 나오는데      (知生大覺中)

    세상에 모두 새어 버리네     (有漏微塵國)

    모두 앎이란 살아 나는것     (皆依知所生)

    바다 처러 피어나네            (如海一漫發)

    원래 사라지고 없거늘         (溝滅空本無)

    황차 유불선에 있을 것인가  (況復諸三有)

     

     

     

     

     

    현판은 세조가 썼으며, 왼편에 '世祖大王御筆'이란 작은 글씨가 보인다.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金時習)을 만나기 위해서 이 절에 왔다가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남긴 필적이라 한다.

     

     

     

     

     

     

    영산전 안에는 불단에 7여래와 천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법당 안에는 영산회상도 밑에 부처가 모셔진 것이 아니라 천불이 모셔져 있다. 서로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천 개의 부처를 살펴보는 맛도 또하나의 즐거움이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다.

     

     

     

     

     

     

    일곱분의 애래상(과거칠불)과 작은 불상 1000분을 조성하여 봉안한 영산전의 신중탱이다...

     

     

     

     

     

     

    강당으로 사용하는 흥성루

     

     

     

     

     

     

     

     

     

     

    영산전 앞에 있는 요사 매화당 ....

     

     

     

    영산전 앞에 있는 요사  벽안당(碧眼堂)

     

     

     

     

     

     

     

     

     

     

     

     

     

     

     

     천년고찰이라는 말이 느껴지는 일주문 지나 첫번째 문이다..

     

     

     

     

     

     

    마곡사 해탈문 ( 충남 문화재자료 제66호 )

     

     

    마곡사의 정문으로 이 문을 지나면 속세를 벗어나 불교 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한다.

    중앙 통로 양쪽 편에 금강역사상과 문수. 보현 동자상 등을 모시고 있다

     

     

     

     

     

     

     

     

     

     

     

     

     

     

     

     

     

     동자승과 금강역사상이 지키고 있는 마곡사의 정문이다..

     

     

     

     

     

     

      마곡사 해탈문에 서 있는 금강역사가 조금은 지쳐 보인다.

     

     

     

     

     

     

     

     

     

     

     

    해탈문안에는 수문장 역할을 하는 금강역사와  행원의 상징인 보현동자가 코끼리를  타고 있으며,  지혜의 상징인 문수동자가 사자를  타고 있다

     

     

     

     

     

     

     

     

     

     

     

     

     

     

     

     

     

     

     

    가까히 다리를 낼 수 있음에도 태극 문양의 개울 때문인지,  오솔길도 자연에 순응하듯 휘감아 돌고 있다.

    가장 먼저 보이는 해탈문은 담벼락도 없다.  

    번뇌와 망상의 그물에서 벗어나는데 무슨 격식이 필요할까?  

    해탈문엔 큼직한 금강역사와 문수, 보현보살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진흙이 떨어져나가 너덜 너덜거려 안스럽게 보인다.

    금강역사의 주먹이 유난히 커서 사악한 마음은 한방에 날릴 태세다.

     

     

     

     

     

     

     

     

     

     

     

     

     

     

     

     

     

     

     

     

     

     

     

     

     

     

     

     

     

     

     

    마곡사 천왕문 ( 충남 문화재자료 제62호 )

     

    조선 후기에 세웠으며, 건물에 남아 있는 기록으로 보아 1910년에 고쳐 지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서 두번째 있는 문인 천왕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천장은 지붕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안쪽에는 동서남북 4지역을 지키는 사천왕상과 그림이 있다

     

     

     

     

     

     

     

     

     

     

     

     

     

     

     

    천왕문은 동서남북의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안치되어 있다.

     

     

     

     

     

     

    해탈문 다음 문인 천왕문에 화려한 보관 쓴 사천왕의 표정은 해탈문의 금강역사보다 조금은 밝아 보인다.

     

     

     

     

     

     

     

     

     

     

    사천왕이 찬 귀면 허리띠는 또 얼마나 회화적인지....

     

     

     

     

     

     

     마곡사 천왕문에서 사천왕에게 짓밟힌 눈 셋 달린 요괴는 기가 죽었다.

     

     

     

     

     

     

     

     

     

     

     

     

     

     

     

    마곡사 명부전  ( 충남 문화재자료 제64호 ) 

     

    영산전 옆에는 명부전이 자리잡고 있다.   영산전이 단정스런 느낌이 든 반면 명부전은 추녀가 높아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새의 날개짓을 하고 있다.   만약 영산전처럼 기단석이 높았다면 무척이나 부담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1939년에 건립되었으며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모시고 있어 지장전·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명부전의 지장삼존(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명부시왕을 모신 곳이다.   안에는 ㄷ자형의 불단을 만들어 지장삼존, 명부시왕을 봉안 했다.

    지장보살은 모든 인간을 교화시키는 역할을 맡았으며, 시왕은 염라대왕을 비롯한 10명의 지옥 심판관이다.

     

     

     

     

     

     

     

     

    지장시왕상과 연잎모자를 쓴 동자의 모습..

     

     

     

     

     

     

     

     

     

     

     

     

     

     

     

     

     

     

     

     

     

     

     

    명부전 앞의 요사체

     

     

     

     

     

     

     

     

     

     

     

     

     

     

     

     

     

     

     

     

     

     

     

     

     

     

     

     

     

     

     

     

     

     

     

     

     

     

     

     

     

     

     

     

     

     

    명부전 뒤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산신각(山神閣)가는 길...

     

     

     

     

     

     

    산신각에 모신 신이 할배뿐 아니라 여자 산신 안제 부인도 있다..

     

     

     

     

     

     

     

     

     

     

     

    절묘한 가람배치

     

    극락교가 나타난다.   '春麻谷'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그래. 세속의 때를 벗고 해탈에 이르러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거야.'   울창한 나무가 개울을 향해 배례를 하고 있으며 큼직한 물고기가 한가하게 노닐고 있다.

    이 개울이야  말로 남북분단의 원흉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은 절터를 절묘하게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극락교와 천왕문,  해탈문이다.

    해탈문,  천왕문을 개울 남쪽에 세워 남쪽 영역도 북쪽의 품안에 넣은 것이다.   그리하여 홀로 떨어진 영산전,  명부전 그리고 여러 요사채도 자연스레 북쪽 영역에 포함이 된 것이다.   지형의 약점을 절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선과 악도 두 개가 아닌 하나며,   미혹함과 깨달음도 하나라는 진리를 가람배치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사천왕문을 지나 마곡사 북원과 남원을 연결하는극락교를 건너면 곧바로 대광보전이 있는 법계(法界)로 들어가게 되는데  극락교를 건너 본당 방향으로 간다..

     

     

     

     

     

     

    천왕문을 지나 태화천 위에 놓인 극락교(極樂橋)를 건너면 비로소 극락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극락교(極樂橋)를 건너 부처님의 공간인 불국의 세계로...

     

     

     

     

     

    동전을 던져 소원을 빌어보는 거북상이다..

     

     

     

     

     

     

    극락교 아래를 유유히 흐르는 마곡천, 태화천, 희지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맑은 불이 흐르는 태화천(泰華川),  태화천을 건너 영산전 등 스님들의 수행공간에서 부처님의 시계인 극락세계로 넘어갔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광보전(大光寶殿)이다.

     

     

     

     

     

     

     

    마곡사 대광보전 영역이다..

    절마당 한 가운데에 서있는 오층석탑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ㅁ'자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소나무에 달려있는 붉은 연등이 마치 꽃같이 보인다..

     

     

     

     

     

    반갓집 분위기를 풍기는 건물들...

     

     

     

     

     

     

     

     

     

     

     

    극락교를 지나면 맨 먼저 화려한 범종루가 눈에 들어 온다...

     

     

     

     

     

     

    마곡사 범종루(梵鐘樓)

     

    범종(梵鐘)을 비롯하여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등 사물(四物)을 갖추고 있다.

     

     

     

     

     

     

     

     

     

     

     

     

     

     

     

     

     

     

     

     

     

     

     

     

     

     

     

     

     

     

     

     

     

    대광보전과 오층석탑이 있는 마곡사 중심영역이다...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640년(백제 무왕 41년)에 자장(慈藏)이 창건하였으며, 고려 명종 때 1172년 보조국사가 중수하고,   범일이 재건하였으며,   다시 도선국사가 중수하고,   각순이 보수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려 '영산전(靈山殿)'이라고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대사찰이었는데,   현재는 대웅보전(보물 801)·  대광보전(보물 802)·  영산전(보물 800)·  사천왕문·  해탈문 등의 전각들이 있다.

    이 밖에 사보(寺寶)로는 5층 석탑 (보물 799) ·  범종 (지방유형문화재 62) ,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청동향로(지방유형문화재 20)가 있고,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보물 270) 및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269)이 있다.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公州 麻谷寺 大光寶殿)dms  보물 제802호로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해탈문·천왕문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이 전각(殿閣)은 대웅보전(大雄寶殿)과 함께 마곡사의 주불전(主佛殿)으로 전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이다.  대광보전의 고색창연한 나뭇결, 풍광에 씻긴 낡은 단청이 전각의 연륜을 말해 주는 것 같다. 전각은 조선 후기부터 많이 썼던 다포(多包)양식의 공포(栱包)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앞면에는 3짝씩 문을 단것도 이색적이다.

     

     

     

     

     

     

    마곡사 대광보전 현판이다..  大光寶殿의 현판은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2~1791)의 글씨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건물로 처음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불에 타버렸던 것을 조선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여기에는 과거불(過去佛:法身佛)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건물의 전면을 향하여 불단을 배치하지 않고 서쪽을 등지고 동쪽을 향해 있는 것이 영주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의 비로자나불과 공통적이다. 그 이유는 부처가 사는 극락정토(極樂淨土)가 동쪽에 있다고 믿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기둥 가운데가 통통한 ‘배흘림기둥‘도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너무나 유사하다.  세련미와 안정감을 더해주는 배흘림기둥은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물로 통한다.

     

     

     

     

     

     

    후불탱화(後佛幀畫)로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문화재 제 191호)가 봉안(奉安)되어 있으며 

     대광보전은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후기 건축사(建築史)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하여 대학교 건축학도들이 한 번 쯤은 찾는다고 한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은 서쪽으로 마련하였는데 불단 위에는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닫집을 정교하게 꾸며 달았다.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광보전 비로자나부처님 뒷벽에 그려져 있는 백의관음보살. 보는 사람들이 저절로 신심을 불러일으키는 관음보살로 유명하다.

    대광보전 외벽의 포벽에 그려진 백의관음도는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찾아보기 힘들다.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맨발로 물결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몸을 기울여 그림 오른쪽에 합장해 있는 남순동자를 굽어보고 있다.

    후불벽에 그려진 백의관음도는 마곡사 벽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고주 사이에 한지를 여러겹 발라 후불벽을 만들어 일반 화폭에 그려진 것처럼 세밀한 묘사를 보여준다.

    섬세하게 그려진 암벽의 세밀한 물결과 명암표현, 굽이치는 물결과 포말 등은 화승의 노고를 짐작하게 한다.

     

    관음보살은 물결이 넘실거리는 해상 위의 기암괴석에 앉아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백색의 장포(長袍)를 입고 정면을 향해 반가좌를 한 모습이다,

    두광과 신광을 갖추었으며 상호는 초승달 모양의 둥근 눈썹에 꼬리가 위로 올라간 가늘고 긴 눈,  두툼한 코에 작고 붉은 입술을 표현했다. 양손은 반가좌한 오른쪽 다리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고,  맨발인 상태의 왼쪽 발은 홍련의 청록색 연밥을 밟고 있다.

     

    옷자락 사이로 빠져나온 긴 머리칼이 양쪽으로 3갈래씩 드리워져 있으며, 입상의 화불(化佛)이 표현된 보관을 쓰고 목에는 영락(瓔珞)으로 장식했다.

    옷자락의 주름을 비롯해 연꽃의 꽃잎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매우 섬세하게 그렸다.

    또한 보살의 양쪽 반석위에는 관음보살을 향해 합장 배례하는 남순동자가 화면 우측에 버들가지가 꽂힌 흑색의 정병이 좌측에 그렸다. 배경을 이루는 부분은 모두 먹으로 표현한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암벽의 세밀한 단층과 명암표현에서 부터 굽이치는 물결과 포말, 우측상단에 표현된 대나무 잎 등 섬세한 묘사는 벽화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순조로운 출산과 어린아이의 생명을 보살펴 준다는 백의관음(白衣觀音).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바꾸어 나타나는데, 흰 옷을 걸치고 있는 백의관음이 그 중 하나로 백의관음신앙은 인도에서 발생했다.

    중국의 수월관음(수월관음)이 형성되기 이전에 성립됐으나,   당나라 말부터 수묵화의 발달과 선종의 융성에 딸 수월관음상에 흰옷을 입힘으로써 두 신앙의 융합이 이뤄졌다.   이를 벽화나 탱화 등 불교미술로 표현한 것이 ‘백의관음도’이다.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에 그려져 있는 백의관음도 벽화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마곡사 백의관음도 벽화는 마곡사 벽화를 대표할만한 수작으로 꼽힌다

     

    보물 제802호로 지정돼 있는 마곡사 대광보전에는 외부 남측면 포벽과 내부 서측면 후불벽에 2점의 백의관음도가 그려져 있다.

    외부포벽에 그려진 백의관음은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맨발로 물결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몸을 옆으로 기울여 화면 오른쪽에 합장해 있는 남순동자를 굽어보고 있다.

    또 두 손은 앞으로 모았는데 왼손에 정병(淨甁)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감로수가 쏟아지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내부에는 불상이 안치된 불단이 동쪽에 있어서 내부 공간의 방향과는 직각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불규칙하게 세워진 고주들의 기둥열은 내부의 공간적 방향성과도 무관하다.. 아마도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천장의 무늬가 아름다운 대광보전

     

     

     

     

     

     

    대광보전 마루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30평 정도의 삿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조선 후기에 이름 없는 앉은뱅이가 이 절을 찾아와서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는 불구를 고치기 위해서 백일기도하는 동안 틈틈이 이 삿자리를 짰다.

    이 삿자리는 참나무를 한 끝에서 잇고 또 이어 한 줄로 완성한 것인데, 그는 이 자리를 짜면서 법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에게 자신의 불구를 낫게 해줄 것을 기도하였다.

    백일 뒤 일을 다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법당문을 걸어 나갔다고 한다.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에 불꽃까지 길게 늘어뜨렸다.

     

     

     

     

     

     

     

     

     

     

     

     

     

     

     

     

    가뜩이나 단순한데다가 칠까지 다 날아간 문살, 그리고 얕게 돋을 새김한 주련에서 이 전각의 무게를 느낀다.  

     

     

     

     

     

     

    대광보전의 단청이 상당히 퇴색되어 고찰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전면 창호에는 다양한 꽃살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문살이 내소사의 그것처럼 꽃무늬로...

     

     

     

     

     

     

     

     

     

     

    모퉁이 풍경 걸린 보 머리도 아름답다.

     

     

     

     

     

     

     

     

     

     

     

     

     

     

     

     

     서쪽 벽화에서 금강역사를 다시 만나고..   금강역사는 보통 둘인데, 이 벽화엔 넷을 그려 놓았다.

     

     

     

     

     

     

     

     

     

     

     

    앞면 5칸에는 3짝씩 문을 달았는데 문살은 꽃 모양을 섞은 조각으로 장식하였고 가운데 칸 기둥 위로 용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대광보전은 1831년에 중창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비록 단층의 불전이지만, 기둥과 부재들이 견실하게 결구되어 있어 뒤편 중층 대웅보전보다는 훨씬 우람하고 견고해 보인다..

    동남부 모퉁이의 기둥은 지름이 1m 정도로 지나칠 만큼 두터운데,   뚜렷한 민흘림이 있는 이 기둥은 뒤편 대웅보전으로 동선을 유도하는 역할도 일부 담당한다..

     

     

     

     

     

     

     

     

     

     

     

     

     

     

     

     

    앞 건물이 대광보전이고 뒷건물이 대웅보전이다.   전자가 수평이라면 후자는 수직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대광보전은 아주 큼직한 건물이다.   지붕도 아주 넓다.   탑의 뾰족한 상승감 때문에 그걸 보완하듯 옆으로 길게 늘려놓은 것이다.  듬직한 기둥도 민홀림으로 안정감있게 서있다.

    대광보전 현판은 영정조시대의 화가 '표암 강세황'의 글씨란다.   표암의 자화상을 국립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섬세함에 놀랐는데..   글씨까지 만나니 그저 반가울 뿐이다.

     

     

     

     

     

     

     

     

     

     

     

    마곡사 오층석탑 ( 보물 제799호 )

     

    절마당에 우뚝 서 있는 이 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마곡사에 현존하는 유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대광보전 앞마당 중앙에 세워진 오층석탑으로 오층석탑은 8.67m의 높이로 가늘고 긴 외관을 가지며, 낮은 체감율로 불안정하게 보이는 고려 중기의 탑이다

     

     

     

     

     

     

    탑신은 주목할 것이 없지만,  상륜부는 이른바 '풍마동(風磨銅)'이라는 특수한 제작물이 설치되어 있어 매우 독특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는 티베트와 네팔 일대에서 발전한 라마교의 불탑을 축소해놓은 형식으로,   양양의 낙산사(洛山寺)탑 정도에서 간략한 형태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희귀하다고 한다.

     

     

     

    세계제국 몽골은 라마교를 국교로 삼았고,   원나라 간섭기에 고려에도 라마교가 유입되어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마곡사 오층석탑의 상륜부는 그 당시 라마교의 영향을 간직하고 있는 흔적이라 한..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대광보전 앞에 있는 마곡사 오층석탑 (麻谷寺 五層石塔)은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탑은 고려 말기에 원나라 라마교(티벧)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으로 다보탑이라고도 불린다.  

    2층 기단(基壇) 위에는 5층의 몸돌(塔身)을 올린 후 머리 장식을 올렸다.  

    일층 몸돌에는 자물쇠를 새겼으며,   이층 몸돌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방불(四方佛)을 새겼다.

    머리장식으로는 라마탑에 보이는 풍마동(風磨銅:구리의 하나) 장식을 두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희귀(稀貴)한 사례라고 한다.

     

     

     

     

     

     

     

    탑의 머리와 사방불(四方佛) 그리고 기단

     

     

     

     

     

     

     

    기존 사찰에서 흔히 보던 탑모양이 아니다.

    높은 기단석 위에 날씬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꼭대기에는 금속으로 된 호리병까지 얹어 있어 더욱 색다른 모습이다.  바로 라마식 탑모양이다.

    고려 말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으로 전세계 3개밖에 없다는 탑이다.   모방은 했어도 손 맛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지붕선의 반전과 새겨진 부처 모습은 영락없이 고려의 것이다.

     

     

     

     

     

     

     

     

    오층석탑과 심검당

     

    탑 오른쪽에 요사채가 자리잡고 있고, 그 담벼락에 우직한 굴뚝이 세워져 있다. 탑은 날렵하게 하늘로 치솟고 있고, 굴뚝은 질박함을 보여주고 있어 조화를 이룬다.

     

     

     

     

     

    심검당은 대광보전을 맡아보는 사람들의 숙소인 노전이며 대방의 역할을 하는 대규모 요사이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심검은 지혜를 벤다는 의미로 '반야지혜'를 상징한다.

     

     

     

     

     

     

    심검당의 현판은 정조 연간에 청백한 관리로 이름난  송하 조윤형의 글씨이다

     

     

     

     

     

     

     

     

    심검당 좌측 위로 麻谷寺 편액은  근래의 명필인 해강 김규진의 멋진 초서현판이 걸려있다.

    스님의 요사채인 심검당은 아늑하다.. 현판에 난초와 대나무를 그린 것은 당시 청나라의 기풍을 따랐을 것이다.   해강의 이런 풍의 글씨는 강화도 전등사에서도 본 적이 있어 더욱 반갑다.

     

     

     

     

     

     

     

     

     

     

     

     

     

     

     

    마곡사 심검당 및 고방 ( 충남 유형문화재 제135호 )

     

    심검은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이며, 고방은 창고건물이다.

    심검당이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조 21년(1797)년에 보수공사가 이루어진 기록과 편액에 적힌 글에 의하면 철종 7년(1856)년에 고치고 1909년에 기와를 다시 올렸다고 한다.

    ㄷ자 평면에 자연석을 쌓아 1층의 기단을 형성하고 주춧돌을 놓은 위에 둥글고 네모난 기둥을 혼합하여 세웠다.   고방은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의 남향집이다.

     

     

     

     

     

     마곡사 스님 수행공간이다...

     

     

     

     

     

     

     

     

     

     

     

     

     

     

     

     

     

     

     

     

     

     

    대웅보전 올라가며 스님 수행공간과의 경계담이 참으로 정겹다...

     

     

     

     

     

     

    고방은 창고건물이다, 고방은 앞면 4칸·옆면 1칸 규모의 남향집이다.   심검당 앞마당엔 이렇게 예쁜 창고가 자리잡고 있다. 

     

     

     

     

     

     

     

     

    대웅보전 마당에서 바라보는 마곡사의 스님 수행공간 이다..

     

     

     

     

    염화당(拈花堂)·연화당(蓮華堂)등 스님들이거처하는 요사채가 매우 많다.

     

     

     

     

     

     

     

    대웅보전에서 내려다 본 마곡사 연화당(蓮華堂) 등 부속 건물들.....

     

     

     

     

     

     

    대웅보전에서 바라본 지붕선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포근한 산세와 비스듬한 지붕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저 안에서는 끊임없는 수행이 계속될 것이다.

      

     

     

     

     

     

     

     

     

     

     

     

     

     

     

     

     

     

     

     

     

     

     

     

     

     

     

     

     

     

     

     

     

     

     

     

     

     

     

     

     

    마곡사 대웅보전 (보물 801호)

     

    다시 계단으로 몇걸음 올라서면 대웅보전이 나온다.   높은 지대에 2층으로 세워 더욱 상승감이 돋보인다.   2층이지만 내부는 통층이다. 화려한 단청에 포작이 무척 화려하다... 대웅보전은 대략 19세기 전반기에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대웅보전은 1651년에 각순이 중수한 것으로, 현판은 김생(金生)의 글씨라고 한다.  

    특이한 2층 건물로 조선 중기의 사원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며, 건물의 기둥을 안고 한바퀴 돌면 6년을 장수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건물 내부 중심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불(藥師佛)로 마곡사대웅보전 목조삼제불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5호)을 모시고 있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상은 17세기의 시대적 특징을 보이면서도 둥글고 작은 얼굴에 짧은 비례라든지 주름의 폭이 넓으면서 그 끝단을 부드럽게 둥글게 처리한 점,  그리고 왼쪽 무릎 위에 유난히 크게 표현된 소매자락 등은 같은 시기 다른 불상과는 다른 점이다.

    17세기 삼세불상을 대표하는 목조삼세불상 가운데 하나로 조형적으로 우수하고 연구가치도 높다.

     

     

     

     

     

     

     

     

     

     

     

     

    대웅보전 산신탱 그림 머리에 연잎을 쓴 동자가...

     

     

     

     

     

     

     

    대웅전 안에 있는 싸리나무 기둥중의 하나이다.

     

    건물 내부에는 높은 기둥이 층마루없이 곧게 늘어서 있고 천장은 우물천장이다.

     

     

     

     

     

     

     

    마곡사 대웅보전은 아들을 점지해 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이 전각 안에 4기둥의 싸리나무가 있는데, 이 싸리나무 기둥을 돌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많은 참배객들이 이 기둥을 붙들고 돌기 위해서 찾아온다고 한다.

    건물의 기둥을 안고 한바퀴 돌면 6년을 장수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규모는 1층이 앞면 5칸·옆면 4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 위에 연꽃을 조각해 놓아 조선 중기 이후의 장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건물 2층에 걸려 있는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한다.

    건물 안쪽은 우물 정(井)자 형태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을 2층 대들보와 연결하여 만들었고 마루도 널찍해 공간구성이 시원해 보인다.

    조선 중기 2층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웅보전은 대략 19세기 전반기에 중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화엄사 각황전,   법주사 대웅전,   무량사 극락전과 함께 4개밖에 안 되는 조선시대 중층 불전이지만,   다른 예들에 비해 건물의 질은 그다지 우수한 편은 아니라고 한다..

    공포는 다포식 구조로 쇠서 끝에 연봉을 새겨 조선 말기의 장식적인 경향에 흐르고 있고,   1층이 5칸×4칸,   2층이 3칸×2칸의 칸살을 가지며,   1층 고주가 바로 2층의 외곽 기둥이 되는 가장 간단한 중층 집의 구조를 채택했다고 한다..

    건물의 폭이 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부 공간의 수직적인 모습이 강조된다고 한다..

     

     

     

     

     

     

     

     

    아래층은 가운데에 있는 3칸을 일정한 간격으로 구획하여 삼분합(三分閤) 띠살문을 달았고,   양 끝칸에는 쌍여닫이 정자(井字) 살문을 달았다.

    위층에는 정면에 채광을 위한 빗살창이 있으며 나머지는 판벽(板壁)으로 막았다.

     

     

     

     

     

     

     

     

    대웅전 단청에선 부처의 윤곽 안에 산수와 갖가지 그림을 넣은 게 독특하다.

     

     

     

     

     

     

     적당히 빛바랜 서까래부리의 연화무늬가 곱다.

     

     

     

     

     

     

     문살 여기저기 부서진 대웅전 문을 나뭇가지로 걸어놓은 데서 큰 절의 소박함을 본다.

     

     

     

     

     

     

     

     

     

     

     

     

     

     

     

     

     

     

     

     

     

     

     맑은 불이 흐르는 태화천. 마곡천. 희지천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 지는 냇가다...

     

     

     

     

     

     

    계곡에는 이렇게 맑은 물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징검다리를 건너 마곡사 경내로 들어간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우측은 마곡사 템플스테이 공사장으로 해서 불교문화원 가는 길.  좌측은 극락교쪽이다..

     

     

     

     

     

     마곡사로 들어가기 전 마곡천변에 바위 하나와 데크가 있는데 백범 선생의 삭발터다.

     

     

     

     

     

     

     

     

     

     

     

     

      

    돌다리를 건너서 이제 마곡사 경내로 다시  들어간다.

     

     

     

     

     

     

     

     

     

     

     아까는 좌측의 대웅보전에서 내려 왔으니 이번엔 우측의 응진전과 백범당 전각쪽으로 가 본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63호 마곡사 조사전은 국사당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 조사전을 신축한 것으로 보인다. 조사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안에는 보조,  범일,  도선국사 뿐만 아니라 근현대 선맥을 떨친 경허,  만공스님의 존영이 걸려 있다.

     

     

     

     

     

     

     

     

     

     

     

     

     

     

     

     

     

     

     

     

     

    마곡사 응진전 ( 충남 문화재자료 제65호 )

     

    철종 3년(1852)에 새로 보수한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짜올렸다.

    .

    .

     

     

     

     

     

     

     

     

     

    응진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하여 2구의 신장과 16명의 뛰어난 제자들 즉 아라한의 경지에 달한 16아라한을 모신 전각이다.   아라한은 성자를 의미하며 이들은 능히 진리로서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인 응진의 소유자이다

     

     

     

     

     

     

     

     

     

     

     

     

     

     

     

     

     

     

     

     

     

     

     

     

     

     

     

     

     

     

     

     

    대광보전 왼쪽 자그마한 한옥에 휘호 한 점이 걸려 있다. 국모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으려다 옥살이를 했던 백범 김구가 삭발하고 스물세 살의 겨울을 보냈던 집이다.

    마곡사는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마곡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백범(白凡) 김구(1876~1949) 선생이 1896년 명상황후 시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은거하여 1898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 수도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마곡사에도 일제의 감시망이 좁혀오자 백범선생은 상해로 피신하였다.

     

     

     

     

     

     

     

    향나무 옆 건물이 백범당(白凡堂)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과 친필 휘호 등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백범당에 전시되고 있는 백범선생의 진영(眞影)과 1946년 조국광복 후 김구선생이 마곡사를 다시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들과  대광보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셨다.

     

     

     

     

     

     

    백범 선생의 평생 좌우명이었다는 서산대사의 선시 친필휘호,  백범이 광복 이듬해 다시 찾아와 남긴 휘호이다. 

     

     

     

     

     

     

     

     

     

     

     

    백범 김구선생 74세 때 모습

     

     

     

     

     

     

    마곡사를 방문하는 많은 관광객들은 백범김구선생이 마곡사에 머물며 수행하신 곳이바로 이곳 마곡사 인줄 알지만 사실 은둔 생활을 하신 곳은 계곡으로 더 올라가야 볼 수 있는 백련암(白蓮菴)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생전에 즐겨 쓰던 휴정 서산대사의 선시(禪詩)의 휘호(揮毫) 내용을 소개하면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김구(金九) 선생 은거 기념식수

     

    김구 선생이 조선광복 후 1946년 이곳 마곡사를 찾아 대광보전 주련의 '去來觀世間 猶如夢中事(거래관세간 유여몰중사) - 돌아와 세상을 보니 흡사 꿈속의 일 같구나'를 보시고  감개무량하여 그때를 회상하면서 향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한다.

     

     

     

     

     

     

    대광명전 앞에 김구가 심은 향나무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 있다.

     

     

     

     

     

     

     

     

     

     

     

     

     

     

    대광보전 옆의 수각이다..

     

     

     

     

     

     

     

     

     

     

     

     

     

     

     

     

     

     

     

    형형색색으로 단장한 연등 터널을 지나 다시 해탈문쪽으로 빠져 나간다..

     

     

     

     

     

     

     

     

     

     

     

     

     

     

     

     

     

     

     

     

     

     

     

     

     

     

     

     

     

     

     

     

     

     

     

     

     

     

     

     

     

     

     

     

     

     

     

     

     

     

     

     

     

     

     

     

     

     

     

     

     

     

     

     

     

     

     

     

     

     

     

     

     

     

     

     

     

     

     

     

     

     

     

     

     

     

     

     

     

     

     

     

     

     

     

     

     

    사랑으로 분노를 이기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베품으로써 인색함을 이기고 진실로써 거짓을 이겨라..  법구경..   멋진 글귀라 한 장 찍어 본다..

     

     

     

     

     

     

     

     

     

     

     

     

     

     

     

     

     

     

     

     

     

     

     

     

    마곡사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연등을 지붕삼은 다리를 건너고...  속세와 법계를 나누는 해탈문을 지나...   오늘의 마곡사 여행을 마친

     

     

     

     

     

     

     

     

     

     

     

     

     

     

     

    마곡사 입구 주차장 옆에는  상당히 큰 장승공원이 있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일이지만 우리는 늘 착각속에 살고 있다.

    무엇하나 영원한것은 없는데 영원히 살것 같은 착각속에 살아 간다.

    인생은 잠시 머무는 종착역인 것을~!

    인생은 왕복 승착권이 없는 여행길인 것을~

    머무는 동안 베푸는 마음.  나누는 마음으로  하나 되는 나였으면 한다......

    .

    .

    .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