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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여행
2013. 11. 5.
2013. 10. 29 ~ 30 (1박 2일) 일정으로 여성단체 모임의 회원 18명과 함께 일본 대마도지방을 여행중 ...........
대마도에서의 둘째날 10월 30일 이다...
둘째날은 대마도에서 하대마도에 해당되는 이즈하라를 중심으로 여행하기로 한다.
○ 이즈하라시가의 아침 풍경
아침 일찍 일어나 이주하라 항구를 산책해 본다...
이시야네(돌 지붕)
이즈하라 마치 서해안에 약간밖에 남아있지않은 돌지붕은 대마도에서 산출되는 널판지 모양의 돌로 지붕을 이은 창고로 사용한 건물이라한다.
대마도의 돌 문화를 대표하는 건물로 겨울 강풍이 심한 시이네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불과 몇호 밖에 남지 않은 이 돌지붕은 널판지모양의 돌을 사용하여 지붕을 만들었다..
곡식이나 의류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다. 부자들은 돌 지붕으로 재력을 과시 했다고.....
이즈하라 시내 풍경이다.
이즈하라시 하천변에 위치한 한국 커피샵
생활하수를 정화한 하천에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노니는 깨끗한 냇가로 이 하천이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아침 식사할 자그마한 동네식당 이다.
대마도에서 제일 크다는 티아라 마트.
○ 오후나에
야마모도시 자연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위치해 있다...
이즈하라 항구의 안쪽에 설치된 대마도 도주 전용 선착장인 대마도 관선들의 계류 시설인 오후나에.
오후나에는 1660~1663년에 만들어진 쿠다항 하구에 있는 다섯 개의 선착장이 있는 부두 건축물이다. 지금도 1663년에 쌓은 돌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정문, 창고, 수리소 등의 건물과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통신사가 타고 온 배도 이곳에 정박하였고, 대마도주를 비롯한 권력층들이 이용하는 쓰시마번 공용선 선착장이었다고 한다.
대조선무역항으로 번성하였던 1700년 전후에는 연간 80회 이상의 무역선 출입이 이루어졌다는데, 400여년의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선착장은 원형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바다와 강물이 만나는 곳에 있는 오후나에는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고 깨끗한 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산을 오르내리는 길은 마주오는 차가 비키기 조차 힘 들 듯.....
소형차가 많아 다행이라지만 어디 소형차만 다니겠는가. 길이 좁아 차가 한 번 비키려면 무진 애쓴다.
이게 다 자연을 최대한 아끼려는 배려라는데.....
○ 야마모도시 공원
'아유모도시'란 말은 '은어가 돌아온다'는 뜻이다.
세강은 쓰시마에서 제일 높은 산인 야타테야마(矢立山)와 다테라야마(龍良山)에 둘러싸인 우치야마 분지에서 발원하고 있다. 이 세강 유역을 포함한 다테라야마 원시림의 산기슭 약 26ha가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으로 정비되어 있다. 산속 깊은 곳까지 수량이 풍부하여 은어(아유,鮎)가 많이 거슬러 올라 오는 것으로 유명하나, 세강의 거친 물살로 인해 상류인 우치야마 지역까지는 올라오지 못한다.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주차장 입구에 있는 이시야네(石屋根,돌지붕) 휴게소가 마련되어 넘 멋지다.
아유모도시(鮎もどし) 자연공원은 대마도 서남쪽에 위치한 야타테야마(矢立山)와 다테라야마(龍良山)에서 흘러내려 이룬 세가와(瀨川)를 끼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중심으로 펼쳐진 곳이며. 이곳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인 청류교(淸流橋)는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장소이다.
표고 144m의 높이에 마련되어 있는 만남의 광장을 중심으로 세강의 사면에 스포츠 슬라이더, 잔디 썰매장, 퍼팅골프장, 캠프장, 삼림욕장 등이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다. 여름에는 물놀이 하는 어린이들로 붐비는 장소이기도하다.
산 위로 올라보니 아주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
세강 위에 걸쳐 있는 구름다리에서 강을 내려다보면 계곡 전체가 천연의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웅대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계곡이 1.2Km인가 된다던데.. 엄청 큰 화강암 위로 물이 흐르고 있다.
천지수..
부드러운 듯한 넓은 바위위로 흐르는 물은 깨끗하다 못해 숲의 모습을 품고 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화강암 계곡
○ 면세점
기모노... 화려할수록 남자의 계급이 높았다나...
○ 수선사
구한말 애국지사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모셔져 있는 수선사.
슈젠지는 이즈하라 시내에서 도보로 10분쯤 걸리는 주택가 한 복판에 있었다.
최익현은 일본과의 통상을 반대하다가 흑산도에 유배되고 단발령에 반대하다가 투옥되었으며,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항일 의병운동을 일으켜 4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관군에 맞섰으나 순창전투에서 패전하고 체포되어 쓰시마에 유배되었다.
쓰시마에 유배된 최익현 선생은 끝내 살아서는 고국땅을 밟지 못하고 1907년 1월 1일 생을 마감하였으며 (일본이 주는 음식은 먹을수 없다며 단식하다 숨을 거두었다) , 그의 장례가 치뤄진 곳이 바로 슈젠지라고 한다. 최익현 순국기념비는 1986년이 되어서야 건립되었다고 한다.
정토종(淨土宗) 수선사(修善寺)
백제의 비구니인 법묘스님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절로 특히 구 한말 대 유학자이자 항일운동가인 최익현 선생의 순국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74세 고령의 최익현은 그의 제자 임병찬과 함께 항일의병 궐기활동의 죄명으로 일본군에 의해 대마도로 끌려갔다.
"왜놈들이 주는 음식은 먹을 수 없다."고 하며 음식을 거절하였으며. 끝까지 꼿꼿한 기개를 지키다가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大韓人崔益鉉先生殉國之碑 (대한인최익현선생순국지비)" 라고 새겨진 비 앞에서 잠시 옷깃을 여미고 묵념
지장보살... 일본에서는 지장보살이 사산하거나 낙태한 아이들이나 어린 시절 죽은 아이들의 영혼을 보호하는 보살로 알려져 있어서 어린 아이용 빨간 턱받이나 사탕, 장남감 등이 옆에 놓여 있는것이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수선사 법당 내부...수리 중
○ 점심 식사
○ 하치만궁 신사 (팔번궁신사八幡宮神社)
이 신사는 소위 삼한을 정벌하였다는 신화(?)속의 인물 신공황후를 모시는 신사이다. 즉, 일본 사가에 의해서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고 있는 그 인물이다
신사의 맨 처음은 도리이에서 시작된다. 도리이(鳥居)는 신사의 입구에 있는 '天' 이라는 글자모양의 커다란 문으로서 여러개가 중첩되어 서 있다. 신도에서는 새를 신의 사신이라고 믿어 왔다. 그래서 사람의 뜻을 신에게 전달해 주는 새가 쉬어 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이 문을 도리이(とりい)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나의 신사에 도리이가 두 개 이상 있을 수도 있고 재료는 옛날에는 노송나무, 삼나무 등 목재가 기본이었으나 근세에는 석재, 동, 철, 오지그릇, 현대에는 철근 콘크리트로 된 것들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러일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포탄들이 유물로 남아 있고, 태평양전쟁 전몰자 추모비도 세워져 있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일본의 침략 전쟁을 기념하는 유적지라고 볼 수 있는 유쾌하지 않은 장소다. 거대한 '도리이'가 우뚝 서있는 이즈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신사다.
기분좋은 장소는 아니지만 높게 자란 큰 나무들이 시원한 나무그늘을 만들어 주고 나무 그늘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까닭에 여행자들의 쉼 장소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임나일본부설...임산부가 혼자서 신라 정벌?
진구황후는 제14대 중애천황(仲哀天皇)의 황후(皇后)이자, 제15대 오진천황(應神天皇)의 어머니이며, 임신을 한 몸으로 삼한(三韓)을 정벌하였다는 것이 일본측의 주장이다.
289년부터 389년까지 101살을 살았다는 신화적 기록이있고 임신한 상태에서 혼자 신라를 정벌하였다는 믿기 어려운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팔번궁신사(八幡宮神社)
오진천황, 진구황후, 주아이천황, 히메오카미, 다케노우치노스쿠네를 모시고 있다고 써있다..
소원지 판매소
말에 일본 천황의 상징인 국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진구황후를 모신 신사에 한글로 또박또박 소원을 적어 놓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신사 참배 방법을 적어놓은 것-두번 절하고 2번 박수를 치고 한번 절하라고 ..
오진왕과 진구 왕후가 여신상으로 봉안 팔번궁신사를 나와 옆의 작은 집 격인 전각으로 오른다..
이곳에는 고니시 마리아를 모시는 신사도 있다. 고니시 마리아는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카(소서행장)의 딸이인데, 대마도 번주였던 소오 요시토시와 정략적 결혼하였다가 전쟁 이후 소박을 당했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를 모시는 신사가 있다는 것이 납득이 잘되지는 않았다.
하치만궁 신사를 나와 덕혜옹주 결혼봉축비를 향한다...
지진에 대비하고 화재에 대비하여 각진 방화벽이 눈길을 끈다.
대마도 이즈하라 곳곳에 있다는 방화벽이라는 돌담은 지진과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 재해로 부터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돌담의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대마도에는 지진이 없다니...
○ 덕혜옹주 결혼봉축비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를 찾아가는 길이다
'이왕가종백작가어결혼봉축기념비( 덕혜옹주의 슬픈 삶과 조선의 한이 서려 있는 비석이다) 가는 길
덕혜옹주봉축기념비가 있는 가네이시 성터 입구에는 2층으로 된 제법 웅장한 '누문'이 있다.
우리의 황녀와 대마도 번주 막동이와 결혼이라니..... 너무 격이 안맞아..... 부끄럽기도 하다.
대마도주와 덕혜옹주의 결혼을 기념하는 비석. 덕혜옹주가 불운한 결혼 생활을 마감하고 조선으로 귀국하자 풀밭에 방치했다가 한국 사람들의 대마도 방문이 많아지자 다시 제자리에 세워 놓았다고 한다.
대마도 번주와 결혼한 조선말기의 비운의 옹주,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결혼 봉축비로 대마도에 사는 한국인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우리의 슬픈 현대사를 보는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조선 마직막 황제직계혈통의 덕혜옹주
대마도촌장과 결혼을 했다가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아 이혼.....한국에 들어와서 살다간 비운의 옹주,
공주는 본처 소생, 옹주는 왕의 첩 딸
덕혜옹주는 1912년 5월 25일 조선 제26대 왕(황제) 고종(高宗)과 후궁인 복녕당(福寧堂) 양귀인(梁貴人)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종이 회갑연에 얻게된 딸로, 여섯 살 때인 1917년 정식으로 황적에 입적하였다. 1919년 일제에게 딸을 빼앗기기 싫었던 고종에 의해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金章漢)과 약혼하였다. 그러나 1925년 4월 '황족은 일본에서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제의 요구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어 일본의 학습원을 마친 뒤, 1930년 봄부터 몽유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영친왕(英親王)의 거처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증세는 조발성치매증으로 진단되었고, 이듬해 병세는 좋아졌다.
1931년 5월 쓰시마섬(對馬島) 도주의 후예인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강제 결혼해 딸 마사에(正惠)를 낳았다. 그러나 결혼 후에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이후 계속 병상생활을 하다가 1953년 다케유키와 이혼하였다. 하나 있는 딸마저도 결혼에 실패하고 자살하는 비극을 겪었고, 1962년 1월 26일 귀국할 때까지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비극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한국에서의 생활도 순탄하지 않아 귀국 20년 만인 1982년이 되어서야 호적이 만들어졌고, 결국 실어증과 지병으로 고생하다 1989년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金谷洞)에 있는 홍유릉(洪裕陵)에 묻혔다.
○ 조선통신사비와 고려문
조선통신사비와 고려문, 대마 역사민속 자료관 가는 길
고려문 (高麗門) 이란 비석 하나가 우리를 맞는다.
많이 소박한 고려문은 쓰시마민속박물관 마당에 있다. 고려문은 이즈하라의 옛성문인데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기 위해 만든 문이라 '고려문'으로 불렀다고 한다. 수백명의 조선통신사 일행이 이 문을 거쳐서 이즈하라 성내로 들어갔을텐데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아주 초라한 모습이다.
'고려문'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일부러 보러 갈 이유가 없어 보이는 문이다. 고려문 바로 옆에는 조선통신사비가 있다.
조선 사절들이 도착하면 이 문을 통과해서 굵은 돌모래가 쭉 깔린 길을 따라들어가는 의식을 치루었다고 한다. 조선 통신사(通信使 - 外交使節)를 맞이하던 자리
통신(통신:서로 믿고 소통하자는 뜻)사는 1600년부터 250여년동안 4~50명 정도 조선통신사가 대마도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가 문화와 기술 학문등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고려문 바로 옆에는 조선통신사비가 있다. 대마도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한국 관련 유적들은 조선통신사와 관련이 있는 장소들이다.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10년 동안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고 한다.
조선 통신사의 비
임진왜란후 약200년 간 12회에 걸쳐 활발 했던 교류와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서 세운 비
조선통신사의 규모는 300~500명에 달하는 조선의 문화사절과 같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당시 대마도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국제 교류였던 셈이다. 이 비석 역시 다분히 한국 관광객을 의식한 비석이라고 볼 수 있는데, 1992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는 선조 40년 (1607년) 부터 순조 11년 (1811년)까지 통산 12회에 걸쳐 일본의 에도 (江戶) 幕府에 파견된 조선의 사절단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전기에도 비슷한 형태의 사절단이 있었으나 목적이나 명칭등이 여러가지였다.
임진왜란전의 마지막 통신사는 1590-91년에 파견되었는데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보고가 다르자 조정은 부사 김성일의 보고대로 왜가 침략을 안할거라는 판단을 채택해서 그후 우리의 어떤 역사는 어떻게 되엇던가???........
○ 대마 역사민속 자료관
대마역사민속 자료관 마당에 조선통신사비와 고려문이 있다...
대마도는 나가사키현에 속하는데 이 민속자료관은 나가사키현립 시설로 1978년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조선통신사 두루마리 그림'을 비롯하여 문화재, 역사자료, 민속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소장품은 조선통신사 두루마리 그림이지만, '왜관 그림도', '조선통신사 접대 상차림 글미도'등 재미있는 소장품들오 많이 있다. 쓰시마 민속자료관은 한반도와의 문화 교류 흔적과 옛 대마도 사람들의 생활상을 살펴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쓰시마 야마네꼬(산고양이), 쓰시마 사슴, 물수리 등 천연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쓰시마 사슴 박제만 기억에 남는다.
환일본해 지도가 재미있다. 일본을 위에 놓고 동아시아를 그린 지도가 특이하다...무얼 의미하는지 ?
근대 생활용품들
한국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학자로서 조선과 교린에 큰 역할을 한 雨森芳洲(1668~1755)선생의 기념비와 비문도 보았다
대마 역사민속 자료관에서 나가 조선통신사의 길 탐방에 나선다...
○ 조선통신사의 길 탐방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지났다는 길을 따라 산책한다.
조선통신사 객관이 이었던 국분사.
야쿠라문(櫓門,노문)
가네이시성 노문... 일본 쓰시마(對馬) 이즈하라(嚴原)의 킨세키죠(金石城)은 역대 대마도주(對馬島主)들의 거처였던 곳이며 당시 조선통신사의 접대가 이루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성 입구인 야쿠라문(櫓門,노문)은 성에서 주변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망루로 방어용 혹은 감시용으로 지어진 가설 또는 상설 건축물로 1669년 소오요시자네가 건설한 성(城)이고 성입구인 야쿠라문(櫓門,노문)은1990년에 복원된 건물로 대마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문이라고 한다.
조선통신사의 체류 기간이 6개월에서 1년까지, 그 규모는 300~500명으로 조선 최고의 관료와 학자, 문화인을 비롯해 화려한 악대, 소동, 무인, 통역관이 대동하니 그 행렬릐 장대함과 화려함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훈도시 하나만 차고 바지도 없고 신발도 안 신고 다니던 일본인들 눈에는 정말 대단한 문화거인들이 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부산에서부터 에도까지의 안내와 호위는 쓰시마 번이 담당하였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들을 영접하던 장면을 그린 그림, 영접하는 일본인들은 팬티처럼 생긴 하의만을 입고 있다..
조선통신사들이 타고 오던 배
조선통신사가 대마도에도착한지 200년이 되었다는 벽화가 눈에 들어오고
수로 벽에는 조선 통신사 관련 부조들을 새겨 넣었다..
이즈하라 항구변의 모습들....
○ 이주하라 항구에서 부산으로 출항하며...
역광이라 이주하라항 여객선터미널이 깜깜하다...
출국수속 끝내고 나오면 처음 만나는 등대... 이게 100년 넘은거라는..
배에서 바라본 이즈하라 여객선터미널이다.
3시 30분 코비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며...
코비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며 바라본 이즈하라항이다...
집들이 다 잘 정돈되어 있는 느낌의 이즈하라항을 뒤로하고 부산으로 출발하니..
이즈하라항을 떠나 1시간 50여분만에 도착한 부산항이 저녁노을로 단장하고 이쁜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5시 40분에 부산 도착 후 한창퇴근길의 부산을 벗어나 오는 길에 저녁식사하고 포항에 도착하니 9시가 넘었다...
즐거운 추억을 뒤로 하고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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