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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여행을 위해 히타카츠항으로 떠난다.
2013. 11. 1.
첫째날...........
2013. 10. 29 ~ 30 (1박 2일) 일정으로 여성단체 모임에서 회원 18명과 함께 일본 대마도지방을 여행하기 위해 아침 4:40에 집을 나서 함께할 일행과 미팅할 장소로 출발해서 미팅 후 5:20 관광버스로 부산으로 출발, 부산여객선터미널에 도착 후 가이드미팅 후 8:30분에 미래고속 코비호로 히타카츠항으로 출발 한다....
○ 부산 여객선터미널에서 히타카츠항으로 출발하며...
부산국제여객선터미널
여객선 터미널 안의 모습
대기실 옆 면세점
이제 소속 절차를 마치고 출국 심사대를 가는중
출국 심사후 배에 승선을 하고 서서히 부산항을 벗어난다.
부산항을 출항... 어느정도 벗어나니 배가 미끄러지듯 달리기 시작한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멀리 또하나의 쾌속선이 보인다
대한해협~ 대마도가 아련히 보인다.
○ 대마도 히타카츠항 도착
부산여객선터미널에서 코비타고 대마도로 출발한지 1시간 10분만에 히타카츠항에 도착한다...
가깝고도 먼나라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 우리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곳 부산서 49,5km거리에 1시간 10분만에 도착한 대마도 히타카쓰 항이 우리를 반긴다.
내리자 마자 보이는 풍경...'환영 쓰시마'라고 쓰여 있다. 대마도가 쓰시마가 되는 순간이다.
일본 히타카항... 입국장 해상보안청 선박
대마도....
총면적은 제주도보다는 1/2 크기로 작고 거제도의 1.7배 크며 남북 82키로, 동서 18키로 새우 모양의 섬으로 본섬 외에 109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졌으며 그중 사람이 사는곳은 5곳, 나머지는 무인도이며 인구는 4만 5천명 이중 반 이상이 군인이나 공무원이란다.
지리적으로 일본 본토보다 가까운 그곳은 분명 우리 땅이었다. 척박한 땅이었고 조선조나 일본에서도 대마도는 버려진 땅이었다.
세종때 우리영토에 편입 되었으며 대마도는 막부시대 이전까지 일본 땅으로 속한 적이 없다.
당파싸움에 휘말린 우리 조정의 못난 탓으로 대마도는 관심밖의 땅이 되어 버렸고 그사이 일본땅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결국 왜구들이 조선땅에서 행했던 노략질의 전초기지가 되고 임진왜란과 조선침략의 교두보가 된 우리에겐 가슴 아픈 땅이다.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끼현에 딸려있는 섬이다.
왜 대마도냐 하면 지형이 큰 말처럼 생겨 대마도(對馬島)라고 하며, 일본명 쓰시마.
일본 3번째로 큰 섬으로 한반도와 일본 큐슈 사이의 대한해협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한국과 일본 열도 사이에 위치하여 쓰시마에는 백제인들이 건너와 백제계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설이 있다 한다.
대마도 관광안내도
○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이동
히타카츠항에 도착 전용버스에 탑승하여 일본 100대 해수욕장 중의 하나인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이동한다......
미우다 해수욕장은 1996년 일본의 바닷가 100선으로 인정받은 해수욕장으로 쓰시마에서는 보기 드문 입자가 고운 모래 해변이다. 캠프장도 구비가 되어 있어 여름에는 캠프도 가능하고 온천도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는 좋아 보인다.
도로변에 바로 인접한 해수욕장 휴게실이 보인다.
미우다 해수욕장 팻말, 바로 옆 나가사노유 온천, '나기사(渚)'는 물가란 뜻이다. 즉 물가에 있는 온천이다.
온천욕이 코스상품에 들어 있었는데 아침 부터 온천욕 하자해서 우리 일행 모두는 온천을 포기하고 환불 받았다.. 시간도 너무 조금주고 해서...
손바닥처럼 작지만 아담하고 예쁜 해수욕장
일본내 100대 해수욕장이라는 "미우다"해변은 깨끗한 물과 고운 모래가 좋으나 기대와 달리 조그많고 너무도 조용하다.
아릅다운 백사장과 에머랄드빛 얕은바다는 남국의 정취를 느낄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 보는 큰해수욕장이 아닌 너무나 작고 앙징스러움을 느껴지는그냥 해변이다
바위 섬에 나무 한그루! 이색적인 풍경 앞에서 기념촬영하기 안성마춤 장소이다.
맑고 푸른 대마도의 바다
해수욕장 입구의 전망대에 올라본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수욕장 모습들...
해수욕장을 나오니 광장에는....
미니카로 이동 카페다...
일본 100선에 손꼽히는 아름다운 미우따하마 해수욕장을 나와 나기사노유(渚の湯) 온천 구경만..
○ 나기사노유(渚の湯) 온천
온천을 마치고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휴게실이 완비되어 있다.
나기사노유(渚の湯) 온천에서 바라본 경치
나기사노유(渚の湯) 온천을 구경만하고 한국 전망대로 이동 한다.
○ 한국 전망대
한국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
대마도의 카미쯔시마 최북단에 위치한 한국 전망대는 거제도까지 49.5km, 부산까지는 약50km정도 떨어저 있으며 날싸가 좋은 날에는 부산까지도 보인다. 또한 한국에서 가져온 모바일폰으로 통화가 가능하다.
한국전망대는 옛난 일제 강점기때 쓰시마에 잡혀온 한국인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설이나 추석명절에 올라 한국땅을 바라보며 망향의 서러움을 달래기도 했던 곳으로 건축초기 단계부터 한국산 재료구입 등 철저하게 한국풍을 고집해 지어진 곳이다.
한국전망.이곳의 망원경은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한일우호의 상징으로 세워졌다는 한국전망대 안에는 대마도와의 교류관계 사료, 대마도에서 바라본 부산 일원의 야경 사진등이 게시되어 있다.
대마도에서 본 부산의 야경이라 한다
일본 자위대 거주시설아라 한다. 한국전망대와 마주 바라 보는 기분이 씁쓸하다....
날씨는 좋았는데 바다에 내려앉은 박무 영향으로 부산은 보이지 않았다 .
한국 전망대 앞 바다의 풍경
○ 조선 역관사 순국비
한국 전망대와 한 공간인 바로 옆에 있는 조선국역관사 조난 위령비
전망대가 있는 언덕 한 편에는 "조선국역관사순난지비(朝鮮國譯官使殉難之碑)라는 비석이 있었는데 내용인즉 숙종 29년(1703년) 2월 5일 조선국 역관 108명과 대마도 번사 4명을 태운 배가 입항 직전 폭풍우로 침몰 이들 모두가 죽음을 당하였는바 이들은 대마도 3대 번주 宗義眞의 죽음을 애도하고 제5대 번주 宗義方의 승봉을 축하하러 오던 사절이었다한다.
에도막부는 쇄국정책을 취했으나 조선과는 유일하게 국교를 유지하면서 막부에는 통신사를, 대마도번주에게는 역관을 파견했는데 조선의 기록에 의하면 대마도에 파견한 역관은 51회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일본과 조선의 선린외교의 증거라 비문에는 적고 있으나 조선의 불경, 서적, 비단, 종이 등 발전된 문물을 도입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된다.
조선인 108명과 일본인 4명의 죽음을 기려 112개의 영석을 쌓아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앞으로 양국간의 영원한 우호증진을 위해 이 비를 세운다 했다.
한국 전망대와 조선역관사 조난비를 둘러보고 점심 식사를 위해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한다.
이동하며 바라본 진주양식장과 대마도의 바다...
○ 점심 식사
섬이라 그런가 거리는 좁고 차량들이 소형차 위주로 움직이는 것이 이채롭다.
아침에 코비호를 함께 타고 왔던 한국의 스님들과 마주친다...
쓰시와 우동으로 식사 후 대마도 아소만의 절경을 한눈에 보는 에보시타케 전망대로 이동 한다.
○ 에보시타케 전망대
에보시타케 전망대 주차장
차량을 이용하여 능선까지 올라간 다음 약 50m 정도 산행으로 올라간다.
아소만을 360 도로 둘러 볼수 있는 에보시타케 전망대 이다.
전망대 주위로 겹겹이 이어지는 산, 아소만 바다위에 점점으로 떠있는 크고 작은 무수한 섬들, 그 사이로 푸른 빛깔의 바다가 그림같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에보시다케전망대는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형성된 아소만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는 해발 176m의 유일한 전망대이며 112개의 섬이 절묘하게 펼쳐진 대마도 최고의 비경으로 흔히 대마도의 하롱베이라고 한단다
에보시타게 전망대는 쓰시마의 상대마와과 하대마의 경계 부분에 위치해 있으며, 일본의 3대 절경가운데 하나인 미야기현의 ‘마쓰시마’를 닮은 풍광이 시선을 압도한다.
‘쓰시마의 하롱베이’로 불리는 리아스식 해안과 섬(시마)들이 무리를 이룬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에보시다케 전망대에서는 대마도가 360°로 돌아가며 조망되는데 초록색으로 물감을 칠한 듯한 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마도에서 진주양식으로 갑부가 된 사람의 집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서남해 다도해를 연상할 정도로 섬들이 많고 물결은 잔잔하다.
봉우리 가장 높은 곳 해발 176m에 시멘트로 지은 에보시다케전망대가 있는데 '에보시(烏帽子)'란 "새(까마귀)의 모자(보시)"라는 말로 사방이 다 보인다는 뜻이라고 한다
쾌청한 날에는 부산은 물론 거제도도 어렴풋이 보인다고 하며 이곳에는 한국 휴대폰 전파가 잡히기도 한다는데 어느 한 통신사가 그래도 전파 송수신이 가능하다고 한다
겹겹의 산과 바다에 떠있는 크고 작은 섬들과 육지의 침강에 의해 생성된 리아스식 해안은 자연경관의 백미이다.
대마도 에보시타케전망대는 상대마 아소만 관광의 일미로 와타즈미신사와 근접해 있다.
전망대에서 주차장으로 내려 온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은 대마도의 도로를 달려 와타즈미 신사로 향한다.
○ 와타즈미 신사
에보시타케전망대에서 차로 약 10분쯤 내려오면 그 많던 작은 봉우리의 섬이 갑자기 사라지고 파란 하늘이 성큼 다가오는 곳에 숲이 보인다. 그곳에 와타즈미 신사가 자리 한다.
빽빽하고 울창한 편백나무와 삼나무숲이 조림으로 잘가꿔져 후손들에겐 큰 선물이 될듯.....
신사 뒷편에서 내려 편백나무 숲을 한참을 걸러서 내려오니...
와타즈미 신사 도리(鳥居)
일본신사에는 거의 이런 형상이 입구에 있다. 도리(鳥居)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주는 새 형상이라고 한다. '天'과 '門' 자의 결합이다. "인간이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의 입구이다.
와타즈미신사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이곳은 천신과 해신을 모신 해궁으로 천신이 낚시를 즐기다 잃어버린 낚시 바늘을 찾기 위해, 이궁으로 내려왔다가 해신의 딸의 미모에 반해 결혼했다고 한다.
천신과 해신사이에 아기가 태어날 때 보지 못하도록 하였는데 천신의 강한 호기심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으로 인해 이곳에 버려졌다고 전해지는 장소라고 한다.
토리이이 문(門)은 하늘을 상징함는 天을 뜻하며 백제에서 건너온 풍습이라고 한다. 2개의 토리이는 물속에 설치하여 밀물과 썰물 때 그 모습이 변하는 신비롭다.
일본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히코호호 데미노미코토와 토요타마 히메노미코토를 모시는 해궁으로 해신을 모시는 신사로는 가장 오래된 신사이다.
5개의 도리이 (신사의 문)가 바다를 향해 있으며, 만조 때에는 2m정도 바다에 잠기는데 신사의 도리이가 한국을 향하고 있어서 이 신사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손을 씻으면 손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이 물로 입을 헹구면 입으로 지은 죄를 용서 받는다는 정화수
신사 한쪽에는 스모를 하는 도장이 있었는데 원래 스모는 神에게 추수에 감사하며 그 혜택으로 가장 건강한(쌀찐) 사람을 골라 씨름하게 하여 神을 찬양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인데 도꾸가와 막부 때 조직화되고 체계화되었다고 한다
신사의 스모장은 농경문화를 상징으로 하던 대 농경신을 즐겁게 함이고 스모선수들이 곧 농경신을 대표한다는 격이다.
신사(우리나라의 사당 격)의 의식적인 관문이며 신성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의 경계를 나타낸다는 토리이(鳥居)이다. 신의 사자인 새가 머물라고 세운 것이란다. 하늘 천 자를 닮았다. 우리나라의 솟대와 비슷하다. 신사의 품격에 따라 토리이의 수가 다르다. 와타즈미 신사는 토리이가 5개로 호국신사이다.
입구 좌우측에 사자상이....
신사를 호위하는 해태상으로 돌을 나무 다루듯 했던 조선 석공의 솜씨와 삶의 여유가 묻어 있는 듯, 정교하고 해학적이다. 암수의 구별이 뚜렷하다
마당에는 빨간통이 있는데 일년운수를 뽑아서 좋으면 부적으로 일년간 갖고 다니고 나쁘면 주변 나무가지 걸어둔다. 그러면 신이 해결해 준다는 의미이다.
2개는 물에 잠겨 있다.
일본 일왕의 직계신을 모신 신사로 일본 내의 모든 신사는 도리이가 남쪽 또는 동쪽을 향하고 있는 반면, 와타즈미 신사만큼은 도리이가 서북쪽, 즉 한국을 향해 있다고 해서 한반도에서 건너온 "한반도 도래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도요타마 히메노미코토"와 "우미히코 야마히코"신화로 알려진 "히코호호데노미코토"를 神으로 모시는 海宮으로 뒤에 있는 바다에 세운 "도리이"는 만조때 2m나 물에 잠긴다.
와타즈미 신사에서 바다로 향한 다섯개의 관문을 직선을 그으면 우리나라 김해와 연결된다 한다
해상을 장악한 장보고의 활동무대였다는데 중국이 동북공정하듯 일본인들도 그런 흔적을 다지우고 천황을 신격화 해놓았다...........
와타즈미 신사를 나와 러일전쟁 승리의 주역인 만제키바시(만관교)로 향한다...
○ 만제키바시(만관교)
만제키바시(萬關橋)
만제키운하 위에 놓은 다리이다. 이 만제키다리는 상대마(上大馬)와 하대마(下大馬)를 연결해주는 역활을 하고 있다.
대마도는 세로로 걸처있는 하나의 섬인데 중간 잘록한 허리 부분을 운하로 파서 배가 다닐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다리는 남북으로 연결하는 교량이다.
하나의 섬을 다이나마이트로 폭파해서 수로를 뚫음
1900년 일본 해군 함대의 통로로써 러시아 발틱함대를 깨부시기 위해 인공적으로 굴삭한 해협에 다리를 세웠으며 이는 현재 둘로 나 뉘어진 대마도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다.
만제키운하
만제키세토라 불리는 이 운하는 아소만과 미우라만 사이를 뚫고 뱃길을 낸 것이다.
1900년 일본 해군이 아소만에 있는 군함을 쓰시마 동쪽 해상으로 빨리 이동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러일전쟁기간 일본군함 운항을 위해 일본군이 만든 대마도 운하 (폭40m 깊이 30m ? )
다리의 왼 편과 오른 편
만제키 운하
헤이세이(평성) 8년 7월 준공(헤이세이시대가 1989년 1월 8일부터니까 1996년이 되나~)
만관교 주차장의 돌집
만조시의 조류는 여러 겹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1대 만제키바시는 1900년 완성 옛 일본해군에 의해 건설된 철교로 길이 100m,폭5.5m, 높이 36m다.
2대 만제키바시 1956년 완성 낙도진흥법에 따라 완성된 아치형 철교로 길이 약 81m, 폭 5.5m, 높이 약30m로 이 다리의 완성으로 버스가 섬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3대 만제키바시 1996년 완성 전체 길이 210m, 폭 10m. 섬 전체의 도로망도 정비되어 남북을 연결하는 심리적 거리도 가까워 졌다.
만제키바시(만관교)에서 30여분 이동후 하대마도의 하마유 호텔로 이동한다...
○ 저녁 식사
하마유 호텔에 짐을 내려두고 호텔인근의 식당으로 저녁식사 하러 간다...
메뉴는 모듬 바베큐이다. 재료가 신선하며 제법 먹을 만했다.
모듬 바베큐로 맛나게 식사...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와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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