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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강산 화암사 (강원도 고성군)
    사찰여행/강원도 2013. 9. 27. 10:10

     금강산아래  화암

     

     

     

     

    2013.  9.  27.

     

     

     

    2013.  9.  24.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 에서 함께한 금강산 건봉사와 화암사 .........

     

    이른 아침의 구름냄새가 향내음처럼 싱그럽다....

    포항출발(05:40)  → 울진 → 동해 속초 고성 건봉사(10:40) 도착 ....

     

    쏫아지는 빗속에 건봉사에 도착,  사시예불 참석 후 사찰 관람 . 주지스님 법문 후  우중이라 등공대까지는  둘러 보지 못하고  건봉사를 나서,  젊은 진표가 나라 잃은 슬픔을 깨달음으로 씻고,  민중세상을 염원하며 미륵신앙을 널리 퍼뜨렸다는  화암사로 길을 재촉한다... .

     

    멀리 대명콘도 우측으로 보이는 바위 아래에  산길과 숲길을 끝도 없이 들어가면,   길 끝나는 곳에   '금강산'화엄사'가 위치하고 있다.

     

     

     

     

     

     

    미시령 고개를 넘어서 고성쪽으로 좌회전하면 옛 고성 잼버리대회장 왼쪽에 '금강산 화암사'라는 아름다운 사찰이 숨어 있다.  

     

    금강산 줄기인 신선봉 자락에 자리잡은 화암사는 신라 혜공왕 5년(769년)에 진표율사가 창건한 금강산 말사로 절 앞 계곡 건너편에 있는 왕관모양의 수바위로 유명하다.   수바위까지 등산로가 나 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는 수바위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으나 도중에 암벽등반을 해야하는 곳이 몇 있어 일반인은 아래쪽 안전한 곳까지만 올라가야 한다.   수바위에 서면 금강산 줄기에 자리잡은 화암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 혜공왕 때 진표율사가 화암사(華巖寺)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조선 인조 1년(1623)에 소실되었다가 인조 3년(1625)에 고쳐 짓는 등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고종 1년(1864)에는 지금 있는 자리인 수바위 밑에 옮겨 짓고 이름도 수암사(穗岩寺)라 하였다가 1912년에 다시 화암사(禾岩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전쟁 때 다시 한 번 불에 타 훗날 법당만 다시 지었다.   1991년 세계 잼버리대회 준비를 위해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일주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부도군(浮屠群)과 일부 계단석이 남아 있다

     

     

     

      화암사 표지석

     

     

     

     

     

     

     

     

      화암사  일주문

     

    금강산 1만 2천봉 중 최남단에 위치 해있는 신선봉 기슭에 가람을 배치한 것이어서 가까이에 설악산이 있지만,  일주문 현판에 '금강산화암사'라 쓰여 있다.

    화암사 일주문 현판은 은초 정명수(隱樵 鄭命壽, 1909~2001)선생의 작품이다.

     

     

     

     

     

     

    금강산 화암사로 들어가는 일주문의 한적한 풍경

     

     

    일주문(一注門)

     

    사찰 입구의 첫문으로,  이 문 위에 '금강산 화엄사'라는 산명과 사명을 밝히고 있으며,  기둥을 일렬로 세운 문이다.   이 일(一)이라는 개념은 불교의 진리를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며 진(眞)과 속(俗)이 하나이며,  만법이 일심(一心)의 소현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문이다

     

     

     

     

      화암사 부도 (浮圖)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 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부도 15기는 일주문 근처에 남아 있다.

     

     

     

    일주문을 지나 따라 올라오다 보면 길 왼편으로 잘 정돈된 부도밭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공간에는 춘담대법사(春潭大法師)의 비를 비롯하여   화곡(華谷),   영담(影潭),   원봉(圓峯),   청암(淸巖) 스님 등의 부도 15기가 모셔져 있어,   이를 통해 화암사의 위용과 오랜 역사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석종형(石鐘形) 부도가 가장 많으며 대부분 조선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해 경내에는 새로운 전각들이 들어서 있는 반면,   초입의 이끼 낀 부도에서는 사찰의 옛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이다.

     

     

     

     

    탑이란 말은 신트리트어의Stupa의 음역  탑파(塔婆)를 줄인 말이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묻고 그 위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일종의 무덤으로 초기 불교의 불제자들은 이 곳에 모여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훌륭하신 생애를 흠모하고 예배하였다.

     

    탑은 불상과 불화보다 먼저 된 것으로 초기 불교도들은 이 탑을 중심으로 수행해 왔다.

    탑에는 반드시 부처님의 사리가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지역도 달라지면서 사리 대신에 불경을 넣기도 하였으며  모든 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반드시 그 속에는 불사리나 불경등을 넣어 불자의 귀의처를 삼았다.

     

    탑을 만드는 재료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돌,  나무,  흙 등이 사용되었으며  그 양식도 각기 달라서 시대와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불상과 함께 탑에도 에배를 하는 것이다.

     

     

     

      화암사 향하여 ...

     

     

     

     

    일주문을 들어서면 매점 가기전 "녹야원 오비구 설법상"이다.

     

     

     

     

     

     

     

    녹야원 오비구 설법상 바로지나면 ...1912년 이전에 사용하였던 사찰의 이름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금강산 화엄사는 미시령을 경계로 한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금강교 직전의 표시판이다...수바위 오르는 길이며  화암사 템플스테이의 트래킹 혹은 포행 코스로 활용되는 화암사 숲길 입구다...

     금강교 들어가기전 오른쪽의  매점이다.  이 앞으로 수바위 오름길 들머리가 있다

     

     

     

      금강교에서 바라본 화암사 석교(石橋)

     

     

     

     

    현재의 현대식 교각이 세워지기 전에 이 길로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암사는 769년(신라 혜공왕 5),   우리나라에 참회 불교를 정착시킨 법상종의 개조 진표율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

    진표율사는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를,  서쪽에는 장안사를,  그리고 남쪽에 화암사를 창건해 금강산을 중심으로 불국토를 장엄하고자 했으며,   '금강산 화암사' 라는 명칭도 이 창건기록에서부터 출발한다.

     

    진표율사는 이곳에서 수많은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했는데,  이를 배운 제자 1백 명 중 31명이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69명도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얻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 사찰은 진표율사가 '화엄경'을 설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하였기 때문에 화엄사(華嚴寺)라 불리었다.   또한 진표율사는 이곳에서 지장보살의 현신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을 창건,   화엄사의 부속암자로 삼았다.   이후 화암사는 지장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지금도 지장보살의 가피를 원하는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화엄사(華嚴寺)라는 절 이름이 공식적으로 화암사(禾巖寺)로 바뀐 때는 1912년 31 본산 체제로 접어들면서 이다.   건봉사의 말사가 되면서 이전부터 사용되어온 화암사란 명칭을 공식으로 쓰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화암사 금강교

     

    현대식 교각인 다리를 건너 경내에 들어가면~~

     

     

     

      

    세 개의 홍예가 떠받들고 있는 절로 건너가는 다리인 금강교는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절 입구 계곡을 건너는 아취교 다리

     

     

      화암사 전각

     

     

     

     

    절집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주변 자연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절이었다.

    금강산 건봉사의 말사로 두 절집 모두 금강산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설악산국립공원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호칭은 꼭 금강산이 앞에 들어간다.

    그리고보니 우리나라 사찰 대부분이 산수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명당에 자리잡고 있는것 같다.

     

     

     

    화암사 전각의 모습이다...

     

     

     

    화암사는 1988년 6월 22일 전통사찰 제27호로 지정되었으며,   93년 12월까지 중건된 건물현황은 금강산 화암사 일주문,   대웅전(35평),   삼성각(三聖閣) 6평,   명부전(冥府殿)55평,   설법전 55평,   누각 16평,   요사체 58평,   종각 16평 등이며 ,  부대건물로 식당 21평,   매점 14평,   화장실 14평 등이 있다.

     

     

     

     

    대웅전 뜨락에서 내려다 본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화암사의 풍경

     

     

     

     

     

     

     

     

     

     

     

    란야원 다원 뒤로 수바위

     

     

      화암사 범종루

     

    '풍악제일루'라 쓴 범종루  현판에는 古峰(고봉)이라는 낙관이  되어 있는데,  정확하게 고봉이  누구인지를 알이내기가 쉽지 않다.

     

    고봉이라는 호를 쓴 서예가는 두 명이 있다.

    이선경과 김부영 선생인데,   김부영 선생은 봉우리 봉 자를 峯으로 표기하는데, 화암사에 서족(書足)들은 같은 의미라도 峰자로 되어 있어서 일단 그는 아닌듯 싶다. 

    대구 출신으로서 상주 남장사에서 출가하여,   파계사에서 득도한 다음,   만공선사의 법맥을 이은 큰스님 중에,  고봉이라는 법명을 쓰신 스님이 계신다.   고봉 큰스님은 주로 대구지방과 충남 일대에서 행화하시다가 서울 화계사에서 원적에 드셨으므로 강원도에 소재한 화암사에 서족을 남기는 인연이 있었을지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고봉스님은 숭산스님의 은사가 되신다.

    세 분 중에서 그래도 고봉 이선영 선생의 작품 쪽에 제일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확실치 않다.

     

     

     

     

    종(鐘)

     

    범종(梵鐘)이라고도 한다.   각종 의식에 사용되며 또는 대중을 모으거나 긴급한 사항을 알리는 신호용으로도 사용된다.  의식에서 종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친다.  이 종과 북과 목어와 운판을 사물(四物)이라고 부른다.

     

     

     

    법고(法鼓)

     

    조석예불을 위시한 의식에서 사용되며 주로 축생(畜生)을 제도하기 위해서 친다.

     

     

     

     

     

    목어(木魚)

     

    물고기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서 속을 판 것으로 의식시에 사용되며, 물속에서 살고 있는 어류(魚類)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친다.

     

     

     

     

    운판(雲版)

     

    구름쪽 모양으로 만든 청동판(靑銅版)으로, 의식에 사용되며, 날아다니는 조류(鳥類)를 제도하기 위해서 친다

     

     

     

     

      화암사  수바위(秀巖)

     

     

    왕관모양을 닮은 바위의 모습이 뛰어나 秀자를 썼다고 한다.

     

    진표율사를 비롯한 역대 고승들이 이 바위 위에서 좌선수도 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스님, 신도들이 찾는 기도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화암사 설화

     

    화암사 남쪽 300m 지점에 위치한 수바위는 화암사 창건자인 진표율사를 비롯한 이 절의 역대스님들이 수도장으로 사용해 왔던 곳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수바위는 계란 모양의 바위 위에 왕관 모양의 또 다른 바위가 놓여 있는데, 이 바위 윗면에 길이 1m, 둘레 5m의 웅덩이가 있다. 이 웅덩이에는 물이 항상 고여 있어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수바위 이름의 “수”자를 수(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수(秀)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이 항상 시주를 구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화암사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 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라고 말하였다.   잠에서 깬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꿈을 생각하며 노인이 시킨 대로 했더니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편안히 불도(佛道)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한 객승(客僧)이 화암사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객승은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 흔들었다.   그러나 쌀이 나와야 할 구멍에서는 쌀은 커녕,   엉뚱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객승의 욕심에 산신(山神)이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화암사가 벼 화(禾)자에 바위 암(巖)자를 쓰게 된 것도 이 전설에 연유한다는 이야기이다.   수바위는 아들을 점지 해 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신혼부부들의 중요한 참배처이기도 하다.

     

     

     

    란야원 다원과 수바위..

     

     

      화암사 대웅전

     

     

     

    대웅전과 석탑

     

     

     

    신선봉을 배경으로 서 있는 대웅전은 그리 웅장하지는 않으나 단아한 아름다움이 깃든 건물이다

     

     

     

     

    석탑의 천왕상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불, 그 왼쪽에 문수보살, 오른 쪽에 보현보살의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신중탱

     

     

     

     

     

     

     

    화암사 대웅전 현판은 은초 정명수(隱樵 鄭命壽, 1909~2001)선생의 작품이다.   선생은 세속적인 출세를 거부하고 은자의 길을 걸었던 서예가로써,  호도 숨을 은(隱) 자에 땔나무 초(樵) 자를 사용하여 은초(隱樵)라 하였다.   숨어서 땔나무나 하며 살기를 바랬던 그는 결코 명예를 탐내지 않았지만,  화암사에 남긴 작품만 보아도, 그의 예술궤적과 성취의 정점은 동시대 어느 작가에게서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뛰어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초 선생은 진주에서 태어나 성파 하동주(1869~1944)선생에게 '추사체'를 사사받았다.   그의 작품은 주로 진주 마산 창원 일대에 많이 남아 있다.   진주성 '진남루'(북장대의 옛 이름),   해인사 해탈문 주련,   진주성 '남장대'   등의 현판이 그의 작품이며,   창원지법 진주지원(만민대로)과 창원지방검찰청 진주지청(형정민안)에도 그의 휘호가 있다.   전 김종원 경남서예협회 회장은 "은초의 서미(書美)의식은 시작과 결과가 그 자리다.   특히 표현적 입장에서 그 기법의 '단순' '우직' '둔중'은 인간의 세속적 다양다기한 삶의 결과가 허무로 종착될 수밖에 없는 이치를 절대적으로 투영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초 선생이 쓴 '비봉루' 현판작품에 대해,  이동국씨는 "은초가 안진경체류를 획득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30대 초반의 작품인데,   현판의 미덕과 현판 글씨의 미학을 그래도 담아내고 있다"며 "멀리서 봐도 한 눈에 들어오는 중후한 필획,   소소밀밀한 간가결구,   웅장한 짜임새가 그대로 낮춰져 있다"고 말한다.

     

     

     

     

    대웅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다른 호칭이며, 큰 장부(大丈夫)라는 뜻과 같다.

     

     

     

     

     

     

      화암사 대웅전 영역의 수각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에 위치해 있다...

     

     

     

     

     

     

     

     

     

     

     

     

     

     

     

     

     

      화암사 명부전 (冥府殿)

     

     

     

     

    대웅전을 향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의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화암사의 명부전이 있다.  

    바른층으로 쌓은 나지막한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장방형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겹처마로 구성하고,  공포는 주심포식이다.  측면에는 출입이 가능하도록 문을 달았다. 정면 창호는 어간과 협칸 모두 빗살 창호를 달아 통일감을 보여준다.

     

     

     

     

     

     

     

     

     

     

    내부에는 불단을 만들고 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  인왕상,  동자,  동녀 등을 봉안하였다.   지장삼존상 중 무독귀왕과 도명존자의 양 옆에 각각 익살스러운 모습의 사자를 배치한 점이 독특하다. 삼존상 뒤편으로는 현대에 조성한 지장탱화가 걸려 있다.

     

     

     

     

     

    명부전과 선방.

     

     

      화암사 선방 (禪房)

     

     

     

     

    선방은 참선을 하는 집이나 방을 가리킨다.  선가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석달씩 용맹 정진을 한다.

    여름철에는 음력 4월 보름부터 석달간,  겨울철에는 음력 10월 보름부터 석달간 정진한다.

     

     

     

     

    선원에는 탱화와 목불(木佛)이 모셔져 있는데 이 탱화는 500년 이상 오래 된 것으로 국보급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총무스님이 말씀해 주셨다...

     

     

     

    목불

     

     

    관세음보살탱화

     

     

     

     

      화암사 본다라 탐플스테이 추진관

     

     

     

     

    '본다라',   얼핏 들어서는 뜻 모를 이름이다.   태어남(born)과 죽음(die)의 영단어에 접미사 라(la)를 결합해 웅산 주지 스님이 지었다 한다...

     

     

     

     

     ‘생과 사의 참의미를 체득한다’는 심오한 뜻이 담겼다.   생사 문제는 모든 인간의 가장 근원적 물음이다.

    화암사 ‘본다라’ 템플스테이는 그래서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으며 또한 자유롭다.

     

    휴식이 필요하다면 예불 참여를 조건으로 상시 운영되는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통해 산사의 시간을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다.

     

    시간이 넉넉지 않다면 2~4시간의 템플라이프가,   좀 더 알찬 체험을 원한다면 매주 토~일 정규 템플스테이가 적합하다.   정규 템플스테이의 경우 참선수행과 108배,   발우공양과 성인대 등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불교문화 체험의 바로미터로 인기가 높다.   스님과의 차담과 숲길 걷기 등 문화적 요소를 강화한 프로그램  ‘산사의 숲’도 마련돼 있다.  

    사전예약을 통해 연수,  세미나,  워크숍,  MT 등 단체 일정도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화암사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돋보이게 하고자 고성군은 화암사를 중심으로 숲길 정비사업을 마무리한  둘레길은 화암사 템플스테이의 트래킹 혹은 포행 코스로 포함돼,  화암사를 찾는 대중들에게 그동안 감춰왔던 금강산의 새로운 속살을 살짝 공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화암사  삼성각 (三聖閣)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모신 법당으로,  대개 큰 법당 뒤편에 있으며,  사찰에 따라서는 산신각(山神閣)이라 하여 산신만 모시기도 한다.  이 산신이나 칠성은 민간 신앙의 풍습이 불교에 흡수된 것이다.

     

     

     

     

     

     

     

    이 삼성각 안 벽에는 금강산 천선대,  상팔달,  세전봉,  삼선대 등 금강산의 이채로운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화암사가 금강산 1만2천봉 8만9암자중 남쪽에서 시작하는 첫봉인 신선봉의 첫암자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주변의 주민과 신도들도 삼성각이 금강산이 시작하는 신선봉 바로 아래 세워져 있어 매우 영험하다고 믿고 있다고 한다.

     

     

     

    금강산 세전봉 벽화

     

     

     

     

     

     

     

     

     

     삼성각 앞에서 바라본 탑과 범종각

     

     

     

      화암사 스님수행공간

     

     

     

     

    화암사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운무로인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화암사 강당. 공양당

     

     

     

     

     

     

     

    강당(講堂)은  설법이나 강의를 하는 건물이나 그러한 방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화암사 찻집 란야원 다원

     

     

    전통찻집과 그 뒤로 보이는 수바위

     

     

     

     

    란야원 찻집 메뉴 :송화밀 수 ,  봉수차 ,  진주왕차 ,  보이차 ,  고정차 ,  대추차 ,  오미자차 ,  국화차 ,  수정과 ....

     

     

     

     

     

     

    찻집 한켠에는 이렇게 사찰과 관련된 용품들을 파는 공간도 있다.

     

     

     

     

    천장이 아름다운 전통찻집

     

     

     

     

    경허선사 토굴가와 금강산비경을 단다원 천정에...

     

     

     

     

     

     

     

     

     

     

     

     

     

     

     

     

     

     

     

     

     

     

    전통찻집 란야원이 수바위를 배경으로 다소곳이 자리를 하고 있다

     

     

     

     

     

      화암사를 나선다...  

     

     

    아름다운 화암사를 다시한번 둘러보고  일주문을 나선다...

     

     

     


    혹자는 화암사를 일컬어  ‘남몰래 감춰두고 혼자만 보고 싶은 절’이라고 말했다.  그리 크진 않지만 정갈하면서도 고즈넉한 느낌으로 자리한 전각,   그리고 금강산 최남단의 빼어난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다른 경관 덕분일 것이다.

     

    도량을 자분자분 거닐다보면 봄. 여름엔 푸르른 신록이,   가을엔 붉은 빛 단풍이,   겨울엔 하얀 눈이 객을 반길 것이다.....

    정면에 우뚝 선 기암괴석은 그야말로 부처님 법을 외호하는 호법신장과도 같다.

     

    절집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주변 자연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절,  화암사를 뒤로하고 우리네의 삶의 터전인 포항으로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관세음보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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