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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전사지와 새로이 불사된 진전사(강원도 양양)
    사찰여행/강원도 2013. 8. 29. 21:18

     진전사지와 새로이 불사된 진전사 

     

     

     


    2013.   8.   28.


     

     

    2013. 8. 24~25 . 1박 2일로 설악산 봉정암 특별기도 산행 다녀오면서 불교산악회 산빛 어울림에서 함께한  진전사지.........

     

    설악산 동쪽 끝 계곡의 해발 360m 가량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양양 진전사지(陳田寺址·도기념물 제52호).   속초공항에서 서쪽으로 4km쯤 가면 설악산 끝 자락에 둔전저수지가 있고 이 둔전저수지 아래 3층석탑과 부도만이 남아 넓은 절터를 지키고 있는  진전사지를 향해 본다.

     

     

     

     

    진전사지를 향하여


    설악산에는 신흥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인 배경 등을 고려하면  이 곳 진전사가 설악산 지역에서는 중심이 되었던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찰은 조선후기에 국가적인 폐불정책 때문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이 사찰이 지역에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기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는 3층석탑과 도의선사 부도가 남아 있으며, 옛 절터에는 작은 사찰이 세워져 있다.   진전사는 선종계열의 사찰이어서 그런지 인상적인 불전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건물터 흔적은 그리 남아 있지는 않다.

     


    양양 낙산사 북쪽편 해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치천 상류에 위치한 진전사지는 우리나라 불교에 큰 영향을 미친 사찰이었지만  옛 건물의 흔적들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특히, 진전사지는 그 위치가 사람들이 통행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지 않기때문에 이 곳에서 잠시 묵었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을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사찰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력이 부족했던 것도 폐사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옛님의 숨결을 찾아가는 폐사지 길은 그리 넓지 않다.  그래도 몇 년 전에 비하면 큰 버스도 다닐 만큼 넓어졌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민가는 없어지고  점점 속세를 떨치고 산 속으로 들어간다.  옛님의 숨결을 느끼러 가는 길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선종의 시조 격인 도의선사는 선종이 어떤 것인지 알려지지 않은 그 때에 이 깊은 심산유곡을 찾아 정신수양과 선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할 때 쯤 오른쪽 차창 옆으로 3층석탑 한 기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진전사터 3층석탑이다.

     

     

     

     

     

     

    설악의 품에안겨 아흔아홉골자기의 물이 모여 동해로 흐르는 계곡 한편에서 이곳이 옛절터였음을 짐작케하는 ...

    양양 진전사지는 부도탑이 있는 상대와 3층석탑이 있는 하대에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에는 작은 절이 들어서 있으며  옛 건물터의 흔적이 현재는 보이지 않지만  3층석탑이 있는 하대에는 옛 건물에 쓰였던 주춧돌의 일부가 남아 있다.   다른 절터에 비해서 건물터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이는 선종계열 사찰을 특징이 아닌가 생각된다.


     

     

     

     

    진전사지 (陳田寺址)  3층 석탑 ( 국보 122호 )

     

     

     

     

     

    진전사지 탑을 보는 순간 수려한 실루엣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불국사에 있는 석가탑이 삼국시대 탑의 완성품이라면 여기에 있는 진전사터 삼층석탑의 수려함과 기단부,  탑신부에 새겨진 조각이 보통을 넘는 석공의 작품임을 눈치채게 된다.

     

     

     

     

     

    고승의 염원을 간직한체 천년세월을 묵묵히 서서 아득히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쓰러진 옛터를 지켜온 진전사지 (陳田寺址)  3층 석탑....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한 3층석탑 중 하나이다

     

     

     

     

     

     

    듬직한 지대석 위에 2중의 기단을 설치하고 3층의 탑을 쌓은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탑의 기본적인 형태이나 상하 2층의 기단에 각각 비천상과 팔부신중을 조각한 화려한 자태로 국보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의 기본적인 형태로서 상하2층기단에 각각 비천상과 필부신중을 조각하고 1층 몸돌에는 사방불을 조각한 모습이 자못 하려하다.   하층기단에 탱주를 모각하고 각면에 연화좌위에 앉아 있는 비천상 2구씩을 조각해 놓았다.

     

     

     

     

     

    1층 몸돌에는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여래좌상을 한분씩 조각해 두었다.

    2.3층의 몸돌은 1층에 비해 절반이상 줄었으며 우주만 모가되었을 뿐이다.

    상층기단 사면에 팔부신중 2구씩 구름위에 않아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상층기단 사면에 팔부신중 2구씩 구름위에 않아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입체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아래 기단에 새겨진 천인상

     

     

     

     

     

     

     

    높은 지대석 위에 2중 기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 기단에는 비천상이 각면에 2구씩 배치되어 있고.. 상층 기단에는 8부중상(八部衆像)이 역시 각면에 2구씩 새겨져 있다..

     

     

     

     

     

     

     

     

     

     

     

     1층 탑신부에는 네 방향 모두에 부처님을 새겨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

     

     

     

     

     

     

     

     

     

     

     

     

     

     

     

     

     

     

     

     

     

     

     

     

     

    역시 상층기단의 다른 면...

     

     

     

     

     

     

     

     

     

     

     

     

    이 절을 창건한 도의선사와 그의 제자들은 선문의 앞장에서 서서 선구자 역할을 하며 여러 형태의 부처님을 통해 중생을 계도하는 바라밀을 실천하신 모습을 그려본다.

    문화유산은 그 시대의 반영이라고 한다.  

    그 시대 이런 첩첩 산중에 왜 이렇게 아름답고 정교한 석탑을 만들었을까?   '왜?'라는 질문을 해 보지만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다.   다만 이 진전사가 우리나라 선풍의 시작점으로 당나라에 선을 배워온 도의가 세상 밖으로 큰 뜻은 펼치지 못했지만 그 후 우리나라 선풍을 반석에 다진 분이 계셨던 절이기에 그 정도의 석탑을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진전사지 3층석탑 뒷편의 법당 건물터.

     

    옛 건물에 사용되었던 초석들만 일부 남아 있는데 그 수량 또한 많지는 않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왕조의 폐불정책 때문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에는 절이 없어질 때 스님들이 절터 위에 있는 연못에 범종과 불상을 던져 수장하고 떠났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온다.

     

     

     

     

     

     

    진전사터는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닌 유적이며   신라 불교가 교종에서 선종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그 싹을 틔운 곳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신록 가득한 계절이 아닌, 눈이 내리는 겨울에  이런 폐사지를 찾아 옛 선사의 이름과 그의 행적을 더듬어 보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보는 것은 또 어떤 기분일까?

     

     

     

     

     

    진전사지터

     

     

     

     

    지금은 잘 닦여 있는 도로를 따라  탑이 있는 곳에서 약 500m 정도 위로  올라가면 왼쪽으로는 새로 만든 절이 있고 그 절 앞 숲 속에 진전사지 부도가 자리 잡고 있다.

     

     

     

     

     

     

     

     

     

    양양 진전사지는 부도탑이 있는 상대와 3층석탑이 있는 하대에 건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에는 새로이 조성한 절이 들어서 있으며  옛 건물터의 흔적이 현재는 보이지 않는다.  

     

     

     

     

    진전사지를 닮은 내 삶의 빈 터가 8월 막바지 햇살에 뜨겁게 익고 있다.  가끔 시원한 바람도 불어 온다.  정겨운 목소리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머물다 가고,  새들이 날아와 앉는다.

    진전사지에서 발굴되어 차곡차곡 쌓여 올려진 기와 조각들이 따뜻한 무덤 같다. 그 무덤에 옛 것을 고스란히 묻어 주고 온다.

     

     

     

     

     

     

     

     

     

    진전사지 (襄陽陳田寺址)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설악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로 강원도기념물 제52호이다.

    이 절은 신라 선문9산(禪門九山)의 효시가 되었던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시조인 도의선사(道義禪師)가 창건한 것이다.

     

    도의선사는 784년 당(唐)나라에 가서 지장선사(709∼788)에게 법을 배운 뒤,  821년(헌덕왕 13)에 귀국하여 설법했으나 당시  교종불교가 절대적이었던 신라 불교에 선종을 소개하였다으나 교종을 널리 믿었던 때라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곳에서 40여 년 간 수도하다가 입적했다.  

    ‘중국에 달마가 있었다면 신라에는 도의가 있었다’고 평가를 받는 분으로 도의선사의 법맥은 그의 제자 염거화상과 보조선사로 이어져 선풍(禪風)을 일으키켜 한국 불교의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절에 관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며,   현재 폐사지에는 양양 진전사지 3층석탑(국보 제122호)과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보물 제439호)가 있다.

     

     

     

     

    옛 진전사의 가람배치.

     

    사찰규모가 상당히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전사는 우리나라에 선종을 들여온 도의선사가 창건한 절이자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이 14세 때 출가한 절로 이름나 있다.

     

     

     

     

    진전사지는 그렇게 나를 맞아 주고 있다.

    집 없는 가난한 자를 빈 터에 홀로 세우며 "네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스스로에게 대답한다.  "옛 집을 버리고 새 집을 얻었습니다.  내 인생의 화폭 위에 저 설악산을 옮기고,  소백산맥의 푸르름을 담았고,   청량산의 아침 햇살을 담았습니다. 그 안에 제가 살고 있습니다."

     

     

     

     

     

     

     

      새로이 조성한  진전사

     

     

     

    조계종에서는 통일신라시대 도의선사가 수행한 진전사지를 선종불교에 대한 고귀한 정신문화 함양을 위해 복원키로 결정함에 따라  진전사지 상대쪽 절터에는 2009년 3월 새로이 '진전사'라는 전통사찰(제 46호 지정)이 들어서 있다.

     

     

     

     

     새로이 조성한 대웅전인 적광보전이 장엄하게 자리하고 있다...

     

     

    적광보전은 20평으로 고려시대 불교건축물을 참고해 주심포 양식의 겹치마 팔각지붕을 지었다.  또 현지에서 발굴한 기와의 모양과 문양을 재현해 기와를 올렸다.

     

     

     

     

    법당의 주불이 참으로 화려하고 장엄하다..

     

     

     

     

     

     

     

     

     

     

     

     

    주불뒤로 후불탱도 장엄하게 자리했다.

     

     

     

     

    법당의 탱화들..

     

     

     

     

     

     

     

     

     

    법당 내벽에도 장엄한 벽화가...

     

     

     

     

     

     

     

     

     

     

     

    측면에서 본 법당

     

     

     

     

    후면에서 본 법당

     

     

     

     

     

     

     

    법당의 외벽화

     

     

     

     

     

     

     

     

    법당 창살문

     

     

     

     

     

     

     

     

     

    법당에  모셔진 주존불과  화려한 장엄만이 한컨에 자리하고   그  나머지 횡하니 빈터는 더 깊게 나를 포옹해 준다.

    자기 깨달음은 그렇게 보여지지 않는 것이라고... 이제는 내 마음에 앞서 간 이들의 깨달음을 담아야 한다고 그렇게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어쩌면 이 빈 터가 진정한 관음의 세계일 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깨달음에 더 가까이 닮아 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진전사 요사

     

     

     

     

     

     

     

     

     

     

     

     

    63평 규모의 요사

     

     

     

     

    요사 한컨에는 종무소를 두고 있었다...

     

     

     

     

     

     

     

     

    진전사지  전경

     

     

     

     

     

    빈 터일수록 바람이 자유로이 흐를 수 있을 것이며 비 또한 흠뻑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봄이면 갖가지 씨앗이 날라 와 싹을 틔우고 갖가지 색의 꽃을 피워 댈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내리면 머리 위에 설악산처럼 하얀 눈을 이고,   바람이 불면 그 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자락이 휘감기도록 벽을 허물고 또 허물어야 할 것이다.   때로는 맑은 밤 하늘의 별자리를 천천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고,   가득 차 오르는 보름달에 훤히 드러나는 가지 각색의 꽃들이 잠든 모습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소유의 욕망으로 또다른 꿈을 꾸는 과오의 반복에 대하여 밝게 내 자신을 비춰 주는 맑은 거울에 비친 내 몸에서 진전사 빈 터를 가득 메운 갖가지 풀을 닮은 잎파리들이 삐죽이 손을 내밀며 자라나고 있는 것 같다.

    '언제쯤이면 나 또한 소박하고 작으나마  이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가을에 줄기를 휘어지도록 할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  그 미래를 꿈 꿀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 선택을 믿어 주고 지지해주며, 그 길을 말없이 함께 걸어 주는 가족이 있어서 너무도 고맙다.

     

     

     

     

     

     

     

     

     

     

     

     

     

     

     

     

     

     

     

     

     

     

     

     

     

     

     

     

     

     

     

     

     

     

     

     

     

    진전사 부도 (보물 제439호)

     

     

     

     

     

    사찰 옆에는 보물 439호인 도의선사 부도가 서 있다.

     

     

     

     

    소나무 숲에 싸여 있는 부도는 언뜻 보면 탑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부도의 기단부는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의 양식인 이층 기단으로 되어 있다. 다만 탑신부에서 지붕돌(옥개석)이 없는 대신 연화대좌 위에 팔각형의 탑신석을 올려놓았다.

     

    진전사터의 부도는 기단부가 신라 탑의 형식을 탑신부는 팔각원당형 부도의 모습을 닮아 있어 그 형태에 있어서 진공대사 부도나 철감선사 부도보다 더 앞선 시대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록이 없어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설악산 둔전마을 깊숙이 자리 잡았던 도의선사의 행적만은 분명하다.

     

     

     

     

     

      

     

     

    도의선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진전사지 부도는 선종이 등장하기 이전 신라의 큰 스님들인 의상, 원효, 자장 등 어느 스님도 부도를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선종이 유포되면서 탄생한 첫 부도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

     

     

     

     

     

    도의국사는 신라후기의 구산선문 중 하나인 가지산문의 개조이다.  

    법호는 명적,  속성은 왕씨이며 북한군(지금의 서울) 출생이다.   784년 당나라에 건너가 조계에 가서 헤능대사의 조사당을 참배하니 문이 스스로 열렸고, 절을 세번하니 문이 저절로 닫혔다고 한다. 이후 강서의 홍주 개원사에서 서당지장으로부터 법을 얻고,  도의라는 법호를 받았다.   821년 귀국하여 선(禪)을 일으키려 했으나 당시 신라사람들은 교(敎)만을 숭상하고 무위법을 믿지 않고 비방하면서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는 아직 시기가 오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 곳 설악산 진전사에 은거하여 40년동안 수도에 전념하면서 제자 염거선사에게 남종선법을 전하고 입적하였다.

     

    도의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이다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 탑은 멀리 동해 바다가 내다보이는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진전사 터 안의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탑이다.

    높이 3.17m이며, 팔각형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부는 석탑에서와 같이 사각형 2중 기단이라는 점에 주목된다.   일반적인 다른 승탑과는 달리 팔각형의 탑신(塔身)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아래 부분이 석탑에서와 같은 2단의 4각 기단(基壇)을 하고 있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3층 석탑과 함께 도괴되었던 것을 1968년 복원한 것이다.  이 승탑은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선사(道儀禪師)의 묘탑으로 추정된다.

     

     

     

     

     

     

    진전사지 도의선사 탑의 기단부는 각 면마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그 위로 탑신을 괴기 위한 8각의 돌을 두었는데 옆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둘렀다.

    하층 기단은 지대석과 중대석을 한 돌로 붙여 4매로 짜고 각 면에는 2개의 우주(隅柱; 탑 기단부 모서리의 기둥)와 탱주(撑柱; 탑 기단부 가운데의 기둥) 1주가 뚜렷이 조각되었다.

     

     

     

     

     

     

    탑신은 8각의 기와집 모양을 하고 있으며, 옥신(몸돌)의 한쪽 면에만 문짝 모양의 조각을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았다.

    옥개석(지붕돌)도 8각으로 밑면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낙수면은 서서히 내려오다 끝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살짝 들려 있다.

    상륜부는 동그란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간소하게 만들었다.

     

     

     

     

     

     

    석탑을 보고 있는 듯한 기단의 구조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볼 때 우리나라 석조탑의 첫 출발점이 되며,  세워진 시기는 9세기 중반쯤이 아닐까 한다.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치밀하게 돌을 다듬은 데서 오는 단정함이 느껴지며,  장식을 자제하면서 간결하게 새긴 조각들은 명쾌하다.

     

     

     

     

     

     

     

     

    부도탑 입구의 소원돌탑

     

     

     

     

    부도탑에서 바라본 새로 조성된 진전사 모습이다.

     

     

     

     

     

     

     

     

    고승의 염원을 간직한체 천년세월을 묵묵히 서서 아득히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쓰러진 옛터를 뒤로 하고 진전사지를 내려간다..

     

     

     

     


    한 시절은,  한 시대의 흔적은 결국 사람의 마음 속에,  그들의 사랑과 삶 속에만 남겨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리 날카로운 삽을 들고 그 자리를 파내어 과거의 파편들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얼마나 온전히 그대로를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인가?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인가?   진전사에 얽힌 이야기와 그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미 바람이고 비이고 햇살이다.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이 빈 터에 바람으로 잠시 다시 머물다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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