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송사(경남 함양)사찰여행/경상도 2013. 4. 16. 12:00
벽 송 사
2013. 4. 16.
2013. 4. 14. 지리산 둘레길 3코스를 걷기위해 길을 떠난다.
06:00 포항을 출발→ 와촌에서 아침 식사 후 →대구 →거창 → 함양에서 잠시 쉬어 → 남원(09:40) 장항교에 도착 후 지리산 둘레길을 5시간 걸어 경남 함양의 금계마을에 도착 후...
후미를 기다려 벽천사로 향해 본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히고 있다는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 '칠선계곡'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벽송사'는 옛 부터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리고 6,25 전쟁 당시 빨치산들이 활동하던 곳이 주변에 있어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어 6,25 전쟁으로 인해 절이 모두 불타버렸고, 현재의 건물들은 전쟁 이후에 세워진 건물들이라고 한다.
벽송사 주차장에서 바로 올려 보면 보이는 사자탑의 모습..
초입의 소원탑들도 보이고
함양 벽송사에는 흔한 일주문이 없다...이렇게 목장승이 일주문을 대신 한다...
절 입구 주차장에서 약간 가파를 길을 50m쯤 올라가면 오른쪽에 목장승 2위를 놓은 장승각이 있고, 여기부터 경내가 시작된다.
벽송사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수 없으나 절 뒤쪽의 창건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으로 미루어볼 때 그 시기를 신라말이나 고려초로 보고 있으며 현재 3층석탑은 보물 제4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고 전하여지며 한국전쟁때는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된적도 있으며 이때 불에타 소실된 이후 곧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계 정심의 맥을 이어 조선 불교태고 선맥의 5대 정통이 되었고 부용영관, 원오, 일선등 60여명에게 선을 가르쳤던 곳 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이 사찰은 1950년대 전란(戰亂)시 빨치산 루트로 사용되는 등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벽송사 목장승(경남 민속자료 제2호)
장승의 기원은 고대 성기 숭배에서 나왔다거나 사찰 토지의 표지로 이용되었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또 목장승은 솟대에서, 석장승은 선돌에서 유래 되었단다. 벽송사 입구에 세워진 이 장승은 사찰에 들어오는 악귀의 퇴치, 사찰 경내에서 행해지는 불법 어로와 사냥의 금지, 풍수지리상의 비보역할 등 다양한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제작연대는 대략 일제시대 초기의 것이라 전한다.
왼쪽 여장승은 '금호장군' 이라 음각돼 있고, 오른쪽 남장승은 '호법대장군'이라 음각돼 있다. 금호장군은 왕방울 눈만 남고 많이 훼손되었고. 호법장군은 원상태를 거의 잃치않고 있다. 무서우면서도 순박하고 위풍 당당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이 익살스럽다.
2기의 목장승은 본래 높이는 4m이나 절반이 땅에 묻혀 있으며, 마천면이 변강쇠와 옹녀의 일화를 담은 가루지기타령이 전하는 곳이라 특히 주목을 받는다. 왼쪽이 금호장군(禁護將軍), 오른쪽이 호법대장군(護法大將軍)이고 재질은 밤나무이다. 이 중 금호장군은 1969년에 일어난 산불로 머리가 파손되었다.
목장승 좌측은 금호장군(禁護將軍), 우측은 호법대신(護法大神)
입구의 석조물들.........
"여순 반란사건 잔당 200여 명이 지리산으로 입산 좌익 세력과 함께 제2 병단 지리산 유격대를 결성하였다.
이들 빨치산은 한국전쟁 당시 후방 교란을 목족으로 경찰서와 군부대를 습격하고 민가에 피해를 주는 등 그 폐해가 심했다"라고 전한다.
한국전쟁 당시에 인민군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었던 벽송사는 국군에 의해 방화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원통전에서 나와 다시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50m쯤 걸어가면 왼쪽에 평평하고 드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가 통일신라 무렵의 창건 당시 절터가 아닌가 한다. 이 터 입구에 조선시대 부도 3기가 나란히 있고, 그 옆으로 삼층석탑이 있어 이곳이 절터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삼층석탑 앞과 뒤에는 소나무밭이 펼쳐져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석탑 앞에 있는 두 그루가 대표적이다. 함양에는 특히 소나무가 많은 편인데, 이 지역이 소나무에 적합한 토양을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벽송사 부도 - 삼층석탑 옆에 있는 3기의 석종형 부도가 있다
벽송사 삼층석탑 (보물 제 474호)
이 탑의 위치는 원래 벽송사 대웅전 동편에 세워놓은 것인데 사찰이 아래로 옮겨져 탑만 남게 됐다. 통일신라시대 양식이지만 사찰이 세워진 때가 조선시대(1520년)이므로 그때 탑으로 판단된단다. 사찰의 뒤쪽에 부도와 함께 위치해 있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이 탑은 이중 기단 위에 세워진 평면 사각형의 3층 석탑으로, 지면 위에 장대석으로 탑구를 설정하고 지대석 위에 2단의 기단부를 두었다.
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보이고 있으며 상륜부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과 복발 만 남아있다
벽송사 3층 석탑은 2단으로 된 기단의 아래층 기단에 가운데 돌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얕게 조각하였는데,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의
사이에 높직하게 딴 돌을 끼워놓았다
탑신부의 몸돌은 각 층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으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과 2층은 2단이고 3층은 3단이다.
탑신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1석으로 구성되었으며,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있고 그 위에 자그마한 보주가 얹혀 있다.
벽송사 범종각
원통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앞 중앙 기둥 앞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기둥 위로는 보주가 얹혀져 있는데 그 주위를 돌 염주가 감싸고 있다.
도인송과 미인송이 함께하고 있는 벽송사 '원통전'
관세음보살을 그 사찰의 주불(主佛)로 봉안 할 경우에는 원통전, 또는 원통보전이라고 한다. 벽송사의 금당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은 '원통전'이다.
원통전 안에는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벽송사 원통전에는 후불탱, 지장탱, 신중탱과 11면관세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원통전 주련
正法明王觀世音 정법명왕관세음 정법명왕 여래이신 관세음 보살님.
寶陀山上琉璃界 보타산상유리계 보타산 위 맑은 세계 유리계에 계시면서
影入三途利有情 영입삼도이유정 그림자는 삼도에 가 모든 유정 보살피고
形分六道曾無息 형분육도증무식 모습은 육도 나퉈 일찍이 쉼없다네.
원통전과 산신각 뒷곁에는 쭉 뻗은 대나무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산신각 안에는 산신을 모시고 있다.
도인송 옆에는 미인처럼 잘 생긴 미인송이 있는데 너무 크고 기울기가 심해서 미인송이 부러질 위기에 처해지자 받침대를 세워 놓았다.
벽송사 미인송
남몰래 스님을 연모하던 여자, 부용낭자는 정인의 죽음을 접한 후 천년학이 되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유언을 했다. 벽송사에서 스님의 정령을 수호하겠다는 서약이었다. 그렇게 미인송은 이름과 사연을 얻었다. 그래서 일까 미인송에는 항상 학 한마리가 앉아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린다. 지금의 미인송이 구부러진 이유는 옛날사람들이 송진 기름을 얻기 위해 나무 아래에 홈을 파서 꺽인 것이다.
도인송의 기운을 받으면 건강을 이루고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며, 미인송에 기원하면 미인이 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도인송
벽송선원 주련
靈光獨露逈脫根塵(영광독로형탈근진) 신령스런 빛 홀로 드러나 근진을 멀리 털어내고
體露眞相不拘文字(체로진상불구문자) 본체가 드러난 참모습은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眞性無染本自圓成(진성무염본자원성) 참된 성품 물들지 않아 절로 원만하게 이루어지며
但離妄緣卽如如佛(단리망연즉여여불) 망령된 연을 여의면 그대로 여여한 부처라네
高嶽峨嶺智人居處(고악아령지인거처) 높고 험준한 산은 지혜로운 이의 거처요
碧松深谷行者所棲(벽송심곡행자소서) 푸른 소나무 우거진 깊은 골은 수행자가 머무를 처소로다
벽송사 선방에는 도인이 하도 많아서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있다.
벽송선원 내 - 부처님 뒤에 후불탱화 대신 '반야심경' 액자가 눈에 띈다.
벽송사는 부용만개와 청학포란형 사찰이라 선방에서 도인이 많이 나와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벽송선원 -선방
벽송선원에서 바라보이는 지리산 자락의 아름다움은 높고,푸른 하늘과 더욱 잘 어울리는것 같았다.
간월루
맨끝에서 부터~ 다실, 지대방, 간월루 건물이 .....
벽송사 수조
벽송사 방장선원(方丈禪院)과 '종무소'
벽송사 '안국당' 승방요사
안국당은 안국선원 선원장 수불스님께서 도움을 주셔서 지은것이라고...
벽송사 청허당(선원)
청허당은 청허유정 '서산대사'를 기리는 뜻에서 붙여진 당호라고 한다
벽송선원 넓은 마당 양편에는 승방요사인 '안국당'과 선원 '청허당'이 쌍둥이 처럼 서있다. 이곳은 원래 벽송사 텃밭(감자밭)이었다고 한다.
벽송사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
벽송사 내려오는 길목에는 유명한 고승들과 벽송사 주지스님들의 말씀들을 길가 나무에 걸어두어 오가는 행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벽송사 입구의 목장승을 뒤로 하고....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인 벽송사를 참배하여 묵은 업장을 소멸하고 청복(靑福)을 담아 성불인연을 가꾸어 본다.
아울러 벽송사 목장승과 도인송, 미인송의 기운을 받아 건강과 소원을 성취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사찰여행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왕사(남해) (0) 2013.04.23 서암정사(경남 함양) (0) 2013.04.17 오어사(경북 포항시) (0) 2013.04.03 남해 용문사(경남 남해) (0) 2013.03.27 고석사(경북 포항시 장기면 방산리) (0) 2013.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