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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 보리암 & 다랭이 마을(명승 제15호)
    여행방/섬여행 2026. 7. 16. 18:58

    남해  보리암 & 다랭이 마을  (명승 제15호)

      

    2026.   7.   16. 

     

     

    2026.  7.  13 ~ 15 (2박 3일).  가족여행으로  함께한 남해 여행길이다...

    2026.  7.  14.  여행  둘째날,    2박 3일 일정 중 1박 후 맞이한 2일 아침이다.  오늘은 남해 쏠비치 호텔을 한바퀴 돌며 아침 산책과 조식 후  남해  보리암 & 다랭이 마을로 향해본다.

     

    남해 쏠비치에서 보리암까지는  차로 30분 소요되었다.

    제1주차장에서는 셔틀버스를 타야한다.

    주차 요금은 5,000원

    셔틀버스 성인 1,700원 학생 1,400원

    입장료는 성인 1,000원, 단체 800원

    만 6세 미만 어린이는 무료 

     

    마을버스는 보광운수와 금송운수가 공동으로 총 8대(28인승 각각 4대)의 마을버스를 투입해 복곡 제1주차장과 제2주차장을 운행하고 있다.  운행 기준은 30분 간격 운행을 원칙으로 하며 만차 시 즉시 출발하도록 되어 있다.

     

    보리암은 2개 주차장이 있는데 1주차장은 차를 주차하고 셔틀타고 이동하고 2주차장은 보리암 입구 앞까지 바로 주차할 수 있지만 1주차장 보다 주차공간이 적어 올라가는데 대기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남해 금산을 오르내리는 마을버스가 복곡 제1주차장에서 제2주차장으로 올라 가려는 승객을 태우고 있지만 우리는 차량을 타고 보리암 입구의 2주차장으로 향한다.

     

     

     

    숲 터널 같은 진입로를 어느 정도 올라가니

     

     

    부처님 세계로 입문하는 길에 온통 신비로운 안개길이다...

     

     

    보리암 복곡 제2주차장(경남 남해군 이동면 보리암로 586) 도착이다.

     

     

    제2주차장에는 화장실도 있다.

     

     

    보리암 제2주차장  긑에 바로  보리암 매표소가 있다.  입장료는  성인 1,000원  초.중.고 학생 무료

     

     

     

     

     

     

     

     이제 보리암 영역으로 들어선다.

     

     

     

    갈림길에선 언제나 우왕좌왕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데 ~  어디를 먼저 가야 할까?

    어디를 먼저 돌아봐도 차이는 없지만 먼저 보리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전각 보광전(普光殿)을 들어선다.

    '빛(光=깨달음)을 널리 펴겠다'는 의미를 가진 보광전은 관세음보살의 중생구제 원력을 현실화 시킨 전각 이다.

    보광전은 언제나 들어 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오늘이 초하루라 더욱 전각이 복잡하여 겨우 3배만 드리고 작은 소망하나 놓는다.  보리암은 한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 준다는 영험스럽고,  자비스러운 기도 도량으로 소문난 암자이다.

     

     

    보리암의 주불전인 보광전(普光殿)

    보광전은 26평 규모의 전각으로 1969년 지어졌다.

    보광전(普光殿) 이란 당호를 가진 법당은 우리나라에서 그 예가 드물다.   보광전은 원래 고대 중인도 마가다국 보리도량에 있었다고 하는 불전의 이름이다. 

    부처님께서 화엄경을 설하는 아홉 번의 법회 가운데 2회,  7회,  8회가 보광법당회로 이루어졌는데,  아마도 보광전이란 이름이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7처9회의 장소: 1회 적멸도량,  2회 보광법당회,  3회 도리천,  4회 야마천회,  5회 도솔천회,  6회 타화천회,  7회 보광법당중회,  8회 보광법당삼회,  9회 서다림회)

     

     

    보광전 벽에 그려진 관세음보살 벽화

    법화경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보면 일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 그 음성을 듣고 찾아와 즉시 괴로움을 없애주고 모두를 해탈케하고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옷자락은 바람에 흩날리고 한손은 감로병을 들고,  또 한손은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그 발아래 동자가 올려다 보는 이분이 '양류관음보살'이다.

     

     

    동자와 함께 그려진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양류관음 앞에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지만 그러나 그모습은 보타낙가산에서 선재동자가 양류관음의 설법을 경청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양류관음보살 대부분이 흰옷을 입고 계셔서 '백의 양류관음'으로 불린다.

     

     

     산신각 하단 쪽, 종작 안쪽 바위 밑의 작은 굴속의  부처님

     

     

     

     

    보리암 종각

    범종(梵鐘) 은 청정한 불사에 사용하는 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석문의범' 에 의하면 종은 명부세계의 중생을 소리로써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도록 일깨운다고 한다. 

    범종은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  새벽에는 28번의 타종을 하는데 천상계의 사천왕천에서 비상비비상천까지 28천의 모든 하늘나라 중생들을 깨워서,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의미에서 친다.   한편으로는 인도의 가섭존자에서 중국의 달마대사까지 28대 조사를 위하여 친다는 설이 있다.   저녁에는 육신을 가진 현실의 수행자가 수미산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정상이 도리천이다.  즉 현실의 수행자들이 수행자들이 사는 도리천을 상징함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의미로 33천을 상징하는 33번의 종을 친다.  그리고 28천+욕계천 아래의 5계(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라는 설도 있다.

     

     

    운무 속 보리암 주불전인 보광전을 나와 보리암 해수관음상을 친견하기 위해  길을 내려선다.  독경소리를 들으며 바다 쪽으로 꺾어 들어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바다를 보고 있는 순백의 해수관음상으로 내려선다.

     

     

    보리암 해수관음보살상(海水觀音菩薩像)은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항상 인도의 남쪽바다 가운데 있는 보타락가산에 거주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라고 한다.  이곳의 맑고 깨끗한 연못가 금강보석 위에는 관세음보살이 앉아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있으며,   때때로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기도 한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입상은 앙련(秧蓮)의 연꽃대좌 위에 서서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보관에는 아미타불 좌상이 새겨져 있다.

    옷주름표현이 바람에 휘날리 듯하여 생동감이 느껴지는 보살상이다.

    이 관음보살상은 1989년에 제작된 것으로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하여 요즘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기도객들이 모여들고 있는 곳이기도 한다.

     

     

    양양의 낙산사, 강화의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보살 성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관음상 옆에 있는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74호)은 원효대사가 가야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갖고 왔다는 파사석(인도에서 출토된다는 돌)으로 보리암 앞에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데 건립 시기는 고려시대. 이 탑에 나침반을 대면 바늘이 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제멋대로인데 아직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신비로운 석탑이다.

     

    신비로운 3층 석탑(三層石塔)은 신라 석탑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신라석탑이라 부르고 있으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감정되고 있다.   보리암 앞 바위 끝에 세운 높이 165㎝의 이 탑은 상륜부에 보주(寶珠)만 놓여 있다.

     

    이 탑은 원효대사가 금산에 암자를 들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 수로 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인도 갠지스강 하류에서 발견되는 이 돌은 자성을 띠고 있다고 한다.

     

    탑은 본래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드신 후 다비를 통해 얻은 사리를 여덟 나라가 나누어 가지면서 각기 탑을 세워 부처님처럼 모신 것에서 유래한다.   이때부터 사리신앙과 더불어 불탑이 세워지기 시작하는데 탑을 조성하면 무한한 공덕을 얻을 수 있다 하여 유행하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대신 불경이나 불상 등의 법신사리를 봉안한 탑이 건립된다.   탑의 형태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양식을 갖는데 우리나라는 석탑이 대표적이다.

     

    3층석탑은 보리암이 아슬아슬한 절벽에 걸려 있어서 나쁜 기운을 누르려고 세운 탑이라 한다.

     

     

     

    우측 보광전과 마주하고 있는 좌측 설법전인 예성당은 앞에서 보면 단층구조이지만 옆이나 해수관음상에서 보면 2층 구조이다.

     

     

     

    시원한 남해바다가 조망될 이곳이 오늘은 안개만 자욱하다....

     

     

    극락전 처마에 서서 바라 보이는 남해바다를 못봐 못내 아쉽다.

     

     

    독경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돌려 계단을 올라 2주차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길을 달려  다랭이 마을로 달려간다.

     

     

     

     

    다랭이 마을이다.

     

     

    남해의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한 척 없는 마을이다. 마을이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탓이다.  방파제는 고사하고 선착장 하나도 만들 수 없다 보니 마을 주민들은 척박한 땅을 개간해 한 층 한 층 석축을 쌓아 논을 만들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지금의 명승 제15호 다랭이 논이 만들어졌다.  들쭉날쭉 제 멋대로 생긴 논들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산뜻한 산책로와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 편안히 돌아볼 수 있다

    다랭이의 명물인 암수바위(경남 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구름다리. 몽돌해변 등을 돌아보는 데 1시간 남짓 소요된다.

     

     

    우리네 어버이들이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산비탈을 깎아 곧추 석축을 쌓아 계단식 다랭이논을 만든 까닭에 아직도 소와 쟁기가 필수인 마을이 바로 다랭이마을이다.

    다랑이는  ‘좁고 긴 논’을 뜻하는데 사투리로 다랭이, 달뱅이로 불리우는데 우리나라 대표적인 다랑이촌인 경남 남해군 ‘가천다랭이 마을’은 2005년 1월3일 대한민국 명승 제15호에 지정되었다.

    바다에서 시작된 좁고 긴 논들은 계단처럼 이어져 있고, 남해 최고의 산행길로 사랑받는 응봉산과 설흘산을 향하고 있다.

    설흘산(482m) 산비탈에 형성된 가천마을은 해안 절벽으로 인해 바다를 끼고 있지만 배 댈 곳이 없어 고기잡이는 엄두를 내지 못하다 보니 마을 주민은 가파른 산비탈에다 계단식 석축을 쌓고 그 안에다 흙을 채워 논농사를 짓게되었는데 그렇게 만든 집과 논은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제비집처럼 위태로 보였다고 한다.

     

     

    다랭이마을로 내려선다.

    초록의 비탈진 계단 위로 긴 노동의 시간이 멈춰선 듯하다.  45도 경사 비탈에 108개 층층 계단 680여 개의 논이 펼쳐져 있는 다랑이논.   이 ‘다랑이’는 산골짜기의 비탈진 곳 계단식의 좁고 긴 논배미란 뜻인데 ‘어서 오시다’라는 구수한 남해 사투리로는 ‘다랭이’라고 부른다.

     

    마을을 감싸고 잇는 커다란 산으로 인해 배를 댈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 그 땅 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은 돌을 쌓고 논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양념하나 안되어진 이런 기본 반찬과

     

     

    맛없던 된장찌게....

    우리가 식당에 들어갔을때  식사하던 손님들의  너무 무표정하고 말 한마디 없던 식탁 풍경을 미리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제 까지 내 생애 먹어본 음식 중에  최고로 맛 없었던 집이었다.  숟가락 놓고 나오고 싶던 ~

    돈 계산하는데 너무나 화가 나는 기분(?)은 뭘까?    이런 음식 맛으로  식당을 하는 분의 마인드가 궁금하다.   나오며  주인께 정중히 너무 맛없었다고 이야기 하니 다꾸조차 없었지만...

    이렇게 음식으로 혹평해 보기는 내 나고 처음이지만...   암튼 너무 기분 나쁜 점심식사였다...

     

     

    정자 근처에 다랭이 마을의  암수바위가 있다.   남해6경 남해 가천 다랭이 마을의  암수바위는 경남 민속자료 제13호 이다.

     

     

    다랭이마을 미륵바위는 우리 나라의 성기 바위로는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숫바위는 높이 5.8미터, 둘레 약 1.5미터로 발기한 남자 성기 모양이고, 암바위는 높이 3.9미터, 둘레 약 2.5미터로 잉태해 배가 부른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모양이다. 바다를 등지고 마을을 향해 비스듬하게 짝을 이룬 형상으로 자연석 화강암이지만 숫바위는 인공을 가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귀두와 힘줄이 사실적이다. 안내문에는 영조 27년(1751) 땅속에 묻힌 바위들을 캐냈다고 한다.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났다.

    "내가 묻혀 있는 곳에 사람과 짐승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조광진이 아전을 데리고 가천에 가보니 꿈에 본 것과 똑같은 지세가 있어 땅을 파자 숫바위와 암바위가 나왔다. 조광진은 암바위는 누운 그대로 두고 숫바위는 일으켜 세웠다. 또한 바위 이름을 미륵이라 하고 다섯 마지기 논을 제답으로 바쳐 해마다 미륵이 발견된 음력 10월 23일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사를 올리게 했다.

    부정 없는 동민 중에서 제주와 집사를 선정해 제를 올리는데, 미륵에 대한 제사이므로 어육과 술을 일체 쓰지 않고 과일, 떡, 나물 등을 큰 그릇에 담는다. 제의의 목적은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농풍어의 기원이다. 미륵불의 영험함이 소문을 타고 펴져나가자 마을 사람뿐 아니라 남해, 사천, 통영 등지의 사람들도 참여해 미륵계를 만들어 제를 주관했다.

    어부들은 처음 잡은 고기를 이 바위 앞에 놓고 빌면 고기가 많이 잡히며, 해난 사고를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제의를 행할 때 계원의 이름을 부르면 이들의 집안이 무사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알려진다. 제를 마치면 제물을 사방에 조금 흩뜨리고 땅에 파묻은 뒤 나머지는 가지고 와서 다음 날 동민들과 음복을 한다.

    다랭이마을의 제의는 민속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보고나 마찬가지다. 풍요와 다산을 빌던 민간의 성기 신앙에 불교가 융합되어 민중 구제의 미래불인 미륵으로 신격이 격상되면서, 종교적 기능이 확대되고 신체(神體)의 신성성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즉, 남해 현령이 바위를 땅에서 파내 미륵불로 봉안했다는 전설을 통해, 관의 권위를 빌려 신앙에 품위를 부여한 것이다. 바위 한 쌍의 신격이 성기 숭배 대상물에서 미륵불로 변했지만, 불교 신으로서의 변모가 아니라 본래 지닌 풍요 다산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마을 수호, 기복, 치병, 소원 성취, 태평 무사 등으로 기능이 확대되어 성 숭배 신앙의 추이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한다.

    사람들은 암수바위를 손가락질하거나, 욕심을 부려 바위 가까이에 작물을 심으면 화를 입는다고 생각했다. 상여도 반드시 바위 아래로 지나가야 변고가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심지어 새가 암수바위에 앉으면 죽을 정도로 영험이 있었다는 말도 있다.

    미륵바위가 영험하다는 소문이 나자 타 지역 사람들도 찾아와 촛불을 밝히고 치병, 소원 성취 등을 기원했다. 아들을 못 낳은 여자들은 소문을 듣고 무당을 데리고 와서 푸닥거리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다랭이마을에서는 쌀에 대한 애착이 신앙으로 변모한 밥무덤을 만나볼 수 있다.

     

     

    다랭이 마을 안쪽을 구경하기로 하고 안마을로 이동이다.   마을에는 식당. 민박집이 가득했다...

     

     

    다랭이마을에서는 쌀에 대한 애착이 신앙으로 변모한 밥무덤을 만나볼 수 있다.

    밥무덤은 마을의 중앙과 동·서쪽 3군데에 있다. 중앙에 있는 것은 삼층탑 모양의 조형물로 밑변 180센티미터, 높이 162센티미터나 된다.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에 있는 것은 돌을 쌓아 감실3) 처럼 만든 것이다.

     

    밥무덤은 굴뚝처럼 생겼으며 제사를 지낼 때 밥을 정갈한 한지에 서너 겹으로 싸서 정성껏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반반한 덮개돌을 덮어두는 것이다. 제물로 넣은 밥을 쥐, 고양이, 개 등의 짐승이 해치면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신에게 바친 밥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력 10월 15일 주민들이 모여 마을 중앙에 있는 밥무덤에서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축원하는 동제를 지낸다.

     

    그러나 밥무덤의 또 다른 목적은 먼 거리 항해 등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어 제삿밥을 얻어먹지 못하는 혼령들을 위해 밥을 묻어둔다는 의미도 있다.  밥무덤에 제사를 지낸 일주일 후 음력 10월 23일 밤 12시경 남근바위로 가서 미륵제를 올린다.  그러므로 밥무덤의 동제는 남근바위의 미륵제를 지내기 위한 식전 행사라고도 볼 수 있다.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유독 밥무덤 제사를 지내는 까닭은 상대적으로 경작할 논이 적어 쌀이 귀한 지역이므로 쌀에 대한 애착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신앙으로 변모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기 때문이다.  귀한 제물인 밥을 땅속에 넣는 것은 마을을 지켜주는 모든 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풍요를 점지해 주는 땅의 신, 즉 지모신에게 밥을 드림으로써 몇십 배 또는 몇백 배의 풍요를 되돌려 받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의 표출이라고 풀이한다.

     

     

     

    다랭이마을 담벼락은 마을의 일상을 묘사한 각종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다랭이마을 중심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이다.

     

     

    10코스 앵강다숲길(남파랑길42) 일부구간 걷기 시작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고가는 남해의 상징 다랭이마을이다.

    다랭이 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에서 이번 길이 끝난다.  다음 구간은 여기서 시작한다.  다랭이 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은 10코스의 종점이자 다음에 걸을 11코스의 시점이다.

     

     

     

    다랭이마을을 지나 도로로 올라선다.

    다랭이마을 1주차장에 주차된 차량으로 돌아와 13:30  다랭이마을을 떠나  남해 쏠비치로 길을 달린다...

     

    한참만에 다시와 보는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았던 선조들의 억척스러움이 이어지고 있는 삶의 현장인 다랭이마을의 다랭이 논과 달빛이 비치는 환상적인 밤바다와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탁 트인 바다가 함께하는 해안도로를 달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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