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소백산 자락길 1코스에서 만난 비로사
    사찰여행/경상도 2024. 6. 27. 16:54

    소백산 자락길 1코스에서 만난 비로사

      

    2024.   6.   27. 

     

     

    2024.  6.  20.  포항농협산악회와 함께한 소백산 자락길 1코스  중 달밭(삼가주차장~비로사~달발골~달밭재~초암사)과 구곡길(초암사 ~죽계구곡~배점분교 주차장) 트레킹  여행길에서 만난 비로사 사찰 여행이다...

     

    삼가리 주차장을 출발하여  자동차 차단기가 있는 좌측  삼가리 야영장 안내센터를 지나 달밭골 명품마을을 가기  전에 비로사를 들러 보기로 한다.

     

     

     

     

     

     

     

     

    비로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소백산(1,439m) 동남쪽 소백산 비로봉 중턱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통일 신라시대에 승려 진정이 창건한 화엄종 사찰로, 신라 말에는 소백산사라 불렀다.

    의상의 문하에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던 진정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하여 문도를 거느리고

    현 비로사로 추정되는 소백산 추동(錐洞)으로 가서 초가를 짓고 제자 3,000명을 모아 90일 동안 화엄경을 강의하였다 한다.

    비로사 사적기에는 의상이 신라 683년(신문왕 3년) 이 절을 개창하고 비로사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 말에는 한 승려가 중창하고 진공(眞空)을 이곳에서 살게 하였다 하며, 고려 1126년(인종 4년) 왕이 김부식으로 하여금 불아(佛牙)를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고, 1385년(우왕 11년) 환암이 중창하였다. 조선 1469년(예종 1년)에는 김수온이 왕실의 복을 비는 도량으로 삼았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석불상 2구만이 남고 절은 모두 소실되었으며, 1609년(광해군 1년) 경희가 중건하였다.

    1684년(숙종 10년) 월하가 법당과 산신각 등 40여 칸을 중창하였으며, 1907년 범선이 요사를 증축하였는데 1908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었다.

    1919년 주지 범선이 법당을 중수, 1927년 요사를 중건, 1932년 다시 법당을 중수하는 등 중수와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비로사 전각 비치도

     

     

     

     

    최근에 불사한 비로사 일주문

     

     

     

     

    영주시 삼가동 석조당간지주(石造幢竿支柱)_경북 유형문화재 제7호 

    불교에서 법회 따위의 의식이 있을  쓰는 () 달아 세우는 장대인 당간(幢竿) 지탱하기 위하여 세운  개의 기둥으로  절 입구에 서 있는 당간지주의 우람한 모습...

     

    조금 거친 듯한 석공의 터치지만그래도 너무 심심하지 않도록 중간에또 아래 부분에 십자무늬랑 구고식 무늬를 새겨 넣어서 자유로운 양식을 가진 당간지주이다...

     

     

     

     

    선사대오당비(禪師大悟堂碑)와   부도(浮屠) 

     

     

     

     

    벗꽃이 피는 계절에는 벗꽃길이 참 이쁜 사찰이다...

     

     

     

     

     비로사로 오르는 계단

     

     

     

     

     

     

     

    울창한 숲속 계단을 따라 꺾어들어 올라서면

     

     

     

     

     거북받침 위에 비신을 세운 진공대사 보법탑비와  범종각과  석조물 부재들이 있다.

     

     

     

     

    비로사 진공대사 보법탑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

    옛 모습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비로사 진공대사 보법탑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 이다...

    신라말 진성여왕 때 경주에서 태어난 충담은 당으로 유학을 가서 불법을 공부하였고 효공왕때 신라의 마지막 왕사가 되었으며, 고려 태조 때도 첫 왕사로 활동하다 원주의 흥법사에서 입적하였던 고승이다...

    그분의 부도와 탑은 비록 원주 흥법사에 있지만 여기 비로사에도 주석할 때 이를 기리기 위해 이 탑을 세웠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진공대사는 고려 태조20년(937년)에 입적한 인물로 그가 입적한 지 2년째 되는 해인 939(태조 22)년 고려 태조가 그에게 진공(眞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탑을 건립하도록 하였는데 탑호(塔號)를 보탑(普法)이라 하였고 그 옆에 탑비를 세운 것이다. ​

    비신은 높이 173㎝, 너비 102㎝, 두께 22㎝의 크기이며 형태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산 모양의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비몸은 갈라져서 일부가 파손 되었으며 거북받침은 새겨진 조각이 얕아 둔해 보이는데 등 중앙에는 비를 꽂는 네모난 홈을 마련해 두었고 머릿돌은 구름과 용무늬를 새겨 놓아 화려하긴 하나 깊이 새긴 것은 아니다. ​ 비신(碑身)의 뒷면에 입적할 때의 유계(遺誡)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비문은 최언위가 짓고 글씨는 자경 2㎝의 구양순체 해서로 이환추가 썼으며 비음(碑陰)에는 진공의 유계를 새겼는데 역시 구양순체의 해서이고 머릿돌 가운데의  "고진공대사비(故眞空大師碑)" 라는 전액도 이환추가 쓴 것이다. 

     

    탑비는 탑에 따라 다니는 부속물이다.

    왜냐하면 탑호가 내려지고 나야 탑비가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비로사에는 보법탑비는 있는데 보법탑은 없다.

    그럼 진공대사 보법탑은 어디로 간 걸까?

     

     

     

     

     

     

     

    범종각의 종이 걸려있는 대량 양쪽으로 연꽃이 조각된 부재가 달려  있다

     

     

     

     

    조금은 때가 덜 묻은, 새롭게 중창불사된 도량들 사이로 엣날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폐사지 + 신축가람의 혼재된 모습을 지닌 절이 비로사이다...  워낙 자주 불에 타서 도량은 모두다 새로운 모습이다...

     

     

     

     

     

     

     

     

     

     

    적광전으로 오르기 전에 근래에 새로 지은 월명루가 자리하고 있다.

     

     

     

     

     

     

     

     

     

     

    누각 뒤로 계단이 있다.

     

     

     

     

     

     

     

    비로사의 중심 법당인 적광전 앞에는 비로사 경내에 흩어져 있던 각종 석조물의 잔재들을 모아서 만들어 놓은 3층 석탑이 있다.

    석탑 몸돌 1개,  옥개석 2개,  뒤집혀진 노반과 지대석은 석탑 부재로 여겨지며, 안상에 가릉빈가와 꽃그림과 사자가 새겨진 부재는 진공대사 부도의 부재이며 맨 위 옥개석은 석등의 부재로 보여진다..

    비로사 경내의 석부재물로 보아서는 적광전 앞의 탑 부재가 보법탑의 일부로 추정된다.

     

     

     

     

     적광전 앞 석탑의 연화문배례석

    신라의 왕족 출신인 궁예가 후고구려를 세운다.

    후고구려는 남쪽으로 소백산에서 북쪽으로 대동강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앙을 차지한다.

    이때 궁예의 신하였던 왕건이 진공대사의 명성을 듣고 그에게 법을 구하기 위해 소백산사를 찾았다는 것이다.

    대사는 왕건의 인품을 보고 그가 왕이 될 것을 예측했다고 한다.

    이 말을 새겨들은 왕건은 918년 고려를 세워 왕이 된다.

    왕이 된 후 태조 왕건은 지난 일을 잊지 않고 소백산사를 찾아 진공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 예를 표하게 되는데 이 때 머리를 대도록 만든 것이 '연화문 배례석'이라고 한다.

     

     

     

     

    너무 새로운 가람들보다는 이렇게 옛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폐사지만의 모습들이 더 정감있게 다가선다...

    탑도 석등도 부도도 또 기단석과 장대석도 원래의 모습과 자리를 잃어버려 이렇게 한몸이 되어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괴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비로사 아미타불좌상(보물 996호)과 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6-1호)

    적광전 안에는 이 절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아미타불좌상(보물 996호)과 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6-1호)이 모셔져 있다. 

    적광전에는 일반적으로 비로자나부처님과 석가모니부처님 그리고 노사나부처님 3분의 부처님이 아닌  두 부처님만 모셔져 있다. 향(向) 왼쪽에 아미타부처님이, 오른쪽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사이좋게 앉아 계신다. 

     

     

     

     

    어둠을 뚫고 한 자락의 광휘가 불법의 빛을 밝혀준다는 의미의 화엄사상을 담은 의미가 되겠다...

    좌측에는 아미타여래가, 우측에는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이 나란히 앉아 한분은 극락세계로 보내달라는 중생들의 소원들 들어주시고 한분은 절대적 존재인 부처님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계신다...

     

     

     

     

    영주 비로사 아미타 후불탱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436호)

    비로사의 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탱화는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아미타불 좌우에 시립(侍立)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의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이 화면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이외 상·하단 여백에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자를 탄 문수동자,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가 조그맣게 배치되어 있다. 화면이 다소 어둡고 부분적인 훼손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파스텔 톤의 화사한 채색, 법의(法衣)와 천의(天衣) 등에 시문된 도안화된 화사한 초화문양, 유려한 필치, 특히 지장보살의 옷 끝자락 등에 보이는 풍부한 금니(金泥)의 연속 화문 등이 돋보인다.

    이 탱화는 화기(畵記)를 통해 1832년(道光 12)이라는 제작연대와 화원(畵員)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아미타후불탱화로서, 아미타삼존상을 중심으로 가섭존자, 아난존자, 문수동자, 보현동자가 묘사된 특징적인 도상이며 이와 함께 화사한 채색, 장식적인 문양 등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크므로 유형문화재(有形文化財)로 지정한다.

     

     

     

     

    적광전 내부의 신중탱

     

     

     

     

     

     

     

    나한전

    비로사의 주된 가람 적광전 옆으로 나한전이 있다....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부처님의 제자들인 16나한을 봉안한 법당이다. 

     

     

     

     

     

     

     

    향 불단 우측의 나한님들 ~

     

     

     

     

     

     

     

    향 불단 좌측의 나한님들 ~

     

     

     

     

     

     

     

    적광전과 나란한 나한전

     

     

     

     

    반야실

     

     

     

     

     

     

     

     

     

     

    적광전. 나한전.  반야실이 차례로...

     

     

     

     

    나한전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망월당이 나온다요사채인 망월당과 그 뒤의 산신각

     

     

     

     

    망월당 앞에서 바라본 원적봉(962m) 

     

     

     

     

    망월당 뒤로 삼성각이 보인다.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경내를 조금 여유롭게 훑어보고 다시 계단을 내려 선다...

     

     

     

     

    역사를 간직한 소백산 비로사의 경내에는 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주춧돌과 석조물, 건물 터가 많이 남아 있다.

     

     

     

    월영루 우측의  최근에 신축한  요사 보연당,  보연당 뒤로는 염불당이 있다.

     

     

     

     

    1908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어 최근에 불사한 비로사는 제법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비로사 일주문을 나와

     

     

     

     

     

    다시 소백산 자락길 1코스와 합류하여  달밭골 마을로 향해본다...

    .

    .

    .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