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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단지(충북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청풍면 물태리 104-7)여행방/충청도 2023. 5. 12. 20:19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단지
2023 . 5 . 12.
2023. 5. 10. 포항농협 장성동 영농회와 함께했던 충북 단양 잔도길을 걷고 장회나루터 휴게소 식당에서 버섯전골로 맛있는 점심 식사 후 두번째 여행지인 충주호 근처의 제천 옥순봉 출렁다리를 보고나와 오늘 여행의 마지막인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단지로 향한다...
옥순봉 출렁다리를 보고나와 30여분만에 2012년에 완공된 청풍대교를 지나 청풍문화단지의 넓은 주차장에 도착한다.
금성면과 청풍면을 잇는 왕복 2차선 청풍대교(길이 482.4m, 폭 14m)는 문화재단지를 찾아가는 길의 명물이다. 그전부터 놓여 있던 청풍교가 노후화함에 따라 2012년 4월에 완공됐다. 사장교 형태의 청풍대교는 2013년의 토목구조물로 선정되어 금상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여행할때 한번쯤을 들었을 장소인 충주댐. 충주댐을 둘레로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서 국내에서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라는 점 외에는 달리 큰 관심이 없던 곳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충주댐이 건설될 당시 많은 마을이 강제적으로 수몰되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땅을 떠났다는 사실을 듣고 나니 충주댐이 완전히 새롭게 보였다.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고, 아는 만큼 여행의 시각도 달라진다.
충주댐은 1985년에 건설됐다. 댐의 건설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다. 약 40만 KW의 전기가 생산되고, 충주· 제천· 단양 지역에 각종 용수가 공급됐다. 하류지역의 만성적인 홍수와 가뭄 피해도 막아줬다. 그러나 달의 이면처럼 댐은 생겼지만, 삶은 사라졌다. 충주댐 건설로 약 2,000만 평이 수몰됐다. 단양, 제천의 상당수 가구가 수몰되었고 특히 청풍면은 전체 27개 마을 중 25개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보상금을 받고 떠난 사람도 있지만, 고향을 떠나기 싫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집단 이주해 새로운 마을을 형성했다. 청풍면 물태리가 대표적이다.
산업화, 현대화는 어쩔 수 없이 개인의 희생을 동반하기도 한다. 어쩌면 댐 건설이 아니라도 또 다른 현대화의 물결이나 자연재해로 그들의 삶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속으로 사라져가는 고향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청풍면으로 향하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한가지 희망은 꽃피었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마을에 남아있는 문화재들은 미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놨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시대인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획기적인 조치였다.
그렇게 조성된 곳이 바로 물태리 동북쪽, 망월산성 자리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다. 수몰지역에 있는 옛 관아건물, 민가고택을 비롯해 보물 제528호 한벽루 등을 그대로 옮겨놔 문화재공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청풍문화단지 매표소
청풍문화재단지 입구의 팔영루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5호)
조선시대에 청풍부를 드나드는 관문이었던 누문이다. 아래는 문이고 위에는 누각의 형태로 되어 있다. 고종때의 부사 민치상이 청풍 8경을 노래한 팔영시로 인하여 팔영루라 불리게 되었다. 충주댐 건설로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겨서 복원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이다.
입장권을 끊고 청풍문화재단지 입구인 팔영루에 들어가니 안내원이 천장을 꼭 보고가라고 말한다. 팔영루는 예전에는 청풍 고을로 들어가는 성문이었는데 지금은 청풍문화재단지 출입문이 됐다.
천정을 보니 귀여운 호랑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보통은 용맹한 호랑이를 그리는 법인데 신기해서 물어보니, 옛날 풍수도사이자 왕사였던 천공스님이 먼 훗날 청풍에 큰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나운 모습 대신 온순한 호랑이를 그렸다고 한다. 호랑이 그림 덕분인지 1970년대 한차례 수재 외에는 청풍면에는 큰 수해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소소한 장소인데 여행자에게 설명을 해주는 안내원이 고맙다.
청풍문화재단지는 민속마을 같은 분위기가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1985년 10월에 완공된 충주호 조성 공사로 수몰 지구에 포함된 지역의 문화유적들을 한자리에 모아둔 곳이다. 모형으로 만든 2명의 수문장이 지키고 선 팔영루를 통과하면
안에는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두르고 있다.
여행객들은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의 어느 마을을 찾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팔영루를 통과하면 오른쪽에는 민가의 고가들이 있고 왼쪽으로는 관아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먼저 고가부터 둘러 보기로 한다.
청풍문화재단지 안에는 청풍호가 생기면서 수몰된 민가(民家) 4동이 이건(移建)되었다.
충주댐의 건설로 1985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된 고가 앞의 연자방아
제천 지곡리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9호)
부엌 앞에는 식료품이나 여러가지 물건을 넣어두는 고방이 있고 부엌과 고방사이에는 벽과 문에 판자를 둘렀다. 이는 오래된 집에서만 볼수있는 양식이다.
대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꺾인 곳에 기와를 올린 문과 담장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의 경계를 구분한 것은 이 지역의 다른 집에서는 흔히 볼수 없는 형식이다.
오른쪽 방 2칸의 건넌방은 마루를 설치했다.
제천 도화리 고가(충북 유형문화재 제83호)
도화리 고가는 'ㄷ'자형의 집으로 왼쪽에는 방, 부엌, 광이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세칸 크기의 대청이 오른쪽에는 방2칸의 부엌이 배치되어 있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은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둥근 통나무 굴뚝과 부엌 살자창옆의 관솔을 피워 어둠을 밝히는 시설은 태백산맥 일대의 산간지대 민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다. 본래 이전 하기 전의 흔적으로 보아 앞쪽에는 바깥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ㅁ자형의 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은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청 오른쪽에는 방2칸과 부엌이 배치되어 있다.
제천 도화리 고가와 황석리 고가 사이의 토석담이다.
담벼락은 막돌로 쌓은 토석담(土石壁)에 짚으로 이엉을 얹었다.
제천 황석리 고가 (충북 유형문화재 제84호)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가집인 문간채를 들어선다.
초가집인 문간채와 일자형의 안채. 기와를 올린 화장실 등 3동으로 되어 있다. 안채의 부엌 앞에는 작은 뒤주를 두었는데 곡물이나 먹거리 등을 저장한 공간으로 보인다. 3칸의 방을 한 공간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방과 방 사이에 문을 달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겹머리 기와집이며, 조산말기의 건축물로 좌측(서쪽)으로 부터 부엌, 안방, 웃방을 나란히 하고 끝에 사랑방을 두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조선시대 시골의 양반집 모습을 살펴볼수 있다.
제천 황석리 고가 옆에서 바라보니 유물전시관이 보인다...
유물전시관 좌측 잔디 밭의 원랑선사탑비
유물전시관을 대충 둘러보고
아래로 내려서면 수몰역사관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수몰역사관은 패스하고 수몰역사관 앞을 지나 구절초, 한라구절초, 해국, 쑥부쟁이, 빗자루국화 꽃길 - 조팝나무길, 백철쭉길, 산철쭉길, 영산홍길이 있는 자연학습원 꽃밭도 지나...
이런 길을 오르면....
금병헌과 망월산성 가는 길 갈림길에서 전체 약속한 시간이 부족할거 같아 망월산성길과 동헌인 금병헌 아래쪽 청풍향교(淸風鄕校)는 포기하고 금병헌 방향으로 올라선다...
동헌(東軒)으로 부사의 집무장소 및 집회장소로 쓰였던 금병헌(錦屛軒, 충북 유형문화재 제34호)이 자리한다.
이곳은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건물이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 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때 청풍현이라 하였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고, 조선 세조 때 군이 되었다.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32년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국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다.
이 건물은 숙종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후 숙종 31년(1705)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3칸의 팔작집이다.
조선시대 청풍부의 동헌으로 부사가 집무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청풍면 읍리에 있던 건물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지금의 자리로 이전 복원하였다.
숙종 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창건하였으며 그 후에도 여러번 개축한 기록이 있다.
건물은 2단의 기단 위에 세운 정면 6칸의 금병헌의 좌측 3칸은 방이고 오른쪽 3칸은 부사의 대청으로 된 업무공간이다. 전면 1칸은 마루를 깔고 뒤쪽으로 방이 있으며 왼쪽 2칸은 마루에 난간을 둘러 마치 누각처럼 꾸몄다.
청풍 지역의 관아건축 중 유일하게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로 당시 행정관의 검소한 생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건축물이다.
청풍부 청사로 쓰였던 동헌에는 권돈인이 쓴 '금병헌'이라는 현판이, 내부에는 '청풍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앞마당에는 청백리처럼 보이는 사또로 부터 심문을 당하는 죄인들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는 인형으로 재현해 놓았다.
건물 내부에 청풍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부사(府使)가 동헌 대청마루에 높게 앉아 업무를 보고 있다.
청풍부 청사로 쓰였던 동헌 '금병헌 우측으로는 응청각과 한벽루 등 관아 건축물이 있다.
동헌인 금병헌과 한벽루 사이에는 관아의 부속건물로써 용무차 내려온 중앙관속들의 객사(客舍)로 이용된 응청각(凝淸閣, 충북 유형문화재 제90호)이 자리한다.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2층 출입구이다...
익랑이 달린 한벽루 전경
누각을 올라갈 때 계단 역할을 하는 '익랑(翼廊)은 조선시대 3대 익랑누각(建築物) 중 하나로 현존하는 건축물로써 유일한 양식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확한 건축연도는 알수 없으나 고려 시대 주열이라는 사람이 한벽루를 읊은 시가 있어 아마도 그 전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질 뿐이다. 특히 태종 이방원의 책사였던 하륜이 '한벽루기'라는 명문을 남겨놓기도 했다. 수많은 문인들이 한벽루를 찾아 청풍호반의 멋진 풍광에 반해 주옥같은 글을 남겼다.
또 이황, 유성룡, 정약용을 비롯해 고산 윤선도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찾았다. 특히 유성룡은 임진왜란 중 한벽루에 들러 <숙청풍한벽루>를 남겼는데, 전란 중 비통해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애닮기만 하다.
누각에 머무는 나그네 잠 못 이루는데
긴 밤 추상같은 바람소리와 서걱이는 낙엽소리만 들리네
두해 동안 전란 속에 외로이 떠다니며
만 가지 계책을 마련하느라 머리는 백발이 되었네
(오늘 한벽루에 오르니) 서러운 두어 줄기 눈물 끝없이 흐르네
아스라한 난간 기대고 북쪽만 바라보네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 (보물528호)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4년 (1317)에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여 1983년 청풍문화재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할 때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누각 안에는 조선 후기의 문신 우암 송시열과 김수증의 편액, 추사 김정희가 쓴 '청풍 한벽루' 현판이 걸려 있었다는데 현재는 남아있지 않으며 밖에 한벽루 정면 현판은 조선 후기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 친필의 한벽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청풍문화재단지의 중심 건물인 한벽루는 비석군과 고인돌군 맞은편에 자리했다.
고려 말 충숙왕 4년(1317) 청풍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가 되어 청풍현이 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부속 건물로 지었다. 서편에 익랑이 덧붙어 있는 형태이다. 이처럼 본 건물 옆에 부속 건물이 딸린 누각으로 밀양 영남루(보물), 남원 광한루(보물)가 있다.
사방이 탁 트인 구조라서 여름철 이곳 누각 마루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를 삽시간에 잊게 된다. 청풍대교의 경쾌한 직선미, 청풍호를 미끄러지듯 떠가는 유람선, 힘차게 솟구치는 청풍호 수경분수의 물줄기를 유유자적 감상하기에 좋다.
한벽루에서 충주호가 한눈에 보이며 주변에 2012년에 완공된 청풍대교 비봉산, 구담봉, 옥순봉, 능강구곡, 금수산, 단양팔경, 월악산 국립공원, 수안보온천 등의 관광지가 있다.
조선시대 청풍부 정문인 금남루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 20호)
이곳은 청풍부의 정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고, 안쪽에서 보면 금남루(錦南樓) 현판이 걸려있다.
순조25년(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다. 고종7년(1870)에 부사 이직현이, 동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각각 중수하고 1956년에도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각집으로 팔각의 높은 돌기둥 위에 세운 2층의 다락집이다.
청풍문화재단지의 비석군
문화재단지 조성 당시 고대사회의 장례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선사시대 무덤인 지석묘 5점과 문인석 6점, 조선시대 군수나 부사의 공덕비, 송덕비, 선정비 등 비지정문화재 32점을 옮겨 놓았으며 1997년 제천향교에서 비석 10점을 추가로 옮겨 이곳에 배치함으로써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남한강변의 비석문화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옛 도호부 시대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 선정비, 열녀문, 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다.
청풍명월(淸風明月) 비석
양반고장의 온화한 심성과 청풍명월의 고장을 상징하는 높이 8m, 돌레 85Cm의 제천 수산면 화강석에 새긴 ‘청풍명월’ 비석
청풍문화재단지의 고인돌과 성혈(星穴)
고인돌(支石墓)은 충주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청풍면 황석리 지역에서 옮겨 온 남방식 고인돌로 특히, 중앙에 배치된 고인돌은 하늘의 별자리로 보이는 성혈(星穴)이 새겨져 있어서 특이하다.
약 2,500여년의 긴 세월을 거치면서 풍화작용에 의해 다른 별자리는 마모되어 알 수 없지만 북두칠성(큰곰자리)과 북극성(작은곰자리) 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제 546호)
청풍면 읍리 대광사 입구에 있던 높이 3m 41Cm의 거대한 석불로 신라말 고려 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당초에는 불상각(佛像閣)이 없었으나 이전시 불상각을 새로 지었다.
불상의 머리는 소발 위에 육계가 있고 미간에 백호의 흔적이 완연하며 약간의 살이 오른 얼굴은 뚜렷한 인중과 어깨에 닿은 긴 귀 및 목의 삼도와 어울려 자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팔영교로 다시 나간다.
청풍면은 남한강을 끼고 있어 농업이 발달했고 수로가 지나는 고장이어서 조선시대만 해도 제천 지역의 중심 노릇을 했다.
'충청북도는 청풍명월의 고장'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청풍이란 말이 바로 이곳 청풍면에서 유래했다. 이름만 봐도 얼마나 산세가 수려하고 공기가 맑고 사람이 생활하기에 좋은 곳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선사시대의 주거지와 고인돌,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고분군이 그 증거가 되는 유적들이다.
잠시 제천시의 연혁을 더듬어보자.
고구려 땅이었을 시기에는 '사열이현', 신라 땅이었을 때에는 '내제군'으로 불렸다. 신라 35대 경덕왕(재위 기간 742∼765년) 때부터 '청풍'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3대 악성 중 한 사람인 우륵도 이곳 출신이라고 한다. 조선 현종 때 충청도에서 유일하게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고종 때는 군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다가 중앙선이 생겨나고 제천읍이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청풍은 면으로 변경되고 제천시에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청풍문화재단지가 위치한 물태리에서 제천까지 약 10km 구간은 충주댐 건설로 인한 청풍호반 조성시 아름다운 금수산 5부 능선상으로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도로로, 이 길을 달리면 한편에 는 금수산의 기암괴석이 보이고, 아래로는 청풍호반의 물이 드리워져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난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또한, 이 거리는 청풍호 조성 후에 식재된 벚나무 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해 벚꽃길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 중순, 청풍문화재단지와 청풍호주변에서 청풍호반 벚꽃축제가 개최된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기도 너무 좋은 곳이었다....
조선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청풍문화재단지, 수몰지역에서 건진 문화재 청풍문화재단지를 끝으로 단양. 제천 오늘 여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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