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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정사(경남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79, 마천면 추성리 279-2)사찰여행/경상도 2019. 5. 13. 16:32
서암정사(瑞岩精舍)
2019. 5. 13.
2019. 5. 9. 포항농협 '고향을 지키는 주부모임'에서 다녀온 함양 일두고택과 한옥마을, 상림공원, 서암정사를 두루 살펴보는 여행길이다 ......
07:30 포항출발하여 휴게소 두군데 들러 일두고택 구경하고 상림공원 근처의 늘몸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상림공원을 보고 서암정사로 향했다.
상림을 떠나 구불구불한 오도재를 넘어 서암정사로 향해본다...
여기는 한국의 3대계곡으로 손꼽히는 지리산 칠선계곡이다.
칠선계곡은 지리산 최대의 계곡미를 자랑하며 갖가지 형용사들이 동원돼 표현된다.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
선녀탕의 전설은 선녀에게 연정을 품은 곰과 선녀를 도운 사향 노루가 등장하는 동화같은 얘기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일곱 선녀가 이 곳에서 목욕하는 것을 본 곰이 선녀들이 하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바위 틈에 숨겨 버렸다.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맬때 사향 노루가 자기 뿔에 걸려있는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어 선녀들이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곰이 바위 틈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선녀들의 옷을 숨겼던 것이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 노루를 칠선계곡으로 이주시켜 살게 했으며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아 버렸다는 전설이다.
가물어서 물이 없었지만 비만 조금 와준다면 정말 멋진 곳이 될 것 같다. 칠선계곡 입구를 지나 계속 올라가면 왼쪽으로 벽송사와 서암정사 가는 길이 나온다.
서암정사와 벽송사는 한국의 3대계곡으로 손꼽히는 지리산 칠선계곡 초입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산 깊고 물 맑으니, 이곳에 드는 이의 마음이 절로 청정해진다. 서암정사는 지리산 산맥 위에 앉아 천왕봉을 멀리 바라보고, 한국의 3대 계곡으로 유명한 칠선계곡을 마주하는 천혜의 절경에 자리하고 있다.
추성리 갈림길에서 널찍한 도로를 따라 400m 가량, 주차장에서 200여 m 가파른 길을 걸어 표지판을 쫓아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하면 사암정사, 우측길은 벽송사가는 길이다..
우리는 직진해서 사암정사로...
석굴법당인 서암정사는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한 고찰 벽송사로 부터 서쪽으로 약 600m 지점에 있는 원래 벽송사 부속암자였으나 지금은 독립된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말사이다.
사암정사는 일반 사찰과는 확연히 다른 경이롭고 신비롭다.
서암정사는 벽송사의 전 주지 원응(元應)스님이 자연 암반에 무수한 불상을 조각하고 불교의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극락세계를 그린 절집이라고 한다.
원응(元應)스님께서 이곳으로 옮겨와 1989년부터 시작하여 10여년에 걸쳐 화엄경 금자사경을 완성하고 주위의 자연석 암반 위에 대방광문 (大方廣門: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극락전(極樂殿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무수한 불보살이 조각된 부처님의 이상 세 계 모습), 광명운대(光明雲臺 : 구름 일듯이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곳), 사자굴(스님들의 수행장소)등을 조각하고 만들어 그 화려함과 정교함, 웅장함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삼거리에서 사암정사로 들어서면 절까지 이런 멋진 나무터널이 숲을 이루는 고운 길이 이어진다..
서암정사는 '지리산에 펼쳐진 화엄의 세계'란 별칭이 말해주듯, 온 도량이 불교의 화엄세계를 상징하는 갖가지 장엄한 마애불로 채워져 있다. 일주문 전에 만나는 부처님과 좋은 말씀 ~
同歸大海一味水(동귀대해일미수) 百年江河萬溪流(백년강하만계류)란 글씨가 또렷하게 각인 된 장승같은 바위 기둥을 만난다. 서암정사 일주문을 대신하는 두 개의 돌기둥이다. 百千江河萬溪流 (백년강하만계류) 수많은 강물 만 갈래 시냇물同歸大海一味水 (동기대해일미수) 바다에 가니 한 물 맛이로다.서암정사 일주문을 대신하는 두 개의 돌기둥을 들어서며 바라본 풍경이다.
서암정사 일주문을 대신하는 두 개의 돌기둥 뒷쪽이다.
森羅萬象各別色 (삼라만상각별색) 삼라만상 온갖 모습이여
還鄕元來同根身 (환향원래동근신) 고향에 돌아오니 본래 한 뿌리도다.
돌기둥의 앞면과 뒷면에 새겨진 글귀로 화엄도량 서암정사를 창건한 회주 원응 스님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오늘이 9일로 부처님 오신날이 12일이니 이틀 뒤면 부처님 오신 날이라 온통 사암정사는 축제분위기 이다..
서암의 절경은 오밀조밀한 기암괴석에 온갖 기화요초로 정원을 만들어 생전에 볼수 있는 극락세계로 요즘들어 부쩍 탐방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천왕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두 개의 돌기둥이 새워져 있다.
摩河大法王 (마하대법왕) 크도다! 법의 왕이시여
調御三千界 (조어삼천계) 온 세상을 조화롭게 거느리시도다.
恒住寂滅殿 (항주적멸전) 항상 적멸의 궁전에 머물러서
常放大光明 (상방대광전) 끊임없이 광명을 발하시도다.
부처님께서 상주하여 설법하고 계심을 일깨워주는 말이라고 한다.
돌기둥의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키가 5m도 훨씬 넘는 우람한 사천왕상들이 절벽에 일렬로 도열해 있다.
보통의 절에는 천왕문에 나란히 두 분씩 서 계신 것을 많이들 보셨겠지만 이곳에는 큰 바위에 입체적으로 나란히 조각되어 있다. 사천왕상을 조각한 석공의 솜씨가 대단하다.
사천왕은 동쪽을 지키는 천왕을 지국천왕(持國天王)이라 하고 남쪽을 지키는 천왕은 증장천왕(增長天王)이라 하며 서쪽을 지키는 천왕은 광목천왕(廣目天王)이라 하고 북쪽을 지키는 천왕은 다문천왕(多聞天王)이라 한다.
摩訶大法王(마하대법왕)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께선
調御三千界(조어삼천계) 삼천대천 세계를 이끄신다네.
사천왕문의 주련이라면 이해가 될까...???
사천왕들이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는 듯 하다.
다시 몇걸음 옮기면 아치형 석굴이 나오고 석굴 위에 대방광문(大方廣門)이라 쓰여진 돌로 된 큼직한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다.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대방광문 이다...
대방광문 앞에서 만난 동자상, 서암정사는 이렇게 돌에 조각된 부처님들이 많다.
대방광문은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건물 벽에 방하제연(放下諸緣)이라고 써진 글이 붙어 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세속의 구연과 근심, 미련과 시기심 그리고 달콤했던 유희적 감각조차 다 떨구라는 뜻인가 보다.
대방광문(大方廣門)이라 새겨진 석문(石門), 이곳을 지나면 대웅전과 굴법당이 나온다.
'크고 넓은 문'이란 뜻으로 화엄세계로 들어가는 '대방광문'에 들어서기 전에 뒤를 한번 돌아보면 정말 기분이 묘하다. 속세에서 사바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건한 마음이 든다.
대방광문에서 바라본 대웅전 쪽~
대방광문 들어와서 뒷쪽
서암정사 가람배치도
"비로궁"을 빠져나오면 넓은 화엄의 세계다. 망망무제로 펼쳐진 지리산이 한 눈에 쏙 들어오는 탁 트인 경내를 크고 작은 바위들이 둘러싸고 있다. 어디까지가 자연석이고 어디가 인간의 힘이 닿은 곳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돌들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서있다.
2012년에 완공한 서암정사 대웅전(大雄殿)은 '亞(아)'자형 건축물로 중층구조 겹처마를 두어 한국 고건축의 선과 미를 극대화 하였고 단청이 무척 화려하였다.
이 절집 대웅전의 단청이 참 화려하고 좀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종무소 보살님의 말에 의하면 이 절집을 지을 때 대만의 자광사와의 인연을 이야기해 주셨다.
"대만 자광사에서 스님 일행이 지리산을 찾아와서 우연히도 마천면 근처에서 길을 잃게 되어 물어 물어서 찾아 온 곳이 바로 서암정사이다 여기서 대만 자광사 원교주지스님께서는 원응 큰스님을 친견하는 순간 전생의 인연임을 단박에 알아보시고 친견 삼배를 올리시고 설법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
이 인연으로 대만국부 기념관(손문기념관)에서 전시를 하여 대만 불자들의 보시금이 서암정사 대웅전 불사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금니 화엄경 법당에 모셔진 옥(玉)으로 된 부처님상까지 자광사에서 보시해 주었다니 참 놀랍다.
서암정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한분만 모셨다..
불단 좌측 뒤로 지장탱이 있다...
불단 우측의 신중탱
불단 좌측의 영가단
불단 우측 부처님 뒤편으로 칠성탱
대웅전의 장엄한 내부 벽화
대웅전 외부의 용두
대웅전 예쁜 꽃살문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본 장엄한 서암정사 대웅전
대웅전 마당에는 온통 연등이 만발했다...
지리산 자락에 옹기종기 마을이 보인다.
범종각으로 향한다...
태고청풍(太告淸風)이란 편액이 걸린 서암정사 범종각(梵鐘閣)
범종각 옆에는 작은 연못정원이 있다... 연못 위로 바위 틈에 만들어진 수도처도 올려다 본다.
범종각 옆에 조성된 연못의 조형물들도 뛰어난 조각미를 보여주고 있다.
석굴법당 조성造成 경위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민족의 미극이 유난히도 치열하고 깊었던 이곳 지리산(智異山), 1960년경 전화(戰禍)가 지나간 지 한참 뒤이지만 산간오지(山間奧地) 두메산골인 벽송사(碧松寺) 주변에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傷痕)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대자연(大自然)의 섭리가 인연(因緣)에 사로잡인 인간들의 희비에개의치 않나니, 한 때 천지를 진동하던 총성과 온 산을 뒤덮었을 포연(砲煙)의 폭풍이 휩쓸었을 이곳에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는 듯 산새가 지저귀고 봄이 오니 꽃이 핀다.
오늘날 서암정사(瑞庵精寺)가 있게 된 것도 역시 억겁(億劫)의 인연과 대자연이 빚어낸 조화의 한 그림자가 아닌가 한다. 문득 지난 일을 회상하니, 벌써 40여 년 전이다. 내 어느 날 복잡한 도시인 부산을 뒤로하고 청산(靑山)에 파묻힐 양으로 심산유곡(深山幽谷)의 수행처(修行處)를 찾아 정처 없이 흰구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온 곳이 여기 벽송사다.
인적도 드믈어 한적한 산사(山寺)벽송사, 때로는 감자를 심어 끼니를 때우고 몸소 흙더미를 치워가며 이어지는 수행생활은 고달프기 그지없다. 너무 힘이 들고 갈등도 많이 생겨 여기를 떠나버릴까 하는 마음이 몇 번이나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비가 새는 법당에 탈금(脫金)이 다 되어 새까만 모습으로 초라하게 앉아 계신 부처님을 들여다보며 망설이기를 거듭하면서 그럭저럭 눌러앉아 "여기가 또한 인연지(因緣地)려니.."여기고 폐허를 수습하다 보니 어언 10여 성상(星霜)이 훌쩍 흘렀다. 구석구석 묵은 쑥대가 나부끼는 1970년대 초의 어느 포근한 봄날 오후, 선정(禪定)에서 일어나 조용히 경내를 거닐면서 한 발짝 한 발짝 잊혀져 가는 묵은 옛길을 따라 알 수 없는 무슨 기운에 이끌리듯 와서 멈춘 곳이 바로 오늘의 서암정사 터다. 참선 삼매에 들어서 수행정진을 하시던 원응 큰스님께서는 어느날 오후 마치 부처님께 이끌리듯 벽송사 선방에서 조용히 나오셔서 서쪽을 향하시.게 된다. 산 모통이를 돌아서 지금의 서암정사가 중창될 자리에 딱 머무르시는 순간 이곳이 만년도량(萬年道場) 의 성지(聖地 )임을 확신하고 산승(山僧)이 도량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중 사람이 일부러 깍아놓은 듯한 거암, 즉 지금의 석굴법당 전면(前面)에 다다른 순간 몸과 시선이 굳어진 듯 멈추었다.
"여기로구나, 아! 좋구나...."
조용히 눈을 감고 부처님의 영산회상, 그리고 아미타상을 상상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한없이 기도하면서 염원(念願)의 심층에서 떠오르는 어떤 영상(影像)을 느끼니 바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세계(世界)로다.
전쟁의 참화(慘禍)로 이 주변 지리산에서 희생된 무수한 원혼(寃魂) 들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고 남북으 첨예한 대립의 벽을 허물고, 나아가서는 모든 인류(人類)가 부처님의 대자비(大慈悲) 광명 안에서 평화로운 이상사회(理想社會) 가 실현되기를 발원(發願)하면서 부처님을 조성하게 된다. 조성과정의 이야기들 서암정사는 대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조화로 준비된 장소에 여러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공덕이 보태지면서 비로서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30여년 전 불사(佛事)를 시작한 이래 적지 않은 난관과 고초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장엄한 사찰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불보살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주들의 정성어린 물심양면 공덕과 더불어 석공들의 공덕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홍덕회, 이종원, 이승재, 이금원, 이인호, 맹갑옥 석공은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한치의 흘림 없이 조각을 완성했다. 석굴법당의 아미타 본존불은 이승재 석공이 시작했고, 본존불 외에 석굴법당의 여러 부조는 홍덕회 석공이 조각했으며 맹갑옥 석공이 조역을 했다. 주산신과 독수성은 맹갑옥 석공이 겉석을 치고 홍석희 석공이 세조각(細彫刻 )으로 마무리 했다. 사천왕상과 비로전은 이종원 석공이 중심이 되어 완성했고 , 용왕단은 이인호 석공이 각각 조각했다
여러 석공 중에서 특히 홍덕희 석공은 서암정사에서 10년 이상 머물면서 석굴법당을 위시해 사자굴의 모든 조각을 마무리 했다. 마천면 추성리와 의탄리의 몇몇 인연이 있는 분들은 처음 터를 닦을 때부터 시작해 도량 조성 과정의 크고 작은 일에 큰 힘을 보탰다.
험한 장소에서 도량을 조성하다보니 뜻밖의 사고로 자칫 불사가 중단될뻔 한 적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불보살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20여 년 전쯤일까. 지금의 사천왕성 맞은편에 있는 돌탑을 쌓을 때였다. 탑 쌍기를 끝낼 무렵 점심시간이 되어 일꾼들을 태워 경운기를 재조한 짐차(일명 탈탈이)을 몰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렸다.
운전자를 포함해 일곱 명이 탄 짐차는 걷잡을 수 없이 언덕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짐차가 쌓고 있던 탑에 부딪혀 탑을 무너뜨리고 멈춘 덕분에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대형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점검해보니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무너지 돌 더미 속에서 옷자락이 내다 보였다. 황급 결에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무너진 돌 더미를 치워내자 탑 쌓는 기술자가 모로 누워 기절한 채 돌 밑에 깔려 있었다. 호흡도 거의 끊어져 있었으나 한 참 뒤에야 돌아왔다.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한 결과 갈비뼈 3대만 부러지고 다른 곳은 이상이 없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이 사람은 사고가 나는 순간 비몽사몽간에 흰옷을 입은 노인이 자신을 밀어 올리는 것을 느낀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입원해 있을 때도 같은 노인이 나타나 밀치는 바람에 병상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상처로 인하여 신체가 허약해지고 정신이 극도로 혼미해질 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이다.이제~ 석굴 법당으로 올라가 볼까?
극락전(極樂殿), 스님들의 출입문이다.
안양문이라고 씌인 곳으로 불자들이 '석굴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서암정사의 백미인 석굴법당(窟法堂)의 안양문(安養門)
현재는 벽송사보다 이름이 많이 알려져 탐방객이 많이도 찾고 있다고 한다. 굴법당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차례를 기다려 이제 들어가 본다.함양8경 중 제6경 서암석불
아미타부처님과 좌우에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건물 내부가 모두 실제 바위를 조각한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안양문(安養門)이라고 새겨진 쪽의 문을 열고 굴법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석굴법당(石窟法堂), 아미타 정토세계가 펼쳐져 있다.법당에 들어서면 예를 갖추기 위해 습관처럼 하던 합장도 잠시 잊게 된다. "아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반문만 계속된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그런 법당이 굴속에 있다.
겨우 정신 차려 합장삼배 올리고 휘둥그레진 눈에 초점을 모아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자연 동굴을 이루고 있는 바위의 사방과 천장에 조차 온통 부처님과 불보살 그리고 그 권속들이 조각되어 있고 그 부처님과 불보살님들의 눈길이 모두 내게 쏟아지는 듯하다.
굴법당 극락전은 들어서기만 해도 환희심이 넘칠 정도로 굴 전체가 섬세한 조각으로 장엄 된 아미타세계다. 아미타부처님을 중앙에 모시고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 그리고 8부 신중들과 10대 제자, 나한, 사천왕 등은 물론 용, 연꽃 가릉빈가(迦陵頻伽) 구름을 타고 가는 비천상과 10장생도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심에 젖게 한다. 굴법당 벽과 천장 전체를 빈틈없이 불보살들이 빼곡이 메우고 있다.원응 스님의 원력에 힘입어 석공 홍덕희 거사가 11년 동안 햇빛도 거의 보지 못한 채 불력으로 이곳 건물 내부를 모두 실제 바위를 조각한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석공의 솜씨를 형언할 길이 없다. 그저 압도될 뿐이다
이곳에서 아주 오래된 맛을 찾기는 힘들다. 이런 조각들 모두가 최근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국적이고 아주 잘 정돈된 정원 같은 느낌을 주는 이곳은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고도 남을 만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극락세계를 형상화한 석굴법당은 바위에 조각된 부처상이 참 많았다.
이곳 서암은 벽송사 주지를 지내던 원응 스님이 원력을 내어 13년 전부터 조성을 하였는데 스님은 화엄경 82권의 금글씨 필사를 시작하고 전국에서 이름난 석공들을 불러 모아 화엄경의 일화들을 형상화한 그림을 조각하게 하였는데 석공들은 대다수 중도 포기했고 그중 홍덕희씨만 남아 작업을 하였다고한다.
오른쪽 벽면부터 목련존자, 사리불존자, 남순동자, 관음보살, 아미타불, 대세지보살, 도명존자, 지장보살, 부처님의 10대제자와 신장들을 가운데 기둥에는 500나한의 모습을 정교하게 새겼다.
1982년 전국기능경진대회 석공예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는 홍씨는 무언가 남기고 싶다는 평소의 염원이 바로 굴법당 조성이었구나 하는 숙명같은 것을 느끼고 10년동안 부인도 자녀도 찾아오지 못하게 하고 , 술 담배도 금하는 등 구도자적 자세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조성하였다고 한다.
석굴법당 입구의 약수도 한잔 마셔본다. 극락전을 나와 다시 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그곳엔 비로전이 있다.
우선에 굴법당 옆으로 해서 비로전.용왕전 표식을 따라 올라본다...
조금 가파른 길이지만 꽃 잔치, 잔치가 벌어지고 온통 그린 그린이다...
비로전 올라가는 길...
서암을 만들고자 원을 세우고 원력을 모은 분은 원웅(元應)스님이지만 그 일을 받들어 10여 년 동안 동굴에 부처님과 불보살 그리고 그 권속들을 조각한 사람은 홍덕희라는 분이라고 한다. 원웅스님이 밑그림을 그리면 석공 홍덕희님이 정으로 한뜸 한뜸 자수를 하듯 조각을 하였다고 한다.
비로전으로 오르다 내려다본 전경으로 녹색의 대나무 사이로 대웅전 뒷모습이 보인다...
비로전. 용왕단 갈림길에서
비로전으로 미리 올라본다...
도량 위편에는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 광명운대, 서암정사 '비로전'으로 가는 계단이 극락으로 가는 계단 같다.
자연석에 정교하게 새긴 불감형식의 불상조각의 비로전
맞추기 블록을 쌓아 놓은 듯 묘하게 놓여진 엄청난 규모의 바위들, 그리고 그 바위에 각인 된 제불 보살님들의 섬세한 미소와 표정!
비로전 또한 불심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저절로 우러나는 감탄에 의하여 손을 모으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삼각을 이루고 있는 네 개의 커다란 자연석 제일 위쪽에 비로자나부처님이 조각되어 있고 이 돌을 받치고 있는 아래 세 개의 돌에 '문수보살'과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 그리고 '보현보살'이 조각되어 있다.
네 개의 커다란 자연석 제일 위쪽의 비로자나부처님
참선 중인 방문 위에는 廻光照心(회광조심)이라 새겨져 있고 위에는 주산신(主山神)이 불감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역시나 큰 바위에 산신님
독성님이 금새라도 말할 것 같이 조각되어 있다.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로전에서
내려가면 용왕단을 만난다...
용왕님께도 예를 올린다.
용왕단 옆의 탑이다...
이제 다시 극락전 앞으로 내려간다...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조성한 스님들의 수행처로 가는 길...
비로전에서 내려오는 돌계단에서 보면 지리산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마천면의 다랭이논이 지리산의 품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형상이다.
'亞(아)'자형 건축물로 중층구조 겹처마를 두어 한국 고건축의 선과 미를 극대화 하였고 단청이 무척 화려한 2012년에 완공한 서암정사 대웅전(大雄殿)의 뒷모습이다...
1층 공양간, 2층 사경전시관, 3층은 대웅전마당과 대웅전이 있다..
서암정사는 원응(元應)스님이 1960년대 중반부터 터를 이루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원응스님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던 이곳에서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류평화를 기원하기 위한 발원으로 불사를 시작했다. 서암정사에는 또 원응스님이 15년간 서사해 완성한 약 60만 자로 이뤄진 금니화엄경(金泥華嚴經)을 비롯해 다수의 사경 작품이 소장돼 있다. 원응스님의 사경은 한국불교에서 단절됐던 사경수행(寫經修行) 전통을 회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서 다양한 불교 석조각과 한 스님의 사경수행 과정을 잔잔히 음미할 수 있는 곳이 서암정사다.
절 내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배송대(拜送臺)는 이금원 석공이 조각했다.
아미타불이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협시보살로 하여 般若龍船(반야용선)을 타고 영가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모습이다.
바위 위에 새겨진 부처님과 불보살님들 그리고 많은 제불보살님들의 섬세한 미소와 표정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神이 모든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준 것 같은 장엄하면서도 웅장한... 그래서 불국정토에 온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들었던 것 같은 서암정사를 이제 내려간다.
2013년 지리산 둘레길 걸으며 와 본 사암정사에 다시 6년만에 와 보니 어제에 와 본듯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처음에 와봤을때의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쉽게 잊을수가 없지만 그래도 두번째도 역시 멋진 불보살님이 상주하는 곳으로 서암정사의 중심인 불경속 극락세계의 장엄함을 바위굴 속에 재연해 놓은 극락전 석굴법당을 오래 기억할 것이다.
봄바람은 연초록 물감, 산들산들 스치면서 이산 저산 색칠하더니 이젠 천지를 물들인다. 봄바람은 이스트 가루 석회같이 굳은 마음 여기저기 구멍내고 꽃빵처럼 부풀게 한다. 봄바람은 종다리의 솜털 나풀나풀 날리다 그리운 님 곁에 살포시 내려 앉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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