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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망국의 한이 어린 충주 미륵대원지(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8)
    사찰여행/충청도 2017. 10. 30. 18:35

    신라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망국의 한이 어린 충주 미륵대원지 (사적 317)

     

      

    2017.    10.    30.


       

    2017.  10.  28 ~ 29. 1박 2일 수안보 온천에서 남편 친구들 모임하며  첫날 10.  28 가까운 곳에 있는 충주 미륵대원지를 둘러 본후 수안보 온천으로 이동하여 꿩오리로 저녁 먹고 수안보온천에서 투숙이다..



    2017.  10.  28 첫번째 여행지 충주 미륵대원지로 향해 본다..






    미륵대원지는 수안보 온천에서 동남쪽으로 11km지점,   송계계곡 상류에 있는 아름다운 폐사지다.





    충주 미륵대원지 안내도 이다..









    공기돌 바위( 온달 장군)


    온달장군이 갖고 놀았다는 공기돌...

    월악산 국립공원 미륵리 미륵대원지 입구에 있으나 미륵사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자연적인 바위에 약간의 인공이 가미된 바위로 생긴 모양이 거북이와 비슷하다 하여 거북바위라 불리우는 바위 위에 올려져 있는 직경 1m 가량의 둥근 돌(공기 돌) 바위로 온달장군의 전설로 인해 공기돌 바위로 알려진 바위이다.

    동쪽의 하늘재는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역이었으며 고구려 평원왕 때 온달장군은 스스로 군사를 청하여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상류 지역인 이곳과 죽령부근의 단양 땅을 회복하려고 하였다이 지역에 주둔하며 성을 쌓을 때 휴식시간에 이 바위를 공기돌로 사용하여 놀았다 하여 온달장군의 공기돌 바위라 한다온달장군은 단양 영춘면 아단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고 한다.

    장례를 치르려고 해도 도무지 관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은 이미 결정 났으니 마음 놓고 떠나가시오라고 하자 관이 떨어져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고 한다.

    미륵사지 입구에 있는 밭 가운데에 삼한시대 토축한 길이  6.2m   폭  5.4m의 무덤이 있는데 동네 사람들은 이를 온달장군의 묘로 부르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충주 미륵대원지에는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하늘재 아래의 미륵대원지는 신라 말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옛 절터로, 당간지주와 회랑 등의 흔적만으로도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로는 유일하게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지릅재와 하늘재 사이의 분지인 미륵리에 터를 잡고 있다.






    신라 56대 경순왕의 말년에 금강산에 입산하였던 마의태자(麻衣太子) 남매가 도중에 머물러 사찰과 미륵, 탑 등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 미륵사지(彌勒寺址)가 있다.

    이곳에는 석불입상. 오층석탑 . 큰 돌 거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석불입상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미륵사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의태자가 이러한 일을 이룬 것은 관음보살의 계시 때문이었다고 전설은 전한다.

    마의태자의 꿈에 나타난 관음보살은 하늘재 넘어 큰 터가 있으니 그곳에 석불을 모시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곳에 마애불을 세우면 억조창생에게 자비를 베풀게 될 것이라고 계시를 남겼다 한다.





    미륵대원지 입구 왼쪽 위로 원터 흔적이 남아 있다.









    원터는 예전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쉴수 있게 만들어 놓은 오늘 날의 여관(?)과 비슷한 곳이라 한다.   원터 왼쪽으로 하늘재 가는 길이 있다.   여기 원터에서 충주와 문경으로 오가던 사람들이 쉬던 곳이다.














    옛날 절터 자리의 흔적....






    시원한 감로수 한잔 들이키고 미륵대원지를 들어 선다..






    지금은 석조여래입상 보호석실 보수 작업이 내년 20183월까지라 제대로 볼수 없어 많이 안타까웠다..






    미륵리 귀부(龜趺) - 충북 유형문화재 제269


    우리나라 최대의 거북모양 비석 받침돌로 원위치에 있는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위치로 보아 사적비를 세웠던 받침으로 추정되는데 비신은 없어 지고 등에는 비좌의 조출이 없이 비신을 꽂았던 구멍만 뚫어져 있다.

    좌측 어깨 부분에 작은 거북 두 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형태를 음각하였고 앞쪽 발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 하였으나 형식화 되었다.





    거북의 머리는 힘없이 앞으로 내밀어져 있고 등의 구갑문도 생략되는 등 규모만 크고 조각이 약소한 귀부이다.






    없어진 비신에는 분명히 절의 창건 내력이나 연혁 또는 중수사실등이 기록되어 이 사찰의 모든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몇 차례의 발굴에도 불구하고 찾지를 못하였다.





    미륵리 오층 석탑이 보인다..






    미륵리 오층 석탑 ( 보물 제 95)






    미륵리 5층석탑은 높이 6m의 화강암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했다.










    자연석을 다듬어 그대로 지대석으로 사용하였고 지대석과 기단부가 커다란 자연석1매로 조성했으며 기단부의 내부를 일부러 파 내어 4면의 벽석을 만든 형태로 되어 있다.














    탑신부는 높지 않고 옆으로 넓어진 방형중층의 양식을 갖춘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으로 볼 수 있으나, 흔히 석탑에 표현되는 우주와 탱주가 나타나 있지 않고 상층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덮여 있고











    탑신부에는 초층 옥개석이 2매이고 탑신이나 옥개석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어 있고 옥개 받침은 모두 5단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보아 세련미가 부족한 듯 보여지고 있으나






    상륜부에는 큼직한 노반이 있고










    정상에는 철제로 만든 철주가 남아 있어 또 다른 계의 신라 말 고려 초의 석탑 구조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미륵리 사각석등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15)






    미륵사지 내에 있는 또 다른 고려시대의 석등이다.






    방형의 지대석에 복련하대석을 얹고, 그 위에 안상이 새겨진 4각의 간석을 세우고 간석위에 4각의 상대석,화사석에 해당하는 4우주를 얹었다.

    이 석등은 8각의 기본형을 벗어나 4각으로 약식화 되어 있다.

    흙 속에 묻혀 있던 것을 1977년도 미륵리 사지 발굴 작업 때 찾아내어 5층석탑 북쪽에 다시 세운 것인데 원위치는 아니다.









    미륵리 팔각석등  ( 충북 유형문화재 제 19)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는 오래된 고찰지인 미륵사지가 있으며 사지내의 미륵석불과 오층석탑 사이에 높이 2.5m의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균형이 잘 잡힌 우수한 석등이 있다.

    팔각의 기본형태에 방형인 복련 하대석과 그위에 8각 간석을 세우고 양련의 상대석을 얹었으며 8각의 화사석에 옥개석을 놓았고 상륜부에는 보주가 있다.








    삼국시대에 있어서 고구려와 신라의 격전장으로 추측되는 하늘재 아래 남북형 분지에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물게 보이는 석굴사원 양식인 미륵사지가 펼쳐지는데 이 석굴사원의 경내에는 석불입상과 그 앞으로 역시 같은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여 지는 8각석등과 미륵리 5층석탑으로 알려진 석탑이 1기가 우뚝 서 있다.











    받침돌은 팔각으로 아래부분에는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받침 돌 위 간주석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8각형 돌기둥으로 상대석에는 양련을 조각했고 상대석 위로는 등을 설치했던 8각형의 화사석이 있는데 4면에 화창이 있고 화사석 위에는 8각의 옥개석과 상륜부 받침을 두고 연꽃 봉오리 모양의 보주를 조각하였다.






    미륵리 석불입상 보물제 96


    지금은 석조여래입상 보호석실 보수 작업이 내년 20183월까지라 제대로 볼수 없어 많이 안타까웠다..







    참으로 후덕한 인상의 석조여래입상은 월악산 마애부처님과 마주보고 계시다 한다. 1천여년 풍상에 시달렸던 불신이 이끼옷을 입었지만 얼굴만은 옛 모습 그대로 깨끗하기 그지없다.

    마의 태자의 망국의 한이 서려 얼굴 부분만 이끼가 끼지 않았다는 기이한 설이 있다.

    보수 작업이  내년 20183월 끝나면 다시 후덕한 인상의 부처님을 뵐수 있기에 기꺼이 기다릴수 있다..




    미륵세계사

     





    미륵사지터에 지금은 미륵세계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래된 사찰이 편안함을 주는 건 아마도 오래된 나무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 때문일 테지..






















    옛 건물 기둥 받침에도 이렇듯 문양이 세겨져 있다.












    설치된 모든 석물이 삼국통일 의지로 북쪽을 향해 일직 선상에 설치된 미륵사지를 뒤 돌아보며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 태자와 누이 덕주공주 남매가 왕권회복을 도모코자 강원도 한계산성으로 가는 도중 미륵사와 더불어 세웠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 미륵사지를 나오며 망국의 한으로 얼룩졌을 두 오누이의 슬픈 마음을 조금이나 헤아려 본다...






    미륵대원지 당간지주는 아래 부분이 결실되어 전체 크기를 알수 없으나 윗부분 바낕면에 6엽 연화문을 양각한 것은 희귀한 예이며 통일신라시대 보다 상대적으로 폭이 넓고 높이가 낮은 고려시대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승자나 폐자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리의 선조들은 말이 없고 고운 단풍나무 아래로 쓸쓸한 낙엽만이 허허로울 뿐이다....





























































    짧아서 더욱 아쉽고 좋은 계절,  이 가을으 미륵대원지에서 마음껏 느끼고 수안보 온천으로 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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