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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경주향교(경북 경주시 교동 17-1번지)여행방/경상도 2016. 11. 21. 21:50
만추의 경주향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
2016. 11. 21.
2016. 11. 16 ~17 (1박 2일) 대학친구들과 경주에서 1박 2일 ~
1박 후 2일째 날이다..
오늘 일정은 보문동 순두부집으로 이동해서 아침 식사후 첨성대, 계림, 경주향교, 경주 최부자집과 교동, 경주 법주 그리고 신라 41대 헌덕왕릉 순으로 여행할 예정이다..
경주 여행 2일째....
김알지의 탄신 설화가 있는 계림에서 충분히 휠링 후 세번째 여행지로 계림 옆에 있는 경주향교로 향해 본다..
경주향교(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1호)는 경상북도 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향교이다.
경주향교는 경북에서 가장 큰 향교로, 신라시대인 682년(신문왕 2) 국학(國學)이 설치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향학(鄕學),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져온 유서 깊은 곳이다. 나주향교(羅州鄕校)와 함께 향교 건물 배치의 표본이 된다. ……
경주향교는 계림(鷄林)의 서편, 문천(蚊川)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때 요석궁이 있던 곳이라 전해오는 이 터는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다.
향교는 전묘후학 구조로 설계가 되어 정면은 개방이 안되고 있었고 향교 정문 옆 담장따라 이동 후 우측문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외삼문은 닫혀 있었고 동쪽 명륜당으로 통하는 협문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경주향교(慶州鄕校)의 출입구로서 협문인 상용문으로 들어간다..
경주향교 출입문인 상용문의 '慶州鄕校' 현판
향교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1982년 중건된 향교 관리사인 고작실 앞의 경주향교 우물,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입구에 들어서니 독특한 모양을 한 우물이 보인다. 큼직한 돌로 주변을 감싸고 수로를 만들어 사용한 물이 다시 우물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옛 선조들은 우물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 관직에 있는 사람이나 공직에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직급및 위치를 구분할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깐 높은 관직에 있는 사택에 가면 우물이 으리으리하고 크고 멋지게 생겼었다고 한다.
향교 관리사인 고작실과 마주한 전사청이다.. 향교 관리사의 전사청, 전사청은 1988년에 4칸을 증축하였다.
향교 관리사인 고작실 뒤쪽의 전교실이다...
동쪽문에서 본 경주향교, 명륜당으로 통하는 협문이 보인다.
경주향교의 강학구역인 명륜당으로 들어간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고려시대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신문왕 2년(682) 국학(國學)이 설치되었던 곳이라 한다.
그 뒤 1492년(성종 23) 경주부윤 최응현(崔應賢)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대성전이 소실되어 위패를 도덕산(道德山) 두덕암(斗德庵)으로 옮겼다가 1600년(선조 33) 경주 부윤 이시발(李時發)이 대성전과 전사청을 중건하고 위패를 환안(還安)하였다.
1614년(광해군 6) 부윤 이안눌(李安訥)이 명륜당을 중수하고 동서 양무(兩廡)를 중건하였으며, 1668년(현종 9)에 보수하였다. 경주향교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전사청· 내신문(內神門) 등이 있다.
【국학 (國學)】
신라 시대에 창설한 교육 기관.
신문왕 2년(682)에 처음으로 경주에 국학을 설치하였고, 경덕왕이 태학감(太學監)으로 고쳤는데, 혜공왕이 다시 국학이라 하였다.
【향학 (鄕學)】
고려시대 지방에 설치한 교육 기관. 중앙에 설치된 국학 또는 국자감(國子監)에 대하여 지방에 설치된 교육 기관이다.
경주향교의 강학구역인 명륜당(明倫堂)과 동·서재
향교는 전체적으로 동남향하여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로 이루어진 문묘가 앞에 있고, 뒤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영역이 있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형식을 하고 있다.
경주향교의 강학구역인 명륜당(明倫堂)
'明倫堂' 현판이 걸려 있는 명륜당 강당
명륜당(明倫堂) 현판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희(朱喜, 1130~1200)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든 것이다.
향교의 역사 만큼이나 많은 편액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명륜당 벽에 걸려 있는 삼강(三綱)· 오륜(五倫)
유교(儒敎)의 도덕사상에서 기본이 되는 3가지의 강령(綱領)과 5가지의 인륜(人倫)인 삼강오륜은 어릴 적 시골집 큰방에 늘 붙어 있었다.
고운 명륜당 문살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집이다. 중앙에 대청 3칸을 두고 좌우로 겹실 1칸을 두었다. 앞면 1칸은 모두 통칸이다.
헌종(憲宗) 7년(1841년)과 고종(高宗) 10년(1873년)에 대성전과 함께 중건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1978년에 다시 중건 되었다.
명륜당 대청에 앉아 바라본 아주 단정한 모습의 대성전(大成殿) 뒷 모습이다.
경주향교에서 교생들이 학습하고 생활하는 곳, 명륜당과 동.서 재를 포함하는 강학공간은 대성전의 제향공간보다 낮게 배치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 대성전이 중건되고 광해군 6년(1614년)에 부윤 이안눌이 명륜당과 동서 재를 중건하였다.
경주향교의 강학구역인 명륜당(明倫堂)의 동재의 앞면
명륜당(明倫堂)의 동재의 후면
경주향교의 강학구역인 명륜당(明倫堂)의 서재, 강당인 명륜당과 동재·서재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기거하는 시설이다.
1982년에 동재와 같은 양식으로 서재가 중건되고, 1995년 명륜당에 이어 2002년에 동재가 중건되었다.
대성전의 동무 건물을 끼고 돌아서 대성전으로 간다.
경주향교는 외삼문(外三門), 신삼문(神三門), 대성전, 명륜당이 남북 축선상에 자리하고 있다.
경주향교의 내신문인 신삼문이다
별도의 담장으로 구별되어 있는 대성전 영역은 문이 닫혀 있어서 이번에도 둘러보지 못하고 신삼문 앞에서만 바라봐야 했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서무와 동무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문묘영역이 강학영역 앞쪽에 위치하는 전학후묘(前廟後學)의 배치형식은 주로 평지에 입지한 향교에서 나타나는 형식으로 서울의 성균관을 비롯하여 전주향교, 나주향교 등에서 볼 수 있다.
문묘영역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전면에 신삼문, 좌우에 동·서무가 별도의 담장으로 구획되어 엄숙한 제향공간을 형성한다.
경주향교 대성전(보물 제1727호)
대성전은 임진란 때 소실된 것을 1600년에 중건하였으며 그 후 동·서무, 명륜당, 동·서재, 제독청, 존경각 등을 차례로 중건하여 17세기에 지금과 같은 배치를 갖추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선현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신위를 대설위(大設位)로 모신다.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설위(大設位) 향교의 대성전은 대개 정면 규모가 5칸이나 경주향교 대성전은 3칸이지만 간살을 크게 잡아 칸수에 비해 넓은 내부 공간을 확보했다.
내부 바닥은 편의상 장마루를 깔았지만 그 하부에는 본래의 전돌 바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기단은 장대석을 2단으로 정연하게 쌓고 상단에는 갑석을 올렸다. 갑석은 단부를 외부로 돌출하여 떨어지는 우수 등이 기단면을 상하지 않게 다듬었고 우석(隅石)은 통돌로 치석한 오래된 기법을 보존하고 있다. 기단 전면 중앙에는 통돌로 만든 석계(石階)가 설치되어 있고, 동서 양측면에도 석계가 있다. 특히 중앙부의 석계는 계단이 좌우로 구성된 이중계(二重階)로, 기록에 의하면 임해전지에서 가져온 계단이라 전한다. 기단 윗면에는 갑석 높이에 맞추어 방전(方塼)을 깔고 그 위에 다듬은 초석을 놓고 흘림이 약한 원주를 세웠다. 맞배지붕 건물임에도 건물 네 모서리에 활주를 세워 길게 내민 처마도리의 뺄목이 아래로 처지지 않게 보강하였다. 벽체의 구성은 각 칸마다 둔테달린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아 안으로 열게 했다. 판장문 하부에는 신방목을 결구하고 그 밑에 신방석을 놓아 문을 지지하게 했다. 또한 벽 전체를 돌아가며 초석 높이에 맞추어 벽체 하단에 장대석 형태의 고맥이돌을 설치한 것은 다른 향교에 찾아보기 힘든 수법이다. 공포는 외1출목의 헛첨차를 사용한 주심포 형식이다. 내부 가구는 향교건축에서는 드물게 어칸에서 1고주 7량가 측면에서는 2고주 7량가로 후열에 내고주(內高柱)를 세웠다. 내고주열 어칸 상부에는 우물반자를 구성하여 공자의 위패를 모셔 놓아 다른 위패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권위를 높이고 있다.
대성전에서는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석전례(釋奠禮)가 열리며, 그 밖의 다른 시기에는 개방되지 않는다.
대성전 동무
대성전에 딸린 건물이자 대성전과 함께 향교의 제향공간을 이루는 동.서의 무(撫)는 전면 12칸에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선조 37년(1604년) 부윤 윤성(尹惺)이 중수하였는데, 5년 뒤인 광해군 원년(1609년)에 동.서 무가 영건된 것을 축하하여 전교를 받들어 박여량(朴汝樑)이 지은 축문(祝文)이 남아 전한다.《감수재문집》
현종(顯宗) 10년(1669년)에 부윤 민주면(閔周冕)이 동서 무를 중수하였다.
대성전 서무
경주향교의 내신문인 신삼문에서 바라본 외삼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대성전을 둘러 보고 대성전의 동무 건물을 끼고 돌아
명륜당으로 통하는 협문쪽으로 나오면 관리사 마당이다.
계림 옆에 있는 경주향교를 들어가서 고즈녁한 고택과 어울리는 만추의 가을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노란 은행잎과 여러가지 나뭇잎들이 단풍으로 많이 떨어져 낙엽 또한 밟기가 아까울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다.
경주향교의 출입구인 협문인 상용문으로 경주향교를 나간다.
경주 향교의 외삼문 앞을 지난다...
경주 향교의 외삼문 앞을 지나 교촌마을을 가로 질러 경주교동 최씨고택인 최부자집으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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