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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성리 정유서 유록 유허비(장기면 수성리 371-2번지) 와 임중리 김사민 정효각(임중리 114)
    여행방/경상도 2015. 10. 9. 07:07

    수성리 정유서 유록 유허비와 임중리 김사민 정효각  

     

     

     

     

     

    2015.   10.   9.

     

     

    2015.  10.   2.   오늘은 포항의 남구 장기면 지역을  탐방한다... 

     

     

    여행은 길 위의 움직이는 학교이다. 

    운명과도 같은 새로운 만남과 사람과 삶을 배운다.  서로 사랑하는 법,  감동을 나누는 법을 배운다.  나를 용서하는 법,  화해하는 법도 배운다.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는 기술을 배우고  진정한 기쁨과 행복도 배운다.

    또한 지나온 자신을 돌아보며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여행을 떠난다.   삶의 중간에서..

    이런 햇살 좋은날 나홀로 행복한 나만의 포항 남구 장기면 일대 문화탐방을 나선다.

     

     

    탐방할 문화재와 여행지는 포항시 남구 장기면 정천리 선정비와  대곡리 김해김씨 열녀비, 학곡리 학삼서원,  장기읍성, 장기향교,  장기면사무소 안에 있는  척화비,  근민당,  선정비,  금곡리 금산서원과 삼효각. 허진수 유허비,   계원2리 화재 이언적 시비,  양포리 정인품 절효각,  수성리 정유서 유록 유허비,  임중리 김사민 종효각,  장기초등학교 교정의 송시열. 정약용 사적비와 은행나무, 마현리 삼명서원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아홉번째 여행지인 양포리 길가 숲에 둘러 싸인 장인품 정효각을 보고 나와  장기면 소재지쪽으로 가면서 오늘의 열번째 여행지인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371-2번지에 위치한 정유서 유록 유허비와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임중리 114번지에 위치한 김사민 정효각을 만나러 가 본다........

     

     

     

     

    양포리 입구 마을 숲에서 장기쪽으로 향하다가 삼거리에서 직진하며 좌측 길가에 정유서 유록 유허비가 있었다.. 

     

     

     

    정유서의 호는 학포(學圃), 본은 영일(迎日)로서 고려시대 전공판서(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의 후손으로 학포 鄭維瑞는 임진왜란 때 동생 鄭維祿(정유록)과 지방 인사들과 함께 의병을 모아 가재를 털어 군수물자를 조달하였으며, 記事官(기사관)으로 활약하여 많은 공적을 남겼다.  임란이 끝난 후 공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가선대부를 추증한 후 宣武原從功臣錄에 올렸다. 

     

     

     

    비각은 정면1칸 측면1칸의 건물로 맞배지붕에 겹처마이다.

     

     

     

     

     

    기둥 초석이 높고 치석 수법도 아주 잘 되어 있다.

     

     

     

     

     

    양포리 입구 마을 숲에서 장기쪽으로 향하다가 삼거리에서 직진하며 좌측 길가에 정유서 유록 유허비를 보고 장기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달리다가 3분 정도 후 김사민 정효각이 좌측으로 길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임중리 새장터 마을 앞 국도변에 위치하며 효자 金士敏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조 광무(光武) 2년(1898년) 건립된 비각이다.

     

     

     

     

    정면1칸 측면1칸의 북동향 건물로 맞배지붕의 겹처마이다. 정면에는 ‘旌孝閣’ 현판이 있고 양쪽에는 방풍판이 있다.

    비신 전면에는 ‘子嘉善大夫金海金公四敏之碑(자가선대부김해김공사민지비)’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신의 크기는 폭 37.5㎝·  높이 146㎝·  두께 16㎝이다

     

     

     

    김사민은 김해김씨 문중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자정의 현손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랐다. 15세 때 부친이 중병에 걸려 위독할 때 어느 도인이 두꺼비회를 복용하시면 나으리라 하심에 엄동설한에 두꺼비를 구할 길이 없어 애를 태우며 하늘을 향해 기도하니 김사민의 효심을 알고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동쪽 20리 바위 밑에 가면 두꺼비를 구할 수 있다고 하여 급히 그 곳에 달려가서 눈을 헤치고 땅을 파니 두꺼비 한 쌍이 있어 집으로 가져와서 드시게 하니 차도가 있었다.

    다시 부친의 병이 위중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로서 희생시켜 5년을 더 연명하시게 하였다고 한다.  그 후 부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3년간을 산속에서 시묘를 하였는데 호랑이가 와서 호위하여 주었으며, 모친이 별세하였을 때도 3년간 시묘를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효행을 이 지방을 지나던 관찰사가 듣고 이 고을에 효자비를 세워 후세에 빛나게 하라하여 조선 헌종7년(1841년) 김해김씨 문중에서 선조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열번째 여행지인 포항시 남구 장기면 수성리 371-2번지에 위치한 정유서 유록 유허비와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임중리 114번지에 위치한 김사민 정효각을 만난 후 열한번째로  장기초등학교 안에 있는 다산 정약용사직비와 송시열 사작비 그리고 오래된 은행나무를 만나러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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