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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마음속 보물과 같은 곳, 미황사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247)
    사찰여행/전라도 2015. 8. 22. 20:15

    내 마음속 보물과 같은 곳, 미황사 

     

     

    2015.  8.  22.

     

     

    2015.  8.  21.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 에서 108순례로 42명이 포항에서는 까마득히 먼곳 전라남도 해남의 대흥사도와  미황사로  나들이 기도를 출발한다.

    지명 탓일까?  '땅끝' 해남으로 향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조금은 먼 여정이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05:30 출발하여  함안쯤 가니 하늘이 비를 거두고 조금씩 파란 하늘을 내어 주는 가운데 땅끝마을 해남으로 가는 길은 멀었지만 중간에 차량사고 수습으로 조금 지체 되어 대흥사를  11:00에 도착,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천년고찰 대흥사를 순례 후 식사하고 1:30에 미황사로 향한다... 

     

    미황사(美黃寺)는 우리나라 불교 해로유입설을 뒷받침하는 고찰로서 옛날에는 크고 작은 가람이 20여동이나 있었던 거찰(巨刹)이거니와 대웅전은 보물 제947호로서 그 규모나 정교함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건물이다.

     

    신라시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창건했다는 이곳은 1692년 숙종 18년에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이 지은 '미황사 사적기'에 창건에 얽힌 신비로운 전설이 전한다.

     

    때는 신라 35대 경덕왕 8년(749) 돌배(石船) 한 척이 홀연히 달마산 아래 사자포에 와 닿았는데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가까이 오기를 며칠동안 계속했다.   의조화상이 정운,  장선 두 사미승과 향도 백명을 데리고 목욕재계하고 기도하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 안에는 금으로 된 뱃사공과 금함,   60나한,   탱화 등이 가득 차 있었다.   또 검은 바위를 깨뜨리자 소 한마리가 뛰쳐 나오더니 삽시간에 큰 소가 되었다.




    이날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金人)이 나타나 "나는 우전국(인도) 사람인데 이곳 산세가 일만 불을 모시기에 좋아 보여 인연토(因緣土)로 삼았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실고 가다가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절을 세우라"고 하였다.

    다음날 스님은 그 말대로 했는데 소가 달마산 중턱에 이르러 한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한참을 가다 크게 울며 넘어지니 일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소가 누운 자리에 통교사를 짓고 그 다음 자리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란 이름은 소가 울 때 그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美)자를 취했고 금인(金人)의 황홀한 빛을 상징하여 황(黃)자를 취해 지었다고 한다.

     

    미황사가 있는 서정리는 1789년에 간행된 호구총수에 의하면 영암군 송지종명의 지역으로서 우분리(牛糞里)라고 불리었다.   우분리라는 지명은 미황사 창건설화와 연결되고 있는데 불경을 짊어지고 쓰러져 죽은 소를 이 마을에 묻어 황소가 죽은 곳이라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미황사가 한창 번성할 때는 통교사를 비롯 도솔암,  문수암,  보현암,  남암등 12암자가 즐비한 사찰로 대흥사의 가장 큰 말사(末寺)였다.   하지만 크게 융성했던것 만큼이나 폐망 또한 폭풍속 바다에 수장된 것으로 끝나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150년전쯤 당시에는 이곳 치소 마을 출신의 혼호스님이 주지로 있었고 40여명의 스님이 머물만큼 부자절이었다.  그때 더 큰 중찰부사를 일으키기 위해 이 절의 스님들이 군고패(풍물놀이의 일종)를 차려 해안지방을 돌며 시주를 모았다.   그러나 완도 청산도로 공연을 가던중 폭풍을 만나 배가 파선돼 떼죽음을 당하니 절을 지키던 스님들의 맥이 끊길 수 밖에... 

    지금도 청산도 사람들은 미황사 스님들이 빠져 죽은 그 바다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이면 군고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리고 찾게 된 내 마음속 보물과 같은 곳이 있다.   답사를 다니다 보면 비록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보물로 지정받기는 커녕 주목받은 적도 없지만 ‘보물’로 부르고 싶은 유적이 있는데, 바로 그런 ‘보물 중의 보물’과 같은 곳이다.

    그곳이 바로 해남 미황사인데, 불교의 남방 전래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절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보다 직접 가보면 펼쳐진 풍광에 그만 반하게 된다.   남쪽의 금강산이라는 별명을 듣는 달마산의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하고 저 멀리 남해가 보이는 입지조건에 있는 대웅보존에 서면 그렇게 마음이 포근할 수가 없다.

     

     

     

     

     

    미황사 주차장 도착이다..

     

     

     

      

    주차장에서  바로 일주문이다.   근래에 건립된 미황사 일주문...

     

     

     

     

     

     

    2008년에 복원했다는 일주문 단청이 참 아름답다!

    일반적으로 일주문에  '달마산 미황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없다. 

    그리고 다른 사찰과 달리 일주문 양옆으로 담장이 있다.   마치 사바세계와 불국정토를 구분하듯이...

    일주문 바로 오른쪽에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일주문에 다다르자 여의주를 입에 문 거대한 용이 반긴다.

     

     

     

     

      

     

     

     

     

     미황사 안내도 이다.

     

     

     

     

    절집으로 가는 길이 호젓하다.   이마에 땀방울은 송글송글,  장열하는 햇살 사이로 바람은 시원하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최근 보물 제 1342호로 지정된 미황사 괘불은 매년 11월 첫째 토요일 오후 7시에 열리는 산사 음악회에 앞서 오후 1시에 행해지는 괘불제 때 볼 수 있는데 올해는1주일을 당겨서 괘불제를 하나 보다.... .

     

     

     

     

     

     

     

    미황사 입구 ~ 절로 가는 길~

    거대한 바위를 작은 나뭇가지로 받침을 만들었다....앙증맞다.

    육중한 바위를  받치고 있는 꼬챙이나 다름없는 나뭇가지들에 눈이 꽂힌다.   뭘까. 어떤 의미일까?

     

     

     

     

    일주문을 지나자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길섶으로 동백나무와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어우러져 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마음이 정갈해지는 것 같다.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보는 미황사는 커진듯 하다. 천왕문이 건립중에 있는데 이 문이 있다는 것은 여법한 가람의 틀을 잦추어 가는 것으로 본다.  

     

     

     

     

     

     

     

     

     

     

    아직 사천왕을 봉안하지 않은 미완의 천왕문,  천왕문에는 아직 사천왕상이 보이지 않지만 아마 다음에 오면 네 기의 사천왕상을 보게 될것이다...

     

     

     

     

     

     

     

     

     

     

     

     

    자하루 중심으로 올려다본 풍경...    달마산 암릉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왼쪽 건물에는 불교용품 판매점과 함께 전통찻집이 운영되고 있다.

     

     


     

    '달마선다원'란 편액이 걸려 있고,  입구 양옆 기둥에 전통찻집과 불교용품이란 글귀도 보인다

      

     

     

     

    연잎밥. 단팥죽.  삼색떡국.  전통 차 등을 판매하는 해남 맛집이다..

     

     

     

     

     

     

     

     

     

     

     

     

     

     

     

     

    자하루가 보인다.  꽤나 널찍한 누각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한 한문학당 때 이용되는 공간이다.

     

     

     

     

     

     

     

     

     

     

     

     

      

     

     

     

    자하루 오른쪽에는 감로수 수각이 있으며,  물맛은 꽤 괜찮았다.

      

     

     

     

    자하루 왼쪽에는 달마대사 석상이 세워져 있다. .

     

     

     

     

    달마대사상

     

     

     

     

     

     

     

     

    자화루는 대웅전과 마주보며 대웅전과 직선상에 있는 누각이다.  2001년 다시 지었다고 하며 정면 7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이다.

     

     

     

     

    미황사(美黃寺)는 오래된 절집이다.  역사가 1200년을 웃돈다.  검은 돌에서 튀어나온 검정빛깔의 소에 불상과 경전을 싣고 옮기는데,  산골짜기에서 소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 자리에 세운 절집이 미황사다.  창건설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화루는 아래층은 통로를 만들어 누하진입을 유도했고 위층은 마루를 깔고 대웅전과 마주 보는 쪽은 문을 달아서 각종의식이나 법회를 할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아래층의 벽면은 화방벽이고 그 위로는 붙박이로 처리하였다.

     

     

     

    자화루 편액

     

     

     

    자하루 누각을 들어선다.

     

     

     

     

    자화루 건물의 대웅전과 마주보는 쪽에 걸린 만세루 편액

     

     

    만세루 주련

     

                 擬將修福欲滅罪 (의장수복욕멸죄) 복을 닦아 지은 죄를 없애려 한다 해도

                 後世得福罪還在 (후세득복죄환재) 후세에 복은 받되 죄는 다시 남는다네.

                 但向心中除罪緣 (단향심중제죄연) 허나 다만 마음 속 죄의 인연 없애려면

                 各自性中眞懺悔 (각자성중진참회)  각자의 성품에서 참된 참회 할지니라

     


     

     

    중정에서 본 만세루와 범종각. 청운당


     

     

     

    범종각과 나란히 있는 청운당은 요사채 인듯..

     

     

     

     

    불전사물(佛殿四物) 중에 범종만 보인다..

     

     

     

     

     

     

     

    미황사 뒤로 울퉁불퉁한 바위봉우리로 연결되는 달마산이 병풍삼아 품고 서있는 절집이다

     

     

     

     

    민낯 미인이 '진짜 미인'이라는 말이 있다.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인데도 미인이기 때문이다.

    여행지도 똑같다.  따로 덧칠하지 않아도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곳이 빼어난 여행지다.

    '땅끝' 해남의 달마산 미황사가 그런 곳이다.  단청을 하지 않은, 민낯 그대로다.  그럼에도 아름답다.   뒷산의 빛바랜 기암괴석도 장관이다.  요사채를 감싸고 있는 돌담과 장독대도 고향집 같다.

     

     

     

     

     

     

     


     

     

    대웅보전이 있는, 경내 마당으로 들어선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 사인데 우리나라 육지의 최 남단의 있는 절로서 749년(경덕왕8) 의조가 창건하였다.

    1264~1294년 사이에 중국 남송의 학자와 관리들이 이 절에 내왕하였다고 하므로 당시 미황사가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사찰임을 알 수 있었으나 1597년(선조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598년 만선이 증건 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  달마전,  응진당,  명부전,  세심당,  요사체 등이 있으며 기타 석조,   괘불대,  부도군,   사적비 등의 문화재가 있다.  현제 명승 제59호 지정되어 있다.

     

     

      


    대웅본존-보물 94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단청을 하지 않은것이 특징

     

    미황사 대웅전은 잘 생긴 절터 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정유재란(丁酉再亂)때 불탄 것을 1754년 영조때 중건(重建)했으며 그 생김새가 화려하고 정교하다.


    조선후기 다포양식(多包樣式)의 건축으로 단연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솜씬데,  막돌허튼층 쌓기 형식인 기단위의 우아한 차림새와 내부를 장식한 문양과 조각이 찬탄할 만한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내부로 뻗은 살미의 끝은 날카롭게 앙설로 되어 있고 내부에서는 하나의 판으로 붙어 있으면서 그 끝은 연봉형으로 마감 했다.

    주간포는 전면에 2구, 양측면에는 1구씩 배치했다.

     

    건물안에는 나한상(羅漢像),  동자상(童子像),  신장상(神將像) 등이 벽화로 그려져 있으며 종이에 그려진 여래상(如來像) 또한 벽면에 붙어 있다.   이 벽화들은 10세기경의 그림으로 추정되어 불화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하지만 10여년전 두 벽면의 벽화가 벽채로 도난당한 일은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빛바랜 전각이 달마산 봉우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마치 하나인 듯 자연스럽다.  

     

    미황사의 첫번째 아름다움으로 꼽히는 대웅보전은  한국의 사찰건축이 예술 그 자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단청의 흔적마저도 세월의 흐름에 씻겨 나가버려 그대로 드러난 나뭇결에서 느끼는 감촉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미황사의 자랑, 둘째는 달마산이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친 이 산은 고작 481m 밖에 되지 않는데도 금강산에 비견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이다.

    미황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해남의 금강산,  만물상으로 불리는 달마산 능선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보물 제 947호인 대웅전이 빛바랜 단청을 곱게 내세우고 달마산의 준봉들을 배경으로  서 있다.  대웅전의 웅장한 자태가 일품이다.

     

    미황사의 자랑 세번째로는 ,미황사에서 바라보는 해넘이[落照]는 말을 잊게 한다.  장엄함이라고 해도 부족하고 황홀함이라고 해도 역시 적당하지 않다.  가을의 낙조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이 장관을 구경하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을 정도이다.

     

     

     

     

    단청이 다 벗겨진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대표 건축물이다. 나무 빛깔만으로도 마음을 잡아끈다.  보물 제947호로 지정돼 있다. 소박하면서도 고색창연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

     

     

     

     

    미황사는 오래 전부터 전각의 소소한 단청으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았다.

    보물(제947호)로 지정돼 있는 대웅보전은 단청이 모두 벗겨져 소박하고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고색창연한 멋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내부 풍경으로,  목조 삼존불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 이 모셔져 있다.

     


     

     

     

     

    삼존불 위로 화려한 닷집이 보이고 ..

     

     

     

     

     

     

     

    후불탱화와 소종과 법고, 법고대, 괘불탱(보물 제 1342호)등이 봉안되어 있다...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황사 괘불이다.

    괘불이라는 것은 탱화의 일종으로, 쉽게 설명하면 법당에 불상 뒤에 걸려 있는 걸개그림을 탱화라고 하는데, 괘불은 탱화보다 더 큰 걸개그림이다.   괘불은 주로 법당에서 치를 수 없는 큰 행사 때 마당에 걸어두고 행사를 치르는 불화이다.

    최근 보물 제 1342호로 지정된 미황사 괘불은 매년 11월 첫째 토요일 오후 7시에 열리는 산사 음악회에 앞서 오후 1시에 행해지는 괘불제 때 볼 수 있는데 올해는 10월 24일 네째주 토요일에 한다고 한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대웅전 내부 단청이 오랜 세월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웅전 천정에는 멋진 문양을 볼수 있다.

     

     

     

     


     

     

    대웅전 내부 대들보와 도리에 그려진 수많은 부처님 가운데 일부분인 천불도이다.

    부처님이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의미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것이 대승불교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다불사상이 등장하게 되면서 삼신불.  삼세불.  53불.  천불.  삼천불 등을 조성하듯이 이 부처님 모습들도 그런 의미로 그려지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대웅전 천정에는 일천불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

     


     

     

     

     

      

     

     

      

    천불이 그려져 있어서 세번만 절하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 절하는 것이라고....

     

     

     

     

     

     

     

     

     

      

    대웅보전 천정에는  범어(인도 싼스크리스트어)로 쓰여진  글자를 볼수 있다.

       

     

     


    옛 모습의 신중탱

     

     

     

      

    영가단

     

     

     

     

    보물 제947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현판과 주변 모습이다.

    1982년에 보수 공사 중 발견된 "대법당중수상량문"(1754년 작성)에 의하면 응진전과 함께 1761년에 중수 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건물 외부의 단청이 지워지고,  나뭇결이 보드랍게 살아 찾는 이에게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나뭇결이 참으로 곱다.

    화려함이 주는 아름다움은 순간이지만 은은함이 풍기는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지는 듯 하다...

     

     

     

      

     

     

     

     

     

     


     

     

     

     

     

       

     

     


    생일도 인가에서 가져왔다는 수종을 알 수 없는 대웅전 기둥의 나뭇결에서도 우리는 결코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곳만의 고아한 풍취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대웅보전을 빛내주는게 주춧돌이다.

     

     

     

     

    여기에 게·거북이 등 갖가지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앙증맞다.  대웅보전이 더 여유롭게 보인다.

     

     

     

     

    석조물의 위치도 재밌다.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곳에 숨어 있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재밌다.

     

     

     

      

    대웅보전의  주춧돌에 돋을 새김으로 표현된 연꽃문양  주춧돌,  뒤틀리고 갈라진 기둥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물고기 모양 

     

     

     

      

     

     

      

    파도 무늬

      

     

     

     

    대웅전 주춧돌에 돋을 새김으로 표현한

     

     

     

      

    주춧돌에 새겨진 거북모양 무늬

     

     

     

      


     

     

    대웅보전 주춧돌에 다른 데서 보기 드물게 게나 거북등 바다 생물이 새겨져 있어서 창건설화와 관련됨을 말해 준다...

      

     

     

      

    대웅보전 뒷편 모습으로 건너편 명부전과 염화실,  삼성각 등이 살짝 보인다.

     

     

     

      

     

     

      

    귀공포

     

     

     

      

     

      

     

     

     

     

     

      

     

     

      

     

     

      

     

    마당에서 바라본 대웅보전 전경이며, 석축 아래에 배례석과 괘불대( 掛佛臺 )도 보인다. 

      

     

     

     

     

     

      

    대웅전에는 화려한 단청 없이 주련도 없고 옛 고풍을 느끼는 멋이 더하다.

     

     

     

      

    미황사에서 내려다본 남도바다 

     

     

     

     

    먼저 대웅보전 오른쪽 3단석축 위에 있는 응진당(應眞堂)으로 올라간다.  

     

     

     

      

    응진당은 정면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598년 만선이 신축하였으며 1971년 일부 보수하였다.  보물 제1183호로 지정된 응진당(應眞堂) 모습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이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응진전은 대웅보전과 달리 화려하다. 대웅보전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색다르다.

      

     

     

     

     

     

     

    응진은 부처의 또 다른 이름이며, 아라한·나한은 수행을 거쳐 깨달은 성자를 말한다.  응진당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십육나한이나 오백나한을 모신다.

    미황사 응진당에는 안쪽 벽면에 그림으로 십육나한을 모시고 있다.   기둥 윗부분에는 장식이 조각되어 있는 등 조선 후기의 양식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황사 부불전(副佛殿)인 응진당은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아난, 가섭존자가 모셔져 있고 16나한상, 인왕상, 사자상, 동자상 및 불패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건축연대는 대웅전과 같은 해인 1751년 상량(上樑)된 것으로 18세기 중엽의 건물이며,  1993년에 도지정 문화재에서 보물로 승격되었고, 2001년에 보수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응진당 주련

     

            晝現星月夜開日(주현성월야개일)     대낮에 별과 달을 밤에 해를 뜨게 하고

           夏見氷雪冬見虹(하견빙설동견홍)     여름에 얼음과 눈 겨울 무지개 보게 하며

           眼聽鼻觀耳能語(안청비관이능어)     눈으로 듣고 코로 보며 귀로 능히 말하시고

           無盡藏中色是空(무진장중색시공)     무진장한 공덕 속에 색이 공임 관하시네

     

     

      

     

     

     

     

     

     

      

     


     

     

    웅진당 옆 돌담위에 올려져 있는 불두와 앙징맞은 동자상들..

      

     

     

      

     

     

     

    응진당 앞에서 내려다본, 지나온 감로당(공양간)과 안심료, 세심당 전각 풍경... .

      

     

     

      

    다시 대웅전 마당으로 내려와서 대웅전 왼쪽의 명부전과 삼성각으로 간다..

     

     

     

     

    대웅보전 왼쪽에 위치한 명부전(冥府殿)...    1997년에 신축했다고 한다.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내부 모습이다.  광배를 갖춘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협시하고 있으며....


     

     

     

     좌우로 시왕이 모셔져 있다.

     

     

     

     

     


     

     

     


     

     

     

    명부전 주련


            掌上明珠一顆寒 (장상명주일과한)     손바닥 위 마니구슬 밝은 빛이 영롱한데

            自然隨色辨來端 (자연수색변래단)     인연따라 오는 인연 자연히  밝혀 주네.

            幾廻提起親分付 (기회제기친분부)     몇 번이고  들어보여  친히 일러주시건만

            暗室兒孫向外看 (암실아손향외간)     지옥의 중생들은 본체만체 하는도다.

     

     

     

     


     

     

     


     

     

    석등 주변에 작은 돌을 쌓아서 만든 돌탑도 애틋하다.

     

     

     

     

     

     

     

    명부전 뒤 우측 상단에 위치한 삼성각(三聖閣)과 석등...

    삼성각은 1998년에 신축되었으며,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전각이다. 

     

     


     

    삼성각 내부 모습으로, 왼쪽부터 독성탱화, 칠성탱화, 산신탱화가 차례로 봉안되어 있다.

     

     

     

     

    왼쪽의 독성(獨聖)은 천태산(天泰山)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독성· 독수성이라 불리는 나반존자를 뜻하며,  그림은 천태산과 소나무· 구름 등을 배경으로 희고 긴 눈썹을 드리운 스님이 왼손에 염주를 들고 앉아 있다.

     

     

     

     

    가운데 칠성(七星)은 수명장수신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본래 중국의 도교사상과 불교가 융합되어 생긴 신앙으로, 그림 중앙에 가득하게 치성광여래를, 그 좌우에는 일광·월광보살을 그렸다.

     

    오른쪽 산신(山神)은 한국의 토속신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을 뜻하며, 그림 왼쪽에 호랑이를 걸터앉은 산신과 그 좌우에 동자와 여인이 자리한 구도로서, 동자와 여인은 독성탱화의 것과 모습이 흡사하다.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명부전 뒤쪽에 위치한 염화실(捻花室) 모습... .

     

     


     




    2007년에 개축했다는,  명부전 뒷편의 염화실(捻花室)...    큰스님이 머무는 요사채

     

     

     

     

    염화실 왼쪽 아래에 위치한 향적당(香積堂)...  역시 2007년에 개축했다고 한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일반인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주로 여성들이 머문다고 한다. .

     

     

     

     

     


     

     


     

      

    2006년에 복원했다는 청운당(靑雲堂)...   요사채로 보인다.

     

     

     

     

    대웅보전  앞에서 바라본, 향적당 방향 풍경이다.   하심당 종무소와 향적당

     

     

     

     

    대웅정 앞마당 서편에 위치한 하심당은 현재 종무소로 이용되고 있다

     

     

     


      


    응진당,  만하당,  세심당이다...

     

    전각과 요사채 사이도 비교적 넓다.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넉넉한 여유가 배어있다.  저만치 보이는 풍광도 눈을 호사시킨다.

     

     



    삼심원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심벌인가 보다....

     

     

     

     

    응진당 옆 오른쪽에 보이는 만하당(晩霞堂)이며, 스님들이 수행중이라 출입금지... .

     

     

     

     

     


     

     

     


     

     


     

     

     



     

     

     


     

     



     

     

    경내 마당 오른쪽에 보이는 세심당(洗心堂)...   세심당 후원쪽 모습으로  스님들의 참선수행하는 수련원,  선원이며  불교서적을 비롯해 많은 책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세심당 장독대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장독에선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난다.

    전각과 요사채 사이도 비교적 넓다.  답답해 보이지 않는다.  넉넉한 여유가 배어있다.  저만치 보이는 풍광도 눈을 호사시킨다

     

     

     

    세심당(洗心堂) 앞쪽 모습으로, 후원은 대웅보전 앞마당쪽으로 나있다.

     

     

     

     



      

     

    세심당 왼쪽 끝에,  경내를 벗어나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다.  스님들이나 템플스테이에 참가하는 일반인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어 그런지, 빨래들도 보인다.

     

     

     

      

    세심당과 마주보고 있는 안심료(安心寮)...    감로당(공양간)과 이어지며, 요사채로 이용되고 있다..

     

     

     

     

    요사채를 감싸고 있는 돌담도 정겹다. 

     

     

     

     

     

     

     

     

     공양간인 감로당(甘露堂) 옆을 지난다.

     

     

     

      

    감로당(甘露堂) 안쪽 풍경...    공양간(식당)으로 식사를 위한 식탁과 의자 등이 보인다.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에는, 감로당(공양간) ~ 안심료 ~ 세심당으로 전각이 이어진다. .

     

     

     

     

    경내 오른쪽 전각 중에서 가장 안쪽인  들머리 오른쪽에 위치한 만하당 옆의 달마전(達磨殿)... 경내 가장 뒷편에 위치한 달마전은 사찰 직원들이 거처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잠시 틈을 이용해서 산길 위쪽에 있다는 부도전(浮屠田)에 다녀오기로 했다.  절집을 한 바퀴 돌아 산길로 접어든다.  

    달마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부도전으로 방향을 잡는다.

     



     

     

    산자락 두 개를 넘어가는 길은  걷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녹음은 짙어 사위를 휘감고,   산비둘기 구수한 울음소리가 동행을 자처한다. 

     

     

     

     

     

     

     

    소나무 사이로 난 길이 한산하다. 오순도순 얘기하며 걷기에 딱 좋다.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흙길을 따라 검은 숲 사이로 난 가르마 같은 길을 서서히 걸어갔다.  산은 높지는 않았으나 기세가 있었고,  숲은 깊지는 않았지만 아늑하고 정다웠다.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희미해지고, 오솔길 내내 드리웠던 녹음이 열리면 거기 부도암과 부도밭이 있다.

     

     

     

     

    경내에서 나와 15분 정도 걸었을까?   숲길의 시야가 환히 트인다.   달마산의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십오여 분이 채 되지 않아 갈래길이 나타났고,  길 왼편 위쪽의 부도암(浮屠庵) 옆으로 한 단 높게 쌓은 축대 위로 돌계단을 따라 오르는 아담한 부도전이 보였다.

     



     

     

    부도전을 보기 위해 발길을 돌리는데 부도암 수각 앞 공터에 작은 돌탑 같은 것이 하나 눈에 띈다.  무언가 하고 보니 옥암당 부도란다.   몸돌만 남아 있어 얼핏 보면 그냥 뜻 없는 돌무더기처럼 보이기 쉽다.  어쩌다 다른 부도들과 외따로 떨어져 이곳에서 홀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 그 모습이 자못 애처롭다

     

     

     

     

    부도전(浮屠田) 옆의  부도암(浮屠庵)

     

    부도암 아래 자연석 위에 자리잡은 비는 호남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비석 옥개석 용마루에 길게 누운 용,  내림마루의 용두, 옥개석 가운데의 옥개석 이동용도의 구멍이 이채로운 비이며,  이 비석이  창건설화가 기록된 사적비다. 

     

     

     

     

    부도전 입구에 있는 전각엔 부도암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러나 전각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부도암 앞 움푹 패인 곳에 서 있는 미황사 사적비이다.  

     

     

     

     

    사적비는 웬일인지 반쯤 땅속에 묻혀 있는 모양이다. 이유를 알아보니 이 사적비를 쓴 사람은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내고 후에 우의정까지 오른 민암 선생이라고 한다.

    선생의 글을 받아 비를 세우려던 때에 선생은 폐비 민씨의 복위와 관련된 갑술옥사로 제주도 대정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았고 따라서 중죄인이 된 선생의 이름을 숨기기 위해 이름이 안 보이도록 비를 반쯤 땅에 묻게 되었다고 한다.

    비는 자연석 기단 위에 올려져 있는데 글씨는 마모가 심해 읽기 힘든 상태이나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라고 한다.

       

     

     

     

    부도암 앞에 있는 미황사 사적비

     

    미황사사적비는 부도전 앞 오른쪽 축대 아래에 위치하며, 미황사의 창건연혁을 기록한 비로 전체높이 385cm, 비신높이 292cm, 넓이 129cm, 두께 33cm이다.

    조선 1692년(숙종 18) 병조판서를 지낸 민암(1634~1692)이 쓴 이 사적기는 미황사의 창건 설화의 내용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제작된 이 사적비는 본문을 새긴 비신(碑身)의 앞면과 음기를 새긴 뒷면은 잘 연마되어 있지만 양 측면은 거칠게 다듬어졌다.  높고 널찍한 비신의 상단에는 좌서로 ‘미황사비(美黃寺碑)’라 적었는데, 비문은 민암이 짓고 본문과 전서는 이우가 썼다.

     

    비개(碑蓋)는 팔작지붕형을 띠고 있는데,  등을 맞댄 두 마리 용이 용마루를 장식하고 있고 중앙에는 타원형의 홈을 팠다.   용의 주변은 도식적인 운문으로 가득 메워져 있어 용마루에 있는 한 쌍의 용이 마치 구름 위를 비상하는 듯 보인다.   이 사적비는 귀부 없이 자연암석 위에 세워져 있다

     

     

     

     

    '신라 경덕왕 8년(749) 한 척의 석선(石船)이 사자포구에 나타났는데, 의조화상이 제자 100여 명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에 오르니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金函) 속에는 불경과 불상, 탱화 등이 있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부처를 모실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의 땅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미’자(美字)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자(黃字)를 택한 것이라 한다.'

     

    비가 비극적 사연을 안고 탄생한 것에 비해 비문의 내용은 보편적인 불교의 북방 전래설과는 달리 바다를 통한 해로유입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조금더 산길을 걷다가 막 땀이 날 무렵 사람의 시선을 잡아매는 부도암 옆에 옹기종기, 무질서의 조화로움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부도군이 얕은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산중의 여름 뙤약볕을 쬐고 있다.

     

    미황사 부도암 우측으로 돌면 부도전이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부도들을 이렇게  한곳으로 모아놨다고 한다.

     


    올 겨울에 피워 낼 꽃봉오리를 품은 자태을 숨기고 있는 동백꽃,  키 작은 산죽의 소란스러움(?)에 멀리 바다마져  낙조를 감출 것 같은 느낌 지울 수 없더라!

     

     

    십오여 분이 채 되지 않아 갈래길이 나타났고,  비포장 넓은 산길을 따라 약간의 경사를 지닌 길을 따라 올라가니 왼편 위쪽의 부도암(浮屠庵) 옆으로 한 단 높게 쌓은 축대 위로 돌계단을 따라 오르는 아담한 남부도전이 보였다.

    이곳도 달마산 연봉과 동백림 숲 속에 온화하게 조성되어 있어 아늑하고 평화로우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분위기가 좋다.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부도 가운데 나를 신화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몇 기 있다.  부도에는 하늘로 머리를 둔 물고기와 발가락 여덟 개가 선명한 꽃게가 조각되어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미황사 대웅전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 새겨진 꽃게를 떠올릴 것이다.  왜 이런 바다생물이 조각되어 있을까? 

    답은 하나다. 불교의 남방전래설이다.

    땅끝에 닿은 배에 금합이 있었고, 그 금합을 열자 검은 소가 나왔다. 그 검은 소가 걸어가다 크게 울음을 울고 쓰러진 자리에 지은 절, 그게 미황사다.   창건설화는 그렇게 부처가 바다를 건너왔음을 보여주고, 그 상징으로 바다생물을 주춧돌에, 부도에 남긴 것이다.   부도밭에서 그 설화 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남부도밭이 기단 위에 담을 ㄷ자로 둘렀다.   아늑해 보인다.   부도에 이끼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세월의 더께가 배어난다.  그 부도에 석조물이 새겨져 있다.   얼핏 봐선 알아볼 수 없다. 여기서도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눈을 크게 떠야 보인다.

      

     

     

     

    절집의 부도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미황사 부도탑 

     

     

     

     

    산 너머 대둔사의 부도전이 유명하지만  어수선하여 이 고독한 듯 음혼한 기운을 흉내내지 못한다고 한다.

    울창한 숲에 싸여 30여기의 돌무덤들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미황사 부도전에 가보면 깊이 감추어진 미황사의 역사가 아직 꺼지지 않은 모닥불처럼 남아 있다.

     

    이곳에는 고만고만한 선사들의 부도와 비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거북,  게,  두꺼비,  새,  용,  연꽃 등 문양이 숨겨져 있어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름다운 영멸(永滅)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더는 미련도 거슬릴 것도 없는 영원한 적멸의 경지.  이곳에는 지위 고하도 없고,  너와 나의 구별도,  생각과 행위도 다 사라져 버린 자리다.

     

     

     

     

    남부도밭은 창건설화에 전하는 통교사 터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탑비 5기,   부도 21기,   부도 부재 1기,  총 27기가 모셔져 있는데,  연담 유일(蓮潭 有一) 스님의 부도를 비롯해서 벽하당(碧霞堂),  설봉당(雪峰堂),  정련당(井蓮堂),  미봉당(眉峰堂),  완해당(玩海堂),  정암당(晶岩堂),  송암당(松岩堂),  영월당(靈月堂, 1808),  오봉당(午峰堂, 1788), 송월당(松月堂),  백월당(白月堂, 1841),  죽암당(竹庵堂, 1821),  붕명당(鵬溟堂),  사봉당(師峰堂),  응화탑(應化塔),  혼허당(渾虛堂),  영허당(靈虛堂),  이봉당(?峰堂) 및 당호가 분명하지 않은 2기가 있다.

     

    이러한 남부도밭의 부도는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대략 5열로 정리되어 있는데,  낭암대사 부도가 그의 스승 송암당 부도보다 앞 열에 있고,  송월당부도가 그의 제자인 응화당 부도 보다 뒤에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보아 일관적이지는 않지만 대체로 뒷열의 부도가 연대가 올라가고 앞쪽으로 나올수록 점점 연대가 내려오는 것으로 추정 된다. 



     

      

    부도는 스님의 영골을 모신 승탑(僧塔)이다.

    부도전에는 후대까지 이름을 날린 큰스님의 거대하고 당당한 부도가 있는가 하면 그저 돌덩어리를 겨우 면한 작고 허름한 부도도 있다.  입적하신 후 부도의 크기가 다르다고 해서 한 평생에 걸친 수행의 깊이도 달랐을까?  그래서 옛날 부도들은 예술이나 문화적 가치 말고도 한 수행자의 인간적인 고통과 날선 삶을 오롯이 새겨 넣은 뜨거운 혼불이 들어 있는 것이다.

     

     

     

     

     

     

     

    동물문양 석조물은 부도밭에 더 많다.   절구를 찧고 있는 토끼,  한쪽 다리로 선 오리도 있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사슴과 왕방울 눈에 매부리코를 한 귀신상도 있다. 다분히 해학적이다.

     

     

     

    송월당(松月堂) 부도

     

    절에 깃든 천년의 시간을 거스르듯 이끼 낀 탑들은 주로 사바의 세상을 구제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사명대사와 지내던 묘향산에서 대흥사로 옮겨오셨던 스님들의 법맥을 이은 후예들의 것이라 한다.  하지만 여느 탑비나 부도들과 다르게 거기에 새겨진 문양들이 지극히 토속적인 이 지역 연안에서 간취한 것들이고,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윽하고 신비롭기 그지없다.

      

     

     

     

    오봉당(午峰堂, 1788) 부도 

     

     

     

     

    사봉당(師峰堂) 부도 

     

     

     

     

    미봉당(眉峰堂) 부도 

      

     

     

     

    정련당 (井蓮堂)  부도

     

     

     

     

    벽하당(碧霞堂)  부도

     

    뭐라고 표현을 못하는 무엇이 온몸으로 전율을 타고 확 올라온다.  아.... 정말 감동이다.  부도탑 하나하나... 말이 필요없다.

    부도탑 하나하나 어느하나 놓치지 않고 눈길을 머물게 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숨막히게 감동으로 전해져오는 부도탑은 처음 경험이다.

       

     

     

     

    학인지, 몰오리인지...   공작같아 보이기도 하다....

     

     

     

     

     

     

     

     

    눈이 왕방울 만한 귀여운(?) 귀면

     

     

     

     

    물고기를 문 가제

     

      

     

     

     

     

     

    공작

     

     

     

     

    물고기,  게,  문어, 거북이 등 다른 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이는 이 지방에서 민간신앙과 불교가 서로 깊이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산. 오리. 꽃

     

     

     

     


     

     

      

    비석 받침돌 모서리에 새겨진 꽃과 용두

     

     

     


     

     

     

     

    꽃과 귀면

     


     

     

    雪峯堂 승탑

     

     

     

      

    미황사 부도전은 동물원이다. 부도마다 갖가지 재미있는 문양의 동물들이 조각돼 있다.  근엄하신 큰 스님의 부도에 새겨진 동물치고는 점잖지 못하고 방정맞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러한 해학미가 있기에 미황사 부도전은 친구 같다.  그러한 소박미가 미황사를 더욱 미황사답게 만들고 민초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도룡.  꽃.  거북.

     

     

     

     

    도룡 

     

     

     

     

    게와 물고기

     

    미황사는 게와 거북이를 참 좋아하나 보다. 대웅보전 주춧돌에도 게와 거북이가 조각돼 있지만 여러 부도에도 빠짐없이 게와 거북이가 등장한다. 거북이는 신성한 동물로 취급받고 있지만 흔하디흔한 게는 그렇지 못하다. 또한 거북이는 느림의 대명사고 게는 빠름의 대명사일 만큼 서로 닮은 데라고는 없다. 그런데도 두 동물은 함께 등장한다. 대조를 통한 상생의 자연법칙을 중생에게 깨우치기 위함인지 모르지만....

     

     

     

      

    오리

     

     

     

      

    귀면

     

    부도에는 귀신상도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여러 귀신상도 무섭기 보단 너무 해학적이다.   문어모양인 귀신상은 왕방울 눈에 주먹코를 하고 있다.  남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승의 모습 그대로이다.  남도 장승의 특징은 뚝 튀어나온 왕방울 눈에 헤 벌이진 입,   듬성듬성한 이빨,   주먹코가 대부분이다.

     

     

     


     

     

     

      

    부도전의 문비모양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금방이라도 스님이 나오실 것 같은 부도

     

     

     

     


     

     

     

    雪峯堂 승탑

      

     

     

     

    설봉당(雪峯堂) 탑비

     

    비림 중 유독 큰 탑신을 떠받치고 있는 한 거북은 예의 그 천연덕스러운 웃음을 만면에 게걸스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거북은 숲을 지나 대웅전 기둥의 주춧돌에도 올랐다.

      

     

     


     

     

     

     

    영월당(靈月堂, 1808) 부도 

     

    행여 만지면 닳을까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가서 함께가 되어본다...

      

     

     

     

    이봉당 부도

     

     

     

      

    붕명당(鵬溟堂) 부도 

     

     

     

     

    영허당(靈虛堂) 부도

     

     

     

     

    혼허당(渾虛堂) 부도

     

     

     

     

    응화탑(應化塔)

     

     

     

     

    백월당(白月堂, 1841) 부도 

     

    미황사의 부도에는 천진난만한 물고기와 거북이,  게그림에서 흡사 이중섭의 '서귀포 피난시절'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일반적으로 무덤은 쓸쓸함이나 차가움을 연상하게 되지만  절집의 부도는 포근함이 감돈다.   특히 미황사 부도는 도식화된 직선과 곡선으로부터 탈피한 모습으로 한국적 석조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세월의 손길로 닳아진 매끄러운 곡선이야 어디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서툰 석수(石手)장이가 만든 것처럼 자연스럽게 조성된 균형미는 차라리 말과 글이 끊어진 경지라고 할 수 있다.  미황사 부도는 소박하지만 세련미가 갖추어져 있다.

     

      

     

      

    미황사 부도전. 여기저기 동물 문양 석조물이 숨어있는 곳이다.

    미황사의 부도는 이 지역이 바다에 가까운 영향 때문인지 부도의 기단부 또는 전면에 물고기, 게, 문어, 거북이 등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 외에도 학, 물오리는 물론 유교 민간신앙의 소재도 등장하고 있다.

     


     


     당초문양

     

    그래서 재미를 더한다. 예상을 뒤엎는 곳에서 만나는 해학과 재치가 정겹다.  세련미도 찾아볼 수 없다.   남도의 민초들을 닮았다고 얘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석조물을 새겼던 장인들도 이렇게 해놓고 흡족한 웃음을 짓지 않았을까?

     

    미황사 부도전은 그야말로 동물원이다. 미황사 부도에는 왜 이리 재미있는 동물문양이 많이 있을까?

     

    미황사 창건설화에서 나타나듯 바다를 통해 인도 불교가 전래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에서부터 미황사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 등이 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조선 초기 부도는 엄격한 틀을 유지했고 장식도 장엄미가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들어서면 장엄미보다는 부도 제작의 기본 틀이 깨지고 장식도 해학적인 동물문양 등이 많이 등장한다.   미황사 부도는 조선후기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미황사 부도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은 수 백 년 동안 사라지지 않는 생명체로 살게 될 것이다.  또한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후에도 이 문양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보일 듯 말듯 한 곳에,  꼭 숨바꼭질하듯 찾아야하는 곳에 새겨져 있는 문양들,  모양은 못생겼고 웃겨도 또한 하찮은 것이라고 해도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너무 평범한 우리 중생을,   나의 모습을 본 듯한 데서 오는 긴밀한 유대감은 아닐까?.

     

     

     

     

    서부도밭 가는길...

    부도암 그 아래 길을 5m정도 나오면 갈림길이 나오고 그기서 약간만 눈을 좌측으로 돌려보면 6기의 부도가 있는 작은 부도밭이 나온다.

    표지기가 없어 자칫 놓치기쉬운 서부도밭.  간절히 만나고 싶어 했던 인연...

    님을 만나러 가는 그길은 부드러웠고,  포근했고,  아늑하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문학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孤鴨堂(고압당) 선사의 부도와 나란히 선몇기의 부도를 만난다.   특히 고압당 부도는 옥개석에 수막새,  암막새는 물론 중대석의 사자,  물고기,  거북  ,게,  다람쥐, 옥개석의 용두 등 화려함의 극치이다.

     

       

     

     

    서 부도군 (6구)

     

    부도전 옆 산책로를 따라 다시 미황사로 길을 잡는데 발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그만 부도전이 또 모습을 드러낸다. 방금 본 것에 비해 여섯 기로 단출한 모습이 서부도전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 부도전은 사방을 낮게 담이 에워싸고 있어 마치 제주도의 산담을 연상시킨다.  

     

    서부도밭은 남부도밭에서 서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2~3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들어가는 입구부터 영파당(靈坡堂),   창암당(蒼岩堂),   고압당(孤鴨堂, 18세기중엽),   감파당(減坡堂, 1768),   천연당(天然堂),   은곡당(銀谷堂, 19세기후반)의 부도가 있다.

     

    입적해 적멸의 보궁에 들어선 선사들의 부도에 올라온 '바다 것'들의 목록은 이렇다.

    거북,  십장생의 하나다.   게,  그 건너 어불도에서 태어난 한 시인이 그의 눈 속에 연꽃이 있다고 했던 뿌리를 드러낸 연꽃,   총총걸음으로 걷는 새,  앙징스럽게 아래쪽을 살펴보는 원숭이.  달나라에선 듯 방아를 찧는 옥토끼.  귀여운 황소 같은 도깨비.  사슴.  지느러미가 큰 물고기…

     

      

     

     

    은곡당 (銀谷堂, 19세기후반) 부도

     

    통일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부도가 매우 화려하고 균제(均齊)된 아름다운 美感을 반영 하고 있는데,

    조선시대의 부도는 質朴하고 토속화된 정감 있는 미감을 반영하고 있다.

    미황사의 부도는 이 지역이 바다에 가까운 영향 때문인지 부도와 비에는 연꽃, 학, 오리, 용, 물고기, 게,  문어, 거북이, 청솔모,  다람쥐, 절구방아 찧는 토끼, 귀면, 길상초, 기하학문양 등의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국가로 부터 비호와 지원을 받지 못하여 민중의 삶 속으로 투영된 계기가 되었다고 볼수 있다.

     

     

     

     

    천연당(天然堂) 부도  

     

     

     

     

      고압당(孤鴨堂, 18세기중엽) 부도

     

    절구를 찧고 있는 토끼가 보인다.   한쪽 다리로 선 오리도 있다.   갓 태어난 아기 사슴도 새겨져 있다.  문어를 닮은 귀신과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용도 있다.  하나같이 해학적이다.  소박한 절집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선다.

     

    아래부도전에 조각된 소재들은 위 부도전에 새겨진 부도보다 더 선명하고 도드라지고 귀엽다.

     

      

     

     

    젤로 많이 도드라지게 양각화된 도룡.  정말 신기하고 신비스럽다.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 달나라에 있는 토끼가 미황사에 잠시 내려왔을까?  그런데 미황사 부도에 새겨진 토끼는 우리가 상상했던 날렵하고 어여쁜 토끼는 분명 아니다.  통통하고 배도 불록 나온 못생긴 토끼가 열심히 방아를 찧는 모양이 웃음을 짓게 한다. 어쩜 그 촌스러움이 친근감을 더 갖게 하는지 모르겠다. 

     

     

     

     

     

     

     

     

    거북

     

     

     

     

     

     

     

     

     

     

     

     

    도룡

     

     

     

     

    비늘이 큰 물고기

     

     

     

     

       창암당(蒼岩堂) 부도

     

     

     

     

    영파당(靈坡堂) 부도

     

    풍경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서부도의 하나는 풍화에 약한 돌을 쓴 때문인지 거기 새긴 문양은 물론 주인공의 이름조차 말끔히 지워지고 비바람에 씻긴 돌의 뼈줄기만을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토속적인 조각의 등장은 일반적으로 불교가 민간신앙으로 발전하면서 민중과 어울리는 문화를 형성해 나감에 있어 주변 조형성을 습합한 결과로 이해되고 있다. 즉 바다 생물의 표현은 어업이라는 이 지역 주민들의 생업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 탓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비림(碑林)의 정경.   '장엄의 아름다움'이란 말은 가히 이런 곳에 적어도 좋으리라. ....

     

    아......  난 왜 순간 이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조용한 곳에 그것도 위 남부도전 보다는 발길이 덜 탔을 아래 부도전...

    팔을 베개삼아 부도전에 누워서 눈을 감고 쉬어가고 싶은 부도전...

    이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부도전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조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종말이다.  불과 오래지 않아 찾아올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해 두어야 한다.   ‘그 날’은 결코 예고되지 않는다.  어느 날 불시에 찾아올 때 마치 옷을 갈아입듯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사(先師) 스님들께서 부도밭에 암자를 지은 뜻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부도밭을 모두 둘러보고 떠나야할 시간...

    새삼 옛님의 숨결을 느끼며 그시대에 살았을 조상님들을 떠올려 본다.  부처님께 많은 위안과 의존을 하면서 보냈을 그 시대...  숨막히게 아름답고 섬세한 부도탑비를 보면서..


     

     

     

    누가 그랬던가?

    부도밭을 내려올 때는 돌아보지 말라고...  헌데  자꾸만 고개가 돌려지니 애초에 문학적 감성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사람인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목포 출신의 김지하의 '애린'은 아니더라도,  이곳 출신 김남주,  고정희,  황지우의 시 하나 기억해내지 못함을 자책하면서 내려온다..

     

     

     

     

    천년 숲길을 따라 미황사로 내려 간다.  

     

     

     

     

     

     

     

    오랬동안 가슴 두근거림으로 남을 미황사 부도밭을 내려오며 한참 동안은  미황사에 대한 그리움을 참을 수 있을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금은 부도전까지 길이 넓혀져 예전 맛을 다 잃어버려 마음속 보물로만 남아 아쉽지만,   미황사 부도밭의 아름다운 동행과 함께 치유되고 갈무리 하는 8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15분 정도를 다시 내려오니 기다리고 있는 미황사 !!!

     

     

     


    다시 내려온 미황사 경내...   아쉬워 한번 더 둘러보고...

      

     

     

     

     

     

    경내 마당에서 자하루(紫霞樓) 누문으로 내려간다.

    자하루는 2001년에 신축되었으며,  경내쪽으로는 만세루(萬歲樓)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여름철 어린이 대상 한문학당을 열 때 교실로도 쓰이고,   법회 때는 강당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자하루를 나서며...

     

     

     

     

     

     

     

     

     

     

    전통찻집 '달마선다원'과 천왕문도 지난다.

     

      

     

     

     

     

     

     

     

     

     

     

     

     

     

     

    일주문을 향해 내려 간다. 

    울창한 숲 사이로 계단길이 이어진다.  동백꽃이 필 무렵 오면 볼거리가 더 많은 곳인데... 

    동백과 후박나무 등 난대성 상록수림의 짙은 그늘이 더해져 미황사 계단길은 아름다운 정원이 된다.

    길섶으로 동백나무와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어우러져 있다.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이 새빨간 자태를 뽐내었을 계절을 떠 올려 본다.   걸음을 뗄 때마다 마음이 정갈해지는 것 같다.

     

     

     

     

     

     

    자하루를 나서 산길을 걸으니.....

    귀에 들려오는 휘파람새,  박새,  곤즐박이들의 상쾌한 노래소리.
    눈에 들어오는 온갓 예쁜 녹색잎들, 그리고 나무에 돋아난 연초록의 새움들.
    코에 살며시 다가오는 숲의 내음들.

    살갗을 스치는 상쾌한 바람...   살아 있음에 다시금 감사 한다...

     

    나는 이 절만 오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바다를 정원처럼 끌어다 지은 절이라니....

    절의 배경은 또 얼마나 황홀한가?   미황사 대웅전 너머로 창검처럼 도열한 바위병풍의 자태는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한 폭의 산수화 그 자체다.  여기에 대웅전은 들보가 훤히 보이도록 팔작지붕을 하늘로 활짝 열었으니,  화려한 산세에 조화를 이루도록 건물을 짓는 조상들의 슬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달마산 산자락 위에 낮에 마실 나온 하얀 반달이 달마산 산문을 나서는 답사객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지만,

    오래전 어란포을 떠나 궁구치러 가셨던 스님들이 하루빨리 돌아오시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영원히 못 오실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이루지 못한 꿈의 세계는 설화에 촘촘히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금인,   불경과 돌을 가득 싣고 온 배,  검은 소,  그 소가 가던 길을 멈춘 곳….

    사람들은 현세의 못다 이룬 소원을 이야기 속에서 이뤘다.  다른 어디와도 다른 이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현세의 꿈과 미래의 복락을 엮어갈 실마리를 잡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거북은 부도숲을 지나,  대웅전 기둥을 타고 올라,  산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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