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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4대 지장보살 성지, 철원의 심원사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리 72)사찰여행/강원도 2015. 7. 25. 14:27
우리나라 4대 지장보살 성지, 철원의 심원사
2015. 7. 25.
2015. 7. 23.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 에서 108순례로 42명이 포항에서는 까마득히 먼곳 강원도 철원의 도피안사와 심원사로 나들이 기도를 출발한다.
05:00 출발하여 우리에게 피안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한 도피안사를 10:00에 도착,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도피안사를 순례 후 도피안사를 뒤로하고 도피안사와 가까이 있는 철원의 심원사로 향한다...
보개산 심원사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로리 72번지에 소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심원사는 건너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는 한적한 마을에 위치 하고 있다. 보통 강원도 철원하면 깊은 산속을 연상 할 수 있으나 의외로 마을 속의 야산 아래 자리 잡고 있었고 교통편의 주차 시설이 잘 같추어져 불편함이 없었다.
심원사 입구 논에는 백련으로 가득했다...
647년(고구려 보장왕 6) 조사 영원(靈源)이 보개산의 영원사(靈源寺), 법화사(法華寺) 등과 함께 창건한 뒤 흥림사라고 했다. 그 뒤 720년(신라 성덕왕 19) 사냥꾼 이순석(李順碩)이 지장보살의 감화를 입어 석대암(石臺庵)을 창건했다. 859년(헌안왕 3) 통효(通曉) 국사 범일(梵日)이 중창했다. 1393년(조선 태조 2) 화재로 소실된 것을 1396년 무학 자초(無學 自超)가 중창하고 원래의 산 이름인 영주산(靈珠山)을 보개산으로, 절 이름을 심원사로 바꿨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다시 소실된 것을 1595년(선조 28) 인숭(印崇), 정인(正印) 등이 중건했다. 그 뒤 많은 큰스님들의 배출과 함께 몇 개의 탑과 천불전, 해장전(海藏殿), 천태각(天太閣), 청향각(淸香閣), 산영루(山影樓) 등 250여 칸의 건물과 1,702위의 불상을 봉안하여 큰 절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907년 10월 이 절을 중심으로 항쟁하던 의병 300명과 일본군과의 공방전으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었다. 이에 1909년 주지 유연수(劉蓮수)가 중창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다시 폐허화하고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자, 1955년 주지 김상기(金相基)가 연천군 신서면 내산리의 옛터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창했다. 1970년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날 강원도 철원군 보개산 심원사에 묘선이라는 젊은 스님이 있었다. 강원 공부를 마친 지 얼마 안되는 스님은 매사에 의욕적이었다. 어느 날, 노스님을 모시고 산책을 하던 묘선스님은 노스님에게 말했다. 『스님, 아무래도 절이 너무 낡아 보수를 해야 되겠습니다.』
『알고 있다. 그러나 살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디 엄두를 내겠느냐.』
『스님, 오늘부터 제가 백일기도를 드려 불사를 하겠습니다.』
묘선 스님은 그날로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젊은 스님의 기도는 간곡했다.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 밤. 『묘선아, 네 기도가 그토록 간절하고 불심이 장하니 반드시 시주가 나타나 절 중창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내일 아침 일찍 화주를 구하러 나가도록 해라.
맨 처음 만나는 사람이 심원사 중창불사의 시주가 될 것이니라.』
꿈에 나타나신 부처님은 이렇게 일러주셨다. 잠에서 깬 묘선은 거뜬한 마음으로 길 떠날 채비를 차리곤 노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소승 화주길에 오르겠습니다.』『오냐, 잘 다녀오너라.』
묘선 스님이 막 산문 밖을 나서는데 왠 나무꾼 하나가 아침 일찍부터 나무를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 꿈 생각을 한 묘선 스님은 나무꾼을 자세히 보았다. 아랫마을에 사는 머슴 박씨였다. 『머슴 박씨가 우리 절 중창 불사 시주는 될 수는 없을 텐데… 그냥 지나칠까.』
묘선 스님은 잠시 망설였다. 『아냐,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인데….』
묘선 스님은 박씨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일찍 나오셨습니다.』
『아이구, 심원사 스님이시군요. 어디 먼길 떠나십니까?』
묘선 스님은 일손을 멈추고 공손히 인사하는 박씨에게 간밤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주가 되겠느냐고 물었다. 박씨는 한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50평생 못 간 장가, 이제 가서 뭘하나. 차라리 그 동안 머슴살이로 모은 재산 절 짓는데 보시하여 부처님께 공덕이나 지어야지.」 마음을 결정한 박씨는 기꺼운 마음으로 스님께 대답했다.
『스님께서 제게 시주가 되라는 데는 큰 뜻이 있을 것입니다. 스님 말씀에 따라 40년간 모은 저의 전 재산을 불사기금으로 시주하겠습니다.』
『참으로 고맙소. 이 인연공덕으로 다음 생(生)에 좋은 인연을 받을 것입니다.』
박씨의 시주로 심원사 불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머슴 박씨가 시주를 한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만 자리에 몸져 눕고 말았다.
그러나 돈을 모두 절에 시주한 박씨는 약도 쓸 수가 없었다. 주인집에서는 머슴이 일을 못하고 눕게 되자 공밥을 먹일 수 없다고 박씨를 절로 보냈다. 절에서는 박씨를 위해 극진히 간병하면서 정성껏 기도를 올렸으니 차도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병은 악화됐고, 끝내 박씨는 죽고 말았다.
마을에서는 묘선 스님이 순진한 머슴 박씨를 속여 결국은 죽게 했다고 이웃동네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묘선 스님은 더이상 심원사에 머물 수가 없었다. 절을 떠나기로 결심한 스님은 새벽예불을 올리러 법당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촛불 속에 부처님을 바라보는 묘선 스님의 눈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가피는 커녕 시주자를 죽게 한 부처님」이란 생각을 갖게 된 묘선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헛간으로 발길을 옮겼다. 스님의 손에는 어느새 도끼가 들려 있었다.
스님은 법당으로 다시 들어가 부처님 이마를 도끼로 내리치고는 황망히 절을 빠져 나갔다.
그 뒤 전국을 만행하는 묘선스님의 발걸음은 늘 무겁기만 했다. 심원사 부처님 이마에 박힌 도끼가 빠지지 않는다는 소문은 전국에 퍼져 있었다. 그렇게 30년이 지난 어느 날. 묘선스님은 심원사 부처님께 용서를 빌고 자신이 그 도끼를 뽑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심원사로 갔다.
절은 30년 전 불사가 중단된 모습 그대로였고 부처님 이마엔 도끼가 박혀 있었다.
묘선 스님은 참회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팠다. 마침 그 무렵 새로 부임한 젊은 사또는 돈독한
불자로서 심원사 부처님 이마의 도끼를 손수 뽑겠다고 절에 와 있었다.
법당에 들어선 사또는 삼배를 올린 후 부처님 이마의 도끼를 뽑았다. 도끼는 쉽게 빠졌다.
그 도끼를 들여다본 사또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화주 시주 상봉」
도끼에는 이렇게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모습을 법당 문밖에서 바라보고 있던 묘선 스님은 그때 비로소 부처님이 머슴 박씨를 죽게 한 뜻을 깨달았다. 스님은 사또 앞으로 나아갔다.
『소승이 바로 30년 전 이 도끼로 부처님 이마를 찍은 사람입니다. 사또님의 전생은 이 절에 시주하신 머슴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시주를 구한 화주승은 바로 저입니다. 화주승과 시주가 인연이 있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시주 화주 상봉」이란 바로 오늘의 인연을 부처님께서 미리 계시하신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묘선 스님의 설명을 들은 사또는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간 일어나 스님에게 삼배를 올렸다. 『스님, 이제 멀리 떠나지 마십시오.
부처님 뜻으로 인연 맺어 스님과 제가 다시 만났으니 심원사 불사를 완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필요한 돈은 제가 시주하겠습니다.』 심원사 중창불사는 30년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묘선스님은
심원사를 중창한 후 그 절에 오래 머물면서 큰스님이 되어 많은 신도를 교화했다고 한다.......
현재의 절집보다는 영험한 설화들이 전해 내려 오는 절집이다. ‘생지장보살도량’으로 알려진 심원사는 유명한 설화들이 머무는 절집으로 전국 각지의 불자들이 줄을 잇고 찾아 오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도금 되어 있는 장엄한 범종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
사물인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모신 심원사의 범종각은 장엄했다..
경내 너른 마당의 정면에 누각형태의 목조팔작지붕이 있는데 1층은 종무소이고, 2층은 기도장소인 보제루이다.
1층의 종무소와 차방
2층은 기도장소인 보제루이다.
보제루 내부 이다..
명주전에 바라 본 보제루
보제루를 지나 명주전 앞에 선다. 조금은 의아한 구조를 가진 절집이다.
전각은 대부분 남향을 하고 서 있다. 명주전이 자리하고 그 좌측과 요사, 우측으로 삼성각과 신축불사중인 신축 극락보전이 자리한다. 그리고 앞으로 대웅전이 ㄱ자로 꺽어 서향하고 있고 보제루 옆의 요사가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명주전은 심원사의 주법당으로 2003년 새롭게 새워졌다. 정면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기와를 올려 안정감과 함께 위엄을 보인다.
정면에는 옛건물 ‘퇴경당 권상로’의 글씨를 모각한 주련이 걸려 있다.
1단의 가구식 기단에 중앙 어칸의 계단석을 두었다.
명주전 꽃살문
우물천정에 우물마루를 가설하고 ㄷ자형의 불단을 조성하였고 중앙불단에는 심원사의 주불인 ‘석조지장보살’과 지장탱을 봉안하였다.
심원사 명주전 내부의 석조 지장보살좌상과 후불탱화
심원사의 본당인 생지장보살님이 계시는 명주전이다.
명주란 지장보살의 손에 들려진 보주를 말한다.
명주는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해주는 보배 구슬이며, 누구에게나 유익함을 주는 염원하는 일이 무엇이나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구슬을 말한다.
높이 90cm, 폭 70cm의 소형불상이지만 심원사의 주불로서 영험 높은 보살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작품으로 지장보살은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있으며 두눈을은 내려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석상으로 완편 어깨가 검게 보이는데 이는 ‘황금멧돼지와 사냥꾼’ 이라는 창건 설화속의 화살을 맞은 흔적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용모와 형식에 비해 가늘고 긴 모습이지만 삼각의 안정감을 갖고 있다. 특이하게도 석상에 도금을 하고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칠이 벗겨지고 말아 개금이나 장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철원 심원사 생지장보살님은 우리 불자님들이 어렵고 힘들 때 언제나 삶의 이정표가 되어 함께 해 주었고, 불자님들께서 소원 하시는 모든 일들을 성취해 주시는 영험한 도량으로 선망조상님들이 극락왕생하실 수 있도록 조상령천도재를 봄맞이, 백중맞이, 가을맞이 천도재를 년간 3회 실시하고 있으며 유산아, 수자령(태중고혼) 영가 특별천도제를 1년에 봄, 가을 두 번 실시하고 있다.
특히 수자령 영가특별천도제는 유산아, 수자령(태중고혼)의 불명을 한사람, 한사람 지어서 천도공양 한다고 한다.
그 유명하신 심원사의 명주전의 생지장보살님 이다.
석조보살 좌상으로 높이는 90cm로 전체는 청옥색을 띠며 단아한 모습이고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계신다.
석조 지장보살 좌상은 살생을 일삼던 사냥꾼들을 구원하기 위해 현신한 지장보살님이다.
또한 석조좌대 아래에 심원사 설화에 등장하는 금빛 멧돼지가 석조물로 조성되어 지장보살님의 좌우를 협시하고 있다.
심원사 생 지장보살의 유래
1300여 년 전 사냥꾼 이순석, 순득 형제가 한 마리의 커다란 멧돼지를 발견하여 활로 쏘았는데 금빛 멧돼지는 붉은 피를 흘리면서 달아났고 그 핏자국을 따라가니 환희봉 쪽이었다..
형제가 그 흔적을 추적하여 멈춘 곳에 멧돼지는 보이지 않고 현재 철원 심원사에 모셔져 있는 지장보살님 상이 있었는데 석상은 우물 가운데서 상반신만 나와 있고 하반신은 물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좌측 어깨 중앙에 순석 현제가 쏜 화살이 꽂혀 있는 지라 두 사람은 크게 놀라 석상의 팔에서 화살을 뽑으려 하나 화살은 뽑히지 않고 석상은 태산과 같은 무게로 움직이지 않으므로 형제는 놀라서 선채 맹세하기를 '대성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소 용서해주십시오. 우리를 속세의 죄업에서 구제해주시려고 몸을 나투신 것임을 알겠나이다. 내일 우물곁에 있는 돌 위에 나와 주시면 저희들은 뜻에 따라 출가하겠나이다.' 하고 서원한 후 다음날 그곳에 와보니 석상이 돌 위에 나와 있는 고로 출가하여 석상이 나투신 옆에 암자를 건설하니 석대암 이다.
현재 철원 심원사에 명주전 모셔진 생 지장보살상은 그 때 멧돼지로 나투신 지장보살이며 옛부터 생 지장보살 전에 열심히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지는 전설이 있어 지금도 많은 불자들이 철야 정진한다.
석조지장보살 좌우로 ‘시왕각부탱’이 걸려 있다.
불간의 위로 亞자형의 중층 닫집을 장엄하였다.
원래 지장보살님은 경기도 연천의 심원사에 계셨는데 전쟁중 잠시 철원 심원사로 피신 가셨다가 현재까지 그곳에서 계신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부처님 사이의 부처님이 안계신 시대에 육도 (천상,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 의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이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지옥에 들어가 죄 지은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제, 교화하는 지옥세계의 구원자로서 극락으로 인도한다.
불단을 보며 우측으로 신중탱이 걸리고 ...
불단을 보며 좌측으로 신중탱 맞은편으로는 영가천도를 위한 영단이 자리한다.
측면에서 바라본 명주전
명주전의 외부 벽화
명주전 편액 글씨
이편액은 1962년 하안거가 끝나는 7월경에 퇴경 권상로(1879~1965) 스님께서 쓰신 것이다.
권상로 스님은 1879~1965 경북문경에서 태어나 1896년 문경 대승사 서진 대선사를 은사로 득도하셨다.
스님은 김룡사 불교전문강원을 졸업하셨고, 경력으로는 원종 종무 편집부장, 문경 대승사 주지, 조선불교 월보사 사장, 중앙불교 전문학교 교수, 불교 조계종 원로회 원장 , 동국대학교 초대 총장 등을 역임 하셨던 현대불교사의 큰 스님이시며, 조선 불교사를 펴낸 위대한 불교 학자이시다.
2004년 새롭게 보수하여 지어진 목조 건물로 정면2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이다. 좌우 각 1칸씩을 방으로 만들었으니 실제 법당은 3칸이다.
중앙불단위에 공간을 만들어 석조로 제작된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삼존불 (본존불은 석가모니불, 문수, 지장보살이 좌우 협시로 모셔져 있다.)
불단 아래에는 코끼리 두마리가 좌우에서 부처님을 옹호한다.
대웅전 신중단
안에서 본 대웅전 문살
대웅전 계단 아래의 아귀발우가 이렇게 변모했다...
대웅전 외부 벽화
대웅전 뒤편에 있는 심원사 소전대
재의식을 치를 때 사용하는 소전대
대웅전과 나란히 서향을 하고 있는 불사중인 극락보전
심원사 삼성각은 정면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근래에 신축하였다.
건물이 들어서기 이전의 옛 대웅전에 봉안하던 칠성탱, 산신탱을 옮겨 봉안하고 있다.
좌측의 산신탱
중앙의 칠성탱
우측의 독성탱
삼성각의 내부 벽화
처사들이 묵는 요사가 보제루 우측으로 길게 누워 있다...
처사들이 묵는 요사 옆의 쓰레기를 소각하는 소대
공양간의 전경 - 공양간과 한쪽에는 특이하게 찜질방으로 꾸며져 있다.
근대 경학연구의 중심도량인 화산경원은 1935년 백일기도 중에 지장보살의 현현을 목격한 독립운동가 한규설(韓圭卨)의 부인 박선심화 보살과 그녀의 동생 박대선화 보살의 희사로 설립된 근대 불교교육 연구원이며 오늘날 큰스님 중 이 화산경원 출신이 많아 당시 화산경원의 위상을 입증해주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그 명맥만을 유지한 채 신도들의 요사 및 공양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보제루가 건립되기 이전 대형법회 때 설법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화산경원(華山經院)이 있었는데, 이는 주지 이춘산(李春山)이 불교 연구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건립한 것이었으나 2층은 현재 승려들의 수도도량으로 이용되고 있다.
1층은 공양간과 찜질방이고 2층은 스님들 수행 공간 이다.
심원사의 약수
약수에서 본 범종각
보재루를 나간다.
심원사는 우리나라 제일의 지장기도도량 본존으로 알려진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그 가피와 영험을 얻고자 하는 수많은 불자들이 오늘도 줄을 잇고 있는 곳이다.
황금멧돼지와 사냥꾼ㆍ 앉은뱅이 이야기ㆍ 뱀과 까마귀의 인과 등 수많은 설화를 간직한 지장보살의 이야기는 심원사 지장의 영험과 그 가피의 영이(靈異)함을 보여준다.
황금멧돼지로 화하여 사냥꾼 형제를 살생의 죄업에서 벗어나 출가하게 한 창건설화, 장님과 앉은뱅이의 지극한 대종불사(大鐘佛事) 시주에 감응하여 그들에게 눈과 다리를 줌으로써 견불령(見佛嶺)이라는 고개와 대광리(大光里)라는 마을 이름을 남기게 한 설화, 전 재산을 사찰불사에 내놓은 머슴 박씨를 사또로 환생하게 한 설화 등 심원사 지장보살과 부처님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영험설화가 전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시대인 647년(진덕여왕 원년)에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처음 세운 후 광복 전까지 대가람의 위용을 자랑하며 중부 내륙의 불교성지로 널리 알려졌던 심원사.
그곳의 불단에서 자비의 미소로 중생을 내려다보고 있는 지장보살은 개금(改金)이나 장식을 거부하며 도금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칠이 벗겨져 석불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다.
심원사의 당우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
보제루와
마당 한켠에 길게 누운 처사들이 묵는 요사도 뒤로하고...
포항에서 좀처럼 오기 쉽지 않은 철원의 심원사를 나선다..
현재 불교TV에서 지장경을 강의하시는 심원사 정현 주지스님은 출타중이시라 친견 못한채 ....
연밭을 지나니
사찰 앞 논에서 철원의 오대쌀로 조생종으로 유명한 벼가 이삭을 피우고 있다.
논사이의 마을길을 지나고 보면 높지 않은 야산에 세워진 누각이 눈에 띄이는 접근하기 편리한 평지형 가람 영험한 절집 심원사를 나와 또 긴 시간 5시간을 달려 포항으로 향한다.
오늘도 함께한 도반님들.........
한해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절반 넘은 7월의 하순 입니다.
어느 철학자는 열살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느끼지만. 쉰살 중년은 50분의 1로 느낀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청춘들처럼 새로움이 가득하다면 남은 절반의 시간도 두배, 세배의 시간이 되겠지요....
항상 고맙고 감사한 분, 부처님과 함께하는 도반님들 !!
지리한 장마 시작과 그 끝에 오는 더위가 건강을 염려하게 하는 계절지만 열심히 움직이고 열심히 휴식하시면서 이 계절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달 순례때도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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