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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활산성 (경북 경주시 보문동 56 )여행방/경상도 2015. 7. 9. 12:01
명활산성 (사적 제47호)
2015. 7. 9.
2015. 7. 6. 오늘도 경주 문화재 탐방은 계속된다...
살아있어 숨소리에 감사하며 커다란 머그잔에 담긴 커피 향처럼 그 향기로운 아침이 행복하다
오늘은 보문지구를 중심으로 탐방할까 한다..
순례할 문화재는 경주 성동동 황오동 삼층석탑, 동천동의 헌덕왕릉을 보고 구황동의 황복사지 삼층석터탑, 보문동의 진평왕릉과 설총묘 , 보문사지 당간지주와 명활산성,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을 보고 천북으로 넘어가며 손곡동의 종오정과 만송정을 두루 돌아볼 예정이다.....
오늘 여섯번째 일정으로 보문들녁 대부분이 보문사지 터였을것으로 여겨지는들판에 보문사지 지금은 그 영화를 대변 할 뿐인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보물 910호)와 본당터 (사적 390호), 보문사지 석조(보물 64호)와 보문사지 당간지주(보물 제123호) 를 충분히 만나고 다음 여행지인 명활산성으로 향한다...
보문호를 돌면서 오른쪽으로 경주시 보문동 56번지에 에 위치한 명활산성
명활산성은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지만 405년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하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는 성이다.
산성의 둘레는 약 6㎞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을 살펴보면 크게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래의 2단은 비스듬하게 경사를 주고 반가공한 석재를 쌓아 외부를 조성하였다. 3단 중 가장 상부는 흙으로 마감되어 있다. 성벽의 내부에는 석재들을 빼곡하게 쌓아서 튼튼하게 조성하였다.
명활산성이 조성될 당시의 신라는 북으로는 고구려, 동으로는 왜적의 침입을 자주 받았다. 명활산성은 왜인의 침략이 극심하였던 시기에 왜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431년(눌지왕 15)에는 왜인이 이 성을 포위하고 점령하려 하였는데, 이는 이 성이 수도인 금성(지금의 경주)을 방어하는 데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지금의 명활산성은 많은 부분이 허물어졌고 일부에서만 옛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축조는 진평왕 때 개축한 것으로 추측된다.
명활산성은 많은 부분이 허물어졌고 그 허물어진 돌들이 일부 밭뚝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명활산성을 나와 인근의 천군동 동.서 삼층석탑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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