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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곳기행문·수필, 그리고 다른 글들.. 2014. 11. 3. 09:45
가고 싶은 곳
2014. 11. 3.
가고 싶은 곳
내 유년의 기억은 거의 외갓집으로부터 시작된다.
방학이 시작되면 기차를 타고 외갓집으로 가기 일쑤였던 그 시절, 외갓집 동네 입구에 들어서다가 마을에서 자치기를 하던 머슴애들의 함성에 질려 두눈 내리깔고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걷는 나를 보고 멀리서 지게를 지고 오던 동네 오빠가 작대기를 흔들면서 소리쳤다.
"야~! 니네 쟈 건들면 나한테 죽는다~!"
건들기는 커녕 말도 안걸던 그 머슴애들이 뻘쭘한 표정으로 뒷걸음질하며 쳐다볼 때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그래도 그 오빠의 호의가 고마와서 창피하다는 말도 못하고 귓볼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외갓집쪽만 바라보면서 걸었었다.
언덕배기에 앉아 있으면 어린 내가 '상념'에 빠지곤 했었다.
머얼리 보이는 산, 도로, 하늘, 기찻길, 논두렁, 밭두렁...먼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린 내 마음에 고독이며 상념들이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게 밀려들곤 했었다.
하늘에 구름은 하염없이 흐르고 저녁때가 되면 이집저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던 마을, 장에 다녀오시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마중하러 가면 보따리는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저녁상을 차리면 아궁이 잿불에 구운 자반고등어의 비릿한 냄새는 입맛을 돋구웠다.
타닥타닥 모깃불타는 소리들으며 멍석위에 누워서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별빛들을 헤아리는 밤엔
별똥별이 바로 우리 머리맡까지 떨어지곤 했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들어준다지... 무엇을 빌까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별똥별은 자취도 없었지고 말았다.
그 유년의 뜨락에 가보고 싶다.
자치기하던 그 아이들 함성이 들끓던 그 곳, 동네 아짐아재머슴아들이 등지게가득 등짐을 메고 오던 그 곳, 저녁나절이면 하얀 도포자락에 갓쓴 할아버지가 장에서 돌아오던 그 곳,
굴뚝에서 연기피던 외갓집대신에 무너진 담벼락에 페허되어 있을 그 곳에 가면 유년의 푸른 추억들이 깨진 장독대에 고인 물처럼 지금도 깔깔깔 웃고 있을까...
이 나이에 가지 못하는 곳을 추억한다는 것....
갈 수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시간을 추억한다는 것은 슬픈 일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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