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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양동마을(경북 경주시)
    여행방/경상도 2013. 9. 11. 19:11

     경주 양동마을(慶州良洞마을)

     

     

     

     

     

    2013.  9. 11. 

     

     

     

    2013.  9. 11. 가까운 양동마을을 다녀왔다....

     

    중요민속자료 제189호,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양대문벌로 이어 내려온 동족마을로  경주에서 형산강 줄기를 따라 동북 포항쪽으로 40리 정도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다.

    넓은 안강평야에 풍수지리상 재물복이 많은 지형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제법 큰 양반 가옥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종가일수록 높고 넓은 산등성이 터에 양반들의 법도에 따라 집을 배열하고 있는데 오랜 역사를 지닌 큰 집들을 잘 보존하고 있다.

     

     

    집들의 기본구조는 대개 ㅁ자형이거나 튼ㅁ자형을 이루고 있고 간혹 대문 앞에 행랑채를 둔 예도 있다. 혼합배치 양식으로 ㄱ자형이나 一자형도 있지만 대체로 집의 배치나 구성 따위가 영남지방 가옥이 지니는 특색을 띠고 있다.

     

     

     

     

     

     

     

     

    무첨당(보물 제411호), 향단(보물 제412호), 관가정(보물 제442호)를 비롯해 많은 옛 건물들이 귀중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산계곡을 따라 펼쳐진 경관, 자연과 어울려 오랜 전통을 간직한 집들, 양반 계층을 대표할 수 있는 자료들과 유교사상, 관습들 때문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마을로 평가받고 있다.

     

     

     

     

     

     

     

     

     

    양동민속마을 입구 표지석

     

     

     

     

     

     

     

    지정 당시에는 '월성양동마을(月城良洞마을)'이었으나, "경주(慶州)"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명칭임에 반해 "월성(月城)"은 한 때의 행정편의에 따라 한시적으로 쓰였던 행정구역 명칭으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경주양동마을(慶州良洞마을)' 명칭을 변경(2009. 2.16)하였다.

     

     

     

     

     

     

     

    양동(良洞)마을은 경주(慶州)에서 형산강(兄山江) 줄기를 따라 동북(東北) 포항(浦項)쪽으로 40리(里)를 들어가서 위치하는 마을이다.

    지리적으로 기록할만한 것은 이 형산강 줄기와 마을 앞으로 지나가는 동해북부선 철도, 그리고 광활한 안강평야(安康平野)와 경주와 포항이 모두 40리쯤의 거리라는 것, 서쪽으로는 60리쯤 영천(永川)을

    지나 대구(大邱)로 연결된다는 것 등이다.  옛날에는 형산강의 물도 깊어서 선박이 일상 내왕(來往)했으므로 수운편(水運便)도 좋은 편이고 해산물의 교역도 쉽게 이루어졌었다고 한다.

     

     

     

     

     

     

     

     

     

     

     

     

     

     

      

    정충비각(旌忠碑閣)

     

     

    이 비각은 (손종로 "孫宗老" 1598~1636 )와 그의 노비였던 億夫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의 명으로 세워졌다.

    손종로는 우재(愚齋) 손중돈(孫仲燉) 고손(高孫)으로,   인조 때 남포 현감을 지냈다.

     

    인조14년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억부와 같이 전쟁에 나갔다가 경기도 이천의 쌍령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시체를 찾지 못하여 옷가지만으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정충각(旌忠閣)은 손종로를 기리는 것이고, 오른쪽의 충노각(忠奴閣)은 노비 억부를 기리는 것이다.

     

     

     

     

     

     

    병자호란 때 함께 순국한 이 마을 주인과 노비를 기리는 비각의 단청은 어떤 곳보다 인상 깊다.

     

     

     

     

     

    초가지붕에 푸른색 방충망이 이채롭다.

     

     

     

     

     

     

     

     

    은행나무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도 보인다.

     

     

     

     

     

     

     

     

     

     

     

     

    마음이 편안해 지는 풍경이다..

     

     

     

     

     기와지붕과 초가지붕 그리고...

     

     

     

     

    동화속 그림같은 초가집 

     

     

     

     

     

     

     

     

     

     

     

     

     

    관가정(觀家亭)

     

    이 집은 조선 중종 때 청백리였던 우재(愚齋)  손중돈(1463~1529)이 분가하면서 지은 것이다.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는 뜻으로, 누마루에 올라보면 그 이름에 걸맞게 곡식이 익는 들판과 강의 모습이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대청이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인데,   살림집이 후대로 오면서 제사 때 필요한 공간 확보를 위해 변형된 것이다.  본채의 뒤쪽에 손소공을 모신 사당이 있으며, 대문과 담은 원래 없었으나  1981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양동마을 3대 보물 중에 하나 관가정의 대문에 그려놓은 태극문양이다.

     

     

     

     

     

     

     

     

     

     

    관가정 앞마당

     

     

     

     

     

     

    앞마당에는 엄청나게 큰 향나무도 있다.

     

     

     

     

     

     

    관가정의 전경  - 보물 제442호

     

     

     

     

     

     

     

    관가정 뒷마당

     

     

     

     

     

     

     

    뒷마당

     

     

     

     

     

    본채의 뒤쪽에 손소공을 모신 사당이 있으며,   대문과 담은 원래 없었으나  1981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관가정에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

     

     

     

     

     

     

     

     

     

     

     

    관가정은 방도 여러개 있다.. 

     

     

     

     

     

     관가정 마루와 연결된 집

     

     

     

     

     

     

     

     

     안채

     

     

     

     

     

     왼쪽 끝이 관가정과 이어져 있다.

     

     

     

     

     들판과 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도 한눈에 들어온다.

     

     

     

    계단에서 보면 양동초등학교와  운동장도 보인다.

     

     

     

     

    향단(香檀) -  보물 제 412호

     

    이 집은 회재(晦齋)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병환 중인 모친을 돌볼 수 있도록 중종이 지어준 것이다.

     이언적이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동생 이언괄(李彦适)에게 물려준 후 여주이씨 향단(香檀)파의 종가가 되었다.  이언괄의 손자인 향단공(香檀公) 이의수(李宜樹)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

    조선 중기에 지어진 살림집의 전형이라기 보다는 집주인의 개성을 반영한독특함과 화려함이 돋보이는 집이다.   행랑채는 지금의 위치가 아니었는데 1976년에 보수할 때 위로 더 올라

     

    붙어 안채와 더욱 근접하게 되었다.

     

     

    사당

     

     

     

     

    香檀으로 가는 길...

     

     

     

     

     향단비석

     

     

     

    향단 입구

     

     

     

     

    향단에서 본 관가정

     

     

     

     

     향단의 담장과 작은 문

     

     

     

     

     

     향단의 담장

     

     

     

     

     

    사람이 거주하는 곳으로 담장과 마당이 넓다.

     

     

     

     

     

     

    마을의 풍경이 참 예쁘다.

     

     

     

     

     

    심수정(心水亭)

     

    이 정자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동생인 농재(聾齋)이언괄(李彦适1494~1553)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이언괄은 벼슬을 마다 하고 형 대신 노모를 모셨다.

    여주 이씨 집안의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기 위해 건물을 'ㄱ'자로 꺾고 그 자리에 누마루를 두었다. 이렇듯 집이 바라보는 방향은 조상들이 집을 지을 때 매우중요하게 생각하던 부분이다. 마을 안팎에 있는  10개의 정자 중 규모가 제일 크며, 안락정과  강학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 마을의 서당 역할을  했다. 철종때  불에 타서 1917년경에 다시 지었다.

     

     

     

     

     

     

     

     

     

     

    이길을 돌아 내려가면 서백당이 나온다. 

     

     

     

     

     

    우물을 덮고 돌을 얹어  놓았다.

     

     

     

     

     

     

     

     

     

     

    담장은 있는데 대문이 없다.

     

     

     

     

     

     

    구름이 무겁게 짓눌리고 있는듯 하다.

     

     

     

     

     

     

     언덕을 올라오니 넓은 들판이 보인다.

     

     

     

     

     

     

    우측에 탱자나무가 울타리를 치고 있다.

     

     

     

     

     

     

    양동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인 것 같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백당

     

     

     

     

     

    돌담이 성벽같은 느낌이 든다..

     

     

     

     

     

    기와를 얹은 돌담과 길이 정감있다.

     

     

     

     

     

    마을 사이로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밑에서 보니 향단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크고도 넓다

     

     

     

     

     

     

    심수정 측면쪽

     

     

     

     

     심수정  입구

     

     

     

     

    심수정

     

     

     

     

     

     

    심수정을 지나 강학당입구를 보고...

     

     

     

     

     심수정의 담장 끝에서...

     

     

     

     

     담장이 왜 여기서 끝났을까?

     

     

     

     

     

     강학당 오름길에 뒤를 보니 심수정과 길게 이어진 담장이 것이 보인다.

     

     

     

     

      강학당

     

     

     

     

     강학당 뒷쪽의 초가집

     

     

     

     

     

    강학당

     

    이 집은 여주 이씨 집안의 서당으로, 지족당(知足堂) 이연상(李挻祥)이 고종7년 1870년경에 세웠다. 경주 손씨 집안의 서당인 안락정과 쌍벽을 이룬다. 공

    부하는 곳이니 만큼 대문과 담장이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었으며, 앞마당에서 마을의 전경을감상할 수 있다. '상판각(藏板閣)'이라는 편액이걸린 1/3칸짜리 방은 책과 경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이씨 집안은 이 서당 이외에도 규모가 좀 더 큰 경산서당을 소유하고 있다. 동쪽에 서있는 행랑채는 서당의 살림살이를 맡았던 곳이다.

     

     

     

     

     

     

    강학당을 내려오면서 심수정을 한번 더 돌아 본다...

     

     

     

     

     

    강학당과 심수정을 마주보고 있는 마을

     

     

     

     

     

     

     

     

     

     

     

     

     

     

     

     

     

     

     

     

     

     

     

     

     

     

     

     

     

     

     

     

     

     

     

     

     

     

     

     

     

     

     

     

     

     

     

     

     

     

     

     

     

     

     

     

     

    양동마을은 국내에 현존하는 6개의 민속 마을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마을이라 한다.

     

    마을의 규모,   보존 상태,   문화재의 수와  전통성은 전국 최고라고 한다.

     

    포항과 인접한 경주 양동마을을 느긋하게 천천히 둘러 보고 민속마을을 떠나 포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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