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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사(대구시 동구)사찰여행/대구 2013. 11. 22. 20:38
부인사
2013. 11. 22.
2013. 10. 21. 대학 친구 4명이서 모이는 크로바모임 갔다가 들러본 부인사다....
◯ 부인사 표석
창건 이후 고려 말까지의 부인사 연혁은 자세히 전하는 내용이 없다. 다만 고려 말의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부인사는 오랫동안 거찰의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부인사는 신라 오악중의 중악인 팔공산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한 신라천년 고찰이다. 동화사 집단 시설지구에서 2km거리에 있으며 비구니스님들의 수행도량이기도 하다.
부인사 사적비
넓은 주차장 옆 석종형 부도와, 이형의 팔각 원당형의 부도가 우릴 반긴다.
석종형 부도는 큰 특징이 없는 조선조의 형식이지만 팔각형의 부도는 매력이 절절 넘치는 부도이다.
은통당 부도(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28호)
복련이 새겨진 하대석 모서리에는 영암사지 금당 기단의 사자새끼 같고, 강아지를 닮은 사자가 새겨져 있고, 얕은 중대석에는 이름 모를 동물과 원성스님 시집 '풍경' 속의 천진난만한 동자를 닮은 동자상이 두 팔을 들고 서있다.
부인사 사역 서편 골짜기에 있던 부도를 도난 사건 후 부인사 입구로 옮겨 복원하였다. 탑신에 은통당隱通堂이 새겨진 조선시대 부도로, 통일신라의 팔각원당형을 충실히 모방한 작품이다.
기단부· 탑신부· 옥개부로 구성되었으며, 상륜부는 근래에 복원하였다. 팔각 탑신석은 상하의 각을 오무린 배흘림이 분명하다. 옥개석은 상면에 우동과 기와골을 모각하고 우동의 끝에는 망와형의 귀면을, 아래에는 부연을 모각하였다.
하대석은 방형 지대석 위에 완만한 연화문을 배치하고, 그 둘레에 연화문과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중대석은 팔각으로 각 모서리에 동물상․ 동자상을 배치하고 각 면에는 화문을 양각하였다. 상대석은 윗면을 넓게 하고 주위에 앙련문을 조각하였다
절 입구 주차장 바로 위에는 부도가 있다.
입구 석축으로 미루어 옛 가람의 흔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부인사 입구 들머리다...
옛 부인사 중심 영역의 석축으로 추정된다.
◯ 부인사지 (대구직할시 기념물 3호)
문화관광 해설사의 집을 지나면 발굴된 부인사지터다...
부인사는 대구광역시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근래에 발굴이 끝나 금당터 등이 확인되어 표시 되어 있다.
석조부재
근래 발굴을 통해 발견된 탑전 건물지와 석탑 축대 등의 유물 유적은 통일신라시대의 것이다. 하지만 부인사가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사역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곧 당시 왕실과 연결된 사찰이었음을 입증해 주는 하나의 단서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고려시대 대장각의 판각
부인사의 오랜 역사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사항으로 역시 고려대장경과의 연관성을 들 수 있다. 고려 현종대에 조성된 고려대장경, 즉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부인사에 봉안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부인사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초조대장경은 몽고군에 의해 전부 소실되고 말았다.
그 뒤 고려에서는 국가적 사업으로 대장경을 다시 한 번 판각하였는데, 고려의 유명한 학자이자 문인인 이규보(李奎報)는 1237년 군신들이 모여 그러한 다짐을 밝히는 성격으로 작성한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심하도다. 몽고군이 환란을 일으킴이여! 그 잔인하고 흉포한 성품은 이미 말로 다할 수 없고, 심지어 어리석고 아둔하기는 또한 짐승보다 심하구나. (그들이) 어찌 천하에 (불상을) 공경하는 것을 알겠으며 이른바 불법(佛法)이란 것이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 있던 불상과 경전은 모두 불에 태워져 버렸습니다. 이에 부인사에 소장되어 있던 대장경 판본도 또한 남김없이 태워져 버렸습니다. 아, 여러 해를 걸려서 이룬 공적이 하루아침에 재가 되어 버렸으니, 나라의 큰 보배를 잃어버렸습니다."
현종 때 조성된 초조대장경이 어떠한 경로를 거쳐 부인사에 봉안되었는 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이곳 부인사에 초조대장경이 봉안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몽고군이 부인사를 습격하고 초조대장경을 불태운 시기는 1232년, 혹은 그 직후로 보고 있다.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 때 부인사가 당했던 피해의 규모가 과연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대장경을 불태울 정도의 상황이라면 거의 사찰 전체가 피해를 입는 참담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후 고려 후기의 고승 진각국사(眞覺國師) 천희(千熙,, 1307~1382) 스님이 이곳에 주석한 사실이 보인다. 몽고군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던 부인사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다시 복원되었음을 알게 하여주는 대목이다.
‘부인사’ 명칭 문제
역사적으로 볼 때 부인사라는 절 이름은 符仁寺와 夫人寺, 그리고 夫仁寺 세 가지가 사용되었다. ‘符仁寺’로 표기되어 있는 자료는 『동국이상국집』ㆍ「창성사진각국사비」ㆍ『고려사절요』ㆍ『삼봉집』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夫人寺’라고 표기되어 있는 자료로 『고려사』ㆍ『신증동국여지승람』ㆍ『대구부읍지』 등이 있다. 그밖에 18세기에 작성된 「명부전이건기」 등의 자료에 ‘夫仁寺’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 부인사지에서 바라본 부인사 전경
부인사는 1993년 이후 전각 신축 불사를 통해 가람의 형태가 크게 변화된 모습이다. 현재 삼층석탑과 요사 건물이 있는 곳이 과거 부인사의 중심 사역이었으나, 현재는 구 사역(유적지)보다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 신축 당우들이 자리하고 있다. 곧 전체적으로 사역의 중심이 북쪽으로 이동된 모습을 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포도밭을 지나 누각인 삼광루(三光樓) 좌우측을 돌아 경내에 들어서면 금당인 대웅전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왼쪽 위에는 산령각이 있고, 그 아래에 명부전과 석등이 있다.
삼광루 조금 위 왼쪽으로는 종각이 있고, 그 바로 아래에 선덕여왕의 영정을 봉안하 숭모전이 자리한다. 요사는 삼광루 오른쪽에 종무소를 겸한 커다란 건물이 있고, 숭모전 아래에도 또 다른 요사가 있다.
삼광루 아래쪽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과 삼층석탑이 자리하는데, 이곳은 지금의 대웅전이 있는 구역보다 조금 아래쪽이기는 하지만 통일신라시대에서는 이 자리가 금당터였음을 알 수 있다.
석조부재
◯ 부인사 삼층석탑
동서삼층탑
서탑과 쌍탑으로 추정한다면 복원에 문젯점은 없는가?
서탑은 2기단으로 지대석과 하기단이 하나의 돌로 4개 부재가 결구 되어 있다. 그런데 동탑은 기단을 3기단으로 조성하고 탱주도 위로부터 1:2:3으로 모각하였다. 3기단으로 조성된 석탑은 구례 연곡사에도 남아 있다.
동.서탑은 1964년 신라오악조사단에 의해 복원되었다. 당시에도 동탑 부재는 이미 다른 전각 복원의 부재로 활용되어 서탑만을 복원하였으며 근자에 현재 모습으로 조성하였다. 서탑은 상층 기단 일부만 본래 석탑 부재이다.
부인사 서탑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17호)
부인사 서탑은 본래 쌍탑이었으나 1964년에 서탑만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 즈음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
하기단과 갑석은 4개의 돌로 짜여졌으며 갑석상면에는 괴임을 각출하고 면석에는 탱주 하나와 양우주를 새겼다.
상기단은 탱주와 우주가 새겨진 면석을 4매의 판석으로 짰고, 갑석 아래에는 부연을 나타냈으며 상면에는 2단의 괴임을 각출했다.
각층의 옥신과 옥개석은 모두 한 개의 돌로 되었으며 옥신에는 우주를 새기고 옥개석은 하면에 5단의 옥개받침과 상면에 2단의 괴임을 각출했다.
낙수면은 완만하게 흐르다가 반전하였다. 꼭대기에는 찰주를 삽입했던 방형 노반만 남아 있다.
부인사 석등, 부인사 서탑이 있는 자리는 옛날 통일신라시대의 사역이다.
동탑
◯ 부인사 석등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16호)
석등과 배례석
옛대웅전 앞에 위치한 팔각원당형 석등이다. 석탑과 마찬가지로 신라오악조사단에 의해 수습된 부재를 복원하였다. 석등은 현재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화사석은 인근에 있던 다른 부재를 복원한 것이다. 석등은 추녀가 길고 얇으며 곡면도 유려하여 경쾌감을 주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전한다.
석등의 기단은 네모난 지대석 위에 복판의 연화문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기단부의 측면에는 각 면마다 2개의 안상이 음각되어 있다. 상면에는 3단의 팔각 받침을 만들어 간주석을 받도록 했다.
상대석은 복판 중엽의 연화문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상면에는 3단의 괴임을 각출하였다. 옥개석은 상부에는 연화문 띠를 모각하였다.
화사석은 다른 석등 부재로 크기가 작아 보인다.
화사석은 다른 석등 부재로 크기가 작아 보인다.
◯ 부인사 배례석
요사채 앞마당의 석탑과 석등사이에 배레석이 펼쳐있다.
윗면에는 사찰을 상징하는 연꽃이 양각되어 있고 옆면에는 24장의연잎이 사방을 돌아가며 새겨져 있다.
원래는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던것을 1964년 신라오악조사단에 의해 지금처럼 동서로 놓이게 되었다.
◯ 부인사 전각 배치
◯ 부인사 수각
◯ 부인사 삼광루 앞 오층석탑
◯ 부인사 삼광루
대전 영역으로 들어가는 누마루
◯ 부인사 대웅
대웅전은 현재의 위치까지 포함하면 전부 세 차례 자리를 옮겼다.
최초의 대웅전 위치는 현 부인사 남쪽의 대 축대와 접한 곳으로, 부인사 3차 발굴조사보고서에 탑전 건물지로 명명된 지역이다.
두 번째 위치는 그보다 북쪽으로 이동된 현 신축 사역으로 오르는 계단지와 접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4~5차례 건물 변화가 있었음이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부인사의 대웅전 위치는 점차 북쪽으로 이동되어 건립되는 양상을 보인다.
현 대웅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로, 중앙 3칸이 양쪽 측칸보다 넓은 것이 특징이다. 문은 화려한 솟을 빗살창으로 장엄되어 있으며 천장 부분은 우물반자로 마감되어 있다.
양퇴칸 분합문을 152象(코끼리)과 국화꽃으로 구성하고, 양협칸 사합문을 민꽃과 연꽃으로꾸미고,
어칸 사합문을 육옆의 화려한 연꽃으로 꾸몄다.
卍자와 법륜 마크가 세겨진 대웅전앞 계단 소맷돌
영산전에서 바라본 대웅전
명부전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웅전 외부 벽화
대웅전 부처님 뒷편으로 두칸 문이 나 있었다.
내부에는 후미 중앙에 불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는 닫집을 설치하여 장엄하고 있다. 불단에는 후불탱화와 함께 석가 삼존불을 비롯하여 전부 5위의 불보살상을 봉안하였다.
화려한 닫집과 주불이신 부처님과 좌 ,우 협시불이 다른절과 다른모습이다.
석가 삼존불뒤로 장엄한 후불탱화
화려한 닫집
대웅전 신중탱
장엄한 불단
장엄한 천정 단청
곳곳에서 용이 부처님을 호위하고 있었다...
협칸 법당내에서의 모습 햇살이 비추는 꽃살문이 정갈하게 보인다
문고리에도 세월의 흔적이 나타난다
양퇴칸 분합문을 152象(코끼리)과 국화꽃으로 구성하고,
대웅전 코끼리꽃살문 - 코끼리가 사방으로 힘차게 뻗어가는 느낌이다
부인사 꽃살문 / 특이하게 코끼리와 국화 꽃살문으로 꾸며져 있다.
궁판내의 연꽃, 거북이 궁판 가운데 활짝핀 연꽃을 바라보는 거북이 한쌍
양협칸 사합문을 민꽃과 연꽃으로꾸미고,
궁판내의 잉어한쌍
부인사 대웅전 협칸 민꽃문
대웅전 꽃살문위에도 단청이 화려하다
어칸 사합문을 육옆의 화려한 연꽃으로 꾸몄다.
대웅전 연꽃살문이 화려하게 수 놓아져 있다
대웅전 어칸 화사한 연꽃살문
대웅전 퇴칸, 정첩옆에도 문살처럼 장식되어 있다
부인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승려들의 시장이 자리했던 절집으로 알려져 있다. 근자에 대구시와 동화사를 중심으로 매년 10월 다양한 행사와 체험을 할 수 있는 승시가 열리고 있다.
◯ 부인사 명부전
명부전은 본래 부인사의 중심전각이었던 대웅전 건물이었는데, 현재의 대웅전을 세운 이후 한켠으로 옮겨 지장보살을 모시고 명부전으로 부르게 되었다.
명부전의 지장보살
시왕님들...
◯ 부인사 명부전 앞의 일명암지 석등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22호)
명부전과 석등
부인사 남쪽 일명암지에 있던 것을 이전·복원하여 부인사에 보관하였다. 상륜부는 없어졌고, 화사석은 파편을 근거로 복제하였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팔각형의 기본적인 석등이다. 하대석, 간석(竿石), 상대석, 화사석, 옥개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석은 사각형 지대석의 4면에 좌우 2구씩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윗면에는 팔각형의 연화대 받침을 조각하여 돌출시켰다. 간석은 단면이 팔각형으로 상부에는 상대석에 삽입되는 돌기가 있다.
상대석은 연판 안에 화엽문을 장식하고 위에는 3단의 받침을, 아래에는 2단의 괴임과 간석의 돌기를 꽂기 위한 홈을 만들었다.
화사석은 팔각형의 넓은 측면에는 사각형의 창을 2개, 좁은 면에는 1개씩 뚫었는데, 다른 석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구조의 기본요소나 조각기법으로 보아 지대석과 하대석, 그리고 간석은 부인사 석등과 유사한 양식을 보이나 상대석과 화사석 등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팔각형 석등양식에서 약간 벗어나는 새로운 양식으로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이다.
옥개석은 정상부에 편팔각의 홈과 괴임을 만들었고, 괴임 둘레에는 연화문대를 조각하였다.
◯ 부인사 영산전
◯ 부인사 산신각
◯ 부인사 현음각 (범종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