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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종. 영조대왕과 매우 인연이 깊은 사찰' 파계사 (대구)
    사찰여행/대구 2012. 12. 3. 19:55

     

     

    '숙종. 영조대왕과 매우 인연이 깊은 사찰' 파계사

     

     

     

     

    2012. 12.  3.

     

     

     

     

     

     

    2012.11.27. 대학동창 친구 만나 팔공산허브랜드에서 수다떨다가 가까운 파계사를 둘러 본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경치가 뛰어나고, 가파르긴 하지만 아름다운 진입로를 지닌 아담한 사찰이다

     

     

    파계사는 또 진입로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주차장이 있는 파계사 삼거리(실은 사거리이다)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일주문을 지나 파계사까지는 약 20~30분 정도 걸어 올라야 한다. 이 길이 계곡을 끼고 오르는 울창한 숲길이어서 경치가 좋다.

     

     

    파계사로 들어서면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돌축대이다.

    파계사가 상당한 가파른 곳에 자리하고 있어 주차장에서 진동루, 원통전, 적묵당, 설선당, 기영각 등의 건물들이 모두 돌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별도의 대웅전이 없고 원통전이 주 법당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계사 매표소

     

     

     

     

     

     

     

     

     

    파계사 매표소 조금 못미쳐 돌을 쌓아둔 성황당이 보인다...

     

     

    동화사의 말사인 파계사는 신라 애장왕 5년(804년)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절의 좌우 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9군데나 되므로 이 물이 흩어지지 못하게 잡아 모은다는 뜻에서 파계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파계사 일주문

     

     

     

     

     

    청자빛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파계사의 초추(初秋)가 좀 쓸쓸하다.

    보통 일주삼간(一柱三間, 4개의 기둥이 일렬로 서서 3칸을 만들어내는)식 일주문이 아니라 달랑 2개의 원목 위에 지붕을 얹고, 그 아래에 ‘팔공산 파계사’란 현판을 달았다.

     

     

     

     

     

     

     

     

    양쪽 하나씩의 기둥으로 서있는 이유는 오직 일심으로 불법에 귀의한다는 뜻과 일불승사상일 것이다.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를 상징 한다.

     

     

     

     

    파계사의 일주문은 +자형 초석 위에 나무기둥을 세운 익공계 형식으로 맞배지붕의 1칸 문이다.

    '팔공산 파계사,  일주문의 글씨는 일중 김현중의 書

     

     

     

     

     

     

     

    부산 범어사 일주문이나, 양산 통도사 일주문과 다른 양식으로 파계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바로 불국정토로 이어지는 길이다.

     

     

     

     

     

     

     

    파계사는 왕(숙종)이 보장해주는 ‘재물’을 스스로 포기했다. 왜일까? 

     

     

     

     

     

     

     

     

    파계사는 불교에서 황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가 성불하겠다는 신심이고,  그 신심을 잘 닦아 성불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기도와 수행의 도량의 되어야한다는  단순소박한 진리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찰’이 되기를 포기하고,  청정한 근본을 선택하였던 깊고 아득한 마음 하나가 원통전 용마루에

    사려깊게 올라있다.  

     

     

     

     

     

    파계사  연못

     

     

     

     

     

    아홉 계곡의 물 줄기를 한곳으로 모은곳

     

     

    파계사라는 사명 자체가 '계곡을 잡는다'는 뜻이다. 파계사의 자연의 아름다움은 주변에 가득하다. 현재의 주차장도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연못이었다. 산에서내려오는 여러갈래 계곡물을 진동루에서 한번 눌러주고  여러갈래 계곡물이 여기에서 합쳐져  연못에 모아 다시 한번 지기를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파계사 배치도

     

     

     

     

     

     

     

    조선의 억불숭유정책과 유림들의 횡포를 한 스님의 지혜로 막아낸 사찰이 바로 파계사이다. 파계사 중창주이신 영원스님은 숙종임금으로 부터 왕가의 위패를 사찰에 모시는 윤허를 받아내고 사세를 확장 하였다. 파계사가 왕가의 비호를 받게 된 연유에는 영원스님의 다음과 같은 혜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조 숙종임금이 어느날 대궐 속으로 승려가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너무 선명하여 신하를 시켜 남대문 밖을 살펴보게 하니, 정말 한 승려가 그 앞에서 쉬고 있었다. 그 승려가 바로 파계사의 영원선사였다. 기이하게 여긴 숙종임금은 영원선사에게 왕자탄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부탁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보였고, 이듬해에 왕자가 탄생하였으니 바로 영조대왕이다. 크게 기뻐한 숙종임금은 영원선사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리고, 40리에 걸쳐 나라에 거두던 세금을 모두 절에서 거두라고 했다. 스님은 거절하면서 대신 경내에 선대임금의 위패를 모시도록 윤허해 주시기를 간청, 윤허를 받았다. 스님은 절로 내려와 기영각을 세우고 선대왕의 위패를 모시니 지방 유생들과 양반의 행패는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왕가의 비호속에 불사를 여법하게 성취 하였으며, 각종 부역의 피해 없이 승려들이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하였다.”

    왕가와 파계사 관계는 기영각 이외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기영각에는 성종 숙종 덕종 영조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숙종의 명으로 세워진 대소인개하마비(大小人皆下馬碑)는 일주문 지나 사적비 부근에 있는데, 하마비 자체가 왕의 권위를 상징하고 있어 유생들의 횡포를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숙종의 하사품인 병풍 2점과 구슬 2개도 남아 있습니다. 영조대왕이 11세에 썼다는 자응전(慈應殿) 편액은 성전암 법당에 걸려있으며, 영조대왕 어의는 원통전 관음보살상 복장에서 나왔습니다. 정조대왕의 어필 천향각 현판도 있다.

     

     

     

    파계사  부도

     

     

     

     

     

     

     

     

    파계사 부도와 하마비

     

     

     

     

     

     

     

    절 입구 오른쪽에 석축을 쌓아 2기가 조성되어 있다. 좌측부도는 절충장군 가선대부 보광당 전명대사탑(1651년 효종 2) 으로 사각의 대석위에 6각의 석조를 놓고 2층으로 조각된 앙련좌 위에 부도가 설치되어있다. 우측 부도는 회잔당 원의대사탑(1648)으로 6각의 대석위에 연화문을 조각 그 위에 일석으로 된 앙련과 부련이 있고 그 위에 부도를 설치 하였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곳에서부터는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숙종의 명으로 세워진 '대소인개하마비(大小人皆下馬碑)'

     

     

     

    올들어 처음 맞는 눈!!!!

    대학시절로 다시 돌아 간 듯하다...  그 시절의 친구들을 만나 팔동산에서 밎이하는 첫눈이다!!!

     

     

     

     

     

    파계사 감로수

     

     

     

     

     

     

     

     

    지금의 맨위 주차장의 감로수

     

    지금의 맨위 주차장의 자리는 원래는 연못자리였는데 지금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상부 주차장에서 바라 본 파계사 전경

     

     

     

     

     

    영조(英祖) 임금나무

     

    마당에는 영조대왕 나무가 불이문 격인 진동루와 마주서 있다.

     

     

     

     

     

     

     

    영조(英祖) 임금나무

     

     

     

    영조(재위기간:1724-1776)는 조선21대 왕으로서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숙빈 최씨이다.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하여 붕당(朋黨)정치를 혁파 하였고 균역법을 실시하여 조세를 감면하는등 정조(正祖)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가장 찬란한 학문과 문화의 꽃을 피운 임금이다.파계사는 왕실의 원당이자 현응스님의 도움으로 영조임금이 탄생했다는 설화와 그가 입었던 도포(중요 민속자료 제220호)를 간직한 절이다.따라서 사찰내 가장 크고 아름다운 25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를 골라 "영조(英祖)임금 나무"라 이름지었다.

     

     

     

     

     

     

     

     

     

    진동루 앞에는 영조와 파계사의 인연을 기념하여 ‘영조나무’로 이름 붙여진 25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남아 있다.  2 그루가 마주보고 있다.

     

     

     

     

     

     

    파계사 진동루(불이문)

     

     

    골짜기의 지기를 눌러주는 "진동루(鎭洞樓)"가 가파른 계단 위에 버티어 있다.

     

     

     

     

     

     

     이층 누각으로 세워진 진동루는 불이문이라고도 한다. 불이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생과 사가 둘이 아닌 하나임을 의미한다. 진동루라는 이름에는 골짜기의 지기를 눌러준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또한 양쪽 벽면에는 ‘심우도’가 10개의 그림으로 나뉘어 그려져 있다.

     

     

     

     

     

     

    숙종 41년(1715) 창건하였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 구조의 이층 누각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두개의 쇠서(소의 혀바닥 모양)를 장식한 이익공 양식의 5량가, 연등천정으로 조선시대 중.후기 건축양식에 어울리는 고격(古格)을 보여주고 있다.

     

     

     

     

     

     

    누각 밑에는 배와도 흡사하고 소여물통 같기도 한 나무통이 길게 뉘어져 있다. 이것은 ‘비사리 구시’라는 것으로 옛날 절에서 큰 행사나 법회가 있을 때 밥을 퍼 두는 밥통이라 한다.

     

     

     

     

     

     

     

     

     

     

     

    진동루에 걸린 '팔공산파계사' 글씨는 회산 박기돈 書

     

     

    불이문의 이름을 진동루로 한 것은 이곳의 지기가 세어서 눌러야한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파계지를 조성하여 이 일대의 지기를 누르려고 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파계사 범종각

     

     

     

     

     

    '범종각' 여초 김응현 書

     

     

     

     

     

    팔작지붕의 범종각에는 운판 목어 법고 범종 불전사물이 배치되어, 하늘과 땅과 수중과 공중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고 있다.

     

     

     

     

    불교사찰에는 소리와 관련 있는 것으로 4물이 있는데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말한다. 흔히 사물을 모아 범종각에 설치해 놓는데 범종각의 위치는 법당에서 볼 때 오른쪽에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진동루와 나란히 서 있는 범종각

     

     

     

     

    파계사 원통전 

     

    진동루 밑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보이는 원통전이다.

     

     

     

     

     

     

     

     

     파계사 경내에 들어서면 원통전을 중심으로 한 진동루, 설선당, 적묵당 등의 격조높은 당우 4채가 'ㅁ'자를 이루고 있고 원통전은 그 중심 전각으로 영조 대왕의 도포가 발견된 곳이고 목관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원통전은 파계사의 중심 법당이다. 圓通이란 말은 周圓融通, 즉 ‘진리는 두루 원만하여 모든 것에 통해 있다’는 뜻으로 관세음보살의 불격을 나타내는 용어로 수수한 조선시대의 축대위로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특이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원통전 현판 글씨는 장중한 필체로 송우암과 송동춘의 서체인 양송체에 해당한다.

     

     

     

     

     

     

     

     

     

    파계사 원통전 목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

     

     

     

    아주작은 모습이지만 그 원력은 대단 하다.

    원통전의 주존불로서 불단위에 정좌하고 있다. 가슴과 배 양 어깨와 두 팔을 거쳐 양쪽 무릅까지 흘러내리는 영락장식도 화려하지만 머리 위의 보관은 더 볼만하다. 전면에 가득한 꽃무늬,당초무늬가 매우정교하며 곳곳에 십개의 보석이 박혀 문자 그대로 보관 이다. 1979년 이 관음보살상을 개금하다가 영조의 도포가 발견되어 원당사찰 파계사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한 바 있다.

     

     

     

     

     

     

     

     

    파계사(把溪寺) 원통전(圓通殿)에 유리상자로 씌워져 단독으로 봉안된 높이 108.1㎝의 건칠관음보살좌상(乾漆觀音菩薩坐像)이다. 복장발원문(腹藏發願文)에 의하면 1447년(세종(世宗)29)에 이 보살상을 중수(重修)한다고 적혀 있어 연대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특히 고려후기 불상계열을 다른 전통적인 불상의 특징과 함께 신체가 장대(長大)한 면을 보이는 유형의 보살상에 속한다. 허리가 길고 얼굴을 들고 바로 앉은 상현좌(裳懸坐)의 자세로 꽃(花紋)등을 정교하게 붙인 3중의 높은 보관(寶冠)이 묵중하다. 촘촘히 연주(連珠)를 두른 관대(冠帶) 밑에는 정연한 보발(寶髮)이 보이며, 양쪽 귀에 걸친 머리칼은 몇 가닥으로 흩어져 어깨를 덮고 있다. 원만한 얼굴, 미간(眉間)의 백호(白毫), 약간 짧은 듯한 귀는 모두 정제(整齊)되어 있으며 목에 표현된 삼도(三道)는 그 위엄을 더해주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쪽에 들어 엄지와 중지(中指)를 맞대고 손바닥을 밖으로 외장(外掌) 하고 있으며, 왼손은 약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댈듯이 하여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있다. 

     

     

     

     

     

     

     

     

    붓 모양의 닫집이 참  특이하다.

     

     

     

     

     

     

     

     

     

    순조 6년(1806년)에 경상도 관찰사 김희순이 써넣은(영종대왕 원당 사적)이란 사적기에 의하면 이 파계사는 숙종 19년 계유10월5일 밤에 숙종 대왕이 "산승(山僧)이 대전(大殿)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남대문 밖에 나가 스님이 있는지 알아보게 하니 마침 파계사의 영원선사가 묘향산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남문 밖에서 쉬고 있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숙종은 그를 수락산에 보내 백일 칠성기도로 왕자를 빌게 하였더니,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있어 이듬해 갑술(1694년) 9월 13일에 영조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숙종은 영원 선사에게 현응이란 시호를 내리고 파계사를 숙빈궁의 원찰로 하여 내탕금 3천냥으로 칠성전을 짓게 하고 영조 11세(1704년) 때에는 친필로 자응전이란 현판을 써 붙이게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22년(1696)에는 기영각을 지어 열성 위패를 봉안하게 함으로써 왕가의 원찰로 격상시켜 놓았다.

     

     

    이후 영조가 등극하자 왕비인 정성왕후는 그 내력을 알고 이 절을 자신의 원찰로 삼은 다음 영조 8년(1732년) 임자에는 영조의 어의를 하사하는 등 각별한 후의를 베풀어 왕실의 원찰로 확고한 지위를 다져 놓는다. 그래서 이곳이 관음기도 도량이 되어 원통전이 중심 전각이 되었던 것이다.

     

     

     

     

     

     

     

     

     

    파계사는 신라 애장왕 5년(804년)에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원통전은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은 선조 38년(1605년)에 계관법사가 중창하고, 숙종 21년(1695년)에 현응조사가 다시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렀다.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기와 지분 건물로 자연석 주초 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함께 발견된 한지 두루마리에 적힌 발원문에 의하면 건륭 5년(1740년) 경신년에 대법당을 개금하고 불상과 나한을 중수했으며, 성상의 청사상의로 만세유전을 빌면서 복장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內 공포도 참으로 장엄하다...

     

     

     

     

     

     

     

     

     

    원통전 불단 뒤로 출입문이 있었다....

     

     

     

     

     

     

     

     

     

    원통전 목조관세음보살은 파계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까지 지켜보고 있는 보물이다.

     

     

     

     

     

     

     

     

     

    원통전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영산화상도

     

     

     

    영산화상도 (보물제1214호)

     

    석가가 영축산에서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크기는 길이 340㎝, 폭 254㎝이며 비단 위에 채색되었다. 중심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두고 좌우대칭으로 여러 보살과 무리들이 석가를 에워싸고 있다. 주로 녹색과 붉은색을 사용해 밝고 화려하며 옷에 칠해진 금빛이 매우 찬란하다. 이 그림은 다른 영산회상도와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조선시대 불화에서 석가여래의 광배는 몸뒤의 신광과 머리의 두광을 함께 표현하는데 비해 이 그림은 신광만을 표현했다.

    둘째, 부처님의 옷에 밭 전(田)자 무늬가 그려져 있지 않았고

    셋째는 부처의 오른쪽 발목에 꽃잎장식이 보이지 않는 점이 그러하다.

     

    능숙한 붓놀림과 화려한 채색 등이 매우 돋보이는 18세기 초를 대표하는 불화이다. 이 영산회상도는 조선 숙종 33년(1707)에 왕실에서 뜻을 모아 제작한 것으로 자료적인 가치도 매우 높은 작품이다.

     

     

     

     

     

     

     

     

     

     

     

    이 원통전 관세음보살상이 앉아있는 불전 또한 굉장히 아름답고 화려하다.

    무욕과 무소유를 이상으로 삼는 스님들은 누덕누덕 기운 분소의에 주린 배를 탁발로 채울지라도

    법당은 불국정토를 상징하기에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민다. 파계사 원통전 불단은 우주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과 같은 모양을 취하고 있어 수미단이라고도 부른다.

     

    온갖 길상을 상징하는 꽃과 동물 동자 사슴 봉황 게 거북 등이 동화의 나라처럼 신기하게 새겨져 있다.

    영천 백흥암 수미단(보물 제486호) 다음으로 섬세하고 아름답다.

    원통전 단청에는 금박 진언이 새겨져 있다.

     

     

     

     

     

     

     

     

     

     

     

     

     

     

     

     

    우물정(井) 형태의 천정

     

     

     

     

     

     

     

    원통전 신중탱화

     

     

     

     

     

     

     

     

    원통전 탱화

     

     

     

     

     

     

     

     

    원통전 탱화

     

     

     

     

     

     

     

     

     

     

     

     

     

     

     

    원통전 천정과 벽화

     

     

     

     

     

     

     

     

     

    원통전 전각에 있는 주련의 글귀가 참 좋다

     

     

     

    觀音普薩大醫王(관음보살대의왕)    중생 병을 고치시는 큰 의사이신 관세음 보살님이시여

    甘露甁中法水香(감로병중법수향)    감로수 병숙의 법수는 향기롭습니다

    洗濯魔雲生瑞氣(쇄탁마운생서기)    마귀의 구름 벗겨버리시고 성서러운기운 살아나게 하시어

    消除熱腦獲淸凉(소제열뇌획청량)    모든 번뇌 씻어버리시고 청량함을 얻게 하나이다

     

     

     

     

     

     

     

     

     

    꽃 문살이 참으로 정겹고 곱다.

     

     

     

     

     

     

     

     

    원통전 外 공포도 너무나 장엄하다.

     

     

     

     

     

     

     

     

     

     

     

     

     

     

    파계사의 가장 큰 법당인 원통전(圓通殿)의 측면

     

     

     

     

     

     

     

     

     

    원통전 바로 앞에 기왓장 몇 장을 세워놓은 곳은 법당에서 쓴 물을 버리는 곳으로, 이 청정수가 아귀를 다스린다고 믿고 있다.

     

    수수한 조선시대의 축대 그 아래 흐트러진 연꽃 한송이를 피운 拜禮石, 그리고 掛佛石柱.석등의 잔상으로 남아 있다.

     

     

     

     

     

     

    배례석( 拜禮石)

     

    이 배례석은 법당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짐꾼이나 하인들이 서서 법당을 향해 예를 드리던 곳이다. 연꽃 무늬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배례석 앞에는 절 마당에서 야단법석을 열 때 탱화를 걸던 괘불대가 서 있고 그옆에 석등도 있다.

     

     

     

    원통전 좌측의 설선당

     

     설선당은 강당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원통전을 중심으로 적묵당과 마주하고 있다.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고복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주두를 얹은 민도리집이며 구조양식이 간결하다. 설법과 참선을 하는 방으로 나무를 깍아 만든 ‘山海崇深’이라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67세 북청유배시절에 쓴 것으로 ‘학문의 연구는 높고 바다보다 깊다’라는 뜻으로 파계사의 위상과 일맥상통 한다하겠다.

     

     

     

     

     

     

     

    설선당과 원통전사이로 산신각이 보인다.

     

     

     

     

     

     

     

     

     

     

     

     

     

     

     

     

     

     

    1623년(인조1)계관법사에 의해 창건되어 두차례에 걸쳐 중건하였고 1762년 지붕을 다시 잇는 공사를 시행한후 1976년에는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설선당 편액 회산 박기돈 書

     

     

     

     

     

    원통전 우측의 적묵당(寂默堂):문화재료 9호

     

     

     

     

     

     

    신라 애장왕(哀莊王) 5년(804년) 창건(創建)되었다는 사전(寺傳)과 조선 광해군(光海君) 12년(1620년)에 창건(創建)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으며, 현재의 건물은 숙종(肅宗) 21년(1695) 중건(重建)되고, 1920년 중창(重創)되었으며, 1976년 번와공사(飜瓦工事)가 있었다.건물은 정면 6간, 측면 6간 규모로 평면이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前面)만 겹처마인 팔작(八作) 지붕집으로, 구성양식(構成樣式)은 주상(柱上)에 주두(柱頭)를 얹은 굴도리집으로 상부가구(上部架構)는 5량가(樑架)이며, 비교적 소박한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선방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을 한다는 불교 용어인 "적묵"에서 따온 이름

     

     

     

     

     

     

     

     

     

     

    범종과 적묵당 돌담

     

     

     

     

     

     

     

     

     

     

     

     

     

     

    기영각 (祈永閣)(문화재료 11호)

     

     

     원통전 오른쪽 뒷편에 있는 기영각(祈永閣)

     

     

     

     

     

     

     

     

     

    조선 숙종(肅宗) 35년(1696년)경 현응조사(玄應祖師)가 성전암(聖殿庵)과 더불어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1974년과 1983년 두 번에 걸쳐 보수공사가 실시되었다.건물은 화강석(花崗石) 바른층 쌓기 기단(基壇)위에 건립된 정면 3간, 측면 2간 규모의 겹처마 팔작 (八作)지붕으로, 구조양식(構造樣式)은 덤벙 초석(礎石)위에 원주(圓柱)를 세우고, 주상(柱上)에 주두(柱頭)와 함께 앙서와 수서를 장식한 외일출목(外一出目)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을 보이고 있다. 상부가구(上部架構)는 5량가(樑架)이나 우물천장으로 가리어져 있으며, 이 건물은 주심포계(柱心包系) 건물로 주두(柱頭)의 장식이 번잡하게 발달한 조선후기 공포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기영각 내에 모신 부처님

     

     

     

     

     

     

     

     

     

     

     

     

     

     

     

    영조대왕을 위해 기도한다는 뜻인 '기영각'은 숙종36년(1696)에 형응스님이 성전암과 더불어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며 영조 생전의 수복과 사후의 명복을 기원하는 축원당으로서 수명장수신으로 일컬어지는 칠성을 봉안한 칠성각과 같은 의미의 전각이다. 이 건물은 주심포계 건물로 주두의 장식이 번잡하게 발달한 조선후기 공포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 이다.

     

     

     

     

     

     

     

     

     

     

     

     

     

     

     

    천정 단청

     

     

     

     

     

     

     

    외출 봉두가 장엄하다...

     

     

     

     

     

     

     

     

     

     

     

     

     

     

     

     

     

     

     

     

     

    담장속에 숨겨진 굴뚝이 정말로 아름답다.

     

     

     

     

    ○  산령각

     

     

     

     

     

     

     

    창건시대(創建時代)는 문헌(文獻) 기록이 없어 잘 알수 없으나, 1976년 중창(重創)되고 1979년 보수되었다.

     

     

     

     

     

     

    화강석(花崗石) 외벌대 기단(基壇) 위에 건립된 정면 1간 측면 1간 규모의 겹처마에 박공지붕집이며, 구조양식(構造樣式)은 화강석(花崗石) 정평초석(礎石)위에 원주(圓柱)를 세우고, 주상(柱上)에 주두(柱頭)와 함께 앙서와 봉두(鳳頭)를 장식한 초익공 (初翼工) 양식(樣式)이다.3량가(樑架)로 구성된 지붕 하부구조(下部構造)는 우물천장으로 가려져 있고, 건물 내, 외부에는 금단청(錦丹靑)을 올렸으며, 이 건물은 익공계(翼工系) 건축으로 조선 후기에 발달한 번잡한 장식수법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관계가 없는 토착신이지만 불교의 재래신앙에 대한 수용력에 의하여 사찰내에 보안되게 되었다

     

     

     

     

    ○ 응향각

     

     

     

     

     

     

    현재 종무소로 쓰고 있는 전각

     

     

     

     

     

     

     

     

    크고 높은 굴둑에 시선이 갔다.(아마 기와 보수 時에 나온 헌기와로 쌓은듯?)

     

     

     

     

     

     

     

     

     

    응향각 편액 회산 박기돈 書

     

     

     

    ○ 주지실

     

     

     

     

     

     

     

     

    경내의 모든 전각들이 돌축대 위에 건립되어 있다.

     

     

     

     

     

     

     

    뒷 쪽에 있는 요사채 인데 큰 스님께서 거쳐하시는 곳이다.

     

     

     

     

     

    설법전

     

     

     

     

     

     

     

     

    이 건물은 인조(仁祖) 1년(1623년) 계관법사(戒寬法師)에 의해 창건(創建)되어 1646년과 1725년 두 번의 중건(重建)과 1762년 중즙공사(重葺工事)가 실시되었다 하며, 1922년과 1973년 부분적인 보수공사(補修工事)가 시행되었고, 1976년 대수선(大修繕)하였다. 건물은 정면 7간, 측면 7간 규모로 평면이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겹처마 팔작 지붕집이고, 구조양식은 고복초석(鼓腹礎錫)위에 기둥을 세우고 주상(柱上)에 주두 (柱頭)를 얹은 민도리 집이며, 상부(上部) 가구(架構)는 5량가(樑架)다. 이 건물은 대중식당(大衆食堂)과 강습소(講習所)로 사용되고 있으며, 구조양식과 가구 수법등이 간결하면서도 견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파계사승가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다

     

     

     

     

     

     

     

     

     

     

     

     

     

     

     

     

     1층은 공양실 2층은 설법전 인데 아래층은 세멘트건물 윗층은 목조건물이다.

     

     

     

     

     

     

     

     

    설법전  내부

     

     

     

    부목실

     

     

     

     

     

     

     

     

    설선당 옆문을 통해본 부목실 전경

     

     

     

     

     

     

     

     

     

     

     

    신도회 전각

     

     

     

     

     

     

     

     

    지장전

     

     

     

     

     

     

     

     지장전은 원통전에서 왼쪽으로 가시면 작은 등 넘어에 지장전과 극락전이 있다.

     

     

     

     

     

     

     

     

     

     

     

     

     

     

    지장보살님을 모신 파계사 지장전이다.

     

     

     

     

     

     

     

     

     

     

    ○ 극락

     

     

     

     

     

    근래에 조성한 극락전이다.

     

     

     

     

     

     

     

     

     

     

     

    파계사 극락전에 모신 아미타부처님인데 이곳으로 옮긴지가 얼마되지 않은 것 같다.

     

     

     

     

     

     

     

     

    극락전 안에 납골당을 겸하는 것 같았다....

     

     

     

     

     

     

     

     

    극락전 부근의 작은 부처님

     

     

     

     

     

     

     

     

    쓰레기 소각장도 참 깔끔하다.

     

     

     

     

    ○  금당선원

     

     

     

     

     

     

    스님 수행공간

     

     

     

     

     

     

     

     

     

    파계사 전경

     

     

     

     

     

     

     

     

     

    상부 주차장에서 본 파계사 전경

     

     

     

     

     

     

     

     

    상부 주차장에서 들어가면서...

     

     

     

     

     

     

     

     

     

     

     

     

     

     

     

     나란히 한 돌축대 위로 진동루와 범종각이....

     

     

     

     

     

     

     

     

    큰 돌과 헌 기와 조각으로 쌓은 돌담장에서는 정겨움이.

     

     

     

     

     

     

     

     

     

    영조대왕 나무에서 바라보니 ...

     

     

     

     

     

     

     

     

    돌축대 위로 전각이 자리 잡았다...

     

     

     

     

     

     

     

     

    기영각에서 바라 본 파계사 

     

     

     

     

     

     

     

     

     

     

     

     

     

     

     

    신도회 전각 마당에서 바라본 전경

     

     

     

     

     

     

     

     

     

     

     

     

     

     

     지장전.관음전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전경

     

     

     

     

     

     

     

     

     

     

     

    이제 가을은 갔고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이다.

    아쉽게 너무 빨리 가 버린 가을,

    간만에 친구 만나 수다 떨며 파계사에서 함께한 하루!

    행복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추억  남겼고 이제 남은 12월  한달도  아쉬워만 말고 높은 하늘, 따뜻한 햇빛, 차가운 바람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겨울!

    잎새는 다 떨어지고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에도 쓸쓸해지는 겨울!~.

    활짝활짝 마음의 문을 열고, 겨울 바람을 즐기자. 올 겨울엔 꼭 더  행복해지자...  ~  힘차게 파이팅!!

     

    친구들아!!!

    더도 덜도 말고 지금 만큼만 건강하게 오래보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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