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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 용화사(경남 통영시)사찰여행/경상도 2013. 9. 15. 10:44
미륵산 용화사
2013. 9. 15.
2013. 9. 8.불교산악회 산빛 어울림에서 함께한 통영의 미륵산 산행 .........
맑은 아침의 공기냄새가 참으로 싱그럽다....
포항출발(06:00) → 포항 → 대구 → 거창 → 진주 → 고성 → 통영 용화사 광장(10:30)에 도착이다.......
한창 벌초하는 철이라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걸렸다...
산행시작을 용화사 광장 → 관음암 → 도솔암 → 미륵치 → 전망대 → 미륵산 정상 → 봉화대 → 미래사 → 띠밭등 → 용화사 → 용화사 광장 으로 정하고 ...
용화사 광장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관음암. 도솔암을 보고 미륵산 정상에 오른 후 미래사까지 들러 띠밭등 방향으로 길을 잡아 용화사로 향한다.....
◯ 용화사를 향하여...
미래사를 둘러보고 띠밭등을 거쳐서 용화사 광장으로 잡고...
띠밭등으로 향하며 바라본 케블카 탑승장이다...
띠밭등으로 향하는 길은 돌맹이 하나 없는 흙길로 맨발로 걷기에 딱좋을 길이다..
띠밭등이다...
띠밭등에서 바라본 통영바다...
이제 용화사 광장이 100m 남았다...
용화사 후문 입구다...
◯ 용화사 입구의 측백림
용화사 입구와 근처에는 측백림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용화사
용화사는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로 문화재 자료 10호로 미륵산 북쪽 봉평동에 있는 절이다. 1617년(광해군 9년) 통제사 윤천의 주선으로 성화가 창건, 정수사라 한 뒤 1622년 폭풍으로 파괴된 것을 삼장골에 중창하고 천택사라 했다. 1628년(인조 6년)에 화재를 당하자 행선이 남긴 건물을 옮겨 용화사를 지었다. 아미타삼존불을 모신 보광전과 그밖에 용화전, 명부전, 탐진당, 적묵당, 해월루 등이 있다.
◯ 용화사 입구 돌기둥
용화사에는 일주문이 없고, 해월루 옆에 나란히 세운 두 개의 돌기둥이 일주문 역할을 한다...
미륵도 주봉인 미륵산(461m) 기슭의 용화사(龍華寺·경남문화재자료 제10호)는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恩霑)이 정수사(淨水寺)로 창건한 절집이다.
고려시대인 1260년(원종 1년)에 산사태로 허물어지자 3년 뒤 자윤(自允)과 성화(性和)가 미륵산 제3봉 아래로 자리를 옮겨 짓고 천택사(天澤寺)라 했다. 조선시대인 1628년(인조 6년)에 불 탄 것을 1752년(영조 28년)에 벽담(碧潭)이 다시 짓고 용화사라 했다.
미륵사 전각 구조는 보광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탐진당과 적묵당이 맞보고 있고 해월루가 가로 막은 산지중정의 口자 형의 배치이며 보광전 옆으로 영각과 미륵전이 나란히 있다
◯ 용화사 해월루
문루인 목조건물 해월루
용화사 입구의 해월루다...
해월루. 현판으로 보면 절집 루대라는 느낌보다는 물 좋은 계곡이나 강가에 위치한 정자같다. 새로히 중건한 듯 루하진입은 불가하여 우회하여 보광전 중정으로 들어 설 수 있으며 보광전에서 보면 단층이다.
보광전쪽에서 바라본 해월루는 단층이다.
◯ 용화사 보광전 (경북유형문화재 249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기와집으로 다포계 건물 이다...창살은 빗살이다.
자연석 덤벙주초에 기둥에는 배흘림이 약하고 귀솟음은 두렷하지 않다.. 어칸에는 공포가 2개, 양협칸에는 1개가 배치되었다. 임란후에 나타나는 남해안의 여느 절집처럼 후면은 주심포계로 중건 당시의 절집 살림살이를 짐작케한다.
아미타삼존불을 모신 보광전..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신장탱
칠성탱
독성탱상과 독성탱
산신탱
우물천장
정면 기둥 위에는 어칸에 2구, 퇴칸에 1구씩의 공간포가 배치되어 있다...
괘불대
◯ 용화사 용화전
미륵불좌상을 봉안한 용화전. 성파 하동주의 글씨
용화전 석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43호)
◯ 용화사 명부전. 경각
명부전. 성파 하동주의 글씨
명부전에 봉안된 목조 시왕상은 전체적으로 신체가 장대하고 얼굴이 세장하다. 비량이 고준하여 무장의 위풍이 있는데 녹사의 사모 뿔이 길게 상향한 것을 보면 대체로 효종, 현종 연간의 전란 극복기 조성품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명부전에는 중앙에 지장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높이 120cm로 목조상이다.
용화사 명부전에 모셔져 있는 본존인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에 도명존자와 오른쪽에 무독귀왕,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귀왕·판관·사자상 등 모두 21구의 불상들이다.
용화사 사적기 등으로 미루어 보아 조성연대는 강희 19년, 즉 조선 숙종 6년(1680)으로 추정된다. 이 시왕상 등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에 소재했던 영은사가 폐사되면서 1903년에 용화사로 옮겨져 온 것으로 전해진다.
명부전의 좌측 1칸의 영각에는 효봉스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회광 승찬 영각 서각
◯ 용화사 불사리4사자법륜탑
불사리4사자법륜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양식의 원주석탑으로 진신사리 4과가 봉안되어 있다
용화사 주지스님이 인도 유학중에 부처님 진시사리 4과를 모셔와서 인도에서 불교가 융성했던 아소카 시대의 사리탑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진신사리 7과를 봉안하고 있는 불사리 4사자법륜탑
◯ 용화사 사적비
용화사 사적비
◯ 용화사 탐진당
탐진당 강당
◯ 용화사 요사 및 스님수행공간
선실인 적묵당
◯ 용화사 범종각
육모정 형태의 종루
종루... 8개의 기둥과 팔각의 지붕...
◯ 용화사 효봉(曉峰)선사 석조좌상
용화사를 창건한 효봉(曉峰)선사 석조좌상...
속성 이(李), 이름 찬형(燦亨), 호 효봉(曉峰). 일명 학눌(學訥). 평양 출생으로 할아버지에게 사서삼경을 배웠으며, 1913년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귀국후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가 되어 법조계에서 일했다.
1923년 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법관직을 버리고, 3년 동안 전국을 방랑한 뒤 1925년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출가했다.
출가 후 고승을 찾아 전국을 순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27년 금강산으로 돌아왔다.
이후 밤낮으로 수행을 거듭하였는데, 한번 앉으면 절구통처럼 움직이지 않아 '절구통 수좌(首座)'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법기암 뒤에 토굴을 짓고 들어가 수행하였으며 1931년 도를 깨닫고 1932년 유점사에서 구족계와 보살계를 받았다.
이후 전국의 적멸보궁을 찾아가 한 철씩 보내는 등 정진을 거듭하였다..
1936년에는 당대의 고승 한암(漢巖)과 만공(滿空)으로부터 도를 인가받았다.
1937년부터 10여년간 송광사 삼일암에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정혜쌍수(定慧雙修)에 대한 구도관을 확립하였다.
1947년 해인사 가야총림 방장(方丈)으로 추대되었고, 1954년 통영 미륵산에 미래사(彌來寺)를 창건, 1956년 네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 참가하고 돌아와 조계종 종회의장에 취임하였다.
1957년 종무원장이 되었으며 1958년 종정에 추대되고, 1962년 통합종단 초대 종정에 오르는 등 우리나라 불교계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평소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제자들을 엄하게 가르쳐 문하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밀양 표충사 서래각에 머무르던 1966년10월15일 오전에 입적하였다.
다비 후 나온 사리 50과를 송광사와 표충사· 용화사· 미래사 등에 나누어 모셨다...
효봉선사는 특히 남의 험담을 아주 싫어하셨다고 한다.
어느 한 스님이 여쭈기를 “술마시고 여자를 가까이 하는 스님들을 가려내 엄벌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술 마시는 것이 나쁜 일이란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도 나쁜 짓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럼 남의 험담을 하고 다니는 것은 나쁜 일이냐? 좋은 일이냐?” “.........”
“남의 나쁜 짓을 보고 나쁜 줄 알았으면 너나 잘 할 것이지 어째서 남의 잘못만 캐고 다니는 것이냐? 너나 잘해라.”.....
◯ 용화사 설법전
설법전 벽화
◯ 용화사 전경
미륵사 전각 구조는 보광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탐진당과 적묵당이 맞보고 있고 해월루가 가로 막은 산지중정의 口자 형의 배치이며 보광전 옆으로 영각과 미륵전이 나란히 있다.
◯ 용화사를 나가며...
절 뒤로 미륵산이 보인다.
후문쪽의 잘생깅 소나무...
미륵산 계곡에서 용화사 계곡까지 이어진...
용화사를 다 둘러 보고 후문쪽으로 해서 도로를 내려간다...
◯ 용화사 연못
용화사를 다 둘러 보고 후문쪽으로 해서 도로를 내려가다 해월루 앞의 연못이다.....
해월루 앞에는 작은 섬이 떠 있는 장방형의 연못이 있다. 이 작은 연못에도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연못의 장타원형은 자각각타(自覺覺他), 섬은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뜻하며 대승불교에서 수행의 이상을 나타낸 것이다.
'자각각타'란 스스로 깨달은 뒤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는 것이요, '자리이타'란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더불어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한다는 것....
◯ 용화사 부도전
부도전 입구에서 바라본 불사리 4사자법륜탑
효봉대종사 5층사리탑
◯ 용화사 입구의 측백림
용화사 입구와 측백나무 숲
용화사 근처의 측백림을 뒤로하고 용화사 광장으로 내려간다...
◯ 용화사를 내려가며...
용화사는 규모는 작지만 아담한 사찰에서 풍기는 긴 세월의 연륜을 읽을 수 있다. 향냄새가 풍기고 독경소리가 들려오는 고찰 용화사를 뒤로하고...
용화사 오르 내리는 고즈넉한 산책로를 따라 15분 정도 내려가면 용화사 광장이다...
광장 거의 다 내려오면 삼거리 내리막길에서 바라본 통영바다다... 우측으로 가면 띠밭등으로 오르는 등산로다...
'나무아미타불' 석상
'나무아미타불' 이라는 뜻을 불교에서는 '부처에 귀의한다'고 했다. '부처에 귀의한다'는 말은 부처에 돌아간다는 뜻이다. 즉 부처가 되기 위해 노력하므로써 부처에 다가 갈 수 있음을 뜻한다...
용화사 광장에 도착이다...
용화사 광장을 나와서 이제 포항으로 길 떠난다...
시간은 사람을 철들게 한다.
시간은 명약이다.
지나온 어제는 오늘을 철들게 하고, 오늘은 내일을 철들게 한다.
한주의 마무리를 미륵산에서 보내며, 새롭게 시작할 내일을 기대해 본다.화사하고 상큼한 행복한 오늘이었다....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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