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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륵산 미래사(경남 통영시)
    사찰여행/경상도 2013. 9. 14. 16:34

     

    미륵산 미래사

     

     

     

    2013.   9.   14.

     

    2013. 9.  8.불교산악회 산빛 어울림에서 함께한 통영의 미륵산 산행 .........

     

     

    맑은 아침의 공기냄새가 참으로 싱그럽다....

    포항출발(06:00) → 포항 → 대구 → 거창 → 진주 → 고성 → 통영 용화사 광장(10:30)에 도착이다.......   

    한창 벌초하는 철이라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걸렸다...

     

     

     

     

     

     

     

     

    산행시작을 용화사 광장 → 관음암  → 도솔암  →  미륵치  →  전망대  →  미륵산 정상  →  봉화대  →  미래사  →  띠밭등   →  용화사  → 용화사 광장 으로 정하고 ...

     

    용화사 광장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관음암. 도솔암을 보고 미륵산 정상에 오른 후 미래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 미래사를 향하여...

     

     

     

     

     

     

     

    미래사 쪽으로 이동한다...

     

     

     

     

     

     

     

     

     

     

     

     

     

     

     

     

     

     

     

     

     

     

     

    피톤치드의 보고인 편백나무군락을 지나면서 깊은 호흡으로도 충분히 축기(蓄氣)할 수 있겠다....

     

     

     

     

     

     

    미래사 일대의 울창한 "편백림"이 일상에 지친 몸과 눈을 한결 시원하게 해준다

     

      

     

     

     

     

     

     

     

     

     

     

     

     

     

     

    내려오며 미래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 자락에 있는 미래사는 1951년 효봉스님의 상좌였던 구산스님이 "석두" "효봉" 두 스님의 안거를 위하여 2~3칸의 토굴을 지은것을 시작으로 여러차례의 불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춘 사찰이다.

     

     

     

     

     

     

    미래사 들어가기전 등산객들 신발을 씻으라고...

     

     

     

     

     

     

     

     

     

    ◯  미래사 부도전

     

     

     

     

     

     

    석두스님,  효봉스님,  구산스님,  종욱스님의 사리탑이 안치된 미래사 부도전

     

     

     

     

     

     

    미래사 부도전

     

    미래사 입구에 있는 부도전은 동백과 편백나무 숲에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다.

    부도전에는 석두 보택(石頭寶澤, 1882~1954),   효봉 학눌(曉峰學訥, 1888~1966),   구산 수련 선사(九山秀蓮禪師, 1910~1983) 등 고승들의 부도와 탑비,   미래사 중창주인 자항당(慈航堂) 종욱 화상(宗旭和尙)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

    구산 선사의 스승은 효봉 선사이고,   효봉 선사의 스승은 석두 선사이다.

     

     

     

     

     

     

     스승 석두스님과  그의 상좌 효봉스님의 탑과 비

     

     

     

     

     

     

    구산스님비와 탑

     

     

     

     

     

     

    미래사 중창주인 자항당(慈航堂) 종욱 화상(宗旭和尙)의 부도

     

     

     

     

     

     

     

     

     

     

     

    열반에 들어서도 사제간에 정답게 선정에 드신 모습이 숙연하면서도 아름답다.     반배합장으로 예를 올리고 부도전을 떠난다.

     

     

     

     

     

     

     

     

    ◯ 미래사 효봉암과 미륵불

     

     

     

     

     

    산내에는 효봉 선사가 만년에 주석했던 효봉암과 동암(東庵)이 있어 수도하는 스님들이 항상 머물고 있으며,  효봉암 뒤에는 석조미륵불상을 조성하여 불자들이 참배하는 장소가 되고 있다.

     

     

     

     

     

     

     

    미륵대불 전망대 가는 길,  편백 나무가 어우러지고 명석 깔린 숲속 길을 약 200m 정도 가면 한려해상 국립공원 바다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에 남해 바다를 지그시 내려다 보고 계시는 미륵대불이 서 계신다.

     

     

     

     

     

     

    큰 도로에 이르자 다시 편백나무 숲이 하늘을 덮고 있다.

     

     

     

     

     

     

    가파른 비탈길을 구비구비 돌아서 올라가면 울창한 편백나무 숲이 나타난다.  빽빽하게 들어찬 편백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서 내려가면 효봉암 미륵불상을 만난다.

     

     

     

     

     

     

     

     

     

     

     

     

     

     

     

     

     

     

     

     

     

     

     

    효봉암 석조미륵불상

     

    석조미륵불상은 효봉암 바로 뒤 전망이 탁 트인 곳에서 남해 바다를 지긋이 내려다 보는 자세로 서 있다.   미륵부처님 전에 반배합장으로 예를 올리고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메시아로 강림하시기를 발원한다.

     

     

     

     

     

     

     

     

    미륵불상의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시무외인은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손의 형태로, 부처가 중생에게 무외(無畏)를 베풀어 포외(怖畏)에서 떠나게 하고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대자대비의 덕을 보이는 수인이다.

    여원인은 손가락을 펴서 밑으로 향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손 전체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손의 형태로,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대자대비한 부처의 덕을 표시한 수인이다.

    여원인과 시무외인을 동시에 취하는 손모양을 통인(通印)이라고 하는데,   통상 미륵불의 수인이라고 한다.

    미륵불상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의 불상들은 불상의 종류에 관계없이 거의 다 통인을 취하고 있다.

    석가모니불 입상(立像)의 경우에도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여원인이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바다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곳에 남해 바다를 지그시 내려다 보고 계시는 미륵대불이 서 계신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바다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인다...

     

     

     

     

     

     

     

     

     

     

     

     

     

     

     

     

     

     

     

     

     

    사찰림으로 조성된 편백나무숲.   아름드리 편백나무들의 상큼한 향기와 함께 주위의 정숙한 분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미래사 소유의 이 편백나무 숲은 전국에서 사찰임야로써는 유일한 것이다.

    이 편백나무 숲은 70여 년 전 일본인이 조성했다고 한다.   1945년 해방이 되어 일본인이 돌아가자 미래사에서 이 숲을 사들이고 잘 가꾸어 지금처럼 큰 숲이 된 것이다.

     

     

     

     

     

     

     

     

     

    ◯ 미래사 경내도와 안내문

     

     

     

     

     

     

     

    실제로 미륵산 용화사와 미래사,  관음암,  도솔암 스님들은 미륵불이 하생한 뒤 삼차에 걸쳐 설법할 자리로 모악산 금산사,  속리산 법주사에 이어 미륵산 용화사나 미래사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미래사는 원래 효봉 선사의 상수제자(上首弟子)였던 구산 선사가 석두,  효봉 두 스승의 안거(安居)를 위해 1954년에 세운 암자였다.

    이 절은 주로 효봉 선사의 문도들이 주지를 역임하면서 사세를 중흥시킨 선도량(禪道場)으로 효봉문중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다.

    미래사의 주지를 역임한 스님은 구산, 미산(彌山), 보성(菩成), 법흥(法興) 선사, 종욱 화상등이며 현재는 여진 스님이 주지로 계신다. 

    일각, 원명 스님도 이 절에 머물렀으며, 법정(法頂) 스님도 이곳에서 출가했다.

    동국대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면서 월간 법륜을 발행하는 등 불교운동을 펼쳤던 박완일 교수도 이곳에서 출가했다.

     

     

     

     

     

     

     

     

     

    ◯ 미래사 자항교

     

     

     

     

     

     

    "생멸의 차안에서 무한한 저 세계 해탈의 피안으로...  " 미래사 입구 불영담 위의 자항교(慈航橋) 에서..

     

     

     

     

     

     

    자항교라 이름 부쳐진 연못위의 원형 교각.   다리 출입을 인도하는 코끼리상이 있고  교각 측면에는 용의 조각이 섬세하게 이루어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작은 연못 불영담(佛影潭)에 놓인 자항교(慈航橋)를 건넌다.

    자항교는 자항당 종욱 화상을 기리는 뜻일 게다.   미래사를 품고 있는 미륵산이 잔잔한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연못가 초막에 안치한 작은 돌부처의 그림자도 물속에 잠겨 있다.

    '불영'이란 '부처님의 그림자'이니 불영담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

    부처님의 자비심이 그림자로 연못을 늘 비추고 있으니 이곳에 사는 수생 중생들은 얼마나 행복하리오!

     

     

     

     

     

     

    사찰입구에 있는 자그마한 연못 불영담의 모습이 아름답게 닥아 온다.

     

     

     

     

     

     

    용이 엎드리고 , 그위를 코끼리들이....

     

     

     

     

     

    연못가에 제법 큰 자라 한 마리가 햇살을 쬐러 뭍으로 올라왔다.   살며시 다가가니 물속으로 줄행랑이다.   편히 좀 쉬겠다는데,  괜히 쫓아 버렸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다.   그렇게 한 동안 뭍으로 나오지 않는 자라를 뒤로 하며 길을 떠난다.  

     

     

     

     

     

     

     

     

     

     

     

     

     

     

     

     

     

     

     

     

     

     

     

     

     

     

    불영담의 돌부처

     

    별로 관심없이 보였던 작은 불상인데 볼수록 묘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부처는 멀리 있지 않고 항상 내 옆에 가까이 있다는 그런.....

     

     

     

     

    ◯ 미래사로...

     

     

     

     

     

     

     

     

     

     

     

     

     

     

    ◯ 미래사  삼회도인문

     

     

     

     

     

     

    미래사 삼회도인문

     

     

    '미륵불이 오실 도량'인 미래사 삼회도인문(三會度人門)으로 들어선다.   사천왕문격인 삼회도인문 정면에는 '彌來寺' 편액이 걸려 있다..

     

     

     

     

     

     

     

     

     

     

     

     

     

     

     

    '삼회에 걸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설법하신다'는 뜻의 '三會度人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안쪽 정면에는 '三會度人門' 편액이 걸려 있다. 

    '삼회도인'이란 미래에 오실 미륵불이 '삼회에 걸쳐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문은 미륵불 도량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아니겠는가!

     

     

     

     

     

     

     

    법정스님이 출가한 경남 통영 미래사(彌來寺)

     

     

    이곳은 미륵도라는 섬이다.   '미륵의 섬에 미륵 부처님이 오실 절'이라는 뜻에서 미래사(彌來寺)....

     

    미래사는 근세의 큰 스승이셨던 효본대종사(曉峰大宗師)를 모시기 위해 서기 1954년에 전 승보사찰 방장 구산종사께서 두어 칸의 토굴을 지었으니 미래사의 시작이다

    효봉스님 이라는 큰 그늘에는 항시 늘푸른 수행자 , 삶의길을 묻는 산자들이 끊이질 않았다.

    제자로는 구산,  일각,  법흥,  보성,  원명,  박완일,  고은 등 헤아릴 수 없다.  당시 출가한 이로는 수산, 구암, 법정스님 등이셨다.

     

    면면이 이어져온 미래사를 오늘의 모습으로 중창 하신분은 서기 1996년 입적하신 자항당(慈航堂),  종욱화상 이셨다.   하나의 도량을 일군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귀한 일인가.....

     

     

     

     

     

     

     

    30여년동안 4동을 짓고 헐었으며 다시 오늘의 모습 8동을 지었다.  특히 아(亞)자형의 범종루는 보기드문 형태의 수작으로 꼽힌다.

    미륵용을 흘러내린 양 줄기에는 호봉암 구산대사가 있다.   현재는 스님의 수행처로 참배는 할수가 없다.

    작은 사찰이라도 오늘에 있을 수 있는 것은 한 두 분의 강고한 원력에 많은 분들의  동참으로써 지금에 이른다.

    하나하나 쌍여진 정성이 하도 지극하여서 성스럽기 까지한다.  이어서 가꾸고 발전하는것이 후손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 세상의 모든일에 부딧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슬픔없이 티끌없이 안온한것 이야말로 더 없는 행복이네』

     

     

     

     

     

     

    회랑 양쪽 벽면에는 사천왕상 대신 사천왕탱화를 봉안하였다.

     

     

     

     

     

     

     

    ◯ 미래사 대웅전

     

     

     

     

     

     

     

     

     

     

     

     

     

     

     

     

     

     

     

     

     

     

     

     

     

     

     

     

     

     

     

     

    대웅전의 석가모니삼존불상

     

     

     

     

     

    석가모니본존불의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미륵보살이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다.

     

     

     

     

     

     

     

     

     

    대웅전 동쪽의 불단에는 신장상(神將像)이 모셔져 있고,  그 뒤에는 신장탱화가 걸려 있다.

     

     

     

     

     

     

     

     

    대웅전 내부 벽면에는 부처님의 팔상성도의 벽화가 모셔져 있다.

     

     

     

     

     

     

     

    1.도솔래의 상

     

     

     

     

     

     

     

    2. 비람강생 상

     

     

     

     

     

     

     

    3. 사문유관 상

     

     

     

     

     

     

     

     

     

     

     

    4. 유성출가 상

     

     

     

     

     

     

      5. 설산수도 상

     

     

     

     

     

     

     6. 수하항마 상

     

     

     

     

     

     

     

     

     

     

     

    7. 녹원전법 상

     

     

     

     

     

     

     8. 쌍림열반 상

     

     

     

     

     

     

     

     

     

     

     

     

     

     

     

     

     

     

     

     

     

     

     

     

     

     

     

     

     

     

    ◯ 미래사 적광탑

     

     

     

     

     

    미래사 대웅전과 적광탑

     

     

     

     

     

    대웅전 앞에 고즈넉이 자리잡은 적광탑에는 티베트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안온 한것,  이것이야 말로 더 없는 행복 이라네

     

     

     

     

     

     

    하늘 위로 쭉 뻗어 나가는 형상으로 우직하게 서 있는 석탑은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치아사리를 모셨다.

     

     

     

     

     

     

     

     

     

     

     

     

     

     

     

     

     

     

     

     

     

     

     

     

     

     

     

     

     

     

     

     

     

     

     

     

     

     

     

     

     

     

     

     

     

     

     

     

     

    ◯ 미래사 도솔영당

     

     

    대웅전을 나와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 건물인 도솔영당으로 들어가 큰스님들의 진영 앞에서 반배합장의 예를 올린다.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작고 아담한 '도솔영당' 이고 석두스님과 효봉스님,  중창주인인 종욱스님 등의  아홉 스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도솔영당 현판 

     

     

     

     

     

     

     

     

     

     

    도솔영당의 백하 청민(白荷晴旻), 용악 혜견(龍嶽慧堅, 1830~1908), 백운 보홍 선사 진영

     

     진영을 통해서 용악 선사로부터 석두 선사를 거쳐 계봉 선사로 그 선맥이 이어져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매우 겸손한 성품의 용악 선사는 오랫동안 하루 한끼만 먹는 수행을 하면서 평생 금강경을 독송하다가 입적한 것으로 유명하다

     

    백하, 백운 두 선사는 용악 선사의 제자들이다.

     

     

     

     

     

     

     

    도솔영당의 효봉 학눌, 석두 보택, 구산 수련 선사 진영

     

     

    백하 선사에게 출가하여 보택이란 법명을 받은 석두 선사 평소 설법을 할때 달마조사송(達磨祖師頌)을 즐겨 인용하였다.

      財色不忘莫聞道  재색불망막문도    재물과 색을 버리지 못하면 도를 묻지 말고

      貢高自是體參禪  공고자시체참선    내 잘난 생각을 가진 채 참선을 하지 말라

      煩惱斷盡生死斷  번뇌단진생사단    번뇌망상 끊어지면 생사 또한 끊어지는 것

      更無別法與人傳  갱무별법여인전    이밖에 또 다른 법은 일러줄 것이 없노라.

     

     

    효봉 선사 제자들에게 설법할 때 항상 계(戒), 정, 혜, 삼학(三學)을 설했다.

    삼학이란 보조국사의 정혜쌍수를 바탕으로 하고 계를 더 보탠 것이다.  이처럼 선사는 보조국사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선사의 법명 학눌(學訥)도 바로 '지눌을 배운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다.

    1946년에는 가야산 해인사의 종합수도원인 가야총림(伽倻叢林) 초대 방장(方丈)으로 추대되었고,  1950년에는 부산 동래의 금어선원(金魚禪院)으로 옮겼으며,  1951년부터는 통영 미륵산 용화사 도솔암(兜率庵)에 머물렀다.

    1954년 구산 선사가 미륵산 남쪽 기슭에 창건한 미래사에 주석하던 중 일어난 불교계의 정화불사운동(淨化佛事運動)을  지도하기 위해 서울 선학원(禪學院)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듬해 다시 미래사로 내려왔다.

    1956년 조계종의 의결기구인 종회(宗會) 의장,  1957년 종무원장을 역임한 효봉 선사는 1958년 조계종 종정에 추대된 뒤 팔공산 동화사(桐華寺)에 머물렀다.   1962년 4월 11일 조계종과 태고종 통합종단 초대 종정에 추대된 뒤에는 미래사에 주석하였다.

    노환으로 건강이 나빠지자 치료차 동화사로 자리를 옮겨 머물면서 수행승들을 지도하였다.

    1966년 5월에는 다시 밀양 표충사(表忠寺) 서래각(西來閣)으로 옮겨 머무르다가 10월 15일 정좌한 채 입적하였다.

    다비(茶毘)를 하자 사리 50여 과와 정골이 많이 나와 송광사와 표충사,  용화사,  미래사 등 선사가  머물렀던 사찰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吾說一切法 都是早騈拇  오설일체법 도시조변무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건 모두 군더더기

      若問今日事 月印於千江  약문금일사 월인어천강     오늘 일 묻는가 달이 천강에 비치니라.

    (효봉 선사 열반송)

     

    효봉 선사는 좌탈입망하는 그 순간까지 '무(無)라..... 무라.....' 하였는데,  이는 선사가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이라는 화두를 평생의 수행도구로 삼은 본분납자(本分納子)였음을 말해준다.

    평소 계율을 철저하게 지키고 제자들을 엄하게 가르치기로 소문난 선사의 문하에서는 조계종의 수행승들을 지도하는 훌륭한 고승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이른바 효봉문중이라는 것이다.  

    선사의 제자로는 구산 선사를 비롯해서  법정 스님 등이 있고,   환속한 제자에는 고은 시인과 동국대 박완일(일관) 교수가 있다.

    일초라는 법명으로 미래사 원주 소임을 맡아보던 시인 고은은 스님이 될 자질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효봉 선사는 이제 갓 들어온 행자를 법정이라 부른 반면에 일초 스님에게는 법치(法痴)라는 별명으로 부르면서  '법치는 중노릇 못하고 곧 환속할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효봉 선사의 예언대로  일초 스님은 결국 환속하여 시인이 되었다.

     

    석두 선사와 상좌인 효봉 선사의 나이는 불과 6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효봉 선사의 나이가 더 들어 보여서 손님이 찾아와 인사를 할 때 석두 선사보다 효봉 선사에게 먼저 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데..... 그래도 석두,  효봉 두 선사는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고 한다.

     

    석두 선사가 71세 되던 해인 1952년에 병이 들어 몸이 불편하게 되자  효봉 선사는 스승을 위해 통영 미래사로 주석처를 옮겨 극진하게 간병했다.

    1954년 4월25일 오후 8시30분 석두 선사는 세수 73세, 법납 57세로 열반에 들었다.

    석두 선사로부터 효봉,  향봉,  화봉,  계봉 선사를 비롯해서 해봉 석정(海峰石鼎), 석봉 인선(石峰仁善), 은봉 원광(隱峰圓光) 선사 등 뛰어난 제자들이 나왔다.

    출가하기 전 효봉 선사는 일제시대 조선인 최초의 판사였다.  1923년 한 피고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는데,  그가 사형을 당한 후에 진범이 잡혔다.   이에 선사는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이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껴 판사직을 내던지고 엿판 하나만을 든 채 참회와 고행의 방랑길에 올랐다.

    38세라는 늦은 나이에 당시 금강산 도인이라 불리던 신계사(神溪寺) 보운암(普雲庵)의 석두 선사에게 출가한 효봉 선사는 한번 앉으면 움직일 줄 모른다고 하여 '절구통 수좌(首座)'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토굴속에서 용맹정진하였다.

    1931년 선사는 마침내 득도하여 토굴벽을 깨고 나와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올리자 석두 선사는 오도를 인가하였고,  1936년에는 한암(漢巖), 만공(滿空) 두 고승으로부터 도를 인가받았다.

      海底燕巢鹿抱卵  해저연소록포란      바다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火中蛛室魚煎茶  화중주실어전차      불속 거미집에 물고기가 차 달이네

      此家消息誰能識  차가소식수능식      이 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리오

      白雲西飛月東走  백운서비월동주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효봉 선사 오도송)

     

    효봉 선사는 1937년부터 10년간 조계산 송광사 삼일암(三日庵)에 주석하면서 후학들에게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의  정혜쌍수(定慧雙修)에 대한 확고한 구도관을 열어주었으며, 이때 대종사(大宗師)의 법계(法階)를 받았다.

     

     

    구산 선사 1937년 송광사 삼일암(三日庵)에서 효봉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1938년 사월 초파일에 5계를 받았고,  1940년 통도사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해담(海曇) 화상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은 뒤 통도사 백련암(白蓮庵)에서 정진하였다.

    1946년 해인사에 효봉 선사를 방장으로 한 가야총림이 개설되자 도감(都監)의 소임을 맡았다.

    6.25 전쟁으로 가야총림이 흩어진 뒤 진주 응석사에서 정진하던 중 1951년 정월 효봉 선사에게 오도송을 지어 보내고 스승으로부터 법을 인가받았다.

     

      深入普賢毛孔裡   심입보현모공리      보현의 털구멍 속으로 깊이 들어가

      促敗文殊大地閑   착패문수대지한      문수를 붙잡으니 대지가 한가롭구나

      冬至陽生松自綠   동지양생송자록      동짓날에 소나무가 저절로 푸르르니

      石人駕鶴過靑山   석인가학과청산      돌사람이 학을 타고 청산을 지나가네

    (구산 선사 오도송)

     

    구산 선사는 한결같이 '이 뭐꼬?(是甚麽)' 화두로써 법문을 삼았고, 많은 필적을 남겨 대중들의 불연을 깊게 하였다.

    또한 45년동안 '일수좌'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항상 정진하면서 가는 곳마다 절을 짓고 고치는 등 가람수호에도 힘썼다.

     

    선사는 특히 해외포교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1972년에는 운허(耘虛) 화상과 함께 미국 카멜(Camel)의 삼보사(三寶寺) 개원식에 참석하고,  이듬해 미국인 제자 현조(玄照)와 귀국하여 송광사에 국제선원(國際禪院)을 개원하였다.

    1976년에는 외국인을 위한 법문을 모아 영역본 '나인 마운틴즈(Nine Mountains)'를 출간하여 해외에 널리 소개하였다.

    1979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 고려사(高麗寺),  1982년에는 제네바에 불승사(佛乘寺),  10월에는 카멜에 대각사(大覺寺)를 개원하였다.

     

    1983년 병이 들자 구산 선사는 '내 몸에 주사하지 말 것,  좌선의 자세로 열반할 것이니 좌관을 사용하고 좌장을 해줄 것,  화합 단결하여 선풍(禪風)에 누를 끼치지 말 것,  자신을 속이는 중노릇을 하지 말고 실답게 수행에 임할 것'을  제자들에게 당부하고 12월 16일 입적하였다.

    다비를 한 뒤 나온 53과의 사리는 삼일암에 탑을 세워 안치하였다.

     

    滿山霜葉紅於二月花          만산홍엽홍어2월화         온 산의 단풍이 봄꽃보다 더 붉으니

    物物頭頭大機全彰             물물두두대기전창          삼라만상 큰 기틀 모두 드러났도다

    生也空兮死也空                생야공혜사야공             삶도 空이요 죽음 또한 空하니

    能仁海印三昧中微笑而逝    능인해인삼매중미소이서   부처님 海印三昧 속에 미소 띠며 가노라.

     

    (구산 선사 열반송)

     

     

     

     

     

     

     

    도솔영당의 화봉 유엽(華峰柳葉),   향봉 향눌(香峰香訥, 1901~1983),  계봉 암우(溪峰巖雨) 선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효봉 선사의 사제(師弟)로 평생을 좌선정진(坐禪精進)으로 일관한 향봉 선사 재가 불자 시절  덕숭산 금선대에서 주석하던 당대의 고승 만공(滿空) 선사와 인연을 맺었다.

    그 몇 년 뒤 선사는 1940년 송광사에서 석두 선사를 은사로 모시고 사미계를 받았다.

    향눌,  향봉이란 법명과 법호도 은사인 석두 선사로부터 받은 것이다.

    1942년 금정산 범어사 금강계단에서 동산(東山) 선사를 계사로 보살계와 구족계를 받은 선사는 금강산으로 떠나 효봉 선사가 거쳐간 마하연선원(摩訶衍禪院)에서 세차례 하안거를 지내며 일심으로 정진했다.

    선사는 정진하는 틈틈이 만행(卍行)을 떠나 북한의 명승고적을 순례했다.   시화에도 능했던 선사는 만행을  통해 부처님을 모신 도량을 참배하고 중생들을 만나면서 금강산의 만폭등과 비로봉, 구룡폭포,  삼선암,  총석정 등 북한의 명승지를 화폭에 담기도 했다.

    이후 선사는 덕숭산 수덕사에서 만공 선사 회상(會上),   오대산 상원사 선원에서 한암(漢岩) 선사 회상에서 정진한 뒤,  금정산 금어선원(金魚禪院)을 비롯해 도봉산 망월사와 미륵산 용화사의 조실(祖室)로 추대되었다.

    1954년부터 선사는 상좌인 청월(淸月) 스님이 강릉의 만월산 백운동 옛절터에  세운 백운사(白雲寺)에서 20여 년간 주석하였다.   1977년 선사는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구산 선사의 권유로  출가본사인 송광사로 돌아와 임경당(臨鏡堂)에 머물렀다.

    '선(禪)은 내 생애의 전부였다.' 고 할 정도로 선사는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인 간화선(看話禪)을 참구하였다.  그러면서도 '계행(戒行)이 없으면 스님이 아니다.'라고 할 만큼 계를 지켜야 함도 중요시했다.

    선사는 부처님 법문 중의 '거문고를 탈 땐 줄이 너무 늘어져서도 안 되고 너무 조여서도 소리가 고르지 않는 법이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선 중도(中道)가 제일이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수행에 있어서 중도를 강조하였다.

    만년에 선사는 서울 법련사로 올라와 머물다가 1983년 5월31일 세수 83세,   법랍 44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산골(散骨)은 선사가 주석했던 만월산 백운사에서 했다.   선사의 제자로는 성호(性浩) 스님을 비롯해서 청현(淸賢),   청우(淸宇),   청욱(淸旭),   청은(淸恩),   철형(哲亨),   철우(哲牛),   청전(淸典),   청학(淸鶴) 스님 등이 있다.

     

    명호에 두 번이나 들어 있는 '향'자처럼 선사는 대중들에게 깨달음의 향기를 전해주는 스님이었으며,

    한평생 단 세 벌의 옷과 한 벌의 발우만 가지고 수도에 정진한 본분납자였다.   한 마디로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삶이었다.

    송광사 경내에 있는 선사의 비석에 새겨진 게송에서도 그러한 풍모가 잘 나타나 있다.

     

    白雲洞口淸溪響   백운동구청계향    백운동구에 물소리 맑게 울리고

      滿月山頭晏日遲   만월산두안일지    만월산 산마루에 걸린 해 한가하도다.

      萬有從容眞理說   만유종용진리설    삼라만상 소리 없이 진리를 설하는데

      云何贅論更加之   운하췌론경가지    군더더기 더해서 무엇하리오.

     

    화봉 선사 신계사의 석두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여 '석두 하 삼봉(효봉, 화봉, 금봉 선사)'이라  불릴 정도로 법력이 높은 스님이었다.

    양주동 박사는 화봉 선사를 일컬어 '색계를 거닐며  공을 외치던 당대의 걸승'이라고 말한 바 있다.

     

    효봉 선사의 사제이자 법정 스님의 사숙인 계봉 선사 효심이 깊은 스님으로 유명하다.

    석두 선사가 노환이 들어 효봉 선사의 주선으로 미륵산 미래사로 거처를 옮겨 머물고 있을 때,  상좌인 계봉 선사는 스승의 대변을 맛보고 병세의 차도를 살폈을 만큼 효심이 깊었다.

    선사는 죽을 때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는 것이 싫어서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법정 스님은 전한다.  그리하여 선사는 자신의 육신조차 수생 중생들에게 보시하였던 것이다.   입적하면서도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져  불고기 밥이 되게 했던 선사의 뜻이 거룩하다.

     

     

     

     

     

     

     

    한쪽 벽에는 미래사 중창주 자항당 종욱 화상의 사진이 따로 모셔져 있다.

     

    종욱 스님은 1985년 낡은 대웅전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웅장한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이어 조사전(祖師殿, 1987),   삼층석탑인 적광탑(1988),   요사 2채와 삼회도인문(1989),   범종각(1994) 등을 차례로 세웠다.  그리하여 미래사는 구산 선사가 창건한 당시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중창되었다.

    또한 종욱 스님은 사찰 인근에 차밭(茶園)을 조성하여 다도(茶道) 보급에도 앞장섰으며,  1986년에는 통영시 당동에 포교원인 여여원(如如院)을 설치하여 청소년과 어린이 등을 대상으로 통영의 불교 발전에 이바지하다가 1996년에 입적하였다.

    일세를 풍미했던 대선사들의 진영을 뵙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깨달음이다.   대선사들이 남기신 오도송이나 열반송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죽비가 되어 날아든다.

     

     

     

     

     

     

     

     

    ◯ 미래사 범종루

     

     

    자항선원의 남쪽에 있는 범종루(梵鐘樓)로 발길을 돌린다.

     

    1993년 6월에 범종루를 창건하였는데 한국에서는 보기드문 "십자 팔각누각(十字八作樓閣)"으로 지어져 모양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亞字形 범종각  건물 양식이 여늬 범종각과 달라 특이하게 보인다

     

     

     

     

     

     

     

    입구의 소박한 담장의 모습 넘어로 보이는 범종각 지붕의 모습.

     

     

     

     

    미래사  입구의 좌측에 자리해 있는데 '범종루'는  범종,  운판, 목어, 법고 - 4물을 비치한 전각인데 소리로써 불음을 전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범종각은  보기 드문 십자팔작누각으로 매우 팔작지붕 형식의 곧 비상할것 같은 날렵한 아(亞) 자형의 보기드문 수작인 범종루다.

     

     

     

     

     

     

     

     

     

     

     

     

     

    ◯ 미래사 설매당과 황매실

     

     

    스님이 머무는 곳인 '설매당'과  '황매실'인데 종무소와 여진 주지스님의 주지실이 이곳에 있다.

     

     

     

     

     

    스님들의 요사채인 '설매당' 마루에는 따뜻한 햇살이 가득하다.     '설매당' 한쪽 방에는  '황매실(黃梅室)' 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설매당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황매실 앞 마루에 내놓은 여러 개의 화분에는 예쁜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雪梅堂' 편액 글씨는 구산 선사의 필적이다.

     

     

    " 세상의 모든 일에 부딛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슬픔없이 티끌없이 안온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행복이네."

     

     

     

     

     

     

     

     

     

     

     

     

     

     

     

    자항선원에서 바라 본 종무소

     

     

     

    ◯ 미래사 자항선원

     

     

     

     

    좌측에 위치한 '자항선원'

     

     

     

     

    '慈航禪院'  편액 글씨는 구산 선사의 필적이다.

     

     

     

     

     

    석사자(石獅子)와 타우자(打牛子)는 구산 선사의 관지(款識)다.

    '석사자'는 바늘로 살을 찔러도 도리어 바늘이 부러질 정도로 굳건하면서도 사자처럼 용맹스런 선승의 기개를 나타낸 이름이고,     '타우자' 는 보조국사의 별호인 '목우자(牧牛子)'를 본받은 것이다.

    이름을 통해서도 효봉 문중이 보조국사의 선풍을 이어받고 있음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하안거가 끝난 자항선원 섬돌에는 스님들의 신발도 보이지 않고 고요만이 감돈다.

     

     

     

     

     

    자항선원과 도솔영당

     

     

     

     

    ◯ 미래사 불유정

     

     

     

     

     

    설매당의 남쪽에 있는 우물인 '불유정(佛乳井)'의 물을 떠서 목을 축인다.   '부처님의 젖'이라서 그런지 달고도 시원하다.

     

     

     

     

     

     

     

     

    우물가에서 시주하며 물 한 컵을 떠 마셨다.   잠시나마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한결 가볍다는 느낌이다.    생각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집착하는 것도,  이 모두가 고통이다.   인간은 고통이란 짐을 억지로 짊어지며 살고 있다.   이런 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을까?

    고요함만 돌고 있는 절집에서 명상의 시간을 보냈다.   해탈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으로.....

     

     

     

     

    우측에 위치한 약수전이다. 정식명청은 '불유정' '생명의 근원이 물인 것처럼 인생의 근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단다.  목 마른 이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다.

     

     

    '행복'이란 정의를 적어 놓은 경구가 눈길을 끈다.

    "세상의 모든 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슬픔 없이 티끌 없이 안운한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행복이네."

     

     

     

     

     

     

     

     

     

     

     

     

     

    ◯ 미래사  선열당

     

     

     

     

    우측  뒤편으로 가면 선열당이 보인다.   여기서 맛있는 절밥인 공양밥이 나오는 곳인데 문앞에는 덩쿨로 둘러쌓여 있어 마치 동화 속의 숲속마을에 놀러 온 느낌이 든다

     

     

    ◯ 미래사 전경

     

     

     

     

    삼회도인문 안으로 들어서니 안마당(중정)을 중심으로 정면에 대웅전(大雄殿),  동쪽과 서쪽에 요사채인 설매당(雪梅堂)과 선원(禪院)인 자항선원(慈航禪院)이 각각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삼층 석탑인 적광탑(寂光塔)이 세워져 있다.

    대웅전의 서쪽에는 큰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도솔영당(兜率影堂)이 자리잡고 있다.

     

     

     

     

    도솔영당과 대웅전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삼회도인문

     

     

     

     

     

     

     

     

     

     

     

     

     

     

     

     

     

     

     

     

     

     

     

     

     

     

     

     

     

     

     

     

     

     

     

     

     

     

     

     

     

     

     

     

     

     

     

     

     

     

     

     

     

     

     

     

     

     

     

     

     

     

     

     

     

     

     

     

     

     

     

     

    ◯ 미래사를 나가며...

     

     

     

     

     

     

     

    미래사는 깨끗하고 아늑한 사찰이었다.

     

     

     

     

    삼회도인문을 나서 측백림을 향해 떠난다...

     

     

     

     

     

    다시 띠밭등으로 해서 용화사로 가기로 하고...

     

     

     

     

     

     

     

     

    아쉬운듯 측백림을 지나서

     

     

     

     

     

     

     

     

     

    용화사 광장까지가 2.3km라 한다.

     

     

     

     

     

     

     

     

     

     

     

    용화사 광장 방향을 향해 띠밭등으로  산행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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