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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경기도 여주)여행방/경기도 2008. 4. 26. 13:48
영릉
2008. 4. 25.
중부 농촌지도자.생활개선회 선진지 견학으로 함께 했다..
영릉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합장릉)
영릉은 능서면 왕대리 북성산의 서남쪽 구릉에 남동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이 망한 후 거의 관리가 이뤄지지 않다가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영릉 성역화 사업’ 지시로 인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입구 솔밭
영릉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에는 세종의 어진(御眞)·기록화 ·천문기기· 악기· 인쇄기구 등의 유물이 전시된 세종전(世宗殿)이 있으며 우측에는 재실(齋室)과 세종대왕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주변의 잔디밭에는 실물을 모방해 만든 앙부일구(仰釜日晷, 해시계)· 관천대(觀天臺)· 측우기(測雨器) 등이 야외 전시되어 있어 참배객들의 눈길을 끈다. 이어 훈민문(訓民門)을 지나면 왼편에 큰 연못이 있고 정면으로 홍살문이 보이는데 그 안쪽의 아늑한 곳에 영릉이 자리 잡고 있다.
세종전
1977년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개관한 단층 건물로 세종대왕의 어진이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나타내는 그림들을 비롯하여 세종대왕이 편찬한 책, 어·축·박·편경·향비파 등의 악기와 당시 제작하고 정비했던 정남일구. 혼천의, 금속활자, 여러 총통류 등의 발명품, 훈민정음 안해본, 용비어천가 등의 서책류가 있다.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묘인 영릉의 어정문 오른쪽에 있다.
세종대왕동상
세종전의 관람을 마치면 훈민문을 통하여 능으로 이동하는데 잘 정비된 공원이 눈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홍살문과 정자각의 일치를 두고 본다면 능침은 약간 어긋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각도로 치면 30도 정도....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고 해야 할까? 비껴있는 모습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비각과 정자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라간과 수복방이 있다.
세종대왕릉 앞에 들어서자 정자각이 능을 가리고 서있다. 이곳은 제물을 차리고 제례를 지내는곳으로 정자각을 위에서 보면 T자모양을 하고 있는데 한자의 '丁'자와 같다고 하여 정자각이라 불리운다.
정자각의 관람포인트는 위 사진처럼 정자각 동편으로 신계 좌우에 동계가 두개 설치되어 있는 점이 특이한 부분이다.
정자각 오른족으로는 '영릉비'가 서 있다.
자각을 위에 영릉(세종대왕릉)이 위엄있는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세종대왕릉에는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설치되어 있다.
비각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바로 능침(陵寢)이 나타난다. 능역의 앞쪽에는 3단의 계체석(階砌石)을 설치하고 뒤쪽에는 곡장(曲墻)을 둘러 토사(土砂)의 유입을 방지하였으며 예종대(睿宗代)에 천릉하면서 새로 조성한 석물을 배설하였다. 봉분에는 난간석을 설치하고 주위에 석호(石虎, 높이 96㎝ 폭 56㎝ 두께 146㎝)와 석양(石羊, 높이 87㎝ 폭 56㎝ 두께 163㎝)을 각 2쌍씩 두어 나쁜 기운[邪氣]의 침입을 방지하였다. 그리고 봉분 앞으로 상석 2좌와 장명등(長明燈, 총높이 약 297㎝)을 놓았는데 각 상석에는 나어두(羅魚頭)가 장식된 고석(鼓石)이 4개씩 받치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8각 대석(臺石)을 갖춘 망주석(望柱石, 총높이 약 306.5㎝)이 세워져 있다. 또한 계체석 사이의 공간에는 복두공복(㡤頭公服)을 착용한 문인석(文人石, 높이 253㎝ 폭 90㎝ 두께 80㎝) 1쌍과 갑주(甲胄)를 걸치고 장검(長劍)을 땅에 꽂은 채 시립(侍立)하고 있는 무인석(武人石, 높이 248㎝ 폭 86㎝ 두께 84㎝) 1쌍이 석마(石馬, 높이 119㎝ 폭 58㎝ 두께 156㎝) 2쌍과 더불어 영릉을 호위하고 있다.
재실.
재실은 홍살문 밖에서도 조금 떨어진곳에 있어 제관이 머물며 제례를 준비하던 집이다.중부 농촌지도자.생활개선회 선진지 견학으로 함께한 영릉을 나와 신륵사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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