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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페소 유적 발굴도시
    터키 2007. 1. 30. 21:24

    에페소 유적 발굴도시

     

     

     

    2007. 1.  30.

     

      

     

     2007.  1. 7.   여행 7일째날 ,  고대도시 에페소 유적을  여행하는 날이다... 

     

     에페소에서의  일정도 일찍 시작됐다. 오늘은 고대도시 에페소 유적 중에서 사도요한의 교회를  미리 돌아 본 후 쉬린제 마을에서 점심 식사 후 에페소 발굴도시로 갈  예정이다.

     

     

    에페소(에베소)는 성서에 나오는 유서깊은 고대도시다.

    에페소는 현재 이즈미르 주의 셀축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기원은 BC 6,000년경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래의 연구 조사와 발굴 작업을 통하여, 에페소와 현재 성이 있는 아야술룩 언덕 주변의 고분 지역이 청동기 시대와 히타이트 시대의 거주지였음이 밝혀졌으며,  히타이트 시대에 이 도시는 '아파사스'로 불렀다.

     

     

     

     

     

     

     

     

     

    터키 유적지에서의 우리나라 기업 삼성에서 만든  에페소의 역사 설명 한글 간판이다...

     

    BC 1,050년경 그리스의 이주민들이 고대 항구 도시 에페소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으며,   BC 560년경 에페소의 중심지는 아르테미스 신전 주위로 옮겨졌다.

    현재 위치의 에페소는 BC 300년경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장군인 리시마코스에 의해 최초로 건립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최고의 황금기를 누린 에페소는 소아시아 주의 수도이자 최대의 항구도시로서 당시 20만명이 거주하였다.

    비잔틴(동로마) 시대에 에페소의 중심지는 최초의 위치인 아야술록 언덕으로 다시 한번 옮겨졌다.

     

     

     

     

     

     

     

     

    매표소를 통해 첫번째 보이는 신전터

     

     

     

     

     

     

    셀축 쪽의 입구에서부터 에페소 고대 도시를 탐험한다. 말 그대로 탐험이다. 대리석의 페허 속을 거니는 기분은 꼭 고대 도시의 탐험과 같은 기분이었다.

     

     

     

     

     

     

     

    총독이 살았던 관저가 위치했던 곳이다

     

     

     

     

     

     

     

     

     

     

     

     

     

     

     

     

     

     

     

     토기로 만든 당시의 수도관

     

     

     

     

     

     

    로마시대의 법정이나 상업거래소,   집회장으로 사용된 건물인 바실리카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기 기독교도인들이 있다는 암호 표식이다

     

     

     

     

     

     

     

     

     

     

     

     

     

     

     

     

     

     

     

     

     

     

     

     

     

     

     

     

     

     

     

     

     

     

     

     

     

     

     

     

     

     

    에페소에서는 세 가지의 건축 양식을 다 볼 수 있다.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이다.   이오니아의 수도이기도 했던 이 에페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코린트식으로  기둥머리에 아칸사스 잎을 조각한 화려하고 섬세한 기둥이다.

     

     

     

     

     

     

     

     

     

     

     

     

     

     

     

     

     

     

     

     

     

     

     

     

     

     

     

     

     

     

     

     

     

     

     

     

     

     

     

     

     

     

     

     

     

     

     

     

     

     

     

     

     

     

     

     

     

     

     

     

     

     

     

     

     

     

     

     

     

     

     

     

     

    로마 교황이 다녀간 것을 기념해 세웠다는 신전이다.

     

     

     

     

     

     

     

     

     

     

     

     

     

     

     

     

     

     

     

     

     

     

     

     

     

     

     

     

     

     

     

     

     

     

     

     

    에페소가 주신으로 섬겼던 아르테미스 여신의 부조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니케(NIKE 승리)의 여신상으로 양손에 종려나무 가지와 월계관을 들었다.  나이키 로고의 힌트를 여신이 입고  있는 옷자락에서 얻었다 한다.

     

     

     

     

     

     

     

     

     

     

     

     

     

     

     

     

     

     

    여러 신전을 지나 도서관이있는 도시의 중앙으로 내려가는 길

     

     

     

     

     

     

     

     

     

     

     

     

    경사진 길의 내리막을 가다보면 구레테스 도로가 끝나는 부분에 헤라클레스의 문이 2층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   여기에 있는 두개의 기둥에는 네미아,  사자 가죽을 뒤집어쓴 헤라클레스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어서 이 문을 헤라클레스의 문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네미아 골짜기에 사는 사자를 죽였다고 하는데 이 사자를 죽이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열 두 가지 일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이 문은 귀족과 평민의 경계선이 되었다 한다.

     

     

     

     

     

     

     

     

     

     

     

     

     

    죽어서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했던 귀족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신체상을 많이 만들어 두고 주문이 들어오면 손과 얼굴을 제작하여 조립하였다고 한다.

     

     

     

     

     

     

     

     

     

     

     

     

    로마황제가 다녀간것을 기념해서 세운 분수대라한다.

     

     

     

     

     

     

     

     

     

     

     

     

     

     

     

     

     

     

     

     

     

     

     

     

     

     

     

     

     

     

    당시 목욕탕이 있었던 건물이다.

     

     

     

     

     

     

    인물상 양옆으로 물이 들어왔던 상수도관이 보인다.

     

     

     

     

     

     

     

     

     

     

     

     

     

     

     

     

     

     

    목욕탕은 고온탕. 온탕. 냉탕등으로 지어졌다 한다.

     

     

     

     

     

     

     

     

     

     

     

     

     

     

     

     

     

     

     

     

     

     

     

     

     

     

     

     

     

     

     에페소는 로마시대 유적이 비교적 많이 복원되어 있었다.

     

     

     

     

     

     

     

     

     

     

     

     

     

     

     

     

     

     

     

     

     

     

     

     

     

     

     

     

     

     

     

     

     

     

     

     

     

     

     

     

     

     

     

     

     

     

     

     

    첫번때 문 아치 위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테티스가 조각되어 있다.

     

     

     

     

     

     

    에페소 고대 도시 중 구레테스 도로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히드리아누스신전의 문이다. 이 건물은 138년경에 지어져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졌다.   아치형으로 된 문에는 행운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이 있고 코린트식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그 뒤 안쪽 반원형에는 메두사의 조각상이 아칸사스 잎을 들고 있었다.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건물로 여기의 메두사는 아름다운 메두사의 모습으로  머리가 뱀이 아닌 타래 머리로 되어 있다.

     

     

     

     

     

     

    하드리아누스 신전의 두번째 문에는 메두사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위에서 소개한 신전 전면 4개의 기둥위에 만들어 놓은 2개의 아치는 에페소 유적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히드리아누스신전은 도미티안 신전 이 후 두 번째로 로마의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AD 138년에 지어진 이 신전은 에페소스 시민들에 의해 지어져 로마의 황제였던 히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졌다. AD 117-138년 사이에 로마제국의 황제로 있었던 히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의 오현제 중 하나로 추앙 받는 현황이었다.   선황의 조카였던 히드리아누스는 선황이었던 트리야누스 황제의 양자로 입적해 즉위한 황제였다.   속주들의 안보와 육성에 힘썼으며 국가의 내실을 다지는 행정,  관료,  군사 제도 등 제국의 기초가 되는 제도들을 다듬고 혁신했으며 학문과 예술 등의 학술적인 면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또한 선황처럼 양자를 들여 자신의 양자이자 후에 황제가 되는 안토니누스피우스 황제에 의해 신으로 추앙 받게 된다.

     

     

     

     

     

     

     

    AD138년, 에페소 시민들이 로마 황제인 하드리아누스에게 지어서 바친 신전이다.

     

     

     

     

     

     

     하드리아누스 신전 내부에도 신과 여신들의 부조와 4명의 로마 황제상이 조각되어 있다.

     

     

     

     

     

     

    에페스의 귀족들이 살던 곳으로  1000여 명의 귀족이 살았다.   귀족들 앞 길에는 칼라 모자이크로 화려한 도로를  수놓는다.

     

     

     

     

     

     

    색이다른 모자이크 타일로  만든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한 명품 길거리도 있다.

    번성했던 이곳에는 세상의 진기한 물건이 모였기에 여기와서 쇼핑하는것이 여성들의 꿈이었다는데 로마의

    안토니우스가 그의 정적 옥타비아누스와 대치하던 중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이곳에 머물면서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로마시대의 공중 화장실인데 밑으로는 물이 흐르고 앞에는 저수조가 있어서 위생적인 뒷처리까지.....볼일을 보면서 담소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온다.....

     

     

     

     

     

     

     

    긴 의자에 구멍을 낸 대리석 판으로 50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사용하던 개방적인 변소로 목욕탕으로부터 나온 물이 씻어 내려가게 위생적으로 고안되어 있다. 좌석 정면에 있는 수로는 깨끗한 물이 흘러 용변을 본 후 이용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일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앞에는 악사들이 연주도 했다고 하니 참 좋은 세상이었을 것 같다. 남에게 엉덩이를 보이게 될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당시에는 상하의가 붙어 있는 원피스같은  복장이었음을 가만하면 가릴것은 가려졌을 것이다.

     

     

     

     

     

     

    이곳은..   음악도 연주한다는 공중화장실!!

     

     

     

     

     

     

    아래 구조를 보니 물이 흐르도록 되어 있다.  수세식 화장실이라고 할 수 있다.

     

     

     

     

     

     

    화장실 앞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두었던 것처럼 보인다.

     

     

     

     

     

     

     터키 유적지에 가면 고양이가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곳이 많다

     

     

     

     

     

     

     

     

     

     

     

     

     

     

     

     

     

     

    에페소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유적 발굴지 아래에 자리한 셀수스 도서관이다.

    2층 구조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 현관,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 곳이 에페소 유적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로 손꼽히는 셀서스(Celsus) 도서관 이다.

     

     

     

     

     

     

     

    대리석도로와 만나는 코너의 맞은편에 셀수스의 도서관이 있다.  그 당시에 시리아, 버가모의 도서관에 이어 세 번째로 컸다는 이 도서관은 네 개의 조각상이 정문을 버티고 있다.

    쥴리우스 셀수스가 소아시아주의 총독으로 114년에 70세의 나이로 죽게 되자 그의 딸 쥴리우스 아퀼라가 그의 아버지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이 도서관을 건축하여 125년에 완성하였다. 도서관 내부는 습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중벽으로 되어 있어서 당시에 소장되어 있던 수 천 권의 두루마리책을 보호하게 했다.

    이 도서관은 여자들의 출입금지여서 한 귀족 부인이 반대편에 지하 통로를 뚫어 공부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도서관의 정면 입구는 2층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는데 학문의 네 가지 덕목인 소피아(지혜),  에피스테메(참된 앎),  엔노이아(신중함),  아레데(덕)를 지닌 여신의 모습으로 표현해 놓은 조각상이 서있었다.

     

     

     

     

     

     

     

     

     

     

     

     

     

     

     

     

     

     

    셀서스 도서관은 에페소 유적 가운데 전면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도서관은 AD 135년에 셀서스 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

     

     

     

     

     

     

     

    셀서스 도서관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상단은 지혜,  운명,  지식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성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가운데 문에서 천정쪽으로 올려다 본 모습이다.

     

     

     

     

     

     

     

     

     

     

     

     

    셀서스 도서관 내부로 들어왔다.   이 곳은 한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과 12,000여권의 책이 소장되었던 대규모 도서관이었다.

     

     

     

     

     

     

    셀서스 도서관 맞은 편 지역에는 창녀촌 유곽이 있었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창녀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매음을 하던 곳이라 하나 지금은 허물어진 집터에 벽들이 조금씩 남아 있다. 

    공부하러 온 남자들이 바로 앞의 여자들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겠지... 그래서 귀족 부인이 만들어 놓은 지하통로로 다녔다는 데 요즈음도 도서관에 간다고 하고 놀러만 다니는 경우도 흔하니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기는 다 싫은가 보다.

    터키에는 예쁜 여자를 책에 비유한단다. 예를 들면 “책보다 예쁜 여자” 라고 말이다. 글쎄, 책과 여자라? 영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유곽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세계 최초 그림 광고판이다.

    이 쪽 방향으로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있다는 것이며,  지갑모양은 외상사절이란 뜻이고  발을 대어 보고 이 정도 크기의 어른이 되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었다고 한다. 

     

     

     

     

     

     

    네로 황제 시대에 2m 높이 둑을 쌓아 회랑을 만들었다. 원래 이 회랑의 벽에 이용되던 벽돌은 철이나 아연으로 된 꺽쇠를 박아 연결시켰는데 비잔틴 제국시대에 에페스가 경제적으로 허약해 졌을 때 이 꺽쇠를 사용하기 위해 모두 제거하여 지금도 그 파인 구멍이 흉하게 남아있었다.

     

     

     

     

     

     

    셀수스 도서관에서 대리석 도로를 따라 원형극장으로 간다. 크고 고른 대리석이 깔려 있다. 양 옆에는 커다란 대리석들이 몸통에 번호를 붙인 채 나뒹굴고 있다.  저 모든 것을 복원하려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첼수스 도서관 왼쪽에 있는 아치형문을 지나면 주랑이 끝없이 늘어선 서민들의 장터가 나타난다.

     

    대리석 도로에서 왼쪽으로 내려다 보면 아고라가 보인다.  시장다.

    가로 세로 110m의 넓은 터로 되어 있는 이 아고라는 에페스 도시 생활의 중심지였다.     청동, 구리제품,  등잔을 비롯한 많은 도자기 제품,   아라비안산 약용식물,  포도주,  꿀,  고기,  비단,  보석 등이 거래되었다 한다.

    로마시대에 아고라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사람들은 밭에서 입는 옷을 입고 아고라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화장품과 진기한 물건들이 많아 에페소의 여인들이 가고 싶어하던 곳이었고 클레오파트라도 여기서 화장품을 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게터의 이끼낀 돌만이 무심하게 있었다.

     

     

     

      

     

     

     

     

     

     

     

     

     

     

    원형극장은 피온산 기슭의 비탈을 이용해 건설되었는데  ( 그래야 건설비도 적게 들고 짓기도 쉬웠다.)  트라이아누스황제 시대의 것이다.   가파른 관중석을 올라갔다. 아주 경사가 급하다.

    원형극장은 대개 그 도시 인구의 1/10을 수용할 규모로 지었다는데 이곳의 수용 인구가 25000석 정도이니 에페소의 인구는 대략 25만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낮은 무대가 있고 중간 이층 무대도 있었다. 정교한 음향학적 구조로 되어 있어 배우가 작은 소리로 대화를 해도 관중석 끝자리의 사람도 모두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파이나르 산 기슭에 있는 에페소 대극장이다.  로마시대에도 몇차례 증축을 하여 25,000석 규모로 확장하였고 원형 극장으로는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수만명의 시민이 모여 이 곳에서 행해지는 각종 공연과 행사를 즐겼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그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든다.

     

     

     

     

     

     

    앞쪽으로는 무대를 받치던 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그 웅장함이 한눈에 들어 온다.

     

     

     

     

     

     

     

    야외 원형극장은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서기 1-2세기 경의 유적이다.   로마식 극장으로 재건된 것은 클라디우스(AD 34-41 ) 시대를 첫 시작으로 하였고 이후 극장의 3층은 네로 황제(AD 54-68 )와 셉티무스 세베루스(AD 193-211 ) 시대에 지어졌다.

    3단 구조의 이 원형극장의 각 단은 22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높이가 18미터에 달하는 이 곳의 실내 정면은 각종 부조와 원주, 창 으로 장식되어 있고 최상위 단인 3층에는 다양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에페소의 당시 인구가 5~7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이곳 원형극장은 25,000명 수용이 가능했다 하며 서기177년에 완공된 최대의 공연장으로 지금도 축제때 공연장으로 사용중이라 한다.

     

     

     

     

     

     

     2500명이 수용 가능한 소형 원형극장으로 이곳에서 사도 바울과 요한이 전도했던곳으로  후일 바울이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에베소서로 남아 있다고 한다.

     

     

     

     

     

     

     

     

     

     

     

     

    터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올리브 나무 이다.

     

     

     

     

     

     

     

     

     

     

     

     

    에페소에서 항구로 통하는 길이다.   항구는 본래 이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그 동안 지진 등의 지각 변동으로 현재는 약 6km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다.

     

     

     

     

     

     

     

    아카디우스도로는 에페소 항구(옛날엔 이곳까지 무역선이 왕래했다)에서 야외 원형극장까지 뻗어 있는 길이 아카디우스도로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이 길은 아카디우스 황제(AD 395-408) 시대에 복구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총 길이 530미터,  폭 11미터에 달하는 이 길을 따라 값비싼 물건을 파는 상점들과 화랑들이 위치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도로의 양쪽에는 기둥으로 이어진 화랑이 있는데 그 중간에는 서기 6세기경 만들어진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이 도로는 항구까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항구도로’라고도 불린다.

     

     

     

     

     

     

     

     

    항구로 이어지는 도로....

     

     

     

     

     

     

     

     

     

     

     

     

     

     

     

     

     

     

     

     

     

    이제 에페소를 떠나 이스턴불로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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