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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 가을 불갑사(전남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로 450, 불갑면 모악리 8)
    사찰여행/전라도 2025. 11. 13. 18:10

    영광 가을 불갑사

     

    2025.   11.   13. 

     

     

    2025.  11.   11 ~  11.  12 (1박 2일).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25.  11.   11.  1일 여행은 

    포항 출발하여   광주로 이동하여 광주 칠석동 은행나무 & 광주 칠석 고싸움 놀이 전수교육관 보고 나주로 이동하여 생새우 소금구이로 점심식사 후 영광 가을 불갑사를 만나고  함평으로 이동하여 함평 국화대전보고  굴찜으로 저 녁식사 후  휴식하고

     

    25.  11. 12 .  2일 여행은 

    추어팅으로 아침식사 후 진도 국화축제.  해남 우수영 관광지보고 강진으로 이동 후 장어구이로 점심식사 후 강진 전라병영성.   전라 병영성 하멜기념관.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 & 강진 한골목 옛 담장 보고 나주로 이동하여  나주 빛가람 호수공원 보고 길을 달려오다가 동고령 IC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식사하고  포항으로 달려오는 알찬 1박 2일 여행이었다.

     

    1   두번째로는  나주로 이동하여 생새우 소금구이로 점심식사 후 세번째 여행지로 영광 가을 불갑사를 만나러 간.....

     

     

     

    2018년 오고 7년만에 다시 와보는 불갑사 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1909년에 쓴 '불갑사창설유서 佛甲寺創設由緖'에 의하면 384년(침류왕 1)에 마라난타가 창건했고, 805년(애장왕 5)에 중창했으며 그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각진국사가 머물면서부터 크게 번창했는데 당시에 머물던 승려는 수백 명에 이르렀고, 사전도 10리에 달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80년에 중건한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팔상전· 칠성각· 일광당· 명부전· 요사채 등이 있다. 이밖에 각진국사비(1359)와 여러 점의 부도가 있고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거상인 사천왕상이 있다.

     

     

    나이가 660년이  25m 높이에 둘레가 5.9m 난 된 큰 느티나무가 쉼터를 제공해 준다.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 침류왕 원년(384)에 영광 법성포로 들어와 모악산 자락에 절을 짓고,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한 절로서 백제불교 초전 성지이기에 절 이름을 부처 불(佛), 첫째 갑(甲), 불갑사(佛甲寺)라 하였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조금 올라가니  불갑사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4개의 나무 기둥과 중간에 두 개의 느티나무 기둥이 보태어져 있어서 특이하.   일주문 기둥은 일주문 규모에 맞춰 아름드리 나무의 원래 모습을 최대한 살린 형태로 세웠다. 

    불갑사는 그러고 보니 좀 특별한 곳이다...

     

     

    사찰의 첫 번째 산문인 일주문은 공포를 높게 하고 주간포 간격을 넓게 하여 맞배지붕을 하였음에도 화려하고 웅장하다.  정면에 불갑사(佛甲寺) 현판을 걸었고

     

     

     

     후면에 영광문( 靈光門) 현판을 걸었다.

     

     

     

     

    꽃무릇 공원을 산책하며 올라가다 만난 호랑이...

    1908  농부가 잡았다는 불갑산 호랑이로 현재 유달초등학교에 박제표본으로 있으며,  100년 기념으로 호랑이 모형과 굴을 재현해 놓았다..

    현재 유달초등학교에 이곳 모악산에서 붙잡힌 호랑이가 박제로 보관되고 있는데 남한에서 포획된 것으로 유일한 박제라고 한다.

     

     

     

     

    일주문에서 불갑사로 오르다보면  이렇게 사진 찍기 좋은 장소들도 많다.

     

     

     

     

    상사화 축제로 유명한 절이다 보니 불갑사 사찰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 볼거리가 너무 풍성했다.

     

     

     

     

     

     

     

     

     

     

     

     

     

     

     

     

     

     

     

     

     

     

     

     

     

     

     

     

    이곳은 단풍이 한창이다.

     

     

     

     

     

     

     

     

    해탈교 쪽 부도를 만나러 간다.... 

     

     

    일주문에서 상사화 군락지를 지나면 부도전..

    부도전에는 고려시대 조성된 각진국사 자운탑을 비롯하여, 조선시대 조성된 5, 근대 이후 조성된 4기의 비석이 있다.

     

    좌측의 비석은 정삼품통정대부김공상기공덕송비(正三品通政大夫金公商基功德頌碑)이다.

    1939년 세웠으며, 높이 204.5cm, 비신 폭 48.7cm이다.

    그 뒤편에 비석은 1940년 세워진 설제대사(雪醍大師)기념비로 높이 111.5cm, 비신 폭 40.2cm이다.

     

    우측 척번째의 부도는 각진국사자운탑(覺眞國師慈雲塔)으로 송광사 16국사 중의 한 분인 각진국사의 부도이다.

    1355년에 조성된 것이며높이 260cm, 탑신 폭 35cm이다.

    전체적인 외양은 송광사 16국사 부도와 유사하지만 탑신이 매우 좁고 옥개석은 지나치게 커서 전체적인 균형을 잃고 있다.

     

    그 옆 두번째로 1680년에 조성된 범종형의 회명당 처묵대사탑(晦明堂 處墨大師塔)은 높이 164cm, 탑신 폭 71cm이다.

    전형의 모습에서는 벗어났지만 대체적으로 범종형 부도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번째의 만자명탑(卍字銘塔)은 탑신에 당호가 없고 만()자가 새겨져 있어 붙여진 부도이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140.5cm, 탑신 폭 38.7cm이다.

     

    네번째는 서산당탑(西山堂塔)으로 대체적으로 바로 옆의 만자명탑과 닮았지만 탑신이 팔각기둥형이다.

    탑신의 명문은 서산까지 확실하지만 나머지는 판독이 곤란하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128cm, 탑신 폭 29cm이다.

     

    다섯번째, 이름을 알 수 없는 일명부도는 전체적인 외양이 각진국사자운탑과 흡사하다.

    다만, 기단부가 간략화 되었고, 옥개석이나 상륜부가 투박해 지는 등 후행의 모습이 뚜렷하다.

     

    마지막의 청봉당(晴峰堂)의 부도는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85cm, 탑신 폭 57.5cm로 비교적 큰 편이다.. 

     

     

     

     

     

     

     

     

     

     

     

     

     

     

    불갑사 안내도

     

     

    불갑사 배치도

    금강문에서 천왕문, 만세루에 이어 대웅전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설선당과 일광당을 배치하고 전면에 만세루를 둔 ㅁ자형 산지 중정형 가람배치를 하였으며,  중심 법당인 대웅전 좌우에 부속 법당인 문수전과 명부전 및 무량수전을, 뒤에는 팔상전을 비롯해 칠성각과 조사전, 관음전이 배치되었고,  좌우 끝에 청풍각과 선원이 자리하고 있다.

     

     

    불갑사는-- 불교가 전해진 뒤 처음 건립됨으로써 모든 사찰의 으뜸이 된다고 하여 이름에 부처 불에 첫째 '갑'자를 쓰는 절이 되었다 한다...

    금강문, 사찰의 첫 번째 산문인 일주문과 두 번째 산문인 천왕문 사이에 금강문을 세워 사찰의 대문 역활을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짓고, 불갑사 현판을 걸었으며,

     

     

    금강문. 천왕문. 만세루가 일직선으로 보인다.  내부에 금강문(金剛門) 현판을 걸었는데  

     

     

    금강문에 걸린 편액의 글씨체가 화려하다.

     

     

    왼편에는 금강역사와 함께 흰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를 배치하였고

     

     

     

     

    맞은편 오른쪽에 금강역사와 함께 푸른 사자를 올라 탄 문수동자를 배치했다.

     

     

     

     

    금강문 외부 벽에는 한 쌍의 금강역사· 문수보살 동자· 보현보살 동자가 그려져 있고 이후 2021년 중반에 금강역사와 문수 동자, 보현 동자를 제작하였다.

     

     

    금강문을 나서면 좌측에 성보박물관인 수다라 성보관이 있다. 

     

     

     

     

    불갑사 지장시왕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8호)

    지장시왕도는 지장을 본존으로 하여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범천 제석천 사자 판관 사천왕 등을 배열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화기의 기록으로 1777년 영산회상도와 함께 제작되었다 밝고 선명한 색조,   가늘고 섬세한 필법 안정적이면서 원근감이 느껴지는 화면 구성 다양한 모습의 시왕 및 권속들의 표현 등 우수한 회화적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당시 조계산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불화승 비현, 복찬, 쾌윤 등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하단의 부분적 손상이 있으나 전반적인 바탕화면과 색상의 보존상태가 좋고, 불화의 가치도 높다.

     

     

    불갑사 팔상전 영산회상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307호)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행한 설법광경을 도설한 것이다.   화기의 기록으로 제작자와 제작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작품으로 1777년에 비현 등 15인의 불화승에 의해 제작되었다.

    영산회상도는 안정된 구도와 화면의 변화, 양록· 선홍· 양청과 같은 선명한 색조의 사용, 등장인물들의 상호의 표정묘사, 가늘고 섬세한 세필의 선묘 등 18세기 후반의 회화양식을 구사하고 있으며 회화적으로도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화승들은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까지 활동한 비현, 복찬, 쾌윤 등으로 이들은 조계산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경상도 지역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여 작품활동을 하였던 불화승유파의 작가들이다.   보존 상태도 양호하고 회화작품으로서 예술적 가치도 클 뿐만 아니라 뛰어난 화승들의 작품으로 보존가치가 크다.

     

     

    불갑사 삼세불회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6호)

    삼세불회도는 비단에 채색을 하여 그린 불화로 석가 아미타 약사의 삼부처를 한 폭에 그린 그림이다 제작 시기는 필선의 사용이나 구도,  대상의 의습처리 표현기법 색상 문양의 회화적 수법과 불갑사의 불사기록 등으로 추정하여 볼 때 18세기 중엽경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삼세불회도 가운데 제작시기가 이른 작품으로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

     

     

    불갑사 간다라 황금소탑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장식기와

    조선 1764년에 제작. 높이 64.5cm. 건물 중앙에 화마를 막는다고 조각과 회화등으로 설치한것으로, 기와의 양측면에는 음각으로 새겨진 명문이 있어 갑신년인 1764년 5월에 기와장인 척민(陟敏)이 대웅전의 번와(飜瓦)를 위해 조성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장식기와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장식기와

     

     

    불갑사 대웅전 용마루 장식기와

     

     

    불갑사 동자상

     

     

     

     

    불갑사 명경대

     

     

    불갑사 소대와 가사함

     

     

    불갑사 불감

     

     

    불갑사 불연

     

     

    불갑사 동종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1호)

    동종은 주종기에 따르면 獅子山 鳳林寺 大鍾으로 1702(康熙四十一年壬午, 조선 숙종 28) 金尙立子三 金水元 金成元 片手金成奉에 의해 조성되었음 기록하였다. 불갑사의 동종은 주종기가 남아있어 제작연대와 제작 장인, 봉안처, 시주자가 확인되는 18세기 초의 종이다. 조선후기 동종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종장들의 내력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주종연구에 중요한 작품이다.

     

     

    영광 불갑사 목어

     

     

    영광 불갑사 법고

     

     

    영광 불갑사 고승들과 진영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금강반야바라밀경언해, 천로금강경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묘법연화경 권1-3, 선종영가집

     

     

     불갑사 치성광여래도

     

     

    불갑사 철조여래상

     

     

     

     

    좌측에 산사 카페로 운영하는 명경당이 자리하고 

     

     

    정면에 천왕문이 세워져 있다.   천왕문 우측으로는 보장각,  좌측으로는 종각이 있다.

     

     

    불갑사 천왕문(天王門)..

    가람의 경내로 들어서는 53개의 계단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 3, 측면 2칸의 주심포계 맞배집이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한다.

     

     

     

     

    불갑사 사천왕상(四天王像)- 보물

    높이 약3.5m이며제작연대는 확실하지 않고 조선후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천왕상은 균형미와 조화미를 갖춘 거대한 목조품으로 사천왕문 좌우편에 2구씩 배치되어 있다.

    소요산(逍遙山)의 연기사(烟起寺)에서 조선 중기 연기조사가 목조로 조각한 것이라고 전한다.

    1800년대 말 고창 소요산 연기사의 터가 좋다하여 당시 현감이 절을 소각하고 집을 세웠는데, 1870(고종 7) 승려 설두(雪竇)가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목선 4척을 동원하여 바다건너 법성포로 들여와 불갑사로 옮겨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천왕문 안에 사천왕탱화를 모셔놓았는데 현재 불갑사에는 大韓光武八年甲辰二月(대한광무팔년갑진이월)”이라는 연대가 적힌 사천왕탱화가 소장되어 있다.

    사천왕상은 제작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보림사 사천왕상들과 거의 흡사한 제작기법과 형태를 보이고 있어 흥미를 끈다.

    불갑사 사천왕상은 자세라든지 얼굴의 형태 등 전반적인 면에서는 보림사 상과 거의 같은 틀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세부사항, 즉 허리띠, 보관 끈, 천의의 끝자락 등에서는 전혀 다르게 묘사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보아 보림사 상보다 규모가 작고 기법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비천상 등 보관 장식이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사천왕상은 불갑사의 격조를 더해주고 있다. 

    사천왕상은 외모도 준수하지만 몸 안에서 1997년 9월 월인석보 등 보물급 고서 50권이 쏟아져 나와 더 유명하다.

     

    천왕문 안에 목조 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비파를 연주하는 동방 지국천왕과 검을 든 남방 증장천왕이 배치되었고,

     

     

    맞은편에는 용을 붙잡고 여의주를 쥔 서방 광목천왕과 삼지창을 쥐고 탑을 받쳐 든 북방 다문천왕이 배치되었으며  천왕문 안에는 높이 4m가 넘는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조선 고종 7년(1876) 설두 대사가 폐사한 흥덕 연기사에서 옮겨온 것으로, 17세기 후반의 조각 경향이 반영된 사천왕상과 함께 복장 전적을 2023년 보물로 지정하였다.

     

     

     천왕은 삿된 무리인 악귀를 발로 밟아가며 사찰 수호의 임무를 다하고

     

     

    사천왕이 거느리는 권속 또한 사천왕의 다리를 받쳐 들며 보좌하고 있다.

     

     

    악귀는 모두 8구가 있으며,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전형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사찰의 두 번째 산문인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었는데,  여러 차례의 보수에도 불구하고 조선 영조 원년(1725) 이전에 건립된 모습을 유지하며  17세기 이후 서남해안지역 사찰 건물의 건축적 특성을 간직하고 있어 2024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천왕문의 뒷면에는 격이 높은 천왕전(天王殿) 현판이 걸려있다.

     

     

     천왕문에서 불갑사 만세루(萬歲樓)가 바로 보인다..

     

     

    천왕문 좌우에 기다란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천왕문 좌측에는 맞배지붕의 두 건물을 ㄱ자 형태로 붙이고, 꺽인 부분에 팔작지붕을 얹은 독특한 모습을 하였으며,

     

     

    보장각 현판을 걸고 종무소와 불교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천왕문 들어면서 좌측의 범종각..

    1974년 범종루와 범종이 조성되었고, 1976  지종(知宗)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누각 옆에 참식나무 한 그루가 있다. 각진국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수령 700여 년의 참식나무가 천연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왕문 우측에도 강당으로 사용하는 기다란 맞배집을 짓고, 건물 끝은 누각과 연결하였는데, 밖에서 보면 2층 누각 형태의 종루가 확실하고,   안에는 누각 앞에 맞배집 익랑을 늘려 세웠으며,  누각에 범종루(梵鐘樓) 현판을 걸고 범종과 법고를 비치하였다.

     

     

     

     

     

     

    천왕문을 나서면 앞에 사찰의 세 번째 산문인 누각이 자리하고 있는데,  낮은 중층 형태의 건물로 지었기 때문에 누각 아래로 통과하지 못하고 건물 좌우로 돌아 대웅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천왕문에서 보면 만세루 정면에는 불광보전(佛光菩殿)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만세루는 중층의 누각으로 사찰교육을 하는 강당이다 불갑사 대웅전(보물 830)과 사천왕문을 연결하는 중심축상에 있다.   여느 사찰의 강당과 유사한 건물로 웅장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만세루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대웅전에서 보면 만세루(萬歲樓) 현판이 걸려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 만세루는 법회나 행사 등을 위한 강당으로, 1988년 전남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불갑사에는 건물중에 만세루(萬歲樓)라는 누정이 자리하고 있다.

     

    사찰의 주공간을 진입할 때 누 아래로 드나드는 문루인 경우가 많다. 화엄사(華嚴寺)의 보제루와 이곳 만세루는 낮은 중층의 누각으로 건물의 모서리로 돌아가게 하였다.

     

    초기 사찰의 강당은 대웅전 뒤에 있었으나, 고려 이후부터는 대웅전 앞 뜰에 설치하였고, 불갑사도 마찬가지이다.

     

    누각이지만 누하의 높이가 낮아 누하진입방식의 누각은 아니다. 누각 좌우가 개방되어 있어 누각을 돌아 대웅전 앞마당으로 진입하며 선운사 등 비교적 평탄지에 있는 사찰에서 취하고 있는 형태이다.

     

    널찍한 자연석 초석 위에 누하주를 놓고 그 위에 귀틀을 짜서 상층 마루바닥을 형성하였다. 기둥 상부는 주심포식 공포를 짜고 주간에는 화반을 1구씩 두었는데 전면은 판형이고, 배면에는 귀면을 새겼다.

     

    전후면은 5칸 모두 분합문을 달았는데 주출입문인 배면 어칸을 제외한 나머지는 하부에 머름을 들이고 그 위에 문짝을 설치하였다. 구조는 7량가로 짰다. 앞뒤 기둥 위로 걸린 기둥은 구불구굴하게 휜 자연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미가 돋보이다.

     

    대들보 위에는 동자주를 세워 중보를 걸고 다시 짧은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세운 다음 판대공을 놓고 종도리를 받쳤다. 대들보를 받친 내부 기둥 상부는 주두와 첨차 등을 받쳤는데 단면을 연꽃과 용으로 조각하여 색다르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쓴 겹처마로 구성하고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지붕을 만들었다. 내부는 통칸으로 트여 있다.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천장은 구조가 드러난 연등천장이다. 만세루는 불갑사의 여러 전각 가운데 가장 많은 중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앞에서 살핀 대로 1741 1월에 중수를 마치고 석촌 거사가 쓴 '영광군불갑사만세루중수상량문', 1802년에 다시 중수한 후 최수준이 쓴 '영광군불갑사만세루중수상량문', 1878년으로 추정되는 '불갑사만세루중수기' 등이다.

     

    현재 정면 5, 옆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축소되었지만 절이 한창 번성하던 조선시대에는 누각의 정면은 7칸에 달했고, 고려시대에는 기둥 높이가 90척에 달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유재란의 피해를 딛고 복구하면서 3칸으로 축소되었고, 숙종 때(1674~1720) 다시 7칸으로 복원하였다. 이후 1938년에 설제 스님이 누각 왼쪽이 썩자 한 칸을 줄여서 6칸으로 축소하였고, 1984년에는 수산 지종 선사가 법당이 3칸임을 고려하여 누각을 다시 한 칸을 줄여 5칸으로 개수하였다또한 1996년에는 두각에 기와를 새로 입히는 등 여러 차례의 개·보수가 있었다. 

     

     

     

     

    대웅전 우측에 자리한 설선당(說禪堂)은 스님들이 불경을 공부하는 교육장소로 승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당 스님이 최근에 세운 요사채인데,  설선당과 학명루 그리고 요사 1동을 ㄷ자 형으로 붙여 일체형 요사를 형성하고  요사와 함께 템플스테이로 운영하고 있다.

     

     

    설선당 옆의 탐플스테이 공간의 사용하는 출입문이 특이하다.

     

     

     

     

     

     

    승당인 일광당은 대웅전 향 좌측에 있다.

     

     

    건물 전면에는 일광당(一光堂) 현판이 ~

     

     

    대웅전 좌측에 자리한 일광당은 스님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했던 요사채이며,  후면에는 일광화만수당(一光化滿壽堂) 현판이 걸려있다.

     

     

     

     

    일광당(日光堂)은 대웅전 좌측에 자리 잡고 있다 당초에는 선당(禪堂) 용도의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승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는 방과 부엌 툇마루로 나뉘어 있는데 좌측 2칸은 부엌이며 우측 3칸은 방을 들이고 배면쪽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쓴 겹처마이며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지붕을 만들고 좌우 측면에는 풍판을 달았다.

     

     

    일광당 뒤의 수각

     

     

    조선 영조 41년(1765)에 중건하였고, 1840년과 1941년 보수하였으나, 현재 보존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건물 뒤에 ㄱ자 형태의 맞배집을 지어 백운당 현판을 걸고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일광당 옆에서 바라본 대웅전 측면

     

     

     

     

    정교한 꽃살문이 아름다운 불갑사 대웅전(보물 830)

    정면 3, 측면 2칸 팔작지붕 다포계 건물로 매우 화려한 양식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살은 삼분합 소슬 빗살문으로 연꽃 국화꽃 보리수 나무 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하여 우리 조상들의 예술성이 표현된 건축물이다.

     

     

    대웅전  앞에 세워져 있는 괘불지주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똑바르게 세워져 있지 않고 비스듬하게 틀어 세워져 있다.

    괘불지주에는 강희 49년(1710년)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불갑사에는 1710년경에 조성된 큰 괘불이 있었으나,  용천사에서 빌려다 사용하던 중에 6.25동란 때 용천사가 소실되면서 애석하게도 함께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이며, 지붕 위에는 귀면을 놓고 그 위에 작은 석탑을 올린 용마루 장식이 설치되어 있다.

     

    대웅전을 언제 지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붕에서 건륭 29년이라고 쓴 기와가 발견되어 조선 영조 40년(1764)에 중수한 것이 확인됨으로써 18세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198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정면 기둥 위에 용두가 삽입되어 있는데, 좌측은 입을 굳게 다물었고, 

     

     

    우측은 벌린 모습을 하고 있다.

     

     

    대웅전은 전면과 우측 벽 전체가 문이어서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대웅전이 서향을 하였기 때문에 불단은 방향을 틀어 남향으로 조성하고 삼세불과 후불탱화를 봉안하였다.

    서향 건물에 부처님이 남향한 불단 배치도 특이하다부석사 무량수전, 마곡사 대광보전처럼 건물 좌향과 불상의 시선이 직각을 이루는 드문 예 가운데 하나다.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석가여래 삼존불 좌상은 동쪽을 등지고 서향으로 앉아 있고 신중탱은 남쪽에 있고 삼존불 뒤로는 후불탱화가 있다.  뒤에 걸려있는 후불탱화는 석가모니불, 약사불, 아미타불을 한 폭에 그린 삼세불회도로, 2011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중탱화는 상단에 범천과 제석천을 두고 주위에 천인과 권속을 배치하였고, 아래 중앙에 동진보살을 그리고 주위에 신장을 묘사하였다.

     

     

    불갑사 목조석가여래 삼존불좌상(보물 제1377호)

    대웅전 내부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중앙에 석가모니불, 왼쪽에 약사여래불, 오른쪽에 아미타불을 모셔 특이한 불상배치를 보여주고 있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 하품중생의 수인을 한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배치한 삼세불은 1635년 무염을 비롯한 10인의 화승이 조성한 것이다.

    대웅전의 중앙 불단은 서면을 향한 건물의 방향과 달리 직각으로 남측면을 향해 조성되었는데, 이 불단위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아미타· 약사불좌상의 목조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중앙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143cm이고, 좌우에 협시한 불상은 125cm로 주존상이 약간 크게 표현되었고, 각각 존상은 장식이 화려한 팔각 목조대좌를 갖추고 있다.

    삼존불상의 조성년대는 최근 본존불상과 협시불의 대좌 안쪽에 쓴 묵서명 개금기와 복장기가 발견됨에 따라 본존인 석가불은 1623(인조1)에 조성된 뒤 1634년에 개금하였고, 오른쪽의 협시불상도 1634년에 만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하였음이 확인 되었다.

    조성기에는 불상은 무염(無染) 스님을 비롯한 10인의 화승들이 조성하였다. 그리고 이후 1743(영조19)에 두 번째로 개금하였고, 1747년에도 다시 개금하였다고 전한다.

     

     

    불단  위에는정교하게 조각된 닫집을 설치하였고 닫집 천정에는 용들과 연화봉. 구름과 극락조들이 현란하게 날아다니며 불국토를 재현했다.

     

     

    불단 위에 보궁형 닫집을 설치하였고,  닫집 안에는 구름 속에서 세 마리 용이 머리를 내밀고, 주위에 극락조가 날고 있는 모습을 재현하였다.

     

     

    2단으로 설치된 우물천장은 연꽃 문양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천장 아래 보 위에는 용의 몸통을 조각한 충량이 길게 올려져 있는데

     

     

    충량 끝에는 용머리가 아니라 귀면이 조각되어 있다.

     

     

    리고 전각 네 귀퉁이에 삽입된 용은 두 팔을 벌리고 있는데

     

     

    사실은 공포의 살미 사이에 머리를 내민 것으로, 살미가 두 팔처럼 보여 귀여운 개구장이 모습의 용으로 보인다.

     

     

    불단 뒤 벽에 백의관음도가 그려져 있는데,  흰옷을 입은 관음보살이 오른손과 왼손을 교차하여 버들가지와 정병을 쥐고서 연꽃잎 위에 서 있는 모습을 하였다.

     

     

    백의 관음전 아래로는 부처님 불단과 연결된 환기통로 비슷한것 (?) 이 있었다..

     

     

    동종(좌)은 주종기에 사자산 불임사 동종으로 강희 41년(1702)에 조성되었다는 기록에 따라 조선 숙종 28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2011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성보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

     

     

    새로 제작한 동종(우)를 비치하였는데, 표면에 불갑사 대웅전 범종이라고 새겨져 있다.

     

     

    불갑사 대웅전은 특이하게 올라오는 방향에서 봤을 때 출입문이 오른쪽에 있고 불상도 그쪽을 향해 있다.

    보통 사찰은  대웅전 현판이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비해 부처님은 서쪽으로 모셔져 있다.   불전함이 보이는 문이 어간 문이다.

    특이하게도 오른쪽의 문에서 바라 보아야 석가모니불을 마주할 수 있.   대웅전이 서향이라 석가모니불이 남향을 하기 위한 방법이겠지...

    정면인 서쪽 입면에는 모두 3분합문을 달았는데 꽃살로 짠 문이다..

     

     

    대웅전 뒷부분에는 천연기념물 112호로 지정된 참식나무 군락이 있다.

     

     

    대웅전 좌측에 직교로 세운 문수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풍판을 설치하였으며,

     

     

    문수전(文殊殿) 현판을 달았고,

     

     

    전각 안에는 수산 지종(1922~2012) 대종사의 영정이 있다.

    한국 현대 불교의 대선사 서옹 스님의 뒤를 이어 지난 2004년부터 백양사 고불총림 제3대 방장으로서 불갑사에 주석하며 후학들을 제접해 왔다.

    九十年生是空花(구십년생시공화) / 구십년 삶이 허공 꽃과 같은지라

    今日離幻歸本家(금일이환귀본가) / 오늘 환을 여의고 본가로 돌아가노라

    落花翩翩鵲鳴中(낙화편편작명중) / 꽃잎 떨어져 흩날리며 까치 소리하는 가운데

    呵呵一翻空劫外(가가일번공겁외) / 하하 웃고 한번 뒤집으니 공겁 밖이로다.

    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불갑사 염화실에서 입적하였으며, 탑과 비는 장성 백양사에 세워져 있다.

     

     

     

     

    대웅전 옆 계단 위의 향로전(香爐殿)..

    향로전은 정면 5, 측면2칸의 전후퇴로 되어 있으며, 팔작지붕의 주심포양식에 익공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1765년에 제 6창 중수된 건물로서, 고려말 각진국사 이후 불갑사의 대덕스님이 주석하던 곳이다.. 

     

     

    불갑사 각진국사비 

    각진국사는 고려말 충정왕 공민왕대의 왕사였으며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한 분으로서 만년에 불갑사에 주석하여 불갑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이 각진국사 자운탑은 고려 공민왕 8(1359)에 이달충이 세운 고려 후기 작품이다.

     

     

    향로전 입구에 각진국사비가 세워져 있다.  이수는 없고 귀부와 비신만 남아있는데 마모가 심하고, 글자도 우측 상단의 각진국사 외에 판독이 불가능하다.

    각진국사 복구(1270~1355)는 수선사 12세 자각국사 도영을 좇아 공부하여 수선사 13세가 되어 조계종의 계승가로서 왕사가 되었고, 일인정령뇌음변해홍진광제도대선사각엄존자(一印正令雷音辯海弘眞廣濟都大禪師覺儼尊者)라는 호를 받았다.

    백암사(현 백양사)에서 입적한 뒤 국사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각진, 탑호는 자운이며,  공민왕 8년(1359) 왕명으로 이달충이 비명을 짓고 이제현이 글씨를 써서 불갑사에 비를 세웠다.

     

     

    대웅전 우측에 직교로 세운 명부전은 문수전과 동일한 형태인 정면 3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명부전(冥府殿) 현판을 걸고, 전각 안에 지장삼존상과 시왕을 안치하였다.

     

     

    지장 삼존상,  지장보살이 결가부좌로 앉아 하품중생의 수인을 하였고,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한다.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은 무염을 비롯한 조각승들이 조선 효종 5년(1654)에 모두 27구의 존상으로 제작하였는데, 지금까지 제작 당시의 권속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어 조선 후기 명부 조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202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삼존상 좌측에 시왕 5인과 판관, 녹사, 사자, 인왕이 배치되었고,

     

     

    우측에도 시왕 5인과 판관, 녹사, 사자, 인왕이 배치되었다.

     

     

    지장시왕도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범천, 제석천, 사자, 판관, 사천왕 등을 배열하였으며, 조선 정조 원년(1777) 팔상전의 영산회상도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 2011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뒤 성보박물관으로 옮겼다.

     

     

    명부전 후면과 측면

     

     

     

     

    중심 법당인 대웅전  뒤에는 팔상전을 비롯해 칠성각과 조사전, 관음전이 배치되었다. 대웅전 왼쪽 조사전 앞에는 벽돌로 세운 굴뚝이 있는데 몸체에 그려진 웃는 얼굴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한다.

     

     

     

     

    대웅전 뒤에서 바라본 향로전

     

     

    팔상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풍판을 설치하였으며  전각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가운데로 좌우에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협시하는 삼존불과 16나한상을 봉안하였다.

     

    삼존불과 나한상(좌)은 색난의 제자였던 초변이 조선 숙종 32년(1706)에 조각한 것으로, 2020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영산회상도(우)는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행한 설법광경을 도설한 것으로, 조선 정조 원년(1777) 비현 등 15인의 불화승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2011년 전남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칠성각은 1923년 중건한 것을 정면 3칸, 측면 1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이다.

     

     

    칠성각은 칠성단을 중앙으로 향우측에 산신단을 향좌측에 독성단을 모셔 놓아 산신각 역할을 하고 있다.

     

     

     

     

    조사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겹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집으로 지었다.

     

     

     

     

     

     

     

     

    관음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주심포 이익공 형식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전명부전 뒤에 자리한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풍판이 달린 주심포 이익공 형식의 겹처마 맞배지붕 전각이며,

     

     

    아미타 삼존불과 아미타 후불목각탱을 봉안하고 벽에 단을 조성하여 영가를 안치하였다.

     

     

     

     

    문살이 곱다.

     

     

    전각 벽에 그려진 불화

     

     

     

     

    정면에서 바라본 무량수전

     

     

    무량수전.관음전. 명부전이 차례로

     

     

    일광당. 명부전. 관음전. 조사전. 대웅전

     

     

    만세루 사이를 지나면

     

     

    종각. 향적전.  백운당 방향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천왕문을 지나

     

     

    금강문도 지나

     

     

     

     

     

     

     

     

     

     

    일주문을 지나면

     

     

     

     

     

     

     

     

    영광 불갑사 주차장 도착이다.

    가을 불갑사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들러보고 나와 다음 여행지 함평으로 이동하여 대한민국 국향대전을 보러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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