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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송광사 산내암자로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 작은 암자인 불일암사찰여행/전라도 2019. 4. 3. 15:04
순천 송광사 산내암자로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 작은 암자인 불일암
2019. 4. 3.
2019. 3. 31. 청정심원 108 순례단인 '달마야 놀자' 에서 다녀온 전남 순천 선암사. 송광사의 산내암자 불일암. 송광사 삼사 순례 이다 ........
06:00 포항을 출발해 휴게소 두 군대 들러 09:53 전남 순천 선암사 입구 도착 후 2시간 가량 돌아보며 휠링한 후 순천 선암사에서 나와 상사호 그 길을 따라 내려 가다가 호수가에서 방생기도법회를 하고 송광사로 오르다가 송광사 탑전을 지나 감로암을 거쳐 불일암에서 주차장 방향으로 하산하다 탑전 옆을 지나 감로암을 경유하여 불일암에 오른다.
순천 선암사에서 나와 상사호(주암 조절지댐의 다른 이름)를 굽이굽이 돌아, 주암댐 조절지 댐으로 순환도로를 타고 돌아 내려간다
골짜기 마다 싱그러운 풀 내는 절로 감탄사를 토하게 했지만 열어둔 차창으로 넘실대는 향기가 그다지 싫지 않다.
상사호 순환도로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 조절지 댐을 막은 지가 십년이 넘었으니 가꾼 도로가에 숲은 장관이다.
그 길을 따라 내려 가다가 호수가에서 방생기도법회를 하고 ...
송광사로 향하는 길에도 온천지가 꽃길이다..
송광사로 향하는 송광사삼거리에서 주차장까지는 약 2km. 느긋하게 걸으며 사진을 찍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꽃비를 맞고 싶다면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할 만하다. 개천을 따라 금방이라도 톡 터질 듯 연분홍 벚꽃이 터널을 이룬다.
송광사 매표소 근처 주차장에 도착이다....
송광사 매표소를 통과한다.
송광사 입구에 들어서니 고요한 산사 입구에는 꽃을 떨군 매화 한그루 매화나무를 지나니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라는 입석이 나온다....
송광사는 우리 불교계의 가장 큰 종단인 조계종의 근본 도량이자 승보사찰이다. 승보사찰은 불교 교단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인 불(佛), 법(法), 승(僧) 가운데.. 승. 곧 훌륭한 스님이 많이 배출된 사찰을 말한다. 불, 법, 승 3가지 가운데 한가지 비중이 크게 드러나 절의 특성을 이루기도 한다. 송광사는 승보사찰이고, 통도사는 불보사찰, 해인사는 법보사찰로 불린다. 이들 세 사찰을 일러 삼보(三寶) 사찰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세월 교와 그 봄날의 숲은 참으로 신선하고 풋풋했다.
청량각(淸凉閣)이란 누각이 나온다. 누각 밑으로 조계산에서 흘러내린 냇물이 맑고 청량하게 느껴진다.
청량각은 송광사가 자리잡은 조계산의 계곡물이 동구에서 굽이치는 지점의 깊숙한 계곡에 홍교(虹橋)를 쌓아올려 그 다리 위에 조성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21년에 중건하였고, 1972년 승주군의 보조에 의하여 중수하였다.
송광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극락교와 청량각도 지난다.
연등이 달린 고운 길을 지난다....
쭉 이어지는 연등길 ~
풍경속에 있으니 나 또한 풍경이 된 듯...
길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하나의 선물이자 은혜이다. 속세의 짐을 모두 놓아두고 길을 나선다. 그 숲속 어드메쯤에 자리한 작은 암자에 법정 큰 스님이 머물렀다고 했다. 아둔한 대중들에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자유로움'을 설파하던 선승, 법정 스님이 떠난 후에도 그 숲에는 봄.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순환이 어김없이 계속 되고, 이제 다시 훈풍이 자연을 깨우는 봄이 찾아든다. 법정 스님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내내 그리웠던 길을 따르니 마음 안에 고요함이 깃든다.
송광사보다 불일암(무소유 길)을 먼저 걷기로 했다. 법정스님을 만나기로 한 마음의 약속을 먼저 지켜보고 싶었으니까...
송광사 일주문 조금 못미쳐 계곡위의 다리가 놓인 불일암 이정표를 따라 삼나무가 군락지가 형성된 무소유 길을 느끼며 불일암으로 향했다.
3월 마지막 날에 송광사 불일암을 찾았다. '무소유'를 일갈했던 법정 스님의 흔적을 쫓음과 동시에 내 자신을 고요히 들여다보고 싶어서였다. 송광사 앞은 봄을 보려는 인파로 시장바닥처럼 왁자지껄했다. 계곡에 걸쳐 있는 청량각을 건너 송광사로 곧장 가지 않고 불일암으로 발길을 돌렸다.
불일암 가는 길은 두갈래가 있다. 송광사 입구에서 광원암 방향으로 오르는 길과 일주문 근처에서 율원을 지나 감로암 방향으로 오르는 길이다. 감로암 쪽으로 올랐다가 불일암에서 주차장쪽으로 내려왔다...
이 두 코스를 이용해 불일암 입구를 거쳐 한바퀴 일주하는 데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물론 이 시간엔 불일암을 둘러보는 시간은 제외하고....
불일암으로 오르는 초입 길의 무소유의 길 ~
걷다 보면, '무소유길'이 나오는데, 법정스님께서 자주 걸으셨던 길이다. 숲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법정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향해 본다.
법정스님을 처음 알게 된것은 수필집 '산방한담과 물소리 바람소리'였다.
몇 번씩 책을 읽으면서 스님이 쓰신 신간이 서점에 나올 때마다 책을 사서 보았었다. 그러다보니 '무소유'라는 책에서 부터 '산에는 꽃이 피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아름다운 마무리’ 까지 많은 책을 샀고, 소중하게 간직한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법정 스님이 지내는 불일암의 사계를 글과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법정 스님의 책들에서 발췌한 글과 최순희 할머니가 불일암을 오르내리며 틈틈이 사진으로 엮인 이 책은 '곁에 두고 마음에 새기기 좋은' 힐링 서적이다.
최근 서재에 쌓인 책들을 정리하다가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다시 만났다.
스님이 계실 때부터 수필가로서의 법정스님을 뵙고 싶었지만 불일암에 계신 것을 알았을 때도 쉽게 길을 나서지 못했었다.
문득 송광사 불일암에 꼭 다녀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일기 시작하여 지금은 스님이 떠나시고 계시지 않은 곳이지만 그래도 꼭 가보고 싶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법정스님이 계신 곳 불일암을 다녀왔다.
일행들은 송광사에 머무는데 나만 불일암으로...
불일암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편백나무 숲
늘 푸른 편백나무 숲이 여행객을 반겼다. 숲길에서 만난 시샘바람을 한번 더 걸러주는 느낌이 드는 그런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 길, 혼자서 걷기에 참 매력이 넘치는 숲이었다.
계곡을 따라 얼마쯤 걷자 불일암 가는 표지판이 보였다. 다만 오전 8시에서 오후 4시까지의 참배시간을 지켜달라는 당부가 간절하다.
그러고 보니 불일암을 찾는 여행객이 많아진 이유일지도 모른다.
송광사와 불일암을 가르키는 이정표에 새옷을 입혔나보다. 전에 없었던 표지판이 덩그러니 생겨 불일암을 처음 찾는 이라도 이제 당황할 일은 없을 듯하다.
무소유길은 탑전까지 이동한 다음에 편백나무, 대나무으로 우거진 숲길을 거쳐 오르는 길이다.
불일암 무소유 길을 따르기 전에...
불일암 무소유 길을 따르다가 편백나무 사이로 희미하게 난 산길을 따라 갔다. 송광사 옆 작은 암자 같은 탑전에 이르자 편백나무 숲이 앞을 가렸다.
우선 불일암 가는 길을 제쳐두고....
편백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불일암을 오가는 무소유 길의 시작점에 있는 이곳은 송광사 탑전이다.
천천히 숲을 걸어 뒤따르고 있는데 나무판을 댄 목조건물이 눈에 띄었다. 그다지 정성을 쏟은 건물은 아닌 듯한데, 그 용도가 사뭇 궁금해 가까이 다가갔다. 주차장이었다. 기둥에는 '탑전 전용'이라는 글씨도 보인다. 편백나무 숲에 둘러 싸여 있는 참으로 운치 있는 송광사 탑전의 스님 전용주차장, 주차장 치고는 제법 운치가 있다. 울울한 편백 숲에 자리한 주차장이라. 차가 산림욕을 하겠군. 아니 수행을 하려나?
편백 숲에서 바라본 송광사 탑전 무상각인 요사채
흔히 '탑전'이라고 불리는 이곳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은 문이 하나 있는데 그 생김새가 아주 특이하다. 문 중앙의 나무에 작은 문을 만들었는데 희한한 구조다. 암만 봐도 신기하다, 이런 문은 처음이야!
이 문을 들어서려면 누구나 허리를 굽혀야만 하고 몸이 비대한 사람은 아예 통과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폭이 좁다. 9개의 기둥으로 된 문루에는 '구산선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의 총칭이다. 이 작은 문은 '하심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탑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특이한 문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
탑전의 입구는 구산선문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 고목을 기둥으로 세워 가운데 구멍을 뚫어 놓은 특이한 형태의 문을 통과해서 구산선문으로 들어간다.
암만 봐도 신기하다. 구산선문을 뜻하는 9개의 기둥을 세운 건물도 생경하지만 통나무를 깎아 가운데로 출입문을 낸 생각이 기발하다. 낮추고 또 낮추어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폭도 좁으니 자기 수양을 게을리 한 이는 언감생심 들어설 수도 없다. 어느 스님의 안목일까? 어느 목수의 재주일까? 초목은 푸르고 탑전은 적막했다.
‘구산선문’은 아마도 구산큰스님을 만나로 가는 길을 뜻하는 문이 아닌가 싶다...분명 의미가 있을텐데 어디에도 이 문에 대한 설명은 없어 궁금증만 남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구산선문을 통과하면 적광전과 무상각인 요사채가 있다.
편백숲을 안마당 삼은 탑전은 구산스님이 송광사 8차 중창을 거치면서 총림의 면모를 갖추고 1969년 송광사에 조계총림이 개설될 당시 초대 방장으로 취임하였으며 1983년 입적한 후에 주석했던 구산 수련 스님의 다비장터로, 제자 현호 스님이 송광사 제8차 중창불사 때 건립하였다고 하며 이곳 탑전에 구산스님의 부도인 적광탑을 세우고 기리게 되었다고 한다. .
단아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송광사 탑전은 정갈한 모습에 옷매무새를 고쳐야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탑전 마당 한단 위로 조계총림 송광사의 초대방장을 지낸 구산스님의 부도탑이 있다. 구산스님의 부도를 적광탑이라 하는데 석가탑을 연상할만한 모습의 미려한 아담하면서 근엄함을 풍기는 것 같다.
구산스님의 비와 탑 앞에는 2대방장을 지낸 일각스님의 부도가 있다.구산스님의 탑인 적광탑 뒤편으로 또 다른 부도가 10기가 있어 송광사의 대표 부도전이라 할 수 있다.
탑전은 유순하게 흘러내리는 조계산의 능선과 파란 하늘이 포근하게 감싸 안은 모습이다.
순천 송광사에서 한쪽으로 살짝 비켜나 있어 많은 분들이 놓치고 가기 쉬운 곳이다. 송광사 가면 송광사 탑전도 잊지 말고 둘러보면 좋은 곳이다.
탑전 부의도 왼쪽에는 대나무 숲이 오른쪽은 느티나무가 숲을 이룬 길이 있다.
다시 만나는 다른 편백나무 숲
여기에서 탑전 앞 냇가건너 포장도로를 따라 감로암으로 가야 하는데 탑전의 부도전에서 냇가를 건너지 않고 감로암으로 가는 작은 오솔 숲길로 걷는다. 숲길은 아주 편안하고 조용하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희미한 작은 오솔 숲길로 가다보니...
길은 없어지고 감로암을 바라보며 차밭 앞으로 능선을 따라 길 없는 곳에서 현재 송광사 유일의 비구니수행 도량인 감로암으로 오른다...
해우소 풍경이 그윽한 감로암을 지나 불일암 가는 길은 능선을 만날 때까지 급경사를 올라야 한다.
감로암 뒤쪽 소나무 숲에는 송광사의 제8세 자각국사(慈覺國師, 130I~1308경) 부도도 있다.
감로암에서 불일암 올라가는 길은 이런 경사이지만 거리는 길지 않아 가뿐숨을 한번 몰아쉬면 당도한다.
송광사에서 불일암으로 넘어가는 무소유 산길, 아직 덜 알려져 있어 호젓하기 그지없다.
이곳부터는 숲길로 불일암까지 이어진다.
불일암 표시판 따라 이런 평범한 산길을 지나게 된다.
천천히 산 중턱 불일암으로 향한다. 무소유 길은 송광사에서 산중을 올라 불일암까지 이어진다. 불일암으로 오르는 무소유 길은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해 지는 길이다. 마음을 내려놓으러 가는 길, 깊은 산 숲에 봄볕이 따스하다.
감로암에서 불일암까지는 약 15분 정도 소요되며 왼쪽 아래로 광원암이 있어 인기척이 들리기도 한다.
솔숲 아래 켜켜이 쌓인 낙엽길을 걸으며 바스락바스락 부서지는 낙엽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덧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송광사 뒤편으로 난, 숲과 어울린 아름다운 길....
소나무와 신우대가 섞이어 울창한 숲을 이루는 길이 이어진다. 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한가롭게 길을 걸어간다.
꼬마 나무다리를 건너면 이른 새벽에 스님이 빗질을 한 불일암의 영역이다.
신우대나무 숲이 시작되고 불일암 가는 문이 나오고 이어 신우대나무 숲길이 나온다
생각보다 빨리 불일암에 도착한 느낌이다. 법정 스님을 빨리 뵙고픈 마음의 조급함이 더 빨리 이곳에 도착하게 한 것 같다.
법정스님이 수행하셨고 지금도 계신 곳 송광사 불일암에 도차착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는 법정 스님의 말만 귀에 맴돌 뿐이다.
암자 초입의 다소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주변을 향하던 시선이 점점 내면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살짝 열린 사립문을 비집고 들어섰다.
불일암으로 들어서는 사립문을 만난다. 대나무로 만든 문이 열려 있다. 조심스럽게 들어선다.사립문 입구에 '참배시간은 오전8시부터 오후4시까지 묵언!'이라 적혀있다..불일암(佛日庵)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 산내암자이다.
30여년 전 법정스님께서 빈손으로 와서 불일암을 직접 만들고, 밭을 일구고 나무를 심고, 꽃을 가꾸신 곳이기도 하다.
오는 손님을 대접하느라 아침 일찍 법정스님의 맏상좌이신 덕조스님은 불일감 가는 길을 쓸었나 보다. 보이지 않는 공이 있었음을 알아차린다.
사립문 지나 다시 신이대 터널, 신이대 숲이 만든 진짜 불일암 들어가는 문... 이제부터 묵언이다. 엄정하다. 사립문을 지나면 조릿대가 터널을 이루어 신비감을 준다.
푸른 대나무가 사열을 하듯 머리를 맞대고 하늘을 가려 터널 숲을 이룬 오솔길을 통과해서 발을 내딛자
어둑어둑했던 조릿대길이 갑자기 훤해지는가 싶더니 미지의 세계로 온 듯 갑자기 확 트인 공간 고즈넉한 암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근히 산을 감싸 안고 있는 아담한 암자 불일암 이다.
아치형의 대나무들이 숲을 이뤄 가로막고 서 있는 듯 저절로 살짝 고개 숙이고 들어가게 되는 절 마당 바로 스님 가까이로 가는 통로인양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든다.
이제 묵언으로 수행의 시공으로 든다. 옷깃을 여미고 발걸음을 고요히 하며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고요한 적막이 배낭조차 내려놓기가 미안해지는 마음이 된다.
고양이 걸음 마냥 발자국 소리도 소음이 될 것 같아 혹여 스님이 계신 듯 방해를 하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러워진다.
정녕 시간도 멈춰선 곳 인 듯 적막감만이 휘감는다.대나무 끝에서 본 불일암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따라가자 어둑어둑한 조릿대길 끝에 고즈넉한 암자가 홀연 모습을 드러낸다. 산중 작은 볕 아래 불일암은 편안히 앉아있다.
불일암(佛日庵)은 법정 스님이 1970년대 조계산 자락에 지은 암자이다.
사실 암자가 처음 들어선 것은 고려시대 때 였다고 하나 오늘날의 암자 모습을 갖춘 것은 순전히 법정 스님의 땀의 결과이다.
사립문을 열고 신우대 터널을 지나면 이윽고 불일암의 제법 넓은 뜰이 나온다.
아직 붉은 기운을 머금고 있는 숲 아래로 2칸짜리의 소담한 하사당과 대밭에 둘러싸인 해우소가 정갈하게 다가온다.
암자 아래 마당에 한 채의 건물 하사당에 법정스님의 맏 상좌이신 덕조스님이 기거하시고 지금은 포행을 하고 계셨다.
서걱거리는 대숲바람 소리를 들으며 불일암에 들어서니 인적 하나 없다.
이따금 대숲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가지 사이로 한 번 훑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전부이다.
아니 바람도 이미 떠나고 미처 발길을 돌리지 못한 바람만이 머무는가 보다.
불일암은 적요하다. 소박하고 검소했던 법정스님의 가풍을 이어 상좌 스님이 머물고 있는 암자는 가시기 전과 별반 다름이 없다.
불일암은 순천 송광사의 산내 암자로, 송광사의 제7대 국사인 자정 스님이 머물던 자정암으로 창건했던 몇 차례 중수를 거듭한 오래된 암자는 한국전쟁으로 퇴락했고, 1975년 법정 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이라는 편액이 걸렸다. 스님은 17년간 이 곳에 머물렀다.
세상에 스님의 명성이 알려지자 방문객이 잦아졌고, 스님은 자신의 삶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1992년 홀연히 17년 동안 정든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 작은 오두막으로 옮겨 다시 칩거생활에 들어갔다.
오른 쪽 대숲 밑에는 우물이 하나 있고 그 옆에 대나무로 만든 움막이 하나 있는데 스님께서 여름에 몸을 씻으셨다는 공간도 보인다.
텃밭에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작은 연못
암자 입구에는 동백이 화사하게 피어 길손을 반긴다. 텃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불일암의 작은 법당이 정갈하게 들어 서 있고, 맞은편에는 요사채로 보이는 작은 집이 하나 있다.
더 이상 간결할 수 없는 무소유의 경지를 보여주는 불일암 하사당
하사당은 볼 때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림을 준다. 더 이상 간결할 수 없는 경지라고나 할까. 꼭 필요한 그만큼만 가진 무소유 건물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부엌하나, 방 하나, 장작더미, 장독대. 우물은 대를 질러 속(俗)의 출입을 막았다. 우물로 이어지는 돌담이 구불구불하다. 해우소도 역시 출입금지. 찾는 이들이 늘어나자 어쩔 수 없이 금지구역도 늘어났다. 스님은 한창 포행에 열중이라 인사할 겨를도 없다. 지금은 스님에게 말 붙이는 것조차 결례가 될까 저어된다. ‘묵언’
텃밭을 지나 층계를 올라 법당 앞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무 푯말이 보인다. 사람들은 제법 있는데 모두 '묵언'이다. 암자가 깊다.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더 찬찬히 보게 된다.
법당의 댓돌에는 흰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스님께서 몸소 만들었다는 나무의자가 허허롭게 놓여 있다. 암자 주변은 고요하고 정갈하기 그지없다. 모든 사물이 스님의 영혼처럼 살아있는 듯 느껴진다.
불일암 본체는 팔작한옥으로 14평이다. 법정스님께서 직접 설계하고 지은 암자이다. 임법당으로 예불공간과 명상실이 있고 책읽고. 글쓰는 서재가 있다. 작은 다실이 있고 군불 지피고 더운물 사용하는 정재간이 있다. 정재간 다락은 책을 정돈해 두는 서재로 사용하였다 한다.
법당의 현판과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드셨다는 나무의자도 오늘은 조용하다.
‘불일암‘이라는 편액아래 중간 계단에는 법정스님이 신으셨던 것 같은 고무신 한 컬레가 놓여있다... 법정스님이 안에서 정진수행하고 계시는 것 같다.
조용히 " 묵언 수행중 " 이라는 쓴 목판이 앞에 놓인 하얀 고무신 한 컬레가 불일암의 정신을 이야기 해 준다.
봄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조용한 산골 불일암 경내는 세속의 모든 고민을 내려놓게 한다.
법정스님은 어린왕자를 참 좋아하셨다. 법정스님이 계셨던 그때에도 큰 오동나무 한그루... 촌 감사무 세그루... 그리고 앞산에 바람이 불면 흔들리던 대나무 숲이 함께 있었다.
물소리 바람소리는 이곳의 모습을 스케치한 이곳에 계셨던 법정스님의 그림종이가 아닐까?
늘 불일암은 묵언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와는 상관없이 묵언에 빠진다. 묵언이 법정스님을 대하는 최고의 예우임을 알기 때문이다.
허름하지만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로 법정스님의 뒤를 이은 덕조스님의 발길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는 법정스님의 제자 덕조스님께서 스승의 뒤를 따르고 있다.
스승이 매일같이 바라보던 나무를 그대로 바라보면서 예불을 드리고 성심성의껏 돌본다고 하니 극진한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감히 짐작해볼 수 있었다.법정스님이 아직 살아계시는 것 같아 (법정스님이 안에 게시기에) 옆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씀도 남긴다.
법정스님은 이렇게 불일암을 지키고 계셨다.
덕조 스님
법정 스님께서 새로 짓고 머물렀던 곳, 순천 송광사 불일암에서 살며 수행하는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의 맏 상좌이다. 1983년 3월 송광사로 출가한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을 시봉하며 송광사 강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대만에서 유학하며 5년 동안 계율학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송광사 선원에서 정진하였다. 1997년 서울 성북동에 길상사가 창건된 뒤 12년 동안 법정 스님의 뜻에 따라 길상사 주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이사로 일하며 대중들과 더불어 수행, 정진해왔다. 2009년 홀연히 길상사의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출가한 송광사로 돌아와 선원에서 정진하며 지내다 2014년부터 조계총림 송광사 승가대학 학장 소임을 맡아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강의와 수행에 몰두하는 와중에도 솔바람, 새소리, 다람쥐와 꽃이 들려주는 말 속에서 하루하루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고 인터넷을 통해 그 소박하고 맑은 마음을 전하고 있다. 그동안 자연 속에서 받은 은혜를 향기로운 글과 사진에 담아 첫 에세이집 ‘마음꽃을 줍다’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25년 전 법정 스님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은 뒤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티베트 사진전’을 열었다. 2005년 제1회 ‘템플스테이 사진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법정 스님이 불일암 시절 늘 앉아 있던 빠삐용 의자
법당 앞의 스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의자에 다가간다. 어쩐지 정감이 가는 의자다. 투박하지만 의자는 소박한 아름다움까지 풍긴다.
스님이 직접 만든 빠삐용 의자는 스님을 추억하는 공간이 되었고 여전히 주인을 떠나보낸 빈 의자로 홀로 불일암을 지키고 있다.
빠삐용 의자 위엔 방명록과 스님 말씀이 새겨진 책갈피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나무의자 책갈피에 눈을 갖다 대어 본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는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법정스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방명록을 열어보면 이곳을 먼저 찾은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빼곡하다. 간단하게 잘 다녀간다는 인사부터 스님에 대한 그리움을 긴 글로 남긴 방문자도 많다. 예쁜 바구니엔 사탕이 들어 있고 그 옆엔 스님 말씀이 새겨진 책갈피가 놓여 있다. 누구든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다.
스님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정성껏 가져다 놓은 예쁜 꽃바구니도 있었다.
언젠가 스님은 어린 왕자에게 편지를 썼다.
‘어린 왕자! 지금 밖에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에 번지는 하오의 햇살이 지극히 선하다. 이런 시각에 나는 티 없이 맑은 네 목소리를 듣는다. 구슬 같은 눈매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그 눈매를 그린다. 이런 메아리가 울려온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무소유-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불일암에 간다면 어린왕자의 마음으로 갈 일이다. 빠삐용 의자에 앉은 스님이 어린 왕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빠삐용의 죄는??? 인생을 허비한 것이란다.
"빠삐용이 절해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였거든, 이 의자에 앉아 나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는 거야"
-무소유, 중에서스님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 같다. 앞을 바라보니 녹슨 등불이 참나무 기둥에 투박하게 얹혀있고, 그 등불 뒤로 푸른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대나무 숲 뒤로는 조계산 자락이 보살의 품처럼 아늑하게 펼쳐져 있다.
스님께선 이 의자에 앉아 푸른 대숲을 바라보며 명상에 젖었겠지. 스님의 글을 읽어보면 유난히 대숲을 좋아하셨다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스님의 성품 또한 대쪽처럼 곧고 정직하며 언행이 일치했다. 누구나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가 않다.
벽에는 생전 법정스님께서 환하게 웃는 사진 한 장이 걸려있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어디 있는가? 모두 한 때일 뿐……. 그러나 그 한 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라는 생전의 말씀이 불일암 의자 앞에 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따뜻한 햇살 비추는 불일암에 스님은 안 계시고 손수 만드셨다는 나무 의자만 덩그러니 남았지만 스님의 모습과 말씀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늘 법정스님에 대한 생각은 흑백사진이 되어 한곳에 멈추어 있다.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법정스님이 나올 것만 같다...
하얀 벽에서 웃고 계시는 스님을 보고 ‘스님의 말씀 잊지 않고 새기며 살겠습니다.’라고 다시 되뇌고 있다.
봄날의 바람에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침묵 속의 울림을 느낀다.
불일암(佛日庵)은 원래 송광사 16국사 중 제7대 자정국사가 창건한 자정암 폐사 터에 법정스님이 1975년에 중건하여 편액을 걸고 세랍 43세 때인 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 동안 홀로 수행하던 곳이다. 스님은 이곳에서 주석하면서 1976년 <무소유> 등 주옥같은 서적들을 집필했다. 이후 스님은 불일암에서 수행과 책읽기, 집필 작업에 주로 몰두했다. 법정 스님이 이곳에 계실 때 <무소유> 이후 세간의 관심이 커지면서 찾는 이가 많아지자 스님은 미련 없이 아예 강원도 두메 산골의 화전민이 사는 곳으로 다시 수도처를 옮기기까지 불일암은 곧 법정스님이었다.
그리고 법정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열반해 이곳에 잠들었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두가 한때일 뿐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스님은 전남대 3학년을 수료한 후 1956년에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비구계를 받고 난 후에는 역경 불사와 <불교사전> 편찬 등에 매진했다. 4ㆍ19와 5ㆍ16을 겪으며 유신철폐 개헌서명운동에 동참했던 스님은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혁당 사건이 후 산으로 돌아간다. 스님은 불일암을 손봐 이곳에서 홀로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1976년 <무소유>가 출간된다. 간디와 함께 스님이 영향을 받았던 소로우가 월든 숲으로 들어가 그의 대표 저서인 <시민의 불복종>을 썼던 것처럼, 스님은 산으로 들어가 <무소유>를 썼다.
‘모든 분께 감사한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했다.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나 전남대 상과대 3년을 수료한 뒤 22세 때인 1954년 경남 통영시 미래사에서 효봉(曉峰)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59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慈雲) 스님을 계사(戒師계를 주는 스님)로 비구계를 받았다.
스님은 경남 합천군 해인사, 경남 하동군 쌍계사, 송광사 등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했다.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송광사 수련원장 등 종단 소임을 몇 차례 맡았을 뿐 수행자로서 본분에 충실했다. 1994∼2003년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회주(會主모임이나 법회를 이끄는 사람)와 1997∼2003년 서울 길상사 회주를 지냈다.
이 분이 머물던 곳 중 대표적인 장소가 1975년부터 1992년까지 머물었던 송광사 불일암이다. 스님은 강원도 평창 모처로 옮기기 전까지 '무소유(1976)'등 많은 저서를 이곳에서 저서를 집필했다.
평소 무소유를 실천하신 법정 스님이 머물던 암자에는 최소한의 것들 밖에 없다.
법당 하나, 우물 둘, 몸을 씻는 움막 하나, 선방인 하사당, 장작더미, 지게 하나,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든 의자 하나, 해우소 하나, 바람 한자락이 전부이다.
정말 간결하고 소박한 쉼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데 가지런한 장작은 아직도 이렇게 남아 있다.
불일암 마당에 서 있으니 '산에는 꽃이 피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등의 저서를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처럼 느껴질 것이다.
나무의자 아래로 보이는 하사당은 원래는 법당 건물이었으나 법정 스님이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이전의 건물을 해체하여 다시 지은 것이 하사당이라고 한다.
텃밭의 오른 쪽에는 작은 요사가 하나 있다. 요사의 댓돌에는 털신이 한 켤레 놓여 있고, 마루에는 밀짚모자가 덩그러이 놓여 있다. 벽에는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탁이 하나 걸려있다. 스님은 홀로 공양을 하면서도 목탁을 쳤을까? 요사의 오른 쪽에는 장독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요사의 왼쪽에는 새로 팬 장작더미가 수북이 쌓여있어 절집이 풍성하게 보인다. 뒤꼍에는 갈퀴, 낫, 호미, 망치, 도끼 등 연장도구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삶을 유난히도 좋아하였던 스님은 손수 지은 방 한 칸짜리 오두막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들여놓고서 살아간 소로우처럼 홀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을 하며 살기를 원했다.
요사 아래에는 양철로 뚜껑을 덮은 우물에서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바로 건너편에는 작은 해우소가 대숲에 서 있다. 해우소 입구에는 대나무로 가려져 있고, 작대기를 받친 지게가 주인을 기다리듯 서 있다. 그 모든 것이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들만 제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 간소한 최소한의 물건들로 부터 스님의 말씀이 새삼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불일암 앞 공터엔 작은 주전자와 찻잔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누구든지 직접 따라 마시도록 배려해 놓은 모습이다. 나무 그루터기 모양 의자는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참배 오신 분들 쉬었다 가시라 소박하지만 이렇게 탁자와 의자가 있고 주전자와 컵도 준비되어 있다.
물 한잔 마시면서,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바람소리, 새소리, 처마 밑 풍경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불일암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이다. 묵언 속에 참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먼산을 바라 본다.
봄날의 햇살이 내리는 불일암에 법정스님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모두 멈추어 있다. 봄을 향해 가고 있는 산의 형세를 바라본다.
함께 바라보았던 대나무 숲 너머 먼 산을 응시한다. 불일암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한적함이 참 좋다.
암자 앞 태산목은 겨울을 잊는 듯 초록의 자태를 보이고 있다. 그 옆에 낙엽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만을 모두 드러낸 채 조용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후박나무가 서있다. '서너 자밖에 안 되던 묘목'을 암자 앞에 심어 놓고 성장과장을 지켜 보면서 꽃피던 녀석을 보면서 기뻐했던 법정 스님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법당 앞엔 법정스님이 36년 전에 직접 스님께서 심으시고 사랑하셨다는 커다란 향목련(스님은 후박나무라 하셨다) 한 그루 서 있다.
나무 아래에 예쁜꽃이 담긴 화분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앞에 대나무로 간소하게 네모난 울타리를 둘러 스님이 잠든 곳을 표시했다. ‘성철스님 게신 곳‘ 이 글을 보고 발걸음이 조심스러워 졌다.
나무 아래 작은 화단은 스님 다비식 이후 일부를 산골해 놓은 곳으로 법정스님의 수목장을 한 향목련나무 아래에 서서 그분을 그리워 해 본다.
'무소유' 삶을 살다간 법정(法頂)스님은 없지만 스님이 남긴 자취는 오롯이 남아 있었다.
스님의 생애와 정신이 살아있는 한뼘 남짓한 작은 터, 그곳에 한줌 흙으로 돌아간 스님의 흔적이 남아있다. 고개 숙여 합장한다.
방문객들도 말이 없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방문객들은 절을 한다. 아무도 없는 법당을 향해서 정성스럽게 절을 한다. 그것은 방문자의 마음과 보이지 않는 마음에 대고 하는 절이리라.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시던 법정스님. 이제는 법정스님과 하나가 되어버린 향목련나무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을 하였다. 한 아름되는 후박나무에서 봄기운이 느껴진다. 스님의 정취가 느껴진다.
올해 3월 11일이 법정스님이 입적한지 9년째다. 3월의 따스한 봄날에 텃밭에는 새 생명들이 피어날 것이다.
법정스님이 이곳 불일암에 있을 때 이해인 수녀님이 방문했던 당시 일화가 기억난다. 우연찮게 스님과 수녀님 두 분만 남아 어색하게 마주 앉아 있을 때 헛기침만 연발했다는 당시 법정스님에 대한 수녀님의 재미있는 회상을 한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암자가 정갈하여 아름다운 것만은 아닌가 보다. 법정 스님의 발자취가 아름답고 뒤를 이은 스님들의 정성이 아름답다.
암자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사실 망설이게 된다.
번잡한 절집을 벗어나 수도를 위한 곳이 암자인데, 불청객이 혹여 수도를 방해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암자 가는 길을 굳이 말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간절한 자는 길을 몰라도 길을 찾게 되는 법이다.
후박나무 아래론 아담한 텃밭이 자리하고 있다. 텃밭 모퉁이엔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옆에는 태산목도 서 있다.
벚꽃잎이 날리면서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암자 앞뜰은 불일암 텃밭이다.
겨울 내내 묵혀있던 땅속 속살이 밖으로 노출돼 있다. 거무스레한 흙에서 풋풋한 봄기운이 솟아난다. 새 생명의 싹을 틔울 텃밭이다.
일찍이 법정스님이 이곳에서 수행하면서 가꾸었던 텃밭이다. '새봄의 흙냄새를 맡으면 생명의 환희 같은 것이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른다. 맨발로 밟는 밭 흙의 촉감, 그것은 푸근한 모성(母性)이다'라고 봄을 기술했다. 누구보다 더 자연주의자였던 스님의 숨결이 느껴진다.불일암에서 보낸 17년의 세월이 이 텃밭에 묻어있는 것 같다. 스님의 손길과 발자국이 무수히 남아 있을 텃밭이 아닌가!
법당 옆 산기슭에 송광사 제7대 자정국사승탑이 단아하고 기품 있게 서 있다.
불일암 옆 언덕엔 자정국사의 부도인 묘광탑이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다 .
불일(佛日)이란 ‘부처의 빛’이라는 뜻이다. 불일(佛日)은 고려시대 불교 개혁의 중심 스님이었던 보조국사의 시호였다고 한다. 법정스님이 불일암의 원래 이름인 자정암을 1975년 이곳으로 오셔서 불일암으로 편액을 내걸었던 것은 아마도 보조국사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다 온 것 같다.
마음의 평안함, 마음속의 근심과 욕심, 걱정거리 모두 내려놓고 오는 좋은 경험이었다.지혜로운 마음으로 진리를 보며, 자비의 마음으로 사랑을 하며 바로 이 순간을 살아 가는 것이야 말로 스님이 남겨주신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한다.
종교를 초월하여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떠나신 성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오솔길이며 채마밭, 해우소, 장독대, 풍경, 나무의자 어느 것하나 넘침이 없이 소박하다.
허나 법정스님은 이마저도 넘친다며 강원도 산골로 떠나셨다.
속세에 살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욕심내며 아둥바둥 살아가는 제 스스로 돌이켜 볼 수 있는 귀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따라오는 오솔길 하나. 차마 떨치지 못했다.스쳐가는 걸음마다 무소유의 씨앗을 심고 비움의 골격을 세우라는 음성이 잔영으로 들린다. 비웠기에 스쳐온 사찰마다 그의 아름다운 족적이 불교계를 흔들고 불일암 가득히 채워지고 있었다.
마당에 심어 놓은 가지런한 텃밭을 보다가 법정스님과 인사를 한다. 말이 없어서 좋았던 ... 불일암...
아주 정갈한 불일암의 전경,
이제 곧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새소리가 들리고 온갖 생명력으로 봄의 왈츠가 연주되겠지....
암자를 나간다.
법정 스님이 머물다 가니 바람마저 길을 떠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자, 불일암....
불일암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아름다운 숲길을 택한다...
신우대나무 숲이 끝나면 대나무 숲이 이어지고 주차장 방향으로 내려선다..
사립문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산죽 우거진 오솔길에는 어느 틈엔가 세속의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앉는다. 덕조 스님과 7분의 상좌 스님들이 손수 만든 나무계단을 내려간다.불일암에서 내려가는 길의 무소유의 길
불일암을 감싸고 있는 대나무 숲길이 참 신비로웠다. 푸르른 잎을 자랑하며 거센 바람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부드러움을 온 몸에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부드러움이 강인함을 꺾는다는 말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자연에서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대나무숲길문이 보호해주는 불일암은 참 따뜻했다.
이 대나무 숲에서 스님을 찾아 온 제자들은 불일암에 수도를 하고 계시는 스님을 향해 "스님~" 하고 부르기도 했다는 곳이다. 대숲을 걷다가 왠지 나도 스님을 불러보고 싶어진다. "법정스님~" 암자를 향해 큰소리로 스님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나 스님의 대답 대신 '우우~' 하며 대나무 소리만 메아리쳐 온다.
대나무 숲 사이를 걸어가는 느낌은 좋았다.
대나무 잎들끼리 부딪치는 마찰음과 새소리, 물소리, 풀냄새를 통해 단순히 시각과 촉각만으로 즐기는 것보다 청각과 후각을 동원하면 더욱 경관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스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 이 대나무숲을 많이 좋아하셨다 들었다.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면서 대나무숲의 소리와 공기를 느껴 보았다.
대숲 길에 들어서는 길에도 스님의 주옥같은 가르침이 팻말에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법정스님스님께서 마지막으로 쓰셨던 책 '아름다운 마무리'중에서....)
나무 관도 없이 평소에 입던 가사 한 벌만 입고(受) 피안의 세계로 가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 세상 어떤 수행자의 마지막 모습보다 파격적이고,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속세를 벗어나 부처의 세상으로 들어가 듯 마지막 안내자는 대나무이다.
좁은 골짜기 길은 나무뿌리가 계단이 되어 주는 가파른 흙길이다.
자연 속 자연스레 시간을 두고 생겨난 아름다운 오솔길이다.이 길을 오갔을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뒷모습을 따르자니 절로 발길이 가벼워진다.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마음마저 가라 앉는다.
길섶으로 놓인 나무의자에서 쉬면서 내 안의 나를 한번쯤 돌아보라는 듯하다. 세상사에 켜켜이 쌓인 마음속 오니가 씻은 듯 사라진다.불일암 입구의 대숲. 검소하게 살다 간 법정스님의 성품처럼 올곧게 자라고 있다. 향을 싼 종이에서 향내 나듯 대숲을 휘돌아 불어오는 바람에선 푸른 향내가 난다.
정말 산길을 걷다보니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도 걸었고, 법정스님도 걸으셨던 '불일암'으로 오가는 길은 아름다운 길이었음을 말해주고 싶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셨던 , 법정스님께서 지내셨던 암자였기에 스님의 흔적이라도 찾아뵈려고, 편백나무 숲길과 대나무 숲길, 야생화가 있는 숲길을 지나서 평온한 마음으로 '무소유 길'을 걸어간다.
대나무 숲을 지나 굴참나무 등의 참나무 집안 나무들도 만난다.
불일암 가는 무소유 길에는 곳곳에 조릿대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물론 큰키를 자랑하는 대나무도 서걱거리며 산골바람에 봄기운을 섞은 산사의 소리를 뽐내고 있었다. 한낮의 햇살은 홀로 찾은 여행객에게 외롭지 않게 밝게 웃어주는 것 같았다.
대나무 숲이 끝나고 만나게 되는 편백나무 숲
졸졸졸 맑게 흐르는 개울에 걸친 통나무 다리를 건너자 향기로운 숲이다. 그 사이로 옅게 길이 보인다.
개울 건너서도 만나는 또 다른 편백나무 숲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법정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불일암으로 들어가는 대숲 길 초입에 아로 새겨진 팻말이 나그네의 발길을 또 머물게 한다. 작고 소박한 것에 깃든 행복과 아름다움을 설파하는 법정스님. 당신의 삶이 그러했기에 가신 뒤에도 더욱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불일암... 이 길을 가장 많이 걸었던 발가욱은 법정스님일 게다. 고무신을 신고... 걷고 멈추고 걷고 멈추고.. 방장스님을 뵙고 자연에 대한 인사를 하였을 게다.
산길은 소나무 숲이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쉬엄쉬엄 내려간다.
길에는 소나무 사이로 잡목이 우거져 있고, 동장군에 시달리던 진달래도 몇 송이 꽃을 피워 무리에 보탠다
송광사 무소유 길은 지난 2010년 3월에 입적하신 법정스님께서 오르내리면서 큰 깨달음을 이루신 길로, 지금도 송광사 스님들의 행선 코스로 애용되고 있는 송광사의 보물과 같은 소중한 길이다.
기운찬 이 길을 함께 걸으며 법정스님의 수행의 자취도 느끼고, 송광사의 사계절 풍경도 가슴에 담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본다.한동안 길 이름을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걸어본다. 이름이 없어도 아무 제약도 없다. 오히려 그냥 바라보고 걸어가는 길이 더 친근하다. 길 섶에 몇 포기 민들레가 노란색 꽃을 피우고 있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피는 들꽃이다. 그 옆으로 제비꽃도 피고, 냉이꽃도 앞 다투듯 하얀 꽃대를 올려 숲의 일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불일암에서 내려오다 송광사 가는 길 탑전 옆에 만나게 되는 편백나무 숲
불일암 암자로 가는 이 대나무길이 너무 좋아 다시 오고 싶었던 이곳...
앞서 내려가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평온함이 보이고 그 모습을 보며 나 또한 그런 마음이 들어 기분 좋은 나들이였다.
이렇게 고운 봄날, 모두 행복한 날이 되길 바래보며....어제는 어제대로 오늘은 오늘대로 내일은 내일대로 그렇게 무심히 별일 없이 곱게 흘러 가기를 바래본다..
이런 저런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편백나무 숲 속에 와 있다.
불일암 가는 길은 짧지만 다채롭다. 송광사 가는 길을 따라 걷다가 보면 편백나무 숲이 있다. 굵기는 굵지 않지만 쭉쭉 뻗은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감로암을 거쳐 불일암에서 주차장 방향으로 하산하다가 탑전 옆을 지나 송광사로 향한다. 주변에서 피어나는 편백나무 향기에 행복감을 느끼는 산책길 이다.
그 고운 측백나무 숲을 지나.... 처음 들렀던 탑전 옆을 지나...
송광사쪽으로... 바삐 송광사에 있을 일행을 만나러 종종걸음으로 송광사로 향해 본다...
송광사는 몇 번 걸었지만 무소유에 대한 실천을 행한적은 한번도 없다.
늘 욕심차게 냉장고를 채우고 밥 한톨을 더 욕심낸다... 아주 잠시.. 불일암의 걷는 길을 따라... 잠시 아주 잠시 나를 살펴보고... 다시 나는 속세인이 된다.
2017년 새로이 개관한 송광사 성보박물관 앞을 지나....
개울을 건너
송광사 조계문 앞에 도착이다...
봄기운이 넘치는 계곡을 건넌다. 겨우내 앙상했던 나무들은 가지 끝마다 새싹들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길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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