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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 쌍계사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사찰여행/경상도 2017. 9. 27. 23:10

    하동 쌍계사

      

      

    2017.     9.    27.

     


    2017.   9.     27  . 도련결 테마여행과  함께한 하동 쌍계사 북천코스모스와 메밀꽃 축제 여행길 이다...


    포항출발 (06:30)    대구    함양  → 광하동  쌍계사  도착(10:00) 후  


    오늘 첫번째 여행지 쌍계사 여행이다..


    쌍계사는 진감선사가 육조 혜능선사의 '남종 돈오선'을 도입하여 신라에 최초로 전법한 선종의 대가람이자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를 재배한 차의 발상지이며또한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도입하여 우리에게 맞도록 고쳐서 보급하고 발전시킨 해동범패(海東梵唄)의 요람이기도 하다. 이런 연유로 쌍계사는 '(), (), ()의 성지'라고도 일컬어진다.






    쌍계사 가는  길의 벚나무. 봄이면 벚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쌍계사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자리잡고 있는 규모가 크고 유서깊은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3교구의 본사이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722 ), 대비(大悲)와 삼법(三法)의 두 화상이 중국 선종의 육조(六祖)이신 혜능(慧能) 스님의 정상(頂相, 두개골뼈)을 모시고 귀국하였는데, 꿈에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 에 봉안하라" 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최초로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신라 문성왕 2(840 )에 진감선사(眞鑒禪師) 혜소(慧昭) 스님(774~850)이 개창하여 옥천사(玉泉寺)라고 불렀는데, 그후 헌강왕(憲康王) 때 앞으로 흐르는 쌍계를 인용한 '쌍계사'라는 이름을 하사(下賜)하고 학사(學士) 최치원(崔致遠)으로 하여금 쌍계석문(雙磎石門)’4 자를 쓰게 하여 바위에 새기도록 하였다고 한다.

     

    진감선사는 육조영당(六祖靈堂)을 세우고 육조혜능의 정상을 안치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나중에 금당(金堂)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현재의 금당 안에는 용담 스님이 묵암사에 있던 7층 석탑을 옮겨다 놓고 그 아래에 육조정상을 안치하였다. 금당 안에 있는 이 탑이 바로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 이다.

    그래서 금당은 불상 대신 그 자리에 탑이 들어서 있는 특이한 법당이 되었다.

     

    진감선사는 많은 공적을 남기셨지만, 중국에서 귀국하며 우리 불교역사상 처음으로 범패(梵唄)를 보급한 것으로도 불교 포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셨다고 한다.

     

    그 뒤로도 쌍계사는 두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632(조선 인조 10)부터 벽암(碧岩)스님이 중창하였고, 그 후로도 백암, 만허, 고산 등 여러 스님들의 노력에 의하여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쌍계사 가는길의 차밭






    넓직한 쌍계사 주차장 도착하니 가는 안개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한다..




    주차장에서 쌍계1교를 들어서서 절로 향한다..









    쌍계사 주차장에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놓인 다리를 건너 부처님의 세계로....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쇠지팡이로 썼다는 상계(雙磎), 석문(石門),   이곳을 지나 속계(俗界)에서 법계(法界) 걸어 들어갔다.







     雙磎· 石門  안내문




















    쌍계사 입구의 폭포







    쌍계·석문을 지나 푸른 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쌍계사로...








    매표소에서 입장료는  2,500원인데 불자라서 신도증을 보여주고 들어 간다..








    쌍계사 계곡, 쌍계사로 오르는 길, 신록과 계곡의 물소리는 진정한 부처님의 세계였다.







    신록과 시원하게 부셔지는 쌍계사 계곡의 맑은 물...






    좌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합쳐지는 곳이라 하여 쌍계사라 한단다...











    쌍계사는 벚꽃으로 유명한 곳인데  숲의 푸르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쌍계사 주차장에서 숲길 따라 걷는다...

















    쌍계총림 종합안내도를 지난다.. 











    쌍계사 주차장에서 숲길따라 6~7분 걷다보면 작은 전각 건물의 일주문이 서있다.  일주문은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나누는 경계로,  속세의 마음을 털어 버리고 들어서라는 뜻을 담고 있는  팔작지붕으로 된 일주문이다...













    일주문 오른쪽으로 비전이 있다...














    일주문 오른쪽으로 비전이 있는데 안쪽에 각종 공덕비와 함께 근래에 조성된 쌍계사 사적비가 서 있다.











    삼신산 쌍계사 사적비명 병서(三神山 雙磎寺 事蹟碑銘 幷序)






    쌍계사 사적비






    용담선사비











     하동 쌍계사 일주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입구부터 약 10분 정도 걸으면 이렇게 멋진 돌다리가...






    일주문 전면에 삼신산 쌍계사 편액을 달고 서 있다.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되어 있는 다포식이다. 앞면에는 3구씩·옆면에는 2구씩 배치하여, 처마가 매우 화려하며 공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기둥 앞뒤에는 보조 기둥을 두어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데, 보조기둥 머리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화려한 다포계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일주문이다.









    일주문 뒤로  금강문이 보인다..

     

















    일주문에는 전면에 '삼신산쌍계사'(三神山雙磎寺)라고 씌여진 현판이, 그리고 후면에는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이라고 씌여진 현판이 걸려 있.

    두 현판 모두 조선 말의 대서화가인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 1868~1933) 선생의 글씨이해강은 해인사, 전등사송광사 등 수많은 사찰에 글씨를 남겼다..

     





    일주문 후면에 '선종대가'(禪宗大伽藍)'이라고 씌여진 현판이 걸려 있다.






    일주문을 통과해서 조금 진행하면 높이가 8m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翼工系) 공포(栱包)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인 하동 쌍계사 금강문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27호)이 나온다.   금강문  앞에는 벽암(碧巖, 1575~1660) 스님이 쓴 '金剛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일주문을 지나 두 번째로 통과하는 문으로 전체적으로 부재 크기가 다소 작아서 가냘프고약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쌍계사 금강문은 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세웠고, 인조 19(1641)에 벽암선사가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에 수리한 것이다.

    건축양식은 앞면 3· 옆면 2칸으로 1층이다.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금강문 입구의 꽃무릇...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왕문과 함께 절에 들어오는 공간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 있는 장소로 가운데 칸은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 끝 칸은 벽으로 막아서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으로 금강저를 손에 들고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로 금강야차(金剛夜叉)라고도 부른다. ...





     

    금강문의 우측에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신을 뜻하는 나라연(那羅延)금강 혹은 홈금강을 모셨다.






    금강문의 좌측에는 언제나 부처님에게 바짝 붙어 그를 보호하면서 비밀스러운 내용을 들으려 하였다는 밀적(密迹)금강 혹은 '아금강'을 모시고 있다..










    금강문을 들어서서 천왕문 쪽에서 바라본 금강문으로 그 익공계 공포란 '기둥 위에 보아지를 끼우고 그 위에 주두와 쇠서를 짜서 장식하는 공포'말하는데 포를 이루는 부재의 모양이 새의 날개형상이라고 하여 익공계라고 한다.

     

    공포란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등에 짜 맞추어서 덧붙인 나무 부재로서 장식의 기능까지 겸하고 있다고 한다.

     






    천왕문 앞에 놓인 내청교를 지나 쌍계사 천왕문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26호)으로 향한다.








    천왕문은 일주문과 금강문 다음으로 통과하는 세 번째 문으로 사천왕상을 모신 전각이다.

    쌍계사 천왕문은 숙종 30(1704)에 박봉스님이 지었고 순조 25(1825)에 고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산스님이 1978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앞면 3·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천왕문은 금강문보다 충실하고 튼튼하며,   다소 격이 높지만 금강문과 거의 비슷한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천왕문 안에는 사천왕을 모시져 있는데 가운데 칸은 개방해서 통로로 사용하고 있고, 양 옆칸은 벽으로 막은 후 부처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승과 불자를 돕는 사방의 수호신인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사천왕은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주의 광목천왕, 남주의 증장천왕,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이 있다.











    천왕문 들어와서 바라본 모습이다..



    천왕문을 지나면 2층 누각의 팔영루와 그 앞에 9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쌍계사 9층석탑(雙磎寺 九層石塔)


    천왕문을 지나면 팔영루 앞 뜰에 선, 기묘하면서도 화려하게 생긴 키가 큰 석탑이 성큼 다가선다국보 제48호 월정사 구층 석탑을 쏙 빼닮은 쌍계사 구층 석탑 이다.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3과와, 산내의 국사암 후불 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2, 그리고 전단나무 불상 1 위를 모셨다고 하고 백창기라는 신도 부부의 시주로 87년에 시작하여 903월에 준공되었다 한다.






     쌍계사 팔영루(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74호)


    쌍계사의 누문인 '팔영루'(八泳樓)840(신라 문성왕 2) 진감선사가 창건하였고,  1641(인조 19)에 벽암(碧巖) 스님,  1978년에 고산스님이 각각 중수하였다.


    건물은 정면 5측면 3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2층 누각 형태이며,  2층은 마루로 되어 있고 넓이는 106평이라고 한다그러나 가운데 있어야 할 누문은 막혀 있고그 자리에는 이런 저런 판매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양쪽 옆 계단을 통해 대웅전으로 올라 가도록 된 구조여서 조금 이상하고,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팔영루 오르며 돌아본 9층 탑 앞 마당과 천왕문 뒷 모습이다..  여기는 벌써 꽃 무릇이 지고 없다..





    팔영루  오른쪽으로 쌍계사 종무소와

     




    그 오른쪽 안쪽에 해행료 건물이 있다.









    팔영루는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창시자'인 진감선사가 우리 민족에게 맞는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처음으로 만든 '불교음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팔영루는 전례 공간이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나라의 범패 명인들의 길러내는 교육장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 '어산'(魚山)을 작곡했다고 하여 '팔영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쌍계사 누각 밑을 통하지 않고 누각 오른쪽이나 왼쪽 계단을 통해 대웅전 마당에 오른다





    팔영루의 후면은 다소 어수선한 전면과 달리 큰 전각다운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팔영루 후면 처마 아래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이 현판은 우송(友松) 민효식(閔孝植) 이라는 서예가가 쓴 것이라 한다.

    '마곡사'나 산청 '심적사' , 사찰의 현판이나 주련을 많이 쓰신 분이다.





    2층누각의 팔영루를 지나 팔영루 옆으로 들어가서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선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전면에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가 서 있고 높은 계단 위에 대웅보전이 우람한 모습으로 올라 앉아 있다.


    대웅전 앞마당 왼쪽에는 설선당이 있고, 오른쪽에는 적묵당이 있다.





    거북 모양의 약수





    대웅전 영역 마당 중심에는 국보로 지정된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세워져 있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탑비(국보 47호)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는 진감선사대공탑비(眞鑑禪師大空塔碑)는 신라 제50대 정강왕(定康王)이 진감선사의 높은 덕과 법력을 기리고자 887(정강왕 2)에 이 비를 건립하도록 했다고 한다.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환영스님이 새겼으며,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四山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치원의 '사산비''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를 필두로,   충남 보령 성주사 터에 있는 '대랑혜화상백월보탑비'(국보 제8),   경주에 있는 초월산대숭복사비,   문경 희양산에 있는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보물 제138) 등 최치원이 비문을 쓴 네 개의 비석을 일컫는 것이다.








    진감선사대공탑비는 검은 대리석으로,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높이는 3.63m, 탑신은 2.02m라고 하며몇 십년 전 지리산 지진으로 비신의 좌측 상부에 크게 깨져나간 부분이 있고 균열이 상당히 심한 상태이다.   귀두(龜頭)는 짧고 정체가 명확하지 않은 동물의 머리 형태로 표현되어 있어 신라 후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의 크기는 2.3cm, 글자수는 2,423자나 된다고 한다.





    진감선사는 많은 공적을 남기셨지만, 중국에서 귀국하며 우리 불교역사상 처음으로 범패(梵唄)를 보급한 것으로도 불교 포교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셨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금강문천왕문팔영루대웅전까지의 쌍계사의 주요 전각들은 서향인데, 이 진감선사대공탑비는 남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웅전 향 좌측 옆에 위치한 쌍계사 적묵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호)


    적묵당 정면 처마 아래에는 회산(晦山) 박기돈(朴基敦, 1873~1948) 선생이 쓴 적묵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박기돈 선생은 조선말의 학자이자 서예가로 벼슬은 정삼품 통정대부에 이르렀으며 해인사 현판글씨를 남기기도 한 분이다.





    적묵당(寂默堂)은 불도에 처음 입문한 스님들이 수행을 하던 전각으로통일신라시대인 840(문성왕 2)에 진감선사가 세웠고조선 인조 19(1641)에 벽암선사가, 1978년에는 고산 스님이 고쳐 지었다고 한다.   정면 6,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지금은 쌍계사 강원 스님들의 정진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적묵당 한쪽의 여여문









    대웅전 향 우측 옆에 있는쌍계사 설선당 (경상남도 뮨화재자료 제153호)





    적묵당 맞은 편에 서 있는 설선당(說禪堂)은 적묵당과 같은 시기에 건축되었고,  1641년 벽암선사와 1801(순조 1) 화악선사에 의해 중수 되었으며, 2002년에 고산 스님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정면 5,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이다.





    설선당은 스님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교육장으로 역시 회산 박기돈 선생이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쌍계사 대웅전(보물 500)


    주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5, 측면 4칸의 다포계(多包系)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웅전은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 즉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이라는 의미인데, 높은 기둥 위에 '창방'(昌枋 : 기둥머리와 기둥머리를 연결하여 평방이나 화반 등을 받쳐주는 가로 부재)을 두고, 그 아래 광창(光窓)을 달았으며, 중앙 3칸에는 각각 사분합(四分閤) 빗살문을, 좌우의 두 칸에는 각각 두짝의 정자살문을 달았다.









    대웅전 내부에는 3곳에 불단이 조성되어 있으며 중심이 되는 가운데 불단에  보물로 지정된 삼세불좌상과 보살입상(보물 1378)이 모셔져 있다. 뒤편에는 삼세불탱(보물 1364)이 있다.






    대웅전 삼세불탱'(大雄殿 三世佛幀)은 비단 바탕에 채색한 후불탱화로서 중앙의 석가모니불화를 중심으로 왼쪽에 약사불화, 오른쪽에 아미타불화를 배치한 탱화이다.

    1781년에 제작된 대형불화로서 석가모니불화의 부분적 손상을 제외하고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18세기 후반기의 불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진품은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대웅전의 후불탱화는 필사본이라 한다





    대웅전에 모셔진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木造三世佛坐像 四菩薩立像)은 중앙의 석가모니불좌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약사불좌상, 왼쪽에 아마타불좌상을 모셨으며 협시불인 일광, 월광, 관음, 대세지보살로 추정되는 네 보살입상을 안치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조성시기와 재료, 양식이 다른 아미타불좌상을 제외한 6기가 2003년에 보물 제1378호로 지정되었다.

    이 불상들은 1639(인조 17) 청헌(淸憲) 11명의 화승(畵僧)에 의해 조성되었고 조선 중기 불상제작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하동 쌍계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河東 雙磎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四菩薩立像)(보물제1378)

    하동 쌍계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 중 아미타불을 제외한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그리고 일광·월광·관음·세지보살로 추정되는 네 보살입상이다.


    중앙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불은 본존불로서 삼불상 중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동그스럼해진 머리는 이마 위쪽과 머리 꼭대기에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둥글넓적한 얼굴에는 근엄한 듯 온화한 미소가 엿보인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통견(通肩)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17세기 전반 경 이후 불상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옷 입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되어 사실성이 돋보여 조성 화원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느끼게 한다.

















    본존불의 오른쪽에 있는 약사불은 굽어보는 듯한 자세와 머리 모양, 얼굴 표정, 짧아진 목과 당당한 어깨, 넓은 무릎, 사실성 넘쳐나는 손의 표현, 밋밋한 듯 부피감이 있는 신체 등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얼굴과 귀가 약간 길어지고 변화된 옷 입는 방식과 보다 복잡해진 옷주름 등만이 다를 뿐이다.














    사보살입상은 약사불과 아미타불 좌·우에 서 있는 네 구의 보살입상으로 일광·월광보살상과 관음·세지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네 구의 상 모두 배를 앞으로 약간 내민 듯한 S자 모양의 늘씬한 체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귀걸이·목걸이·팔찌 등의 장식을 하였다.



































    약사불의 양 옆에 있는 일광·월광보살상은 보관 중앙에 해와 달 모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왼손을 어깨 위로 들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한편 아미타불의 양 옆에 있는 관음·세지보살상은 오른손을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을 아래로 내렸는데, 각각 연꽃가지와 정병을 들고 있다.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천의 자락, 양 손·발 등의 조각 수법이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어서 석가모니불 및 약사불상과 함께 작품성이 뛰어나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면, 조선 인조 17(1639)에 청헌(淸憲)비구를 비롯한 11명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계사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조선시대 17세기 전반 경의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불단 향 좌측의 신중단괴 신중탱





    대웅전 신중탱 안쪽의 탱화





    불단 향 우측의 탱화 2점..









    감로왕도





    대웅전 공포와 단청이 장엄하다..













    평방(平枋 : 다포계 건축에서 창방 위에 설치하여 주두를 받쳐주는 가로 부재) 위에 설치한 공간포(空間包)는 중앙 3칸은 2개씩, 좌우의 2칸에는 1개씩을 올렸다.

    대웅전은 아름답고 매우 오래된 건축양식이어서 1968년에 보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뒤쪽 처마 밑에는 괘불 지주와 구시통도 보인다.. 

    대웅전 양편에는 직각 방향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왼쪽에 나한전이,   오른쪽에는 명부전이 서 있다.










    대웅전 앞에는 오래된  괘불대 2쌍이 있다..













    대웅전 향 마당 오른쪽에는 오층석탑이 있다.  탑 뒤로 주지스님이 기거하시는 '반야실'이 있다






     쌍계사 대웅전 앞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은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작은 석탑이다.





    쌍계사는 숲 속 깊이 자리한 사찰로,   고요하고 적막감이 감도는 곳이었는데 무더운 여름에 찾아가도 선선함을 즐길 수 있을것 같은  쌍계사 였다...





    대웅전 앞  쌍계사 석등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8호)





      예전에 불을 밝혔는지 아무튼 석등이다.   아기동자의 머리와 상체가 올라가 있는것 같다.





    대웅전 향 전면 왼쪽 구석에 서있는 이 '쌍계사 석등'(雙磎寺石燈)은 높이가 1.5m인 통일신라 시대의 석등으로 화사석(火舍石) 윗부분이 훼손되어 원형을 알기는 어려우나하대석과 상대석에 새겨진 8엽단판 연화문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쌍계사 첨성각


    대웅전 향 왼쪽 출입문 쪽으로 첨성각이 있는데 출입문 위로 대웅전에서 첨성각까지 회랑식 지붕이 이어져 있다.





    첨성각(瞻星閣)이라는 편액이 붙은, 돌담장으로 가려진 건물은 별을 보는 전각, 즉 새벽에 일찍 일어나 열심히 수행을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쌍계사에 상주하시는 스님들의 요사채가 아닐까 생각된다.





    쌍계사 나한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쌍계사 나한전은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지었으며, 인조 19(1641)에 벽암대사가 고쳤다고 한다.

    앞면 3·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옆면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널판이 있다.

    쌍계사 나한전은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은 건물이어서 사용된 재료의 크기도 작으며 장식도 생략되어 있어, 부속된 법당의 격에 맞춘 것 같은 소박한 느낌을 준다.







    쌍계사 나한전은 석가여래와 16나한상을 모시는 법당으로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석가여래 위쪽의 장식은 휘장 모양의 단청으로 대신하고 있다.





    16나한상님들...









     쌍계사 명부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23호)


    대웅전 오른쪽 옆에 서있는 명부전(冥府殿)1687(숙종 13) 성안대사(成安大師)가 처음 세웠고, 1710년에 중수한, 정면 5, 측면 2칸의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 건물로 오늘에 이른다. 건축 양식은 기둥 위에 놓인 주두와 창방 위에 직접 놓은 소로로써 사각형 부재로 된 첨차와 행공첨차를 받치고 있는 주심포식과 흡사한 익공계 건축이다.









    명부전(冥府殿) 안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한 금동 지장보살좌상과





    소조 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이 강조될 때는 지장전이라 하고, 10대 제왕이 강조될 때는 명부전이라 한다.   명부전은 칠성각, 산신각처럼 한국절의 특유한 법당으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나타내는 좋은 증거가 된다.





    쌍계사 대웅전의 오른편에 있는 명부전 옆쪽에는 커다란 바위 전면에 '마애불상'이 있다.





    쌍계사 마애불 (雙溪寺 磨崖佛, 경남 문화재자료 48호)


    큰 암석의 한 면을 움푹 들어가게 파내고 그 안에 불상을 돋을새김을 한 마애불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마치 감실 안에 봉안한 것 같이 보이는 특이한 형식의 불상이다육계가 뚜렷하며, 큰 머리에 통통한 얼굴로 귀는 어깨까지 내려가고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고 크게 표현되었으며옷은 두툼하여 옷주름이 무릎 부분 이외에는 뚜렷하지 않다. 손은 두툼한 법의 안에 덮혀 알수는 없지만선정인으로 보인다.

    불상의 높이는 1.35m 정도이며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고 소박한 모습의 이 마애불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 좌측의 나한전





    나한전 뒤로 화엄전,  삼성각이 보인다..





    대웅전 우측의 명부전과 그 사이로 금강계단이 보인다..






    대웅전 뒤쪽 금강계단 왼쪽으로 근래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쌍계사 화엄전(雙磎寺 華嚴殿)이 있다.





    화엄전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을 단독으로 봉안했.





    경판을 보관하는곳인 쌍계사 화엄전 이곳에는  쌍계사 불경 목판(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85호)이 보관된 전각으로 ,  불경 목판은 1603년에서 1903년까지 여러 차례에 제작된 것으로 우리나라 해인사 다음으로 많은 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금강계단에서 바라본 명부전과 대웅전





    쌍계사 금강계단 (雙磎寺 金剛戒壇)









    대웅전 뒷편에는 2007년 당시 쌍계사 주지 고산스님이 불자의 시주로 조성한 돌로 쌓아올린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있다. 이 금강계단은 스님들의 수계의식(授戒儀式)을 행하는 곳이다. 이것은 석가모니께서 비구들의 수계의식을 위해 기원정사 동남쪽에 단()을 세운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석단의 외곽에는 석조난간을 둘렀고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입상을 세웠으며, 이중으로 쌓은 방형(方形)의 단()에는 석종형(石鐘形) 부도를 안치하고 있다









    엎드려 들으니 선사 대은율사께서 칠불사에서 7일간 용맹기도 중에 서상 수계하시고 전수 계맥하되 계단을 정하지 않으시니 산승이 1988년 무진년 음력 717일에 쌍계사 대웅전에서 7일간 용맹기도를 시작하여 제5일인 721일 오후 기도 중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미륵보살이 오색구름 위에서 나투시고, 삼존불 아래 허공 중에 금자사구가 나타나니 /

     "심직명지계 심곡명훼범心直名持戒 心曲名毁犯 /

    직심근수행 이리구원성 直心勤修行 理利俱圓成" /

    하리라는 서상계를 받고는 불은에 보답코져 국내, 국외의 크고 작은 사암을 가리지 않고 보살계 전계전법에 전념하여 쉬지 않았으며 또한 대은율사서상계맥을 국내외 승속불자가 전수 받지 않음이 없으나 근본계단이 없음을 통탄히 여기고, 나 또한 서상 수계하였으나 근본계단이 없는 연고로 2007년 정해년에 불현듯 뜻을 내어 바로 대시주자를 만나 대은고산율맥계단을 원만 조성하여 부처님 혜명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니 유정들도 무정들도 모두 정계를 받고 번뇌를 여의고 보리를 이루어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며 사바세계가 극락으로 바뀌어 지고, 이것을 보고 듣는 이는 부처를 이루어서 중생계가 다하도록 모두 다 상락아정을 즐길지어다.









    금강계단 뒤쪽에는 금강계단과 함께 조성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는 마애석가모니불이 있다..





      마애삼존불









    삼성각


    대웅전의 왼쪽 뒷편 축대 위에는 삼성각(三聖閣)이 자리잡고 있다.

    정면 3, 측면 1칸의 작은 전각이며, 앞쪽의 화엄전과 같은 시기인 근래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삼성각은 우리나라의 전통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안에는 칠성, 독성, 산신을 함께 모셔 두었다.. 







    대웅전 영역의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삼상각에서 대웅전 영역을 내려 간다..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본 팔영루의 금강계단 편액이 붙은 안쪽 풍경이다..   팔영루의 후면은 다소 어수선한 전면과 달리 큰 전각다운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팔영루 뒤쪽 적묵당과 설선당이 있는 마당에서 바라본 쌍계사 전경이다..





    대웅전 영역에서 쌍계사 범종루(雙磎寺 梵鐘樓)로 향한다..




    범종루









    근래에 지은 범종루에 법고. 범종. 목어. 운판이 보관되어 있다.









    범종각은 대웅전 마당의 팔영루 오른쪽에 팔영루와 일직 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금당(金堂) 영역으로 오르는 계단


    대웅전 영역에서 팔영루 옆 범종각 밑으로 내려서면 육조 혜능의 정상탑을 모신 금당영역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





    금당(金堂) 영역으로 올라가는 108 계단이다. 쌍계사 옆을 흐르는 계류의 다리인 옥천교(玉泉橋)가 있다. 아마 금당을 중심으로 창건된 쌍계사의 최초 명칭이 옥천사(玉泉寺)라는 사실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쌍림총림 쌍계사의 최고 책임자인 방장스님이 사용하시는 곳인 방장실은 돈오문 오르는 계단 왼쪽에 있다.





    옥천교(玉泉橋)를 건너 계단을 오르면 금당 출입문인 문득 깨달음에 이르는 문이라는 뜻을 가진 '돈오문'이 보인다.




    금당영역은 스님의 수행공간으로 동안거와 하안거 후 3개월씩 1년중 6개월만 개방하는데 음력 116일부터 414일 까지와 음력 716일부터 1014일까지의 기간이다.

     

    쌍계사는 진감국사에 의해 세워진 옛 절인 금당 영역과, 벽암 스님에 의해 중창된 대웅전 영역의 두 공간으로 구분되는 독특한 가람 구성을 이루고 있다.

    청학루팔상전금당 등이 금당 영역은 입지 구조상 남향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서향을 이루고 있는 대웅전 축선과 달리 남향을 취하고 있는 것은 이 탑이 금당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일 듯하다.









    돈오문 아래의 저 돌계단을 오르면 불일폭포와 국사암 가는 길이다..





    돈오문 안쪽,   금당 영역의 내부 모습이다.   좌측이 청학루이고, 그 뒤가 팔상전 이다.









     쌍계사 청학루(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호)


    돈오문을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누각으로 고려말에 처음 생겼는데 옛 절의 누각에 해당하는 현재 건물인 청학루(靑鶴樓)1930년에 당시 쌍계사의 주지인 손민 선사가 다시 지은 것으로 맞배지붕 형태의 2층 누각으로 청학루는 초심자 승려들의 수도장으로 이용된 곳으로,  이와 관련한 백곡도인(白谷道人)의 청학루 수행기문이 있으며,  1902년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선생이 남도를 여행할 때 이 지역의 사림 32명과, 사찰 주지 1명과 함께 시회를 창립하고 '청학루음사'(靑鶴樓吟社)라 이름 지었는데, 그 현판이 지금도 청학루에 걸려 있다고 한다.





    청학루는 금당 지구의 누각으로맞배지붕에 앞면 3옆면 2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   1641년에 벽암 선사가 중건하였고 최근에는 1978년 고산 스님이 중수하고 1991년에 청기와 번와 및 일부 보수가 있었다. 청학루(靑鶴樓)라는 이름은 쌍계사 주변의 산세가 매봉산(좌청룡백학봉(우백호)가 있는데, 청학루는 좌청룡 기슭에 있기에 이름을 청학루로 하였다고 한다.













    금당 영역의 내부 모습이다.   우측이 청학루이고, 그 뒤가 팔상전이며계단 끝높은 곳에 있는 건물이 금당(金堂)이라고 한다.

    청학루를 돌아 금당쪽으로 향하면 왼쪽에 요사로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의 영주당이 있는데 불사가 한창이다.





    계단 위로 금당 중간의 팔상전 그리고 영모전이 보인다..





    쌍계사 팔상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


    팔상전(八相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 옆면 2칸의 규모 정면의 팔작지붕의 목조건물로 석가모니의 생애를 그린 팔상도를 모신 팔상전은 고려 1290(충렬왕 6) 진정국사가 초창하여 조선 1466(세조 12)선비대사가 중수하고 1678(숙종 4)에는 천봉선사가 1806(순조 6)에는 화악선사가 중수하였으며 1978년 고산스님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한다.   이 건물은 기둥위로 평방을 돌리고 기둥 위와 그사이에 공포를 배치한 다포계양식이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을 두었다.   비교적 다출목의 결구를 공포로 두어 내부가 높게 보이나 단순한 형태를 보이고 세부에 일부 장식적인 조각수법이 보인다.


    건축 양식은 기둥 위로 평방을 돌리고 기둥 위와 그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한 다포계 양식이다공포는 외3출목, 4출목을 두었는데 외부 제공의 끝은 장식 조각이 없는 강직한 쇠서로 되었고 내부는 모두 교두형으로 되었다.   내부 불상 위로 간단한 닫집을 두고 그 위로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비교적 다출목의 공포를 결구하여 내부가 높직하게 보이나 단순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앞면 3·옆면 3칸의 규모이며, 팔작지붕집이다.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2구씩 포를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건물높이에 비하여 처마의 길이는 짧다. 내부의 천장은 점차 높이 올라가는 층단형으로 높직하게 보이나 단순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세부에서 일부 장식적인 조각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쌍계사 팔상전내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크기는 길이 410, 273.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내용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사천왕상, 여러 보살, 제자 등의 무리가 석가불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중앙에 앉아 있으며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는 작으며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하다. 사천왕상과 여러 보살, 제자들의 모습은 석가불처럼 당당한 모습니다. 색채는 밝고 부드러운 중간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조선 숙종 7(1681)에 그려진 이 불화는 비교적 큰 편이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공간의 처리방법과 회화기법 등 이 매우 뛰어나며 17세기 중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팔상전 팔상탱(보물제 1365)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탱이다.

    팔상탱의 여덟 장면은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 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폭마다 동일하게 화면의 아랫부분에 그림에 대한 내력을 적어 놓았는데, 이 기록을 통해 옹정 6, 1728년에 일선·후경·명정·최우·원민·처영·신영·영호 등 8명의 승려화가들에 의해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패널형식의 각 폭 모두 주요 내용만을 중점적으로 나타낸 간단한 구도로, 전체적인 구성이 1725년에 그려진 순천송광사팔상도와 비교할 때 색채만 약간 다를 뿐 거의 같은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동일본을 사용하여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석가팔상도 가운데 예천용문사팔상탱(1709)에 이어 비교적 제작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며 공간감과 색채의 조화 등 그에 상응하는 화풍상의 특징도 보여주고 있다.













    봉래당


    팔상전 우측에 팔상전과 직각 방향으로 있는 전각으로 봉래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고 요사로 보인다.





    쌍계사 영모전


    팔상전과 봉래당 사이에 있는 전각으로 쌍계사의 창건주인 진감선사의 초상 (동치2,1863)을 비롯하여 지눌대사의  초상사명부휴벽송소요호원대사등의 초상을 모신 곳으로인조 19(1641)에 벽암스님이 중창하고 1978년 고산스님이 중수하였다.   정면3측면2칸 맞배지붕이다.





    팔상전 옆 계단을 오르면 금당이다..





    쌍계사 육조정상탑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25호)


    금당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 2,  ‘육조정상탑’. ‘세계일화조종육엽이다. 참 멋진 글씨이다.









    쌍계사 금당  정상사리탑전





    진감선사는 육조영당(六祖靈堂)을 세우고 육조혜능의 정상을 안치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나중에 금당(金堂)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는데, 현재의 금당 안에는 용담 스님이 묵암사에 있던 7층 석탑을 옮겨다 놓고 그 아래에 육조정상을 안치하였다금당 안에 있는 이 탑이 바로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 이다.

    그래서 금당은 불상 대신 그 자리에 탑이 들어서 있는 특이한 법당이 되었다.












    서방장 (금당 좌측 위치)


    동방장. 서방장은 금당의 양쪽에 위치하며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이다.





    동방장 (금당 우측 위치)





    지리산 자락의 큰 절인 쌍계사는 이처럼 불법을 전하는 일 말고도 불교 음악과 차의 보급을 통해 긴 세월에 걸쳐 우리 문화의 발전은 물론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 온 참 좋은 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가며 청학루 오른쪽에 요사로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의 영주당이 있는데 불사가 한창이다.





    금당 마당 언덕과  팔상전 언덕사이에  꽃무릇이 장관이다.





    이제는 곱던 붉은색도  빛 바랬지만 한때는 고운 자태를 뽐냈을 꽃 무릇이다..

















    아쉬운듯 청학루와 봉래당 사이로 보이는 팔상전을 바라 본다..



    금당을 나오며 돈오문에서 바라본 쌍계사 전경이다..





    돈오문에서 108계단을 내려 간다..








    돈오문 입구의 쌍계사 방장님이 기거하시는 공간 방장실이다..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맑은 계곡물...





    범종루를 옆으로 끼고 쌍계사 팔영루 마당으로 내려 선다..









    쌍계사 팔영루와





    구층석탑도 다시 만난다..







    성보박물관은 공사중이라는데 오랫동안 박물관을 열지 않은듯 보인다..






    팔영루 오른쪽 동백나무 숲에 1915년 입적하신 쌍계사 칠불암에 계시던 평운 선사 부도가 빛을 발했다는 방광탑이 있다.













    천왕문 옆길을 따라 템플스테이관 쪽으로 내려 간다..





    금강문이 보인다.






    쌍계사는 벚꽃으로 유명한 곳인데 대나무 숲의 푸르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템플스테이관 이다..

























    일주문 옆의 비전도 보인다..









    쌍계사 일주문도 지나서 이제 사바의 세계로 나간다..









    일주문 앞에서 바라본 계곡옆으로  금강문과 천왕문이 보인다..









    전통문화 불교예술관이다..





    쌍계사 냇물을 따라 매표소 쪽으로 내려 간다..





    쌍계사 종합 안내도도 지난다..





    멋진 숲길을 내려 간다.









    매표소도 지나..





















    쌍계1교도 지나....




    주차장에 도착이다..







    쌍계사가 '쌍계총림'(雙戒叢林)으로 승격 지정이 되었다.

    총림은 범어로는 Vindhyavana라고 표기하고빈타파나(貧墮婆那)라 음역하며단림(檀林)이라고도 한다. 사찰이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염불수행을 전문적으로 전수하는 염불원(念佛院)을 모두 갖추어야만 한다.

    쌍계사는 총림 승격으로 이제 종합 수행도량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해인총림 해인사영축총림 통도사조계총림 송광사덕숭총림 수덕사고불총림 백양사금정총림 범어사팔공총림 동화사그리고 쌍계총림 쌍계사 등 8대 총림이 있는데, 총림의 수장은 방장(方丈)이라고 부른다.

     

    앞으로 쌍계사가 선종의 총림으로서 우리 불교계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 보다 큰 몫을 담당하는, 진정으로 좋은 사찰로 발전해 나가면 좋겠다.


    여러가지 유물들이 숨겨져 있는 곳이라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여행한다면 목적지를 찍고 오는 것보다 여유를 가지며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고 싶은 곳이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날 눈꽃처럼 휘날리는 벚꽃 길을 걸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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