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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북정과 조천연대(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2690)여행방/제주도 2017. 3. 21. 21:00
연북정과 조천연대
2017. 3. 21.
2017. 3. 21. 제주 한달살기 8일째 날이 시작된다...
오늘은 옆지기가 포항에 볼일이 생겨 오늘 3. 21. 11:30 비행타고 가서 3. 23. 15:00 제주공항도착예정이라 10:00 까지 제주공항으로 남편을 모셔다 주고 그때부터 3일간의 나혼자만의 자유 여행을 시작한다..
오늘 계획은 제주시쪽을 중심으로 사라봉.별도봉 오름걷기, 삼양검은모래해변, 연북정, 제주항일기념관, 함덕해변.서우봉 둘레길, 구좌 해안도로, 김녕성세기해변, 김녕미로공원, 만장굴을 바쁘게 여행할 계획이다..
제주 한달살기 8일째날 여행지 세번째로 파도에 쓸리는 삼양검은모래 해변을 뒤로하고 또 다시 해안 도로를 따라 조천읍의 연북정과 조천연대를 향해 길을 간다.....
삼양검은모래 해변을 뒤로하고 또 다시 해안 도로를 따라 조천읍의 연북정과 조천연대를 향하다가 만난 밭에서 겨울을 난 제주의 무밭이다..
조천읍에 들어섰다..
어딜 가나 그림인 제주... 도로를 달리다가 도로 옆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바다와 연결된 바다를 본다..
조천읍사무소를 지나..
좌측으로 조천리 일주 도로에서 북쪽으로 가면 포구와 접하여 타원형으로 된 조천성과 함께 연북정이 있다...
아뭏튼 보물섬 제주도를 들리면 눈과 몸이 바쁘다. 그중에 '조선의 하늘'이라는 의미의 '조천(朝天)'이라 했던 그 그윽한 스토리텔링이 녹아나 있는 조천읍 조천리 2690 조천관(朝天館)을 찾는다.
본래 객사였던 '연북정'이 처음 세워진 것은 고려 공민왕 23년(1374)으로, 당시에는 조천진성 바깥에 있었다고 한다.
1590년(선조23) 조천성(朝天城) 안에 있는 조천관(朝天館)을 중수하고 1599년에 다시 건물을 짓고 연북정(戀北亭)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조선 선조 23년(1590)에 조천관 건물을 새로 지은 후 쌍벽정(雙壁亭)이라 하였다. 여기서 쌍벽(雙璧)은 청산녹수(靑山綠水)에 접하여 있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 후 선조 32년(1599)에는 성윤문(成允文)목사가 그 건물을 중수하고 ‘임금을 사모한다’는 뜻으로 다시 제주 연북정(戀北亭)으로 고쳤다.
지금의 연북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게 축대를 쌓고 다진 기단 위에 세웠다. 축대의 북쪽으로 둘러싼 타원형 성곽의 모양과 크기가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망을 보기 위한 망대의 용도로 지은 것이라 추측이 가능하다.
누정은 우리네 선조들의 영혼을 잇는 유정천리의 긴 맥이었다. 이 누각 ‘연북(戀北)’이라는 정자의 이름은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바닷가에서 위치한 관정 객사(客舍)로 제주도로 유배 온 사람들이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쪽에 계시는 임금을 사모한다는 충정의 뜻을 담고 있다. 그들의 속풀이로 긴 시간여행을 떠난다...
연북정 에서 바라보이는 저 바다 건너 육지에 제주사람들이 연모하는 임금님이 계신 곳이다.
창호도 없이 사방이 뚫려 있어 시원하고 씁쓸한 바닷바람을 양껏 음미할 수 있는 구조다. 바로 앞에는 조천진성의 옛 건물 터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세월의 무상(無常)함도 느껴진다. 사실 연북정 건물 자체는 간결하고 소박하게 지어져 있다. 기둥도 낮고, 옆으로 쭉 퍼져 있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위엄이 있어보이기보다는 편한 동네 정자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토록 편한 정자에 가만히 앉아서 바람을 만끽하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리 집 안방이 생각날 법도 하다. 연북정 주변의 자연환경의 탓도 있겠지만 건물 자체가 주는 이유모를 편안함이 이 곳에 올라오는 모든 이들에게 집과 고향을 생각나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천항 바로 옆에는 조천진성이 있었다고 한다.
총 둘레 128m에 이르는 거대한 성이자 방어시설로 존재했던 조천진성은 남해의 골칫거리인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처음 지어졌다. 총 9개의 진(鎭)의 외곽을 빙 둘러서 축조한 성곽으로 연북정도 이 곳 위에 건설되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연북정을 제외한 수많은 건물이 사라지고 현재는 주위에 드문드문 터만 남은 초라한 성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이렇듯 초라한 모습으로 조천항을 바라보고 있는 조천진성이지만 과거에는 다양한 역할을 지닌 다목적 성이었다고 한다.
먼저 처음 언급했던 방어시설로서의 기능. 이 곳에는 조천방호소와 조천포수전소가 있던 방어의 요충지로 현재의 대대병력 정도가 주둔하던 곳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조천진성은 왕명을 받는 곳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었다. 조천이라는 이름 자체가 천자(天子)의 나라에 조회(朝會)하러 나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왕의 명을 받드는 신성한 자리로도 취급되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실용적인 기능이 있는데, 바로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풍향을 관측하던 곳이라는 것이다. 이 마지막 기능은 현재도 연북정에 올라보면 실감할 수 있다. 연북정에 올라 바다 쪽을 바라보면 한 눈에 저 멀리의 파도높이가 저절로 눈에 들어온다. 나부끼는 깃발과 몸을 휘감고 도는 바람으로 그 세기를 짐작할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바로 옆에 포구가 위치해 있어 풍향을 관측하고 바로 배를 띄울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기능을 지닌 조천진성 위에 우뚝 자리 잡은 것이 바로 객사(客舍)이자 망루(望樓)인 연북정이다.
마을을 벗어나 포구쪽으로 연북정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다.
제주도에 유배 온 사람들이 이곳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임금님을 생각하며 행여나 기쁜 소식이 올까 기다렸다는 곳이다. 고통스럽고 한스런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군주를 향한 연정을 품었다는 것은 이 시대에 보면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연북정, 얼마나 많은 유배객들이 이곳에서 귀향을 꿈꾸다 스러졌을까?
조천 앞바다
조천리 일주 도로에서 북쪽으로 가면 포구와 접하여 타원형으로 된 조천성과 함께 연북정이 있고, 북동쪽으로 300m 정도를 더 가면 해안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에 조천연대가 있는데 조천연대로 향한다.
큰물(여탕)
작은 돈지(남탕)
조천연대.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이었다..
조천연대(朝天煙臺)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연대이다. 1976년 9월 9일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었다.
조천연대에서 본 조천읍
연북정과 조천연대를 보고 다시 제주항일기념관을 찾아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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